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뱃길 따라 삼천리
민초들의 삶
성인봉에 올라서
효녀의 섬 백령도
수반 위에 핀 사량도
한라산의 눈꽃 축제
남해의 비경 거문도와 백도
보라카이 해변
민초들의 삶
작은 키에 연약한 몸매
비바람 속에 땅으로 기면서도
바위틈에 깊숙이 뿌리를 박고
수천, 수만 년을
잘도 견디며
유순하게 길들여진
달마산의 억새여
앙칼지게 대거리하는
구상 나무는
날카로운 가시로
몸을 감싸도
수백 년을 못가서
사그라들고
단단한 바위도
산산이 부서지건만
앙상한 대궁에
가냘픈 몸매로
시류와 타협하며
꽃을 피우는
달마산의 억새여
성인봉(983.6m)에 올라서
여 행 일: 2 ,000년 5월 4일
집을 나선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 한 밤중에 짐짝 실리듯 불편한 버스 안에서도 동해의 외로운 섬나라 울릉도의 환상에 사로잡혀 설 레이는 마음으로 까만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포항으로 달려간다. 새벽 5시 포항시 항구동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 우리는 먼동이 터오는 동녘하늘을 바라보며 출항시간이 5시간이나 남았지만 마음은 벌써 배에 오른 기분으로 들떠있다.
우리를 싣고 갈 썬 풀라워 호는 815명의 정원에 차량도 15대나 싣고 시속 70km의 속도로 217km의 거리를 3시간에 주파한다고 하니 물위를 날아가는 물 찬 제비의 날랜 몸매로 믿음직스러우며 여객선 뒤편으로 우리나라 경제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포항 제철소가 수백만평의 대지위에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일호식당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하고 기수, 소남이 세 가족은 방파제를 거닐며 환담을 나누고 10시 정각 그 육중한 몸을 뒤흔드는 기지개로 요란한 엔진소리와 함께 거센 물보라를 뿜어내며 울릉도의 도동항을 향해 발진을 한다. 우리 모두 설레는 마음으로 창가에 몰려 멀어져가는 육지를 바라보며 환상에 젖어있다.
하지만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이 낭만적일 수만 없는 것이 잔잔한 물결이지만 속도가 빠른 배의 추진력에 의해 생기는 마찰로 파도가 일어나며 넓은 바다로 나아갈수록 배의 요동이 심해지고 출항을 한지 채 10분도 되지 않아 비위가 약한 아내는 얼굴이 노랗게 사색이 되어 토악질을 시작한다. 갈 길은 멀고 험한데 처음부터 고초를 겪고 있으니 생지옥이 따로 없고 비닐봉지에 얼굴을 파묻고 괴로워하는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늘어만 가는데 파도를 거슬러 오르며 배의 요동은 점점 심해지고 물결 또한 높아지니 모두들 초죽음이 되어 온돌방의 객실에는 모두들 후줄근하게 널 부러져 괴로워하는 모습들이 안쓰럽기만 하다.
포항을 출발한지 45분 만에 배가 원을 그리며 방향을 틀고 있어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현재 동해안에 파도가 심해(4 - 5m) 포항으로 되돌아간다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아 아니 우 째 이런 일이 또 있노. 마른하늘에 날 벼락도 유분수지 어찌 이런 일이 잇단 말인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화창한 봄 날씨에 항해를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여객선이 원망스러워 웅성웅성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오며 포항의 부둣가에 내려서지만 돌발 사태를 예상하지 못한 주체 측에서도 우왕좌왕 하다가 결국 이른 점심으로 식사를 마친 다음 하루 종일 자유시간이라는 설명으로 각자 해산을 하고야 말았다.
돌발 사태를 당하여 무료한 시간을 보낼 일이 꿈만 같고 생각다 못해 아내와 나는 근처에 있는 내연산의 보경사를 다녀오기로 하고 물어물어 버스정류장을 찾아갔지만 한 시간 마다 있는 버스는 가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이마져 포기하고 포항이 자랑하는 죽도시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경상도 특유의 정감어린 말투와 활력이 넘치는 삶의 현장으로 특히 자갈치시장에는 싱싱한 횟감들이 즐비하여 감칠맛을 돋우고 모듬회를 사가지고 일호식당으로 돌아와 기수, 소남이 부부와 시식을 하고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일명 토끼꼬리로 불리는 장기곶을 다녀오기 위해 식당을 나섰다.
영일만 건너편이라 가까운 곳인 줄 알았는데 구룡포까지 버스로 가서 다시 차를 갈아타야하는 편도 60km나 되는 먼 곳으로 해안가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저녁노을에 곱게 물들며 환상적인 모습으로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끌어드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다는 장기곶 등대와 등대박물관이 너른 잔디밭위에 자리를 잡고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과 함께 해안가 모래톱에는 대형 손가락 조각이 새로운 명물로 우리의 시선을 끌고 있다.
해남의 송지면이 최남단의 땅 끝 마을이라면 이곳은 동쪽의 끝으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해맞이의 명소로 토끼 꼬리의 가장 끝머리에는 K B S 방송국의 송신소와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이 있으며 영일만 건너편으로는 포항제철의 화려한 불빛이 밤하늘을 밝히고 있다. 예정에도 없는 관광이지만 이런 기회가 아니면 좀처럼 찾아오기 어려운 곳이라 보람 있는 하루였다고 즐거워하며 일호식당에 돌아오니 피난민 수용소같이 식당의 바닥에서 토끼잠으로 웅성거리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멘 스타 여관에 여장을 풀고 노래방까지 순례를 한다.
이튿날 새벽 5시, 가벼운 옷차림으로 해안가의 백사장으로 나아가니 부지런한 사람들의 아침 산책이 한창이고 구름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바다의 물결도 잔잔하여 한결 마음이 놓이지만 어제의 악몽을 떠 올리며 불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오전 10시 힘찬 뱃고동소리와 함께 항해는 시작되고 멀어져가는 영일만을 바라보며 오늘만은 제발 울릉도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는 기도와 함께 어제의 배 멀미로 혼들이 나서인지 배가 출항하기 전 부터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코가 땅에 닿도록 모두 누워 쥐 죽은 듯이 조용하기만하다.
“울렁울렁 울렁대는 울릉도라! 뱃머리도 신이 나서 춤을 추 네. 육지손님 어서 와요. 트위스트.....”
오후 1시 드디어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는 신천지.
섬 하나 보이지 않는 망망대해에서 3시간 동안 온갖 괴로움을 겪으며 참아온 보람이 있어 꿈에도 그리던 울릉도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도동항에 도착하며 800여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호리병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 비좁은 광장에서 마중 나온 가이드의 피켓을 따라 유치원생들이 소풍을 나온 듯 3열종대로 비탈진 언덕위에 있는 한일장으로 올라간다.
점심식사 후 울릉도 최대의 어업전진기지인 저동 항으로 이동을 하여 본격적인 관광이 시작되는데 저동항의 상징인 촛대바위를 바라보며 유람선에 올라 죽도로 가는 길엔 동해의 깊은 수심으로 검푸른 바닷물이 출렁이고 멀리 수평선까지 아득히 바라보이는 청명한 날씨가 이어진다. 대나무가 많아 죽도로 부르고 있는 이곳은 6만여 평의 분지에 1가구가 살고 있으며 절벽사이로 세워진 나선형 계단을 따라 분지에 올라서면 더덕과 당귀의 천국으로 해풍에 밀려오는 향기에 취하고 만다. 거제도의 외도가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화려하고 섬세함이 있다면 이곳은 자연 그대로 수더분한 섬 색시의 순수함이 정감 있게 다가온다.
죽도에서 바라보는 섬목은 평화롭기 그지없이 크고 작은 바위들이 짙푸른 바다위로 삐 죽이 솟아올라 장관을 이루고 선착장에 도착하여 도보관광이 열린다. 관선터널을 지나면 관음도의 깎아지른 절벽과 삼선암, 이름 모를 암초들이 절경을 이루고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섬이라 날카로운 암벽들이 오랜 세월 파도에 깎이고 다듬어져 기기묘묘한 모습으로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며 아직까지 섬을 일주하는 도로가 관통되지 않아(2015년 완공예정) 교통이 불편하지만 이것 또한 울릉도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천부를 지나 수력발전소가 있는 송곳바위 밑까지(7km)도보로 관광을 하고 이곳의 유일한 교통수단인 봉고차로 태하까지 이동을 하게 되는데 현포령을 넘는 길은 한계령을 오르는 고개보다도 위험하여 35인승 버스가 넘지를 못하고 섬목에서 천부까지만 운행을 하고 있단다. 태하의 해안 절벽으로 가는 길옆으로 취나물 말리는 모습이 일대 장관으로 그 넓은 벌판이 온통 취나물로 홍수를 이루고 태하에서 남양까지는 금년 말 개통을 목표로 공사가 한창인데 관통된 삼막 터널과 수중 터널을 걸어보는 것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깜깜한 터널을 빠져 나오면 서쪽으로 지는 해가 마지막 불꽃을 피워 올리며 붉은 빛으로 낙조를 드리우고 기암괴석의 벼랑 끝에 매달린 낙락장송이 황홀경에 빠진 나그네의 발길을 잡아매고 있다.
