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안반도
1. 제1경 백화산
태안(泰安)은 나라가 태평하여 백성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의미의 “국태민안(國泰民安)”에서 따온 말이다. 지도를 유심히 살펴보면 지네발처럼, 서해안에서 굴곡이 가장 심한 고장이 태안이다. 동쪽을 제외하고는 3면이 모두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이고, 530km가 넘는 긴 해안선을 갖고 있다.
‘솔향기길’과 ‘태안해변길’을 중심으로 걷게 되는 태안은, 해상국립공원(海上國立公園)으로 지정될 만큼 비경이 많아, 30여개의 해수욕장과 119개의 크고 작은 섬이 산재하여, 서해안관광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몇 구간으로 나누게 될지 미리 예측하기가 어려울정도로 굴곡이 심한 곳이라 자못 기대가 크다.
남부터미널에서 6시40분에 출발한 직행버스가 2시간20분 만에 태안 터미널에 도착한다. 태안에서 첫걸음을 시작할 솔향기길은 이원반도를 중심으로 5개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그 중에서 태안읍 청소년수련원이 있는 냉골에서 시작하여 백화산 기슭을 따라가는 5코스가 시작점이다.
청소년수련원은 터미널에서 가까운 거리여서 택시(4천원)로 이동한다. 입동이 지난 지 일주일이나 되었으니, 겨울문턱을 넘어선 셈이다. 추수 끝난 벌판은 황량하지만, 5코스가 시작되는 백화산은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화려한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태안 8경중에서 으뜸인 백화산(284m)은, 안성 칠현산(516m)에서 남서쪽으로 내려온 금북정맥이 팔봉산(326m)을 솟구친 다음 태안반도 안흥(安興) 앞바다에 가라앉기 전에 솟아 오른 산이다. 산등성이 곳곳에 기암괴석이 많아 산세가 수려할 뿐만 아니라, 해질 무렵 정상에서 가로림만으로 넘어가는 낙조야말로 사진작가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또한 백화산 기슭(태을암)에는 국보307호인 마애삼존불상이 큰 바위에 암각 되어 있다. 서산의 마애삼존불보다도 앞선 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삼존불은 백제시대의 작품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좌우의 불상이 중앙의 것보다 큰 것이 특징이다.
백화산은 흰 돌(白石)이 많아, 봄이면 부용화(芙蓉花)로, 나뭇잎이 떨어진 가을이면 돌 꽃이 활짝 피어 백화(白花)가 돋보이는데, 서울을 등지고 있어서 조선 5백년간 과거에 급제한 사람이 한명도 없다고 한다. 백화산이 흑화산으로 변하면 문만무천(文萬武千)의 인재가 난다하여 울창한 수림으로 가꾸었지만, 해방이 되면서 무자비한 남벌로 백화산이 되었다가 지금은 다시 울창한 수림지로 변하고 있다.
솔향기 5코스는 초입부터 임도를 버리고 숲속으로 이어진다. 피톤치트의 향기에 취해 1.5km를 거슬러 오르면 고갯마루에서 임도와 만난 솔향기길이 또 다시 백화산 자락으로 파고든다. 솔향기 길에서 세월 따라 전설 따라 이야기 한 자락을 풀어본다.
중국의 한나라 때 원기라는 사람이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포로가 되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딸 수선이 제나라로 찾아갔지만, 아버지는 숨을 거둔 뒤였고, 무덤가에 핀 꽃을 가져다 뜰에 심었더니, 다음해 여름 하얀 꽃이 만발하여 효심이 지극한 수선국으로 불렀는데, 이 꽃이 조팝나무라 한다.
삼사일간 질척거리며 내린 비로, 허리 꺾인 억새들이 빗물에 흠뻑 젖어 바짓가랑이를 적시고, 비알 진 경사로에 설치한 부목이 미끄러워 엉덩방아를 찧고 만다. 호된 신고식을 치루고 내려선 산후리정류장에서 634번 도로를 횡단하여 삭선천제방을 따라가면, 가로림만에서 가장 깊숙한 남쪽해안에 도착한다.
황금산이 있는 가로림만 입구에서 직선거리로 23km를 들어왔으니, 그 방대한 규모에 놀라고 만다. 가로림만 제방에서 건너다보이는 곳에 눈길이 머무는 곳은 지난번 다녀온 호리반도의 구도 항이다. 금굴산(149m)자락으로 이어지는 솔향기길을 버리고, 태안군환경관리사업소 입간판이 있는 2차선 도로(삭선길)를 따른다.
잠시 후 용주사입구에서 솔향기 길과 합류하여 위생처리장 앞에서 갈두천 제방으로 올라선다.
물 빠진 갯벌위로 거대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두꺼비 형상의 선돌바위다. 원래는 지금보다 크기도 컸고 신성시 했던 바위인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 바위를 깨트려 지금과 같은 크기와 형태가 되었다고 한다.
전망대 쉼터에서 바라보는 가로림만은 수묵화로 그려낸 수채화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이곳에서 솔향기길 5코스 8.9km를 2시간 만에 완주하고, 4코스를 따라 새섬리조트로 이어진다.
2. 솔향기길 4코스
솔향기길 4코스는 634번 도로가 지나는 풍천교회에서 시작하여 새섬리조트까지 12.9km이지만, 풍천교회에서 갈두천 하구까지 3.4km를 생략하고 9.5km를 걷게 된다. 선돌바위를 다시 한 번 바라보며 제방을 내려와 “솔빛바다펜션” 옆으로 돌아 청산길로 들어선다.
청산길을 따라 들어선 마을에는, 앙상한 가지가 찧어지도록 단감이 열리고, 이방인의 인기척에 놀란 개들이 앙살 맞게 짖어댄다. 개의 목줄부터 확인하면서 해변가에 자리 잡은 낙가사로 내려선다. 바다로 상징되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구원하기위해, 중국 절강성 보타산(普陀山)에 다녀온 후, 5년 전 보타사를 설립하였다고 한다.
설립연대가 일천하다보니 특별한 문화재는 없고, 열반에든 길이 10여 m의 황금와불(黃金臥佛)과 대웅전 지붕위에 모신 관음상이 인상적이다. 가로림만을 조망하는 전망대에 올라서면 조금 전에 지나온 갈두천제방과 선돌바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우리나라 해안에도 해수관음상을 모신사찰이 많이 있다. 동해의 낙산사와 서해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 이외에도 기장군의 용궁사, 정동진의 등명낙가사, 양양의 울울암, 여수의 향일암이 유명하다.
솔향기길은 낙가사 입구에서 전봇대 사이로 보이는 밭두렁을 타고 가야한다. 숲속을 100여 m 진행하면 숲속에서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따라오자면 1km가 넘는 길을 돌아와야 하는지라, 밭주인의 사용허가를 받지 못한 탓에,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밭두렁을 타고 넘어 온 것이다.
이제부터 이화산 자락을 타고 가는 임도를 따라 마산저수지를 돌아오는 길이다.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포근한 날씨 탓인지, 이화산 자락에도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山과 바다, 湖水가 어우러진 절경이 펼쳐진다. 무한정 쏟아지는 피톤치트 세례를 받으며, 무아의 경지로 빠져든다.
2km가 넘는 마산저수지를 돌아 청산리 해변가로 나선다. 물 빠진 개펄에서 깊게 파인 갯골을 볼 수 가있다. 강이나 개천이 바다로 흘러드는 어구에 생기는 물고랑이다. 이곳에서도 갯벌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에 의해 강에서 유입되는 각종 오물이 정화된다고 한다.
