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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품세계/시와산 계간지.2

제 65 회- 바다를 향하는 등대처럼

 

                           千年의 歲月 속으로

장 소: 경주 보문단지에서 남산

 

심혈을 기울여 추진해온 경주에서의 만남을 위해 모여드는 산우들. 전호영 회장 부자와 양재오 관장이 봉고차를 대동하고, 미리 도착한 나용준 부회장 가족들이 반겨준다. 응석받이 헤림이와 재균이는 2년 사이 몰라보게 훌쩍 자라 숙녀 티가 제법난다. 시산의 코리안 타임도 옛말이 되어 정시에 출발한 우리는 15인승의 옹색하고 비좁은 자리지만, 농익은 감처럼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아차! 잠간실수. 문영호 시인을 버려두고 온 우리는 만남의 광장에 도착하며 땡감 씹은 얼굴들이다. 쉴 새 없이 울리는 핸드폰소리로 부산을 떤 뒤에야, 택시로 뒤 쫒아온 문영호 시인과 해후를 하며 해프닝도 끝이 난다.

 

 

스산한 바람결에 가로수의 나뭇잎들이 낙엽 되어 흩날리고, 비를 머금은 구름이 몰려와도 우리의 부픈 마음을 잠재울 수 있나? 옥산 휴게소 “고향집 뜨락에서” 나누어 마시는 반주는 우리의 여정에 윤활유가 되고, 경기명창의 대가이신 최 여사의 낭랑한 음색으로 분위기를 돋운다. 구름도 자고, 바람도 쉬어 넘는 추풍령고개를 넘으며, 미리 도착한 신익현 시인의 빨리 오라는 독촉전화에 마음은 저만치 앞서 달려간다.

 

 

보문호수에 비춘 야경은 천리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우리에게 안겨주는 선물이고, 이번행사를 주관하는 이용숙부회장과 박은정 시인의 영접을 받으며 일성콘도에 여장을 푼다. 외국유학으로 근 10여 년 만에 참석하는 장태환 시인과의 만남은 이번행사에 절정을 이루고, 부산의 정혜임 시인까지 합세하며 축제의 밤이 무르익는다.

 

 

정성스럽게 준비한 시루떡은 시장끼를 달래기에 안성맞춤이고, 감칠맛 나는 전어 회와 곁들이는 소주는 깊어가는 가을밤의 정취를 한껏 고조시킨다. 밤을 밝히는 시낭송과 만감이 서리는 술자리는 끝날 줄을 모르고, 몽롱한 술기운에 물안개 피어오르는 이른 새벽 호반으로 나선다. 지난 7월 백두산 등반 사고로 병원에 입원까지 하는 고난의 순간들이 있었지만, 새벽 산책길에 모두 털어버리고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는 발걸음이 경쾌하기만 하다.

 

 

전국에 걸쳐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가 빗나가며, 오늘아침 호숫가로 떠오르는 태양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시내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경주는 대여섯 차례 다녀간 적이 있기 때문에 관광지에 대한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해서 이번에는 천년 혼이 살아 숨 쉬는 남산에 올라 등산도하고 불교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산행의 들머리인 삼릉으로 가는 길에는 나정과 포석정이 있다.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미련이 남는 이곳 “나정”은 신라 탄생의 설화가 있는 곳으로, 박혁거세의 유허비를 비롯하여 신궁터로 추정되는 팔각 건물지와 우물터가 남아있다. 또한 “포석정”은 유상곡수(流觴曲水)의 연회를 행하던 곳이다. 산신령과 헌강왕이 함께 춤을 춘 것이‘어무 산신무’의 기원으로 전해지는 곳으로, 928년(경애왕5년)나라의 위기를 당해 제사의식을 행하다가 쳐들어온 후백제의 견훤에게 살해당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이 사건으로 신라의 번영을 상징하던 포석정이 신라의 종말을 상징하는 곳으로 전해지고 말았다.

 

 

산행들머리인 삼릉주차장에는 길 안내를 도와줄 포항 산악회의 멤버들이 기다리고 있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이용숙 부회장으로부터 산행시 주의 사항과 등산안내 부리핑을 받고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로 입구에는 忍苦의 歲月속에 萬古風霜을 지켜온 아름드리 노송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인기절정으로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선덕여왕의 촬영지 표지판을 바라보며 새로운 감회에 젖는다.