남양에서 도동까지는 또 다시 버스로 이동을 하는데 기사 아저씨의 자세한 설명도 어둠속에 뭍 혀 버리고 팔자 도로가 울릉도의 새로운 명물로 자리 잡으며 험난한 자연도 이용하기에 따라 명소도 되고 파괴도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울릉도에는 35인승 버스가 3대 있는데 운반비 만 천 육백 만원이 든다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할지....... 이곳을 오가는 가장 큰 썬 풀라워 호에도 싣지를 못하고 바지선으로 특별히 수송을 해야 한다니 한편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일 년 중에 맑은 날이 60여일 밖에 안 되는 비가 많은 고장이라지만 성인봉을 오르는 이른 아침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씨에 물결도 잔잔하여 산을 좋아하는 13명은 성인봉으로 향하고 나머지 인원들은 해상관광을 하기로 하였다. 6시 30분 한일장을 출발하여 대원사로 가는 길목에는 군청과 경찰서를 비롯하여 모든 관공서가 몰려있어 도동이 행정의 중심지임을 실감하게 되는데 아내와 영승이 엄마는 가파른 산행길이 힘에 겨운지 처음부터 뒤로 처지고 천천히 올라오라는 당부와 함께 앞질러 나아간다.
고도가 높아지며 마을도 뒤로 물러나고 길섶에는 이름 모를 야생화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산새들 지저귀는 너른 분지에는 소나무와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500고지를 지나며 천연기념물 189호인 원시림이 선을 보인다. 대원사에서 성인봉까지는 4.2km의 짧은 거리지만 매우 가파른 경사의 비알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나무계단을 오르는 두 다리에 경련이 인다. 등산로를 제외하고는 울창한 삼림이 펼쳐지는 산등성이에는 싱그러운 향기로 가득하고 팔각정을 오르는 계곡에는 지난겨울에 내린 눈이 그대로 쌓여있어 울릉도가 눈의 고장임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전망 좋은 팔각정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마지막으로 깔딱 고개를 치고 오르면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고 모든 사물이 발 아래로 펼쳐지는 울릉도의 최정상인 성인봉에 도착한다.
오! 이 얼마나 갈망하던 순간인가?
보고 싶고 오르고 싶던 성인봉의 정상에 오르는 순간 날씨까지도 화창하여 섬과 바다가 시선에 가득하고 불가사리 모양의 섬은 동서남북이 어디인지 가늠이 잘 안되지만 네 갈래로 뻗은 주능선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갖은 풍파와 시련에도 견딜 수 있는 안정된 모양으로 산맥을 이루고 어제, 오늘 우리가 지나온 길들이 아련히 내려다보이는 망망대해의 수평선 너머로 외로운 섬 하나 독도가 있다는 그곳을 바라보며 내나라 내 땅을 마음대로 오갈 수 없다는 안타까움에 가슴 저리며 하루 빨리 평화의 땅으로 우리가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독도로 태어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울릉도는 화산이 두 번이나 폭발했다지만 백두산이나 한라산과 같이 분화구가 없이 평평한 나리분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색으로 육지와 멀리 떨어진 지리적인 관계로 600여종의 동식물이 분포되어있고 해양성기후의 영향을 받아 연 평균 기온이 12도를 유지하고 있어 한 겨울에도 영하의 날씨가 별로 없으며 7- 팔월의 삼복더위에도 24도를 넘지 않으니 자연이 생존하는 가장 좋은 조건이라 하겠다. 기수와 전부하 씨와 정상 주를 한잔씩 마시고 즐거운 발걸음으로 하산을 하는 중에 중간쯤에나 와 있을 것으로 생각한 아내와 영승이 엄마가 정상에서 0.7km못 미친 지점에 올라와 있는 것이 아닌가?
아 아니 이럴 수가? 성인봉 신령님의 보살핌인가? 울릉도의 정기로 젊음을 되찾았나?
믿을 수 없는 일이기에 너무도 반갑고 기쁜 마음에 얼싸안고 환호하며 두 손을 꼭 잡고 정상으로 다시 오른다. 아내와 함께하는 발걸음이기에 더욱 신바람이 나고 새로운 활력소로 즐거움을 만끽하는 아내의 모습에서 찐한 행복을 느낀다. 둘이 함께 올라온 정상의 감격은 두 배가 되고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으로 피로도 싹 가시고 환희에 찬 메아리는 동해바다 멀리멀리 울려 퍼진다.
선들바람 불어오는 산마루에 발걸음도 흥에 겨워 어깨춤이 절로 나고 “만고강산 유람할제 삼신산이 어디 메 뇨....”
뒤돌아보는 성인봉은 말이 없지만 함께 오른 발자취가 남아 있기에 정감어린 그곳으로 눈길이가고 한일장에 내려오니 11시. 4시간 30분간의 산행도 꿈속에 접어두고 이른 점심을 먹고 느긋한 마음으로 봉래폭포 관광길에 오른다.
저동 항에서 북쪽으로 깊숙한 계곡에 자리 잡은 봉래폭포는 3단으로 층을 이루고 양쪽으로 기암괴석이 단애를 이룬 가운데 30m의 높이에서 쏟아지는 물줄기와 굉음소리가 지축을 흔들며 가슴속을 후련하게 쓸어내린다. 일명 냉장고라고 부르고 있는 풍혈동굴은 자연이 내려주신 선물이고 목로주점에서 마시는 호박 막걸리와 빈대떡은 울릉도를 찾은 정표로, 이곳의 명물인 호박엿도 사고 오징어도 사고 아내와 함께 도동항 방파제로 산책을 나간다.
울릉도에 일주도로가 완공되지 못한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켜 주려는 듯, 기암절벽의 사이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다리를 놓고 굴을 파서 통로를 만들어 아름다운 해안의 전경이 펼쳐지고 있으니 이곳을 보지 않고서 어찌 울릉도를 보았다고 할 수 있으리요. 또 한 가지 스쳐 지나기 쉬운 명물이 있으니 도동항 절벽을 올려다보면 수 십 길 벼랑위에 인고의 세월을 안고 만고풍상의 온갖 고초를 겪으며 암벽 속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1,300년이나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향나무. 불필요한 곁가지는 모두 떨쳐 버리고 고목의 끝에 달린 가냘픈 촉수로 모진 생명을 이어가는 도동항의 파수꾼. 울릉도의 애환을 고이간직하고 있는 너이기에 바람결에 스쳐가는 나의 발자취를 오래오래 기억해 주려무나.
오후4시. 예정대로 썬 풀라워호는 도동항을 출발하고 아쉬움 속에 멀어져 가는 도동항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이박 삼일간의 대단원을 내리는 짙은 운무가 장막을 가리며 무대 뒤로 사라지고 주마간산으로 스쳐간 울릉도의 관광이지만 아내와 함께 한 여행이기에 의미가 깊고 올때 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길은 물결도 잔잔하고 행복의 진한 감동으로 아내의 양어깨를 감싸 안으며 수평선 너머로 눈길을 돌린다.
효녀의 섬 백령도
여 행 일 : 2003년 8월 15일
풀었다 싸는 배낭여행이야 이골이 난 일이지만 금년 여름휴가는 배를 타고 가는 여행인데다13명의 인원을 책임져야하는 일이라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니다. 태풍이 자주 지나가는 철이라 일박 이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모두들 귀중한 시간들을 쪼개서 마련한 것이어서 제날짜에 출항을 하지 못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기상청의 예보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금수 산악회의 박대장과 긴밀한 연락을 하며 회원들의 신상에 이상이 있지나 않나 동태를 파악해야 하는 번거로움으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여행 일주일을 남겨놓고 출항 시간이 변경되었다는 통보가 온다. 7시 40분 배가 7시 10분으로 당겨졌으니. 원래 계획은 의정부에서 출발하는 첫 전철을 이용하기로 하였지만 시간을 맞출 수가 없어 부랴부랴 봉고차를 대절하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지만 바로 전날 출항시간이 변경되었다는 통보가 또 다시 날아든다. 이유는 오늘아침 인천 앞 바다에 짙은 안개로 배가 제 시간에 출항을 하지 못해 그만큼 늦어진 탓에 오전 10시로 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박대장의 당황스런 목소리에 이러다가 다된 밥에 코 빠트리는 것이나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다시 한 번 확인을 하고 회원들에게도 장황하게 설명을 하며 이해를 구한다.
그래도 태풍 소식이 없는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초조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우고 집결장소인 도봉동 국민은행 앞으로 나아가니 약속시간 보다 30분이나 일찍 모두 모여 5가족 10명은 소풍 나온 유치원생보다도 더욱 들뜬 마음으로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탄탄대로 경인 고속도로를 달려 7시 40분 연안부두에 도착한다. 2시간 이상이나 남은 시간을 지루한줄 모르게 분위기를 잡으며 차례로 도착하는 황 대장과 한 상웅씨 부부와 합류하여 수인사를 나누고 출항시간이 가까워 오자 대합실로 몰려든 인파로 초만원을 이루며 저자거리를 방불케 한다.
