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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두대간. 제 4 부: 지리산 자락. 2

                  

                  29. 성삼재(1,070m) - 천왕봉(1915m) / 29km

그 옛날 변한과 진한에게 쫓기던 마한의 왕이 지리산으로 들어와 성을 쌓고 여러 장군들을 보내어 군사적 요충지를 지키게 했다고 하는데,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수가 지키던 곳을 성 삼재라고 한다는 유래가 있다. 백두산에서 시작되는 멀고먼 대간 길도 이제는 긴 여정을 마감하는 엄숙한 일정이 시작된다. 지리산 종주의 출발점이 되는 성삼재는 사시사철 등산객으로 만원을 이루고 교교한 달빛아래 중산리까지 35km를 12시간 30분에 무박으로 종주하던 때(2,000년 11월 11일)를 생각하면 지금도 혈기가 용솟음친다.

 

1967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지리산의 면적이 440.485㎢로 북한산 국립공원의 5배가된다. 전북 남원시, 전남의 구레군, 경남의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으로 3개도 5시군 16개면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에서 면적이 가장 큰 민족의 성산이다. 동쪽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반야봉까지 장대한 산맥을 이루며 1500m이상의 고봉이 16개나 되는 웅장한 산새를 자랑한다.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29km에 연결지점인 중산리까지 5.5km를 합해 장장 34.5km에 달하는 장거리코스. 산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종주의 꿈을 간직하고 있는 선망의 대상이기도하다.

 

1988년 지리산 관광객유치와 지역 발전을 도모한다는 명목으로 개설된 성삼재 관통도로는 구레군 광의면 방광리 천은사지구에서 남원시 산내면 내령리 뱀사골 지구까지 24km구간이 관통되었다. 편리해진 교통으로 탐방객수도 하루에 1,200명에서 3,000여명으로 늘어났다. 순환로가 개통되기 전에는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9km를 거슬러 올라야하는 힘겨운 코스를 이용했지만, 이제는 천 미터가 넘는 성삼재에서 종주길이 열리며 무박 종주도 가능하게 되었다.

 

완만한 산책로에는 수많은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정면의 노고단(1507m)과 우측으로 영험한 기도처가 있는 종석대(1,356m)를 바라보며 힘찬 행군이 시작된다. 저 먼 거리의 고달픈 행군은 염두에도 없는 듯,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우리를 뛰쳐나온 맹수들처럼 날렵하게 코재의 구비 길을 돌아 노고단 대피소에 이른다.

 

예전부터 지리산에는 기도의 효험을 얻고자 많은 사람들이 찾아 들었는데 화엄사, 쌍계사, 실상사 등 대사찰을 중심으로 기도의 효험이 뛰어난 10대 기도처가 있었으니   

1.노고단에서 질매재로 가는 길에 있는 문수대 2.종석대 아래의 우번대 3.반야봉 중봉 아래의 묘향대 4.피아골 산장 위의 서산대. 5.불무장등에서 직전마을로 이어지는 능선의 무착대. 6.두류능선 사면의 향운대. 7.법계사 위의 문창대. 8.영신봉 아래의 영신대. 9.장터목 산장 샘터 옆의 향적대. 10.뱀사골에 있다는 금강대.

 

