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정 맥 길 기 맥 길
나 홀로 가는 길
한북정맥을 시작하며 - 복주산
한북정맥 6구간- 노고산
한북정맥 7구간 - 임꺽정봉
한북정맥 8구간 - 도봉산을 넘어서
한강기맥을 찾아서
한강기맥 ( 비슬고개 - 농다치)
한강기맥 ( 비슬고게 - 신당고개)
한강기맥 ( 신당고개 - 상창봉리)
한강기맥 ( 상창봉리 - 새목이 고개)
한남 금북정맥 그 정점에서
도일봉, 중원산 종주 길
중미산 정상에서
나 홀로 가는 길
신로봉 오르는 길 평화로운 길
앞서가는 사람 없어 약 오르지 않고
마주 오는 사람 없어 비켜 줄 일 없고
여유로운 몸짓으로 산길을 가네.
가리산 오르는 길 즐거운 길
다래넝쿨 칡넝쿨 앞을 가려도
쪽 박새 울음소리 애처러워도
단풍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좋아
콧노래 흥얼대며 산길을 가네.
심장의 고동이 폭포수 되어
몸속의 찌꺼기를 정화시키고
민들레의 홀씨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과 맞닿은 정수리에 올라서면
천상의 화원에는 얼레지 꽃 만발하고
흥겨운 어깨춤이 절로 나오네.
한북정맥을 시작하며 -복주산(1,152m)
소 재 지 : 강원도 철원구. 화천군
모처럼 집 근처에서 출발하는 산행이라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며 창동역에 도착하니 한북정맥의 순항을 예고라도 하는 듯 70여명이나 대거 참석하여 미니버스까지 동원하는 소동을 벌린 끝에 출발을 한다. 송우리를 지나 포천으로 향하는 차창너머로 스치는 야산들이 연녹색으로 산뜻하게 갈아입고 개나리 진달래가 절정을 이룬지도 보름이 넘었지만 북녘 땅 철원에는 아직도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나무들이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양지바른 산 비알로 연분홍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며 봄을 기다리고 있다.
한 반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백두대간이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남북으로 길게 뻗어 내리고 그 사이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13개의 정맥들이 동서로 산굽이를 이루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한강 이북을 아우르는 한북정맥(구 광주산맥) 은 금강산의 추가령에서 시작하여 서해의 장명산까지 수많은 산들을 일구며 280여 km를 달려오지만 애석하게도 조국의 분단으로 북녘의 110km와 적근산과 대성산에 이르는 휴전선의 남쪽 구간마저도 출입이 금지되어 수피령(750m)에서부터 출발을 하게 되는데 휴전선에서 가장 가까운 산행이 되는 셈이다.
예정보다 늦은 11시 30분, 한북정맥의 시발점에 선 우리들은 12개 구간으로 나누어 진행될 170여 km의 긴 여정을 무사히 마무리 할 수 있도록 산신님께 예를 올리고 급사면 절개지를 치고 오르며 대장정의 막이 오른다. 거친 호흡으로 비지땀을 흘리면서도 경쾌한 발걸음으로 산굽이를 돌아나며 뒤 돌아보는 대성산은 산허리를 가로 지르는
비상도로가 분단조국의 슬픈 현실을 대변해주며 정수리의 시설물들은 조국을 수호하는 불침번으로 포성이 멎은 지 반세기가 지나도록 녹 슬은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긴장이 고조되고 있으니 말 못하는 미물들은 자유로이 넘나들건만 스스로 채운 족쇄에 발이 묶여 오갈 수 없는 현실이 안타갑기만하다.
30여분 뒤 촛대봉 헬기장에 올라서면 건너편으로 매월당 김시습의 전설이 서려있는 복계산이 자리 잡고 있지만 정맥 길에서 비껴나 있는 탓에 다음으로 기약을 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촛대봉을 우회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한북정맥은 서울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지리적인 여건으로 나 홀로 산행으로 몇 구간을 답사를 하며 완주하고 싶은 욕망을 항상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최전방의 교통여건이 불편하여 망설이다가 늘보산악회와 함께 종주 길에 오르게 된 것이다.
완만한 능선의 종주 길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아래 숨을 조이는 긴장감으로 산과 계곡이 물결치고 나른하게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운무 속에 보랏빛 초롱꽃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새소리 지저귀는 천국이지만 멀고먼 종주 길에서 느려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복계산 갈림길인 950봉을 1시간 20분 만에 통과하고 아스라이 바라보이는 복주산을 향해 달려갈 때 허물어진 진지를 보수하는 장병들의 늠름한 모습에서 내 젊은 시절 월남의 쟝글에서 사선을 넘나들던 그때를 떠 올리며 휴전선을 사수하는 파수꾼으로 후방에서 마음편이 행복을 누리고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는 것이다.
4시간 10분 만에 복주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아담한 표지석이 반겨주고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은 중부전선의 고봉들을 굽어보는 전망대로 산과 계곡을 주름 잡으며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할 북녘 땅으로 줄달음치며 남쪽으로는 우리가 걸어야할 정맥의 주능선들이 끝없이 산굽이를 치고 있다.
정상에서 건너다보이는 후위 봉에 올라서면 비목에 새겨진 정상석이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는데 정상은 하나인데 표지석이 두 개가 있으니 어느 곳을 믿어야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경기도 가평군의 산들을 오르다보면 이런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어느 곳은 엉뚱한 곳에 표지 석을 세워 산 꾼들에게 골탕을 먹이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으니 하잘것없는 안내판 하나라도 올바른 곳을 선정하여 세우는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하겠다.
하오 현으로 내려가는 급경사 내리막길에서 또 한 번 당하는 수난은 겨우내 신고 다니던 등산화를 벗어버리고 경쾌한 릿지화로 바꾸어 신은 것이 화근이 되어 장거리산행으로 발등이 부어오르며 엄지발가락이 앞 꿈 치를 파고들며 내딛는 발자국마다 심한 고통으로 쩔쩔매며 고개 마루에 도착한다.
김화읍에서 화천군 사내면으로 넘나드는 비포장도로는 산 아래 터널이 개통된 뒤로는 오가는 사람들의 발자취도 멀어져 산 꾼들이나 약초꾼들이 찾는 한적한 곳으로 남쪽의 광덕리 쪽으로 20여분을 내려간 뒤에야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광장에 도착하며 첫날부터 매서운 신고식으로 정맥 길을 열었으니 앞으로 수많은 복병들이 도사리고 있는
고산준령을 넘어가자면 더욱더 철저한 준비와 단단한 각오가 필요하겠다.
한북정맥 제6구간
비득재(고모리)에서 양주 샘내고개까지
산행일시: 2004년 4월 24일
소 재 지: 경기도 포천시 , 의정부시 , 양주시 도상거리: 약 17km
계획대로라면 한강기맥의 2,3구간인 중원산에서 옥산의 말 고개까지 단독주행을 하였을 테지만 공교롭게도 전날 저녁이 아버님 기일인 관계로 성수동 조카 집에서 새벽에 돌아와 그 멀고도 험난한 구간을 종주한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집근처에 있는 한북정맥의 6구간인 비득재에서 샘내 고개까지로 산행코스를 변경하고, 무박을 한다는 심정으로 7시에 집을 나서 회룡역 앞 정류소에서 72번 버스(쌍문동에서 경복대학까지 노선)를 타고 송우리에서 택시를 이용하여 고모리 비득재에 도착하니 8시30분.
어제까지만 해도 봄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황사로 주위가 온통 누런 흙먼지 속에 가시거리가 수km도 미치지 못하는 고통 받는 날이었으나 밤사이 황사는 감쪽같이 사라지고 반경 백리까지도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화창한 봄 날씨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부족한 잠으로 몽롱하던 머리도 맑게 개이고 뒤로 보이는 죽엽산이 포근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비득재는 광릉내의 수목원에서 송우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모리의 라이프 카페로 성시를 이루는 곳으로 서쪽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고압전신주가 우뚝 솟아있고 15분간 경사진 비알 길을 오르다 보면 오늘의 구간 중 가장 높은(380m) 노고산 정상에 도착한다. (8시50분)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으로 수락산과 도봉산의 자태가 선명하며 오늘 걸어가야 할 능선들이 잔잔한 물결로 파도를 치며 이어지고, 396년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남하정책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쌓은 성으로 알려진 고모리 산성은 간곳이 없고 이동통신 시설물이 정수리에 깃발을 꽂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오늘 지나야할 6구간은 정맥구간 중 가장 마루금의 훼손이 심한 곳으로 공동묘지, 군부대, 도로, 골프장이 장애물이 되고 낮은 산마루는 마을의 뒷길을 통과해야 하기에 자칫 방심하다가는 정맥 길을 잃어버리고 곤욕을 치루는 난코스로 먼저 다녀온 분들의 산 행기를 분석하여 분기점마다 숙지를 하고 리본의 방향을 주시하며 진행을 해야 한다.
정상에서 3분정도 진행하면 좌측으로 급경사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마을 뒤편의 능선을 따르면 작은 고개를 지나 공동묘지를 만나게 되는데 전망이 좋은 곳으로 서남쪽으로 물푸레봉과 소리봉이 손에 잡힐 듯 능선으로 이어지고, 지나온 노고산 정상의 뒤편으로 마루 금에 죽엽산이 우뚝하다.
공동묘지가 끝나는 지점에 군부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으나 좌측으로 따라가면 후문이 나오고 이 낙석의 묘를 지나 철조망을 버리고 솔 푸더기 무성한 좌측으로 들어서면 축석고개에서 광능내로 가는 314번 지방도로를 건너는 다름 고개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까지는 아주 순조로운 산행으로 길 건너 “소나무전문 판매전시장〞의 소나무 정원수가 가득한 쉼터에서 10여 분간 휴식을 하며 진행코스를 살펴보니 집 뒤로 올라서야 하지만 맹견들의 사나운 울음소리에 지레 겁을 먹고 마을 안으로 들어가 능선으로 올라서니 낮 익은 표지기가 나타난다.(10시15분)
홀가분한 마음으로 임도를 따라가다 작은 고개에서 90도 우측으로 들어서면 또다시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나고 예정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별생각 없이 철조망 옆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발밑에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며 털 복숭이 삽살개가 달려든다.
엉겁결에 스틱으로 후려치며 으름장을 놓았지만 도망을 가기는커녕 쌍불을 켜며 이빨을 갈아대고 앙칼지게 대거리하는 그 모습이 잘 훈련된 맹견으로 작은 몸집이지만 이미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덤비는 데는 속수무책으로, 뒤돌아섰다가는 큰 낭패를 당한다는 판단으로 스틱을 꼰 아 쥐고 뒷걸음질을 치며 부대안의 병사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아는 체 만 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이 궁지에서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계속 뒷걸음질을 치는데 의기양양해진 삽살개는 끝까지 따라오며 대거리를 하고 이제는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혼비백산하여 뒷걸음질을 치다보니 가시덤불 속으로 밀리게 되고 능선을 하나 넘고 나서야 되돌아가는 삽살개의 뒤를 바라보며 허망한 마음으로 맥이 빠진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어쩌다가 이런 수모를 당하게 되었는지? 나 홀로 산행에 이골이 났다고 자부하면서도 가장 무서운 것이 낮선 이방인에게 달려드는 개들의 공격으로 마을입구에 선 보초병의 신호에 따라 순식간에 온 동리의 개들이 합창을 하며 기를 죽이고 개선장군이 되어 동구 밖까지 밀어붙인다.
그래도 마을의 개들은 일말의 인정이 있어 순한 눈길 속에 전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슬그머니 길을 틔워주며 으름장만 놓게 마련인데 조금 전의 삽살개는 군인정신으로 중무장을 하고 사생결단을 하자고 달려드는 데는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나무그늘에 주저앉아 곰곰이 생각해보니 다시 그길로 갈수도 없고 작전상후퇴로 먼 길을 돌아가는 수밖에 ........
30여분을 허비하며 가시넝쿨 우거진 산 비알을 가로질러 산마루에 올라서니 낮 익은 표지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발길을 돌릴 때 능선 너머에서 앙칼진 삽살개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 또 한사람 나와 같은 곤경에 처하여 있다는 생각으로 쓴웃음이 난다.
예정에도 없던 시나리오로 조금 늦은 11시 15분에 축석고개에 내려서니 의정부에서 포천으로 향하는 43번 국도를 만나게 되고 지체된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서둘러 축석교회 뒤편으로 올라서니 한낮의 태양아래 가파른 고개 길이 큰 짐이 되어 가쁜 숨 소리는 가슴을 조여오고 구슬땀 흘리며 발걸음을 재촉 할 때 허기진 몸은 천근만근 무너져 내린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287봉은 삼각점이 2개씩이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으로 천보산과 건너편으로 불곡산이 바라보이는 소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펴고 간식을 들며 영양을 보충한다.
천보산맥은 동두천의 소요산에서 의정부까지 남북으로 20여km에 걸쳐 뻗어 내린 능선으로 양주와 포천의 경계를 이루며 3-400m의 높지 않은 연봉들이 바람막이가 되어 양주 고을을 살찌우고 수년전 종주를 한 기억이 있어 더욱 친근감이 들며 부근의 회암사는 고려 때의 대 사찰로 지금 발굴 작업이 한창이다.
15분간 꿈같은 휴식시간을 보내고 오늘의 산행 중에서 유일한 암릉 길을 내려서며 그윽한 솔향기 속에 백석이 고개를 지나 순 하디 순한 능선 길에서 삼림욕으로 꽃길 따라 달려가다 보니 정맥 갈림길을 지나쳐 255봉에 올라서게 되고 내려다보이는 로얄 골프장을 향해 급경사 길로 내려선다.
로얄 골프장 좌측 그린을 따라 걷는 발걸음은 푹신한 양탄자 위를 스치듯 경쾌하지만 노는 물이 달라서 그런지 “소 닭 처다 보듯” 곁눈질한번 주지 않고 그린 위를 달리기에 여념이 없는 골퍼들 그들을 뒤로하고 숲속으로 들어서니 머지않아 주내 삼거리에서 삼송리로 향하는 지방도로를 만나 건너편 숲길 따라 들어서면 낮 익은 표지기 들이 바람결에 휘날리며 손짓을 한다.(12시45분)
지금까지 지나온 길은 낮은 봉우리의 연속으로 그런대로 등산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었지만 이제부터 가야할 길은 산이라는 개념이 실종되고 해발50-100m의 낮은 구릉지대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의 뒷담을 타고 넘는 숲속의 산책길이 이어지는데 개념도에 표시된 대로 10여분을 진행하면 삼거리길이 나오고 한양공예, 형제 공업사를 확인하며 제대로 진행하고 있다는 안도감에 휴식도 취할 겸 시원한 캔 맥주 생각이 간절하여 구멍가게를 찾아 버스정류소까지 300여m나 되는 마을길을 터덜터덜 걸어가니 70년대의 모습을 보는 듯 낡은 건물에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는 미니슈퍼, 그래도 시원한 맥주의 맛은 변함이 없어 툇마루에 걸터앉아 김밥을 안주삼아 점심식사를 해결하고 한양공예사가 있는 곳으로 되돌아와 숲속으로 들어선다. (13시50분)
이곳에서 삼호식품이 있는 막은이 고개까지가 종주 팀들에게는 곤욕을 안겨주는 난코스로 자칫 상황판단이나 방심을 하다가는 종주 길을 잃고 헤메는 “다람쥐 체바퀴 돌리는”구간으로 끊어질듯 이어지는 미로와 같이 얽혀있는 능선은 처음 묘지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다 무성한 숲길을 버리고 곧바로 우측으로 방향을 틀면 마을로 내려서는 것 같지만 능선자체가 담장으로 5분 동안 사잇 길을 타고나면 혜인사 입구가 나오고 너른 마을길을 따라 가다보면 예은 교회를 지나 덕현 초등학교가 있는 덕 고개 사거리에 도착하게 된다 (14시10분)
농협슈퍼 앞에서 휴식을 하며 곰곰이 생각해도 신기한 것이 한북정맥의 5구간까지는 높은 산맥의 능선들을 따라 진행을 하다 보니 계곡물을 만날 염려가 없었지만 로얄 골프장에서 덕 고개까지 낮은 구릉지대로 주위로 논밭이 펼쳐지고 그사이로 도랑물이 흘러가지만 실낱같은 마루 금을 넘지 못하고 길을 티워 주고 있으니 정맥의 진정한 의미가 이속에 있으며 종주를 고집하는 산 꾼들에게 큰 보람을 안겨주는 곳이다.
