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섭지맥 / 34km
백두대간이 속리산의 천황봉(1.057m)에서 한남금북정맥으로 분기하여 음성지방의 보현산(478m)에서 지맥을 이루어 부용산(644m)으로 향하던 중, 493봉에서 동쪽으로 분기하여 가섭산(△709.9m), 어래산(x393m), 고양봉(x503m), 풍류산(△485.2m)을 세우고 달천 하문리 하소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34km 정도 되는 산줄기를 가섭지맥이라 한다.
요도천(주덕읍, 신니면, 이류면을 흐르는 川) 북쪽으로 이어가는 산줄기를 부용지맥이라 하고, 남쪽으로 이어가는 산줄기를 가섭지맥이라 한다. 가섭지맥의 들머리인 용산리 저수지는 음성사람들이 삼림욕과 레저 활동으로 심신을 단련하는 유원지가 된다. 체육공원 음성궁도장위 주차장에서 일반 등산로를 따라 분기봉(482m)에 오르면 정상 2.6km 삼성목장 0.9km 궁도장1.4km의 이정표가 서 있다.
분기 봉에서 정상 쪽으로 100여 m를 진행하면 가섭지맥으로 내려서는 분기점이다. 오른쪽으로 좁은 길을 따라 내려서면 묵정밭이 나오고, 안동 김씨 묘를 지나 과수원 옆으로 포장된 수레길을 따라 내려오면 318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숫고개에 도착한다. 음성읍에서 신니면(충주시)동락으로 연결되는 도로를 따라 이동통신 송신탑이 있는 곳에서 도로를 건너,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파란지붕 공장을 향해 30여m 들어가면, Y갈림이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공장과 포장도 끝나면서 비포장 임도를 따라 능선으로 진행한다.
채석장 절개지위에 올라서면 3-40m의 수직단애를 이룬 절벽 밑으로 넓은 채석장이 내려다보이고, 건너편으로 지맥의 끝자락에 우뚝 솟은 부용산이 아름답게 보인다. 오른쪽으로 채석장의 절개지위를 따라가면 왼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합류하여 451봉에 올라선다. 안부로 내려섰다 545봉을 오르는 사면 길에서 봉학골 삼림욕장에서 올라오는 넓은 길을 만난다. 이제 탄탄대로에서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능선을 따르면, 두호2봉으로 명명된 선지봉(565m)이다.
선지봉의 이정표에는 지나온 두호1봉(545m)1.4Km, 오른쪽을 수리봉 1.3Km, 직진방향은 시계능선이다. 수리봉 쪽으로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면 3거리 안부에 도착하고, 오른쪽으로 사무실 1.3Km, 수리봉 1.1Km의 이정표가 있다. 봉학골 삼림욕장에서 세운 이정표가 총총히 있어 편안하게 솔밭 길을 오르면 수리봉(571m)에 올라선다. 이정표에는 등산로입구와 중계소(가섭산 정상)1.5Km, 지나온 두로2봉 1.3Km를 가르치고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틀어 비알 길을 내려서면 14번 고압선 철탑을 만난다. 이곳 안부의 이정표에는 가섭산 900m, 수리봉 600m, 관리사무소 1Km를 가르치고 왼쪽으로 신니면 댓골로 넘어가는 희미한 족적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시멘트도로가 가까이 보이고 시원한 소나무 사이로 용산리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560m봉을 지나면 왼쪽능선에서 오는 길과 합류하여 오른쪽으로 서서히 오르게 된다.
아름드리 소나무와 어우러진 진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능선을 오르면 높은 안테나와 산불감시 시설이 있는 707m봉이다. 이곳에 가섭산 정상석이 있는 것은 봉화대가 있는 곳이 일반에게 개방되기 전에 세운 것으로 짐작을 해볼 수가 있다. 이곳에서 200여m 전방의 가섭산 정상의 삐죽삐죽 서있는 수많은 안테나 시설이 잘 내다보인다. 가섭산 정상부의 통신시설을 보호하는 철망을 왼쪽으로 끼고 돌아가면 가섭사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도로와 만난다.
