일 시: 2015년 6월5일
대미를 장식하는 해파랑길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했던가. 그래서 유종의 미가 존재하게 된다. 2013년1월7일 30여명의 동지들이 부산 오륙도를 출발하여 1년 7개월 만에 강원도 고성군 통일전망대에서 “해파랑길” 770km의 대장정을 마무리하는 감회는 경험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전유물이 아닌가 싶다.
진부령을 넘어온 버스가 고성군청을 지나 거진읍에 도착한 시각이 10시30분이다. 날씨까지도 우리의 장도를 축원하는지, 북쪽으로 올라간 장마덕분에 수평선 너머 수십km까지도 선명하게 보인다. 해맞이공원이 시작되는 나무계단을 올라 소나무 숲속으로 파고든다.
작열하는 태양아래 바람마저 잠들고, 솔밭 속에서도 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마른장마 덕분에 산천초목도 물이 그리워 애간장이 타들어가는 계절이다. 그림 같은 거진항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서면 해맞이 공원이 펼쳐진다. 거진이 자랑하는 등대를 비롯하여 진주조개와 명태 조형 탑까지 수평선이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에 갖가지 조형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거진항은 1930년대만 해도 120호의 작은 어촌이었다. 6.25전쟁으로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도시를 형성하게 되었고, 1973년 읍으로 승격될 당시에는 2만5천여 명의 주민들이 겨울에는 명태, 여름에는 오징어, 가을에는 멸치잡이로 성시를 이루었다. 하지만 성시를 이루던 명태어장이 베링해협으로 이동하면서 거진의 명성도 사라지고 금강산 사건이후로 활기를 잃고 말았다.
거진이란 도시는 명태와 운명을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물망이 터지도록 명태를 잡아 올릴 때는 개들도 돈을 물고 다닐 만큼 신 바람나는 도시였지만, 자취를 감춘 명태와 함께 선창가에는 찬바람만 불어온다. 검푸른 바다 밑에서 줄지어 노닐다가 대구리가 커지면 어느 어부의 그물망에 걸려 황태덕장에서 모진 바람 맞아가며 노란 황태로 탄생하는 황금어종이 아니던가.
거진해맞이봉 정상에 있는 팔각정에 올라서면 동해의 검푸른 물결이 출렁인다. 오징어잡이로 밤을 새운 어선들이 흰 꼬리 포말을 일으키며 항구로 돌아오는 모습은, 혼잡한 세상을 등지고 살아가는 평화로운 어촌의 정경이 그대로 살아난다. 어부들의 소박한 꿈은 명태가 다시 돌아오는 그 날이란다.
울창한 소나무와 해안절벽이 관동팔경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산림욕장이다. 해서 거진에서는 화진포의성(김일성별장)까지 4.8km를 화진포산소길로 명명하고, 오밀조밀하게 산책로를 조성하여 남녀노소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오를 수가 있다. 드디어 환성이 터지는 응봉. 122m의 낮은 정상이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화진포는 말로 표현할 수없는 선경이다.
강릉의 경포호, 속초의 송지호와 함께 관동팔경이 자랑하는 호수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곳이 화진포다. 화진포는 원래 바다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는 동안 모래톱으로 바닷길이 막혀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호숫가에 해당화가 만개하여 화진포라 부르며 둘레가 16km에 이르는 동해안 최대의 자연호수다.
울창한 금강소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김일성별장을 만난다. 일제강점기인 1937년 유럽에서 온 선교사들의 별장이었다. 독일의 건축전문가 베버가 심혈을 기울여 해안가 절벽위에 원통형으로 지은 중세유럽의성을 닮은 아담한 2층 건물이다. 해방이후 화진포의 비경을 찾은 김일성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김일성 별장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화진포에는 이승만별장과 이기붕 별장도 있다. 6.25전쟁 중에 우리국군이 진격하여 점령하면서 우리의 관할로 들어오고, 휴전이 되면서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부통령이 이곳을 찾으면서 별호를 갖게 되었다. 무소불위의 권력도, 3.15부정선거로 인해 대통령은 하와이로 망명길에 오르고, 이기붕은 둘째아들 이강석의 총탄으로 비극의 종말을 맞았다.
통일안보 공원까지 7km를 더 가야 49구간이 마무리 되지만, 33도의 폭염 속에서 강행군하는 것이 무리라는 판단에 따라 자동차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다행이 2006년 거봉회에서 1박2일로 다녀간 적이 있어, 추억을 되살리며 금강산콘도까지 여정을 더듬어본다.
화진포 호수와 해수욕장은 금강송을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공존하고 있다. 겨울이면 넓은 갈대밭위로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와 청둥오리들이 찾아들고, 한 여름이면 더위를 피해 찾아온 피서객들로 만원을 이루는 해수욕장. 금강송 그늘아래 고운모래가 끝없이 펼쳐지는 해수욕장이 낭만과 추억을 부른다.
화진포 앞바다에는 금구도라는 작은 섬이 있다. 광개토대왕의 능이 있다는 전설과 함께, 이 마을에 이화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성질이 어찌나 고약한지 금강산 건봉사에서 시주를 위해 찾아온 승려에게 시주는커녕 바랑에 똥바가지를 퍼주자 스님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하고 돌아간 뒤 구두쇠의 집과 전답이 물속에 잠겨 화진포가 되었다고 한다.