모두들 전광판을 바라보며 검표 시간만을 기다리지만 무슨 영문인지 시간이 흘러가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주위가 술렁이기 시작하고 그래도 인내력으로 잘들 참아 내는데 스포츠 현광 판에 스코어가 변하듯 10분, 20분, 30분, 다음에는 아예 숫자마저도 꺼져버려 장내에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흥분들을 한다. 일선에 있는 카운터 아가씨들만 곤욕을 치루며 아직도 배가 입항하지 않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설명에는 할 말을 잃고 만다. 세계인들이 부러워하는 올림픽에 월드컵까지 성공적으로 치르고 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독점 사업이라고 이렇게 횡포를 부리며 손님을 똥친 막대기 취급을 하고 있으니 일기가 불순하여 제 시간에 출항을 하지 못하는 것이야 누구를 탓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책임자가 상황설명을 하고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하는 것이 도리가 아닌가?
그래도 참는 자에 복이 오나니 11시 40분이 되어서야 백령도로 향하는 뱃고동 소리가 울리고 좀 전의 흥분된 마음들도 진정을 하며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설 레이는 마음으로 웃음꽃이 활짝 핀다. 오! 백령도 분단의 슬픔을 안고 서해북단의 최전방에 수호천사 파수꾼이 되어 인천에서 직선거리는 178km이지만 군사 분계선을 돌아가야 하는 어려움으로 항로가 227km에 이르고 쾌속정으로도 4시간 30분이 소요되는 먼 곳이지만 북측의 황해도 장산곶 에서는 17km의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보며 긴장의 끈을 놓을 수없는 최전방의 외로운 섬이다.
백령도는 전략적인 취약점으로 민간인들의 관광이 통제 되다가 96년부터 남북 간의 화해의 물결 속에 쾌속정이 증편되면서 천혜의 관광지로 신비의 베일을 벗고 있으니 우리의 설 레이는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으랴?
백령도는 면적이 46.28평방 km에 국내에서 14번째로 큰 섬이었으나 최근 화동과 사곶 사이를 막는 간척사업으로 100만평이 늘어나며 8번째로 큰 섬이 되었고 4,233명의 원주민과 4,350명의 해병이 주둔하고 있어 상주인구가 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184m의 업쭉산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에 넓은 들이 펼쳐지고 면소재지가 있는 진 촌리를 중심으로 5개리 17개 부락으로 구성되며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옹진군 백령면에 속한다.
우리가 타고 가는 백령아일랜드 호는 정원이 336명으로 피서 철인 여름이 성수기로(편도 43,700원) 빈자리 하나 없이 만원을 이루며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서해바다를 날아가지만 부대시설 하나 없어 4시간 이상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고 삼복더위의 열기 속에 사람들의 체온까지 더하고 보니 에어컨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여 찜통더위 속에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온다. 망망대해를 달려온 쾌속정은 3시 55분. 185명이 살고 있는 소청도를 들러 4시 10분 대청도의 부두에서 사람과 화물을 내리고 목적지인 백령도로 향하는데 이곳에는 1,48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시야에 들어오는 백령도는 조금도 낯설지가 않고 사곶 천연 비행장의 활주로를 질주하는 차들이 신비롭기만 한데 해수욕장 뒤로 바람막이 방풍림이 운치를 더하고 물놀이하는 피서객들이 평화롭게 보인다. 4시 50분 오랜 항해의 무료함속에 드디어 백령도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마중 나온 서해 관광 직원의 안내로 서해 모텔에 여장을 풀고 때늦은 점심을 먹고 인천에서 소비한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서둘러 관광길에 오른다. 주위에 펼쳐지는 모든 사물들이 모두 친근감이 들지만 분단조국의 최북단 마지막 보루로서 1200명이 피신할 수 있는 동굴이 10여개나 되고 이곳 주민들이 6개월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니 긴장감이 고조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나는 해안가에는 겹겹이 설치된 철조망이 난공불락의 요새로 구릉지대의 우거진 숲속에는 지뢰가 매설되어 함부로 들어갈 수 없으며 그 많은 해병대 병사들의 모습이 은폐물에 가려 보이지를 않는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섬의 북서쪽 끝자락에 자리 잡은 두무 진. 백령도의 해금강으로 불리는 이곳은 장군들이 작전회의를 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하다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낙조에 드리우는 황금빛으로 물든 바닷물이 환상적인 모습으로 조화를 이루고 특히 코끼리가 물을 마시는 모습은 두무진의 상징으로 가이드의 구수한 해설이 귓전에 맴돈다. 돌아가는 방향마다 다른 모습으로 선을 뵈는 바위들의 신비스런 형상. 물속에서 솟아오르는 잠수함 바위는 백령도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애석하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는 물범들은 평화를 사랑하는 자연이 주신 선물이다.
두무진 해안을 따라 오르다보면 백령도에서 유일한 등산로라 할 수 있는 통일 전망대. 몽금포 해안이 12km밖에 안 되는 가까운 거리다. 실향민들의 한을 달래주는 망향의 동산으로 두무진의 기암괴석을 가장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서해바다로 숨어들며 마지막으로 불꽃을 피워 올리는 낙조의 화려함. 키나바루의 산장에서 보았던 그 모습과 대조를 이루는 황홀함을 무엇으로 비 길수 있으랴.
서해관광 측에서 침이 마르도록 선전을 하는 자연산 횟집에서 하는 식사는 주체 측의 무성의가 사뭇 찝찝하다. 거저 주는 것도 아니면서 사전에 상의 한마디 없이 구렁이 담 넘어가듯 질질 끌려 다니며 항의 한마디 못하고, 나에게는 딸린 식구가 13명이나 되기에 더욱 신경이 쓰이고 뒤늦게 온 회원들이 식사도 제대로 못하는 불상사가 나고 말았으니 이런 난처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백령도의 명동이라는 진 촌리가 내려다보이는 서해 모텔로 돌아와 짐정리를 하고 이곳에서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노래방으로 달려가 목청도 높여보고 초롱초롱한 별빛을 가슴에 안고 꿈나라로 달려간다. 된 새벽에 일어나 황 대장과 함께 밖으로 나오니 동녘하늘에 여명이 터 오며 월례도(12km 이북) 너머로 길게 누운 장산곶(황해도)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고 어둠을 헤치며 떠오르는 태양이여. 매일 보는 너의 얼굴이지만 이 순간 너를 바라보는 나의 감회가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
강수량은 육지보다 1/4밖에 안되지만 안개 끼는 일수가 많아 북녘 땅을 보기가 어렵다는데 분단장 곱게 하고 나를 반겨주는 너의 모습에 감사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구나. 인천에서 뜨는 배가 정상으로 출항을 했다니 이곳에서의 일정도 몇 시간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지며 서둘러 아침식사를 하고 관광길에 나선다.
영롱한 아침 이슬이 따가운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음주운전 단속이 없는 것은 주당들의 천국이지만 처녀가 없다는 말에는 가슴을 여미는 슬픔이 있고, 등산로가 없는 것은 분단의 아픔이며(지뢰매설) 절이 없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가장먼저(1816년) 기독교 선교사가 이곳에 들어와 활동을 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하수를 식수와 농업용수로 사용하고 섬의 면적에 비해 너른 평야와 기름진 옥토가 있어 많은 농산물이 생산되지만 육지까지 많은 수송비의 부담 때문에 군에서 전량을 수매하고 있어 마음 놓고 생산되는 농산물로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있으며 초등학교가 2. 중학교가 한 곳으로 그 이상은 육지로 유학을 보내는데 주민들 대다수가 인천에 집을 한 채씩 갖고 있다고 한다. 지나는 길옆에는 사 곶과 회동사이를 막아 일구어낸 백만 평의 간척지와 백령도에서 유일한 담수호를 바라보며 길이가 10여 m에 불과한 백령대교를 지날 때는 실소를 금 할 수가 없다.
먼저 찾아간 곳이 천연 기념물 392호로 지정된 콩돌 해수욕장으로 전국의 이름난 몽돌해수욕장을 다녀봤지만 이처럼 작은 돌은 처음으로 콩마당 위를 걷는 것처럼 감촉이 좋아 발바닥 치료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육지 손님들이 마대로 퍼가는 횡포를 막기 위해 감시원들이 상주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 소중한 자산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어야겠다.
모든 섬들의 일주 도로가 경관 좋은 해안가를 따라 만들어 졌으나 유독 이곳만은 안보상의 이유로 해안가에서 보이지 않는 내륙 쪽으로 있어 차를 타고 가는 동안만은 섬이라는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비행기 한 대 가지고 있지 않은 공군. 섬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이 부대는 높은 능선위에 최신 장비로 무장을 하고 이북에서 움직이는 모든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산동 반도 일대의 모든 정보가 이곳의 감시 하에 있다니 마음 든든하다.