동리 사람들에게 막은이 고개를 물어보지만 모두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모른다는 대답뿐, 그곳을 왜 찾느냐는 되물음에 난감하여 샘내고개를 간다고 하니 자동차로도 한참을 가야한다는 친절함이 동문서답이 되어 신작로를 따라 서쪽으로 마을길을 벗어나자 길섶에 낮 익은 리본이 반색을 한다. 동구 밖 능선에 올라서니 덕정리에서 의정부 외곽으로 나는 우회도로공사로 수 십 길의 절개지가 앞을 가로막고 건너편의 능선과는 영영 단절이 되는 쓰라림 속에 장애물을 비껴가는 농로에서 개울을 건너는 수난을 당하고 소나무 숲길로 찾아드니 삼호식품이 있는 막은이 고개에 올라서게 된다.(14시30분)
천보산맥에서 북쪽으로 달려오던 정맥은 막은이 고개를 지나며 남서방향으로 기수를 돌려 평탄한 길을 유지하다가 군부대의 삼중철조망이 앞을 가로막고 우측으로 만리장성과도 같이 육중한 성벽을 따라 한없이 오르면 지도상에도 없는 큰 테미산 정상에 올라서게 된다. 널찍한 헬기장에는 간단한 운동시설도 갖추어있고 주위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지금까지 걸어온 정맥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며 서쪽으로 오늘의 종착점인 샘내 고개가 3번 국도를 가로 지르고 그 너머 불곡산이 고운자태로 손짓을 한다.(15시 정각)
오늘의 산행구간에서 유일하게 만나는 등산객과 반가운 인사를 하고 기념사진 한 장을 가슴에 안고 북사면으로 타고 내리는 발길이 가벼운 것은 난마와도같이 얽혀있는 미로를 용케도 헤치고 17km의 대장정을 마감하는 시간이 되었기에........
양지바른 산기슭 아담한 묏등에 피어있는 자주색 제비꽃,
앙증맞은 그 모습에 눈길이 머물고 사랑의 천사 큐피드가 쏜 화살이 아니라도 겸손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며 너의 진정한 의미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련다.
한북정맥 7구간
임꺽정봉(440m), 챌봉(516m), 호명산(423m), 한강봉(450m)
산행일시: 2004년 5월 2일
소 재 지: 경기도 양주군 -회천읍, 백석면, 장흥면
지난주에 이어 한북정맥 7구간 종주에 나선 것은 처음부터 계획한 것이 아니고 금년에 가장 가보고 싶은 곳 중에 황매산이 있는데 모든 스케줄을 그곳으로 정하고 준비를 하던 중 남쪽에서 시작된 비소식이 부푼 가슴에 구멍을 내고, 이제는 나이 탓인지 비 맞으며 산행하기가 싫어졌으니 더구나 철쭉꽃이 만발한 암릉길에 비오는 날 산행은 별의미가 없으므로 아쉬움을 간직 한 채 마음을 접고 오후부터 내린다는 중부지방의 예보에 따라 새벽부터 서둘러 샘내 고개로 향한다.
7구간의 출발지인 샘내 고개는 집 앞을 경유하는 13-2번 버스로 30여 분만에 현지에 도착하여 6구간의 종착점인 주유소 건너편 버스정류소 뒤편으로 올라서며 산행이 시작된다. (06시 50분
완만한 능선사이로 오솔길이 이어지고 붉게 물든 아침노을을 뒤로하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 맞으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40여 분만에 330봉에 도착하니 군작전도로가 능선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고 북쪽으로 유순한 도락산이 자리 잡고 있지만 남쪽으로 마루 금을 따라 진행하면 산불 감시초소가 나타나고 군 유격장이 시작되는 곳에 산허리를 깎아 내리며 사찰(정불사)을 짓는 대공사가 벌어지고 있으니 정맥의 마루 금이 잘려 나아가는 현장을 목격하면서 씁쓸한 마음으로 능선을 따라 조금 내려가니 창업고개가 나타나고 이번에는 유격장의 철조망이 마루 금을 가로막고 부흥사로 돌아가라는 경고문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 08시 )
일요일 이른 아침이라 텅 빈 유격장에는 공허 로운 바람만 불어오며 철조망에는 친절하게도 정맥 팀의 리본이 살랑살랑 손짓을 하며 어서 넘어오라 유혹을 한다. 지난번 군견에게 혼이 난 이후로 부대 근처에만 가면 긴장이 되므로 유심히 살펴보아도 인기척이 없어 서슴없이 철조망을 넘어 숨 가쁘게 경사면을 치고 오르며 현장에서 벗어나려는 일념으로 한바탕 유격훈련을 톡톡히 치루며 전망 좋은 암 봉에 올라서니 임꺽정 봉이 자태를 드러내며 유혹을 하고 민간인 접근금지 경고판으로 가려진 철조망의 개구멍을 비집고 유격장을 벗어나니 부흥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마주치게 되는데 2km이상 단축이 된 셈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암릉을 오르다보니 임꺽정 봉 바로 밑에서 정맥 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틀고 스릴 있는 임꺽정 봉을 그냥 지나칠 수 있으랴? 수직절벽에 걸려있는 동아줄이 아니면 오르기 어려운 10여m의 오름길은 반들반들 윤기가 흐르고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서니 암벽에 뿌리를 내리고 수 백 년 인고의 세월을 지나온 낙락장송의 그늘이 운치를 더하고 사방으로 막힘없이 내려다보이는 양주벌이 평화로우며 오늘 걸어야할 정맥의 마루 금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지척에 있는 불곡산 정상이 날카로운 암 봉으로 산수화를 그려내며 그 뒤로 도봉산과 수락산이 선명하게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 (08시 30분)
불곡산 남쪽의 양지바른 산기슭에는 양주시청이 들어서고 유림의 고장인 유양리는 유명한 무형문화재인 양주 별산대놀이의 본고장으로 전용 공연장까지 갖추고 정기적으로 공연을 하며 그 전통과 맥을 이어가는 후예들이 정진을 하고 있는 곳이다. 15분간의 휴식을 하고 주능선 삼거리로 되내려온 뒤 서쪽 능선 길로 내려서면 로프가 설치된 슬� 지대를 두 군대 통과해야 하는데 오늘의 정맥 길에서 가장 스릴 있는 곳으로 임꺽정 봉의 진수를 만끽하는 곳이다.
암릉 을 넘나들며 내려오면 군 시설물에 가로막혀 369봉 쪽으로는 더 이상 전진을 못하고 좌측 계곡 길로 발길을 돌려야하는 안타까움 속에 10여분 후 가족묘지가 있는 곳에서 마루금과 합류를 하게 되지만 곧이어 350번 지방도가 나타나고 대교APT를 거쳐 오산삼거리에 도착하며 불곡산과 작별을 하게 된다. (09시 15분)
주내, 백석, 광적의 분기점이 되는 갈림길에서 금강석재의 맞은편 도로를 건너 동쪽의 마을을 지나 숲속으로 들어서면 낮 익은 리본들이 길잡이가 되어 반겨주고 곧이어 이름도 모르고 축성연대도 모르지만 낮으면서도 아담한 산성이 송림숲속에 자리 잡고 있는데 한양으로 통하는 길목에 있는 것으로 보아 혹시 녹림거사들의 본거지가 이닐런지?
부지런한 사람들의 손놀림으로 두릅나무의 새순이 잘려나가고 앙상한 가시만이 갈 길을 가로막고, 가시넝쿨 헤치며 앞길을 재촉 할때 의정부 녹양동에서 가업리로 넘어가는 작 고개(일명 어둔리고개)가 나타나고 건너편의 별장으로 마루 금이 이어지지만 앙칼진 개들의 울부짖음으로 미리 겁을 먹고 우측 능선으로 들어서니 이곳으로 표지기가 달려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개들의 위세에 눌려 우회전 한 것으로 추측이 된다. (09시50분)
고압선 철탑이 줄줄이 이어지는 호명산 오름길은 밤나무와 굴참나무들이 무성한 호젓한 길로 메마른 대지에 새순이 돋아나고 연분홍 진달래가 화려한 퍼레이드를 벌인 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철쭉의 향기 속에 춘정을 못 이겨 짝짓기에 여념이 없는 노루 한 쌍이 산기슭을 내달리며 희롱하는데 나그네 발길로 훼방을 한 것이 아니고 나는 나대로 가는 길이 따로 있으니 서로 간섭하지 말고 무릉도원에서 함께 노니는 것이 어떠하리요?
무성한 숲길을 숨 가쁘게 오르면 복지리에서 호명산으로 오르는 갈림길이 나오는데 잔디가 깔려있는 철탑의 광장은 임꺽정 봉과 함께 최고의 전망대로 백석면과 광적면의 너른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고 지나온 그 능선들이 주마등처럼 아른거리는 황홀한 쉼터로, 대교APT에서 준비한 막걸리로 갈증을 달래며 꿈같은 휴식을 하고 표시도 없는 호명산 정상을 지나 마루 금을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10시 20분 ,10분 휴식)
남쪽으로는 군부대 시설물이 있는 461봉이고 한강봉으로 향하는 마루금은 90도 우회전하여 진행을 하게 되는데 원형 헬기장을 지나 땅이 꺼지도록 내리막길에 신바람을 내다보면 차한대가 지날 수 있는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타나고 건너편 철조망 사이로 들어서면 낮 익은 표지기 들이 바람에 나부끼고 한강봉 오르는 가파른 길에서 200여m의 고도차를 극복하자면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야한다.
한강봉정상은 울창한 숲속에 너른 공터를 이루고 정성들여 쌓아올린 아담한 돌탑이 표지 석을 대신하며 은봉산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들로 제법 활기가 넘치며 정맥의 종주를 이해 못하는 그들에게서 山 귀신으로 대접을 받으며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담소를 나눈다. (11시 40분 20분 휴식)
굴참나무 사이로 바라보이는 챌 봉은 높기만 한데 한강봉을 내려딛는 발길은 속절없이 곤두박질치고 그 모습이 보였다 숨었다 숲속에 같혀 방황을 할 때 흔한 길라잡이 리본도 자취를 감추고 그동안 잘 참아주던 비까지 조용하던 숲속을 마구 흔들어대니 다급한 풍운아 팔진도에 발이 묶여 살아나는 문을 찾아 꾀꼬리봉 까지 내달으며 마음은 급한데 시간은 흘러가고 숲속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20분간 시간을 소비)
천신만고 끝에 높디높은 챌 봉에 올라서니 시원하게 터진 공터에는 헬기장이 자리 잡고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의기양양하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초라한 몰골로 토치카 속으로 피신을 하니 켜켜이 쌓인 먼지와 거미줄로 음산한 기운이 감돌지만 아방궁보다도 아늑한 휴식처에서 민생고를 해결하고 피어오르는 운무 속을 하염없이 걸어간다. (정상도착 12시55분, 15분간 식사)
인생의 가는 길에 어찌 순탄한 길만이 이어지겠는가? 오르막과 내리막길 깍아 지른 벼랑길을 피해가다 보면 너른 초원도 나타나고 방심하는 사이에 늪에 빠져 허우 적 거릴 때도 있으니 매사 조심조심 지뢰밭을 걸어가듯 신중한 자세로 ,그러나 미리부터 겁을 먹고 의기소침 하는 것은 더욱 금물이니 새로운 세상으로 도전해 보는 것이 삶의 보람이 아니겠는가?
빗속이 싫어 남쪽의 황매산을 피해 한북정맥을 택했지만 비와 함께하는 운명이라면 빗물을 흠뻑 먹은 풀잎에 몸을 내맡기고 신발 속에 물이 가득 차올라도 높고 낮은 능선들을 오르내리며 자연에 길들여지는 순한 양이 되어 순진무구한 마음으로 고개 길을 오른다. 425봉을 지나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너른 분지위에 감시카메라까지 설치된 양주항공 무선표시소의 건물이 마루 금을 가로막고 철조망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오다 호젓한 산길로 접어들어 큰 힘 들이지 않고 산 하나를 넘어서면 공동묘지가 나타나고, 발아래로 울대고개를 넘는 차량들의 행렬을 바라보며 빗속의 길이지만 도상거리 16km를 8시간 만에 완주했다는 자신감에 희열을 맛본다.( 14시 50분)
한북정맥 8구간 - 도봉산을 넘어서
사패산 ( 562 m ), 도봉산 ( 740 m ), 상장봉 ( 543m )
산행일시 : 2004년 6월 13일 산행시간 : 10시간 산행거리 : 약 16km
소 재 지 : 경기도 - 양주군 .의정부시 ,고양시 서울 - 도봉구 ,강북구
세상사 모든 일이 뜻대로 될 수만 있다면 무슨 근심걱정이 있으랴 ?
산에 미친 건각들의 바램 이 있다면 장대한 태산준령과 마루 금을 한없이 걸어보고 싶다는 욕망으로 새로운 루트를 찾아 자연 속에 몸을 내맡기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짜릿한 희열을 맛보고 미지의 세계에 도전하는 불굴의 정신으로 삶의 지표를 삼는 것인데.......
요즈음 폭발적인 등산인의 증가로 새로운 코스가 개발되고 건각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으로 태극능선의 종주라는 지리산의 웅석봉에서 시작하여 운봉과 인월 의 덕두산까지 80여km에 달하는 장대한 산맥을 3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하는 아이템으로 건각들의 끓는 피를 용솟음치게 하는 곳으로, 성삼재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산리까지 구간은 완주를 하였고 이번에 추성리에서 시작하여 왕등재를 거쳐 산청의 경호강까지 15시간이라는 구간에 도전하기 위하여 10여일 전부터 컨디션 조절과 세밀한 지형파악으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산악회의 사정으로 일정이 취소되고 보니 허망한 마음을 달랠 길이 없다.
수많은 산악회에서 행선지를 알리는 문구로 눈이 어지럽지만 큰 목표를 잃어버린 매의 눈에 들어오는 먹이가 그리 쉽게 발견될 수 있겠는가? 어렵게 짬을 내어 만든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내기에는 산 꾼을 자처하는 나의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생각다 못해 한북정맥의 도봉산 카드를 빼어드는 수밖에.......
사실 이 구간은 집근처에 있는 곳이라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달려갈 수 있는 곳으로 주머니 깊숙이 간직하고 있다가 꼭 필요할 때 써 먹으려 하였는데 아깝지만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안성맞춤이라 새벽바람 맞으며 지난번의 종착지인 울대고개로 달려간다.( 05시 )
낮의 길이가 가장 길다는 하지를 며칠 남겨두고 있는 탓에 어두운 장막도 동녘에서 밝아오는 여명에 밀려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청명한 하늘아래 시원한 바람마저 불어오니 상쾌한 마음으로 검은 굴뚝이 있는 옹벽으로 올라서면 잠귀가 밝은 개들의 합창으로 고요하던 산마루가 한동안 시끄러운 난장판이 되고 서둘러 방카를 돌아 오솔길을 찾아든다.
