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구간: 덕현리 고개 - 문드러니고개 / 12km
독조지맥의 중간지점인 노성산구간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일죽까지 고속버스를 이용하게 된다. 용인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목적지에 도착하여 덕현 고개까지 택시로 10여분 거리다. 안성시 일죽면과 이천시 설성면이 경계를 이루는 329번 지방도로 오른쪽으로 마을 사람들이 산책길로 이용하는 오솔길이 시원하게 열린다. 하지만 충효의 고장 이천이 자랑하는 호국원을 외면할 수 없어 500여 m 떨어진 공원으로 향한다.
노성산 기슭에 자리 잡은 호국원은 입구에서부터 거창한 건물들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호국 영령들이 편안히 영면할 수 있도록 새로 단장한 장내는 정갈하고도 엄숙한 분위기가 풍긴다. 원호의 달을 맞아 영내에는 태극기로 물결을 이루고 위령탑 앞에서 경건한 묵념으로 예를 올린다. 말로만 듣던 호국원. 예로부터 충신열사들을 많이 배출한 고장의 후손들이 선열을 기리는 정성으로 훌륭한 공원을 조성하였으니 자손만대에 길이 남을 업적이라 하겠다.
들머리로 되돌아와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울창한 숲속으로 층층계단이 이어지고, 삼거리 갈림길에 오르면 노성산 0.7km의 이정표가 방향을 알려주고 있다. 운동기구와 쉼터가 있는 250봉에 올라서면 너른 헬기장이 자리 잡고 모처럼 주위를 둘러볼 수 있는 전망이 펼쳐진다. 268봉을 지나 약간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삼각점(장호원 26.1985 복구)과 노승산. 장수봉(將帥峯)이라 표기된 2개의 정상석과 국기게양대가 반겨준다.
정상석 이름이 여러 개로 표기된 것은 산이 지니고 있는 명성과 전설에 따라 부르게 되는데, 예로부터 소나무가 많아 노송산(老松山)이라 부르고 말머리 바위에 얽힌 전설에 따라 장수봉이라 하며, 老스님이 부유한 산서(山西)마을에서 탁발하여 가난한 산동(山東)마을 사람들을 살려준 미담 때문에 노승산(老僧山)으로 부르고 있다. 또한 낮은 산세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100대 명산에 선정될 만큼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산세와 희귀식물인 고란초가 자생하고 있어 노성산(老星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노성산은 웅장하거나 거창한 산이 결코 아니다. 높이라야 274m에 불과한 작은 산이다. 하지만 주위를 압도하는 기암괴석과 수 백 년을 자랑하는 노송들이 품어내는 솔바람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어루만지며, 솔밭 사이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심신이 지친 이들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는 삼림욕장이다. 이곳의 조망 역시 막힘이 없어, 설성면과 일죽면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의 너른 평야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동쪽으로 널찍한 등산로를 따라 내려서면 왼쪽으로 수 십 길 벼랑위에 그림 같은 정자가 있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잠시 주변 경관을 돌아본 후 내려서는 등산로는 왕사토의 비알길이라 방심을 해서는 안 된다. 경내로 들어서면 새로 조성된 약사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많은 건물들이 자리를 잡고 연대는 잘 모르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있는 7층 석탑이 원경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듯 고고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사천왕상이 있는 일주문을 나서면, 내소사 숲길에 버금가는 울창한 소나무가 하늘을 뒤덮고, 다람쥐와 청솔무가 숨바꼭질하는 고목나무 그늘 속으로 빠져나오며 노성산 탐방도 끝이 난다. 진입로를 따라 금당리까지 진행해도 되지만, 마루금을 이어간다는 사명감으로 잡목을 헤치며 왼쪽능선으로 들어선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묵정밭에는 산딸기의 날카로운 가시들이 옷깃을 부여잡고 흐드러진 개망초가 허리를 휘어 감는다. 밭두렁을 따라 설성공원묘지 주차장까지 내려선 다음, 진입로를 따라 329번 도로가 지나는 설성자동차 정비공장 앞 삼거리에 도착한다.
여주방향으로 333번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2차선 지방도로는 화물차들이 수시로 질주하고, 갓길도 없는 도로에서 무자비하게 달려가는 차량들을 피하느라 신경이 곤두선다. 장천2리 버스정류장을 지나 계원율림농장 입구(이정표) 갈림길에서 오른쪽 1차선도로를 따른다. 간담이 서늘한 2차선도로를 벗어나 한가로운 시골길을 걷노라면, 길옆으로 인삼밭과 과수원, 목장들이 펼쳐지고 구수한 쇠똥 냄새가 코끝을 파고든다.
모처럼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사색을 즐기며 계원율림농장 앞에 도착하니 육중한 철문에는 “이곳은 사유지이므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경비견의 위세에 눌려 안으로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왼쪽으로 농장의 철조망 사이로 난 임도가 길을 틔워준다.
