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구간 : 대안리고개(320m) - 현암 삼거리 / 23.4km
추수가 끝난 들녘에는 공허로운 바람만 불어오고 청원상주간 고속도로에서 회북나들목을 빠져나와 571번 지방도로를 타고 쌍암재를 넘어 내북면 직전에서 우회전하여 내북휴게소를 지나면 대안리 고개가 된다. 고개 마루에서 리본들의 환영을 받으며 370봉에 올라서면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말없이 반겨준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깔딱 고개를 치고 오르면 암벽지대가 나오고 490봉에 오른 후, 왼쪽의 능선을 따라 내려서는 안부에서 오른쪽으로 한화공장을 내려다보며 참호가 있는 봉우리로 올라선다.
秋風落葉(추풍낙엽)이라. 곱디고운 단풍도 소슬바람에 낙엽되어 흩날리고, 발걸음에 차이는 낙엽이 가을의 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능선 좌측으로 아곡리 마을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법주리 양지마을이 가늠된다. 전면의 왼쪽으로 구룡산을 바라보며 390m의 고개를 넘어 무명봉에 오르면 전망이 아주 좋다. 불꽃같은 속리의 주능선도 이제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물 한 모금 마시며, 주위를 관망한다.
대안리 고개를 출발한지 40여 분만에, 450봉의 정상을 목전에 두고 “금적지맥분기점”이라는 하얀 팻말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지점에 도착한다. 무심코 지나쳤다가는 큰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이곳에서 정맥은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가파르게 비알 길을 내려서야 한다.
한남금북정맥에서 처음으로 분기하는 금적지맥은 직진하여 450봉정상에 올라선 후, 왼쪽으로 선회하여 구룡산(549m), 노성산(516m), 거멍산(494m), 덕대산(573m), 금적산(652m), 국사봉(475m)을 거쳐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5.5km의 산줄기를 말한다. 금적지맥과 한남금북정맥의 아늑한 보금자리에 보은들녘이 자리 잡고 황금들녘을 적시는 보청천이 대청댐으로 흘러간다.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비알 길을 내려서면 이곳이 중요한 갈림길이라는 표시로 무수히 많은 리본들이 바람결에 나부끼고 모처럼 시야가 트이며 쌍암재 주변의 지형들과 앞으로 진행할 정맥의 주능선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과실수를 심은 널찍한 묵정밭을 지나면 290m의 쌍암재에 도착한다. 이곳은 청원상주고속도로를 빠져나온 571번 지방도로가 내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조금 전 대안리 고개를 가면서 지나친 곳이다.
쌍암재를 건너 이어가는 정맥에는 칡넝쿨이 제 세상을 만나듯, 나무들을 사정없이 휘감아 목을 조르고 있으니, 이곳에도 弱肉强食(약육강식)의 자연법칙이 존재하는 현장으로 머지않아 온 산천이 칡넝쿨에 점령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잡초가 뒤엉킨 구릉지대와 낙엽송 군락지를 지나면 음지마을에서 올라오는 시멘트소로와 만난다. 서서히 주릉선을 향해 고도를 잡아가면, 가운데 제단이 마련된 가족 묘지를 지나 새터고개(330m)에 도착하고 양지마을에서 황토주택으로 올라오는 시멘트도로와 만난다. 정맥꾼들에게는 포장된 도로보다는 낙엽이 풀풀 날리는 오솔길을 걸어야 제멋이 난다.
전면에 보이는 500고지를 향하는 숨결이 가빠오고, 한동안 진땀을 흘리며 정수리에 올라서면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타고 흐른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5분간 올라선 525봉은 보은군 회북면과 내북면, 청원군의 가덕면이 모이는 3개면 경계봉이다. 또한 이곳에는 최근에 설치한 정상석에 백두대간 단군지맥이라 표기하고 뒷면에는 천부경을 써놓았다. 이곳이 바로 팔봉지맥의 분기점이다.
쌍암재를 사이에 두고 금적지맥과 팔봉지맥이 갈리고 보은군과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팔봉지맥은 분기점에서 서진하는 능선이 청주와 상주를 잇는 25번국도 피반령(360m)을 지나 봉화봉, 용덕산(243m), 팔봉산(292m), 은적산(206m), 망덕산, 출동산(148m), 황우산(193m)을 지나 금강까지 45km의 낮은 구릉지대를 이어간다. 팔봉지맥에서 발원한 무심천은 청주 시내를 지나 미호천과 만나 금강으로 흐른다.
