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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백두대간. 제 1 부: 강원지역. 3

 

                   7. 백봉령(780m) - 연칠성령(1,184m) - 댓재(810m) / 31.5km

백복령에서 댓재 구간은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멀고 힘든 구간으로 무박산행으로도 벅찬 곳이라 3구간으로 나누어 당일산행으로 활용하고 있는 곳이다. 백복령의 본뜻은 소나무뿌리에 기생하는 한약재를 복령이라 부르는데, 이곳에 소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 탓에 백복령(780m)이라 부르지 않나 추측을 해본다.

 

대간 동쪽의 백복령 고갯길은 중턱에서 한줄기는 옥계로 가고 또 한줄기는 동해와 삼척으로 간다. 옥계 길은 남면치라는 이름으로 해안으로 떨어지고, 삼척 길은 유명한 무릉계곡의 들물을 지나 동해안을 달리는 7번국도 에서 동해시와 삼척시가 남북으로 갈린다. 서쪽으로 내려가면 정선군 임계면과 연결되는 42번 국도에 많은 차량들이 넘고 있지만, 그 옛날 보부상들이 삼척의 소금을 얻기 위해 넘나들던 곳으로 지금도 정선아리랑의 가락 속에 그 애환이 남아있다.

 

백복령에서 진행하는 대간 길은 아름드리 소나무사이로 철쭉이 제철을 맞아 흐드러지게 피어나고 완만한 능선에서 속도를 내다보면 987봉도 거뜬하게 뛰어 넘는다. 울창한 수림사이로 키를 넘는 조릿대, 종주 팀이 아니면 인적도 끊긴 첩첩산중에서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선 1,022봉에는 구중궁궐 들보감이 즐비한 소나무군락으로 강원도의 대간길이 아니면 어찌 볼 수 있으랴. 멀고 먼 원방재(730m)는 계곡으로 숨어들고 980m의 상월봉 오르기에 진이 빠진다. 도상거리 10km의 이기령에 도착하면 원방재에서 만났던 임도와 다시 만나고 당일산행 팀들은 관기 마을로 내려선다.

 

임도좌측의 소나무 밭으로 들어가면 가지런히 깔아놓은 디딤돌이 정성스럽고, 완만한 산길에는 갈미봉(1,260m)이 멀지않다. 갈미봉에서 서쪽으로 수병산(1,201m)이 보이고 완만하던 산세에 기암절벽이 나타나며, 삼척이 자랑하는 무릉계곡은 주문진의 소금강과 함께 쌍벽을 이루는 동해안의 절경이다. 왼쪽으로 수 백길 벼랑 아래로 간담이 서늘하고, 고적대(1,354m)와 청옥산(1,403m), 두타산(1,352m), 쉰움산(888m)이 병풍처럼 둘렀으니 천하제일의 절경으로 애국가에도 나타나는 신선대가 예 아닌가?

 

무릉계곡의 아름다움도 고적대를 오르는 고통에는 미치지 못하는지 턱에까지 차오르는 숨넘어가는 소리는 벼랑 끝을 맴돌고, 무거운 쇳덩이가 매달린 듯 흐느적거리는 두 다리는 제 자리 걸음이다. 삿갓을 엎어 놓은 듯 가파른 벼랑길에도 가녀린 야생화가 꽃을 피우고, 소나무등걸이 바위틈새를 비집고 있다. 서너 평의 정수리가 높기도 하지만, 비좁은 정상에서 내지르는 호탕한 웃음소리는 산객들의 사자후가 아닌가?

 

무릉계곡 골골마다 부처님 손바닥이라, 신비하고 아름다운 정경을 형언하기 어렵다. 서쪽으로 중봉산(1,283m)은 은고개(임계면, 하장면, 동면의 경계)로 향하고 동남방향 대간 길은 망군대(1,247m)로 향한다. 가파른 비알 길을 내친김에 내려서면 무릉계곡으로 내려서는 연칠성령(1,184m)에 도착하며, 피곤한 몸을 쉬어가기 안성맞춤이다. 청옥산 오르는 길엔 거목들이 하늘을 가리고, 갈길 먼 발걸음을 막아서는 가파른 오름길에 무슨 힘이 남아있어 저 고지를 넘어 설꼬. 황소 같은 맞바람이 박달재를 넘어올 때 가녀린 산객도 청옥산(1,404m) 정수리에 몸을 누인다.