흐드러진 밤꽃향기가 진동하는 계원율림농장은 수 십 만평의 분지위에 아름드리 밤나무가 장관을 이룬다. 지방마다 특산물이 있어 상주에는 곶감이요. 가평에는 잣, 라주 하면 배가 유명 한 것처럼 공주 밤을 가장 알아주는데, 이곳에 대단위 밤 농장이 있을 줄이야 어찌 알았으리요.
시골집 뒤란에 밤나무 한그루가 동심의 놀이터가 아니던가. 소슬바람 불어오는 가을이 되면, 밤새 떨어진 밤 줍기에 잠을 설치고 화롯불에 익어가는 밤 까먹던 재미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었다. 지금이야 품질개량으로 어린아이 주먹만 하게 커지고 웰빙 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유실수가 아닌가?
논둑을 가로질러 후문을 찾아왔지만 이곳역시 지맥을 점령하고 있는 밤나무단지로 인해 허탈한 마음으로 마루 금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임도를 따른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농로에 고만고만한 산자락, 마루 금을 차지하고 있는 목장들 탓에 지맥을 찾아가는 길이 막연하기만 하다.
다람쥐 체 바퀴 돌듯, 송계리를 한 바퀴 돌아 울창한 숲 사이로 살그머니 고개를 내미는 산불감시초소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마음에 밭고랑을 가로지른다. 돌박지산(산불초소, 삼각점 장호원 447, 1988 재설) 165m의 낮은 키에 빈약한 몸집이라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낮 간지러운 곳.
하지만 호랑이 없는 골에 고양이가 왕이라고 했던가. 망루에 올라 사방을 굽어보니 설성면과 모가면, 가남면과 장호원 읍내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무성한 가시덤불사이로 빠끔히 터진 길을 찾아 과수원으로 내려서면 왼쪽으로 가족묘지 가운데 커다란 비석이 눈길을 끈다. 유명인사의 묘역이 아닌가 하여 호기심으로 달려가니“예의바른 실천운동”의 문구가 반겨준다. 충효의 고장임을 일깨워주는 교훈으로 각박한 세상에 가문을 이어가는 한줄기 빛이 아닌가 싶다.
순탄하게 진행하는 안도감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왼쪽으로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가남면 소재지인 태평리에서 설성면 금당리를 오가는 2차선 지방도로와 만난다. 금당리쪽으로 방향을 잡아 300여 m 진행하면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직진은 안성, 금당리 방향이고, 왼쪽은 전파연구소 이천 분소 가는 길이다. 전파연구소 방향으로 진행하면 왼쪽으로 송암목장의 전경이 펼쳐지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말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목장의 말들을 바라보며 10여 분간 진행하여 도로가 구부러지는 지점에서 왼쪽의 사면으로 접어들면 도로변에 김해김씨 묘가 반겨준다. 한 여름 웃자란 가시덤불을 헤치면 뚜렷한 등산로를 만나고 164봉을 올라서면 설성산 갈림길이 나온다.
설성산이 마루 금에서 비껴나 있지만 지척에 있는 정상을 어찌 외면할 수 있으리요. 잡목을 헤치며 발걸음을 재촉하는 중에, 계곡에서 들려오는 총소리가 귀청을 파고든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유탄이 날아오는 사거리에서 사명감이 무슨 소용이냐. 머리칼이 곤두서며 온몸이 오그라든다. 三十六計 줄행랑으로 현장을 벗어나기에 여념이 없다. 전방의 산을 오르다보면 종종 이런 일을 당하게 되지만, 위험지역에는 경비병들이 안내를 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징후도 없이 갑자기 당한 일이라 모골이 송연하다.
얼결에 225봉과 253봉을 지나고나니 총소리도 멀어지고, 위험지역을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긴장이 풀린 탓인지 피로감이 몰려온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풀며 터덜터덜 발걸음을 옮기는 중에 육중한 철조망과 함께 견고한 망루가 앞을 가로 막는다. 육군 교도소의 철조망을 따라 조심조심 발걸음을 내딛는다.
새로 신설되는 도로의 절개지로 올라서면 모처럼 설성면의 너른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방금 지나온 능선과 송암목장, 돌박지산이 손금 들여다보듯이 선명하고 금당리 뒤편으로 노성산이 가물거린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문드러니 고개도 멀지 않은 듯,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들려온다. 248봉에 올라서면 직진은 골프장 가는 길이고 문드러니고개는 왼쪽으로 활등처럼 휘어진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 길을 따르면 또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193봉을 지나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문드러니 고개 절개지에 안착하며 13km에 이르는 제3구간도 마감을 하게 된다.
여주시 가남면과 이천시 장호원읍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곳은 우리나라의 대 동맥인 3번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중부고속도로와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충주에서 서울로 가는 관문이기도 했다. 고개 마루에서 장호원쪽으로 300 m 를 가면 상승대(교도소 입구)이정표가 있는 이황리 버스 정류장이 있어 동서울 행 직행버스가 20분마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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