노고단에서 임걸령으로 가는 길에는 남쪽으로 질매재와 문바우등, 왕시리봉(1,214m)으로 연결되는 주능선이 피아골과 화엄사계곡을 아우르고 있지만 곰의 방사지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또한 피아골에서 올라오는 갈림길(1,336m)에서 바라보는 운해는 우리 민족의 한이 서린 상처를 포근히 감싸주고, 산굽이를 휘감아 도는 황홀한 모습이 장관이다. 임걸령 샘터에서 목을 축인 발걸음이 노루목(1,498m)에 도착하며 반야봉의 턱밑에 이른다. 너덜의 경사면에 주목이 자리 잡고 죽어서도 천년의 세월을 지켜오는 그 기상이 우리민족의 얼과 맥을 같이하는 산 증인이다.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般若)가 지리산의 여신(女神)인 마고(麻姑)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1915m)에서 살았다는 전설이 있는 반야봉(1732m). 지리산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서부의 맹주로 지리4경인 낙조를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서산마루에 해 떨어지면, 온 세상을 집어 삼킬 듯 붉게 물들이다 모닥불처럼 어둠속으로 사그라지는 모습은 평생에 한번만 보아도 원이 없는 장관이다. 산삼을 비롯해서 약초가 많은 심마니능선이 서쪽으로 뱀사골 입구까지 뻗어 있다. 정성이 가득한 돌무더기를 뒤로하고 동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30여 분만에 삼도봉(1,499m) 정상에 이른다.

 

경남 하동, 전남 구례, 전북 남원의 3도가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1.499m)에서 남쪽으로 섬진강변 까지 이어진 육중한 능선을 불무장등(1,446m)이라한다. 서쪽으로는 그 유명한 <피아골>을 , 동쪽으로는 목통골, 일명 연동골을 끼고 늘어서 있는 불무장등은 남쪽으로 내려서면서 그 기세를 낮추어 통곡봉(904.7m)이 후 <당재>에서 그 기세를 완전히 낮추었다가 다시 황장산(942.1m) 촛대봉으로 이어지고 불무장등에서 서쪽 피아골의 지 능선을 따르면 숨겨진 비경 무착대가 자리 잡고 있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길 : 한 없이 내려딛는 600여개의 계단. 이곳을 거슬러 오른다면 얼마나 힘이 들까? 예전에 화개장터가 열리던 곳이라 화개재로 부르는 이곳은 전라도 남원 산내지방에서 삼베와 산나물을 경상도 하동군 화개 사람들이 소금과 해산물을 물물교환 하던 곳으로 북쪽의 남원 쪽으로는 그 유명한 뱀사골 계곡의 상류지점이고 남쪽으로는 칠불사 지구인 목통 골이 시작되는 상류지점이기도하다.

 

토끼 한 마리 볼 수 없는 토끼봉(1,533m) 오름길: 화개 재에서 도상거리로1.2km에 이르지만 지리산 구간에서 가장 힘이 든다는 이 길을 동지섣달 설한풍에 올랐던 기억을 더듬어보면 윙윙 소리를 내며 새벽하늘에 정적을 깨트리는 구상나무의 울음소리, 강풍에 힘없이 쓰러지는 고사목의 굉음소리, 토끼봉을 오르며 거칠게 토해내는 숨소리가 교향곡을 연출한다. 정상의 억새들이 세찬 바람에 파도를 이루고 서산마루에 걸려있는 보름달과 별들이 지리산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신비로움을 펼쳐 보이고 있다. 30여명이나 되는 일행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그들의 모습은 간곳이 없다. 어차피 인생의 길도 나 홀로 가는 것이고 보면 외로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연의 소리를 벗 삼아 달님이 만들어준 그림자와 동행으로 연 하천 산장을 향해 묵묵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세찬바람 속에 새벽이 올수록 기온이 점점 내려가 허리춤에 찔러둔 오이를 입에 무니 얼음 박힌 캔디가 되어 서걱거리고, 박카스 뚜껑을 열어보니 물 반 얼음 반으로 빙수가 되어 오이도 얼고 물도 얼고 만다. 갱엿같이 딱딱한 초콜릿 그래도 믿을 건 너 하나뿐.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달콤한 그 맛이 지친 몸에 원기를 회복 시켜준다. 털모자를 깊이 눌러 썼지만 양 볼이 얼얼하고 면장갑을 낀 손이 마비되어 오는 듯 시려온다. 오늘의 산행은 중량과의 싸움이니 불필요한 물건을 차에 두고 내리라는 대장의 지시대로 방한 장갑을 차에 두고 내린 것을 후회하며 그래도 따스한 쿨 맥스가 나의 몸을 보호하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 아닌가?