녹양동 36번 철탑을 지나며 정맥 길을 제대로 진입했다는 안도감에 숲속을 헤치며 나아가는 발걸음이 경쾌하지만 거미줄의 덫에 걸려 얼굴이 말씀이 아니고, 싸리나무가지로 부채질을 하며 완만한 경사를 오르면 화생방 교육장인 360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머리위로 사패산의 암 봉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능선과 계곡을 오르내리면 안골에서 올라오는 분기점을 만나며 탄탄대로에 나무계단의 층계를 타고 가파른 경사를 치고 오르면 송이버섯(일명 샌드위치 바위)바위를 지나며 잠시 후 사패산의 정상에 오르게 된다. ( 05시 45분 )
“부지런한 새가 먹이를 많이 잡는다고”신선한 새벽공기를 듬뿍 마시며 사방을 둘러보면 천하제일의 전망대는 쾌청한 날씨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도봉산의 불꽃같은 암봉 들이 하늘높이 솟아오르고 오봉의 화려함에 눈이 시리며 수락산과 불곡산을 안고 있는 분지 안으로 의정부 시가지가 빌딩숲을 이루고 북녘으로 지난번 걸어온 한북정맥의 마루금인 임꺽정봉, 오산삼거리 호명산, 한강봉, 챌봉이 천주교 묘지위로 연결되어 사패산 정상까지 발자취를 남기게 된다.
사진 한 장 누르며 여유를 부리고 있을 때 정상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진다. 이른 새벽에 부지런한 사람들도 많다는 생각으로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보니 밤새워 달려온 부산갈매기들의 도봉산 원정 산행으로 충렬 산악회에서 주선한 모임이다. 산사람들의 깊은 우정은 금 새 친숙해지고 초행길인 그들에게는 서투른 설명이지만 큰 환호를 받으며 행선지가 비슷하므로 길안내를 자처하며 내딛는 발걸음에 신바람이 난다.
잠시 후 회룡 골재를 통과하여 가파른 비알 길을 거슬러 오르면 사패능선과 포대능선의 분기점인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649봉에 오르게 된다. 매일 보는 우리도 포대능선과 도봉산의 연봉들, 불꽃같이 피어오른 오봉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선경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데 부산갈매기들의 시선에는 보이는 곳마다 천하절경으로 화려한 모습에 매료되어 환호성으로 자리를 뜰 줄 모른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이른 아침부터 도봉동에서 의정부로 이어지는 시가지에는 차량들이 뿜어내는 매연의 스모그가 시가지를 뒤덮고 있으니 죽음의 그늘이 드리워진 공간 속에서 우리들의 심장이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경악을 금할 수 없으며 송추유원지 쪽으로는 일산시가지 너머로 한강까지 울창한 숲속에서 뿜어 나오는 신선한 공기로 오염되지 않은 싱그러운 모습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고 있으니 우리에게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일깨워준다.
아기자기한 포대능선의 암 봉을 넘나들며 날렵하게 생긴 바위에 올라 도봉산의 진수를 만끽할 수 있도록 가이드의 임무를 충실히 하며 수년전 금정산 산행에서 받은 그들의 친절함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게 되어 마음이 홀가분하다. 자운봉이 지척에 보이는 벙커가 있는 716.7봉에 올라서니 도봉동쪽에서 올라온 부지런한 산 사나이들의 영웅담으로 시끌벅적하고“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는데”물 한 모금으로 휴식을 끝내고 서둘러 도봉 주능선이 시작되는 신선대의 쎄미클라이밍 계곡으로 내려선다.(07시 20분)
집 가까이 있는 도봉산 산행은 아침 먹고 천천히 시작해도 될 터이지만 지금 통과하는 이곳이 휴일 날 10시만 넘으면 오가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어 고속도로의 정체구간은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마의 구간으로 넉넉잡아 10여분의 거리를 2 - 3시간씩 지체를 하게 되고 종주산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므로 서둘러 된 새벽에 집을 나선 것이다. 쇠말뚝을 타고 오르는 부산갈매기들, 도봉산의 진수를 만끽하며 오금이 저려오는 암봉 위에서 스냅 사진 한 장 찍어보는 여유를 부리며 신선대 정상에 올라서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 07시 45분)
신선놀음에는 막걸리가 제일인기라.
널찍한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먹거리 풀어헤친 진수성찬에 서울의 산 꾼이 부산 갈매기들에게 주는 정표인기라.
자 받으소. 한잔
밀양朴씨 양반가문의 젊은 처자와 주고받는 신선 주에 정신이 몽롱하고 아까운 시간을 30여분이나 흘려보내도 아쉬움만 남는 구료.
서둘러짐을 챙기고 오봉갈림길에서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으니 오봉까지 다녀오는 그들을 끝까지 안내하고 싶어도 나에게 주어진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리며 우이동에서 찐한 막걸리라도 대접하고 싶었는데 부산갈매기 잘들 가이소. 도봉 주능선이 끝이 나고 우이남 능선이 시작되는 분기점이 우이령으로 내려가는 정맥 길이고 좌측으로는 우이 암으로 향하는 길이다.
지난번 비득재에서 샘내 구간을 지나오며 군견으로부터 받은 수모와 수년전 우이령으로 하산하다 군부대의 경비병과 실랑이를 하던 여러 정황을 되돌아 볼 때, 우리의 처지에서 보면 마루금에 걸려있는 암초들이 성가신 존재들이지만, 입장을 바꾸어보면 우리야 말로 하지 말라는 것을 끝까지 우겨대는 옹고집으로 특히 군부대는 국가를 보위하는 중요한 시설들이 밀집되어있는 곳으로 우리의 사명감을 완수하기위한 수단으로 그들과 대거리를 해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자문자답을 해보며 능선 길에서 벗어나긴 하지만 우이동까지 내려가서 육모정 고개로 진입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망설임 끝에 보문 산장으로 진로를 정하고 말았다.(09시30분)
정상 코스보다 많이 길어진 시간을 단축하기 위하여 내달리는 발걸음은 지칠 줄 모르고 10시 정각에 우이동 그린파크 앞의 너른 광장에 도착하니 산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원색의 물결 속에 젊음을 발산하는 열기로 후 꾼 달아오른다. 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제2라운드의 산행준비로 간식을 들며 배낭을 꾸리고 산행계획서를 다시 한 번 점검을 하며, 정맥 길을 벗어났지만 상장봉 능선으로 만경대와 연결이 되는 새로운 종주 길에 기대를 걸고 흐뭇한 미소로 전의를 불사른다. (25분간 휴식)
육모정 매표소는 우이령 쪽으로 10여분 거리에 있는데 두 갈래 길 중에 우측은 군인들의 통제로 접근이 불가능하고 왼쪽의 고급요정들이 자리 잡고 있는 소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서니 그 많은 인파들은 간곳이 없고 조용한 산책로에 계곡 물소리만이 정적을 깨트리며 이상한 예감이 들지만 별일이야 있으랴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매표소 앞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휴식년제로 통행이 불가능하니 돌아가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이 허사가 되고 말았다. (10시40분)
아무리 통사정을 하여보지만 소용이 없고 되돌아 내려오는 발길이 천근만근이 되어 가슴을 짙 누르며 만리장성보다도 견고한 철조망이 원망스러워 혹시나 개구멍이라도 있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는데 산기슭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보이고, 순간적인 일이지만 2m가넘는 철조망을 넘고 말았으니 주위의 시선이 두려워 물 찬 제비처럼 계곡 속으로 파고들며 주능선을 향해 가쁜 숨을 몰아쉰다. 위험지역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으로 바위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땀을 식히며 생각해봐도, 이렇게 까지 하면서 마루 금을 밟아야 하는 것인지 회의를 느끼며 조금 전 까지만 해도 합법적인 산행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었는데 .........
무성한 숲속에 패이고 찢어진 상처도 원상회복이 되고 20년 동안 인간의 발자취를 거부 한 채 자연으로 돌아간 장군봉능선, 오수를 즐기던 산 까치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난초지초 흐드러진 화원에는 산새들이 지저귀는 심산유곡으로 바위에도 새로운 이끼가 돋아나고 쓰러진 고목나무위로 버섯들이 자생하는 별천지가 펼쳐지고 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숲속으로 파고들며 바람 한 점 없이 후덥지근한 열탕 속에서 길도 없는 가시덤불을 헤치며 오르는 암릉 길은 지친 몸에 더욱 채찍질을 하며 방향감각을 잊은 채 무작정 주릉 선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파른 암 봉을 가까스로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주능선은 영봉과 육모정고개의 중간지점인 코끼리바위가 있는 장군봉으로 인수봉의 우람한 자태가 억눌렸던 가슴을 후련하게 쓸어주는 청량제가 되고 북쪽으로는 아침에 지나온 도봉산의 연봉들과 오봉이 새로운 모습으로 선을 보이며 상장봉 능선들이 바람막이 울타리가 되어 정맥 길의 마루 금을 이루고 있다. (12시)
일단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으로 소나무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열기로 가득한 등산화를 벗어놓고 편안한 자세로 마시는 시원한 동동주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감로주로 안주삼아 먹는 김밥 또한 꿀맛이다. 설악산에도 도봉산에도 쉼터마다 극성부리는 왕파리와 개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니 이 또한 신기한일로 먹 거리가 없는 곳에서는 자생할 수 없다는 결론으로 우리 모두 자연을 보호하고 정화시키며 그들에게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20분간 휴식)
급경사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육모정 고개, 솔 고개 쪽에서 올라온 등산객으로 제법활기가 넘치며 고독감과 외로움에서 해방이 되어 반가움에 인사를 나누고 “산을 사랑하다 산으로 돌아간 ”어느 시인을 추모하는 이은상님의 노래비가 오가는 길손들에게 새로운 감명을 준다. ( 12시30분)
육모정고개를 뒤로하고 오르는 무명봉은 급경사 오르막으로 후줄근하게 땀을 흘리며 한낮의 작렬하는 태양아래 투혼을 불사른다. 아기자기한 암봉 들이 시원한 조망을 티 워 주며 염주 알 꿰듯 올망졸망 이어지고, 드디어 우이암 에서 뻗어 내린 정맥의 갈림길에 올라선다.( 13시20분 )
직선으로는 1.5km에 불과한 짧은 거리지만 장애물을 피해 돌아 나오는 길이 이다지도 멀고 험난할 줄이야 낮 익은 리본을 바라보며 타향에서 옛 친구를 만나듯 반가움에 목이 메이고 마주친 산 꾼들로부터 철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그래도 해냈다는 자부심에 긍지를 느끼며 민 대머리 상장봉은 무명봉과 중봉을 지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로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며 우뚝 솟아 신비감을 더해주고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이곳의 조망은 천의 얼굴을 가진 인수봉의 뒷모습과 숨은 벽의 날카로운 암 봉 들을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하루재의 휴식년제가 해제된다면 북한산 종주의 새로운 루트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14시10분)
전망 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아껴두었던 식수와 간식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솔 고개로 내려오는 하산 길에서 전망대 바위에 올라 건너편의 노고산을 바라보니 울창한 숲속으로 둘러 쌓인 정상에는 군부대가 자리 잡고 산허리를 가로지르는 철조망은 민간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철옹성으로 제대로 마루 금을 밟지 못하면서 종주를 고집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하는 회의적인 생각에 수많은 산 꾼들이 도봉산에서 한북정맥의 종주를 마감하는 심정을 이해하게 되며 아쉬운 마음이지만 솔 고개에서 나의 종주 길도 접어야겠다.( 15시 솔고개 도착)
돌이켜보면 2년 3개월 동안 부정기적으로 짬이 나는 대로 마루 금을 밟다보니 휴전선의 대성산아래 수피령에서 시작한 발자취가 이곳까지 이르게 되고 아름다운 나의조국 금수강산의 화려한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나 홀로 산행에서 고독감으로 몸부림 칠 때도 있었지만 내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추해보는 의미 깊은 시간들이었다.
한강의 기맥을 찾아서
산행일시 : 2004년 3월 28일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 양서면 ,서종면
산을 오르지 안드라도 산에 대하여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백두대간이라는 단어가 낮 설지 않을 것이다. 전국토의 7할이나 되는 산악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그 많은 산들을 어찌 다 기억을 할 수 있으며 올망졸망한 야산 까지도 체계 있게 정리하여 분류 할 수 있을까?
신기한 일이지만 산의 바이불로 일컬어지는 산 경표에 의하면 한반도의 지형을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분류하여 지맥을 따라 모든 산들이 연결 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정맥에 못지않은 세력이 큰 여러 개의 산줄기들이 있음을 알게 된다.
그중 하나가 백두대간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맥으로 계방산, 태기산 ,오음산, 용문산 ,청계산을 거쳐 양평군 양수리 에서 북한강으로 꼬리를 내리며 생을 마감하는 능선을 한강기맥이라 일컬으며 도상거리로 장장 162,6km에 이른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정된 명칭은 아니지만, 선답자 들이 부르고 있는 지명으로 통일하기로 하고, 교통이 불편한 이곳을 개인적으로 답사한다는 것이 불가능 하겠다는 생각으로 망설이고 있던 차에 늘보산악회에서 한강기맥을 종주한다는 반가운 소식에 모든 일 제처 두고 함께 종주 길에 나서게 된 것이다.
길고 지루하던 추위도 물러가고 남쪽에서 전해오는 화신의 훈풍에 따라 도로변의 개나리가 노란꽃잎을 피워 올리며 수줍은 목련도 꽃망울을 터트리는 삼월의 하순, 한강기맥의 종주를 알리는 대장정의 진군 나팔소리가 들려오는 화창한 봄 날씨에 아침햇살이 유난히도 밝게 빛난다.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끼고 양수리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은 마냥 부풀어 오르고, 얼큰한 해장국에 인심 좋은 아줌마가 건네주는 더덕주, 한 잔술로 전의를 가다듬는다.
넓고 넓은 강어귀에 두 물이 합쳐지고 무성한 수초사이로 아침햇살이 반짝이는 양수리가 기맥의 시발점이지만 중앙선의 철교가 가로놓이고 집들이 들어서 1,5km를 생략 한채 제1구간으로 양서종합고등학교 정문에서 된 고개까지 14km, 서후리 까지 진입로 2km를 합하면 16km의 장거리산행을 해야 하는 만만찮은 장거리 구간이다.(09시10분 출발)
구릉지대 과수원 둔덕길을 가로질러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서면 앞서간 산 꾼들의 발자취 따라 수북이 쌓인 낙엽이 포근하여 산이라고 할 것도 없이 100m 안 밖의 언덕길을 넘나들며 끊어질듯 이어지는 기맥의 등줄기를 삼림욕장에 들어선 듯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 양지바른 언덕에는 진달래가 꽃망울을 터트리고 좌측으로 북한강의 물줄기와 주변에 들어선 모텔들이 그림같이 펼쳐지며 강 건너 영화촬영소가 아득히 바라보인다.
한시간만에 200봉을 지나며 서서히 고도를 높이게 되고 따가운 햇살아래 214봉에 올라서니 정면으로 산허리를 자르고 공원묘지를 조성하는데 45도나 되는 경사진 석벽에 계단으로 단을 만들어 자연을 훼손하는 난개발의 대표적인 사례로 장마철이면 산사태로 마을을 덮치고 유골들 마저 유실되는 불상사를 초래하면서도 눈앞에 보이는 이익에만 급급한 얄팍한 상술에 눈살을 찌푸린다.
340봉을 오르는 길은 순하게만 달려오던 산길이 갑자기 급경사를 이루며 공원묘지 우측 절 개지를 따라 오르막길로 깔딱 고개 오르는 산 꾼들의 가쁜 숨소리와 무거워지는 발걸음에 심한 갈증을 느낀다.
340봉에 올라서면 소나무 그늘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쉼터가 나타나고 이곳부터 된 고개까지 양서면과 서종면의 경계를 따라 마루 금이 이어지는데 왼쪽으로 능선을 따라 길게 늘어진 전선줄에는 접근금지 팻말이 붙어있고 수 만평의 너른 산자락에는 수십 년씩 자란 거목들이 잘려나가고 산 더덕과 산나물 재배지를 만드는 것 까지는 농촌소득을 위한 작목반의 활동으로 이해를 하겠으나 가파른 경사지에 거미줄같이 미로를 만들어 산사태의 원흉이 되고 있는 임도의 볼 성 사나운 모습들은 산사나이들의 가슴에 또 한 번 깊은 상처를 안겨준다.