 

박달령을 내려올 때는 신바람이 나지만 두타산(1,352m)의 정수리가 지옥의 문턱인가? 정수리에 외로운 무덤이여. 명당자리 찾아 예까지 오셨는가? 매서운 북풍한설 맞아보니 어떠하신지. 대간 길에 나선 길손에게 위로의 한 말씀 전해 주시 구료. 동북 방향으론 쉰움산(888m)의 오십정(바위에 뚤린 50개의 구멍)이 반갑게 맞아주고 천년사찰 천은사를 품에 안고 삼척 해수욕장까지 장대한 산맥을 이룬다.

 

남쪽으로 향하는 대간 길은 힘든 고비 다 넘기고 통골재로 향하는 내리막길이라 여유만만하게 도착을 하면, 두타산 2.2km 햇댓등 3.6km의 이정표에서 보듯이 아직도 갈 길이 멀지만 어렵고 힘든 코스를 다 지나왔기에 오르락내리락 지나온 30여km를 반추해보며 댓재(810m)에 안착한다.

 

                     8. 댓재(810m) - 피재(三水嶺 920m) / 25.22km

이번구간은 삼척시를 관통하게 된다. 댓재의 정상에 있는 조형물에서 보듯이 이 지역은 석회암의 지질대가 정선과 영월을 지나 단양까지 이어지며 ❝세계적인 동굴 관광도시 삼척❞의 이미지에 걸맞게 환선동굴을 중심으로 많은 동굴이 산재하고 있다. 우리가 지나오며 보아온 자병산의 정수리를 깎아내리는 흉물스러운 모습은 현대 건축에 없어서는 안 될 시멘트의 원료를 채취하는 현장으로 삼척과 단양에는 수많은 석회암 광산들이 조국 근대화의 역군으로 한 몫을 하고 있다.

 

댓재는 삼척시의 미로면 삼거리에서 하장면 평지마을을 거쳐 태백으로 넘나드는 424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다. 한겨울이면 많은 눈이 내리고 바람이 심하여 산 짐승들이 수난을 당하는 곳으로 겨울 산행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댓재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황장산에 올라서면 지나온 청옥산과 두타산이 정겹게 바라보이고 삼척시가지 너머로 동해의 푸른 물결이 출렁이는 망망대해가 대간을 누비는 산 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이정표가 세워져있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지만 지루한 종주 길에 1,059봉에 오르면 황장산 2.5km 큰재 1.9km의 이정표가 반겨준다. 느긋한 마음으로 주위를 돌아보며 큰 재에 이르면 1980년에 개설된 임도가 고랭지 채소밭이 시작되는 마을까지 3.3km이어진다. 마을 뒤편의 물탱크가 있는 지극산(1,058m)에 오르면 드넓은 고랭지 채소밭이 끝없이 펼쳐지고 지나온 두타산이 아련히 바라보인다. 지극산을 뒤로하고 고랭지채소밭의 임도를 따라가면 우측으로 광동댐 이주단지인 귀내미골이 내려다보이고 잠시 후 자암재에 도착한다.

 

자암재 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환선동굴은 강원도 삼척시 신기면 대이리에 있는 삼척이 자랑하는 동양최대의 석회암 동굴이다. 덕항산 건너편의 해발 80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는 동굴은 폭이 30m, 높이 20m, 총연장6.2km(추정)로 밝혀지고 있지만 아직 일부분만 관람이 가능하다. 동양 최대의 동굴이라는 말에 걸맞게 커다란 광장을 연산시킬 만한 공간들이 철제 난간으로 만든 관람로를 따라 천당계곡, 환생계곡, 이승계곡, 지옥계곡, 은하계곡, 신선계곡과 제일폭포, 소망폭포, 오련폭포 등의 크고 작은 폭포들. 그리고 꿈의 궁전, 만리장성, 옥좌대등 기이한 형태를 보여주며 특히 지옥계곡 위로는 아주 높은 출렁다리가 있어 새로운 세계를 체험할 수가 있다. 신비한 동굴의 관람에만 한 시간이 족히 걸린다.