바다갯지렁이 500마리가 하루에 한사람의 배설물(2kg)을 분해하고, 바지락 한 마리가 1.8L의 물을 정화한다고 하니 신기한 일이다. 하지만 마구잡이로 버려지는 오물을 정화하는데도 한계가 있으니, 살아있는 바다를 유지하기위해서는 더 한층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바다건너에 우뚝 솟은 팔봉산. 밤하늘에 빛나는 북극성처럼, 가로림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길잡이다. 청산1리(아랫말)정류장에 도착하여 이적산(180m)이 있는 임도로 방향을 잡는다. 청산리 선착장까지 가는 것이 정석이지만, 오늘의 일정이 너무도 타이트하여 1km 정도 시간을 벌기위한 묘책이다.
산마루에 올라서면, 청산리 선착장을 돌아온 임도와 만나 사창리 저수지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솔향기길은 사창리 저수지로 가는 길을 버리고 가마봉해안으로 내려선다. 끝없이 펼쳐지는 가로림만, 건너편으로 새섬리조트가 반겨준다. 새섬리조트를 바라보며 돌아가는 해안도 절경이다.
소나무 그늘아래 놓인 벤치에 앉아 휴식을 한다. 선돌바위가 있는 갈두천 제방에서 8km를 내쳐왔더니, 발바닥이 얼얼하다. 무리인줄 알면서도 강행군을 하는 것은, 겨울해가 짧은 탓도 있지만, 정체구간으로 악명이 높은 일요일 오후, 서해고속도를 통과하기위해 17시 버스표를 미리 예매해 놓았기 때문이다. 소나무숲속에 노란색 펜션이 잘 어울리는 “파인힐”을 지나 “새섬리조트” 정문 앞에서 솔향기길 4구간도 끝이 난다.
3. 숨겨진 보물 소코뚜레바위
푸른 바다와 어우러지는 하얀색 벽에 주황색 지붕. 태안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새섬리조트” 정문 앞에서 솔향기길 3구간이 시작된다. 해안을 버리고 버스가 다니는 “태포길”을 따르는 것은 새섬리조트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비교적 경사가 심한 길을 1.7km 걸어가면 당산3리(마봉재)정류장이 나오고 이곳에서 오른쪽 숲길로 이어진다. 사람의 흔적이 별로 없는 산길을 300여 m 내려서면 작은 저수지(부무골지)가 나타나고 저수지 둑을 내려서면 해안제방과 연결된다.
새섬리조트 주변을 상세하게 기술하는 것은, 그 유명한 “소코뚜레해변”을 찾아가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밀물이 되면 해안 접근이 불가능하여, 이곳을 방문하려면 썰물시간을 잘 맞추어야 한다. 오늘은 07시 51분부터 물이 빠지기 시작하여 16시 44분까지 통행이 가능하므로 물때를 잘 맞춘 셈이다.
광활하게 펼쳐지는 갯벌. 질퍽거리는 해안을 따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중에, 긴 장화를 신은 주민 한분이 물 빠진 갯벌을 서성이고 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낙지를 잡아 올리는 중이다.
팔완목 문어과에 속하는 낙지는, 한자어로 석거(石距)라고 하며, 장어(章魚) 또는 낙제(絡蹄)라고도 쓴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맛이 달콤하고 회·국·포를 만들기 좋다고 했으며, 동의보감(東醫寶鑑에서는 성(性)이 평(平)하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했다. 몸길이 70cm로 길며, 연안의 조간대에서 심해 또는 얕은 바다의 돌 틈이나 진흙 속에 살며 5~6월에 산란을 한다.
낙지와 사촌간인 주꾸미는, 몸길이 약 20cm로 작으며 한 팔이 긴 낙지와 달리, 8개의 팔이 거의 같은 것이 특징이다. 수심 10m 정도의 연안바위틈에 서식하며, 주로 밤에 활동 한다. 산모퉁이를 돌아서자, 기다리던 소코뚜레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닷가로 길게나온 산자락 끝에 소코뚜레 모양의 구멍이 뻥 뚫려있다.
황금산의 코끼리 바위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서해안의 명물이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거센 풍랑에 부대끼며 형성된 소코뚜레바위는, 밀물이면 물속에 잠겨 바다생물의 은신처가 되었다가 썰물이 되면 우리인간에게도 길을 내주어 생활의 터전을 마련해 주고 있다.
물때를 잘 맞추어 수월하게 소코뚜레바위를 통과하고 밤섬 나루로 진행한다. 소나무가 울창한 밤섬(栗島)은 아담한 백사장 까지 갖추고 있어, 여름한철 관광객들을 위한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솔향기길은 밤섬 선착장 못 미친 지점에서 왼쪽으로 경사가 심한 포장길을 따라 진행한다.
언덕에 올라서면 밤섬을 중심으로 소코뚜레해안까지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아름답다. 하지만 바다와는 거리가 먼 임도를 따라 울창한 숲속을 걷게 된다. 간간이 보이는 해안의 아름다움도 사관로를 횡단하며 자취를 감추고, 산간오지의 둘레 길을 걷는 것처럼 적막강산(寂寞江山)이다.
길옆에 서 있는 이정표에는 볏가리 홍보관까지 4.3km를 알려주고 있다. 만대항에서 3시2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볏가리입구정류장에 도착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한 시간의 여유밖에 없다. 하루에 6번 밖에 다니지 않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17시에 예약한 버스를 탈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진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산길, 초겨울의 스산한 날씨에 땀을 후줄근하게 흘리며 달려가도 국사봉(205m)둘레길이 멀기 만하다. 해돋이 명소로 알려진 언덕을 뒤로하고, 가제산·국사봉등산로 갈림길을 지난 뒤에야 이원방조제와 태안화력발전소가 내려다보이는 능선에 도착한다.
볏가리 홍보관까지 0.8km 남았다. 현재 시간이 3시. 간발의 차이로 버스를 탈수 있는 시간이다. 비알 길을 달려 “와우재” 간판이 있는 603번 도로에 내려오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산길을 시속 5km로 주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궁하면 통한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하지만 고생이 여기서 끝이 아니다. 기다리는 버스는 오지를 않고 무심한 시간만 흘러간다. 관1리 버스정류장에서 태안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20km가 넘는 거리인데, 언제 올지도 모르는 버스를 마냥 기다린다는 것이 피를 말리는 시간이다. 지나가는 차량에 콜을 해보지만 헛수고에 그치고 만다.
이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택시에 콜을 보내고, 승객의 양해를 얻어 합승하면서, 피 말리는 시간도 끝이 난다. 미터기에 2만 8천원이 나온 것을 2만원에 합의를 보고도 아깝지 않다는 생각은 그만큼 절박했던 순간 때문이다. 28km의 거리를 휴식시간 포함하여 6시간에 주파하고 예정된 시간을 소화했다는 것이 너무도 대견하지만, 앞으로 당일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앞선다.
4. 솔향기길 1코스
세브란스병원에서 시술하기로 약속한 날자가 4일 앞으로 닥아 왔다. 남들은 간단한 수술이라고 하지만, 몸에 칼을 대는 것인데 어찌 소홀히 할 수가 있는가. 병원을 다녀오면 몸을 추수 리는데 한 달은 걸릴 것이고, 내년2월 까지는 도보기행을 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수술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서해안 도보길을 위해 집을 나선다.