연화리에 있는 또 하나의 콩돌 해안은 육중한 철조망이 있고 이곳의 돌들은 장돌만하여 수제비 치기에 안성맞춤으로 마음대로 가지고 가라고하니 어안이 벙벙하지만 기념으로 몇 점을 주어 보았다. 또 한 가지 이곳에는 논둑을 따라 전신주가 즐비한데 지하 용수를 퍼 올리기 위한 시설로 화력발전소가 6호기까지 가동하고 있으며 전기료가 30%감면되고 그 유명한 까나리아 액 젖을 담그는 소금도 이곳에서 직접 생산하고 있다한다.
한 달에 한 번씩 인천에서 출장 나온 자동차 면허시험은 전원이 합격을 하고 있다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찌 됐든 응시자들의 천국이 아닌가? 집집마다 자가용이 있고 신호등이 없는 거리에는 질주하는 차량도 없으며 아파트가 없는 곳, 과일이 생산되지 않는 곳이다.
주마간산으로 짧은 일정에 쫓겨 정신없이 돌다보니 가 볼만한 곳은 다 둘러보고 심봉사가 다리를 건너다 물에 빠져 주지스님의 구원을 받으며 공양미 삼 백석을 시주하게 되었다는 개천을 지나 심청각에 오른다. 전망 좋은 언덕에 자리 잡은 이곳은 심청이의 유물을 전시한 곳으로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위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가 7km의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소용돌이치는 거센 물살로 배들의 왕래가 어려운 곳이라고 한다. 심청각 안마당에는 심청이가 뱃전에서 물로 뛰어드는 청동상이 안치되어 있고 황해도 해안이 바라보이는 안보관광으로도 한몫을 하는 곳이다.
백령도의 관문인 용기포구 옆으로 사 곶 천연비행장이 있는데 길이 4km에 폭이 100m에 이르는 백사장은 완만한 경사에 아주 고운 입자의 규사로 물이 빠지면 단단한 활주로가 되어 6.25전쟁 시에 경비행기가 뜨고 내렸다는 기록이 있고 이태리의 나포리 해안과 함께 세계적으로 2곳뿐인 소중한 천연자원으로 버스에 올라 백사장을 질주하는 쾌감도 맛보았다.
백령도가 자랑하는 막국수로 점심을 하고 12시 10분배에 올라 백령도와 아쉬운 작별을 하며 멀어져가는 그 모습이 안스러워 점점 작아지는 섬에서 시선을 거둘 수가 없다. 산을 다닌다는 핑계로 아내에게 굳은 일만 시키다가 모처럼 함께 나선 나들이에 마냥 즐거워하는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앞으로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해보며 인천항에 닷 을 내리며 백령도의 여행도 마감을 하다.
수반위에 피어나는 蛇兩島 (지리망산 397m)
소 재 지: 경남 통영군 사량면 상도
지구의 자전속도야 일정하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느리게도 빠르게도 느껴지는데 새 천년을 맞이하여 지구촌 전체가 새로 태어나기라도 하는 듯 야단법석들을 떤다. 즈믄동이의 탄생을 알리는 뉴스와 함께 보신각에서 울리는 타종소리가 한 세기를 알리고 우리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해돋이(파주감악산)를 다녀 온지도 엊그제 같은데 벌써 또 한해가 저물고 송년 산행을 떠나게 되었다.
덧없는 세월 속에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면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들도 있었지만 고통의 순간 마다 산을 오르며 위안을 받고 새로운 용기와 각오를 다지며 특히 지난 11월에는 지리산 당일 종주를 성공적으로 완주를 하며 어떠한 어려움과 고난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하면 된다는 새로운 신념을 갖게 되었다. 그 동안 산을 오르며 틈틈이 적어온 글들이 “ 詩 山 ”이라는 동인지를 통하여 세상에 선을 보이고 그들과 함께 활동을 하며 문호를 넓히고 있으니 이 또한 보람 있는 일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한해의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해의 계획을 다짐해 보는 송년 산행이 더욱 뜻이 깊다 하겠다.
심야의 고속도로를 달리는 불편한 자리이지만 마음만은 편안하게 토끼잠으로 깨어나기를 반복하며 김천, 거창, 함양, 산청, 진주, 사천을 거쳐 천리도 넘는 먼 길을 밤새워 달려와 3시 30분 삼천포의 어시장 골목에 차를 세우고 해장국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승선시간까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수산물 공판장을 돌아보며 따뜻한 남쪽나라의 훈풍이 감도는 새벽공기와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로 하루해를 여는 부지런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용당포(고성군 하일면 춘암리) 선착장에 도착해도 동지섣달 긴긴밤은 물러 설줄 모르고 6시에 출항을 하는 여객선은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를 가르며 30여분을 달린 끝에 돈지 항에 정박을 하는데 충무앞바다의 한산도에서 여수까지 남해안의 청정지역을 한려해상 국립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그 중심에 사량도가 자리 잡고 있다. 뱀이 많은 섬이라 뱀 蛇자를 쓰고 상도와 하도의 크기가 비슷하여 두 兩자를 써서 사량도라 부르고 있다는데 3개의 유인도와 8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으며 굴양식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청정해역이다.
산행기점인 돈지 항은 가로등 불빛아래 조용히 잠들어 있는 어촌 마을인데, 그 흔한 개들의 울음소리하나 들리지 않는 평화로운 마을에 마을 주민들의 곤한 잠을 깨울 새라 발자국 소리와 숨소리를 죽여 가며 돈지초등학교 정문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골목길을 200m 쯤 따라가면 계곡이 나타나고 등산로가 열린다. 처음부터 가파른 경사면에 삐죽삐죽 솟아나온 돌 들이 발길에 채이고 새털 구름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하현달이 촉수 낮은 전등불처럼 희미한 그림자로 하늘에 걸려있어 손전등의 힘을 빌려 미로를 헤쳐 나아간다.
20여 분간 구슬땀을 흘리며 안부에 올라서면 시원한 해풍이 가슴속을 쓸어내리고, 어둠도 서서히 물러나며 먼동이 터오고 검푸른 바다위에 점점이 박혀있는 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며 바다로 향하는 어부들의 고동소리에 하루가 시작된다. 해풍에 깎이고 다듬어진 날카로운 암릉길이 수 십 길 벼랑위로 연결되어 현기증을 일으키지만 콘크리트 포장길처럼 표면이 매끄럽지 않은 편무암으로 신비감을 더하며 돈지 항을 감싸고 있는 암 봉들이 병풍을 둘러 친 듯 세찬 파도를 막아주는 바람막이가 되어 1시간이상 암 봉을 넘나들지만 돈지항의 품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동쪽으로 회색빛 하늘이 붉게 물들며 수평선너머 운해사이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바닷물의 색깔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점점이 떠있는 섬들도 어둠속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며 잔잔한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긴 꼬리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여객선의 고동소리가 우리의 가슴속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아침햇살에 눈이 부신 지리망산의 연봉을 따라 장사진을 이룬 등산객들의 환호성은 충무앞바다의 잔잔한 파도를 타고 멀리멀리 울려 퍼지고 남해의 용아장성이라는 별칭에 걸맞게 아기자기한 공룡의 등줄기를 넘나드는데 안성에서 온 아줌마들의 느린 걸음이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다.
맑은 날이면 육지에 있는 지리산이 바라보인다는 지리망산의 정상에 올라섰지만 그곳까지는 볼 수 가없고 북으로 길게 뻗은 능선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옥동항과 왼쪽으로 내지항이 후박나무와 동백나무사이로 내려다보이고 마을 앞으로는 청정해역에서나 볼 수 있는 굴 양식장의 부표들이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고 어민들의 재산 목록 1호로 충무 앞바다를 가득 메운다. 하지만 옥의 티라고 할까 근처에 있는 화력발전소가 청정해역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연기를 뿜어대고 있으니 흉물스럽기 그지없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 자라지 않는 불모산은 민 대머리 암 봉으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해야 하며 공룡의 머리에 해당하는 가마봉과 옥녀봉 구간까지 험해지는 산세를 피해 안전한 우회로를 이용하는 등산객들이 태반이라 저자거리를 방불케 하던 행렬도 없어지고 호젓한 암 릉 길이 이어진다. 위험표시가 나타나는 구간에서는 좌우로 수 백 길의 벼랑아래서 불어오는 음풍으로 모골이 송연하고 한 순간도 방심할 수없는 곳으로 20m의 로프 앞에서면 오금이 저려온다.
박 용범 대장을 비롯한 6명이 한 조가 되어 조심조심 바닥으로 내려서지만 아슬아슬한 암릉길 은 끝날 줄을 모르고 스릴 넘치는 날 등에서 진땀을 흘리며 마의 구간을 지나면 쇠사다리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 앞에서 밤새 내린 서리가 하얗게 꽃을 피우는 미끄러운 철 계단에 선뜻 발을 내딛기에 엄두가 나지 않아 엉거주춤 망설여진다.
용의 목덜미에서 머리에 해당하는 옥녀봉으로 오르는 직벽 코스는 오늘의 산행 중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거대한 바위가 수직으로 버티고 있어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리는 곳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동아줄이 바람에 일렁이며 우리를 희롱하고 오른쪽으로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부디 치는 파도가 힌 포말을 일으키며 악마의 화신인양 넘실대고 있으니 정말로 되돌아가고 싶은 구간이다.