 

높고 높은 명선봉(1,586m): 잠시 쉴 틈도 없이 정상을 향해 달려가며 돌부리에 걷어차여 심한 통증으로 길섶에 주저 안고 만다. 산을 오르다보면 흔히 있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출발을 한다. 정상에 올라서니 먼동이 터오고 첫 번째 관문인 연 하천 산장(1,440m)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깊은 산중을 헤 메다 고향을 찾아온 듯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간다.16.5km를 4시간 만에 도착하며 자신감도 생기고 컨디션도 아주 좋아 오늘의 종주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초코렛과 더운물로 목을 축이고 붉게 물들어 오는 동쪽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산장을 빠져나온다. 밤새도록 길동무하던 랜턴도 배낭에 집어넣고 발걸음을 재촉할 때, 삼각고지 사이로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른다. 이 감격, 이 환희. "지리산 당일종주" 라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걸고 달려가는 나의장도를 축원 하는 듯 온 누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삼각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는 산줄기는 영원재를 지나 지리산의 전망대로 유명한 삼정산(1,182m)과 실상사까지 이어지는 능선으로 와운 골과 광대 골을 품에 안고 있다. 남쪽으로는 빨치산의 본거지였던 의신계곡과 빗점마을로 연결이 되는 지점이기도하다.

 

형제봉(1,442m)을 휘돌아 내려서면 거대한 바위와 어우러진 소나무 한 그루. 황산의 영객송이 환생을 했는가?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하며 머나먼 종주 길이지만 어찌 외면할 수 있는가? 사진 속에 추억을 만들고 숨길 한번 돌려본다. 아기자기한 바위를 넘나들면 야생화의 꽃바람이 시원한 그늘 속에 반겨오고 어느덧 벽소령 산장(1,392m)에 이른다. 새로 지은 산장은, 2층 건물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포근한 안식처를 제공한다.

 

남쪽의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서 북쪽의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로 이어지는 비포장 임도가 있다. 이 길도 자동차가 넘나드는 포장길이 된다고 하니 자연을 파괴하는 원흉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벽소명월이라 지리 십 경으로 푸른 하늘에 떠있는 달빛도 푸르고 내 마음도 푸르니 선경이 예아니던가?

 

지리 십 경 1. 천왕 일출 2. 직전 단풍 3. 노고 운해 4. 반야 낙조 5. 벽소 명월

6. 세석 철쭉 7. 불일 폭포 8. 연하 선경 9. 칠선 계곡 10. 섬진 청류

 

대피소를 뒤로하고 옛 벽소령을 찾아갈 때, 남쪽의 대성 골에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힘차게 뻗어 내린 능선과 계곡들이 평화롭기 그지없다. 하지만 우리의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지리산의 대성동 골짜기를 기억하는가? 1952년 겨울. 국군토벌대의 맹렬한 추격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공비들이 각 비트에서 최후의 결전을 위해 가장 험준하고 인적이 드믄 대성 골로 모여든다. 결사항전으로 최후를 맞이한 우리민족의 비극도 흐르는 세월 따라 상처는 아물었지만, 불어오는 바람결에 묻어나는 흔적이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계곡을 파고드는 임도가 산마루에 올라서고, 머지않아 포장을 한다는 계획이 있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대로 설왕설래하고 있는 중이다. 높고 높은 덕평봉(1,522m)을 바라보며 의기가 소침해진다. 다행이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없는지, 산허리를 한 바퀴 돌아서면 길옆의 선비 샘(1,456m)이 목마른 길손을 반겨준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물과 불이라고 한다면 대간을 오르는 산객들에게는 물이 가장 소중하지 않겠는가?

 

1500여m의 높은 곳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갈증을 씻어주는 생명수가 아닌가? 감사한 마음에 한 방울의 물이라도 더욱 소중히 음미를 하며 선비 샘의 유래를 들춰본다. 옛날 선비 샘 아래 덕평 마을에서 평생 천대를 받고 살아온 가난한 노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을 한번 받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아들들이 이 샘터위에 묘지를 안장하니 사람들이 샘물을 긷기 위해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 결과적으로 노인에게 절하는 모습이 되어 노인의 한을 풀어주었다는 전설이다.