도로에서 100여 m 를 내려서면 고려 공민왕의 왕사(王師) 나옹화상(羅甕和尙)이 창건하였다는 고찰 가섭사(迦葉寺)가 자리 잡고 있다. 암자에서 내려다보는 경치 또한 절경으로 수십m가 넘는 아름드리 소나무의 향내가 온몸을 휘어 감는다. 산림청에서 우량 형질을 갖고 있거나 보존의 가치가 높은 소나무들을 선정하여 “전국의 우량 소나무 림”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육성하는데, 가엽산의 소나무도 60ha에 걸쳐 보호림으로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고즈넉한 산사를 뒤로하고 오르는 정상은 녹녹하게 자리를 내어 주지 않는다.
송신소 진입로를 따라 지그재그로 산 비알을 기어오르는 발걸음에는 날숨과 들숨의 가빠 오는 호흡 속에 진땀이 잔등으로 흥건하게 배어나온다. 산새들도 숨을 죽이는 적막한 정수리에는 새 한 마리 비집고 들어갈 틈도 없이 육중한 철조망과 대문이 잠겨있고, 송신소의 첨탑들이 무언의 중압감으로 가슴을 조여 온다. M.B.C 충주문화방송 로고가 새겨진 바위 옆으로 봉수대의 안내간판이 서있고, 철도 침목으로 만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언덕위로 올라서면 분지위에 봉수대의 모형과 삼각점(음성22, 1982년 복구)이 있다.
이곳 가엽산은 삼국시대부터 국경의 요충지로 조선시대에는 경상도와 전라도에서 올라오는 봉화를 한양으로 전달하는 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전국의 유명한 산의 정수리에 무수히 많은 구조물들이 우리의 눈과 귀가되어 지구촌의 소식을 한눈에 전달하는 첨단시설의 중계지로 현대판 봉수대로 다시 태어난 것이 아닌가. 사방으로 터지는 조망은 힘들게 올라온 보상을 하고도 남음이 있다. 음성의 진산으로 수 백리 산과 계곡이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막힘이 없고, 동쪽으로 부용지맥을 사이에 두고 요도천의 기름진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병풍산의 맥이 이어진 아담한 야산의 기슭에 터를 잡은 고향마을에는 삼십 여 호의 집들이 옹기 종기 모여 있다. 요도 천을 중심으로 곡창지대가 펼쳐지고, 2- 300m의 산줄기들이 마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는 곳에 700m 가 넘는 산은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라. 어린 동심에도 숭배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사랑문을 열고 뜰에 나서면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거대하고 웅장한 산. 한여름 배부르게 풀을 뜯은 황소가 편안하게 누워 있는 모습이다. 어머니의 품속과도 같이 아늑하고 포근함 속에서 꿈을 키웠다.
가엽산 자락에 구름이 얹히면 비가 내리고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면 맑은 날이 계속되는 영험한 산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을 귀담아 들으면서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던 곳. 나이가 들어 전국의 유명한 산을 찾아 800여 산을 오르면서도 동경의 대상인 가엽산을 오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으로 가슴앓이도 많이 하였지. 지척(咫尺)에서 바라보는 가엽산의 정상에는 뾰족한 철탑들이 진을 치고 있는 금단의 땅이기에 더욱 애착이 가고 정수리에서 바라보는 내 고향 마을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정상에서의 흥분된 마음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침목계단을 내려와 충주MBC중계소 정문에서 철조망을 왼쪽으로 끼고 진행하면 후문이 나온다. 가섭산의 정상도 서서히 멀어지고, 선답자들의 행로를 따라 내려서면, 채석장(대한산업)의 절개지가 나타난다. 오금이 저리는 수직 절벽위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야한다. 잠시 후 631m봉을 지나면, 채석장이 오른쪽으로 내려다보이고 왼쪽으로“군사시설보호구역”시멘트 말뚝이 있고, 군부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봉에서 오른쪽으로 오솔길이 이어진다. 잠시 후 경사가 심한 비알 길에는 타이어 고무줄과 낡은 로프가 걸려있다. 발가락이 앞으로 밀릴 정도로 가파른 비알에 깔려있는 야전용 전화선을 따라 타이어를 쌓아 만든 참호에 도착하며 비알 길도 완만해진다. 야전용 통신선을 따라가면, 군 초소가 나오고 신원확인을 하게 된다. 지은 죄도 없으면서 초조한 긴장감속에 초소를 지나면, 우리의 식욕을 돋우는 두릅나무와 한약재로 귀한 대접을 받는 엄나무 숲을 지난다.