하지만, 만대항이라는 곳이 태안의 땅 끝 마을이어서, 교통이 너무도 불편하다. 당일치기로는 애써 찾아가도 솔향기길 1코스(10.2km)밖에 답사할 수 없으니, 전날 찜질방에서 숙박을 하고 6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이용한다면, 학암포까지 29km주행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야심한 새벽6시 30분. 태안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농어촌 버스에는 기사와 단둘이서 총알택시처럼 달려가도 45분이 걸려서야 만대항에 도착한다. 먼동이 터오는 만대항은 비라도 내릴 것처럼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다.
태안의 절경 “솔향기길”은 태안의 상징인 ‘바다’와 ‘소나무’를 테마로 하여 5개 코스에 51.4km를 조성하고 있다. 3,4,5코스는 지난번에 답사한 바 있거니와, 오늘 걷게 될 1코스가 가장 아름다워 여행객들 90% 이상이 푸른 바다와 솔향기가 어우러진 이곳을 찾고 있다.
이 길은 2007년 12월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사고 당시, 자원봉사자들의 방제작업을 위해 만든 것이 계기가 되었다. 당시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리는 자원봉사자들의 편의를 위해 “이원면민회 차윤천회장이 길을 닦았는데, 이후 아름다운 해안경관을 따라 조성한 산길을 다듬어 만대항부터 꾸지포해수욕장까지 10여Km의 산책로가 완성됐다고 한다.
이원반도의 끝자락에 터를 잡은 만대항은 태안의 땅 끝 마을이다. 땅이 기름지고 바다가 풍요로워 만세대가 살만한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바다를 바라보며 걷는 치유(治癒)와 소통(疏通), 보은(報恩)의 솔향기길. 가로림만을 지키는 파수꾼이 태안의 만대항과 서산의 황금산이다.
직선거리로 3km 남짓한 거리가 더욱 가까워 보이는 것은 황금산과 벌천포를 돌아왔다는 친근함 때문이 아닐까.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향하는 어선들로 아침을 여는 만대항(萬垈港), 솔향기길 안내판을 뒤로 하고 언덕을 오른다. 벌써 8년이 지난겨울이었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치는 해안가, 전국에서 몰려온 130만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갯바위에 달라붙은 기름띠를 닦아내는 고초를 겪은 곳이다.
유조선 “허베이 스피리트호”가 침몰한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피해는 더욱 심했고, 헌신적인 봉사자들의 도움과 자연정화 능력으로 태안 앞바다는 예전의 모습을 되찾고, 사상초유의 상처를 치유하기위해 만들어진 “방제로가 솔향기길”로 다시 태어나 우리의 곁으로 돌아왔다.
해변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구매 ‘수 둥’을 지나. 해안가로 내려선다. 작은 자갈과 부드러운 모래가 곱게 깔린 투명한 바다가 가슴속을 시원하게 틔워준다. 애잔한 전설의 3형제 바위는, 홀로 세 아들을 키우던 어머니가 바다에 일하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하자, 어머니를 기다리던 삼형제들이 바위가 되었다는 곳, 황금산이 가장 가깝게 보이는 곳이다.
이원반도 서쪽해안이 시작되는 붉은앙뗑이, 이름도 별스러운 이곳이 전망하나는 끝내준다. 서해의 거센 파도를 막아주는 여러 개의 섬들이 어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는 어린자식들처럼 썰물 때만 나타나는 수중암초다. 1938년에는 이곳을 지나던 여객선이 침몰하여 73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었다. 60년이 지나서야 앞 바다에 붉은 등대를 세우고 이 부근을 “장안녀”라 부르게 되었다.
갯바람에 실려 오는 비릿한 내 음과 솔 향이 코끝을 파고드는 해안가. 세막금을 지나 오르막길 을 올라서면, 정자와 안내판이 있는 당봉전망대(58m)다. 당봉은 과거 이곳 어민들이 만선을 기원하면서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정자에 올라서면 일몰과 일출을 볼 수 있어 전망이 뛰어난 곳이다.
쉼터가 있는 헤먹쟁이 안부, 근욱골해변, 칼바위, 큰 노루금을 지나 여섬 해변에 도착한다. 일몰이 아름답다는 여섬.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리고, 밀물이면 섬으로 변하는 귀여운 섬. 만조시간이라 고립된 여섬에는 거센 풍랑이 몰아치고, 이원반도가 자랑하는 독살도 물속에 잠기고 말았다.
서해안에서 전해오는 고기잡이 독살은, 밀물 때 밀려온 고기들이 썰물 때 방죽같이 쌓은 독살에 걸려 바다로 나가지 못하는 고기들을 잡아내는 자연친화적인 고기잡이방식이다. 솔향기 길에서 소나무 숲이 가장 울창한곳이 여섬 부근이고, 발을 붙이기도 어려운 가파른 벼랑길에서 밀려오는 기름띠와 사투를 벌이던 봉사자들의 헌신적인 노력도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색적인 펜션이 자리 잡은 중막골 해변을 지나 300m 거리에 용난굴이 있다. 용 두 마리가 승천하기 위해 도를 닦았는데, 승천한 한 마리용은 굴 입구에 비늘 자국을 남겼고, 실패한 다른 한 마리용은 굴 앞에서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밀물 때라 찾아가지 못하고 별쌍금 전망대로 발걸음을 이어간다.
다시 부드러운 소나무 숲길로 접어들어 1코스에서 유일한 작은어리골 매점을 지나 큰 어리골 모래밭으로 내려선다. 1코스에서 유일한 무지개다리를 건너 산등성이를 올라서면, 가슴 아픈 현장을 목격한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무참하게 잘려나간 “솔 껍질 딱지벌레 피해지역”이다.
해안가로 밀려든 기름띠는 우리의 노력으로 해결했지만,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수 백 년 된 소나무들은 밑 둥 부터 잘려나간 벌거숭이산이 되고 말았으니 애석한일이다. 드디어 꾸지나무골해수욕장에 도착한다. 꾸지나무골해수욕장은 태안의 30여개 해수욕장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깨끗한 백사장, 동해안처럼 맑은 물이 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감동을 안겨주는 곳이다. 생각보다 험난한 산길을 돌아 1구간(10,2km)을 완주하는 데는 많은 체력이 소모된다. 예정대로 3시간 만에 완주하고 소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어간다.
5. 솔향기길 2코스
꾸지나무골 민박집 앞에서 마을길을 따라 내3리로 나간다. 1코스가 바다 내 음과 솔 향에 취하는 자연의 길이라면, 2코스는 임도와 해변 가를 지나는 마을길이다. 언덕바지에 올라서면 산재산 등산로 입간판이 서있다. 정상에 오르면 일출과 일몰이 장관이라고 하지만, 시간단축을 위해 그대로 통과한다.
사목해수욕장 2.9km 이정표가 있는 언덕에서 바라보는 경관이 또한 일품이다. 산재산 자락에 터를 잡은 내3리와 가로림만, 그 너머로 웅도와 대산읍, 망일산까지 서산의 산하가 어우러지는 한 폭의 그림이 펼쳐진다. 옥색청정의 동해안과는 달리, 먹물을 풀어놓은 수묵화처럼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를 그려 내고 있다.