 

자암재를 지나면 곧이어 환선봉(1,080m)과 덕항산(1,071m)에 이르는데 산불감시초가 있는 덕항산은 삼척시 신기면과 태백시 하사미동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그 옛날 삼척사람들이 산을 넘어오면 평평한 땅이 많아 덕메기 산이라 불렀으나 한자로 표기하면 덕항산(德項山)이 된다고 한다. 피재 7시간 황장산 4시간의 이정표를 뒤로하고 남진을 하면 1km 지경에 구부시령이 있으니, 태백시 하사미의 외나무 골에서 삼척시 도계읍 한내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에는 기막힌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옛날 고개 동쪽 한내리 땅에 기구한 팔자를 타고난 여인이 살았는데 서방만 얻으면 죽고 또 죽어 무려 아홉 서방을 얻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홉 남편을 모신 여인이 살던 곳이라 하여 구부시령(九夫侍嶺)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구부시령에서 1km로 못 미치는 삿갓봉(1,055m)에 오르면 한의령 6.1km에서 보듯이 아직도 갈 길이 멀고, 한내령에 이르면 구부시령 3.8km 한의령 3km의 이정표를 맞이한다.

 

멀고먼 푯대봉(1,009m)에는 태백시 한마음 산악회에서 세운 커다란 정상석이 반겨준다. 한의령 1.1km 구부시령 5.7km의 이정표를 뒤로하고 건의령(한의령)에 도착하면 등산 안내도와 건의령의 경도가 적힌 표지판이 대간 길에 지친 산객들에게 새로운 용기를 준다. 태백 상사미에서 삼척 도계로 넘어가는 이곳에도 슬픈 전설이 있으니, 고려말 삼척으로 유배를 온 공양왕이 근덕 궁촌에서 살해되자 고려의 충신들이 이 고개를 넘으며 고갯마루에 관모와 관복을 걸어 놓고 다시는 벼슬을 하지 않겠다며 태백의 산중으로 몸을 숨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며, 두건 건(巾), 의복의(衣)자를 써서 巾衣嶺 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건의령 에서도 삼수령(920m)까지 이어지는 6km의 대간 길은 지루하기 짝이 없고, 노루메기에 도착하며 삼수령(피재)도 지척에 있다. 태백 시내에서 35번 국도를 따라 오르면 삼수령이다. 서해로 흐르는 한강, 남해로 흐르는 낙동강, 동해로 흐르는 오십천의 물줄기가 갈리는 곳이라 하여 삼수령이라 부르는 이곳은 낙동정맥의 시발점이기도하다. 한편 피재라고 하는 이곳의 유래는 삼척 사람들이 황지지역을 이상향이라 하여 난리를 피해 이곳을 넘어 온데서 지어진 이름이다.

 

                     9. 피재(920m) - 화방재(950m) / 23.5km

삼수령을 출발하여 40여 분만에 도착한 곳은 낙동정맥의 시작을 알리는 표지석이 자리 잡고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부산의 몰운대까지 392km의 천리 길을 달려갈 장대한 산맥의 들머리이기에 새로운 감회가 든다. 참고로 낙동강의 발원지인 황지에 관한 내용을 기술하면 ❝동국여지승람, 척주지, 대동지지 등에서 낙동강의 근원지라고 밝혀 놓고 있다.

 

처음에는 하늘의 못이라는 의미로 천황(天潢)이라했고 황지(潢池)라고도 했는데 태백시내 중심지에 있는 황지공원의 커다란 비석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상지, 중지, 하지로 이루어진 둘레 100m의 소(沼)에서 하루에 5000t의 물이 솟아 나오고 있다. 이물은 태백시를 둘러싼 태백산, 함백산, 백병산, 매봉산 등의 줄기를 타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던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룬 것으로 시내를 흘러 구문소를 지난 뒤 경상남북도를 지나 부산의 을숙도에서 남해로 유입된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남서쪽으로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 1,145봉에 올라 1시간 땀을 흘리며 숲속으로 들어서면 매봉산(천의봉-1,303m)정상에 오르게 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풍력 발전기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게 된다. 이곳에는 전망대와 정상석이 있고 사방팔방 시원하게 트이는 조망으로 태백산, 함백산을 중심으로 대간의 능선들이 파노라마를 이룬다. 또한 이곳에서 통리로 항하는 낙동정맥이 시작되는 기점으로 대간꾼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거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비단봉 까지는 그 유명한 태백의 고랭지 채소밭이 광활하게 펼쳐지고 대간길이 서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비단봉(1,281m)의 정상에 올라선다. 암릉 위의 정수리에는 정상석이 반겨주고 시원한 조망으로 매봉산의 풍력발전기가 이채롭다. 급경사를 내려서면 쑤아발령에 이르고 삼수령6.4km의 이정표를 뒤로하고 대간은 서남쪽으로 선회하여 1시간을 진행하면 양강의 발원봉으로 유명한 금대봉(1,418m)에 오른다. 산불감시초소와 정상석이 있지만 전망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이곳에서 대간길은 남쪽으로 이어지는데 서쪽으로는 126만평의 너른 분지에 조성된 야생화 단지로 유명한 대덕산(1,307m)을 비롯한 노목지맥이 분기하고 있다.