 

 

잠시 후, 노송의 그늘아래 무덤3기가 우리를 반겨준다. 아직까지 누구의 무덤인지 확인된 바는 없지만, 무수한 비밀을 간직 한 채, 천년 세월을 자리보존하고 있으니 우리의 궁금증만 더한다. 한 걸음, 두 걸음, 올려 딛는 계단이 끝없이 계속되고, 불편한 다리로 용전분투하는 전상렬 전회장과 주진하 시인의 발걸음이 점점 뒤로 처진다.

 

 

우리가 오르는 계곡을 삼릉계라 부르고, 맨 먼저 모습을 드러낸 불상은 머리와 손발이 잘려나가고 몸통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석존여래 좌상이다. 호기심으로 찾아온 발걸음이 무색하게 훼손된 불상 앞에서 허탈감이 앞선다. 세밀한 조각과 섬세한 옷매무시가 국보이상의 가치가 충분하기에 아쉬움이 더욱 남는다. 이 계곡에만 11개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하고 있다는 설명에 따라 발걸음이 빨라진다.

 

 

다음으로 유형문화재 21호인 선각육존불을 만난다. 커다란 2개의 바위절벽에 음각된 마애불상은 여섯 분의 부처님이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좁은 식견 탓인지, 큰 감명을 받지 못하고 200여 m를 올라가면 왼쪽으로 형체가 완연한 좌상 앞에서 마음이 편안하게 진정된다. 골골마다 산등성이의 명당자리에는 부처님의 좌대가 안치되고, 수직단애 절벽마다 부처님의 미소가 가득하니, 경주 남산이 바로 불국정토가 아닌가?

 

 

불국사로 대변되는 불심이 황룡사에서 꽃을 피우고, 삼국통일의 기폭제가 되어 천년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선덕여왕 12년에 당나라에서 귀국한 자장율사의 제청으로 세운 9층 목탑의 높이가 80여 m로 그 당시 세계적으로 이런 건축물이 없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불심으로 일군 사직이 천년의 영화를 누린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400여 m 남짓한 아담한 능선이 기암괴석과 절정을 이룬 단풍으로 아름다운 절경을 이룬다. 정상까지 돌계단을 딛고 올라서야 하는 고뇌의 순간들, 그 어려운 고비 길에서 백팔번뇌의 고통을 몸소 실행하는 전상렬 전회장과 주진하시인의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도 금오산 정상에서 苦盡甘來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가슴속의 모든 오물이 정화되고도 남는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발목부상의 후유증으로 피로가 몰려온다. 평소 같으면 이정도의 산행은 아침산책코스로 적당하겠지만, 이제 나이 탓인가? 회복 속도도 느려지고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는 육신이 원망스럽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천하를 호령하던 진시황도 불로의 장생 앞에서 속절없이 사라지는데, 初露와 같은 인생이 순리대로 살아가는 분수가 제일인 것을.

 

 

삼화령을 지나 이영재에서 봉화대능선을 오르기에는 힘에 겨운지, 모두들 산 사면을 돌아가는 우회로를 따른다. 이곳은 남산에서 가장 호젓하고 편안한 산책길이 전개된다. 무성한 수림 속에 빠져들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어, 소슬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의 세례를 받으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피로도 잡념도 봄눈 녹듯 사라진다.

 

 

강원도의 깊은 계곡으로 들어선 듯, 주위의 경관이 보이지 않는 깊은 숲속에는 골짜기마다 붉게 타오르는 단풍과 키를 넘는 산죽이 해맑은 연못 속으로 물구나무를 선다. “산죽과 연못”상상만으로도 신비감이 가득한 황홀감속에 윤선도의 걸작 품인 보길도의 세연정을 연상하며 남산의 또 다른 모습에 푹 빠져든다.