 

지난번 무박종주 시에는 이곳에서 근육통이 시작되어 산행 내내 고통을 감수해야 했던 곳이다. 칠선봉(1,558m)을 오르는 길은 완만한 경사에 안개가 자주 끼고 주위에 펼쳐지는 바위들이 7명의 신선들이 노니는 모습과 흡사하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지루한 여정 길에 심심파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피로도 잊고 체력을 보충하는 구간이 된다. 아기자기한 암봉 들과 야생화의 향기에 취해 영신봉(1,651m)에 올라서면 그 유명한 세석산장이 내려다보인다.

 

세석평전을 품에 안고 있는 영신봉(1,652m)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낙남정맥의 분기점이다. 낙남정맥은 음양수와 석문을 지나 삼신봉(1,284m)에 이르면 하늘아래 첫 동네인 청학동 마을이 있다. 외삼신봉을 지나 묵계치 고운재를 넘어 옥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는 서쪽으로 섬진강을 품고, 이후 산줄기를 잘라내고 인위적으로 진양호 물이 사천만으로 흘러들게 만든 거대한 강, 가화강을 지나 백운산(391m), 대곡산(543m), 무량산(581m), 여항산(770m), 서북산(738m), 광려산(720m), 대산(727m), 무학산(761m), 천주산(638m), 봉림산(460m), 대암산(669m), 용제봉(723m), 김해의 신어산(630m)을 지나 낙동강하구인 김해시 매리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 줄기를 낙동강에 담그는 221킬로미터의 산줄기를 이루고 있다.

 

수 십 만평의 넓고 넓은 평원위에 펼쳐지는 철쭉나무 군락지.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지만 신록이 우거지는 6월이 되면 평원 전체가 붉은빛으로 불타오르며 한 여름 야생화로 뭍 시선을 유혹한다. 상상만으로도 황홀하고 밤하늘의 별을 벗 삼아 술잔을 기울이며 무용담을 풀어가는 낭만은 산 꾼이 아니면 상상할 수 없는 매력이 아닌가? 세석평전(1,600m)의 북쪽으로 백무동 지구에서 올라오는 한신계곡은 지리산 제일의 폭포들이 줄줄이 이어지고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천하제일의 절경이다. 남쪽으로는 세석산장을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거림 지구와 대성동 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연결된다.

 

나무계단을 딛고 올라선 촛대봉(1,703m)은 주목과 암봉이 절경을 이루고 삼신봉과 연하봉(1,730m)을 지나면 천왕봉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볼수록 장엄하고 위풍당당한 청왕봉 가는 길에 지리산의 기상을 대변하는 구상나무사이로 그 유명한 장터목산장(1,650m)이 반겨준다. 장터목은 언제나 활기가 넘치는 곳으로 천왕봉의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숙박을 해야 하는 베이스캠프다.

 

25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와 편리한 교통으로 전국에서 모여든 산 꾼들로 성시를 이루는 곳. 함양군 백무동지구와 산청군 중산리지구를 넘나드는 길목이다. 옛날 천왕봉 남쪽 기슭의 시천주민과 북쪽의 마천주민 들이 매년 봄가을에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 하던 장터가 섰다는 것은 지리산을 의지하고 살아가던 옛사람들의 강렬한 삶의 의지를 엿보게 해 준다.