우측으로 방향을 틀어 안부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능선을 여러 차례 오르내리며 힘을 비축하였지만 눈앞에 보이는 461봉이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나는 새들도 넘지 못할 험준한 산세를 이루고 지금까지는 평탄한 길이라 선두그룹의 7명에 합류하여 큰 어려움 없이 동행을 하였지만 오르막길에서는 그들의 주행속도를 따르기에 역부족으로 점점 뒤로 처지게 된다.
심한 고통 속에 정상에 올라서니 삼각점도 이정표도 없지만 우측으로 산굽이 따라 목왕리가 자리를 잡고 전방으로 청계산의 주봉이 공원묘지와 함께 바라보이며, 벗 고개를 오가는 차량들의 행렬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2시간동안의 산행으로 지친 몸을 보충하기위해 전망 좋은 이곳에서 배낭들을 풀고 있지만 양수리에서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한 여력으로 아직까지는 참을만하여 물 한 모금으로 휴식을 끝내고 그보다는 오르막에서 느려지는 행보를 보충하기위해 나 홀로 쉬엄쉬엄 길을 나선다.
전형적인 육산으로 포근한 발길에 유일한 암릉 구간으로 길이는 얼마 안 되지만 가파른 벼랑에 로프도 매여 있고 조심조심 내려서니 심한 봄 가뭄으로 마른 대지위에 발자국 따라 걷어 채 이는 낙엽으로 뽀얀 흙먼지가 온몸을 휘감으며 코로 입으로 마구 들어온다.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있는 갈참나무 숲속의 사양 진 비알 길에 생강나무가 샛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고 벌 나비도 찾지 않는 때 이른 봄날이지만 따사로운 햇살아래 산 색시 고운자태로 미소 지으며 길손을 유혹한다.
노란리본의 밤 도깨비가 누구의 분신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분의 발자취 따라 홀로 가는 이 길이 사색의 길이요 휴식의 시간으로 앞서가는 사람 없으니 약 오를 일 없고 뒤처지는 사람 없으니 기다려 줄일 없고 훠이훠이 나 홀로 산길을 가네. 아무리 등산이 혼자 하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일행이 있다 보면 남에게 지지 않으려는 경쟁 심리로 오버 페이스를 하게 되고 후유증으로 며칠씩 몸살을 앓게 되며 건강을 위한다기보다 몸을 망가뜨리는 일이 자주 발생하다보니 진정한 산 꾼들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나 홀로 산행을 더욱 즐기게 되는 것이다.
몇 구비를 넘어서면 벗 고개가 나타나고 산허리를 두 동강으로 잘라낸 깊고 깊은 절개지, 목왕리에서 문호리로 통하는 지방도로에는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고 많은 차량들이 지나는 길목으로 철조망을 피해 도로를 가로질러 잡목을 헤치며 산 능선을 따라 100여m 전진을 하면 목왕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게 되고 청계산 정상 4,5km의 이정표를 지나 3-400m의 주능선을 2개 넘어 463봉에 올라서니 청계산이 지척에서 손짓하고 급경사 내리막길에는 로프가 길잡이가 되어 송골재를 향해 곤두박질을 친다.
소나무가 많아서 송골재라고 하지만 잡목들만 무성한 가운데 큰 소나무 한그루가 쉼터를 만들어주고, 친절하게도 이정표는 잘 만들었지만 험준한 오르막이 심한 능선길에서 4.5km 라면 아주 먼 거리로 시간상으로도 2시간이상 소요되는 것이 상식인데 아주 느린 행보에도 축지법을 쓰는 것도 아닌데 고개하나 넘으면 1km씩 줄어드니 이렇게 신기할 수가.
오르막 길섶에는 너구리길, 노루길, 청설모길, 다람쥐길을 알리는 앙증맞은 이름들이 마치 동화의 나라에온듯 안내판에 생태학적인 설명까지 자세하게 기록하여 힘들여 오르는 산길에 쉬엄쉬엄 다리쉼도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산 교육장으로 양평군 관계자들의 정성어린 보살핌에 감사를 드린다.
오늘의 기맥종주는 658m인 청계산을 정점으로 4-500m급의 능선을 오르내리는 완만한 산행이라는 대장의 설명에 얕잡아 보았지만 실제 산행을 하다 보니 오르내림이 심한 전형적인 육산으로 50m의 비알 길을 내려가면 앞에 보이는 봉우리는 100m를 올라가야 하는 힘든 코스로 460봉을 오르는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성큼성큼 내 앞을 질러가는 선두가이드의 모습을 바라보며 젊음이 부럽기도 하고 예전의 내 모습을 보는듯하여 흐뭇한 마음으로 열 걸음에 한번 씩 다리 쉼 하며 느림보 거북이의 경주를 계속한다.
산행시간 4시간 만에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청계산 정상에 올라서니 잘 다듬어진 잔디밭이 널찍하게 펼쳐지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한 몸이 되어 넓은 바다를 이루는 한강의 두물 머리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이며 내가 걸어온 발자취들이 능선 따라 파노라마를 이루며 한없이 이어져온다.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이 없고 한국의 마테호른으로 불리는 백운봉의 멋진 자태가 용문산의 등줄기로 이어지고 헹그라이더 활공장으로 더욱 친숙한 유명산이 민 대머리 누런 고깔을 눌러쓰고 다음 종주 길에 만날 것을 기약하는 듯 눈인사를 하는데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한 봄볕이 내려 쪼이는 잔디밭에 도시락을 풀어헤치고 곁들이는 동동주 한잔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30여분 간 꿈같은 휴식을 취하며 기다려도 선두그룹은 도착하지 않는다.
정상에서 직진하면 국수역으로 내려서게 되고 종주 길은 동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급경사 길을 내려가게 되는데 형제봉을 지나 10여 분간 진행을 하다 보니 노송이 몇 그루 서있는 쉼터에 서후리로 내려가는 희미한 등산로가 나타나지만 하산로 쪽으로는 리본이 없고 직진방향으로만 붙어있어 한동안 망설이다 아직까지 체력도 남아있고 서후리를 왼쪽으로 끼고도는 형상이라 길을 잊을 염려도 없겠고 그대로 직진을 하며 된 고개를 찾아 무명봉 몇 개를 넘다보니 말 고개 까지 오게 되었다.
오늘의 컨디션이라면 눈앞에 보이는 옥산을 넘어 농다치 고개까지도 충분히 갈수 있겠지만 하산지점인 서후리를 향해 5분정도 내려오니 임도가 나타나고 마을회관에 도착하며 17km의 종주구간을 6시간 10분 만에 완주하고 남은구간도 무사히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속에 새로운 각오를 다짐해본다.
한강기맥 (비슬고개 - 농다치까지)
용문산 1,157m 문례봉 992 m 유명산 862m 소구니산 800m
산행일시: 2004년 5월 20일 08시 15분 - 17시 산행시간 : 8시간 45분 산행거리 : 약 20km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 - 단월면,용문면,옥천면 가평군 - 설악면,서종면
한강기맥 종주만은 산악회와 함께 하겠다고 수없이 다짐을 하였지만 집안의 대소사로 시간이 여의치 않아 4,5월 두 달이나 불참을 하고보니 초반부터 계획이 어그러지게 되어 종당에는 포기하고 마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으로 궁리 끝에 나 홀로 산행으로 빈 공간을 메우고 다음 일정에 동참하겠다는 각오로 일주일 전부터 사전준비를 하며 예비지식을 습득하고 한강기맥의 구간 중에 가장 험준한 용문산을 통과하는 구간이라 긴장도 되고 정상의 군부대를 어느 방향에서 지나는 것이 유리한지 하산지점은 어디로 할 것인지 고민 끝에 통행이 적은 비슬 고개를 출발지로 정하게 되었다.
오늘의 구간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곳이라 새벽 일찍 일어나 상봉동으로 달려갔지만 05시50분에 출발하는 첫차는 떠나버리고 6시 25분차로 단월면으로 가는 도중에 용문산의 허리에 걸려있는 먹장구름이 마음을 답답하게 짓누르며 어렵게 마련한 기회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에 초조한 마음을 가눌 길이 없다.
운 좋게도 정류소 맞은편 슈퍼에서 렌터카를 빌려 타고 비슬 고개로 오르는 동안 남서풍의 강한 바람이 먹장구름을 동쪽으로 밀어내며 싸리봉의 짙푸른 녹음이 아침햇살에 반짝이며 답답하던 가슴을 말끔히 쓸어내리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장도의 발걸음을 내딛는다. 인적도 끊긴 비슬 고개는 공허로 운 바람만 불어오고 고개 마루의 좌측으로 산불 강조기간에 입산을 금지하는 입간판이 붙어있는 비상도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면 완만한 절개지가 나오고 낮 익은 표지기 들이 손짓하는 길 따라 숲속으로 들어서면 싸리봉까지 400여m의 고도차를 실감할 수 있는 가파른 오르막이 시작된다.(08시 15분)
20여 분간 안간힘을 쓰며 된비알을 오르다 완만한 능선에서 거친 호흡을 진정하며 몸을 추수 리 면 또다시 급경사가 나타나고 20여 분간 비지땀을 쏟은 후에야 싸리봉 정상에 오를 수 가있다.(8시 55분) 작은 돌무더기와 119긴급연락처 간판이 서있는 이곳은 지난가을에 도일봉에서 중원산으로 산행을 하면서 다녀간 곳이라 낮 설지가 않으며 진달래와 철쭉,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숲의 그늘 속에서 빼 꼼이 터진 등산로를 따라 무한정 걸어야하는 답답함이 배 너머 고개까지 연속되며 우측으로 90도 방향으로 진행을 하다보면 급경사 내리막이 싸리재까지 이어지고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싸리재에서 또다시 오르내림이 반복되며 이정표가 세워진 770봉이 중원산 갈림길인데 중원산 쪽으로 많은 리본이 달려있지만 이곳 까지는 안면이 있는 곳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잠시 휴식을 취하며 앞으로의 여정을 다시 한 번 점검해본다.(09시 38분)
우측으로 60도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되면 얼레지 지는 곳에 샛노란 야생화가 다투어 피어나고 바람결에 너울대는 곰 취의 춤사위에 꾀꼬리가 화답하는 숲속의 요정에서 한없는 행복감속에 무아지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다. 급경사 내리막길로 조개고개를 통과하면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삼각점이 있는 735봉은 용조봉에서 올라오는 정상으로 무성한 숲의 그늘에서 능선 길로 내려딛다 이상한 예감으로 뒤돌아보니 우측의 철쭉나무 가지사이로 빨간 리본이 고개를 내밀고.... 아 뿔 사 철렁 내려않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원위치로 빽 을 하여 길을 바로잡는다.(10시 32분)
주능선에만 올라서면 용문산의 정상이 길잡이가 되어 편안한 산행이 될 것으로 예상을 하였지만 막상 산에 들어서고 보니 울창한 숲속에 빠져 상황을 판단하기가 어렵고 지나온 봉우리들도 간간이 형체를 보여주는 고독감속에 긴장을 늦출 수가 없고 겹겹이 외워 싸고 있는 능선과 계곡이 태산준령의 위용을 과시하며 마루금의 오르내림이 산 꾼들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한다.
삼각점에서 한없이 내려앉는 벼랑길은 문례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두려움으로 다가오며 300여m의 고도차를 극복해야하는 난관 앞에 오금이 저려오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문례봉이 하늘위로 솟아오른다. 무뎌지는 발걸음은 천근의무개로 내려누르고 높디높은 문례봉을 향하는 발걸음이 애처롭기만 한데 용문산의 수호신인가? 길섶에 버티고선 용두목이 힘겨운 발걸음 쉬어가라며 자리를 잡아주고 가파른 산 비알에 배낭을 풀고 시원한 맥주로 갈증을 풀어본다. 천신만고 끝에 올라선 곳이 문례봉 갈림길. 밤 도깨비의 노란리본, 빨간 리본의 등산안내 표지기 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반겨주고 내친김에 정상에 올라섰지만 비닐조각에 그려진 안내문이 아니면 확인할 길이 없는 문례봉 정수리.
무성한 숲이 시야를 가리고 봉미산에서 올라오는 주능선이 이어지는 정점으로 언젠가는 걷고 싶은 곳이기에 유심히 바라보며 갈길 먼 행보에 발걸음을 재촉한다.(11시 07분)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면 갈현마을로 향하는 하산 로가 되므로 좌측의 내리막길로 방향을 잡아야 하고 십자로 안부를 지나 무명 봉을 넘어 문래재에 도착하면 지초난초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야생화단지가 펼쳐지고 나물 채취하는 약초꾼들의 구성진 가락이 계곡으로 울려 퍼지는 용문봉 갈림길을 지나 가파른 오름길에 진을 빼면서 안간힘을 쓰다보면 높다란 누대위에 전망대바위가 나타나고 육중한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12시 20분)
용문산 종주 코스에서 가장 좋은 전망대로 엷은 가스로 시야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지만 용문봉의 암봉 들이 용트림하고 발아래로 용문산 관광단지가 평화로워 보이며 멀리 중원산과 도일봉이 하늘 금을 이루고 문래봉 너머로 오늘 걸어온 길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녹 슬은 철조망 사이로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철쭉꽃향기에 벌 나비들도 자유롭게 넘나들건만 정상을 지척에 두고 돌아가야 한다는 아쉬움에 가슴 저미며 전망대바위에서 20여 분간 식사를 하고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으로 기맥종주꾼들이 아니면 얼씬도 하지 않는 철조망을 우측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시덤불 우거진 비알 길로 잠시도 방심 할 수 없는 긴장 속에 중간 중간 지뢰경고판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40여 분만에 정문 앞에 도착하니 빨리 내려가라고 호통을 친다.(13시20분)
다시 마루 금을 밟으며 뒤돌아보는 용문산의 정상은 천연요새로 공군부대의 중요 시설들이 밀집되어 있고 한반도를 지켜주는 불침번이요 파수꾼으로 든든한 마음, 흐뭇한 미소로 어려운 코스를 무사히 빠져나왔다는 안도감에 여유 있는 발걸음이 경쾌하기만 하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마루 금에는 표지기 들도 자취를 감추고 무성한 숲 사이로 임도를 넘나들며 넓은 공터가 있는 절 개지를 두 번 지나며 30여 분간 진행하면 시멘트기둥이 있는 910봉에서 밤 도깨비의 표지기를 만나는 반가움 속에 미지근하게 더워진 물도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 갈증을 풀어주고 내리막길로 내려서며 보이지 않던 리본들이 나타나 우측으로 돌아가라는 표지가 붙어있지만 돌아가는 길로 생각을 하며 진행방향의 내리막길로 10여 분간 신바람 나게 달리며 미심쩍은 생각에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이 사라사 계곡과 용 천사 계곡을 가로 지르는 능선으로 종주 길과는 너무도 멀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뒤돌아보는 910봉은 몇 개의 전위 봉을 거느리고 하늘높이 우뚝 솟아 다시 오를 수 없는 난공불락으로 결국은 이곳에서 종주 길을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움으로 수많은 번민 속에 마음을 진정하고 정상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전한다는 각오로 지친 몸과 마음을 추 수르며 가파른 오르막길을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돌아온 910봉은 말이 없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인간이기에 순간적인 판단이 幸, 不幸의 갈림길이 되니 어찌 한시라도 방심할 수 있겠는가? (14시 20분)
커다란 교훈을 가슴에 안고 빽 산행으로 소비한 30분을 보충하기위해 휴식시간도 줄여가며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보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는 심정으로 확인하고 또 하며 숲의 터널을 빠져나오면 옥천면에서 갈현리로, 군부대로 오르는 배너미고개가 나타난다. (14시 45분)
비슬 고개에서 배너미 고개까지 한 구간으로 하는 종주 팀들이 있고 보면 6시간 30분 만에 1차적인 목표는 달성한 셈이지만 시간의 여유도 있고 다음 말 고개까지의 구간이 남아 있으므로 최소한 농다치 고개까지는 종주를 하고 상황을 보아가며 말 고개까지 완주를 하든가 아니면 농다치에서 말 고개까지는 삼태봉에서 중미산으로 종주를 하며 보충할 생각으로 물 한 모금으로 휴식을 끝내고 유명산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는다.