 

 

지친 몸에도 서광이 비추어 백운재에 올라서며, 고행도 끝이 나고 천국의 문으로 들어선다. 오늘의 산행에서 가장 높은 고위산(494m)을 옆으로 끼고 도는 탄탄대로를 따라 백운암을 지나면 용이 승천하는 용두암이 반겨주고 허기진 배를 채워줄 식당 산촌으로 내려선다. 시장이 반찬이라. 푸성귀에 토장국, 산채나물에 비빔밥, 동동주에 권주가는 우리의 몸과 마음을 씻어 내리는 청량제가 되고도 남는다.

 

 

십여 일전 철원과 연천의 비무장지대를 중심으로 안보 관광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 비무장 지대 안에 있는 경순왕릉을 참배하며 큰 감명을 받았다. 경순왕은 신라의 마지막 임금이요. 왕건에 의해 신라가 멸망한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경애왕이 견훤에게 살해되고 그 뒤를 이은 경순왕이 국력배양과 호국안민을 위하여 노심초사 하였으나, 이미 기울어진 천하대세를 만회할 수 없이, 국가의 존립마저 위태로운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이에 큰 아들인 마의태자를 중심으로 대소신료들이 끝까지 항전할 것을 주장하지만, 군왕의 권위를 생각하기에 앞서 무고한 백성들이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여 肝腦塗地(간뇌도지)하는 참상을 볼 수 없다하여, 무모한 항전을 포기하고 濟世救民(제세구민)을 위하여 스스로 왕위에서 물러난다.

 

 

경순왕의 고귀한 뜻을 받들어, 왕건은 특별 조치를 내린다. 자신의 딸을 경순왕에게 시집보내고, 경주지방을 다스릴 수 있는 특권을 주어 신라백성들이 단한명도 피해를 입은 자가 없이 평화로운 이양으로, 82세의 천수를 누리고 천년사직을 고스란히 보존 할 수 있었으니, 국가 지도자의 신념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라 하겠다.

 

 

이용숙 부회장에게 또 한 번 큰 신세를 지고, 경주에서의 정기 산행을 정리하며 일박이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이번 행사를 통해 회원들의 단합된 모습을 보며 우리시산의 미래가 보이고, 알토란같은 회원들의 집념이 있기에 새로운 희망으로 내일을 기약한다.

 

 

 

 

 

 

 

 

                                    칠갑산(七甲山-561m)에 올라서

 

장 소: 충남 청양군: 정산면, 장평면, 대치면

 

입동을 지나며 수은주도 영하로 내려가고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는 이른 새벽.

집을 나서는 발걸음이 조심스러운 것은, 지난 7월 부상당한 이후로 4개월 만에 장거리 산행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청양의 칠갑산은 아주 편안하게 등산을 할 수 있는 부드러운 산세가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키지만, 큰 사고의 후유증이 아직도 조금은 남아 있기에 아기 걸음마와 같이 두려움이 앞선다.

 

 

경기 칠장산(492m)에서 시작하는 금북정맥이 서산의 안흥진까지 이어가던 중, 국사봉(488m)과 금자봉(324m)사이의 410봉에서 분기하여 남쪽으로 내려온 산줄기가 한치 재를 넘어서면서 우뚝 솟아오른 산이 칠갑산(561m)이다. 칠갑산은 “충남의 알프스”라 불릴 정도로 높이에 비해 산세가 수려하고, 천년고찰 장곡사(長谷寺)가 자리 잡고 있어 1973년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대중가요‘칠갑산’으로 일반인에게 더욱 잘 알려진 산이다.

 

 

평일임에도 자연경관을 찾아드는 인파로 주차장이 떠들썩하고 서둘러 산행 길로 들어선다. 가지런히 정비된 계단길이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고,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가슴깊이 간직하며 처음부터 고된 신고식으로 가쁜 숨을 몰아쉰다. 지금이야 450여 m의 터널이 관통하고 있어 고개 정상에는 한가롭기 그지없지만, 청양과 공주를 왕래하자면 한치 재를 넘지 않고서는 달리 방법이 없기에 고개마루에는 사시사철 인파로 성시를 이루고, 이 고장의 상징물인 조형물을 한데 모아 많은 사람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

 

 

칠갑문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이 북쪽의 山 斜面에 자리 잡은 면암 최익현의 동상이다.