팔봉지맥분기점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염주 알을 세어 넘듯, 정수리들을 넘나들지만 고도차가 크지 않아 편안한 발걸음에 낙엽 밟히는 소리가 경쾌하다. 잡석이 많은 안부를 지나 우측으로 철사 줄을 따라 올라가면 야트막한 참호가 있는 593봉이고, 왼쪽으로 내려가 안부를 건너 올라가면 오늘의 최고봉인 602봉이다. 삼각점이 있는 602봉은 조망을 가리는 잡목으로 실망스럽다. 602봉에서 완만한 비알 길을 한동안 진행하여 묘지2기를 지나 525봉, 545봉을 지그재그로 넘어 580봉에 올라선다.
내려서는 안부에는 바위들이 즐비하고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돌무덤이 있는 살티재(438m)는 보은군의 염둔리와 청원군의 추정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추정리쪽으로 내려서면 심곡사가 있다. 살티재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하게 이어지는 오름길을 따라 475봉을 돌아가면 오른쪽으로 화전리가 내려다보이고 521봉에 올라 잡목이 무성한 숲길을 무작정 지루하게 걸어간다. 암갈색의 암벽지대를 넘어 팻말에 숫자를 써놓은 참호를 지나 헬리포트자리가 선명한 헬기장을 넘어가면 바로 국사봉(587m) 정상에 도착한다.
동대문상가 새마을 산악회에서 스텐판에 새긴 이정표와 삼각점이 있는 정수리는 정맥을 이어가는 리본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갈림길인 정상에서 왼쪽으로 내려서서 완만한 능선을 따르게 된다. 521봉에서 군 경계 능선을 버리고 좌측의 비알 길로 내려서면 구절양장이 따로 없이 심한 굴곡으로 잠시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 키 작은 자작나무 숲을 지나며 좌우로 방향을 돌리며 잡목을 빠져나오면 운치 있는 노송의 숲 사이로 시멘트 포장길이 나타난다. 시멘트 길을 따라가면 관정사라고 쓴 하얀 간판과 4차선 도로인 32번국도가 지나는 추정재(250m)가 나오고 옆으로 융창공예사 앞으로 도열해있는 장승들이 반가이 맞아준다.
미원석물과 주유소사이로 들어가면 주유소 뒤로 옛날 도로를 만난다. 농기계 창고 앞에서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변압기달린 전주 앞에서 오른쪽의 전원주택단지로 들어가 마지막집 흰색 펜스에 달린 표지기를 따라 들머리가 시작된다. 추정재 절개지로 부터 연결되는 완만한 능선에 올라 오른쪽으로 진행하면 스산한 가을바람에 독야청청 푸른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좌측사면으로 올라 등로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 관정리 머구미 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골프연습장도 보인다. 소나무 숲을 벗어나면 활엽수와 잡초가 시야를 가리고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로를 찾아가는 길에 고만고만한 봉우리를 넘나들며 왼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다 오른쪽으로 올라서면 487봉이다. 자작나무가지에 걸린 표지판은 준희님의 정성으로 우리에게 밝혀주는 등불이 된다.
487봉에서 6시 방향 즉 남쪽으로 기수를 돌려 내려가면 포근하게 깔린 낙엽위로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넓찍한 등산로는 산책로 수준으로 완만하여 모처럼 피곤한 몸을 추 수릴 수 있는 구간이다. 오른쪽 사면 길로 들어서면 낙엽송군락지가 나온다. 납골 묘지를 지나 산정말고개(360m)에 도착한다. 낭성면 호정리와 추정리를 오가는 산정말고개는 지금도 두 마을의 왕래가 빈번한 듯, 비포장이지만 넓찍한 도로가 연결되어있다.