절해고도처럼 오가는 사람도 없이 삭막하고 위험천만한 암릉 구간에서 우리 일행 중에서 등산학교를 수료했다는 신 여사가 성큼성큼 앞장서서 바위를 오르기 시작하고 남자 체면에 주춤거리며 뒤돌아 설수도 없는 처지라. 어차피 오를 길목이라면 먼저 통과하는 것이 상책이라 한발 한발 조심스럽게 암벽을 기어오르며 위험한 구간을 지나 정상에 올라서니 어찌나 긴장이 되었던지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주르르 흘러내려도 해 냈다는 자부심으로 뒤에서 올라오는 일행들을 느긋한 마음으로 바라본다.
옥녀봉의 정수리에서 바라보는 충무 앞바다의 한려수도는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 놓은 듯 동양의 진주라는 별칭에 걸맞게 아름다운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정상에서 내려서는 벼랑길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보내주는 스릴 있는 구간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사다리에 몸을 싣고 몸도 마음도 두둥실 청정해역의 창공으로 훨훨 날아오른다.
대전에서 진주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공사가 한창이지만 아직까지는 열악한 교통여건으로 서울에서 이곳까지 장거리 산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고속도로가 완공이 되고 나면많은 인파들이 몰려와 청정해역을 오염시키는 우를 범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으로 한번 파괴된 자연은 되돌릴 수 없으니 우리 모두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존하여 아름다운 유산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겠다.
한라산(1,950m)의 눈꽃 축제
산행일시: 2004년 1월 10일
산행일정: 인천 연안부두에서 9일 저녁 7시 15,000톤 급 유람선으로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8시 제주항에 도착하여 관광버스 로 성판악에 올라 산행을 시작 한다.
갑신년 신년 산행을 한라산의 눈꽃 축제로 계획을 세우고 한 달 전부터 교통편을 점검 하던 중 인천에서 제주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을 이용하여 한라산 등산을 하는 이색적인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밤새 13시간의 항해와 8시간의 등산 또 다시 13시간의 배를 타야하는 강행군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체험 할 수 있다는 호기심과 저렴한 경비가 매력적이어서 미투리 산악회에 예약을 하고도 과연 내 체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지만 유람선에서의 낭만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면 설 레이는 마음으로 후 꾼 달아오른다.
금년 겨울은 유난히 포근하면서 눈까지 내리지 않아 벌거숭 이 산들이 을씨년스러운데 한라산에는 어느 정도의 눈이 있을지? 혹시나 그곳에도 눈이 없다면 어쩌나 하는 걱정 반 기우 반으로 초조하게 기다리는 중에 마침내 출발일이 돌아오고 꼼꼼하게 짐을 챙겨 의정부에서 동 인천까지 전철로 오는 동안 상상의 나래를 펴며 환상의 세계로 달려간다. 동 인천역의 승강장에는 화려한 등산복 차림의 인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며 연안부두로 줄달음친다. 땅거미가 지는 연안부두 대합실에는 제주로 향하는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10여개가 넘는 산악회에서 모집한 700여명의 인원을 점검하랴 승선 티켓을 나누어 주랴 그야말로 잠시도 한눈을 팔 겨를도 없는 아수라장이다.
7시 정각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오하마나 호는 제주를 향해 선수를 돌리고 칠 흙같이 어두운 바다 위를 미끄러지며 순항을 하고 있다. 산악회 별로 한 방에 40여 명씩 배정을 하고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이듯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일찌감치 술판이 벌어진다. 모두들 산 꾼다운 영웅담으로 목청을 높이고 한라산으로 향한다는 하나 만으로도 금 새 친숙해지고 주고받는 술잔 속에 십년지기나 된 듯 흥이 무르익는데 아내가 마련해준 보따리를 풀어보니 갈피갈피마다 정성이 가득 담겨있는 음식과 쪽지 편지로 둘러앉은 동료들의 환호와 갈채로 감칠맛을 더 하고 이사람 저 사람의 보따리에서 쏟아지는 안주들이 산해진미로, 코끝을 톡톡 쏘는 홍어회는 입안에서 살살 녹는 안줏감으로 백미를 이룬다.
우리가 타고 가는 오하마나 호는 15,000톤급의 호화 여객선으로 편도 요금이 3등석 기준으로 46,000원인데 먼 거리 항해에서 오는 불리한 여건으로 비행기에 손님을 빼앗기고 주로 화물을 운반하는 용도로 사용하다가 산악 대장을 하던 분이 청해진 해운의 상무로 부임해 오면서 산악회를 상대로 한라산 등반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여 금년 1월 1일 해돋이 행사로 출발을 하여 대박을 터트리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3회씩 운행하던 스케줄도 매일 운항하게 되어 저녁 7시에 인천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8시에 제주항에 도착하고 저녁 7시에 제주항을 출발한배는 다음날 8시에 인천항에 도착하게 된다.
우리가 잠든 사이 밤새도록 달려온 배는 시속 40km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려가고 별도 달도 먹장구름 속에 가려 우중충한 날씨에 비라도 내리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 속에 새벽 5시를 지난다. 초조와 긴장 속에 선실을 드나들며 여명이 밝아 오기를 기다리는데 서해안의 얕은 수심 때문인지 조용하게 순항하는 배는 멈추어 선 듯 배 멀미 하는 사람이 없으니 신기하고 엊저녁에 마신 술로 정신이 몽롱하지만 한라산을 넘자면 배를 든든히 해 두어야 하겠기에 우거지 국에 밥 한술로 요기를 하고 예정시간 보다 30분이 빠른 7시 30분에 제주항에 도착한다.
서둘러 버스에 올라 성판악을 향해 오르는 도중 버스에서 불이 나는 소동으로 모두들 버스에서 내려 새로운 버스가 올 때까지 초조한 마음으로 30여분을 기다린 끝에야 새로 온 버스로 성판악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한라산의 겨울 등산은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 동안 개방이 되는데 해가 짧은 겨울산행은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성판악에서 9시가 넘으면 출입을 통제하게 된다.
가까스로 9시에 현지에 도착하여 지체된 시간을 벌기위해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서둘러 출발을 하는데 전국에서 모여든 축제의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등산 행렬은 제 자리에 멈추어 선 듯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다. 완만한 경사에 철도 침목으로 길을 만들고 군데군데 돌 자갈을 깔아 산행에는 큰 무리가 없지만 사람들의 행렬을 추월하기가 만만치가않아 애를 태우며 5km지점인 사라 대피소를 1시간 만에 통과를 하고 고도가 높아지며 제법 많은 눈이 쌓여 겁에 질린 초보자들은 아이젠으로 무장을 하고 뒤뚱거린다.
12시에 입산을 통제한다는 진달래 대피소에 11시에 도착을 하여 잠시 휴식을 하며 세찬 바람에 무릅까지 빠지는 눈구덩이 속에서도 진달래와 구상나무가 설화를 피어내는 횐상적인 설경속에 추위도 잊은채 정상을 향한 발걸음이 이어진다.
얼마를 지나왔는지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쨍하고 햇볕이 내려 비추며 뒤돌아보는 산 중허리로 구름이 펼쳐지고 오색 창연한 빛깔로 구상나무에 피어나는 설화와 조화를 이루며 한라산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설경이 펼쳐진다. 고진감래라 어려운 고비를 헤치며 올라온 보람을 만끽하며 점점 더 거세지는 바람을 가슴에 안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진달래 능선의 철도 침목을 건너뛰며 12시 05분, 1,500m의 등고선을 지나 추위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꺼운 파카에 겹겹이 장갑을 끼고 뒤뚱거리며 백록담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12시 10분)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 곱은 손 호호 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발 아래로 펼쳐지는 백록담은 흰 눈 속에 몸을 웅 쿠리고 서귀포 쪽의 시가지가 구름 속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설경으로 오로라의 광속에 반사되는 은빛 세계가 우리의 발걸음을 정지된 시간 속으로 유인을 한다.