근세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면암선생의 고귀한 뜻을 다시 한 번 되새기며 일행들의 뒤를 따른다. 한치 고개의 고도가 해발 310m. 정상이 560m로 3km 거리에 표고차가 고작 250m에 불과하고, 자동차도 다닐 수 있는 널찍한 임도는 평지수준의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조금은 실망감이 앞선다.

 

 

길옆에 있는 칠갑산의 유래비를 살펴보면 백제는 이 산을 사비성 정북방의 진산(鎭山)으로 성스럽게 여겨 제천의식을 행하였다. 그래서 산 이름을 만물생성의 7대 근원(地,水,火,風,空,見,識) 七자와 싹이 난다는 뜻의 甲자로 생명의 시원(始源) 七甲山이라 경칭하여 왔다. 또 일곱 장수가 나올 명당이 있는 산이라고도 전한다. 충청남도의 중앙에 자리 잡은 이산 동쪽의 두솔성지(자비성)와 도림사지, 남쪽의 금강사지와 천장대, 남서쪽의 정혜사, 서쪽의 장곡사가 모두 연대된 백제의 얼이 담긴 천년사적지이다.

 

 

무성한 송림사이로 임도를 따라가면, 정면으로 하얀 탑이 나타난다. 이 고장 출신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고 나라사랑과 희생정신을 후손들에게 기리는 취지로 세운 충혼탑이다. 주차장 입구에 있는 월남참전 기념탑과 함께, 충효의 고장임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상징이다. 잠시 후, 왼쪽으로 칠갑산 천문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오염이 심한 도시에선 밤하늘의 별이 실종 된지 오래지만, 시선한 공기가 흐르는 산정에서 바라보는 별자리는 어린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동화속의 요정이 아닌가?

 

 

산이 수려하다는 것은 능선과 계곡, 기암과 수림이 자연적으로 조화롭게 형성된 상태를 말한다. 하지만 칠갑산은 커다란 바위하나 없는 전형적인 육산으로, 부드러운 능선과 포근하게 안기는 행복감에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필수조건이 충족되어 100대 명산으로 손색이 없다. 지금이야 모든 잎 새를 떨 군 앙상한 나무들이지만, 봄이면 대치터널 위의 옛 도로변을 따라 70 - 80년생의 벚나무가 벚꽃 터널을 이루고, 정상에 이르는 임도 변을 따라 화사한 벚꽃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한다.

 

 

산 사면을 따라 이어지는 임도는 주위의 경관을 조망할 수 있는 여유로움이 있고, 2층 정자가 있는 자비정에 올라서면 조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다. 자비정을 지나며 아름드리 소나무와 굴참나무가 공존하는 숲길이 펼쳐진다. 전위 봉 몇 개를 넘고서야 정상이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지만, 곧 바로 정상진입이 시작된다. 없어도 될 로프를 따라가면 수백 계단이 하늘 끝까지 이어진다. 어느 곳이고 정상은 녹녹하게 볼일이 아니다. 다리가 뻣뻣하게 계단을 오르는 동안 심하게 토해내는 숨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칠갑산 정상. 561m의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서해안의 지형이 낮은 평야지대라. 주위에 대덕봉(472m), 명덕봉(320m), 정혜산(355m)을 압도하는 전망대로 손색이 없어 칠갑산의 명성을 더욱 드높이고 있다. 널찍한 정수리에는 대형헬기장을 중심으로 7척 장신의 표지석과 삼각점, 산불감시초소와 통신철탑이 있고 휴식공간에는 벤치들이 마련돼 있다.

 

 

사방팔방 막힘이 없는 정수리에서 바라보는 산세는 불가사리 형상으로, 5가닥의 산줄기가 방사선을 이루고 있다. 한치재에서 올라오는 산장로와 구름다리가 있는 천장로, 백운골에서 올라오는 도림로, 삼형제봉으로 내려서는 장곡로, 장곡사로 내려서는 사찰로가 균형을 이루어 동남쪽의 잉화달천(仍火達川), 동북쪽의 잉화천(仍火川), 서남쪽의 장곡천(長谷川)과 지천천(之川川), 서북쪽의 대치천(大峙川) 등의 물줄기가 금강으로 유입된다.