정면의 절개지를 치고 오르면 잡목이 무성한 숲길을 따라 낙엽송이 등로를 따라 붙는다. 정맥의 산등성이 오른쪽으로 상전 가울 마을이 그림같이 내려다보인다. 안부고개에서 임도수준의 수레 길을 따라 무명봉에 올라서면 정맥은 왼쪽으로 펑퍼짐한 안부를 지나 비슷한 높이의 무명봉(485m)에 올라선다. 이곳은 남일면과 낭성면의 경계지점으로 왼쪽은 백족산(412m)으로 가는 길이고 정맥은 오른쪽의 사면길로 내려서야한다.
산정고개에서 1시간이상 지루한 산행 끝에 올라선 선두산(527m)은 무성한 잡목으로 시야를 가리지만 표지판과 삼각점, 수많은 리본들이 홍수를 이룬다. 오늘의 구간이 S자형보다도 심한굴곡에 동서남북으로 방향을 바꾸며, 물길 피해가는 길이 우리네 인생살이와도 같아서 미로 속을 헤치며 구부러진 길을 돌아가지 않는가? 급하게 내려딛는 비알 길을 지나 돌무더기가 있는 안부가 안건이 고개라고 한다. 무명봉을 넘고 넘어 525봉에 도착하면 청주시에서 걸어놓은 산불조심 현수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청주시의 경계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봉우리인 선도산(547m)에 오른다. 군통신시설과 한남금북정맥 속리산과 칠장산 방향을 표기한 아담한 오석의 정상석 뒷면에는 청주 제일봉이라고 쓰여 있다. 선도산 정상은 넓은 공간이 있어 쉼터로서 안성맞춤이다. 선두산과 선도산, 이름도 비슷하고 안건이 고개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는 두산의 높이도 비슷하니 오랜 세월 정을 나누는 의좋은 형제와 같다.
시야를 가리는 잡목이 끝까지 괴롭힌다. 북쪽으로 내딛는 정맥은 무명 봉을 몇 차례 넘은 후에야 전방의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현암 삼거리의 철탑을 겨냥하며 우측의 소나무조림지를 지나 목적지인 현암삼거리(수레넘이고개)에 도착한다. 현암리 노인경노당 앞에는 220년의 만고풍상을 지켜온 느티나무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자리지킴을 하고 있다.
제 4 구간: 현암삼거리 - 질마재(344m) / 23.4km
이번구간은 청주시를 바라보며 돌아가는 곳이라, 중부고속도로에서 서청주 나들목으로 내려서서 512번 도로를 따라 낭성면을 거쳐 미원으로 가는 현암 삼거리에 도착한다. 청주와 목련공원의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청주쪽으로 200여 m를 진행하다 우측으로 절개지를 올라 낮은 능선을 따른다. 창원황씨 묘3기를 지나 철탑이 있는 곳에서 정맥은 왼쪽으로 2번 방향을 바꾸며 512번 도로로 내려선다. 현암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진행해도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도로를 건너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왼쪽의 능선으로 올라가면 은행장 성주이씨 묘를 만난다. 묘비 뒷면에는 도연명의 애통 시 의만가사(擬輓歌辭)가 적혀 있는데,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죽은 이를 위하여 부르는 노래 / 陶淵明
생명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 있으니 일찍 죽는다고 명 짧은 건 아니로다. 어제 저녁에는 다 같이 사람이다가 오늘 아침에는 귀신 명단에 올라있네. 혼은 흩어져 어디로 가버리고 마른 신체 빈 나무에 부치고 있나? 아이들은 아비 찾아 울부짖고 친구들은 나를 잡고서 곡 하누나. 이해득실을 다시는 알지 못하고 시시비비인들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천 년 만년 지난 후에는 그 누가 영화와 치욕을 알랴? 다만 한스러운 건 살아생전에 술 흡족하게 마시지 못했음이라.
390봉에 올라 능선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비알 길을 내려서면 망자들의 안식처인 목련공원묘지가 펼쳐진다. 공원묘지를 걸어가며 조금 전 도연명의 애통시를 回想(회상)해본다. 홀로 서있는 소나무와 문화류씨 묘를 지나면 공원 맞은편으로 지나온 선도산과 490봉이 건너다보인다. 산성고개를 넘어와 것대 마을에서 현양원공원묘지로 들어가는 도로를 건너고, 이동통신시설이 있는 비알 길을 올라가면 활공장이 있는 것대산(485m)정상이다.