포장마차 뒤로 임도를 가로막은 철 대문 왼편 숲속으로 들어서면 낮 익은 표지기 들이 손짓 을하고 평탄한 마루 금을 3분 동안 진행하면 조금 전에 대문이 잠겨있던 임도로 내려서게 되는데 고랭지 채소밭으로 통하는 길로 10여분 후에는 숲길도 끝이 나고 광활한 대지위에 펼쳐지는 수백만평의 고랭지 채소밭, 민 대머리 황토밭 이랑사이로 미로와도 같이 뻗어있는 임도를 따라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제자리걸음으로 제풀에 지친다.(15시)
아침부터 흐렸다 개였다 변덕을 부리던 날씨가 드디어 천둥번개를 동반한 소나기를 뿌리며 주위가 어둠속으로 뭍 혀 버리고 거센 비바람에 평화롭던 숲속의 산새들도 숨을 죽이고 인적이 끊긴 황량한 벌판 위를 걸어가는 몰골이 처량하지만 목적지가 정해져있고 2구간 완주라는 목표를 향해 발걸음은 계속된다. 하지만 용문산의 태산준령을 무사히 넘게 해준 날씨에 감사를 하며 감시초소를 지나 대부산 갈림길에 들어섰지만 악천후로 10분 거리에 있는 정상을 포기하고 피곤한 육신을 이끌며 악전고투를 하다 보니 활공장 정상에 이르게 된다.
평소 같으면 하늘을 날아오르는 헹그라이더의 묘기를 감상할 수 있겠으나 지근거리에 있는 유명산의 정상도 모습을 감추고 거세지는 비바람에 안간힘을 쓰며 언덕아래 나무숲속으로 피신을 한다. 비가 개이고 난 정상은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의 신비로움으로 더욱 아름다우며 사방 백리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기맥종주 최고의 전망대로 주위에 흐드러진 야생화가 지나는 길손을 유혹하지만 건너편의 소구니 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늦출 수가 없다.(15시55분)
울창한 숲속으로 접어들어 급경사 내리막길로 곤두박질치며 올려다 보이는 소구니산에 미리 겁을 먹지만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800m의 정상도 발아래 고개 숙이고 오늘의 어려운 여정도 마감을 하게 된다.(16시 22분) 아직도 농다치까지는 30여분이 남아있지만 내려가는 수월한 구간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숲길을 거닐며 770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 양평에서 청평으로 오가는 37번국도상의 농다치고개에 도착하며 20여km의 장거리구간을 8시간 45분 만에 주파를 하고 오늘의 산행을 마감하게 된다. ( 17시)
소나기를 맞으며 걸어온 고단함과 시간상으로도 무리가 뒤따를 것으로 판단을 하여 말 고개까지의 일정은 다음기회로 미루고 끝까지 따라주는 행운의 여신은 산책 나온 여인들의 자가용으로 양평 터미널까지 편안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돌보아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다.
한강기맥 (비슬고개-신당고개)
송이재봉 670m
산행일시 : 2004년 6월 27일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단월면 강원도 홍천군 - 서면
3월 28일 양수리에서 한강기맥 발대식을 한 후로 3개월 만에 본대와 합류하고 보니 감회도 새롭고 검은 피부에 건강미 넘치는 모습들을 대하고보니 반갑기 그지없다. 백두대간과 병행하여 산행을 하는 관계로 인원은 많지 않지만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 양평을 지나 단월면에 들어서니 송이재봉위로 걸쳐있는 뭉게구름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비 온다는 예보가 없었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비슬재에 도착하니 고개 마루에는 성황당을 지켜주는 장승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있고, 가파른 절 개지를 치고 오르는 건각들의 거친 숨소리는 조용한 숲속을 흔들어 깨우고 비지땀 흘리며 된비알 을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와 삼각점이 있는 소리산 정상이다. (9시 56분)
지난밤에도 비가 내렸는지 풀잎마다 이슬이 맺혀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숲 사이로 파고드는 아침햇살이 더욱 따가운데 오르락내리락 무명봉을 넘어서면 방촌리에서 하계터골로 이어지는 희미한 고개 안부를 지나게 되고 오늘의 종주구간에서 제일 높다는 송이재봉이 앞길을 가로막는다.(670m) 초반부터 된비알을 만났으니 체력안배를 위해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파른 오름길에 발자국과 호흡을 조절하며 큰 어려움 없이 정상에 올라섰지만 좁은 공터에는 그 흔한 표지석하나 없고 산악회에서 깔아놓은 비닐 표지로 확인을 하는 수밖에(10시 27분)
시원한 물로 갈증을 풀며 10분간 휴식을 하는 중에 떡갈나무를 때리는 빗방울소리에 발걸음을 재촉하며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서 임도와 만나고 곧이어 숲속으로 들어서는데 점점 더 거세지는 빗줄기속에 천둥번개가 앞길을 가로막는다.
배낭 카바를 씌우고 폭우 속을 걸어가는 몰골이 처량하기 그지없지만 쉽게 그칠 비가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행보를 계속할 수밖에, 어느새 등산화에도 물이 들어와 장단 맞추고 물에 빠진 새양쥐 처럼 온몸이 흠뻑 젖어 빗물이 눈으로 파고들지만 자연에 순응하는 순한 양으로 마음을 비우고 나니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한 리듬으로 속도가 빨라지고 562봉을 지나며 나 홀로 산행을 하게 된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운 폭우 속에서 방향감각도 상실 한 채 믿는 것은 오직 선행자들의 표지기. 빼 꼼이 틔워진 오솔길에서 갈림길마다 리본이 길잡이가 되지만 필요한 자리에 리본이 없으면 당황 을 하게 되는데 오랜 산행경험으로 축적된 노하우는 제집을 찾아가는 동물들의 예민한 촉각으로 산마루를 넘는 것이다. 산행개념도도 물먹은 솜뭉치가 되어 무용지물이 된지 오래되고 방향을 가늠하며 1시간동안 행군을 하는 중에 빗줄기도 가늘어지고 고개안부로 내려서며 284번 철탑을 확인하며 미로 속을 용케도 빠져나온 안도감으로 희열을 맛본다. (11시20분)
임도를 지나 다시숲속으로 들어서면 풀 섶에서 쏟아지는 물바가지 세례는 시원한 폭포수가 되어 원기를 회복시켜주고 비알 길을 내려서면 일차선 아스팔트길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밭배 고개로 단월에서 홍천의 굴업리로 넘나들던 지방도로인데 이제는 터널이 개통되어 찾는이 없는 쓸쓸한 고개 마루에 이따금 마루 금을 밟는 건각들과 산나물 뜯는 사람들의 휴식처로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11시 35분)
임도를 버리고 다시 숲속으로 들어서면 완만한 구릉지가 전개되는데 비도 완전히 그치고 따사로운 햇살아래 느긋한 행보를 하며 397봉에서 선두그룹을 기다리지만 종내 그들을 만날 수 없고 또다시 갈 길을 재촉한다.(11시 55분 -10분 휴식) 억새밭과 산딸기, 산초나무가 앞길을 가로막는 마루금은 언뜻언뜻 시야를 틔워주며 지루함을 달래주고 급기야 숲길도 끝이 나고 마루 금을 따라 개설된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12시20분)
널찍한 신작로를 따라 철탑들이 높고 낮은 산등성이를 타고 넘으며 끝없이 이어지고 278번 철탑아래서 심호흡을 하며 옆길로 새지 않고 제대로 마루 금을 밟으며 이곳까지 왔다는데 안도의 한숨을 쉬며 발걸음을 재촉할 때 한낮의 태양이 내려 쪼이는 임도는 짜증나는 구간으로, 젖은 옷이 훈김으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며 한증막의 열탕 속으로 끌어들이고 칭칭 감겨드는 바짓가랑이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타구니를 비벼대며 허물이 까지고 쓰라린 고통을 감수하며 통골 고개를 지나 277번 철탑을 통과하고 시멘트 포장이 끝나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다시 숲길로 들어서야 되는데 이곳에서 무작정 가다가 알바들을 많이 한다고 하니 주의를 해야 할 곳이다. (12시 40분)
잣나무가 무성한 오솔길은 푹신한 갈비까지 깔려있어 임도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기에 안성맞춤으로 완만한 경사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니 힘들이지 않고 무심결에 398봉을 넘어 오늘의 구간 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273번 철탑아래 도착하게 된다. 오늘의 종주구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탑과 동행을 하게 되는데 특히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철탑들의 행렬은 우리가 일구어낸 경제기적의 상징처럼 하늘높이 솟아오른 철탑들이 장관을 이루며 산과 계곡을 가로질러 용광로에 쇳물을 녹이고 산업현장에 불을 밝히며 우리가정에 행복을 안겨주는 물과 함께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으로 새삼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이제 신당고개도 멀지 않은 듯 동쪽으로는 다음 행선지인 갈기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너머로 마루 금에는 금물산이 희미한 자태로 유혹을 하며 올망졸망 이름 모를 봉우리들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끝간데없이 퍼져나아 간다. 이제 마지막으로 올라야할 408봉은 억새밭사이를 헤치며 오르는 길로 정상에는 표시도 없고 삼각점이 나 딩굴고 있는 것으로 확인을 하게 되는데 양평에서 홍천을 거쳐 설악산을 잇는 44번 국도에는 신나게 질주하는 차량들의 모습이 내려다보이고 진행방향은 좌측으로 마루 금을 따라 270번 철탑을 향하여 내려가게 되는데 참나무의 껍질을 벗겨놓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 13시52분 )
밑 둥에서 50여cm 되는 곳부터 2m 높이까지 뺑 둘러가며 가죽을 벗겨 놓았는데 처음에 한두 그루는 심술 사나운 인간의 소행으로 치부하였지만 길섶을 내려가며 미끈하게 잘생긴 나무마다 수십 그루가 똑같은 수난을 당하고 있으니 이것은 의도적으로 저지른 소행이 틀림없는데 무슨 연유인지는 몰라도 천벌을 받고도 남을 만행으로 자생력이 강한 수종으로 잎은 피워 올리고 있지만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마루 금을 밟고 있다.
종착점이 바라보인다는 안도감 속에 알바하기 쉬운 270번 철탑에서 우측 숲길로 올라서서 다음 철탑을 바라보며 내려가면 가파른 절개지가 나타나고 조심조심 내려서면 철탑아래서 좌측으로 희미한 길 따라 잡풀이 무성한 임도가 나타나고 2-3분 거리에 계곡으로 내려가는 듯 숲을 헤치며 잣나무숲속으로 들어서는데 경사가 아주심한 비알 길을 미끄러지듯 통과를 하면 시원하게 뚫린 44번국도가 눈앞에 펼쳐지며 건너편의 홍천 휴계소 너른 광장에 외롭게 졸고 있는 버스에 오르게 된다.
도상거리 15km에 6시간을 예상하였지만 5시간 만에 종주를 하고보니 아직까지 준족의 발걸음이 녹슬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마음이 한 � 부풀어 오르지만, 이것이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일주일에 3회 이상 중랑천 자전거도로에서 하이워킹을 한 것이 주효하여 한 시간에 6-7km의 속도로 걷기를 반복하다보면 올라가는 길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지만 오늘과 같이 경사도가 완만한 구간에서는 제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되며 앞으로도 체력을 유지하기위해 기본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14시 20분 )
한강기맥 (신당고개 - 상창봉리 고개마루)
갈기산 (685m), 금물산 (791m)
산행일시 : 2004년 7월 25일 산행시간: 9시간 30분 산행거리 : 약 20km
소 재 지 : 경기도 - 양평군 강원도 - 홍천군, 횡성군
지루하던 장마도 물러가고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삼복더위에 무박으로 산행을 한다는 것은 여간한 체력으로는 도전하기 힘든 난코스로, 진달래 피는 춘삼월 양수리에서 시작한 한강기맥 종주도 한여름의 무더위 속에 경기도를 지나 강원도 땅으로 접어들며 산세도 험해지고 장거리 구간에 탈출로도 만만치를 않아 준비를 하면서도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것이 아니다. 산행기점이 가까운 곳이라 느긋한 마음으로 10시30분 집결장소인 종로 5가에 나가보니 25인승 미니버스가 주인을 기다리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무박산행이 아무래도 엄두가 나지 않는가 보다. 출발시간을 훌쩍 넘기도록 기다려도 모두가 16명 불편한 의자에 웅크리고 토끼잠을 자고 있는 저들은 무엇을 위해 고생들을 자처하는지? 심야의 한강변은 휴가를 떠나는 차량으로 홍수를 이루고 선 잠속에 눈을 떠보니 홍천 휴게소.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에는 별도달도 몸을 숨기고 먹장구름이 가슴을 짓누르며 출발시간이 아직도 2시간이나 남아있지만 잠이 올 리도 만무하고 휴게소 앞마당에 둘러앉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며 비만 내리지 말라고 간절하게 소원을 빌어본다.
03시55분 홍천 휴계소 뒤쪽의 잣나무 숲속으로 들어서자 야심한 시각 불청객의 방문에 놀란 개들이 방정맞게 짖어대지만 인해전술로 맞서는 우리의 기세에 눌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고 물러서고 만다. 헤드랜턴으로 길을 밝히며 우측의 절 개지를 내려서자 임도가 나타나고 한 무더기를 이루어 진행하면서 오늘만큼은 절대로 선두에 나서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9시간이 넘는 길고도 지루한 곳으로 조금만 방심을 해도 등로를 이탈하는 복병이 무수히 도사리고 있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 이대장의 뒤를 따라 주위를 살피며 숲길로 들어선다.
대청봉을 수십 번 오르고도 설악폭포를 한 번도 구경 못했듯이 야간산행이란 무료하기 짝이 없지만 싫어도 해야만 하는 사정이 있기에 불빛에 드러나는 오솔길을 따라 399봉을 꿈결에
넘어 청운사 2.4km, 갈기산 0.8km의 이정표가 어둠속에서 우리를 반기고 가파른 비알 길을 치고 오르자 돌탑2기와 양평군에서 세운 표지석(685m)이 있는 갈기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05시 20분 )
15분간 휴식을 하는 동안 주위도 훤히 밝아오고 동녘하늘에 아침노을이 붉게 물드는 것으로 보아 비소식과 무관하지 않지만 미리부터 걱정할일도 아니고 서둘러 길을 재촉하며 새터 갈림길(갈기산0.2km, 신대마을 1.6km)에서 등로를 이탈하는 순간 총무의 지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좌측의 가파른 경사지를 내려서면 262번 철탑이 나타나고 597봉을 우회하여 소나무와 참나무가 즐비한 오솔길을 따라 오르락내리락 590봉에 올라 잠시 휴식을 하고 20여 분간 완만한 능선을 달리다보면 널찍한 임도가 나타나고 건너편의 260번 철탑을 지나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노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속에 바위가 듬성듬성 놓인 쉼터가 우리를 반긴다.( 06시30분)
시원한 음료수와 간식을 들면서 후미와 합류하는 동안 2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그렇게도 다짐을 했지만 어느덧 선두에서 길을 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거미줄 걷어내며 아침이슬에 바짓가랑이 젖는 줄도 모르고 사주경계 확실하게 259번 전주를 지나 10여분 만에 발귀현에 내려선다. (07시10분)
발귀현은 양평군 청운면 양지촌에서 홍천군 남면 신대리로 이어지는 지방도로인데 비포장으로 차량의 왕래도 별로 없는 한적한 곳으로 시원한 바람불어오는 고개 마루에 자리를 펴고 둘러앉아 막걸리로 입가심을 하며 곁들이는 아침식사는 산해진미 풍성한 성찬으로 3시간의 새벽공기 가르며 달려온 우리들만의 특권이다.(30분간 휴식) 화이트 벨리 입간판을 뒤로하고 우측의 절 개지를 치고 올라 소나무 숲속으로 들어서면 완만한 오솔길이 이어지는데 식곤증의 탓인가 포만감속에 발걸음도 느려지고 숨은 가빠오는데 희미한 등산로엔 잡목이 무성하여 팔다리를 부여잡고 할퀴어댄다.