 

 

북쪽으로 대덕봉(472m)과 마루금에는 금북정맥의 국사봉(488m)이 빼꼼이 얼굴을 내밀고, 동쪽으로 계룡산의 연봉들이 아스라이 하늘금을 이루는 가운데, 남쪽으로 정해산(355m), 망월산(355m), 축융봉(455m), 감봉산(465m)으로 돌아 서해안의 진산인 성주산(680m), 문봉산(600m), 성대산(624m), 오서산(790m)으로 충남의 알프스라는 명성에 걸맞게 겹겹이 포개진 산자락을 타고 계곡이 흐르고, 청정옥수의 맑은 물이 금강으로 모여든다.

 

 

한겨울임에도 산정에서 내려다보는 칠갑산은 거대한 수림이 장관을 이룬다. 삼형제봉을 바라보며 남쪽으로 내려선 안부에서 서쪽의 사찰 로를 따른다.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송림이 하늘을 뒤덮고, 경사진 비알에는 나무 등걸이 들어나 걸음걸음마다 신경이 많이 쓰인다. 키 큰 소나무 아래로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른 봄이면 화사한 꽃망울을 터트리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황홀해진다. 경치가 수려한 장곡천 골짜기의 절벽 위에는 청양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장곡사가 자리 잡고 있다.

 

 

장곡사는 돌탑하나 없는 절이지만 2개의 대웅전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곳이다. 보물 제162호인 상대웅전과 보물 제181호로 지정된 하대웅전이다. 신라 문성왕 12년(850년) 보조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장곡사는 공주의 마곡사와 예산의 안곡사(지금은 남아있지 않음)와 함께 충남의 삼곡사(三谷寺)라 한다. 일주문을 내려서면 칠갑산이 자랑하는 장승공원이 펼쳐진다.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콩밭 매는 아낙네의 황금동상이다. 콧날이 오뚝한 촌부의 미모가 너무 뛰어난 것도 흠이 아닐 런지 ㅎㅎㅎ.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신장이 10m요, 무게가 14톤이라고 하니 우리나라 최대의 장승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것이고, 오방장승과 변강쇠의 남성 심볼이 하늘을 향해 용솟음치는 모습은 수 백 개의 장승중에 으뜸이라. 국태민안과 마을의 안녕과 발전을 위해 장승을 모시는 인근마을의 풍습을 재현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의 산행이 6km의 짧은 거리에 유순한 길이지만, 무사히 완주를 하고 보니 여름 내내 부상의 고통 속에서 다시는 산을 찾지 못할까봐 노심초사를 했지만, 터널을 빠져나온 해방감으로 마음이 홀가분하다. 강경의 젓갈시장까지 순례하며 새로운 삶을 기약한다.

 

 

 

 

 

 

연재

 

                      백두대간에 부는 바람 . 6

 

                             제2부. 중부지역 2

 

                        13.죽령(689m) - 벌재(625m) / 25.7km

도솔봉 구간은 죽령 이남의 삼형제봉- 도솔봉- 묘적봉- 묘적령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으로 단양군 대강면과 영주시 풍기읍, 봉현면에 걸쳐있다. 도솔봉구간이 소백산 국립공원에 속해 있다고는 하지만 죽령을 경계로 별개의 독립된 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소백산이 유순하고 너그러운 육산이라면, 도솔봉은 암팡지게 솟아오른 암 봉을 넘나드는 암릉 구간이 많고, 주변의 조망이 뛰어난 것도 이곳의 특징이다.

 

도솔봉이나 묘적봉의 산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곳으로, 도솔봉아래 사동리에는 큰 절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이곳 또한 소백산을 능가하는 철쭉이 군락을 이루지만 소백산에 비해 찾는 발길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산행을 즐길 수가 있다.

 

 

죽령 고개 마루에서 도로를 따라 풍기 쪽으로 약40m 거리에 죽령 주막집이 있다. 주막집 건너편으로 대간길이 시작되며 죽령 옛길을 지나 산허리를 감아 도는 편안한 길에서 힘을 비축하며 속도를 조절 한다. 돌탑과 추모비가 있는 도솔봉4.7km 죽령1.3km의 이정표를 지나며 경사가 서서히 급해지고 너른 공터 헬기장을 지나면서 철쭉의 군락이 시작된다.