청주시민들의 레저 활동으로 각광을 받는 활공장은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으로 모처럼 가슴이 탁 트인다.청주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정자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산성. 것대마을 3km의 이정표를 뒤로하고 주차장으로 내려와 산성 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복원한 봉화대를 만난다. 건너편으로 상당산성이 보이고 군인들의 열병식처럼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춘 나무들의 사열을 받는다.
청주시민들의 휴식공간인 상당산성의 등로에는 갈림길마다 이정표를 세우고 상봉재(396m)에서 로프와 나무계단을 오르면 “아름다운 청년 박주만의 추모비”가 있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12명의 새 생명을 구한 숭고한 마음씨에 옷깃을 여민다. 나무의자가 놓인 봉우리를 넘어 내려가면 길이 43m의 출렁다리 현수교 가 있다. 출렁다리에서 청주시 상당구와 오창 신도시가 조망되고, 왼쪽으로 동물원 유원지가 내려다보인다.
산간오지를 헤매다 저자거리로 나온 듯, 많은 인파속에서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낮은 봉우리를 넘어가면 지나온 “것대산 2.7km, 남문0.6km, 서문1.2km” 이정표가 반겨주고, 잠시 후 남문에 도착한다. 남문산성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끝자락에 우암산(338m)이 있고 그 뒤로 청주시내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암문을 통해서 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상당산성은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하여 청주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이며, 특히 봄에는 철쭉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청주 시내를 비롯하여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산성을 거니는 상춘객들로 붐빈다고 한다. 또한 한남금북정맥의 절반이 되는 이곳은 금강과 한강의 분수령으로 고구려, 백제, 신라가 접경을 이루며 분쟁을 일삼던 곳으로 상당산성(사적 212호)의 유래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가있다.
[상당산성] 상당"은 백제시대에 청주 일대를 일컫던 지명으로, 상당산성도 백제의 상당현이란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또 하나는 <삼국사기 열기열전>에 적힌 김유신장군의 셋째 아들 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상당산성 고금사적기>에는 김유신 장군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이 쌓았다는 기록이 있다.
지금의 상당산성은 임진왜란 중이던 조선 선조 29년(1596년)에 수축된 이후, 숙종 42년(1716년)에서 45년까지 3년간, 청주병사 유성추의 감독 하에 대대적으로 성벽을 개축하였다. 그 후에 여러 번의 수축이 이루어져 산성 내의 여러 시설인 관아사ㆍ군기고ㆍ창고ㆍ수고ㆍ장대ㆍ포루 등이 완성되었다. 현재 상당산성에는 동문(진동문)ㆍ서문(미호문)ㆍ남문(공남문) 등 3개문과 동암문ㆍ남암문 2개 암문, 치성 3개 소, 수구 3개소가 있는데, 1977년부터 1978년까지 이뤄진 정비공사로 동ㆍ남문루와 서문이 재건되었고 1992년 말에는 동장대도 재건되었다.
예전에는 성 안에 다섯 개 연못과 여러 개의 샘이 있었고, 사찰도 세 곳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다섯 개의 연못이 모두 합쳐져 큰 저수지가 되었다고 한다. 산간벽촌으로 남아있던 마을을 지난 1982년과 1983년에 청주시가 사적지로 지정하면서 마을 전체를 한옥기와집으로 개량하여 전통 한옥마을로 바꾸어 보존하고, 서울의 남한산성과 같이 유원지로 변신한 이곳에는 음식점들이 성시를 이루고, 매년 4월이면 시민의 날에는 국운융성ㆍ청주발전ㆍ가정의평화를 기원하는 "성 돌이 행사"로 역사의 산교육장이며, 시민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청주시 자료>
산성을 돌아가며 뒤 돌아보면 지나온 것대산 봉수대가 멀리보이고,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산성을 굽어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서문에 도착한다. 현판에는 미호문(彌虎門)이라 쓰여 있다. 산성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일품으로 청주시가지와 오창 신도시, 증평의 너른 평야를 배경으로 두타산(508m)이 병풍처럼 산맥을 이루고, 청주의 관문인 국제공항도 볼 수가 있다. 평탄하던 산성 길도 암릉 봉우리를 넘어서며 좁아지고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진다.