10여 분간 숲길을 통과하고 앞에 나타나는 임도는 금물산 까지 오르는 난공불락의 관문으로 이곳의 고도가 300여m인데 금물산의 높이가 791m이고 보니 표고차가 500여m나 되는 수직상승을 해야 하는 오금이 저려오는 곳으로 현재시각이 오전 8시라고는 하지만 4시간의 산행으로 피로에 지친 몸으로 산굽이 돌고 돌아 자갈길과 시멘트 포장길을 30여 분간 돌아가면 천근만근 무너지는 몸을 추 수리며 우측의 절 개지로 올라 수 백 년 된 노송의 그늘 속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곳이 또한 장난이 아니다.
코가 땅에 닿도록 가파른 급경사에 무성한 산초나무와 잡목들이 온몸을 할퀴며 물고 늘어지는데 반팔차림의 팔과 목덜미에 쐐기까지 합세를 하니 불구덩이 지옥이 따로 없다. 안간힘을 쓰며 올라선 곳은 선들바람 불어오는 전망 좋은 시루봉 정상이다 (8시 35분)
우리가 지나온 발자취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선 고압선 철탑을 따라 마루 금에는 갈기산이 힌 구름을 머리에 이고 아득히 멀어 보이고 조금 전에 지나온 임도가 아흔아홉 구비 돌고 돌아 미로 속을 헤매는데 뒤편으로는 성채와도 같은 금물산과 성지봉이 우리의 어깨를 짓누르며 오금을 저리게 한다. 발밑 풀 섶에 숨어있는 삼각점으로 502m의 위치를 확인하고 달콤한 휴식을 취한 뒤 또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지만 무성한 산초가시와 억새풀 산딸기 넝쿨이 뒤엉킨 등산로는 여름 내내 오간 사람들의 흔적도 없이 정글을 헤치며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 피로에 지친 몸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등산로 주변으로 벌들의 방해도 없고 뱀들도 나타나지 않아 무사히 전망 좋은 바위봉(648m)에 올라서게 되는데 아래로 수 십 길 벼랑이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지척에 있는 금물산 까지는 가파른 오르막이 연속된다.
금물산까지만 오르면 힘든 고비를 넘긴다는 희망으로 사력을 다해 안간힘을 쓰며 바위능선을 넘어서니 아늑한 쉼터가 나타나는데 이곳이 성지봉과 금물산의 갈림길로 직진을 하면 성지봉으로 1분 거리에 태양열 전지 안테나가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면 잡목사이로 우리가 힘들여 올라온 능선들이 아스라이 내려다보이고 삼복더위 속에서도 해냈다는 자부심으로 희열이 넘쳐흐른다.(10시 20분)
되돌아 내려와 갈림길에서 지근거리에 있는 금물산은 경기도와 강원도의 분수령으로 양평군과 홍천군, 횡성군이 만나는 꼭지 점으로 상징적인 봉우리인데 잡목만 무성 한채 이름표하나 달지 못하고 푸대접을 받고 있는 연유는 무엇일까? 쉴만한 장소도 없는 정상을 지나쳐 10여 분간 북사면으로 내려서면 좌측으로 90도 꺽어지는 갈림길 쉼터가 나타나고 이곳에서 먹거리 마실 거리 모두 풀어헤치고 오늘의 종주를 자축하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두어 지며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한다.(30분간 휴식)
그동안 잘 참아오던 날씨가 드디어 우리의 발길에 비를 뿌리고마니 이래서 이번 종주 길은 비와 불가분의 관계로 그래도 정상을 지나 비를 만나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배낭 속에 간직하고 있는 우비를 챙겨 입으며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등산로를 따라 발걸음을 재촉한다. 천지개벽이라도 하려는지 세차게 몰아치는 빗줄기속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물에 빠진 새양쥐가 되어 아무생각 없이 오로지 목적지를 향해 내 달릴 뿐이다.
금물산을 지나 또다시 오름길이 있다는 생각을 미 쳐 못하고 내려가는 길에만 정신을 팔다보니 또다시 792봉이 앞길을 가로막고 있으니 속된말로 죽을 맛이다. 철탑을 지나 전망대 바위에 올라섰지만 빗속에 흐린 장막을 드리우고, 깔딱 고개 오르는 발길은 한발에 두 번씩 미끄러지며 애간장을 태우고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 심호흡을 할 겨를도 없이 좌측의 급경사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11시 50분)
임도로 내려서 247번 철탑을 지나 다시 숲속으로 들어서면 잡목이 계속되고 다리에 휘감기는 바짓가랑이가 쓸리며 허벅지가 아려오기 시작한다. 떼어놓는 걸음마다 고통의 연속으로 지친 몸이 점점 허물어지며 사서하는 고생이라고 하지만 이런 고통을 당하며 무슨 보람을 찾겠다는 것인지 회의를 느끼며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기에 발길을 멈출 수가 없다. 475봉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가파른 절개지가 앞길을 가로막고 로프를 설치해야만 내려 설수 있는 곳으로 다시 숲속으로 들었다가 임도로 빠져나와 계속 내려가도 되지만 마루금을 타야하는 사명감으로 또다시 숲길을 찾아 15분을 지나면 무선 송신탑이 있는 410봉 임도로 내려서게 된다.(13시 10분)
이제 상창봉리 고개 마루도 지척에 내려다보이고 그 머나먼 길을 악천후 속에서도 무사히 종주를 하였다는 안도감에 그동안의 고통도 봄바람에 눈 녹듯 사라지고 다음의 종주길인 삼마치 고개로 눈길이 가는 것은 산 꾼들의 씻지 못할 고질병이 아닌가? 홍천에서 양덕원으로 이어지는 494번 고개 마루에는 우리가 타고 갈 버스가 기다리고 새벽부터 시작된 종주 길은 9시간 30분의 대장정을 마감하며 우리들만의 행복한 뒤풀이 시간으로 이어진다( 13시 25분)
한강기맥 (상창봉리 - 새목이재)
오음산(930m), 만대산(670m), 응곡산(603m), 덕구산(652m)
산행일시: 2004년 8월 22일 산행시간 : 11시간 20분 (휴식시간 2시간 포함)
소 재 지 : 강원도 홍천군 - 홍천읍, 화촌면, 동면 횡성군 - 공근면 산행거리 : 약 27km
메기(태풍)가 지나 간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건만 전국적으로 비소식이 전해지고 장거리구간 탓인지 참가인원도 점점 줄어들어 25인승 심야버스에도 좌석이 널널하게 남아도는 13명. 하지만 정예의 용사들로 구성된 우리는 늘 상 동반하는 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56년 만에 올림픽 8강에 오른 축구경기에 관심이 집중되어 새벽 1시30분 강원 휴계소에 도착하여 2시30분에 시작하는 아테네 올림픽 중계 팀에 눈과 귀를 모으고 파라과이와의 경기에서 월드컵 4강의 신화가 재현되기를 기대하지만 지나친 욕심일까?
1대0으로 지고 있는 전반전이 끝 난 뒤 오늘의 들머리인 494번 고개 마루에 도착하여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며 응원을 하였지만 우리선수들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실력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3대2로 석패하고 말았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선수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며 05시 스케줄대로 동쪽의 기맥을 향하여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어둠속의 산행이지만 축구경기로 1시간 늦게 출발한 탓으로 임도를 지나 590봉에 올라서니 먼동이 터오고 계곡을 타고 오르는 안개 속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비가내릴 것에 대비하여 스피치까지 하고 배낭 카바를 씌웠으니 무엇이 두려울 소냐.
빗속에서도 우리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모르고 홍천에서 횡성으로 연결하는 5번국도의 지하터널 개통으로 인적도 끊긴 삼 마치(06시 30분)에 도착하여 전열을 정비하며 몇 년 전만해도 이곳을 지나는 차량들로 문전성시를 이루던 화려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페 허가 되어버린 휴게소를 바라보며 격세지감을 느끼며 콘크리트 도로위로 새싹이 돋아나고 무성한 숲으로 돌아가는 회귀본능의 순환법칙을 다 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동료들의 가뿐 숨소리만이 적막을 깨트리며 590봉 헬기장에 도착하면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함을 더하며 오음산 정상이 화려한 날개 짓으로 우리를 유혹하고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심심찮게 나타나는 암 봉을 타고 넘으면 깔딱 고개 비알길이 앞을 가로막는다. 하기야 오늘의 길고긴 구간의 주봉으로 930m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으니 호락호락하게 정상을 내어 줄 수야 없겠지.
비지땀 흘리며 암릉을 타고 오르면 정상은 저만치 도망가고 휘늘어진 노송아래 펼쳐지는 전망대 바위는 골골이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무릉도원을 연출하며 지난번 지나온 능선들이 발자취 따라 아련히 펼쳐진다. 무성한 갈대숲으로 헬기장도 몸을 숨기고 커다란 바위에 페인트로 덧칠을 한 오음산 정상은 (실제는 군부대가 있는 곳이 정상임) 세찬 바람과 함께 안개 속에 가려 어두운 장막으로 안타까움을 더한다.(7시55분)
막초를 곁들이는 간식으로 후미를 기다리며 30분간 휴식을 하고 우측 길로 내려서면 사거리안부가 나타나는데 홍성과 횡성의 갈림길은 일반인들의 하 산로이고 직진으로 벼랑길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타나고 군부대가 자리 잡고 있는 정상은 난공불락의 요새로 벼랑위에 우뚝 솟아 위압감을 더하며 기맥 꾼이 아니면 접근조차 하지 않는 철조망 사이 길은 무성한 잡초 속에 바닥에는 무수한 철조망의 뭉치들이 흩어져있어 긴장감을 더한다.
밤 고양이 숨어들듯 날쌘 동작으로 철조망에 달라붙어 온갖 장애물과 씨름하는 15분간. 간담도 서늘한 벼랑길을 통과할 때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해야 하고 잠시 후 조명지뢰, 크레모아의 경고판 앞에서는 오금이 저려온다. 가까스로 안부에 도착하여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이곳에서 능선 따라 직진을 하면 상창봉리로 내려가는 하산로 이므로 철조망을 따라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정문이 있는 곳까지 가야하는데 계면쩍은 웃음으로 보초서는 병사에게 통과의뢰를 하고 임도를 따라 진행 한다 (정문통과 09시)
오늘의 종주 길에서 가장 편안한 임도가 능선과 나란히 진행하는데 포장과 비포장 길로 이어지는 완만한 하산 길에서는 좀 전의 숨 막히는 철조망통과를 자축이라도 하려는 듯 주위에 펼쳐지는 전망도 좋아 소풍 나온 이이들같이 마냥 즐겁기만 하다. 임도를 따라 30여분을 내려오면 계곡 쪽으로 우회전하는 임도를 버리고 절개지에 희미한 발자취 따라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는데 리본이 없으니 주의해서 살펴야하고 잠시 후에 672봉의 정상에 올라서면 평화로운 어둔리 마을이 펼쳐진다.(09시 32분)
가파른 벼랑길을 숨 가쁘게 내려서면 잡목이 무성한 오솔길에 방향감각도 잊은 채 선 답자 들의 발자취를 따라 590봉 556봉을 지나 능선분기점에서 좌측능선으로 진행하다 다시 좌측으로 잡목이 무성한 556봉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는 1988년에 재설한 홍천430의 삼각점이 있으며 발아래로 홍천에서 원주로 이어지는 중앙고속도로의 시원한 질주가 우리의 뻗어 나아가는 기상을 대변해주는 듯 가슴속이 후련하며 올망졸망한 능선들을 치고 달리면 작은 삼마치가 잡초 속에 외로움을 더하고 도로 기념비에는 1974년 11월 공병부대에서 이 길을 개통하였다는 이정표가 있지만 중앙고속도로의 개통으로 이곳 또한 버림받은 길이 되고 말았으니 세월의 무상함을 일깨워준다.(10시05분 )
10여 분간 땀을 식히며 절벽과도 같은 앞산을 바라보면 오금이 저려오는데 이제부터는 체력보다는 지구력으로 난관을 돌파해야 하는 곳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산 비알을 기어오른다. 구슬땀 흘리며 올라선 630봉에는 시원한 바람이 반겨주고 굽이굽이 이어지는 마루금은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심심찮게 암릉길도 나타나며 직선거리로는 수 백 미터에 불과한 길을 물길피해 능선 따라 수km를 돌고 돌아 1988년에 재설된 홍천 307삼각점을 확인하며 739,6봉에 안착한다.(11시 10분 - 20분간휴식)
갈증에는 막걸리가 최고인기라
시원한 막초한잔에 원기를 회복하고 710봉을 향하는 마루금은 바위와 소나무가 적당히 어우러진 완만한 능선으로 마음의 여유를 갖고 지나온 길도 뒤돌아보며 바람결에 710봉을 지나 새벽6시 새목이 고개에서 출발했다는 인천의 기맥꾼들과 반가운 만남으로 인사를 나누고 표시도 없는 만대산은 임도에 내려서서야 지나온 것을 확인하게 된다.(12시20분 -20분간 식사)
홍천군에서 세운 자연보호 입간판 앞에 자리를 잡고 옆 사람의 눈치 볼 겨를도 없이 은박지에 쌓인 김밥으로 허기를 채우기에 바쁘다. 엊저녁에 식당에서 산 것인데 쉬었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지만 다행이 꿀맛 같은 김밥을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하고 고이 간직한 고량주까지 한잔 곁들이니 이 세상 무엇이 부러울 소냐?
솔바람 불어오는 나무그늘에서 몰려오는 식곤증으로 졸음이 쏟아지는데 팔베개 하고 한잠 늘어지게 잤으면 좋으련만 아직도 갈 길이 10km나 남아있으니 한가하게 여유를 부릴 수도 없고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며 절 개지를 치고 올라 마루금 따라 발길을 옮겨놓는다. 산기슭의 무덤 옆으로 오솔길 따라 터벅터벅 걷는 발길이 무겁기만 한데 8월 하순의 열기는 대지를 녹일 듯 후끈 달아오르고 천근만근 무너져 내리는 몸을 주체 못하여 비몽사몽간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갈증 난 목을 축이기에 여념이 없다.
526봉을 지나 ┬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다 나오는 정점이 570봉으로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숲속에는 천수를 다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고사목들이 즐비하게 쓰러져 한줌도 안 되는 인간들의 헛된 욕심을 비웃는 듯 경건한 마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한다. 570봉을 지나 분기점에서 좌측 외길로 직진을 하다 십자로 갈림길이 나타나ㄱ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사면 길을 치고 오르면 무성한 숲속에 빼 꼼이 터진 응곡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13시 50분 )
정일 315, 1989년에 복구로 표시된 삼각점으로 정상을 확인하게 되는데 강원도 오지의 첩첩산중에서 북쪽의 공작산만이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고 동쪽의 봉복산, 태기산, 남쪽의 치악산은 어림짐작으로 가늠을 할뿐이다. 정상에서 내리막길로 줄달음치면 좌운리와 노천리를 잇는 개고개가 나타나는데 (14시10분) 이곳도 길손의 발걸음이 뜸한 곳으로 잡초만이 무성하고 높지 않은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좌측방향으로 뚜렷한 길을 따라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22봉 정상에 오른다. 또 다시 이어지는 완만한 능선 길에는 등산로도 뚜렷하고 좌측 내리막길을 가다보면 방심하기 쉬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희미한 우측 길로 들어서야한다.