새벽에 달려갔던 603번 도로를 횡단하면 “가족바다 낚시터 & 갯벌체험장” 입간판이 서있다. 양어장제방을 따라 장구도 방향으로 가는 길이 맞는 것 같은데, 삼거리 이정표에서는 603번 도로 밑 농로로 인도하고 있다. 잠시 망설이다 농로를 따르기로 한다. 마을에 도착하여 확인한 바에 의하면 제방길보다 1km 단축된 거리라고 한다.
그만큼 시간을 단축하여 603번 도로 굴다리를 통과하여 사목마을로 들어선다. 마을길을 잘못 들어 논두렁을 우왕좌왕(右往左往)하는 동안 해안가에서 벌어놓은 시간을 모두 소비하고 말았으니 세상일은 참으로 공평하다. 노송이 어우러진 사목해수욕장은 꾸지나무골해수욕장보다 규모도 크고, 사유지인지라 방갈로와 오토캠핑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먹구름도 서서히 물러가고, 바다건너 태안 화력발전소와 이원방조제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엊저녁 회룡역 순대 집에서 사온 순대가 보온밥통 속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따끈한 순대와 소주로 입가심을 하고 후망산 기슭으로 진입한다. 솔향기1길에서 힘을 소진한 터라, 뒷동산을 오르는 완만한 길에서도 숨이 가빠온다.
다행이 정상까지는 가지 않고 중간에서 오른쪽 음포해수욕장(1.5km)으로 길을 터준다. 소나무 숲길을 빠져나오면, 아담한 꾸지해변이 나타나고, 솔향기가 물씬 풍기는 솔밭을 지나 음포해수욕장에 도착한다. 가까이 다가서기전에는 보이지 않는 음포해수욕장, 노송의 그늘아래 방갈로가 그림 같고 입자고운 백사장이 이국적인 정취를 풍긴다.
한자로 숨을 은(隱), 개포 포(浦)를 써서 隱浦라 불렀는데, 변음이 되어 음포로 부르는 이곳은 구한말 청일전쟁(1894년)당시 경기도 풍도(風島)근처에서 패한 청나라군대가 이곳 해안가로 잠입하여 머물다 돌아간 뒤로 음포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진입로를 따라 후망산 기슭을 돌아서면 “염전체험관” 이 나타난다.
바둑판처럼 반듯반듯하게 구획정리 된 염전은 바닥을 타일로 깔아 한 달에 두 번 드는 만조와 사리 때, 바닷물을 저수지에 가둬두었다가 15일 동안 불순물이 없는 100% 천일염을 생산하고 있다. 체험관을 돌아 볏가리 마을로 진입한다. 농사체험, 갯벌체험, 염전체험을 할 수 있는 볏가리 마을은 바닷가에 있으면서도 전통적인 농촌 마을이다.
정월대보름날 논과 밭두렁에 쥐불을 놓고, 마을 어귀에 7∼8m의 소나무 장대로 볏가리대를 세운다. 볏가리대는 굵은 새끼줄을 세 방향으로 늘여 고정하는데, 이때 창호지에 오곡을 싸서 장대 끝에 매달아두었다가 음력 2월 1일 ‘머슴의 날’에 볏가리대를 내린다. 오곡 주머니를 풀어 싹이 튼 정도를 보고 그해의 풍흉을 가늠하는 볏가리대 세우기 전통놀이다.
볏가리 마을에서 서쪽 해변가로 구멍바위를 찾아간다. 활등처럼 휘어진 해안선 끝자락에 있는 구멍바위는, 오랜 풍화작용으로 바위에 구멍이 생긴 곳인데, 구멍바위를 통과하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에 따라 아기 갖기를 바라는 아낙네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가정의 행복과 자식들의 건강을 기원하며, 구멍바위에서 소원을 빌어본다. 때마침 거센 풍랑도 잦아들며 물이 빠지기 시작한다. 볏가리마을과 구멍바위도 구경했으니 이제 임도가 있는 뒷산으로 올라 이원방조제 입구에 도착하면 솔향기길 2구간도 완주하게 된다.
구멍바위 뒤편으로 “조난신고 표지목” 까지는 확인이 되었는데, 한 여름이 다 가도록 사람의 발걸음이 없었는지 오솔길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다. 무성한 가시덤불을 헤치며 분주하게 더듬어보지만, 길을 찾아낼 묘안이 없다. 다시 도전해 보지만 이번에는 산림청에서 설치한 그물망이 앞을 가로막아 구멍바위 해변으로 내려서고 말았다.
20여 분간 벌인 도전이 실패로 끝이 나고, 탈출구를 찾기 위해 볏가리 마을로 다시 가야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남쪽해안가를 바라보니 바위들이 듬성듬성 모습을 드러낸다. 무의식중에 일어나 해안가를 더듬어간다.
10 여분 후 이원방조제가 보이고 공룡의 등줄기처럼 날카로운 바위를 타고 넘어 방조제에 도착하며 숨 막히는 시간도 끝이 나고,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5시간 30분 만에 솔향기길 1.2구간을 완주한다.
6. 희망벽화 이원방조제
이원면과 원북면이 경계를 이루는 이원방조제는 일명 희망(希望)의 벽화(壁畵)로 부르고 있다. 2007년 태안기름유출사고의 절망을 이겨낸 130만 자원봉사자와 국민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가로 2,700m, 세로 7.2m의 방조제에 “2009년 희망 프로젝트” 사업으로 조성된 세계에서 가장 긴 벽화다.
‘에코, ’그린에너지, ‘희망’등 3가지 주제로 태안(泰安) 복군(復郡) 20주년을 기념하여 이원면(1.283m)과 원북면(1.467m)의 경계지점인 周島에 방조제 관리동을 두고 공모전 47점, 손도장 1점(총 7만개의 개인 손도장), 추진위원회 작품 등 태안 앞바다의 갈매기와 바다생물, 파도 등을 주제로 49개의 작품으로 구성되어 있다.
희망벽화로(希望壁畵路) 유채단지 앞에서 바라보는 이원방조제는 3km에 이르는 방조제를 중심으로 여의도면적의 1.6배인 1,352㏊의 거대한 호수와 농경지가 펼쳐진다. 이원면의 솔향기길과 원북면의 해변길을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하고 있어서, 서해안을 답사하는 나에게는 아주 중요한 길목이기도 하다.
오후1시. 솔향기길을 뒤로하고 해변길을 만나기 위해 방조제를 걷는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거대한 벽화, 인간 띠를 만들어 파도와 싸우던 고난의 순간들이 고스란히 살아나는 걸작품, 인간승리의 현장이다. 썰물 때면 모습을 드러내는 “갯벌참굴 시범사업 양식장”이 물속에 잠겨 못내 아쉽기만 하다.
방조제 중간지점인 周島에 도착한다. 이원면과 원북면의 경계지점이다. 파도도 없이 잔잔한 물결. 갈매기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지된 공간이다. 비릿한 바다 내 음이 풍겨오는 이원방조제, 건너편으로 태안화력발전소의 거대한 몸체에서 쉴 사이 없이 뿜어내는 흰 연기가 장관이다.
현대사회에서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전기. 산업이 발달하고 우리의 삶이 윤택해 질수록 더욱 필요한 물질이다. 1898년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면서 발전을 시작한 우리나라는 수력, 화력, 원자력에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하는 풍력, 태양광, 열병합, 조력발전을 통해 2015년 10월말 현재 9.747만 KW의 발전용량을 가지고 있다.