울창한 숲길을 따라 산성과 동행하여 올라서면 상당산(491m) 정상이다. 정상엔 2003년 재설된 미원24호의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고 국립지리원 측량안내문이 있다. 무심코 산성을 따르다 정맥을 이탈하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정맥은 상당산에서 북동쪽으로 맥을 이어가지만 바로 진입할 수 없으니 동암문에서 산성 길과 이별을 하고 정맥의 능선으로 합류한다. 호젓한 능선으로 10여분 진행하면 “숲속의 둥지와 등산로” 이정표와 이티재까지 8km에 5시간이 소요된다는 안내문이 있는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고도를 낮추어 작은 돌탑이 있는 안부를 넘는다.
청주시를 조망하며 돌아보는 상당산성 코스는 우리선조들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으로 정맥을 이어가는 산 꾼들에게 새로운 의지를 불태운다. 동북쪽으로 진행하는 정맥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로에서 “숲속의 둥지와 등산로” 이정표만 따라가면 호젓하고 사색을 즐길 수 있는 아주 편안한 길이 열린다. 농장주인의 출입금지 경고판을 지나 475봉을 올라선 후, 1시간 넘게 길동무를 하던 이정표와 이별을 하고정맥은 우측 능선을 따른다. 앙상한 가지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마을은 우측으로 안동뱅이 마을이고 왼쪽으로 덕암리의 너른 분지에 주성대학과 종합운동장이 보이고, 당산리 소류지 아랫마을에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사저와 미술관이 있다고 한다.
인근에서 가장 높은 인경산((582m)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사면을 돌아 내려서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반겨주는 임도(390m)에 도착한다. 납골당을 뒤로하고 작은 소나무가 있는 능선에 올라 참호지대를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이티봉(486m)이다. 너른 공터가 있는 정수리에서 청주와 내수읍 방향으로 조망이 시원하다. 완만한 능선을 이어가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소나무 조림지대가 나오고 2차선 포장도로인 이티재에 도착한다.
증평 초정리와 미원면을 잇는 511번 지방도로인 이티재(360m)에는 등산로가든 과 휴업중인 이티봉 주유소가 있다. 뒤편으로 이티봉 약수와 오골계농장의 펜스왼쪽으로 오르면 쉼터에 운동시설이 있고, 구녀성 방향의 이정표와 오른쪽으로 대신리 인경산 비알에는 골프장공사가 한창이다. 올라선 구녀성터엔 묘지가 자리 잡고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멋진 노송이 묘지를 감싸고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운동시설과 정자, 돌무더기와 표지석까지 있는 구녀산(484m)정상에는 구녀성의 유래간판이 있다.
구녀성: 신라시대의 축성으로 추정되는 이곳 산정에 아들 하나와 아홉 딸을 가진 홀어머니가 있었다. 이들 남매는 모두 장사였는데 항상 불화가 잦아 마침내는 생사를 건 내기를 하게 되었다. 내기인 즉, 딸 아홉은 산꼭대기에 성을 쌓는 일이고 그 사이 아들은 나막신을 신고 서울을 다녀오는 것이었다. 내기를 시작한지 5일이 되던 날 어머니가 상황을 살펴보니 성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 가는데 서울 간 아들은 돌아올 줄 몰랐다. 이에 내기에 지게 되면 아들이 죽게 될 것을 생각한 어머니는 가마솥에 팥죽을 끓여 딸들을 불러 모아 팥죽을 먹으며 천천히 해도 되리라 했다.
뜨거운 팥죽을 먹고 있는 동안 아들은 부르튼 다리를 이끌고 피를 흘리며 돌아왔다. 그리하여 내기에 진 아홉 딸은 성 위로 올라가 몸을 던져 죽고 부질없는 불화로 아홉 누이를 잃게 된 동생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돌아올 줄 몰랐다. 어머니도 남편의 무덤 앞에 아홉 딸의 무덤을 만들어 놓고 여생을 보내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 때 당시 죽은 아홉 딸과 부모의 묘는 이 성안에 2줄로 배열된 11기의 묘라고 전해진다.
