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석골로 다시 태어난 복계산(1,054m)
일 시: 2008년 9월 18일
장 소: 강원도 철원군 근남면, 화천군 상서면
의야 산악회
추석(9월 14일)도 지나고 추분이 코앞에 다가 왔건만 식을 줄 모르는 수은주는 30도를 오르내린다. 삼복더위를 방불케 하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독이 오른 모기떼의 극성으로 밤잠을 설치는 우리는 때늦은 오지산행으로 강원도의 철원 땅으로 향한다.
우리가 지나는 연도에는 풍년을 기약하는 벼들이 황금물결로 출렁이고 앞마당에는 고추들이 탱글탱글 영글어 가는데 뒷마당에는 바람결에 떨어지는 알 암벌어진 밤들이 우리의 동심을 자극 시킨다. 광릉 내와 내촌을 지나며 시원하게 뚤 린 고속화 도로를 따라 신나게 질주하면 어느덧 강원도와 경기도의 접경을 이루는 자등 현을 넘는다.
의야 산악회의 만물박사로 통하는 고 갑성 형님의 설명에 의하면 생활권이 의정부와 포천에 인접한 철원이 강원도에 속하고 춘천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가평이 경기도라는 행정상의 불편함을 고치기 위하여 경기도에서 오랫동안 노력을 하지만 강원도에서 유일한 곡창지대를 확보하기위한 수단으로 거부를 하기에 주민들의 불편함이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설명에 수긍을 하며 신수리를 지나 김화읍의 와수리에서 화천의 사창리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목적지가 가까워 올수록 차창을 스치는 바람도 싱그럽고 험한 산세와 속살을 파고드는 계곡이 우리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씻어 내린다. 매월동으로 접어들며 기세등등한 매월대가 창공으로 솟아오르고 한가로운 주차장에는 따사로운 햇볕이 사정없이 내려 쪼인다.
복계산의 상징이기도 한 매월대는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 선생 등 아홉 선비가 세조의 왕위찬탈에 비감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산촌으로 은거하여 소일하던 장소로 복계산 기슭 해발 595m의 산정에 위치한 깎아 세운 듯한 40m 높이의 층암절벽을 말하는데 김시습선생이 이곳에 은거한 후부터 사람들은 이 바위를 매월대라 부르고 마을 이름도 매월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김시습선생은 조선세종 16년(1434년)에 태어나서 성종24년(1493년) 59세로 세상을 떠난 조선시대 초기의 천재 기인으로서 그 나이 22세에 사육신의 참화를 듣고 비관하여 세속을 버렸으며 스스로 광인을 자처하고 걸식행각으로 도처를 방랑했는데 이곳에 잠시 은거한 것도 그의 방랑시기 쯤으로 추정을 한다는 안내문을 뒤로하고 산행이 시작된다.
잠시 후 두 갈래의 길로 나뉘는데 오른쪽으로는 임꺽정의 촬영장소인 원골계곡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의 매월대와 폭포로 가는 길을 택하여 그늘 속을 파고든다. 주차장의 열기와는 다르게 울창한 숲속에는 시원한 냉기가 온몸을 감싸 안으며 너덜지대의 날카로운 암석과 다래 넝쿨이 심신 산골의 정취를 물씬 풍겨준다. 잠시 후 왼쪽으로 매월대 오르는 갈림길이 나타나지만 오른쪽의 폭포가 있는 방향으로 들어서면 계곡을 울리는 굉음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매월 폭포가 반겨준다.
주차장에서 500m를 거슬러 오르면 만날 수 있는 폭포는 등줄기에 흥건하게 흐르던 땀방울이 순식간에 말라버리는 시원함을 무엇으로 표현하리요. 갈수기 임에도 수량이 풍부한 물줄기가 20여 m의 층암절벽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장쾌한 모습은 금강산의 구룡폭포를 연상하듯 장관을 이룬다. MBC 다모의 촬영 장소로 더욱 유명해진 이곳을 선암폭포라고도 부르는데 이끼 낀 바위사이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원시의 자연경관을 연출하는 비경이다.