30여 분만에 이원방조제를 지나 태안화력발전소가 있는 방갈리로 진입한다. 가까이 갈수록 웅장한 발전소.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는 태안화력발전소는 1990년 3월 착공하여 1995년 6월 1호기 준공을 시작으로 2007년 8월 8호기가 준공됨으로서 약 400만k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추고 있다.
발전소 앞 2차선 도로는 대형화물차의 왕래가 많아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삼거리에서 오른쪽 학암포길을 따라가면 발전소 정문이 나오고, 2차선도로에 양쪽으로 주차된 차량사이로 차 한 대가 겨우 지나야하는 협소한 구간이다. 초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공장에서 무질서가 판을 치는 모습이야말로 후진국의 작태가 아닌가 싶다.
발전소에서 학암포까지 이어지는 1.5km의 진입로 또한, 비포장길이라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차량들이 춤을 추며 엉금엉금 기어가는 모습이 우수꽝스럽다. 드디어 학암포 바라길과 연결된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학암포 해변. 이곳에서 태안 해변길이 시작된다.
학암포(鶴巖浦, 태안군 원북면 방갈리)의 본래 이름은 분점포였다. 이곳은 조선시대 중국 상인들과 교역하던 무역항이었고, 이곳에서 질그릇(항아리)을 많이 수출해 동이 분(盆)자를 써 분점(盆店)이라 불렀다는 것. 1968년 해수욕장이 개장되면서 인근 학 형태의 바위가 있어 학암포라 했다고 한다.
오늘의 목적을 완수했으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학암포 주변을 둘러본다. 바라길이 시작되는 출발점에서 길은 두 곳으로 갈라진다. 시원하게 펼쳐지는 백사장과 사구로 가로막힌 습지 순례길이다. 습지사이를 나무다리로 연결하고 겨울바람에 물결치는 갈대들의 춤사위가 가슴속의 모든 앙금을 씻어 내린다.
학암포 해변으로 나오면 방갈로 촌이 펼쳐진다. 서해안에서 볼 수 없는 집단적인 방갈로가 해수욕장을 가득 메우고, 바다를 그리워하는 관광객들을 부르는 학암포의 명물이다. “태안해안국립공원”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해수욕장이라 아직은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학암포에서 태안터미널까지는 하루에 8번 운행하는 버스가 있다. 16시2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캔 맥주로 입가심을 하고, 30분 만에 터미널에 도착하여 17시30분에 출발하는 의정부행 직행버스에 올랐지만, 2일전 일어난 서해대교 화재로 인해 아산만으로 돌아오는 교통체증이 심해, 5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오며 고단한 하루를 정리한다.
7. 해변 바라길
위 점막시술을 한지 한 달(1월 8일) 만에 병원을 찾았다. 수술결과를 확인하기위한 내시경검사를 위함이다. 짧은 시간에 진찰을 완료한 이용찬 박사의 답변은 간단명료하다. 수술도 잘되었지만, 경과도 좋아 일상생활을 하는데 큰 무리가 없으니 안심하라는 요지였다.
가슴속의 먹장구름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리는 통쾌함이다. 한 달 동안 식이요법으로 지탱하면서, 오늘과 같은 날이 오기를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했던가. 아직까지 음주는 스스로 억제하고 있지만,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이 서해안 걷기를 이어가는 일이다.
무리하지 않도록 하루에 20여 km씩 1박2일 일정으로 학암포에서 파도리해변까지 몸 상태를 체크하며 걸어볼 생각이다. 태안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9시 10분, 20분을 기다린 끝에 학암포행 버스에 올라 3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싱그러운 바다냄새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고향집에 돌아온 기분으로 분점도를 경유하여 신두리 해안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간다. 태안이
자랑하는 솔향기길에 이어 자연과 더불어 인간이 살아 숨 쉬는 편안하고 안전한 해변길 7코스 중에서 첫 번째로 선정된 바라길(12km) 구간이다.
입소문을 타고 퍼진 탓인지, 부천에서 온 산악회원 80여명이 합세하고 보니 조용하던 겨울바다가 시끌벅적하다. 그림 같은 소분점도를 뒤로하고 ‘바라길’ 문주를 지나 소나무 숲길을 빠져 나오면 구레포 해수욕장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해수욕장의 전재조건이 입자고운 백사장과 수심 낮은 바다, 울창한 송림이 있어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선호하는 곳이어야 하는데, 아마도 구레포 해수욕장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활등처럼 휘어진 백사장의 길이가 1km에 수심도 낮고, 해변을 따라 울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석갱이 오토캠핑장이 조성돼있다.
해안이 시작되는 400여 m 구간은 천연기념물인 사구(砂丘)를 보호하고, 장애인과 노약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나무 테크로 길을 만들고, 모래가 바람에 쓸려가는 것을 방지하기위해 ‘모래 포집기’를 설치하여 자연의 신비함을 즐길 수가 있다.
백사장 길이 1004m에서 따온 천사(天使)길은 등산화가 푹푹 빠지도록 입자고운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진다. 남쪽해안가에 도착하여 산기슭으로 올라서면 오솔길이 이어진다. 융단처럼 부드러운 솔가리를 밟으며 내려선 곳이 먼동해변이다.
먼동해변은 옛 이름이「암매」였는데, 1993년 KBS대하드라마「먼동」이 방영된 뒤로 유명세를 타고 2009년 암매를 먼동으로 개명(改名) 했다고 한다. 용의눈물, 야망의 계절, 불멸의 이순신을 촬영할 만큼 주변경관이 아름답고, 먼동해변의 명물인 거북바위 정수리에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바라보는 낙조(落照)가 사진작가들의 단골메뉴라 한다.
바라길 문주에서 시작하는 숲길은 신두리해안까지 3.8km를 이어가며 곰소나무 숲길과 해안이 교대로 나타나며 아름다운 풍광을 그려낸다. 바라길은 아라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아라는 바다의 옛말이고, 바다를 옆에 두고 걷는다는 의미가 있다.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에 시원한 바람까지 불어오는 곰솔 길, 사각사각 밟히는 솔가리 길은 발이 푹 푹 빠지는 백사장에 비하면 몸도 마음도 훨씬 부드러운 비단길이다. 전망대와 쉼터, 마애해변을 지나 능파사에서 가파른 시멘트도로를 올라서면, 모재쉼터가 나온다.
태안해상국립공원 구간을 걷는 바라 길은, 주변의 명소마다 자세한 설명을 곁들여 지루함도 덜고 “내가 가고 싶은 곳”까지의 거리를 확인시켜 줌으로서, 체력안배를 적절히 할 수 있는 나침반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솔길도 끝이 나고 그 유명한 신두리 사구(砂丘)가 바라보이는 제방으로 내려선다. 마침 썰물 때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하게 멀어 보이는 백사장과 모래언덕이 장관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신두리 해안사구는 1만5천년의 장구한 세월 속에 바닷물과 바람에 밀려온 모래가 쌓여서 형성된 모래언덕이다.
2001년 천연기념물 제431호로 지정된 사구는, 해변(海邊)을 따라 약 3.4km에 넓이가 500m에서부터 1.3km에 이를 정도로 방대한 면적이다. 제방이 끝나는 지점에서 두 갈래 길로 나뉜다. 밀물 때는 사구로 돌아가야 하지만. 썰물 때라 백사장으로 내려선다. 삭막한 모래언덕에는 해변의 모래톱사이로 키 작은 식물들이 고개를 내민다.
