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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천하절경 조경동 계곡

                                       천하절경 조경동 계곡

 

 

일시 : 2008년 8월 21일

장소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1리

방학동 의야 산악회

 

 

 


지루한 장마도 물러가고 삼복더위의 폭염 속에 산으로 바다로 떠나는 피서 인파로 고속도로도 북새통을 이루고 수은주도 연일 35도를 오르내린다. 삼복더위에는 계곡산행이 제격이라 의야 산악회에서도 강원도 방태산의 아침 가리골로 행선지를 정하고 회원들에게 일일이 확인전화를 하는 총무님의 상냥한 음성을 들으며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처서가 임박한지라 아침저녁으로는 제법 선들매가 불어오고 한 달에 한번 씩 만나는 반가운 얼굴들이 그리워 새벽 같이 짐을 꾸리고 동성웨딩홀 앞으로 달려간다.

 

 

 


집을 떠난다는 자체만으로도 즐겁고 십년은 젊어진 듯 웃음꽃이 피어나며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산악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아침도 해결했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무엇인가? 철정검문소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내촌을 지나면 가마봉(926m), 소뿔산(1,122m), 가마봉(1,191m), 백우산(1,099m)으로 이어지는 영춘 지맥이 고산준령의 마루 금을 이루며 비좁은 협곡의 아홉 사리 고개를 넘어서면 비알 밭이랑에는 옥수수가 풍성하다.

 

 

 

 


한 여름 뙤약볕 아래서 구슬땀 흘리며 가꾸어온 고랭지 채소와 고추, 더덕 밭이 우리의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며 무공해 산지에서 산도 푸르고 하늘도 푸르고 우리의 마음도 푸르다. 래프팅으로 유명한 상남을 지나 31번 국도를 따라 달려가는 차창으로 보이는 내린 천의 비경에 흠뻑 취해 탄성을 지르며 현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태 천을 거슬러 오른다.

 

 

 

 

 

 


드디어 도착한 진동2리 갈 터 마을. 너른 주차장에는 썰물처럼 빠져나간 피서지로 한가롭기 그지없고 마을 앞으로는 시원스런 강물이 흘러가지만 우리의 행선지가 저 강을 건너야 한다는 설명에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길을 건너야하는 신고식으로 산행이 시작되고 음침한 계곡으로 들어서면 지난번의 장마로 부유물질이 높다란 나뭇가지에 걸려있으니 이번 계곡산행이 험난한 여정임을 예고해준다.

 

 

 

 

 

 

 

오십 명의 일행 중에 강을 건너온 20여명이 신 대장을 앞세우고 계곡을 거슬러 오르지만 집채만 한 바위들이 계곡을 가로막아 소를 만들고 우렁찬 굉음소리가 진동을 하며 등산로가 유실된 사면 길에서는 물속을 헤쳐야하는 오지산행이 시작된다. 샌들을 챙겨 오라는 설명은 들었지만 비수같이 날카로운 돌조각 위를 걸어가는 곡예 산행으로 신발 끈이 떨어지지 않을까 지레 겁이 나서 엉거주춤 비틀걸음으로 물속을 드나든다.

 

 

 

 

 

 


인간들의 발자취가 묻어 있지 않은 곳.  현대 문명과는 동떨어진 자연에 가장 가까운 원시림 속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속살을 드러내고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발걸음이 마냥 느리기만 하다. 급류 속에서 잠시라도 방심을 한다면 나뒹굴기 십상이라 신경이 곤두서는데 가는 여름이 아쉬운 듯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매미소리로 콩알만 하게 오그라든 간을 쓸어내리는 우리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흔들어 놓는다.

 

 

 


조경동의 원래 이름은 아침가리로, 한자로 표기하면 아침 조(朝), 밭갈 경(耕) 자를 써서 조경동(朝耕洞)이라 부르는데 아침가리란 산이 높고 험해서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농사지을 땅이 적다는 뜻으로 사람이 살아가기에 척박한 첩첩산중이다. 골이 시작되는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갈 터 마을부터 시작해 끝이 나는 백두대간 주능선까지 오르막을 느낄 수 없는 완만한 경사의 계곡 길은 물길 따라 쉬엄쉬엄 걷기에 딱 좋다. 하지만 오지를 찾아가는 피서객의 발길도 미치지 못했는지 계곡의 바위틈에도 그 흔한 휴지조각 하나 없이 맑고 깨끗한 옥수가 흘러넘치고 있으니 발을 담그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손을 씻는 것조차 미안스럽다.