8년 전 진달래 축제에 다녀간 추억이 새롭게 되살아나며 계절 따라 색다른 신비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한라산은 땅속에서 잠을 자던 용암이 분출하여 백록담을 만들고 삼성혈에서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삼씨 성의 시조가 태어났으며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으로 불리는 이곳은 중국의 진시황제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보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신비한 곳으로 변화무쌍한 모습에 매료되어 추위도 잊 은채 나무계단과 고무깔판으로 만든 등산로를 따라 왕 관능 가는 북사면으로 들어서니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 속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겨우내 내린 눈이 쌓이고 쌓여 구상나무의 끝자락까지 차오르는 눈길은 오고가는 사람들의 발길 따라 깊은 골이 되어 자연의 봅슬레이 코스가 펼쳐지며 완만한 경사에 누워만 있어도 가속도가 붙으며 미끄러지는 놀이동산의 슬로프로 동심의 세계에서 즐거움을 만끽한다. 백록담의 북벽이 바라보이는 왕관릉은 평평한 분지로 바람도 잠잠하여 이곳에서 휴식을 하며 식사도 하는 전망 좋은 쉼터로 우리 일행들도 자리를 잡고 차에서 나누어 주는 도시락을 펼쳐 보니 싸늘하게 식었지만 시장이 반찬이라 더운밥 찬밥을 가릴 처지가 아니다. (13시)
식사하는 주위로는 사람들의 손길에 길들여진 까마귀들이 모여들어 호시탐탐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청소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으니 한라산의 자연 정화에 한 몫을 하고 있는 파수꾼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왕관 능에서 용진각 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은 한라산 등산로에서 가장 가파른 곳으로 길게 로프가 매어있어 그나마 다행으로 용진각 대피소는 사람들이 상주하지 않는 곳으로 굼주림과 추위에 지친 조난자들의 피난처인데 쓰레기 더미처럼 너무나도 지저분하게 사용을 하여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13시 30분통과)
탐라계곡의 상류 지점인 용진각 대피소를 지나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삼각봉(1,895m)아래 개미 목에 이르면 넓은 분지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맑은 날에는 제주시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한 여름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는 천상의 화원이지만 지금은 모든 사물들이 눈 속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며 새 봄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동면기로 세찬 바람만이 온몸을 휘어 감는다. 개미 등에 이르면 한라산을 넘으며 지친 몸을 어루만지고 피로를 회복 시켜주는 완만한 구간으로 고도가 낮아지며 바람도 잔잔하여 따사로운 햇살에 얼었던 몸을 녹여주며 두터운 외투를 벗어 가벼운 옷차림으로 눈길을 헤치며 탐라 대피소까지 이어진다. (14시 40분)
탐라계곡 대피소를 지나며 눈의 양도 적어지고 나무계단과 널찍하게 다져진 자갈길을 지나게 되는데 일행들이 모두 뒤로 처진 탓인지 오가는 사람들도 별로 없는 한적한 길에 건천으로 변해버린 계곡의 검은 돌들은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 놓은 조물주의 걸작 품으로 울창한 숲을 지나면 너른 광장이 나타나고 관음사 코스의 시발점이 되는 곳으로 오늘의 산행도 마감을 하게 된다. (15시 30분)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9.6km 정상에서 관음사 주차장 까지 8.7km 도합 18.3km를 6시간 30분 만에 완주를 하고 아침에 우리가 탔던 1호차를 찾아보니 후미로 처진 일행들이 빽 산행을 하면 태우고 오기위해 성판악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전갈이다. 참고로 설명을 하자면 백록담에서 13시가 넘으면 관음사 쪽으로 하산이 통제 되므로 빽 산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16시 30분까지는 그들을 기다려야 하고 17시에 도착한 버스에도 15명이 승차하고 있으니 3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아직도 관음사 코스에서 하산중이라는 결론이다.
예정대로 라면 우리는 제주항으로 출발을 하고 후미그룹은 각자 항구로 찾아와야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속속 도착하는 일행들을 맞아주며 지루하게 기다리다 보니 18시 20분이 되어서야 후미가 무사히 도착을 하여 가까스로 19시에 출항하는 배에 승선을 하게 된다. 백여 명이 넘는 일행들이 큰 사고 없이 한라산 눈꽃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감을 하며 행사를 주관한 최 효선 총무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나고 모두들 개선장군이 되어 축배의 잔을 높이 들며 깊어가는 밤이 아쉬운 듯 열광의 도가니로 제주항의 불빛이 아스라이 멀어만 간다.
남해의 비경 거문도, 백도
- 보로봉(254m), 수월산(350m) -
소 재 지 : 전남 여수시 삼산면
육, 칠월의 긴긴 장마에 여행일정을 잡아놓고 勞心焦思(로심초사)로 가슴앓이 하면서 전전긍긍 하지만 우리의 애타는 심정은 아랑곳없이 전국적으로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가운데 궂은비가 추적추적 내리며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다. 개인적인 일정이라면 당연히 취소를 하겠지만 4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여하는 행사인지라 무리인줄 알면서도 행사 요원들의 노고에 보답하는 뜻으로 동참을 하며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는다.
궂은 날씨 속에서도 출발시간이 가까워오며 방학동 동성웨딩홀 앞으로 낮 익은 얼굴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몰려나오고 집을 나선다는 설 레임으로 밝은 표정 속에 두 손을 잡고 흔들어 댄다. 다행이도 우리가 지나는 고속도로의 길목에는 거센 빗줄기도 숨을 죽이고 계곡에 흐르는 황토 빛 진흙물이 넘실거리지만 지리산 자락을 휘감아 도는 운해는 답답하던 가슴을 후련하게 틔워 주는 청량제가 되어 7시간의 긴 여행도 지루한줄 모르게 여수의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한다.
날렵하게 걸려있는 돌산대교 너머로 먹장구름도 서서히 지취를 감추고 잔잔한 바다 위를 날고 있는 오가고 호는 물안개를 헤치며 섬 사이를 잘도 빠져 나간다. 장마의 끝자락에 걸쳐있는 호우주의보 탓인지 309명이 정원인 선실에는 100여명도 안 되는 단출한 인원으로 일등석 특등석 구분 없이 입맛대로 골라잡아 널널하게 자리를 잡고 35노트의 속도로 물 찬 제비같이 달려가는데 비위가 약한 아내는 배 멀미로 고초를 겪으며 안전요원들의 응급치료를 받고서도 인사불성이 되어 나의 애간장을 태운다.
여수에서 거문도까지는 115km의 먼 거리로 쾌속정으로도 2시간이나 걸리고 제주도와 여수의 중간거리에 동도와 서도, 면소재지가 있는 고도를 합해 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삼산면은 절해고도의 거센 풍랑을 막아주는 자연그대로의 방파제가 있는 美港(미항)으로 인구 1,000여 명이 상주하고 있으며 1,906년 수 월산에 설치된 등대는 동양 최대의 위용을 자랑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장군이 별장을 두어 방어를 하였고, 수시로 출몰하는 왜구들의 침범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순국한 이대원장군의 사당이 있으며, 설학사상의 대가로 당대를 풍미하던 귤은 김유 선생이 고향에 돌아와 낙영재라는 서숙을 열고 본격적인 후학을 양성하니 고흥, 완도 등지에서 인재들이 모여들어 학문을 꽃 피우고 고도라는 지명도 큰 학문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뜻으로 巨文島(거문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거문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1,885년 4월부터 2년간 영국의 함대가 불법으로 점령한 사건으로 우리의 치욕적인 한 단면을 보는 것으로 극동에서 열강들의 각축전이 벌어지는 와중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으로 러시아의 남진정책에 맞서 러시아를 견제한다는 구실로 군함 6척과 상선 2척으로 무단 침입한 사건인데 거문도가 함대 사령관의 이름을 빌어 해밀턴 항으로 서구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잔잔한 물결 위를 미끄러지듯 순항하는 오가고 호는 희망과 낭만을 가득 싣고 남해안의 국립공원 최남단의 쪽빛바다 위를 힘차게 달려간다.
16시 40분 거문도에 도착하여 곧바로 유람선으로 갈아타고 동쪽으로 28km 떨어진 백도 관광길에 나선다. 상 백도와 하백도로 나누어진 백도는 남해의 푸른 물결위에 39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국가 명승지 7호로 지정된 조물주의 걸작 품으로, 억만년의 세월 속에 거센 파도와 자연이 다듬어 놓은 조각의 전시장이요. 환상의 섬으로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3,000여개의 섬 중에서 흑산도의 홍도와 백령도의 두무진과 함께 3대 경승지로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신비의 베일 속에 가려진 곳이다.
초고속으로 달리는 유람선은 20여 분간 푸른바다를 헤치고 수반위에 떠있는 산수화를 우리 품에 안겨주며 저녁노을에 비친 침봉들의 아름다운 모습에 모두들 넋이 나간 듯 말문을 열 지 못한다. 속도를 줄이며 구성진 가락으로 장황하게 설명하는 선장의 목소리도 귓전에서 맴돌고 눈앞에 펼쳐지는 황홀경속에 20여 분간의 해상관광에 취해 꿈속을 헤매며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장마의 한 복판에서 이렇게 아름다운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삼대가 덕을 쌓아야만 가능할 수 있는 의야 산악회만의 행운이 아니겠는가?
석양 노을 바라보며 만선의 기쁨으로 돌아오는 우리의 마음은 푸른 창 공으로 날아오르고 삼산면의 소재지가 있는 고도는 가장 작은 섬이지만 영국 함대가 주둔한 인연으로 문화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아늑한 포구 안에는 세월도 비껴간 듯 나지막한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여인숙과 노래방, 다방들이 즐비하게 포구를 따라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가 묵을 영빈관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고 거문도가 자랑하는 횟집에서 하는 저녁식사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으로 구미를 돋우고 이곳의 명물인 삼호교를 건너 방파제를 거닐며 싱그러운 거문도의 밤바다에 추억을 묻고, 지나가는 밤이 아쉬운 듯 모두들 까페로 몰려가지만 지척에 있는 영국군 묘지를 꼭 보고 싶다는 양 승민씨의 제안으로 신 여사와 셋이서 손전등을 앞세우고 골목길을 돌아서니 영국군 함대 사령부가 주둔했던 거문초등학교가 나오고 500여 m의 산길을 오르자 3기의 비석이 말없이 우리를 반겨준다.