초도해변을 지나면 그림 같은 대진항과 산등성이에 우뚝 솟은 대진등대가 인상적이다. 고성군 현내면 주민센터가 있는 대진항은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어항이다. 파도소리횟집에 숙소를 정한 우리는 바다 낚싯배에 올라 동해의 푸른 바다위에서 바로 잡아 올린 싱싱한 광어회로 소주잔을 기울이던 추억이 엊그제 만 같다.
대진항의 상징인 대진등대는 어로한계선을 표시하는 도등의 역할을 위해 1973년 1월 불빛을 밝히기 시작했으나, 1991년 어로한계선을 북쪽으로 5.5㎞ 상향 조정하면서 1993년 4월 1일 일반등대로 전환하였다고 한다. 대진등대는 등탑이 팔각형 콘크리트로 축조되었고, 37km 떨어진 해상에서도 식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대진등대에서 금강산 콘도까지는 청정지역의 깨끗한 해변이 펼쳐진다. 쪽빛바다의 푸른 파도가 넘실거리는 마차진해변은 여름한철 피서객들을 위해 개방한다. 민간인들이 갈수 있는 최북단의 금강산 콘도. 망향의 그리움에 눈물짓는 실향민들이 북쪽하늘을 바라보며 통일을 염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부터는 자동차로 이동하는 구간이다.
화진포에서 관광버스로 10여분 만에 도착한곳이 통일전망대출입국관리소 앞이다. 휴전선을 찾아간다는 생각만으로도 긴장감이 감돈다. 모든 회원들이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는 동안 우리를 대표하여 이익수 대장이 신고서를 작성한다. 차종과 차량번호, 동승자 신분 관계 등을 기입한 다음 안보교육을 받은 후, 자동차로 통일전망대까지 이동하게 된다.
잠시 후 민통선에서 가장 가까운 명파리를 지난다. 고향을 이북에 두고 온 실향민들이 통일을 염원하며 살아가는 곳. 고향의 맛 아바이 순대로 유명한 명파리에도 긴장의 순간이 있었다. 지난6월 21일 동부전선 GOP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명파리를 비롯하여 인근마을 주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동료에게 소총을 난사하고 무장한 채 도주한 임모 병장이 수색조들과 교전을 벌이는 동안, 가슴 졸이던 순간을 떠올리면 불안감이 앞선다고 회상한다. 북한과 철책을 사이에 두고 살아가는 주민들에게는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살아가지만, 금강산 사건으로 어려움을 격고 있는데, 이번 사건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고 한다.
제진검문소에서 헌병의 검문을 받은 뒤 7번 국도를 따라 통일전망대로 향한다. 이 길은 금강산 가는 길이다. 7년 전 오색단풍이 만개한 청명한 가을날. 휴전선철책을 넘어 금강산을 찾아가던 날이 꿈만 같다. 현재는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금강산이라 더욱 보고 싶다.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통일전망대에 도착한다.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이 해파랑길 49, 50코스 안내판이다. 1년 반 동안 먼 길을 달려오면서, 예상치 못한 병마(만성기관지염)에 시달리며 완전종주를 하지 못했지만, 종착점을 함께 밟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 벅찬 순간이다. 나머지 구간도 완주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뒷바라지에 헌신적인 아내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기념패를 만든다.
여보! 나머지 인생도 멋지게 살아봅시다. 나의 반쪽, 영원한 동반자. - 통일전망대에서 - 2014년 7월 20일 남편 김완묵이 사랑하는 김선화에게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고성 통일전망대는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해발 70여m의 낮은 언덕에 자리 잡고 있지만, 금강산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전망대 오르는 길목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고성지역전투 충혼탑”이다. 휴전을 앞두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였던 고성지구.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겠다는 일념으로 화진포와 명파리까지 우리의 땅으로 수복한 순국선열들의 투혼에 머리를 숙인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비무장 지대와 휴전선 너머로 그리운 금강산이 보인다. 발아래로 이어지는 7번 국도는 금강산까지 이어지고, 남북철도가 완공되는 날, 유라시아까지 실크로드가 펼쳐지는 꿈을 꾸게 된다. 하지만 금강산까지 이어지는 해안의 모래해변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지구촌에 단 한곳밖에 없는 분단의 현장에서 우리는 다짐한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금강산을 배경으로 포토죤이 설치돼 있다. 이번 해파랑길 원정대에서 어린 나이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770여km를 완주한 재석(초등학교 4학년)이와 다정한 포즈를 취한다. 가장 나이 많은 나와 재석이는 60년이라는 세월을 뛰어 넘어 해파랑길을 함께 걸어 왔으니 장하고 대견하다. 재석아! 너의 굳은 의지가 앞날에 큰 힘이 될 것이다. 파이팅 !!!
남과 북을 동시에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북녘 땅을 바라본다. 구선봉을 중심으로 해안가로 뻗어 내린 만물상과 해금강, 지척에서 바라보면서도 갈수 없는 금단의 땅. 통일의 그날을 기원하며 아쉬운 발걸음을 돌린다.
화진포로 돌아와 3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오는 전통막국수 집에서 술잔을 높이 들고, 해파랑길의 대미를 장식하는 자축연으로 모든 일정을 마감한다. 감사 합니다. 이익수 대장님, 그리고 동지여러분 건강하세요. 2014년 7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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