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설악 신선대(1,155m)
소재지: 남설악 한계령에서 오색 쪽으로 내려오다 금포 교 위 흘림 골이 들머리
후드득 떨 구는 빗줄기는 집을 나서는 풍운아의 가슴에 찬 물을 끼얹고 모처럼 미투리를 찾아가는 부푼 꿈에 멍울이 든다. 일기 예보에도 비 소식은 없었고 처서가 지난 계절의 변화는 아침저녁으로 선들매 까지 불어와 남설악의 주전 골로 향하는 경쾌한 발걸음을 막아서는 빗방울에 마음이 답답하지만 여명이 밝아오는 이른 새벽 잠실역 1번 출구에 올라서니 산신령으로 변신을 한 최 대장과 일 년만의 해후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남설악의 흘림 골에 홀려서 모여드는 반가운 얼굴들을 맞으며 격의 없는 대화로 꽃을 피우며 홍천 가도를 달려간다.
다행이 비도 그치고 소양강가에서 피어오르는 운해가 산등성이를 휘 감아 돌며 아름다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지만 오늘의 산행지가 만물상에 올라 남설악의 화려한 기암절벽을 감상하는 것이 주목적인데 안개로 뒤덮인 주 전골을 상상만 해도 맥이 풀린다. 모처럼 산행 길에 나선 우리들의 마음을 헤아리시어 맑은 하늘을 열어 달라는 기도를 하며 한계령을 넘어서니 우리의 간절한 소원이 하늘에 닿았는지 구름도 안개도 자취를 감추고 조물주가 빗어 놓은 조각들이 남설악의 계곡을 수놓으며 아흔 아홉 구비를 돌때마다 갖가지 형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흘림 골은 20여 년간 휴식년제로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진입로도 뚜렷하지 않고 경사가 심해 그대로 지나치기 쉬운 곳으로 한계령에서 오색 쪽으로 내려오는 U 자형 커브 길을 2번지나 일직선으로 내려오다 금포교 못미처 90도 급커브를 돌면 오른쪽으로 희미한 오솔길이 나타난다. 이곳도 경사가 심한 비알길이라 차를 오래 세워 둘 수가 없어 재빠르게 숲속으로 들어서면 이제 막 휴식년제가 끝이 나고 공원 관리소 측에서 진입로를 다듬고 다리를 놓는 공사로 계곡 안이 어수선하지만 사람들의 숨결이 미치지 못하는 자연 속에서 천수를 다하고 길가에 널 부러진 고사목과 푸른 이끼로 가득한 계곡의 신비로움이 펼쳐진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오른 암봉 사이로 기화요초들이 피어나고 음습한 계곡에는 다래넝쿨 어름넝쿨 들이 앞을 가리며 바람난 수캐들을 불러들이는 여심폭포는 졸라맨 단속곳 풀어헤치고 은밀한 음부를 들어내고 촉촉이 이슬을 머금고 있으니 발정 난 남정네들의 춘정을 어이 할거나. 한 줌의 햇볕도 스며들지 못하는 흘림 골의 암벽사이로 한 송이 금강초롱이 수줍은 미소를 머금고 숨소리도 거칠게 깔딱 고개에 올라서면 삼라만상의 전시장인 만물상이 펼쳐진다.
내친김에 올라선 등 선대는 남설악이 자랑하는 신선들이 노닐던 곳으로 수 백길 벼랑위에 우뚝 솟아오른 첨봉에는 서너 사람이 쉬어 갈만한 공간으로 남산타워의 전망대에 올라선 듯 한계령에서 대청봉에 이르는 서북능선의 암 봉들이 화려한 불꽃을 피워 올리며 주전 골의 암 봉들이 화답을 하는 선경으로 속세의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오장육부가 말끔히 씻겨 내리고 환히 열린 가슴으로 무상무념의 경지로 들어서면 수 만 가지 조각 전시장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어이 할 꺼나!!!!!!!!!
배낭이 있는 고갯마루에 내려와서도 만물상에 홀린 마음을 진정할 길이 없어 맞은편의 무명 봉에 오르면 수 백길 단애를 이룬 첨봉이 하늘위로 치솟고 오금이 저려 오는 정수리에서 몽유병 환자처럼 환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무아지경에 빠져든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뒤로하고 가파른 벼랑길을 내려서면 햇볕도 스며들지 못하는 등선폭포는 울창한 수림 속에 베일을 가리고 낙숫물 소리도 멎어버린 가녀린 물줄기에 실소를 금할 수 없지만 신선들이 노닐던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주거니 자 커니 술잔을 돌리며 푸짐한 잔칫상에 호방한 웃음소리 시간도 정지된 환상이어라.
풀어진 마음을 추 수르는 데는 깔딱 고개 오름길이 제격인지라 막걸리에 백 세주, 매실주에 양주까지 얼근한 몸짓에 몽롱한 환상 속에 벼랑길을 만나 숨이 턱에 차도록 구슬땀을 흘리고 주 전골을 넘는 고갯마루에 무거운 짐을 부려 놓는다. 남설악의 진수는 주 전골 계곡이라 푸른 하늘아래 솟아오른 암 봉 사이로 곧게 뻗은 낙락장송이 하늘을 가리고 단풍나무의 밀림 속에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은 낙차 큰 폭포와 소탕을 빗어놓고 기화요초들이 꽃 피우며 온갖 잡새들이 지저귀는 심심산골에 머지않아 붉게 물든 불꽃의 향연이 주 전골을 불태우리라.
주전폭포를 지나 십이 폭포에 이르면 암반 위를 구르는 맑은 물소리가 층층폭포로 미끄러지며 소를 만들고 남성다운 장엄함이 아니라 열두 폭 명주자락을 흐르는 물에 풀어 헤치고 수줍은 듯 조용히 미소 지으며 주 전골을 찾는 이들에게 심신을 달래주는 안식처이다. 우리의 계획은 십이 폭포 갈림길에서 이담계곡을 거슬러 망대암산 까지 다녀오는 일정이지만 신선대와 등선폭포에서 신선놀음에 도끼자루가 썩다보니 3시간 이상 소요되는 망대 암 봉 길을 다녀오겠다는 지원자도 없고 신선들이 노닐던 계곡을 벗어나기 싫어 모두가 십이 폭의 환상에 빠져든다.
20여 분간 계곡을 따라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좌측으로 300여 m를 거슬러 오르면 한계령 차도와 만나는 중간지점에 용소폭포가 우렁찬 굉음소리와 함께 깊고 깊은 소를 이루고 있으니 주 전골 제일의 폭포로 명경지수 맑은 물이 암반 위를 휘 돌며 청량감을 더해 준다.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금강문을 지나며 마음을 닦고 선녀탕 그늘아래 다리쉼하며 감질 나는 오색약수 약발이 다한 듯 갈증 난 길손에게 물 보시도 못하는 안타까움 속에 주 전골의 신선놀음도 막을 내리며 6km의 짧은 산행이지만 자연과 벗하며 내일을 향한 희망의 나래를 활짝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