이역만리 머나먼 낯선 곳에 잠들어 있는 임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모두들 떠난 자리에 홀로 남아 오늘 밤도 찬 이슬 맞으며 망향의 한을 달래고 있는가? 역사의 한 자락을 펼치며 삼가 고인들의 원혼을 달래고 돌아서는 발길이 허전한 것은 위정자들의 욕심으로 병정놀이 총알받이가 되어 이름 모를 산과 계곡에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도는 이가 어찌 그대들뿐이겠는가? 별도 달도 구름 속에 몸을 숨기고 파도소리 잔잔히 들려오는 거문도의 밤도 서서히 깊어 가는데 선풍기도 돌지 않는 후덥지근한 잠자리에서 날밤을 지새우다 된 새벽에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가문도 등대에서 해돋이를 보기위해 서둘러 준비를 하고 고도와 서도를 잇는 아름다운 무지개다리(삼호교 1,992년 완공)를 건너 남쪽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30여 분을 걸어가면 바닥에 나무계단이 깔려있는 목넘어에 도착하고, 섬에서 가장 높은 수월산(350m) 자락을 휘감아 돌며 15분간 울창한 동백나무 숲길을 치고 오르면 남쪽 끝자락에 웅장한 등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깎아지른 벼랑위에 날렵하게 올라앉은 관 백정에 올라서지만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라는 명성도 안개 속에 뭍 혀 버리고 허탈한 마음으로 서둘러 보로봉을 향해 발길을 돌린다.
목넘어로 되돌아 나와 좌측의 울창한 동백나무 숲속으로 들어서면 가지런히 정돈된 등산로엔 편마암으로 정성들여 쌓아올린 365계단이 끝없이 정상으로 이어지고 무거운 발걸음에 가빠오는 숨소리로 조용하던 숲속이 한바탕 소란스러워지며 인기척에 놀란 산새들이 날아오른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을 맞으며 보로봉 정상(약 250m)에 올라섰지만 아직까지 정비가 덜된 탓이지 표 지석 하나 없이 삼도에 둘러싸인 100여 만 평의 그림 같은 포구도 무심한 안개 속에 몸을 숨기고 무성한 억새만이 앞길을 가로 막는다.
발끝이 벼랑이라 조심조심 내려서니 수백 척 높은 누대 앞길을 가로막는 신선바위 정상이 신선들의 놀이터라. 그곳에는 신기한 바둑판이 있다지만 안개 속에 휩싸여 벼랑길을 오를 엄두를 못 내고 아쉬움 속에 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전망대 바위에 올라선다. 아득한 벼랑아래 보이지는 않지만 바위에 부디 치는 파도소리가 귓전을 때리고, 기와집 몰랑의 용마루에는 주민들의 정성이 하늘에 닿은 돌탑들이 가지런히 싸여있어 오가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샛노란 나리꽃이 살며시 고개 내밀어 미소 짓는다.
불탄봉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도 배시간의 촉박함 때문에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의 하산로를 따라 내려오며 천하절경의 해안산행을 안개 속에 묻어두고(사량도의 암릉길에 비유되는 절경으로 용아장성으로 불리고 있음) 유림 해수욕장에 도착하며 2시간 20분간의 산행도 마감을 하고 서울에는 시간당 2-30mm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지만 비 한 방울 맞지 않고 거문도 관광을 하고 있으니 소박한 꿈을 안고 살아가가는 우리들에게 내려주신 선물에 감사를 드린다.
여관으로 돌아와 샤워하고, 짐 챙기고, 아침 먹고, 산책하며 10시 40분에 출발하는 오가고 호에 몸을 싣고 뒤돌아보는 거문도의 명경지수 잔잔한 호수위로 물안개가 장막을 드리우고 멀어져가는 뱃전에서 아내의 손을 꼭 잡고 지난해 백령도 뱃길에서 한 약속을 지켰다는 홀가분한 마음에 풍운아의 만고강산이 멀리멀리 메아리친다.
보라카이 해변
여행일시 : 2002년 12월 13일 - 17일까지(4박 5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며 짐을 꾸리고 새벽바람 맞으며 인천 공항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모처럼 아내와 함께 여행길에 나선다는 행복감으로 .......
이른 새벽이지만 공항 대합실에는 출국하려는 인파로 만원을 이루고 K R T 여행사의 김 창곤 과장의 안내를 받으며 대한항공 621편에 올라 8시40분 마닐라를 향해 활주로를 박차고 창공으로 솟아오른다. 380석이나 되는 대형여객기에 빈 좌석이 없이 만원을 이루고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 비행기는 10,000m이상의 고도를 유지하며 2500km의 거리를 900km의 속도로 날아가지만 빠르다는 느낌보다는 푹신한 융단을 깔아놓은 갖가지 모양의 아름다운 구름을 뚫고 눈부신 태양아래 원의 정점에서 맴도는 듯하다.
마닐라 공항에 도착하면서 가장 먼저 반겨주는 것은 영하 8도의 강추위가 몰아치는 서울을 탈출한지 3시간 30분 만에 27도를 가리키고 있는 열탕 속으로 들어 왔으니 후끈한 열기 속에 등줄기에서 땀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린다. K R T 배우철 부장의 안내로 현지 관광이 시작되는데 필리핀의 수도인 마닐라는 인구 1,000만의 거대한 도시로 피시그강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리잘 공원을 비롯하여 고급주택과 은행, 호텔, 쇼핑센터, 공항등 마닐라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신흥 개발지이고 북쪽으로는 차이나타운, 빈민촌, 서민의 거리, 필리핀의 국립대학이 있는 낙후된 지역으로 최근에는 외국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는 우범지역이라 할 수 있다.
필리핀의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면
1,521년 이전에는 원주민들의 부족국가 시대이고 이후 포르트칼 사람 마젤란이 스페인 국왕의 윤허를 얻어 동방으로 항해하던 중 필리핀을 발견한 후로 1,898년까지 330여 년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어 서양문물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으로 카톨릭 신자가 80%(민다나오섬 제외)이상으로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추기경을 중심으로 수백 년 된 성당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오르간이 있고 주위에는 고풍스러운 스페인 건물들이 시가지를 형성하고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온다는 말대로 호세 리잘이 독립운동을 하다 사형을 당하게 되는데 사형장으로 걸어간 999개의 발자국을 재현하여 놓은 현장에서 약소국가의 비애를 되새기며 우리의 안중근 의사를 대하는 듯 가슴이 저려온다. 1,898년 열강들의 다툼 속에 미국의 승리로 1,942년까지 40여 년간 미국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약소국가의 비참함이야 필설로 형언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영어를 선물로 받았다는 위안으로 1,942년부터 3년간 일본의 지배 하에서 맥아더 원수의 상륙작전으로 비로소 독립을 하여 70년 초까지는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2번째의 경제대국으로 영화를 누리다가 마르코스와 이멜다의 장기집권으로 국력이 쇠약해져 지금은 아시아에서도 후진국으로 전락하여 일인당 국민소득이 우리나라의 1/8수준으로 30년 전의 우리의 모습을 보는듯하여 씁쓸한 교훈이 되고 있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 잡은 리잘 공원에는 민족의 영웅인 호세 리잘의 동상이 있으며 무성한 숲속에 잘 가꾸어진 잔디밭 옆으로는 대통령의 이 취임식을 하는 광장이 있고 크리스마스 튜리가 걸려있는 가로등이 화려한 불빛으로 밤거리를 수놓으며 공원 옆에 있는 마닐라 호텔에 여장을 풀고 첫날밤을 보내게 된다.
이튿날 2일째의 일정으로 7시에 호텔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서둘러 국내선 전용인 마닐라 공항으로 이동을 하는데 세계에서 2번째(7,225개)로 섬이 많다보니 교통수단은 자연히 비행기가 아니면 배를 이용하게 된다. 필리핀이 자랑하고 있는 보라카이 섬으로 가기위해서는 중서부에 있는 피나이 섬(4번째로 큰 섬)의 깔리보 공항(마닐라에서400km. 비행기로 40분소요)으로 이동하여 54km 북서쪽에 있는 까띠끌란항 까지 전용버스로 이동을 하게 되는데 도로사정이 열악하다보니 1시간 40분이나 걸리는 느림보 운행으로 중앙 차선도 없이 사람이나 개, 돼지도 마음대로 활보하는 짜증나는 여행길이다.