 

질펀하게 펼쳐지는 산죽을 헤치며 흰봉산(1,240m) 갈림길인1,286봉에 올라서면 죽령 3.3km 도솔봉 2.7km의 이정표가 있다. 지금까지 남쪽으로 진행하던 대간 길은 동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고 스릴 넘치는 암 릉 구간의 삼형제봉이 펼쳐진다.

 

 

1km 남짓한 암릉 구간에서 진땀을 빼면서도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에 현혹되어 삼형제봉(1,291m)의 정상에 올라서면, 도솔봉으로 이어지는 암릉과 철쭉이 환상의 조화를 이루며 151계단을 내려선다. 오르 내리는 암릉 길에서 곡예를 하며 힘을 소진하다보니 도솔봉의 정수리가 코앞에 닿는다. 티끌하나 막힘없이 천지사방 틔워진 조망, 1,314m의 정수리에는 삼각점과 작은 돌탑, 동판으로 새겨진 이정표가 자리 잡고 있다.

 

서쪽으로 단양팔경이 모여 있는 도락산과 황정산이, 북쪽으로 삼형제봉 너머로 죽령고개, 동쪽으로 너른 분지의 풍기읍내, 남으로 대간 길 따라 묘적봉 뒤로 솔봉, 황장산으로 굽이굽이 물결치는 첩첩산중, 눈길 닿는 곳마다 펼쳐지는 황홀경에 빠져 든다.

 

 

정상에서 서남쪽으로는 사동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고 대간 길은 동남 방향으로 85계단을 내려오며 주위에 펼쳐지는 절경에 취해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또 다시 107계단을 내려가면서,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종주 팀의 어려운 사투를 격려하는 여유로움까지 생긴다. 1,185봉에서 묘적봉 까지는 큰 어려움이 없고 1,148봉의 정수리에는 작은 돌탑과 앙증맞은 표지석, 영주시청에서 만들어놓은 동판 이정표가 눈길을 끈다. 철쭉의 터널을 헤치면 곧바로 묘적령(1,019m)이다.

 

묘적령은 충북 단양군 대강면 사동리와 경북 영주시 봉현면 두산리를 잇는 고개 마루인데, 인적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곳으로 당일산행에는 구간의 경계지점으로 무박산행에는 솔봉과 묘적봉의 중간 쉼터로 사랑받는 안식처가 된다.

 

 

이곳 까지가 소백산 국립공원이지만 죽령이나 연화봉을 깃 점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 묘적령에서 시작된 국립공원은 동서로 장장 50km에 이르는 마루금을  형성하면서 갈곶산의 늦은목이 까지 대간길이 이어진다. 부드러운 능선의 종주 길은 지리산종주, 설악산종주와 함께 봄이면 철쭉동산에서 겨울이면 매서운 눈보라와 함께 산 꾼들에게 심신 단련 장으로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다.

 

 

저수령 10.7km의 이정표가 말해주듯, 이번 구간의 중간지점인 묘적령을 출발하여 모시골 갈림길에 이르면 이정표에는 묘적령1.7km 모시골 1.7km 저수령 9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잠시 후 솔봉(1,103m)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흙모봉(1,033m)까지는 3.1km의 제법 먼 거리다. 남남서로 방향을 잡아 1,063봉과 뱀재, 앙증맞은 돌탑을 지나 10여분거리에 흙모봉 정상에 오른다.

 

이곳에서 대간 길은 서쪽으로 선회하게 되며 완만한 주능선에서 피로한 몸을 추스르며 싸리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북쪽은 단양의 유황온천지구로 내려가는 길이고, 남쪽은 2.66km거리에 있는 원두용 마을로 내려가는 길목이다.