 

 

 

 


방태산이라면 개인약수가 있는 미산리쪽을 생각하게 되지만 진동리쪽의  조경동 계곡은 일반인들의 발길이 미치지 못하는 청정지역으로 방동리의 아침가리와 결가리, 적가리, 진동리의 연가리를 합해 4가리라 하며, 정감록에서 말하는 이른바 피장처(숨어살기 좋은곳) 20군데에 속하는 오지로 구룡덕봉(1,388m) 기슭에서 발원하여 20㎞를 흘러 방태천으로 들어간다. 이 정감록을 믿고 평안도나 함경도의 사람들이 찾아들어, 한때는 조경동 안에 수백 명의 화전민이 살았지만 울진, 삼척 무장공비사건 뒤로 모두 소개되고 두 가구의 농가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상류에 이렇듯 민가가 없기에 조경동 물은 유달리 깨끗한 것이다.

 

 

 


참고로 조경동의 지세를 살펴보면 천혜의 비경이라는 표현이 부족함이 없는 오지로 구룡덕봉(1,388m), 응복산(1,150m), 가칠봉(1,240m), 갈전곡봉(1,201m) 등 높은 산들로 둘러싸인 20km 길이의 깊고 긴 계곡이다. 70년대 초반 이 계곡에는 서쪽 방동리에서 넘어오는 산길이 뚫려 고개 아래 방동약수터로 이어지는 찻길이 산을 넘어 계곡까지 이어지고 이 길은 현재 일부가 비포장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계곡 하류의 7km가 원시의 상태로 남아 있어 열목어가 살아가는 청정지역으로 조경동의 핵심 비경지대인 하류부가 고스란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깔때기처럼 협소한 계곡에서 빗방울이라도 떨어진다면 무조건 탈출을 해야 하는 위험한 조경동 계곡. 계곡의 양편으로 울창한 단풍나무가 햇볕을 가리고 옛날 산판을 하며 오르내렸던 허물어진 돌담위로 길이 나있지만 반바지 차림에 물속을 첨벙대며 즐기는 트레킹으로 시원함을 만끽하면서 무더위도 깨끗이 잊어버린다. 흐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말이 조경동 계곡을 두고 하는 말처럼 구절양장의 물줄기가 굽이치는 코너마다 깊은 소를 이루고 푸르다 못해 시퍼런 비수처럼 섬뜩함이 느껴지는 물속에는 열목어들이 춤을 추고 우리의 발걸음도 뜰 줄을 모른다.

 

 


계곡을 오를수록 보석같이 아름다운 비경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누구랄 것도 없이 소리치며 환호하고 조물주가 빗어놓은 환상적인 걸작 품에 넋을 잃는다. 맑은 계곡물과 아름다운 숲이 있는 곳이라면 길을 만들고 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아 난장판을 이루는 행태를 보아온 우리는 조경동 계곡만큼은 언제까지라도 자연의 신비를 간직할 수 있도록 지켜야할 책임으로 가슴이 무겁다.

 

 


우리의 목표는 4km 상류에 있는 뚝 발소 폭포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일정이 짜여있지만 물에 취해 계곡에 취해 발걸음이 마냥 느려지고 3시간이 지나서도 뚝발소에 이르지 못하고 마침내 너른 암반위에자리를 잡는다. 출출한 시장 끼에 배낭을 풀기가 무섭게 진수성찬이라 컬컬한 막걸리로 입가심을 하고 흥겨운 콧노래로 마음을 달래며 내려오는 길에서 올라오던 길을 잃고 허둥대는 것은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은 자연 속에서 미로를 찾아 헤매는 즐거움이라.    

 

 


열목어가 살고 수달(천연기념물 330), 족제비, 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 등 희귀동물이 살고 있는 곳. 계절마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여름에는 계곡의 트레킹으로 산정의 야생화로, 가을이면 단풍의 절정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조경동 계곡, 바닥까지 비치는 투명한 옥빛 계류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 떼, 모난 돌이 없이 수백 수 천 년을 갈고 닦아온 갖가지 형상의 바위와 조약돌이 깔린 모래톱, 흐르는 계곡마다 펼쳐지는 절경에 심취한다.

 

 

 


방대천을 가로막은 수중보에 도착하며 4시간동안 마음을 사로잡던 조경동 계곡의 트레킹도 마감을 하고 푸짐한 삼겹살에 소주한잔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보약으로 우리의 건강을 살찌우니 원시의 숨겨진 비경으로 우리를 안내한 신 상락 산악대장과 의야 산악회에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