구녀산 정상에서 소나무가 있는 능선으로 완만하게 진행하여 벤치가 있는 곳을 지나면 457봉이다. 이곳에서 정맥은 오른쪽으로 갈려지고 왼쪽으로 분기하는 능선이 초정약수로 이어진다. 지하 100m의 석회암층에서 하루 약 8,500ℓ 정도 솟아나는 무균의 단순 탄산천으로, 인체에 유익한 각종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어 노쇠한 세포를 자극하여 몸 안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혈압을 정상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라듐 성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이 성분 때문에 레몬 향기와 함께 후추처럼 톡 쏘는 맛이 난다고 하며, 초정(椒井)이란 지명도 '후추처럼 톡 쏘는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세계광천학회에서는 미국 샤스터 광천, 영국의 나포리나스 광천과 함께 초정약수를 세계 3대 광천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동국여지승람〉·〈조선왕조실록〉 등에 세종과 세조가 눈병·피부병·속병을 고쳤다는 기록과 고혈압·위장병·당뇨병·안질·피부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457봉에서 살짝 내려서면 모진생명 이어가는 소나무의 끈질긴 생명력에 바위도 틈새를 벌리고, 솔향기 그윽한 오솔길을 지나면 1번 국도가 지나는 분저치(330m)에 도착한다. 율리 웰빙타운에서 유원지를 만들며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신설한 2층의 정자(좌구정)는 주위를 바라보는 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왼쪽으로 회평저수지가 내려다보이고 왼쪽은 증평읍이요 오른쪽은 청원군의 미원면이라. 미원면 쪽으로 진행하면 인삼밭이 있고 들머리에는 한남금북정맥 이정표(좌구산 4km)가 반갑게 맞아준다.
해주최씨 묘 옆으로 올라 완만한 고도를 올라가면 간간이 표지기도 보이고 450봉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안부를 건너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530봉 정상이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휘어지고 전면으로 좌구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비슷비슷한 봉우리를 넘나들며 내려다보이는 계곡에는 방고개를 오르는 임도가 九折羊腸(구절양장)의 아슬아슬한 구비로 산 비알을 파고든다.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면 배짱 좋은 승용차와 찝차들이 주차된 방고개(360m)에 도착한다.
증평 산악회에서 세운 이정표와 직사각형의 쉼터가 있는 고개 마루에는 비포장도로가 위험하여 차단기로 차량의 통행을 제한하고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낙엽송 그늘아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침대도 있고 바위지대와 소나무가 운치있는 완만한 능선을 오르면 의자가 2개 놓여있는 510봉 정상이다. “방고개 0.68km, 좌구산 1.26km, 주차장1.72km”의 이정표가 있다.
수십 년 된 소나무들이 능선을 따라 군락을 이루는 530봉에 오르면 의자 2개가 길손을 기다리고 갈림길에서 오른쪽이 정맥이다. 낙엽송이 울창한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정맥을 이어가는 고단한 산 꾼에게 전위봉의 돌탑이 반겨준다. 속리산을 떠나온 뒤로 가장 높은 곳을 향하여 비지땀을 흘리며 올라선 정상은 청원군에서 가장 높은 좌구산(657m)이다. 검은 오석의 아담한 정상석과 이정표가 있고 억새밭에 숨어있는 삼각점도 확인을 한다.
좌구산에서 1.9km의 거리를 두고 있는 세작골산(560m)은 능선갈림길이다. 증평군이 괴산군에서 分 郡이 되기 전에는 청원군과 경계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3개 군의 접경 지역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3km를 내려서면 질마재 고개가 된다. 하지만 200여 m의 고도를 내려서는 벼랑길은 한겨울의 빙판길에서 주의가 요망된다. 2차선 포장도로인 질마재(334m)는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에서 문당리를 넘는 592번 지방도로가 된다. 고개 마루에는 국토해양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설치한 수준점이 있다.
수준점이란 : 우리나라 높이의 기준인 인천앞바다 평균해면(0.0m)으로 부터의 차이를 정밀수준측량 방법으로 산출하는 지점으로 이곳 질마재의 고도를 334m로 기록하고 있다. 들머리 옆으로 최원용공적비라는 비석이 세워졌는데 질마재 도로를 확장 보수하는데 기여한 공로로 1983년에 청안면민들이 세운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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