 

금대산에 내린 빗물이 동쪽으로는 낙동강으로 서쪽으로는 한강으로 흘러들게 되니 강원도 태백의 대덕산 자락에 위치한 검룡소에서 하루 2천여 톤의 생명수가 석회암반에서 사계절 영상9도의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며 솟아올라 5백14km를 흘러내려 한강 하구의 조강에서 임진강과 합류하는 발원지가 된다.

 

전설에 의하면 서해바다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올라와 최상류인 검룡소에서 살았다고 한다. 이무기가 연못에 들어가기 위해 거칠게 몸부림친 흔적이 검룡소 폭포라고 한다. 소가 풀을 뜯다 물먹으러 새벽녘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이곳을 찾았다가 빠져죽자 마을 주민들이 이무기의 짓이라고 검룡소를 돌로 메워버렸다고 한다. 오대산의 우통수를 남한강의 발원지라 하였으나 국토지리원에서 새로이 측정한 뒤로 이곳을 발원지로 정하고 1986년 태백시에서 새로 준설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금대봉에서 남진하는 대간 길은 야생화의 꽃길을 따라 두문동재(1,268m)에 도착한다. 동쪽의 태백과 서쪽의 고한을 넘나드는 38번 국도이다. 이곳 또한 터널이 개통된 뒤로는 산객들이나 약초꾼 들이 찾아드는 한가한 곳으로 겨울에 눈이 한번 내리면 이듬해 봄이 될 때까지 차량의 통행이 금지되는 오지이다. 두문동재는 고개 이름에서 전해 오는 대로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서기 1392년 7월에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하자, 二君不仕를 고집하며 조선의 개창에 반대하여 두문동에 은거를 한다.

 

송도(지금의 개성) 동남현에 들어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있는 곳을 향하여 예를 올리고 삿갓을 쓰고 산야에 은거하며 후진교육과 농사에 종사하며, 頭門不出(두문불출)하였다. 아무리 불러내어도 나오지 않고 의리와 貞節(정절)을 지키자 화가 난 이성계는 두문동에 불을 질러 72현을 몰살하는데 살아남은 자가 강원도의 고한 땅에 숨어들어 다시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않고 동리 이름도 두문동으로 부른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함백산을 향하여 남진하는 대간 길은 은대봉(1,442m)에 오른다. 산 아래에는 정암사라는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신 천년 사찰이 자리 잡고 있다. 서기 636년(선덕여왕 5년)자장율사가 당나라에 들어가 문수도량인 산서성(山西城) 운제사에서 21일간 치성을 올린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 한 후 전국의 5곳에 나누어 모셨으니 그중에 한곳이다.

 

제1쉼터와 제 2쉼터를 지나면 우리나라 5대 고봉중의 하나인 함백산(1,572m)정상에 오른다. 거대한 정상석과 송신 중계탑, 고산지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고사목이 북풍한설에도 당당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장관이다. 발치 아래 건너편으로 바라보이는 강원랜드의 카지노와 스키장은 폐허가 된 탄광의 옛 영화를 되살리는 태백의 원동력이 된다는데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또한 인근에는 국가대표 선수들의 고지대 훈련장이 있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막힘없이 시원한 조망 속에 힘들여 올라온 만큼 발걸음이 가벼운 하산 길. 정선과 영월을 잇는 우리나라의 포장도로 중 가장 높은 만항재(1,330m)에 도착한다. 만항재 보다 낮은 수리봉(1,214m)은 1,238봉 다음이며 지나온 함백산과 이어갈 태백산이 시원스레 조망되며 잠시 후 화방재(950m)에 도착한다.