우측 길에서 100m쯤 전진하면 방화선이 나타나고 군부대에서 새로이 철조망을 가설하여 안쪽으로는 시원하게 펼쳐지지만 우리가 걷는 길은 무성한 억새들과 산딸기들이 앞길을 가로막는 곤혹스러운 구간이다. 철조망 따라 30여 분간 풀숲을 헤치며 전진하면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630봉에 도착하게 되는데 이곳에서는 철조망을 버리고 우측 소나무가 무성한 숲속으로 들어서면 리본도 많이 있고 등산로가 비교적 뚜렷하다.(15시05분)
630봉에서 내려가는 비알길이 더 겁이 나는 것은 그만큼 앞산의 높이가 높아 보이기에, 헬기장을 지나 고사목을 헤치며 안부에 도착하여 바라보는 앞산은 넘기 힘든 철옹성으로 풀 섶에 주저앉아 비상으로 간직한 토마토 화채를 펼쳐들었다.
프라스틱 용기에 담겨있는 토마토는 먹기 좋게 저민 후에 새빨간 것이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맛깔스런 영양식이다. 젓가락도 필요 없이 땀에 쩔은 손가락으로 입안에서 넣으면 살살 녹는 이 맛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토마토는 탈진된 나의 몸에 활력을 불어넣어 가파른 630봉도 큰 어려움 없이 올라서게 된다.
사실은 이곳이 630봉인지 덕구산인지 확신이 서지 않지만 올라오는 길목에는 많은 리본들이 붙어있는데 막상 주능선의 ┬갈림길에는 아무 표시가 없어 좌우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난감하여 동분서주하며 알바를 하다 좌측으로 300여m를 진행하니 그제서 야 리본도 보이고 곧이어 덕구산정상을 확인하게 된다.(15시 35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보는 정상은 무성한 숲에 가린 공터로 정상 표시판도 없이 북사면 하산 길로 무수히 많은 리본들이 오늘의 산행을 축원하는 듯 바람에 나부끼고 내려구르듯 가파른 벼랑길을 기어 내릴 때, 소나무와 낙엽송의 진한 향기 속에 피로한 심신을 추 수리며 몇 년 전 지리산 당일종주이후 가장 길고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기맥종주를 완주할 수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감사하며 귓전에 들리는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진군의 나팔소리와도 같이 활기를 불어넣는다.
마지막으로 치고 오르는 475봉이 힘들지 않은 것은 대망의 종착점이 발아래 펼쳐지고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꽃길 따라 새목이고개에 도착하며 도상거리 22km, 산행거리 27km를 11시간 20분 만에 완주하며 나의 체력에 자긍심을 갖는다.
한남 금북정맥 그 정점에서
덕성산(519m),칠현산(516m),칠장산(492m),도덕산(366m)
산행일시 : 2003년 12월 5일 산행시간 : 5시간 10분
소 재 지 :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삼죽면, 죽산면 충북 진천군 만승면
한 장 남은 달력만큼이나 바쁜 12월 오늘저녁에도 송년모임이 있어 멀리 가지는 못하고 오래전부터 눈여겨 두었던 안성에 있는 칠장산으로 마음을 정하고, 일정이 너무 빡빡하여 새벽부터 서둘러 행장을 꾸리고 고속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여 안성행에 몸을 싣고도 세심한 점검을 한다. 안성에서 사흥리로 들어가는 시내버스(어제 전화로 확인), 덕성산에 대한 들머리와 도착지점, 중간에서의 탈출로, 되돌아오는 차편, 모든 것이 일정대로 순조롭게 진행이 돼야 할 텐데, 나 홀로 산행에는 이골이 났지만 매번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가 없다.
새털구름 속으로 떠오르는 태양은 아름다운 아침노을을 만들어내지만 옛 어른들은 저녁에 비가내릴 징조라고 말씀들을 하신다. 하지만 현재는 맑게 개어있으니 부질없는 생각은 털어버리고 한시간만에 안성에 도착하여 물어물어 구 주택은행 앞에 도착하여 사흥리행 버스에 오르고 보니 이고장의 이름이 안성맞춤 이라고 출발부터가 아주 순조롭게 진행이 된다. 20여분 만에 금광저수지를 지나 사흥리 종점에 내리니 이방인을 맞이하는 개들의 울음소리에 촌 노가 고개를 내밀고 덕성산 산행 길을 여쭈어보니 한 겨울에 산은 무엇 하러 찾노?
의아해 하면서도 계곡으로 타고 오르라고 일러주신다.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서둘러 계곡으로 들어서니 잘생긴 소나무 한그루가 눈길을 끌고 무덤 뒤편으로 빛바랜 리본이 있어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올라서니 등산로는 뚜렷하지만 가을 내내 사람들이 다닌 흔적이 없이 수북이 쌓인 낙엽을 헤치며 서서히 고도를 높인다. 초겨울의 싸늘한 맞바람 속에서도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선 곳이 임도(고압선 철탑공사를 위해 산허리를 돌며 도로가 나있다), 정말로 맥 빠지는 일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절 개지를 치고 오르면 희미한 등산로에 산초나무 가시와 잡목들이 앞길을 막으며 쌓인 낙엽으로 행보가 마냥 느려진다. 하지만 산세를 보면 이곳이 지름길이라는 확신에 주능선을 향해 쉼 없이 오르다보니 1시간 만에 세찬바람이 불어오는 안부에 올라서게 되고 앞에 솟아오른 봉이 덕성산이 확실하다. 자신에 찬 의지로 한달음에 올라선 곳이 덕성산으로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탑위에는 부부 탑이라는 팻말이 세워져있는데 동쪽으로는 광혜원으로 가는 능선이고, 북쪽으로 뻗어나간 칠현산이 아득히 바라보이며 남쪽으로 금북정맥이 힘차게 요동을 친다. ( 10시35분)
가파른 비알 길엔 수북이 쌓여있는 낙엽이 발길에 걷어 채이고 인적 없는 산하에 이 한 몸 거칠 것이 없는데 곰 림을 지나 11시 5분 칠현산 정상에 올라서니 정상 표지석과 아담한 돌탑이 가지런히 놓여있는데, 칠현산은 본래 아미산으로 불려오다가 본 절을 창건한 혜소국사가 일곱 악인을 교화제도한 뒤로 개명을 하고 덕성산에서 관해봉까지 하나의 이름으로 칠현산 칠장사로 불려오다가 이조말엽부터 봉우리마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여 칠장산 이라는 지명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도 찍고 간식을 들며 20분간 휴식을 하고 여유로운 몸짓으로 네 활개 치며 나 홀로산행의 진수를 만끽하며, 급경사 길을 썰매 타듯 엉거주춤 내려서면 잘록한 곳에 쉼터가 있고 칠장산의 새로운 명물인 부부칠순 기념돌탑이 있다. 돌 하나하나에 정성이 깃들여있고 가지런히 쌓아올린 탑 속에는 노부부의 건강과 두 손 꼭 잡고 오십여 년 동안 살아오신 아름다운 심성도 함께하고 있으니 이곳을 지나치는 이들에게 큰 교훈이 되지 않을까? 내려온 만큼 아득하게 올려다 보이는 산마루, 고진감래의 큰 뜻을 안고 한발 한발 각인을 하듯 올라서니 시원스레 펼쳐지는 전망이 너무나도 좋다.(11;48)
조금 직진을 하면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는데 북쪽으로는 칠장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칠장사로 내려가는 길인데 오늘의 행선지 중에서 꼭 들려야할 곳이라 사찰 쪽으로 내려서면 주위의 나무들은 모든 잎 새를 떨 구고 앙상한 가지를 드러낸 채 초겨울 세찬바람을 맞으며 을씨년스러운 모습인데 푸르름을 간직하고 있는 산죽의 고고한 자태가 더욱 돋보인다.
산죽 군락지를 7-8분간 내려가면 아담한 나한전이 나타나고 지붕위로 소나무가 햇볕가리개 형상으로 건물을 보호하고 있으며 그 옆으로 혜소국사비가 전각 안에 안치되어있다. 평일이라 일반인의 발걸음이 뜸한 칠장사는 그 옛날 후미지고 길이 막힌 곳으로 외침 때 사서보관의 최후선택지였으며 주지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대웅전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산세가 칠장산 정상을 주산으로 우뚝 솟아있고 좌청룡으로 한남금북정맥이 힘차게 뻗어 내리며 금북정맥의 칠현산에서 시작된 우백호가 세 겹으로 좌청룡의 꼬리를 감싸 안으며 외부에서 들어오는 길이 보이지 않고 밖으로 빠져나가는 물길이 보이지 않는 천혜의 명당자리로 칠장교 앞을 가로막고 있는 매봉재가 안산이 되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겹겹이 에워 쌓인 연꽃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20여 분간 주지스님으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서둘러 내려왔던 그길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헬기장에 오르면 지척에 칠장산 정상이 있는데 (삼각점 표시로 확인)그곳은 무성한 잡목으로 전망이 안 좋아 다시 헬기장으로 내려와 산세를 굽어본다.(12시50분) 남산에 올라 시내를 굽어보면 헤아릴 수없이 많은 집들이 즐비하지만 큰길 따라 번지수가 정해지고 나름대로 질서가 있드시 전국토의 7할이 넘는 수천수만의 산들도 백두대간이라는 등줄기를 중심으로 13개 정맥으로 나누어지고 사이사이 가지를 치며 그 끝에 무수히 많은 산들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서있는 헬기장이 무성한 억새밭으로 500여m도 채 안 되는 평범한 곳이지만 산에 대한 관심을 조금이라도 갖고 있다면 세 정맥의 분기점으로, 속리산의 천황 봉에서 시작된 한남금북정맥이 서북쪽으로 뻗어 내리며 청주의 금당 산성을 거쳐 충북 북부내륙을 지나 음성의 보현산을 솟구쳐 올리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맥을 낮추다가 걸미 고개를 거쳐 칠장산 에서 마감을 하고 이곳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갈라지는데 북서쪽으로 해발 200여m 내외의 산들이 이어져 한강본류와 한강남부 유역의 분수령을 이루며 도덕산 - 녹배고개 - 국사봉 - 함박산 - 광교산 - 성주산 - 계양산 - 필봉산을 거쳐 김포의 문수산까지 이어지는 한남정맥과 남서쪽으로 칠현산, 덕성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은 240km의 긴 여정으로 경기도 남부와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으로 내려와 다시 서북으로 오서산에 이르러 보개산, 수덕산, 가야산에서 서쪽으로 팔봉산을 거쳐 백화산, 지령산을 지나 안흥진에서 마감을 하게 된다.
세 갈래의 분기점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강원도나 충청도의 높고 험한 산세는 아니지만 낮으마 하면서도 부드러운 육산으로 끊어질듯 이어지는 능선사이로 기름진 평야와 사람들이 살기 좋은 양지바른 언덕에 촌락을 이루며 평화로운 정경을 자아내고 있다. 우리나라 산의 지형을 세분한다면 2대간과 13개 정맥이 있는데 그중에서 3개 정맥의 분기점이 되는 곳은 이곳 칠장산과 금남호남정맥이 끝나고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전북의 진안군과 완주군의 경계에 있는 주화산 2곳뿐이며 대동맥이 뻗어나간 중심점으로 이런 소중한 분수령에 안내문하나 없으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제 오늘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남정맥을 바라보며 북쪽으로 종주 길에 들어서는데 좌측으로는 세븐힐스 cc와 우측으로 안성골프장의 철조망이 주능선을 따라 토끼몰이 하듯 둘러쳐저 관해봉까지 이어지니 산의 허리를 결박당한 한남정맥이 잘리고 패이고 할퀴고 상처투성이로 언제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지 안타까운 심정이다. 정상표시도 없는 관해봉에 도착하니 13시05분 낙엽이 수북이 쌓인 안부에 자리를 잡고 15분간 느긋한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일정을 확인해보니 3시까지 삼죽면 버스승강장에 도착하면 서울 가는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을 하고 도덕산을 지나 녹배 고개까지 5km남짓 남아있지만 중간에 탈출로가 있으므로 마음 편하게 도덕산을 향해 출발을 한다.
한남정맥의 주능선인 이곳이 북으로 올라갈수록 고도가 낮아지며 유순한 산길에 조깅하듯 스피드를 내며 무명 봉을 몇 번 넘다보니 14시에 도덕산 정상에 올라서고 손바닥만 한 표찰이 정상임을 확인시켜주는 반가움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지척에 있는 녹배 고개를 향해 줄달음친다. 14시15분 죽산면과 삼죽면을 잇는 비포장도로가 산허리를 가로질러 절 개지를 만들고 로프를 잡고 내려가니 이곳이 그 유명한 녹배 고개로 옛날에는 안성과 여주를 왕래하던 고개 마루로 많은 애환을 간직하고 있겠지만 지금은 오가는 사람도 없이 초겨울의 찬바람만 나그네의 옷 속을 파고든다.
다시 급경사 절 개지를 따라 북쪽능선으로 올라서니 잎새 떨군 활엽수림 사이로 길이 나있고 10여 분간 직진을 하면 일죽IC 에서 안성으로 들어오는 4차선 38번국도가 앞을 가로막고 차량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오늘도 무사히 예상대로 완주를 했다는 자부심에, 흐믓한 마음으로 북쪽으로 줄달음치는 한남정맥의 줄기를 바라보며 언젠가는 그 길을 따라 걸어보겠다는 다짐을 하며 후두 둑 떨어지는 빗방울이 정겹게만 느껴진다.(14시30분)
도일봉(863m), 중원산(815m) 종주길
산행일시: 2003년 10월 7일 산행시간: 6시간 15분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산행거리: 약 11km
하늘에는 별이 초롱초롱,
상봉터미널로 향하는 마음은 부풀어 오르고, 아직도 어둠이 주위를 맴도는 06시 30분 속초행 직행버스에 몸을 싣고 눈을 지그시 감는다. 팔당대교를 지나며 강에서 피어오르던 안개가 양수리부터는 지척을 분간할 수 없는 오리무중으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상상의 나래를 펴던 파노라마가 안개 속에 휩쓸려 헝클어지고 마니 낙심천만이다.
유난히도 비가 많았던 여름이라 산행길마다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 비를 동반하는 고통으로 어려움이 많았는데 오늘은 청명한 가을 하늘아래 즐거운 산행이 될 줄 알았더니 심술부리는 안개로 마음이 착잡하기만 하다. 양평을 지나 용문에 도착하니 07시 30분, 짙은 운무 속에 조용히 잠든 저자거리가 을씨년스럽고 표 파는 아주머니가 게슴츠레 잠속에 취해 물어보는 말대꾸도 귀찮은 듯 손가락으로 시간표를 기리 킨다.
하루에 4번씩 다닌다는 중원리행 버스는 9시에나 있고 용문사행은 30분이나 기다려야 하기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거금을 투자하여 택시를 이용할 수밖에, 구수한 택시 기사의 말속에 걱정 마셔유! 안개는 낮은 곳에만 끼어있으니 산위에 올라서면 멋있는 구경거리가 되겠구먼유. 햇살이 푹 퍼지면 안개는 꼬리를 감추듯 줄행랑을 친다니께유.
이 런 이런 ....
산 꾼을 자처하던 내가 이런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고민만 하고 있었으니, 활짝 개 인 마음으로 중원리 허병석씨 집 앞에 도착하니 기사의 말대로 안개는 슬슬 꼬리를 감추고, 계곡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뚜렷하여 여유를 부리며 골짜기로 10여분을 들어서니 요란한 굉음소리가 들리며 절벽 아래로 아담한 중원폭포가 모습을 나타낸다. 폭포의 규모는 보잘것없지만 용소에 넘치는 물이 어찌나 맑고 깨끗한지 푸른빛이 감도는 용소의 깊이를 가늠할 수없이 투명하며 싱그러운 공기가 골짜기를 가득 메우고 길손을 유혹한다.
