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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한북정맥을 졸업하는날

 

한북 정맥 졸업하는 날

현달산(138m),  고봉산(206m),  장명산(102m)

 

 


산행일시: 2008년 1월 30일     산행시간:  (5시간 20분)

소 재 지: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날 씨: 쾌청       산행거리: 약 18km

동행자: 의정부의 김 창수 ,   대전의 김 태식( 필명 -통영마루)

 

                                                                     장명산에서 바라보는 곡릉천

 

지난주 솔 고개에서 512 탄약중대까지 무사히 마루 금을 밟아오며 마지막 구간도 빨리 끝내고 싶은 욕심에 2주 연속 도전장을 낸다. 새벽같이 집을 나섰지만 의정부역 버스정류장에서 오지 않는 3700번(의정부 - 인천)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터미널로 가서야 승차를 하지만, 기사님의 말씀이 왈릉골이나 탄약중대 앞에서는 정차를 하지 않으니 대자리에서 800번을 갈아타야 한다는 귀띰으로 대자리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며 한심한 생각이 든다. 

 

 

영하 8도의 추위가 목덜미를 파고드는 이른 아침, 발을 동동거리며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구세주 같은 버스에 오르고 보니 낙타고개를 지나며 곧바로 탄약 중대 앞이 아닌가?  목적지를 지척에 두고 갖은 고생을 하며 애간장을 태웠으니, 1시간 이상이나 늦어진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군부대로 진입하는 도로를 따라 종종 걸음을 친다.

 

 

 

10여분 후 부대정문에서 오른쪽으로 숲 길을 따라 마을의 비닐하우스를 지나고, 왼쪽의 등로를 따라 부대 철조망으로 접근한다. 잔설이 쌓인 절 개지를 통과하는 중에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뜻밖에도 한북정맥 종주 길에 나선 동지들을 만났으니 이 아니 반가울 수가. 외로운 종주 길에 백만 원군을 얻은 기쁨으로 함께 가는 발걸음에 활기가 넘친다.

 

                                                   부대후문을 향하는 통영마루 님

 

 

 

부대후문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서면, 평지나 별반 차이가 없는 숲 길을 지나 왼쪽의 2차선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절 개지를 치고 오른다. 잠시나마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속에 과수원 너머로 교회의 첨탑이 보인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광목장 정문으로 내려선 다음, 표지기가 걸려있는 울타리를 경계삼아 마루금이 이어진다. 아늑한 분지속에 자리잡은 목장을 바라보며 현달산 오르는 길에 江陵金氏 支山君 長湍派 望鄕의 祭壇을 바라보며 고향을 이북에 두고 온 실향민들의 애끓는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

 

                                                     현달산 정상에서 필자

 

 

 

해발 138m의 정수리는 큰 어려움 없이 오를 수가 있고, 삼각점이 3개나 있지만 표지석이 없다. 일산의 너른 들판이 조망되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서쪽으로 우리가 가야할 고봉산이 높다란 송신탑을 머리에 이고, 북쪽으로는 낮은 구릉과 그 너머로 금촌 시내의 아파트들이 아련히 바라보인다.

 

 

10여 분간 주위를 조망하며 앞으로 진행해야할 방향을 숙지하는 등, 나 홀로 산행의 외로움에서 해방된 즐거움으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정상에서 올랐던 길을 10여 m 다시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마루 금이 이어지고 평지돌출형의 산세답게 가파른 벼랑길이 잠시나마 이어진다.

  

 

곧 이어 2차선 포장도로의 삼거리 갈림길인 문봉동재에 도착한다. 도로를 건너 동국대 병원 방향으로 들어서면 차도와 인도의 구분없이 건축 폐자재를 실은 덤프트럭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자욱하게 일어나는 먼지를 마셔가며 타워 골프연습장을 지나 10여 분간 진행하면 왼쪽으로 예빛 교회가 나타나고 마루금은 오른쪽 숲 속으로 이어진다.

 

 

 

 

 

부대철조망을 왼쪽에 두고 진행하면 고봉산의 고압철탑이 점점 가까워지고 “밝은 마음, 웃는 얼굴, 활기찬 모습”의 구호가 적힌 백마사단의 예하부대 정문에 도착한다.  40여 년 전 월남 전선에서 생사고락을 하던 부대이기에 감회가 새롭다. 철조망을 따라 한 동안 진행하면 석수오리와 궁중한방 삼계탕 간판이 걸려있는 성동고개에 이른다. 

 

                                                         고봉산의 통신 시설물

 

 

 

 

 

 

이곳은 고봉산 오르는 들머리다. 완만한 경사의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르면 만경사가 나온다. 지루하고 힘겨운 포장도로를 100여m 거슬러 오르면 정상을 우회하는 갈림 길에서 오른쪽 임도로 들어선다. 몸뚱이는 하나인데 머리가 둘인 “천하재물 취득자” 장승을 지나 주능선에 이르고, 거미줄 같이 얽혀있는 등산로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산책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중산동 두산아파트 방향으로 내려선다.