 

                 10. 화방재(950m) - 도래기재(770m) / 24.3km

31번 국도가 지나는 화방재는 태백시와 영월군을 오가는 고개로 태백산과 함백산의 경계를 이룬다. 매년 1월 1일이면 한해의 무사안녕과 가정의 행복을 기원하는 인파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어 밤새도록 태백산의 장군봉을 향하는 행렬로 장사진을 이룬다. 화방재에서 완만한 능선을 따라 남진을 하면 산신각이 있는 사길령 매표소에 도착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강원도와 경상도를 오가는 길목이지만 산길이 높고 험하여 맹수와 산적들이 많이 출몰하기에 보부상들이 수십 수백 명씩 한 무더기를 이루어 넘어 다녔다고 한다. 특히나 고갯길의 무사안전을 위하여 고갯마루에 당집을 짓고 음력으로 4월 15일이면 태백 산신령에게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천금록에 전해오고 있다.

 

사길령에서 1.8km를 거슬러 오르면 유일사 갈림길에 도착한다. 해돋이 산행 때는 유일사 주차장에서 올라오는 인파와 합류하는 병목현상으로 아비규환 속에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기도 하다.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옆으로 우리나라 최대의 주목 군락지가 펼쳐진다. 수백 수천의 고사목이 제각각의 모양으로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산으로 추앙을 받는 것도 주목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을 해본다. 백두산 장군봉(1,567m)에 올라서면 동쪽에서 떠오르는 일출의 신비스러운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태백산은 우리나라 3신산 중의 하나로 산 정상에는 태고 시절부터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이 있으니, 자연석 편마암으로 둘레27m, 폭8m, 높이3m의 원형제단으로 쌓아올려 중용 민속자료 제 288호로 지정되어 보호하고 있다. 정상에는 천제단이, 남쪽아래 하제단이 있고, 북쪽의 장군봉에는 장군단의 3개 제단으로 이루어졌다.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이면 천제를 올리는데 한배검이라는 자연석의 위폐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주위의 산기슭에는 무속인 들의 성지로 단군성전을 비롯하여 윤 씨 산당, 불정암, 배씨 산당, 태백산 마구 할머니 산당 등 그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전국에서 모여든 도인들이 심신을 수련하고 있는 곳이다.

 

커다란 정상석을 뒤로하고 완만한 능선길을 내려서면 부쇠봉(1,546m)에 이른다. 이곳에서 직진을 하면 문수봉(1,517m)에 이르지만 대간 길은 오른쪽으로 부쇠봉의 산허리를 감아 돌며 비알 길을 내려선다. 3.25km를 널널하게 걷다보면 깃대배기봉(1,353m)에 이르고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지근거리에 두위봉(1,363m)이 있고 청옥산(1276m)이 산맥을 이룬다.

 

큰 기복 없이 울창한 숲속을 지나면 차돌배기(1,141m)삼거리에 이르는데 이정표에는 태백산 10km, 석문동6km, 참새골 입구6km 에서 보듯이 이곳에서는 어느 쪽으로도 탈출로가 어려운 곳이기 때문에 무리해서라도 대간 길을 따를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남진하던 대간 길은 신선봉을 향해 서북쪽으로 진행을 한다. 직진을 하면 각화산(1,176m), 왕두산(1,044m), 형제봉(833m)을 지나는 주능선으로 화장산(859m)에 이르게 된다.

 

차돌배기 삼거리에서 서북방향으로 달려가는 대간 길은 외로운 무덤이 잠들어 있는 신선봉(1,300m)에 이른다. 이곳에서 대간 길은 60도 각도로 꺾어지며 남쪽방향으로 선회하기 때문에 무심코 직진을 한다면 상동읍 천평리 방향으로 이탈하니 주의가 필요하다. 헬기장까지 내려온 대간 길은 서서북 방향으로 선회하여 곰넘이재(1,074m)를 넘는다. 구룡산 5km, 차돌배기 6km로의 이정표를 바라보며 지루하고도 먼 대간 길에 몸도 마음도 지치고 만다. 직진방향으로 고직령(1,231m)을 지나 구룡산(1,344m)에 올라서며 그동안 정들었던 강원도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경상도지역으로 들어선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정수리에서 서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5,54km를 진행하면 도래기 재에 도착한다.

 

구룡산의 유래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서벽리에 위치한 구룡산(1,344m)은 태백산(1,567m)과 옥석산(옥돌봉1,242m)사이에 있는 백두대간의 마루금을 이루는 산이다. 강원도와 경북의 경계선에 있는 이산에서 흐르는 물은 남쪽으로 낙동강과 북쪽으로 남한강으로 흘러들며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을 하여 구룡산이라 부르며 용이 승천할 때 물을 길러오던 아낙이 뱀봐라 하며 꼬리를 잡아당겨 뱀이 되고 말았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