474봉에서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또 다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큰 바위 2개가 나타나고, 바위 옆으로 내려선 다음, 절의 경계를 표시하는 철조망을 넘어 오른쪽으로 300여m를 진행하면 동양최대인 108척의 지장보살이 있는 미타사가 된다. 미타사는 1300여 년 전 신라 진덕여왕 8년 원효성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미타사를 내려서면 안 되고 작은 돌탑이 있는 갈림봉에서 왼쪽으로 150여m 를 내려서면 군부대 철망이 앞을 가로 막는다.
철조망을 왼쪽에 끼고 돌면 부대 정문이 나온다. 도로를 건너 맞은쪽의 묘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 과수원을 지나 오른쪽의 수레길을 따라 36번 4차선 고속화도로에 내려선다. 만리장성보다도 위험한 장벽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지하통로로 연결된 36번 도로를 따라 4차선 도로를 통과한다. 절개지가 끝나는 지점에 밭으로 들어가는 수레 길을 따르는 것이 원칙이지만, 오랫말 삼거리(49번 도로와 접속)까지 도로를 따라가는 것이 편하다.
버스정류장(비산2리)뒤로 수레길을 따라 마루금에 올라 141봉, 151봉, 164봉을 넘은 후 251봉에서 왼쪽(북북동)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면 길이 점점 좋아지고, 오른쪽으로“소이농공단지”가 내려다보인다. 충주와 음성의 시경계인 311봉에는 주민들 운동시설인 훌라후프, 줄넘기가 보인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급선회 한 지맥은 市 境界를 따라 밤나무 단지를 지나 220봉에 오르면 모처럼 시야가 트인다.
251봉과 220봉은 311봉을 꼭지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형태를 이루고 있어, 직선거리로는 바로 건너다보이지만, 물길을 피해 돌아가는 산줄기가 멀기만 하다. 오른쪽으로“소이농공단지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왼쪽은 낮은 능선이 충북선 철도로 이어지며, 그 너머로 어래산을 향하는 능선이 보인다. 철도와 2차선 포장도로를 건너면“충주시(주덕읍)”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있다. 철도와 도로를 건넌 지맥은 마을의 뒷동산을 지나며 과수원과 밭둑을 경계삼아 먹골 고개를 지난다.
먹골 고개는 후미리와 삼청리를 오가는 소로 길인데, 두 마을이 음성군과 충주시로 갈리지만 고개를 사이에 두고 정을 나누며 살아가는 의좋은 마을이 아닌가 싶다. 시군 경계선을 따라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완만한 경사를 올라 189봉을 내려서면 왼쪽으로 과수원 철조망이 나온다. 이 지역은 과수농사가 적합한 지형으로 등로에 철조망이 많이 나타난다. 전형적인 육산인 이곳에도 심심찮게 암릉이 나타나고, 326봉은 삼군이 경계를 이루는 곳으로(충주시, 음성군, 괴산군), 음성군은 이곳에서 끝이 나고 충주시와 괴산군의 접경을 따라 지맥이 연결된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며 주위에 펼쳐지는 경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383봉을 지나며 쉬어가기 좋은 장소에 올라서면 음성제일의 가섭산이 주위의 모든 산들을 굽어보며, 산업의 동맥인 충북선 철길로 화물차들이 굉음소리를 내며 달려간다. 충주지씨 묘가 있는 정상을 내려서면 마루금으로 암릉이 시작된다. 모처럼 바위를 밟아가는 스릴도 맛보고 암릉길이 끝나면서 오래된 수레길을 따라 374봉을 지나 안부에 내려선다.