 

 

휴계소와 주유소가 있는 저수령(850m) 고개 마루에는 고단한 산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팔각정이 자리 잡고 있다. 경북 예천과 충북 단양을 이어주는 927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는 이곳은 고개가 하도 높아 머리가 숙여진다고 하여 저수재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저수령에서 출발한 대간 길은 옛 고개 길인 장구재(860m)를 지나 문경군과 예천군의 경계지점에서 한 줄기 산맥이 분기하고 있다. 군 경계를 따라 남쪽으로 진행하면 매봉(865m)을 지나 국사봉(727m)으로 이어지고, 대간 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완만한 비알 길을 오르면 옥녀봉(1,077m)정상에 오른다.

 

 

이곳에서 문복대(운봉산1,074m)까지는 기복이 별로 없는 능선이다. 정상에 오르면 정상석이 있지만 조망이 별로 신통치 않고 문복대에서 벌재까지는 3.7km로 제법 먼 거리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분기하는 산줄기는 수리봉(1,019m), 신선봉을 지나 그 유명한 단양팔경의 상, 중, 하선암이 있는 도락산(964m)에 이른다. 대간 길은 남동쪽으로 선회하여 1,020봉에 오른 후 서쪽으로 진로를 바꾸어 비알 길을 내려서서 또 다시 남서쪽으로 선회하여 들목재에 이르고 곧바로 823봉에 오른다.

 

 

이곳에서 유두봉(1059m)을 내려서면 배재에 이르고, 투구봉까지 2.6km의 이정표가 서있다. 이곳에서 서서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다 무명봉에서 서쪽으로 진행하면 시루봉(1,110m)에 이르고 또 다시 남서방향으로 투구봉(1080m)에 올라선다. 촉대봉(1,080m)까지는 지근거리로 단양군에서 만든 검은 오석의 정상석이 지친 몸을 달래주며 저수령을 넘어가는 차량의 경적 음이 들려온다. 대간 길은 서북방향으로 진로를 바꾸어 벌재까지 큰 어려움이 없이 내려선다.

 

 

 

 

                        14. 벌재(625m) - 하늘재(525 m) / 26.1km

92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벌재(625m)는 경북 문경시 동로면과 충북 단양군 단성면을 오가는 고개 마루다. 단양 쪽으로 넘어가면 단양 팔경의 하나인 상, 중, 하선암이 있는 계곡으로 아름다운 절경에 흠뻑 취하게 된다. 또한 이곳부터 월악산 국립공원이 시작되는데 대간 길은 국립공원의 남쪽을 지나게 된다.

 

 

월악산 국립공원은 1984년 12월 31일에 17번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284,5㎢에 이른다. 행정구역상으로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 문경시 4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 충주호반과 청풍호반이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8경과 소백산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있다.

 

월악산의 정상을 국사봉 이라고 부르며,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영봉" 이라고도 부른다. 해발1,094m인 영봉의 정수리는 한 사람이 겨우 올라설 정도로 협소한 첨봉이고, 오르는 길은 험준한 암릉이다. 수직으로 단애를 이룬 절벽마다 철 계단이 걸려있고 암벽의 높이가 150m,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대간 길은 먼저 철 계단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하여 폐백이 재까지 2.1km의 거리를 두고 있다. 처음부터 급경사를 치고 올라야하는 난코스가 이어지며 8시 방향으로 대간 길이 진행된다. 무명봉에 올라서며 10시 방향으로 선회하여 페백이재와 치마바위를 지나면 황장재(985m)에 이른다. 문안고개라고도 하는 이곳에는 황장산 30분, 벌재 2시간 40분, 문안골 2시간 20분의 이정표가 서있다. 고려 공민왕 때 비빈과 상궁들의 피난처가 되기도 했다는 문안 골에는 아직도 작성산성의 석문이 남아 있다.

 

 

황장산(산경표와 대동여지도에는 작성산으로 표기가 되어있다)으로 향하는 길은 12시 방향으로 틀어야하고 감투봉(1,042m)을 오르는 기암절벽의 쎄미 클라이밍 지대에는 생명줄인 로프가 걸려있다. 아슬아슬한 암릉 길에서 곡예를 하며 오른 1,077m의 정상에는 아담한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황장목(왕실의 관목이나 목재, 목선 등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였으며 왕실의 건축자재로 쓰였던 춘양목과 함께 나라에서 보호구역으로 정하여 관리함)이 생산되는 지역이라 황장봉산으로 부르다가 황장산이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투구봉(975m)을 거쳐 삼선구곡으로 빠지는 길이고, 대간 길은 직진하여 묏등바위에 이르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국립공원의 전경이 펼쳐진다. 이곳에도 생명줄인 로프가 기다리고 975봉에서 9시 30분 방향으로 선회한다.