 

 

 

 

 

10여 분간 진행하면 고봉산 정수리가 시원스레 조망되는 헬기장에 이르고, 잠시 후 군 통신 안테나가 있는 삼각점 봉을 지나면  팔각정(高峰亭)이 반겨준다.

 

 

                                                  헬기장에서 바라보는 고봉산

 

 

 

 
이제 소나무 숲 사이로 두산아파트의 상징물이 보이고 시원스레 펼쳐지는 중산고개에 이른다. 307번 도로의 중산고개는 일산동에서 조리면을 관통하는 4차선으로 교통량이 많은 번화한 곳이다. 고개 마루에는 S K 주유소와 종주 팀들이 식사하기 좋은 순두부 집이 있어 대전에서 온 통영마루 님은 매식을 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우리는 가지고 온 간식먹을 곳을 찾아 길을 건너면 금정굴 가는 표시목과 장승을 만난다.

 

 

 

절개지를 치고 올라 100여 m 진행을 하면 통한의 양민학살의 현장인 금정굴에 이르고 구천을 떠도는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위령탑 건립을 위한 모임의 현수막이 우리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6.25 전쟁 중에 9.28수복으로 점령 중이던 인민군이 물러가자 부역자를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남녀노소를 비롯하여 억울한 사람들이 반공단체와 경찰에 의해 대량으로 학살된 곳이다.) 

 

 

 

 

 

 

잔솔들이 무성한 등산로를 따라 식사하기 좋은 곳을 골라 자리를 펴고, 의정부에서 온 김창수님과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산행경력 2년차의 새내기지만 6개월 동안 100여 회의 산행으로 산의 매력에 푹 빠져 한북정맥을 단독으로 주파하는 저력을 보이고 있으니, 우리 산 꾼들 세계에 커다란 거목으로 빛을 보게 될 날도 머지않았으리...

 

                                                    의정부의 김창수 님

 

10여 분간 식사를 하고 완만한 솔밭을 거슬러 오르면 108봉에 올라선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속에서도 명당자리 고수하는 무덤3기와 삼각점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상에서 20여m 되돌아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큰 마을  방향을 표시하는 이정표가 소나무 가지에 걸려있다. 소나무 숲 공터에는 돌탑 7기가 외로운 종주꾼들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주는듯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담겨있고 잠시 후 큰 마을 아파트 경내로 내려선다.

 

                                                       108봉 정상

 

 

 

 

이제부터는 그나마 산 길도 끝이 나고, 일산의 도심지를 통과하는 미로를 걷게 된다. 직진하면 큰 마을 마트에 이르고 왼쪽으로 정문을 나서며 오른쪽으로 진행을 하면 경의선 철도 위를 지나 일산 가구공단의 정문으로 들어선다. 산속을 누비다 번화가로 나오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건널목을 건너 제 1문을 통과하여 골목길로 진행을 하면 오른쪽으로 라자가구 전시장이 있고 계속 직진하면 노송가구 건물이 반겨준다.

 

 

 

                                                    경의선 철로 위에서

 

 

 

 

가구단지를 벗어나며 건물도 듬성듬성 서부개척시대의 황무지처럼 너른 벌판이 벌집 쑤셔 놓은 듯 택지개발이 한창이다. 오른쪽으로 비포장 길을 걸어가노라면, 언 땅이 녹아 질척거리는 진흙탕 길에서 등산화에 흙이 묻을 새라 요리조리 피해가며 골프 연습장을 지나 왼쪽으로 보이는 소나무 숲 속으로 따라가면 창건사가 나온다.

 

 

 

 

 

 

                                                   정맥의 마루금이 잘려나간 현장

 

창건사를 뒤로하고 오른쪽으로 조금가면 뚝 방의 절개지 위로 올라선다. 앞에 보이는 너른 벌판이 그 유명한 운정택지개발 현장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택지개발이 한창이라, 다음에 다시 찾아 온다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상상이 가지를 않는다.

 

왼쪽으로 토성 비슷한 뚝 방이 활처럼 휘어있지만 자세히 보면 마루금은 건설현장의 제물이 되어 평지로 다듬어져있다. 건너편의 개발인력 건물(붉은 벽돌집)쪽으로 절개지에 마루금의 흔적이 있다. 어린아이들 땅따먹기 하듯이 여기저기 붉은 깃발이 꽂혀있는 현장으로 내려서면, 덤프트럭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그 사이를 횡단하여 절개지로 오른다.

 

 

 

뚝 방에 올라서면 선사문화유적 발굴 현장이 나온다.  뚝방을 따라 여름한 철 무성하게 자란 가시덤불을 헤치기에 자신이 없어 마구 파 헤쳐진 벼랑을 아슬아슬하게 건너, 경기인력 개발원건물 골목길로 올라선다.