해안이나, 강가, 사막에서 모래사이로 자라는 식물을 사지식물(沙地植物)이라 부른다. 모래언덕은 바람에 의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웬만한 식물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좀보리사초, 갯메꽃, 갯완두와 같이 키가 작으면서도 자생력이 강한 식물이 뿌리를 내린 다음 해당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해송이 뒤를 따르게 된다. 이러한 천이의 과정을 거치며 메마른 모래언덕에도 새 생명이 둥지를 트는 것이다.
백사장을 걷는 것은 평지보다 두 배의 힘과 에너지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천천히 걷다가 모래의 감촉에 따라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속도를 높이다가는 발목에 부상을 입을 수가 있다. 지루하도록 2km를 걸어간 뒤에 해변가로 올라서니 신두리 사구센터가 보인다.
건물 뒤편으로 돌아가면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두리사구가 시작된다. 신두리해안은 모래가 해변에 쌓이기 좋은 지형구조로 되어 있고, 바람의 세기와 방향이 일정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거대한 모래언덕이 형성되는 퇴적지형이라고 한다. 보통 해안사구는 모래의 공급량과 풍속, 풍향, 주변의 지형, 기후 등의 요인에 따라서 모양과 크기가 결정된다고 한다.
람사르 협약에 가입한 ‘두웅습지“는 왕복 40분이 걸리는 거리여서, 기념관에서 조형물을 참관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사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민물이 모래언덕에 가로막혀 바다로 흘러들지 못하고, 물이 고여 형성된 늪지대를 말한다. 두웅습지는 신두리배후습지로 7천 년 전에 탄생한 생태계의 보물이다.
두웅습지는 휘귀 동식물들의 보금자리다. 멸종위기종인 금개구리. 맹꽁이, 표범장지뱀을 비롯하여 양서류 10여종이 서식하고, 사구식물(砂丘植物)인 갯그렁, 통보리사초군락, 수생식물인 수련, 붕어마름 등 200여종, 곤충 30여종이 함께 어울려 공존하고 있다. 하늘과 바다사이 리조트 앞에서 해변 바라길 12km를 완료한다.
8. 해변 소원길.1
중앙광장 “신두리해변표지석” 앞에서 해변 소원길이 시작된다. 오늘의 일정은 소원길을 반으로 나누어 의항항 9.6km에서 종료할 예정이다. 이색적인 펜션들이 밀집한 해변을 1km 가량 진행하면 왼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소원길”의 의미는 원유유출사고를 겪은 태안해변이 하루빨리 복원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썰물시간이라 갯벌은 검은 속살을 드러내고 바다는 저만치 물러나 앉는다. 비릿한 갯냄새가 코끝을 파고드는 신두리해안, 간만이 교차하는 시간에 따라 바다와 갯벌로 변하는 바다는 많은 생물들로 인해 살아 숨 쉬고 있다. 몸집 작은 미생물들이 오염된 갯벌을 정화시키고, 먹이사슬이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신두3리 정류장 삼거리에서 오른쪽 제방길로 올라선다. 그림같이 아름다운 에벤에셀펜션을 뒤로 하고, 육지 속으로 깊숙이 속살을 파고드는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소근지성을 찾아가는 길은 한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듯이 황홀하다. 정면으로 보이는 의항항까지 오후 내내 갯벌을 바라보며 걷게 된다.
2차선 포장도로를 만나 삼거리에서, 오른쪽 소원면 방향으로 진행한다. 작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소근진포구를 지나 메소포타미아 역사유물관 간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소근진성 진입로가 시작된다. 비좁은 고샅길을 200여m 올라서면 곧바로 소근진성이다.
소근진성은 세곡미를 실어 나르는 조운선의 보호와 왜구의 노략질을 방어하기위해 조선 중종 9년(1514년)에 축성한 석성이다. 둘레가 650m에 높이가 3.3m의 크기였으나, 대부분 허물어지고, 동문 터 주변에만 성벽이 남아 있다. 조선시대 수군첨절제사가 주둔할 정도로 서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요새지였으나, 1894년 동학농민군에게 성이 함락된 후 폐허가 되었다고 전한다.
소근진성에서 해변을 따라 1km 거리에 방근제가 나타난다. 의항항과 신두리해변을 사이에 두고 내륙 깊숙이 들어온 바다가 제방에 가로막혀 끝나는 지점이다. 2개의 제방을 연결하여 1.3km에 이르는 방근제가 축조되기 전에는 신덕리까지 물길이 이어졌지만, 이제는 가두리양식장으로 어민들의 생활터전이 바뀌고, 한쪽으로는 만리저수지를 축조하여 농업용수로 활용하고 있다.
방근제 중간지점에 “자염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생소한 이름이지만, 이곳이 충청지역 제일의 자염생산지라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부터 이 지방 주민들에 의해 생산된 자염은 바다에서 염도가 높은 물을 길어, 10시간 동안 은근한 불로 끊여 만든다. 우리의 전통방식으로 만든 자염은 입자가 곱고, 짜지 않고 담백한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방근제도 끝이 나고, 오른쪽으로 송의로를 따라 마을길을 걷는다. 해안도로도 끝이 나고 수망산 기슭의 외딴집을 지나는데, 앙살 맞은 개 2마리가 길길이 날뛰는데 등골이 오싹하도록 긴장이 된다. 낮선 동리에서 심심치 않게 당하는 봉변이라 개의 목줄부터 살피면서 재빠르게 현장을 빠져나와야 한다.
방근제에서 의항항까지는 3.4km에 1시간이 족히 걸리는 오솔길이다. 진수성산장에서 바라보는 방근제와 해안이 절경이다. 내륙 깊숙이 들어온 바다가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이 잔잔한 물결을 이루고, 조금 전에 지나온 해안길이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되어 발자취를 남긴다.
30여 분간 해송 숲길을 빠져나오면, 개미목으로 부르는 의항방조제 입구로 내려선다. 멀어만 보이던 의항항이 건너편에서 손짓을 한다. 개미목은 의항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지형이 개미 목처럼 가늘어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는 태배전망대가 있는 쪽이 섬이었으나, 간척사업으로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예정대로 학암포해변에서 의항항까지 22km를 완주했으니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것이고, 바다펜션에서 숙소를 상의하는 중에 종점에서 출발한 버스가 나타난다. 2시간 마다 운행하는 버스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다. 편안하게 태안버스터미널에 도착하여 레인보우모텔에 여장을 푼다.
9. 해변 소원길.2
6시30분. 태안터미널에서 의향리 종점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버스에는 승객이라야 달랑 2명뿐이다. 총알택시처럼 달려가는 버스는 중간에 서는 법도 없이 종점까지 40분 만에 주파한다.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비추는 바다펜션 앞마당.
구름사이로 빛나는 새벽별이 오늘의 날씨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아침 서울기온이 영하 8도라고 한다. 매서운 추위에 대비하여 두꺼운 방한복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천천히 의항해수욕장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간다. 어둠이 한발 물러서며 포구와 갯바위들이 형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카메라를 작동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눈요기로 주변을 살피고 만다.
금성수산이 있는 삼거리에서 신너루해변은 마을길로 들어서야 한다. 이곳은 만리포까지 이어지는 소원길 말고, 의항해변을 출발해 태배전망대와 구름포해안을 돌아오는 6.5km의 태배길이 있다. 순례길, 고난길, 복구길, 조화길, 상생길, 희망길을 6개 코스로 나누어 여유 있게 걸어도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다.