 

장터목에서 천왕봉(1m915m)까지는 3km가 남았다. 제석봉의 고사목지대와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 등의 경관이 특출하고 낭만적인 길이 이어진다. 제석봉의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서 중봉(1,875m) 다음으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다. 제왕의 봉우리인 천왕봉은 동 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는데 옛날에 제사를 올리던 제단이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옆에는 맑고 시원한 물이 항상 솟아나오는 샘터가 있어 영험한 곳임을 알 수가 있다. 무엇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지이다. 10만여 평의 완만한 비탈에 수많은 고사목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모습은 황량하고 살벌한 느낌을 갖게 한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자유당 말기 농림부장관의 친척이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 놓고 전나무, 구상나무를 닥치는 대로 벌목하다 세상에 알려져 여론 시끄러워지자 증거를 인멸하려고 불을 놓았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행세께나 하는 자들의 작태를 볼 때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고사목 자체가 귀중한 자연경관이 되어 이곳에서는 야영과 취사행위를 금하고 등산로 이외 지역의 출입도 금지하고 있다. 1700여m 가 넘는 고산에서도 구상나무의 울창한 수림이 자생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복하며 제석봉 일대는 지리산의 철쭉 군락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곳으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철쭉이 5월 하순~6월 초순에 걸쳐 절정을 이룬다.

 

또한 이곳은 희귀한 동식물의 보고로 고사목 사이로 피어나는 야생화가 지천이다. 동자 꽃, 도라지 모싯대, 늦여름이 오면 꽃잎을 터뜨리기 시작하는 구절초와 쑥부쟁이, 군락을 이룬 술패랭이꽃, 그리고 산 오이 풀꽃이 황량하던 제석봉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변모시켜 주고 있다. 철쭉군락과 고사목이 어우러진 산정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주능선과 반야봉의 장중한 모습이 감동적이다.

 

제석봉 정상에서 천왕봉까지는 30분쯤 소요된다. 무거운 다리를 이끌며 통천문을 지나면 곧바로 천왕봉에 올라선다. 오매불망 그리던 백두대간, 나약한 두 다리로 험준한 산맥을 넘고 넘어 목적지에 도착하니 감개무량하다. 인산인해를 이룬 천왕봉. 저마다 가슴속에 포부를 안고 험한 길 마다안고 달려온 그들이기에 자아실현의 성취감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진부령의 고개 마루에서 시작한 긴 여정도 662km의 산굽이를 헤치며 남한의 최고봉인 지리의 영봉에 오름으로, 무거운 임무를 완수하고 홀가분한 마음을 가눌 길 없다.

 

천왕봉은 행정구역상 산청군 시천면과 함양군 마천면이 경계를 이룬다. 천왕봉은 함양 방면으로 칠선 계곡을 빚어내 물줄기를 토해 내며 산청 쪽으로는 통신골, 천왕골(상봉골)을 이뤄 중산리 계곡으로 이어지고 있다. 천왕봉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세 갈래로 헤어졌다가 진양호에서 다시 한데 모여 남강을 거쳐 낙동강으로 흐르면서 경남의 젖줄이 된다.

 

천왕봉 정상에는 82년 여름 경남도가 세운 1.5m높이의 표지석이 서있는데 전면에는 "지리산 천왕봉 1,915m"란 글귀와 뒷면에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문구가 우리의 가슴을 벅차게 감흥 시킨다. 천왕봉은 지리산의 최고봉으로 해발 1,915m의 거봉이다. 천왕봉에서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이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천왕봉의 해돋이는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히는 절경이지만 구름과 비오는 날이 많아 3대에 걸쳐 德을 쌓아야 천왕봉 日出을 볼 수 있다는 속설이 전해 온다.

 

                  30. 천왕봉(1915m) - 산청의 경호강 / 29km

일각에서는 천왕봉에서 산청의 웅석봉을 지나 경호 강에 지맥이 가라앉는 지점까지 백두대간의 연장이라고 주장을 한다. 그 길을 따라 종주를 이어가는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참고적으로 서술을 하고자 한다.