그래도 도심을 벗어나면 길가의 마을로 산으로 눈길이 가는 곳마다 야자수가 숲을 이루고(세계 제일) 평화로운 농촌이 그림같이 펼쳐지는데 벼를 심으며 수확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고 (쌀 생산량이 세계 2위) 일년에 3모작을 한다니 부러움이 들지만 주민들의 생활이 빈곤하게 보이는 것은 풍부한 자원으로 낙천적인 성격에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
까띠끌란 항에서 20여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지만 보라카이로 들어가는 세관의 검색이 어찌나 철저하던지 여행용 가방의 밑창까지 쏟아 보이는 수난 속에 배에 승선을 하며 불쾌한 감정이 앞서지만 필리핀의 치안이 너무도 허술하여 총기사고가 많이 나는 탓에 지상의 천국인 보라카이의 안전을 위하여 세심한 검사를 하게 된다는 설명에 이해를 하게 된다.
보라카이 섬의 길이는 12km에 총면적이 1,032ha이며 상주인구가 약 9,000명으로 개뼈다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세계 3대 해변으로 마지막 남은 천국으로 불릴 만큼 때 묻지 않은 자연을 간직한 휴양지로 1975년 유럽의 한 여행객의 소개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날개 달린 방카(필리핀 전통의 배)를 타고 보라카이 섬으로 들어가며 오색이 영롱한 물 색깔, 끝없이 펼쳐지는 백사장, 그 뒤로 야자수가 숲을 이루고 그늘 아래로는 그림 같은 리조트가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접안시설이 되어 있지 않은 선착장은 현지 민들의 등에 엎이지 않으면 물속을 걸어서 상륙을 해야 하고 선착장 바로 뒤, 야자수 그늘아래 2층의 로얄파크 리조트 108호실에 여장을 풀고 점심도 먹는 둥 마는 둥 쪽빛 바다 속으로 뛰어 든다.
7km 에 걸쳐 펼쳐지는 백사장은 일반 모래가 아니고 천만년 억겁의 세월동안 산호초와 진주들이 태평양의 거센 파도에 휩쓸리며 알알이 부서진 금모래 은모래가 영롱한 빛깔의 에메랄드, 비취색으로 바닷물을 물들이고 얕은 수심에 따듯한 수온, 밀려오는 파도 속에 몸을 던지면 심신의 쌓인 피로도 말끔히 씻겨 내리는 지상의 천국이다. 이곳 섬을 보호하기위해 집을 지을 때는 야자수보다 높아서는 안 된다는 규정으로 2층 이하의 집들이 야자수의 그늘 속에 자리를 잡고 우리가 여장을 풀고 있는 리조트는 교민이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고향이 강릉인 박 길수 사장은 5년 전 이곳에 정착하여 교민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40%가 한국인이다 보니 교민들이 운영하는 가게가 23곳이나 되고 가이드로 활동하는 인원이 80여명으로 늘어나 한국의 열풍이 불어 한국어를 배우는 학원까지 생겨나고 월드컵의 열기가 식지를 않아 대- 한 민국 필승코리아를 외쳐대며 환영하는 그들에게서 자부심을 느끼며 진한 감동을 받게 된다.
꿈같은 남국의 밤을 보내고 아일랜드 호핑투어(옵션)를 위해 우리 모두 방카에 올라 뱃노래로 흥을 돋으며 작렬하는 태양아래 배를 띄우고 검푸른 바다에 낚싯줄 드리우니 이방인 알아보는 영리한 열대어 미끼만 따먹고 희롱하는데 감질 나는 낚시질에 세월을 낚고 투덜투덜 푸념하며 애꿎은 소주잔만 축을 내누나. 점심으로 차려온 생선 바비큐. 난생처음 보는 이 맛을 다시 볼 수 있을까? 탐스런 바다가재, 붉은 대계, 속살이 통통하여 입속에서 살살 녹아들고 고귀한 소주 맛이 감칠맛을 더하네.
물안경 눌러쓰고 호흡기로 무장하고 검푸른 바다 속에 몸을 던지면 수중세계 용왕님 마중 나오고 산호초 꽃길에는 열대어기 춤을 추며 불가사리 두 팔 벌려 환영을 하네. 어설픈 몸짓으로 바닷물을 들이키고 살길 찾아 뱃전에 올라오면 눈물 콧물 쏟아지며 정신이 몽롱하고 야자수 그늘아래 자리를 잡고 남국의 아가씨에 몸을 맡기니 보드라운 손길에 오감이 열리며 스르르 꿈속으로 날아간다.
남국의 밤은 깊어가고 아내와 함께 거니는 밤바다에는 모래톱에 부디 치는 파도소리와 쏟아지는 별빛들의 속삭임 속에 우리의 사랑도 활활 불타오르고 와이키키 해변에서의 약속은 태평양을 건너 이곳까지 흘러넘치고 해운대 백사장으로 낙산 해수욕장으로 끝없이 흘러 갈 것이다. 오 ! 남국의 밤이여 ...... 영원히 잊지 못할 밤이여!
4일째 아침. 오늘은 팍 상한 폭포를 찾아가는 날이라 부지런히 서 둘러 짐을 챙기고 보라카이에서의 추억을 뒤로하고 2일전 우리가 건너왔던 그 길로 되돌아 마닐라로 돌아오니 12시가 넘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관광지중의 하나인 팍상한 폭포는 세계 7대 절경중의 하나로 손꼽히는 곳으로 필리핀에서 유일한 고속도로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지방도로 보다도 못한 탓에 북쪽으로 105km 떨어진 곳을 3시간 이상 달린 후에야 현지에 도착하였으니 우리나라에 이런 명소가 있다면 시원하게 뚤 린 고속도로에서 신나게 질주 할 수 있었을 텐데........
목적지로 가는 도중 오락가락 하는 빗줄기로 애간장을 태우더니 현장에는 장대 같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팍 상한이 자랑하는 카누에 옮겨 타고 폭포를 거슬러 오르는 정글 탐험의 관광이 시작된다. 뱃전에 물이 찰랑찰랑 뒤뚱거리며 급류를 거슬러 오를 때 배가 뒤집히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긴장이 되기도 하지만 주위에 펼쳐지는 기암절벽의 아름다운 절경에 매료되어 탄성이 절로 나오고 협곡이 양옆으로 100여 m의 물줄기가 쏟아지는 폭포 앞에서 말문이 막히고 만다.
협곡의 가장 자리로 카누를 끌어 올리는 사공들의 모습은 신기에 가까운 날렵한 동작으로 우리를 감동시키며 장대비가 쏟아지는 와중에도 필승 코리아를 외쳐대며 흥을 돋우는데 팍상한 폭포 아래서 뱃머리를 돌리고 만다. 예정대로라면 1시간 30분 동안 급류를 거슬러 오르며 크고 작은 18개의 폭포를 지나 산의 중간까지 오르게 된다는데 어제 많은 비가 내린데다 오늘도 비가 계속내리고 있어 심한 물살에 더 이상 오를 수 없다는 말에 실망감으로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해 보지만 협곡을 지키는 조상님의 심술로 입맛만 다시다 말았으니 못 다한 절경을 꿈속에 접어두고 마음을 비우는 수밖에....... 하지만 어쩌겠는가. 순리대로 사는 것이 인간인 것을 넘실대는 급류에 미끄러지며 한을 달래고 장대비속에 사진 한 장 찍지 못하고 되돌아 내려오는 속에서도 가냘픈 몸매로 날렵하게 파도를 타는 사공들의 정성에 감사를 드린다.
마닐라로 돌아오는 내내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모르고 비좁은 고속도로에 뒤 엉킨 차량으로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데. 하루 종일 강행군으로 지친 몸이지만 배 우철 부장의 친절한 안내로 그나마 지루함을 달래며 9시가 넘어서야 마닐라에 도착을 하여 극장식당에서 여흥을 즐기며 피로를 풀고 마닐라 호텔로 돌아와 필리핀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다.
여명이 밝아오며 시원하게 불어오는 새벽 공기를 마시며 리잘 공원으로 나아가니 조깅으로 하이워킹으로 건강을 다지는 사람들과 아침부터 음악에 맞추어 댄스에 열중인 아름다운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나무숲과 벤치에는 노숙자들의 천국으로 흉물스런 모습에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데 우리의 I.M.F 를 떠 올리며 인간이사는 세상에는 어디나 빈부의차가 있게 마련이고 양지와 음지의 모습이 대비되는 안타까운 모습이다.
호텔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정해진 코스에 따라 쇼핑도하고 직경이 15mm나 되는 5,000 불짜리 진주도 구경하며 4박 5일간의 필리핀 관광을 마감하고 상냥한 대한항공 622편 아가씨들의 안내를 받으며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외국에 다녀 올 때 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좋은 나라 밤거리 마음대로 다닐 수 있고, 시원하게 뚤 린 고속도로에 활기 넘치는 사람들 지구촌 구석구석 울려 퍼지는 오- 대한민국 필승 코리아 영원하여라.
'나의 작품세계 > 바람과 구름이 머무는곳'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 제 5 장 - 신바람 나는 하이워킹 (0) | 2008.03.25 |
---|---|
5. 제 4 장 - 정맥길 기맥길 (0) | 2008.02.24 |
3. 제 2 장 - 높새 바람 불어 오는 대간길 (0) | 2007.12.28 |
2. 제 1 장 - 둥지를 날아 오른새 (0) | 2007.12.18 |
1. 전 문 (0) | 2007.1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