2007년 원유유출사고 당시 130만 자원봉사자들의 방제로로 활용했던 길을 2010년 7월부터 7억3천만 원을 들여 해안길을 조성했다고 한다. 언덕을 넘어서면 신너루해변이다. 조용히 물러서는 바닷물, 어둠속에서도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며 잔잔하고 고요한 해변이 아침잠을 깨운다.
신너루해변과 태배해변은 서로 연결돼 있다. 리아스식 해안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모래톱이 잔잔하게 펼쳐지고, 정적을 깨트리는 발자국소리와 송림을 뒤흔드는 바람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새벽공기를 가른다. 태배해안이 끝나는 곳에서 나무계단을 통해 태배전망대를 오른다.
엄지손가락처럼 툭 튀어나온 소원반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곳이 태배전망대. 당나라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이 조선 땅에 유람 왔다가 해안비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바위에 오언시(五言詩)를 남기고 갔다는 유래(由來)에 따라 태백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사대주의(事大主義)에 편승한 한 단면으로 믿거나 말거나.
광장중앙에는 “유류피해전시관”이 있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이태백이 반했다는 서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소원길이 시작되는 신두리 해안이 손에 잡힐 듯이 건너다보이고, 학암포에서 코앞의 등대섬까지 점점이 떠있는 새뱅이, 수리뱅이로 시작되는 7개의 섬들이 그 유명한 전설을 실타래처럼 풀어 놓는다.
옛날 오랑캐들이 군함 수 십 척을 앞세워 쳐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제대로 대항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지라. 대뱅이가 여섯 섬들을 모아놓고 우리의 힘으로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제안을 한다. 이에 대뱅이가 대나무깃발을 흔들어 병사로 위장을 하고, 굴뚝뱅이는 연기를 내뿜으며 화포로서 대응하고, 나머지 섬들은 군함으로 변신하여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전설이다.
태안군은 2읍 6면의 행정구역을 갖고 있는데, 어느 곳 하나 명승지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태안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문주를 뒤로하고 구름포해안으로 가는 도중에 일출을 보게 된다. 사실 이곳에서는 일몰이 장관이라지만, 일출 또한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구름사이로 살그머니 얼굴을 내미는 태양이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물결 따라 모자이크 조각처럼 반짝이는 모습은 자연이 빗어내는 예술품이다. 소원반도 능선에서 큰 감흥을 받으며 도착한 곳이 구름포해안 전망대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나타날 줄이야.
삼태기처럼 아우룩한 솔밭 속에 둥지를 튼 구름포해수욕장은 좌청룡우백호의 지세로 터를 잡고, 좌우로 송림과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반달처럼 둥그런 아랫부분을 구름에 비유하여 구름언덕 끝자락이라는 구름미(雲山尾)로 부르다가, 雲山을 雲浦로 다시 “구름포”로 부른다고 한다.
해변길을 내려서면 의항분교 옆으로 아담한 화영섬을 만난다. 조선시대 안흥항(安興港)으로 들어오던 중국의 사신(使臣)들이 풍랑을 만나 표류(漂流)하다 이 섬에 상륙하였다고 한다. 사신들을 환영(歡迎)했다는 뜻으로 환영섬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화영섬이 되었다. 화영섬 옆으로 물 빠진 갯벌위로 독살이 나타난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고기잡이 방식이다.
의항해수욕장을 뒤로하고, 망산고개를 오른다. 정상에는 팔각정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고,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백리포해수욕장 입구가 나타난다. 백리포해변 1.2km, 천리포해변 2.4km, 만리포해변까지 6.1km가 남았으니 소원길도 끝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백리포 해수욕장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갈림길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500여m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백리포를 생략하고, 천리포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예전에는 방주골로 부르던 백리포는 베 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하여 ‘방직골’이라 부르다가 방주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천리포해변으로 내려서면, 남쪽으로 천리포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1만 5천 여 종의 희귀식물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수목원이다. 세계수목원협회에서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한 민간수목원이다.
미군장교로 한국에 왔던 민병갈(Carl Ferris Miller) 원장은, 한국을 사랑한 나머지 국내최초로 민간수목원을 만들어 전 재산을 천리포수목원에 기증하였고, 1979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귀화한 장본인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욱 사랑한 이방인의 감동스토리에 진한 감동을 받는다.
천리포수목원생태교육관 표지석 앞에서 국사봉 오르는 해송길을 따른다. 국사봉 전망대에 오르면, 닭섬과 천리포해변, 천리포수목원, 만리포해변까지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조망이 터진다. 정상을 오르는 동안 힘겨운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마음까지도 활짝 열리는 명승지 이다.
태안8경중에서 제4경으로 선정된 만리포해변으로 내려선다. 1955년 개장되어 대천, 변산해수욕장과 함께 서해안 3대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백사장 길이가 3km에 폭이 250m로 넓고, 20만㎢의 면적을 가진 서해안 최고의 명소다.
만리포는 만리장벌의 준말이란다. 옛날 명나라 사신을 환송할 때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전별식을 했던 곳인데, 전별식을 가졌던 해변을 수중만리의 ‘만리’란 말을 따 만리장벌이라 부르다가 현재는 만리포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서진 표지석과 만리포사랑 노래비가 있는 광장에서 소원길 22km를 종료한다.
10. 해변 파도길
만리포 노래비 앞에서 해변 파도길 9km 여정이 시작된다. 오전에 의항항에서 만리포까지 13km에 9km를 더하면, 22km다. 하루 일정으로는 다소 짧은 편이지만, 몸 컨디션을 조절한다는 차원에서 아주 적당하다는 생각이다.
만리포광장에서 10여 분간 해안을 바라보며 걸어가면, 이정표(만리포해변 1.0km, 파도리해변 7.7km, 모항항 1.3km)가 있는 서울여대 만리포수련원입구에서 왼쪽 임도로 파도길이 이어진다. 경사가 제법 가파른 임도를 올라서면, 산등성이를 따라 모항항까지 이어진다. 울창한 소나무가 도열해있는 임도는 차량왕래도 별로 없고, 전망이 좋아 여유자적하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구간이다.
삼거리에서 송도오션리조트 앞으로 내려서면 모항항이다. 모항항은 태안지역에 있는 12개 어항중의 한곳으로 국가에서 지정한 어항이다. 모(茅)는 불모지(不毛地)를, 항(項)은 물을 건너간다는 뜻이 담겨있다. 예전에는 파도리와 연결되는 잡초가 무성한 불모지였으나, 지금은 연근해에서 잡은 물고기와 양식으로 생산한 각종 어패류가 모항항을 중심으로 유통되고 있다.
유림슈퍼 옆 골목으로 계단을 오르면 해변길 문주가 나타나고, 또 다시 솔밭 속으로 이어진다. 잠시 후 행금이 쉼터에 도착한다. 행금이란, 옛날 사금이 많이 나왔던 곳을 ‘생금말’이라 했고, 다시 생금으로 부르다가 ‘생금이’ ‘행금이’로 부른다는 것이다.
쉼터에는 벤치도 있고, 소원면 일대의 너른 들녘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해남에 남쪽 땅 끝 마을이 있다면, 행금이 쉼터에서 산줄기를 따라 서쪽해안으로 내려서면, 새 머리모양의 아름다운 서쪽 땅 끝 지점이다. 솔밭도 끝이 나고 문주를 벗어나면, 모항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한 여름에는 수련이 만발하여 진한 감동을 준다는데, 한겨울의 모항저수지는 낚시꾼도 없는 을씨년스런 모습이다. 파도길은 모항저수지제방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반 바퀴를 돌아 포장도로와 만나는 삼거리에서 왼쪽 산등성이를 오르게 된다.