 

대원사 11.7km,  중산리 5.4km 장터목 대피소 1.7km의 이정표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망망대해의 전망대위에 올라앉은 듯 막힘이 없다. 서부경남과 전라도의 산과 강물이 이곳에서 발원을 하지만 천왕봉 남쪽의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은 서부 경남 지역의 식수원인 남강댐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솟구친 물은 덕천강을 따라 흘러 남덕유산 참샘을 발원으로 하는 경호강과 남강댐에서 합류하여 남강을 이루어 낙동강으로 흐르게 되고 이 강을 따라가는 주능선을 낙남정맥이라 한다.

 

중봉(1,875m)은 천왕봉(1,915m)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잡아 65계단을 내려와 안부에서 가파른 급사면을 치고 오르면 널찍한 정수리에 천왕봉 900m, 대원사 10.8km, 치밭목 산장 3.1km의 이정표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가까운 거리에 있는 천왕봉을 바라보노라면 한 없이 높아만 보이고, 변화무쌍한 운해가 천왕봉을 품었다 풀었다 휘감아 돌며 신비감을 더하는데, 정상에서 지르는 함성이 우렁차게 들려온다. 대원사와 치밭목 산장은 동쪽으로 내려서고 대간 길의 하봉(1,781m)은 북쪽으로 직진을 하게 된다.

 

중봉에서 하봉으로 향하는 주능선에는 널 부러진 고사목이 즐비한데, 껍질도 없이 앙상한 밑둥치위로 끈질긴 생명을 이어가는 푸른 잎을 내민 곁가지가 신비롭기만 하다. 완만한 비알 길을 내려서면 이정표하나 외로운 나그네의 등불이 되어 무성한 잡초 속에 버티고 섰다.  치밭목 1.8km 천왕봉 1.7km 중봉의 갈림길을 날머리로 이용하는 관계로 치밭목 산장 쪽으로는 여름 내내 오고간 흔적 없이 억새풀과 가시덤불만이 무성하다.

 

하봉으로 오르는 길을 만만하게 볼일이 아니다. 우리가 한 세상을 살아가자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하듯이, 힘들고 어려운 길을 누구라도 대신할 수 없지 않은가?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자면 스스로의 판단과 실천이 중요한 것이다. 숨이 턱에 차도록 안간힘을 쓰며 무거운 발걸음 이어가는 모습은 처절한 수도승의 고행으로 비유할 수 있는 몸부림이다.

 

올라선 정수리는 대청봉보다도 높은 1,781m다. 멋진 표지 석을 상상했지만, 정작 어느 곳이 정상인지 확인할 길이 막연하다. 서운한 마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니 초암능선의 암 봉들이 구상나무와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연출하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 막걸리 한잔으로 갈증을 풀고 초안능선으로 내려선다.

 

구상나무와 철쭉나무를 비집고 올라선 전망대는 초암능선이 자랑하는 절경으로 장관을 이룬다. 푸른 숲속에 속살을 가린 벽송 능선과 허공 달골, 두류능선과 국골, 초암능선과 칠선계곡, 창암 능선이 추성리를 깃 점으로 힘차게 날개를 펼친다. 건너편으로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라 일컫는 금대산(847m)과 백운산(902m) 그 너머로 삼봉산(1,187m)이 마루금을 이루며 힘차게 요동을 치고 있다. 또 한 동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깊고 깊은 계곡 속에 터를 잡은 치밭목 산장과 무재치기 폭포는 어떠하고. 천고의 신비를 간직한 대원사계곡이 지리산 자락을 흘러내린다.

 

무상무념의 세계를 넘나들며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안부에 올라서면 국 골로 내려가는 등산로 갈림길에 이른다. 국골 쪽으로 등산로가 폐쇄되어 위반 시에는 백만 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는 경고문이 있지만 대간 길과는 관련이 없으니 무슨 걱정이 있으랴. 전망 좋은 암릉을 휘돌아 앙칼진 구상나무 잔가지를 헤치며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조갯 골 위로 피어오르는 운해가 눈부시고, 높고 높은 연봉들 사이로 양지바른 분지위에 자리 잡은 쑥 밭재(1,268m)의 쉼터가 반겨준다. 천왕봉에서 중봉과 하봉 초암능선을 헤치며 지친피로를 풀기위해서는 이곳에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