떨어지지 않는 미련을 뒤로하고 층암절벽을 기어오르면 무성한 나무 사이로 매월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김시습이 세상을 등지고 탄식하며 세월을 낚던 매월대는 아홉 선비가 바둑판을 새겨 놓고 단종의 복위를 도모했다는 전설이 있지만 건너편의 산정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비지땀을 흘리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비무장지대와 가장 근접한 최북단의 산행지로 아직도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곳이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복계산은 울창한 수림이 터널을 이루고 한 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이 하늘을 뒤덮고 있어 주위를 둘러볼 전망대 하나 없이 답답함 속에 비알 길을 오르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들녘을 바라보며 열린다는 도토리가 몇 년 만에 대풍을 이루어 갈참나무와 굴참나무, 졸참나무, 상수리아래 지천으로 널려있어 산행을 뒷전으로 도토리 줍기에 여념이 없으니 이 또한 산행의 즐거움이 아닌가? 지금도 도토리묵은 우리의 입맛을 돋우는 별미이지만 보리 고개를 헤쳐오던 우리의 유년시절에는 영양보충으로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식량이었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만에 840봉의 헬기장에 이른다. 매월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길목으로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은 아니지만 주위를 둘러보며 답답한 갈증을 풀어본다. 정상은 아직도 1.2km 가파른 비알길이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고 서너 길은 됨직한 바위 벼랑을 오르면 정상이다. 가슴이 활짝 열리는 정상에는 하얀 대리석에 검은 글씨의 표지석이 자리 잡고 우리 모두 도장 찍기에 분주하다.
한북정맥의 장쾌한 능선
휴전선에서도 가장 근접한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 또한 거칠 것이 없고 한 반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리고 그 사이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13개의 정맥들이 동서로 산굽이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강 이북을 아우르는 한북정맥(구 광주산맥)이 금강산의 추가령에서 시작하여 서해의 장명산까지 수많은 산들을 일구며 280여 km를 뻗어 내리지만 애석하게도 조국의 분단으로 북녘의 110km와 적근산과 대성산에 이르는 휴전선의 남쪽 구간마저도 출입이 금지되어 수피령(750m)에서부터 출발을 하게 된다.
쑥 부쟁이
비목의 음률이 흐르는 휴전선의 산하
복계산과 연결된 능선을 따라 촛대봉과 복주산(1152m)을 지나 광덕산과(1,046m) 백운산(904m) 운악산(936m)을 거쳐 도봉산(716m)까지 이어지는 주능선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북녘으로 휴전선을 바라보며 조국 수호를 위하여 숭고하게 산화한 전우들의 명복을 빌며
-한 명희 詩. -장일남 曲의 비목(碑木) 을 한수 바친다.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녁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먼 고향 초등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 산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 달 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산행의 즐거움은 누가 뭐래도 먹 거리가 아닌가? 아내의 정성이 가득담긴 보따리가 풀어지며 모두가 군침을 흘리고 조롱박에 넘치는 막걸리 또한 일품이라 권 커니 자 커니 한 순배 돌때마다 웃음꽃이 만발이라 이 아니 좋을 씨고.
하 산로를 따라 내려오는 벼랑에는 가을꽃의 전령사인 쑥부쟁이가 연한 보랏빛의 잎 새에 샛노란 꽃술을 활짝 피워 올리며 애절한 하소연을 하고 있으니 아주 어려웠던 시절 동생들의 먹 거리를 위해 쑥 나물을 캐러 다니던 대장장이네 11남매의 큰딸이 어느 날 발을 헛디뎌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다. 그 자리에 피어난 꽃을 동네사람들이 쑥을 캐러 다니는 불쟁이(대장장이)의 딸이란 뜻으로 쑥부쟁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하니 촌색시의 수더분한 쑥부쟁이가 우리의 시선을 살며시 사로잡는다.
가파른 비알 길에는 비수와도같이 날카로운 돌들이 발길을 부여잡고 달콤한 대래열매에 푹 빠져 발걸음이 마냥 느려진다. 시원한 계곡물은 뼈가 저리도록 차디차고 청석 골을 재현한 임꺽정의 본거지는 20여 채의 초가와 너와집이 허물어진 채 흉물스럽지만 역사의 고증을 위한 산채로 관광의 명소가 되었으니 복계산의 매월대와 함께 우리의 가슴에 아련히 자리 잡는다.
복계산의 산행은 3개의 코스가 있지만 30여도가 넘는 무더위를 감안하여 가장 짧은 코스를 택하여 원점회귀 형으로 6km에 3시간의 산행으로 만족을 하고 다음을 기약하며 오늘의 산행도 마감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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