어래산 오름이 시작되는 능선에는 베틀굴이 보이고, 일반인들의 접근을 거부하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지만 무슨 영문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높은 벼랑위의 바위를 오르는 길에는 나무사다리와 로프가 있고, 바위에 올라서면 평평하고 너른 공간에 어래산(396m) 정상석이 자리 잡고 있다. 주덕 초등학교 시절, 소풍으로 어래산을 찾아 왔지만 정상까지 오르지는 못하고 기슭에서 놀다 돌아간 추억이 있다. 또 한 주덕 읍지에 어래산의 전설이 있어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주덕면 삼청리에 해발 387m의 산이 있는데 이 산을 어래산이라 한다. 공민왕으로부터 남달리 총애를 받고 있던 배극렴은 왕의 시역사건이 일어나자 정사에 뜻을 잃고 모든 관직을 버리고, 부인과 더불어 충주로 낙향을 했는데, 그가 어느 곳에 은거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배극렴은 어래산 동굴을 찾아 세상에 다시 나오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머루, 다래를 따먹으며 야인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성계에 의해 조선이 개국을 하며, 정권 유지와 대외적인 명분을 위하여 고려의 유능한 중신들이 절실히 필요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뜻을 거부하는 우현보, 이색 등은 하옥이 되고 정몽주는 격살을 하였다. 배극렴이 행방조차 묘연해지자 8도 수령 방백에게 찾아내도록 명하였고, 배극렴이 충주의 산중에 기거한다는 소문을 듣고 이성계가 직접 찾아간다. 첫 번째, 두 번째도 못 만나고 세 번째 찾아가서야 동굴 속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배극렴을 만나 개국 공신으로 협조해 줄 것을 간청하므로 다시 정치에 나서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그 후 이 고을 사람들은 이성계가 이곳을 세 번씩이나 찾아왔다고 해서 고을 이름을 삼방리(三訪里)라 하고, 산의 이름을 어래산(御來山)이라 부르며 배극렴이 땔나무를 하던 골짜기를 배나무 골, 그 부인이 베틀을 놓고 베를 짜던 굴을 베틀 굴, 이성계와 배극렴이 국사를 의논했던 산 정상을 국사봉이라 부른다.
어래산은 3개의 비슷한 봉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첫봉에 정상석이 있고 2번째 봉을 지나 안부에 오면 “성지사 갈림”이라 쓴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길이 성지사 방향이고, 노루목은 직진방향이다. 양쪽모두 로프가 있고, 오른쪽으로 3번째 봉에 올라 왼쪽으로 내려서면 둘째 봉에서 내려온 길과 만난다. 어래산 이후 호젓한 산길을 따라 333봉에 올라선 뒤 오른쪽으로 90도 선회하여 소나무가 울창한 능선을 따른다. 이정표(←어래산 10분,↑미락골 10분,↓삼방리 10분, 모래봉 10분)가 있는 노루목재를 통과하여 모래봉으로 향한다.
모래봉을 앞두고 나타나는 3거리에 2개의 통나무 의자와 이정표가 있다. 지나온 어래산 40분, 오른쪽은 괴산군 불정면 삼방리, 왼쪽은 충주시 주덕읍 삼청리가 된다. 이곳의 높이를 393m라 한 것은 제작자의 실수로 보아야 할 것 같다. 모래봉(388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능선은 깃대봉(392.3m)으로 이어지고, 가섭지맥은 동쪽 내리막이다. 또한 모래봉은 3개면이 갈라지는 경계봉으로(충주시- 주덕읍, 이류면, 괴산군- 불정면) 주덕읍의 지경을 벗어나게 된다.
