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부 : 별밤지기
짓 굳게 쏟아지던 빗줄기도 임도에 들어서며 잦아들고, 싱그러운 햇살이 내려 쪼이는 광활한 대지위에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어 있다. 사진에 담고 가슴에 담고 몸도 마음도 꽃밭 속으로 푹 빠져든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 종주거리 14km에 5시간이 넘는 트레킹으로 난초지초 흐드러진 야생화도 싫증이 나고 장백산 캠프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낙엽송과 자작나무의 밀림 속으로 아스콘 포장길이 나타나고 그림 같은 캠프가 반겨준다. 샤워도 하고 편히 쉴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달려가지만 우리의 안식처는 그곳이 아니다. 건물 뒤로 돌아서면 여름한 철 임시로 사용하는 천막촌. 4인 1실의 천막이 20여동 숲속에 자리 잡고, 공중변소 2개에 샤워장은 가릴 곳 없는 공동 우물터. 볼멘소리로 집 나오면 고생이라는 말을 곱씹으며 거처로 기어든다.
노천 우물터에 남녀가 따로 없이 고양이 세수로 머리만 감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8명씩 둘러앉은 원형탁자에 돌아가며 차려 내는 메뉴가 입맛에 맞아 식욕이 나고, 배낭 속에 소주 팩이 나올 때마다 즐거운 웃음꽃이 피어난다. 야생화에 취한 여흥으로 백두산 캠프의 밤이 깊어만 간다.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이 깨어 밖에 나오니 하늘에서 쏟아지는 별들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은 초롱 별 초롱, 별 하나 나하나.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선한 공기, 인간들의 숨결도 미치지 못하고, 모기들도 범접하지 못하는 청정지역, 백두산의 정기를 받은 장백산 캠프가 적막 속에 잠겨있다.
촉수 낮은 가로등을 피해 숲속으로 들어서면 구름 한 조각도, 티끌 하나도 없이 은백색의 미리내(은하수)가 흐르고 있다. 해도 달도 숨어버린 어둠속에는 3대가 덕을 쌓아도 보지 못할 황홀함이여! 북극성에서 5뼘을 재어 가면 북두칠성이 반짝이고 오리온 좌, 카시오페아, 삼태성까지 은하수가 흐르는 무한의 우주 속에 기라성 같은 별들이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어린 시절 마당가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멍석위에 팔베개를 하면, 하늘에서 쏟아지던 별들의 행진곡, 남십자성을 바라보며 향수에 젖던 병영생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추억의 갈피를 들춰본다. 편안하고 안락한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면 백두산의 별밤은 상상도 못하고, 일생일대의 진기한 보물단지를 어찌 가슴속에 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불편한 잠자리에 뒤척이는 천막이 오늘의 행운을 안겨다 준 것이다.
오!!!! 황홀한 밤이여 영원 하라.
새벽 4시 기상으로 시작되는 천지 트레킹.
컵라면에 밥 말아먹고 새벽길을 가르며 달려갈 때, 자작나무가 하늘 숲을 이루고 시원한 공기가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40여 분간 곡예운전으로 서파 주차장에 도착하면 초가을의 스산한 아침공기가 온몸을 감싼다.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만주벌판의 산자락이 너울처럼 흐르고, 계곡 사이로 피어오르는 운해가 우리의 장도를 축원하는 듯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천지를 바라보며 트레킹이 시작되는 출발점에는 1,272개의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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