나 홀로 산행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지도의 숙지와 지나치기 쉬운 점하나라도 유심히 살피며 계류를 건너는 횟수도 확인을 하고 설명서에 나온 시간도 꼼꼼히 챙겨야한다.
길섶의 나뭇가지마다 액땜을 하는 성황당의 깃발처럼 꼬리표가 주렁주렁, 길라잡이가 되어 느긋한 마음으로 20여 분간 골짜기를 거슬러 올라가니 먹뱅이골 합수곡 삼거리가 나타난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므로 복장을 다 시 한번 점검하고 급경사에 너덜지대가 펼쳐지는 먹뱅이 골로 접어드니 지척을 분간할 수없는 울창한 활엽수림이 앞길을 가로막고 빼 꼼이 틔워진 등산로를 따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피톤치드의 세례를 흠뻑 받는다. 가파른 오름길은 그칠 줄 모르고 너덜지대 바위들이 날카로운 이빨로 정강이에 칼질을 하며 한발 한발 올라가는 주능선에는 스릴 넘치는 암릉이 앞길을 막는다.
여느 때 같으면 솜씨 좋게 호기를 부려 보겠지만 나 홀로 산행에서 안전이 제일 이므로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우회로를 따라 사방이 확 트이는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니 중원산 줄기가 운무 속에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인기척 하나 없는 절해고도에서 나는 완전히 자유인이 되어 모든 사물이 내 것 인양, 나를 위해 존재하는 듯, 착각 속으로 빠져든다.
통신 탑을 옆으로 돌아 밧줄이 걸려있는 암봉을 올라서면 도일봉 정상석이 높다란 누대위에 안치되어 멋스럽게 보이지만 안타깝게도 역광이 되어 아쉬움을 더 한다 (9시30분) 오늘의 산행 중에 가장 높은 곳. 오대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이 서쪽으로 수 백리의 산맥을 이어오며 웅장한 용문산을 일으켜 세우고 그 지맥으로 중원계곡을 품고 두산이 동서로 3km의 거리를 두고 마주보고 있으며 말발굽 형태를 이루며 연결되어있다.
예정된 시간대로 진행되는 산행에 만족하며 여유 있는 걸음으로 싸리봉에 올라 시원한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간식을 들고 있으려니 인천에서 왔다는 산 꾼을 만난다. 주중에 호젓한 산길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어서 반가움에 인사를 하고 싸리재까지 동행을 하며 자기는 경력이 3년으로 일행들과는 주력이 맞지 않아 앞질러가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내 앞길을 질러간다.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철쭉나무, 등 활엽수림이 빼곡히 들어차 햇볕조차 들어오지 않는 그늘 속을 걸어갈 때 앞서가던 그 사람이 되돌아오며 근심어린 표정으로 길을 잘못 들어 방향을 알 수 없어 헤매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침서로 최대의 베스트셀러인 김형수씨가 지은 한국400 산행기와 손치석씨가 지은 거기엔 산이 있었네. 두 권을 비교해보면 중원산의 정상표지가 전혀 엉뚱하게 되어있어 흥미로운 사실에 관심을 갖고 어느 책이 틀리는지 확인하며 산행을 하던 중이라 다시 복기를 해보기로하자.
첫째: 싸리 재를 지나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778봉(이곳도 싸리봉으로 표시)까지는 동일한데 문례봉과 중원산의 갈림길의 높이가 400명산은 770m로 손씨는 823m로 차이를 보이며 지도의 세밀도에 있어 400명산이 훨씬 정확도를 보이는데 400명산을 기준으로 갈림길에서 90도 좌회전을 하여 지근거리에 십자 갈림길이 공터로 표시되고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백여 평 남짓한 억새밭을 눈여겨 봐야하고,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는 정상에 올라서면 (400명산에는 정상으로 표기 815m, 손씨는 821m로 표기) 무성한 숲속에 아무런 표시도 없어 바람결에 스치기 십상이며, 숲속 터널을 15분간 지나면 용계곡과 중원계곡에서 올라오는 십자로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이곳부터 리본도 많아지고 서쪽능선을 따라 이어지는데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갈림길에서 100m 전진한곳으로 755봉 바로 밑인데 인천 산악회원이 755봉에서 정상표지를 찾다가 자기의 위치도 잃어버린 채 방황을 하던 중이다.
개념도를 중심으로 현 위치를 확인 시켜주고 앞으로 확실하지 않은 길은 혼자서 행동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사전에 개념도를 챙기며 세심하게 공부한 보람과 십 수 년의 산행경험으로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신감에 흐믓한 마음으로 솔바람 불어오는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건너편의 도일봉과 싸리봉의 능선을 바라 볼 때 내 발자취가 묻어있는 산줄기가 더욱 정겹게 다가온다.
오르락내리락 심심찮게 나타나는 암 봉을 넘나들며 즐거움을 만끽하다보니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799봉에 올라선다.(12시 17분) 예상대로 이곳에는 양평군에서 세워놓은 정상석이 번듯하게 자리 잡고 사방을 둘러봐도 막힘이 없이 확 트여 전망대로, 쉼터로 안성맞춤이며 북서쪽으로 머리에 면류관을 눌러쓰고 있는 용문산이 하늘높이 솟아있고 사방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들이 물결치며 파문을 일으킨다.
두 번째: 손 씨의 개념도에 이곳이 정상이라고 표시한 것은 양평군청에서 세운 정상석 때문이라고 이해를 하드라도 더 높은 봉우리가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까? 400명산에 815봉을 정상이라고 하였지만 울창한 숲속에 아무런 표시가 없으니 그곳이 정상이라고 믿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데 문제가 생기며 가장 큰 오류를 범하고 있는 양평군청이 779봉에 멋들어진 정상석을 세운 것 까지는 칭찬을 할일이지만 800m라는 표기까지 친절하게 적고 있으니 인천산악회의 선두 가이드가 이곳을 400명산의 정상으로 착각하고 용문사로 가는 길이 우측인데 좌측으로 방향을 설정하고 있으니 이런 낭패가(좌측은 중원리로 가는길), 편의상 이곳에 정상석을 세운다면 815봉에 이런 사유를 적은 안내판이라도 세웠다면 모든 것이 순조로운 산행 길잡이가 될 터인데.
김형수씨나 손치석씨나 두분 모두 우리시대의 김정호를 자처하며 갖은 악조건 속에서도 사명감을 갖고 우리의 등불이 되어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노고에 감사를 드리며 그분들을 아끼는 뜻에서 오류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우측 길로 방향을 잡고 내려가면 조달골에 이르고 우렁찬 계곡물소리가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 지친 몸에 원기를 불어넣으며 까마득히 높은 절벽 밑에 마련한 치성터를 지나 인적도 없이 한적한 계곡의 맑은 물에 몸을 담그니 세파에 찌든 때가 말끔히 씻겨 내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신점리를 지나 용문사 주차장에 내려서게 된다.
중미산 정상에서
-중미산(834m), 삼태봉(683m), 통방산(650m), 옥산(578m)-
소 재 지 : 경기도 양평군 - 서종면, 옥천면, 가평군 - 설악면
하찮은 일이라도 의미를 부여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면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되듯이 오늘 내가 걸어갈 이능선도 용문산이나 유명산의 명성에 가려 세인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방학숙제를 미루고 있는 아이들처럼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 조바심이 나는 곳으로 한강기맥의 종주 길에서 소구니산을 지나면 곁가지로 중미산으로 뻗어 내려 삼태산과 통방산으로 이어지다 벽계천에서 숨을 죽이는 하루코스가 빠듯한 장쾌한 구간이다.
오랜만에 나서는 나 홀로 산행으로 이른 새벽 위생병원 앞 정류장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려도 문호리행 8번 버스는 오지를 않고 할 수 없이 양수리 행 228번 버스에 올라 종점에 도착하니 양평에서 노문리까지 직접 운행하는 버스가 9시에 있다는 소식에 한 시간이나 남는 시간이 무료하여 연꽃을 재배하여 일반에게 공개하는 예미원을 찾아 나섰는데 길가에는 종이학을 본떠 만든 카페가 시선을 끌고 두 물머리 강 하구에는 무성한 수초사이로 연꽃들이 무리지어 피어나며 온실속의 전시관에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이 탐스럽게 자라고 있다.
마을마다 거쳐 가며 훈훈한 인정이 꽃을 피우는 완행버스는 촌 노들의 대화 속에 흥미로운 정담이 오고가는데 지금과 같이 호안공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자연 그대로 강물이 흘러가던 시절에 홍수가 나면 강물이 범람하며 물을 내민다하여 내 미리, 물에 받친다하여 바치리, 물이 들어온다 하여 무드리, 물이 넘친다하여 무너미로 부르다가 지금은 문호리가 되었다는 지명은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선조들의 지혜와 해학이 넘치는 고장으로 용문산 기슭의 배너미 고개로 배가 넘어갈지는 두고 볼일이다.
30여 분만에 산행의 들머리인 노 문리에 도착하니 경기도에서도 가장 궁벽한 오지마을답게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분지에는 10여 호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폐교된 노문분교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도 어려운 비알 밭으로 변하여 세월의 무상함을 다시 한 번 일깨우며 산모 랭이 휘돌아 나오는 아침안개 속에 텃새부리는 견공들의 합창으로 주눅이 들어 마을 어귀를 빠져 나오기에 급급하다.
협곡을 이루고 있는 벽계 천을 거슬러 오르면 갈수기인데도 많은 물이 흐르고 높은 나뭇가지에 걸린 비닐조각은 용문산 뒤편에서 발원하여 30여 km를 흘러오며 이산 저산의 계곡물들을 끌어 모아 아름다운 내를 이루고 여름 한 철 피서객들을 불러 모으는 숨어있는 비경으로 곱게 물들어가는 단풍이 운치를 더하고 있다.
수중보를 지나 20여 분간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징검다리가 놓여있는 너덜지대가 나타나고 내를 건너면 팬션의 바람을 타고 전원주택을 분양하는 택지조성작업이 한창이고 드문드문 집들이 들어선 마을을 지나며 주위를 둘러봐도 가파른 산 비알에 등산로를 찾기가 쉽지를 않은데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암거로 만든 다리 바로 못 미친 지점에 가시덤불 사이로 희미한 오솔길이 열린다.
한 여름 내내 오간사람이 없는 가시덤불이 앞길을 가로막고 원시의 밀림 속을 헤치며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산새들도 숨을 죽이는 고요한 적막 속에서 외로움이 엄습하지만 거친 숨 몰아쉬며 1시간 만에 주능선에 오르면 상산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마주치는데 반가운 리본들이 손짓을 하고 건너편의 곡달산이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 사이로 솟아오르고 로프가 걸려있는 암릉을 기어오르면 595봉이다.
비 슬 고개에서부터 한강기맥의 종주 길에 어깨동무를 하던 고압철탑을 다시 만나는 반가움에 잠시 휴식을 하며 지난여름의 힘들었던 종주 길을 되돌아보며 철쭉나무가 무성한 600봉을 지나면 곧 바로 통방산 정상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그 흔한 표 지석 하나 없이 외로움에 떨고 있는 정상에는 청솔산악회에서 나무판자에 새겨 놓은 팻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삼각점에는 양수 308, 1988년 복구라는 표시가 선명하다.
시야가 별로 좋지 않은 정상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1km 거리에 있는 삼태봉을 향해 달려갈 때 진홍빛으로 물든 단풍이 만산홍엽으로 붉게 타오르며 인적이 끊긴 산마루에서 거추장스러운 짐 모두 벗어 버리고 자유로운 몸짓으로 활개를 친다. 중미산 4.79km의 이정표가 있는 능선에서 5분 거리에 비껴있는 삼태봉 정상에 오르면 정상석은 없지만 멋들어진 노송 한그루가 자연의 표석으로 운치를 더 하고 시원한 그늘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가히 일품으로 명달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반가움에 갈 길 먼 중미산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할 때 낙엽 쌓인 벼랑길에서 신경을 곤두세우며 안부로 내려와 뒤 돌아보는 삼태산이 높아만 보인다.
완만한 능선 길에서 오르락내리락 무뎌진 다리의 긴장을 풀어주는 여유로운 발걸음에 양수 428, 98년 재설한 삼각점을 지나면 리츠칼튼 C C의 시원스런 그린이 펼쳐지고 경계선을 따라 진행을 하는 소나무 숲에 자리를 잡고 식사시간의 여유를 갖는다. 전위골 갈림길의 절터 고개를 지나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는 중미산 오름길로 이어지는데 무성한 숲 사이로 언뜻 언뜻 보이는 산야는 낮 설기만하고 가파른 비알 길에서 가도 가도 멀어만 보이는 정상이 뒷걸음치고 있다.
정상이란 어느 곳 하나 만만한 곳이 없듯이 유순한 산행 길에 마지막으로 피워 올리는 불꽃의 향연처럼 가파른 암릉 길을 기어오르면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반 평 남짓한 정수리. 사방팔방 거칠 것 없는 조망으로 시원한 전망이 펼쳐진다.(14시 32분)
아담한 정상석이 나를 반기고 황홀한 전경에 매료되어 5시간의 지루한 산행의 피로도 봄눈 녹듯 사라진다. 용문산을 정점으로 한강 기맥의 마루금이 동에서 서로 달려오며 건너편의 화야산과 뾰루봉, 천마산과 축령산, 수락산과 불암산, 도봉산과 북한산 그 모두가 내 발자취를 품에 안고 정겨운 눈 맞춤으로 반가운 미소를 짓는다.
15분간의 꿈같은 휴식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가파른 암릉 길에 로프를 잡고 서너치 고개로 내려서면 양평에서 청평으로 향하는 37번 국도를 만나게 되는데 이 길이 뚫리기 전에는 울창하고 험준한 고갯길로 호랑이를 보았느냐고 묻자 호랑이는 보지 못하고 서너치의 하늘만 보았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하지만 수 십 길의 절개지로 마루 금이 단절되어 아쉬움이 많지만 통행량도 많지 않고 주위에 펼쳐지는 경치가 너무도 아름다워 휴식 나온 연인들의 쉼터로 안성맞춤이며 중미산 천문대를 지나 농다치 고개에 이른다.(15시 25분)
중미산과 삼태봉, 통곡산을 6시간에 걸쳐 종주산행을 한 것도 사실은 한강기맥의 농 다치 에서 말 고개까지의 누락된 구간을 보충하기위한 절차로 이루어진 오픈 게임으로 이제부터 빅 이벤트가 시작되지만 천근의 무게로 내리누르는 피로감으로 제대로 완주하게 될지 걱정을 하면서 고개 마루의 간이주점에 들어가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한결 원기가 회복 되는듯하다.
지금까지 지나온 주능선에 비하면 아주 수월한 구간이지만 물먹은 솜뭉치처럼 축 처지는 발걸음에 조금만 경사진 곳이라도 만나면 촌보도 내딛기 어려운 발걸음에 가까스로 옥산의 정상에 올라서며 해냈다는 자신감으로 마음만은 저 푸른 창 공으로 훨훨 날아 오른다. 울창한 숲에 가려 주위의 경관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지만 아담한 정상 석과 벤치까지 마련된 쉼터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서둘러 말머리 봉으로 향한다.
상수리나무 사이로 펼쳐지는 청계산의 마루 금이 건너편의 유명산과 소구니산의 주능선과 연결이 되어 삼마치 고개와 새목이 고개까지 이어지는 순간, 말머리봉의 정수리에 몸을 부리고 먹 거리 마실 거리 모두 비우며 항상 찜찜하던 일들을 완수했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가파른 길도 한걸음에 뛰어 넘어 한화리조트 앞마당에 도착하니 17시, 석양 노을에 비친 본관건물이 푸른 숲에 둘러싸여 더욱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꽃 배달하는 용달차로 양평터미널까지 편하게 올수 있었으니 이러한 행운은 앞으로 남은 한강기맥의 장도에 밝은 빛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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