 

15분간의 식사와 꿈같은 휴식시간을 보내고 서둘러 길을 나서면 키를 넘는 조릿대가 앞을 가린다. 펑퍼짐한 새봉(1,323m)에 올라서면 세 갈래 갈림길이 나타난다. 북쪽은 상내봉(1,200m)을 지나 벽송 능선으로 연결되는 길이고, 동쪽은 웅석봉에서 시작한 대간길이 밤머리재, 왕등재(936m)를 지나 이곳에 이른다. 서쪽은 방금 지나온 천왕봉으로 향하는 코스인데, 요즈음은 지리산도 태극능선이라 하여 서쪽의 바래봉(1,165m)에서 시작하여 웅석봉(1,099m)까지 3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하는 팀이 늘어나고 있다.

 

왕등재를 향하여 진행하면 완만하던 사면길이 갑자기 가파른 벼랑길로 변하여 산죽 밭을 헤치며 시원하게 내려선다.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경우에는 진땀께나 흘려야하는 구간이다. 억새가 많아 새재라 하는 양지바른 산자락에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새재(967m)는 직진을 하면 밤 머리재를 지나 웅석봉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새재마을과 조개 골 산장을 지나 유평리로 내려서는 대원사계곡의 상류지점이 되고, 좌측으로는 첩첩산중인 오봉리로 내려서는 갈림길이다.

 

키를 넘는 억새가 군락을 이루는 외 고개. 우측으로 만 여 평의 고산습지가 분지를 이루고 골짜기 아래로 새재 마을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숲 사이로 나타나는 습지대와 아름다운 다리. 이곳이 바로 왕 등재 고산습지가 아닌가? 자연보호를 위해 무단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아니라도, 우리 모두 지켜야할 소중한 자연유산이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조심스럽고 풀 한포기 스치는 것도 조심스러워 서둘러 자리를 뜬다. 앞을 바라보니 높이 솟아 오른 왕등재(936m)가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왕등재와 늪지대를 지났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발걸음이 가볍다. 무성한 철쭉나무와 키를 넘는 조릿대가 가는 길을 막아서도, 순조롭게 진행되는 대간 길에 거칠 것이 없다. 완만한 내림 길을 산뜻하게 내려설 때쯤 저만치 동왕등재의 모습이 나타난다.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을 넘어 갈 때, 때마침 불어오는 골바람이 너무나 상쾌하다. 왕등재의 오르막이 서서히 시작되고 땀이 날만하면 불어주는 바람이 고맙기 그지없다. 이렇게 바람을 맞아가며 날 등을 오르다보니 어느새 왕등재 돌길구간이 나타난다. 금방 나타날 것 같은 왕등재는 전망대 바위(969m)를 지난 다음에야 정상에 서게 된다. 깃 대봉으로 명명된 동 왕등재(935.8m) 정상에는 좁은 공터에 갈참나무 가지에 매달린 표시로 정상을 확인을 하지만 삼각점은 찾을 길이 없고 사진 한 장으로 기념을 하고 서둘러 발길을 재촉한다.

 

가파른 비알 길, 250여m의 표고차를 줄여가는 대간 길에는 전망 좋은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서부경남의 산하를 시원하게 조망하며 모처럼 망중한을 즐기게 된다. 종주를 고집하는 산 꾼이 아니면 찾아드는 사람도 별로 없는 적막강산에 목적지인 웅석봉이 아련히 모습을 드러낸다. 동 왕등재를 내려선 안부에서 오르락내리락 철쭉나무와 조릿대가 군락을 이루는 능선을 한동안 지나노라면 도토리 봉(890m)을 오르는 비알길이 시작된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정상에는 특별한 표시가 없다. 하지만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으로, 산청 톨게이트를 빠져나온 59번 도로가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 해발 620m의 밤 머리 재로 오르는 모습이 그림같이 펼쳐진다.