 

 

975봉을 지나며 유순하게 펼쳐지는 대간 길에서 체력의 안배를 하며 작은 차갓재(816m)에 이른다. 이곳에는 대미산 1시간 10분, 황장산 1시간, 안생달 50분의 이정표와 헬기장이 있는데 차갓재 와의 사이에 816봉이 가로막고 있다. 양쪽 모두 문경의 안생달에서 단양 쪽의 차갓마을로 넘는 고갯길이다. 차갓재(760m)에 도착하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 자리를 지키고 하늘을 찌를 듯이 울창한 낙엽송이 군락을 이루고 송전탑이 서있다.

 

 

차갓재에서 30여분을 진행하면 남한 측 백두대간 중간지점을 알리는 표지석을 만나게 된다. 표지석의 내용을 인용하면 전체 743.65km중 지리산의 천왕봉과 진부령의 거리가 367.325km로 똑같이 적혀있고 경기 평택 여산회 백두대간 종주 팀이 포항의 셀파 산장에서 실측한 거리를 참고로 했다고 적고 있다. 대단한 정성으로 대간을 더듬는 산 꾼들에게 큰 힘과 용기를 안겨준다. 완만한 대간 길에 피로를 풀며 억새와 헬기장이 있는 새목재를 지나 문수봉 갈림길(1045m)에 오르고, 북쪽으로 능선을 따르면 문수봉(1,161m)과 메두막봉(1099m)을 지나 하설산(1027m)에 이른다.

 

 

대간 길은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고 눈물샘을 지나 대미산(1,115m)정상에 이른다. 울창한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이 산은 문경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산 정상에 서면 멀리 소백산으로부터 주흘산, 조령산, 백화산, 희양산, 속리산까지 볼 수 있다. 원시림과 함께 족도리풀, 천마, 향유, 산 부추, 삽주, 병풍쌈 등 특이한 식물들의 군락지가 있으며, 그 중에서도 개비자나무 군락이 유명해 식물학자들이 즐겨 찾는 산이다.

 

 

이곳에서 부리기재까지는1,4km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대간 길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다. 부리기재에서 꼭두바위봉(838m)까지는 3.8km의 먼 거리지만 탄탄대로의 주능선을 지나며 국립공원의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멋진 대간길이다. 1,034봉에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꾀꼬리봉(890m)을 지나면 용하구곡에 이르고 대간 길은 직진을 한다. 꼭두바위봉 에서 만수봉 갈림길까지는 3.6km, 이곳 또한 여유 있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다. 888봉과 941봉을 지나면 메밀봉 갈림길을 만나고, 잠시 후 만수봉 갈림길에 도착한다.

 

 

만수봉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만수봉(985m)에 이르고 우측의 능선을 따르면 월악산(1094m)의 정상인 영봉으로 이어진다. 덕주봉(890m)쪽으로는 송계계곡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길목이다. 대간 길은 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2.8km를 지나면 포암산(961m)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에는 돌무더기와 함께 정상석이 있는데 포암산은 속칭 베바우 산이라고 부르는데 베를 짜서 펼쳐놓은 것 같이 너른 암벽이 있어 부르는 별호가 되었고 마골산, 계립산이라는 기록도 보이나 현재는 포암산으로 부른다.

 

 

인근의 월악산, 주흘산, 조령산 등과 함께 조령5악으로 손꼽히는 포암산(961.7m)은 월악산국립공원 내 충주시 상모면과 경북 문경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이다. 또한 백두대간의 주능선 상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늘재(525m)를 경계로 월항삼봉과도 연결된다. 포암산을 내려서는 암릉길에는 로프가 걸려있고 지루한 구간도 막을 내리는 하늘재(525m)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