왼쪽으로 내려서면 599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세실고개에 도착한다. 음성군 불정면에서 이류면을 오가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의 정상에는 쇠실고개 표지석이 있다. 도로를 건너 276봉에서 남쪽으로 선회하여 지맥을 따르면 낡은 철조망이 있는 곳이 265봉이고 철조망을 따라 내려서면 작은 쇠실고개가 된다. 세실고개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삼방리 갓돈 마을과 금곡리 쇠실 마을이 왕래가 빈번하던 곳이지만, 세월 따라 낙엽 속에 뭍이고 만다. 고개이름은 북쪽의 이류면 쪽으로 철을 캐던 광산이 있어 쇠실 이라는 마을 이름과 함께 쇠실고개로 부르고 있다.
348봉과 294봉을 지나면 골이 깊게 패인 舊(구) 쇠실고개다. 높이 올려다 보이는 고사리봉이 힘에 겨워 발걸음이 느려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451봉을 오르면 경사도 완만해지고, 왼쪽으로 선회하여 지맥을 따르면 북서방향으로 골프장이 내려다보인다. 잠시 후, 바위위에 소나무 한그루가 서있는 고사리봉(455m)을 지나 300여m를 내려서면 나타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지맥이다. 논골 고개와 367봉을 지나면 왼쪽으로 대영 골프장이 내려다보이고, 골프장 너머로 충주 시내가 펼쳐진다.
351봉을 내려서면 왼쪽에서 올라오는 임도가 이곳에서 끝이 난다. 임도의 절개지를 치고 오르면 정상부가 평평한 376봉이다. 정상에서 150여m를 가면 능선이 분기되는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진행하여 411봉에서 지맥은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334봉에는 오래된 2기의 묘지가 있고, 왼쪽으로 계곡에는 아래 파소에서 연결된 시멘트길이 보인다. 9촌 조카가 살던 파소 마을은 첩첩산중이라, 대처로 나가려면 대소원이든 충주든, 삼십리 길을 걸어야하는 하늘아래 첫 동네가 바로 이곳이다.
파소에서 올라오는 시멘트길이 비포장 수례길로 바뀌고, 수레길을 따라 지맥의 마루금으로 올라선다. 329봉에는 청주최씨 묘가 있고, 바위가 있는 360봉에서 1시 방향으로 휘어져 내린다. 굴곡이 심한 마루금에서 등로 이탈에 주의가 필요하며 415봉 정상에서 두 지맥이 분기된다. 동릉은 중부내륙고속도로 장고개 터널 위와 산우물 마을 북쪽 고개를 지나 소대기산을 세우고 요도천이 달천에 합수되는 두 물머리로 이어지고, 이보다 긴 지맥은 고양봉(525.7m)과 풍류산(360m)을 세우고 하소마을 달천에서 그 맥을 다한다.
분기봉에서 풍류산으로 가는 지맥은 왼쪽으로 돌아 454봉에 오르면 작은 바위들이 모여 있는 쉼터에서, 고속도로와 충주 시내가 내려다보인다. 차곡차곡 포개진 산자락에는 깊고 깊은 계곡이 산모퉁이를 돌아가고 대처로 나아가는 길이 그 뒤를 따른다. 3각점(412재설, 76.9 건설부)이 있는 485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오기와 인내가 필요하다. 불볕더위가 쏟아지는 폭염 속에서 비알 길을 오르는 발걸음이 점점 무뎌지고, 둔기로 얻어맞은 듯, 몽롱해지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안간힘을 쏟는다. 정상에서 200여 m를 진행하면 스릴 넘치는 암릉길이 전개된다. 전망대바위를 내려서면 파란지붕의 석재공장이 내려다보이고, 태산보다도 높아 보이는 고양산(525.7m)이 손짓을 한다.