 

 

 

 

앞을 가로막는 가시덤불을 벗어나 시원하게 뚤린 4차선 도로를 따라가게 되지만, 마루금이 실종되기는 마찬가지다. 공사중인 가림막이 돼지몰이하는 통로처럼 4차선 도로를 따라 길게 설치되어 답답하기그지없다. 목동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 무한정 걸어가면, 교하1차 월드 메르디앙 아파트 정문이 나온다. 농지로도 쓸모없어 버려진 황무지에, 아방궁보다도 화려한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서니 상전이 벽해되는 변화의 바람이 불어오는 현장에서 감회가 새롭다.

 

 

 

                                 오늘도 걷는다 만은 장명산을 찾아서

                                 오백리 굽이굽이 물 길을 피해

                                 마루금도 실종되고 숲 길도 간곳없이

                                 한강에서 불어오는 설한풍 맞바람에  

                                 자라목 움추리며 털벙거지 눌러쓰고

                                 아스팔트 보도 불럭 한 없이 걸어간다.

 

 

 

지루하고 피곤한 포장길. 감촉좋은 산길은 몇 시간을 걸어도 피곤한줄 모르는데,  최신 공법으로 만든 보도 불럭이 쉽게 피로한 것은 몸에 미치는 충격을 흡수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도로를 따라 10여분을 진행하면 정면으로 아파트숲이 나타난다.

 

무심코 직진을 한다면 지금까지 고생한 보람도 없이 종주 길이 수포로 돌아가게되니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신주에 걸려있는 보리암과 임진강 장어구이 간판이 있는 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소나무 숲이 있는 오솔길로 진행하면 교하읍 고인돌 삼림욕장 안내도가 세워진 갈림길에 이른다.

 

 

 

파평 윤씨 정정공파 묘지가 있는 갈림길에서 왼쪽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왼쪽으로 들꽃어린이집이 숲속에 보금자리를 틀고 차량들의 통행이 많은 절개지위로 올라선다.

 

 

 

 

왼쪽의 임도를 따라 100 여m 진행하여 넓은 도로에 도착하면, 왼쪽으로 지하통로가 있다.  길을 건너 절개지 쪽의 도로가에 성재암 표지석을 지나 성재암 가는 진입로를 따른다. 시원스레 질주하는 4차선도로와 고압전신주의 철탑대신 소각장의 굴뚝같이 세워진 신기한 모습을 바라보며 절개지의 정상에 올라 왼쪽으로 사찰의 진입로를 따른다.

 

 

 

 

 곧이어 자연석에 새겨진 성재암 표지석의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직진하면 고인돌 삼림욕장 간판이 나오고, 파평윤씨 가족묘의 비석에서 오른쪽으로 (왼쪽은 교하중학교)고개를 넘어 2차선 포장도로인 핑 고개에 이른다.

 

 

 

 

 

도로에 내려서면 버스 정류장과 유진 케미갈 안내판이 있고, 이곳에서 오른쪽 샛길로 진행하면 교하읍이 자랑하는  문화출판 단지들이 나타나고 성림문화사 건물이 유난히 돋보인다. 미진사의 정문에서 오른족으로 고개 마루를 바라보며 왼족의 절 개지를 치고 올라 공단 뒤편의 능선으로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흙더미를 쌓아놓은 사이로 장명산이 바라보인다.

 

                                                                  핑고개

 

 

장명산의 전위봉은 골재 채취로 만신창이가 되어 산더미를 이루고, 분쇄기의 굉음소리와 덤프트럭으로 흙먼지가 뿌옇게 일어나는 공사현장에서 장명산도 언제 사라질지 예측할 수 없는 운명 앞에 풍전등화의 신세가 되어 높은 절 개지를 이루고 있다.

 

 

 

 

 

 

 

장명산의 들머리는 왼쪽으로 능선을 오른다.  잠시 후  열린 산악회에서 종주기념으로 소나무 가지에 걸어 놓은 한북정맥 완주의 현수막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고 방공호를 겸하고 있는 정수리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곡릉천이 유유히 흐르고 강 건너로 오두산이 바라보인다. (14시)

 

 

 

 

 

 

그 먼 길을 달려오며 오매불망 그려오던 장명산. 100여 m의 낮은 언덕에 불과하지만  파주 문산의 곡창지대를 아우르는 전망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울대고개에서 시작하는 곡릉천의 물길을 피해 남쪽으로 도봉산과 상장봉, 노고산의 군부대를 거쳐 옥녀봉에서 삼송리로, 현달산을 거쳐 고봉산으로 고양시와 파주시를 누비는 한북 정맥의 줄기는 영원토록 나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 쉬리.

 

 

 

 

 

 

이곳에서의 백미는 타종식이 아닌가? 쇠망치 높이 들어 내려치는 종소리는 멀리멀리 한북정맥의 마루금따라 수피령까지 울려 퍼지고, 산을 사랑하는 산꾼들의 행복한 순간이다.  출발은 달라도 졸업을 함께한 인연으로 금촌의 족발 집에서 쫑파티를 하며 대전의 김태식 님(호는 무학이요. 닉네임이 통영마루로 홀대모의 회원)과 의정부의 김창수님과 술잔을 높이 들며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은 없지만, 우리의 산하를 마음 껒 누비며 건강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