 

밤 머리재로 내려서는 절개지에는 『멸종위기에 처한 반달가슴곰 등 야생동식물이 서식하는 곳으로 공원자원의 보호를 위해 지정된 등산로이외의 출입을 통제하며 위반 시에는 50만원의 벌금이 부과 된다』는 경고문을 바라보며 미안하게도 이미 지나온 길이지만 범법자가 되었다는 자책감에 마음이 무겁다.  왕재 3.3km 웅석봉 5.3km 의 이정표가 덩그러니 서있는 한적한 고개 마루에는 오가는 차량도 별로 없이 통신 안테나와 대간을 넘나드는 산 꾼들을 바라보며 커피 파는 포장마차 하나가 자리지킴을 하고 있다.

 

밤 머리재를 뒤로하고 웅석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정상으로 향하는 마음하나로 모든 고통을 이겨낸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한 5km의 거리를 지나면 대미의 웅석봉이 기다린다는 설레 임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1시간 정도 길을 따르면 헬기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천왕봉의 자태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중봉과 하봉, 초암능선을 지나 새봉, 왕등재를 따라 활등같이 굽은 대간길이 천왕봉을 중심으로 비단결같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흐르고 있다. 가슴을 활짝 열고 심호흡을 하며, 저 먼 거리를 지나왔다는 자부심에 지리산의 새로운 면모를 가슴에 새긴다.

 

가락국의 구형왕이 넘어온 고개라 왕재(925m)로 부르는 이곳은 시야가 툭 터진 쉼터로 왼쪽으로 지곡사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밤머리재 3.3.Km, 웅석봉 2.0Km, 선녀탕 2.0Km의 이정표가 있고, 양쪽으로 쉬어가기 편안한 바위들이 있어서 정상을 목전에 두고 힘을 비축하기위한 휴식 터로 안성맞춤이다. 천왕봉에서 불어오는 찬 기운 탓인지, 4월이 다 가도록 삭풍이 불어오는 한겨울이다. 웅석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만고풍상의 혹독한 시련 속에, 온전한 나무하나 없이 갖가지 형태로 비틀어진 고목들이 애처로운 모습으로 선을 보인다.

 

정상을 300m앞둔 2번째 헬기장을 지나면, 전망대가 먼저 반겨준다. 지나온 능선을 따라 서쪽으로 바라보면 지리산의 뒷면을 자세히 볼 수가 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산이기에 숨겨진 부분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이 아닌가. 20 여km의 거리를 두고 천왕봉의 전모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땀 흘린 자의 기득권이 아닌가?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골격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이 생을 마감하는 경호 강줄기가 유유히 흐르고, 대진 고속도로와 산청의 산과 계곡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정상에 올라서면 삼각점이 보이고, 검은 표지 석에 곰이 새겨진 정상석이 반겨준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어 곰 바위산 (1099.3m) 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엄밀히 말하면 지리산 국립공원이 아니라 산청군의 군립공원이다. 넓게 보아 지리산의 일부로 태극종주의 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삼는 곳이다. 진부령에서 시작한 대간 길도 이곳 웅석봉에 이르고 아름다운 금수강산, 내조국의 아름다움과 나라사랑의 싹이 트는 국토 대행진도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밤 머리 재에서 완만하던 주능선이 경호강 쪽으로 내려서는 동쪽은 급사면을 이루고 있다.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될 위험한 지역으로 특히 겨울철에는 산행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조망만은 뛰어난 곳이라 바라보는 곳마다 절경이다. 왼쪽은 첩첩 산중인데 산속 깊숙이 절간(지곡사)이 자리를 잡고 오른쪽은 경호강과 평화스런 마을이 조망된다. 암릉 지대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하산 길에는 안온한 온실같이 따사로운 햇볕이 찾아들고 진달래와 노란 산수유가 만발한다. 산죽과 소나무를 헤치며 내려선 내리저수지, 파란 물이 가득한 저수지에 마음을 풀고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