공장을 왼쪽에 두고 진행하면 공장에서 올라오는 비포장 고갯길을 만난다. 고개를 가로질러 286봉을 넘어 절개지 위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오면 6번 군도가 지나는 말구리 고개에 도착한다. 불정면 외령리 산지촌에서 이류면 탄용리 숫골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에는 표지석이 있다. 고개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민가가 보이고, 도로를 건너 절개지 배수로를 따라 완만하게 올라선다. 267봉, 266봉을 지나며 고양산(525.7m) 오름길이 시작된다. 고도차가 심한 고양봉은 전면에 전위봉(503m)을 앞세우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정상에 2기의 묘가 있는 상봉에 올라서면 전면으로 고양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고양봉(525.7m) 정상에는 삼각점(439재설. 76,9 건설부)있고, 지맥은 오른쪽으로 진로를 바꾼다. 고도차가 100여 m나 되는 벼랑길을 내려서면 묘지들이 자리를 잡고 곧바로 솔고개 안부에 내려선다. 완만한 오름길을 따라 앞산(446.5m)에 올라서면 지도상의 삼각점을 찾을 길이 없다. 380봉과 396봉을 지나 가족묘지가 나오는 곳에서 오른쪽(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터지는 조망의 마루금에 월악산 영봉이 개구리 머리처럼 꼿꼿하게 치켜들고, 남쪽으로 대간치를 오르는 도로가 산굽이를 파고든다.
52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도로 절개지에서 철조망 때문에 내려서기가 만만치 않아, 좌우를 살펴보는 중에 절개지 사이로 사람하나 빠져나갈 공간이 있어 525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대간치로 내려선다. 괴산군 불정면 목도에서 충주시 달천으로 연결되는 고개 마루에는 충주시 이류면 도로 표지판이 있다. 절개지 철조망을 왼쪽으로 돌아 능선으로 오른다. 삼각점(충주24 1982 복구)이 있는 486.2봉에서 왼쪽 능선은 충주시 이류면과 괴산군 불정면이 시경계를 이루고, 지맥은 오른쪽 능선이다.
475봉에서 100여m 가서 왼쪽으로 내려서는 비알 길은 계곡으로 한 없이 내려가고, 전면에 보이는 산이 점점 하늘로 솟아오른다. 양쪽으로 벼랑 같은 높은 산이 협곡을 이루고 있는 지문령에는 낙엽 속에 덮인 돌무더기가 성황당의 흔적을 말해주고, 그 옛날 많은 사람들이 넘나들던 표시로 당산나무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248봉과 288봉 고만고만한 봉우리들이지만, 오르고 내리는 다리품에 기력이 소진한다.
288봉에서 오른쪽으로 불정면 목도와, 음성천과 달천이 합류되는 합수점이 내려다보인다. 286봉과 292봉을 지나면 돌탑이 있는 풍류산(350m) 정상이다. 돌탑 주변으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나무들을 베어낸 공터에는 태극기가 있고, 주변경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로프가 걸려있는 하산로를 내려서면 좌우로 등성이를 사이에 두고 묘지들이 군락을 이루고, 동물이동통로와 비슷한 다리가 보인다. 이곳에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진행하면 명경지수와 같은 달천강이 마을 앞으로 흐르고, 세월을 비껴간 정체된 시골마을이 마음의 고향을 찾아온 듯, 평화롭기만 하다.
시멘트 길을 따라가면 九老詩仙停(구로시선정)의 현판이 걸려있는 정자가 반겨주고 옆에는都拜所(도배소)라 새긴 돌비석이 있다. 9명의 신선들이 정자에 앉아 시한수를 읊는다는 설정은, 각박하고 삭막한 우리의 가슴속에 한줄기 빛이 되어 복음을 전해준다. 마루금은 무등고개와 116봉을 지나 달천으로 내려서며 가섭지맥의 마침표를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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