무성한 소나무사이로 어은돌 마을이 모습을 드러낸다. 모항4리 경노당을 지나면, 곧바로 어은돌 해변이다. 설명에 의하면「어은돌」은 ‘모항과 파도리 사이를 이어주는 들’이라는 뜻으로 「이은들」, 「여운돌」로 불리다가 물고기가 숨기 좋은 돌이 많은 마을이라 하여 한자 음으로 「어은돌(漁隱乭)」로 표기하고 있다.
해수욕장의 규모가 제법 크면서도,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은 마을이름에서 오는 뜻이 아닐까 싶다. 해변을 둘러싸고 있는 울창한 솔밭이 있음에도, 휴양지라기보다는 갯벌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촌이라 부르는 것이 잘 어울리는 포구다.
오토캠핑장이외는 휴양시설이 보이지 않고, 어선들이 정박할 수 있는 방파제와 등대를 중심으로, 바다 생물들이 서식하기 좋은 갯바위들이 많고, 남쪽해안에는 독살까지 설치돼 있다. 독살이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한 전통어로 방식이다. 해안에 둥그렇게 돌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고기가 썰물 때 바다로 나가지 못하고 갇혀있는 물고기를 잡아내는 방식이다.
밀물과 썰물의 간만의 차가 크고, 오목하게 들어간 포구에 대나무, 싸리나무, 돌멩이 따위로 보를 쌓아서 고기를 잡던 원시적인 어로 방식을 ‘어살’이라 한다. 이 함정에 밀물로 인해 밀려 온 고기들이 물이 빠져 나가면서 갇히는 것이다. 돌로 막은 것은 ‘독살’, 대나무로 막은 것을 ‘죽살’이라 한다.
이 굴혈 독살은, 태안을 비롯한 서해안이나 남해안에 산재한 전국의 200여 개 독살 가운데 보존 상태가 좋아 숭어, 전어, 멸치, 갑오징어, 가오리 등이 심심찮게 잡힌다고 한다.
어은돌 해변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에서, 소나무 숲길을 따라 산등성이를 넘으면 곧바로 파도리 해수욕장이다. 파도리는 태안반도에서 바다 쪽으로 돌출되어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는 지역이다. 다른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모래해변과는 달리 모래는 바다로 쓸려가고, 자잘한 돌들이 쌓인 자갈해변이 나타나고, 기암절벽과 해식동굴이 형성되어 아름다운 절경이 펼쳐진다.
남쪽 끝자락 이정표 앞에서 태안해변 파도길도 무사히 종료한다. 병원에서 시술한지 한 달 만에 시도한 1박2일간 44km 여정을 완주하면서 새로운 용기를 얻고, 거리가 너무 먼 탓에 6개월간 보류했던 삼남길 전남구간도 남겨진 숙제이다.
버스종점에는 출발시간을 기다리는 버스가 있어서, 이래저래 행운이 따르는 날이다. 13시 40분발 버스로 태안터미널에서 14시 30분발 강남행 직행버스에 오른다.
11. 근흥면의 명소
혹독하던 추위도 물러가고, 남쪽에서 불어오는 훈풍에 따라 2박3일간 삼남 길을 다녀올 예정이었으나, 2016년도 노인일자리를 신청한 의정부 송산복지관에서 “문화재 해설사”로 선정되었으니 토요일(3월12일) 복지관 소집에 참여해 달라는 전갈이 왔다.
‘꼭’ 하고 싶었던 곳이라 두말없이 승낙을 하고, 부랴부랴 일정을 변경하여 서해안 답사 길에 나섰다. 남부터미널에서 6시40분 첫차로 태안을 향해 달려가는 중에,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위해 눈을 감고 있는데, 운전사의 불안한 말소가가 귓전을 스친다. 버스 뒷바퀴에 펑크가 났다는 것이다. 불길한 예감 속에서도 버스는 속력을 늦추어가며 운행을 하고 있다.
당진을 지나 음암면 주유소에서, 다른 버스로 교체하여 예정보다 30여분이나 늦게 태안에 도착하고 말았다. 하지만 정산포가는 버스를 가까스로 승차하고 보니 그동안 마음 조리던 순간들도 봄 눈 녹듯이 사라지고, 1970年代(년대)나 볼 수 있던 도우미를 만나면서, 인심 좋은 태안의 정서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가 있었다.
몸이 불편한 노인들을 부축해 주고, 요금계산과 교통카드도 체크해 주며 상냥하게 서비스하는 도우미로 인해 태안(泰安)의 이미지를 밝고 명랑하게 만든다. 연포삼거리에서 내려 해수욕장을 찾아간다. 700m 거리에 있는 연포해수욕장은 고운모래와 松林, 잔잔한 파도가 장점이다.
1967년에 개장한 연포(戀浦)해수욕장은 삼성그룹에서 고운모래를 직접 공수하여 약 2km에 이르는 백사장을 만들었다는 일화가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둘러싸인 백사장의 폭이 200m에 이르고, 수심이 얕고 경사도 완만하여, 가족들이 즐겨 찾는 휴양지로 안성맞춤이다. 1978년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연포해수욕장은, 울창한 해송(海松)과 동백나무가 어우러진 해안선을 따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경관을 펼쳐낸다.
명성이 높은 연포해수욕장도, 관광객이 찾지 않는 겨울바다는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겨울잠에 빠진 해수욕장을 뒤로하고, 연포삼거리로 나와 603번 도로를 따라 3.2km를 걸어가면, 죽림저수지가 나오고 갈음해수욕장 입간판이 서 있다. 마을길을 따라 2km를 진행하면 갈음리 해수욕장이다.
사실 이곳은 사유지라 입장료를 지불해야 해수욕장에 들어갈 수가 있다. 지금이야 한겨울이라 찾는 사람도 없이 을씨년스럽기는 매 한가지다. 신두리해안처럼 입자고운 모래언덕이 방문객을 맞이하는 해수욕장은 규모는 별로 크지 않지만, 주변에 어우러진 해송과 고운모래가 압권이다.
때 마침, 썰물 때라 모래톱을 따라 가노라면, 바위에 붙어있는 굴 껍데기를 쪼아내는 할머니들의 모습이 정겹게 보인다. 서산갯마을의 구성진 가락 속에 한평생을 살아온 아낙네들이, 굽어진 등허리를 추 수리며 굴 따는 일에 여념이 없으니, 세월 앞에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는 허리도 펴고 편하게 여생을 보낼 만도 한데, 거센 풍랑 속에서 손길을 멈추지 못하고 있으니 보는 눈길이 안쓰럽기만 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신진대교가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터를 잡은 팔각정이다. 무심코 바라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이곳이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분기하여 칠현산(七賢山, 516m)· 성거산(聖居山, 579m)· 광덕산(廣德山, 699m)· 오서산(烏棲山, 791m)· 수덕산(495m)·가야산(678m)· 팔봉산(八峰山, 326m)· 백화산(白華山, 284m)· 지령산(知靈山, 218m)을 거쳐 약 240㎞를 지나온 금북정맥의 끝자락이다.
완주하지 못한 금북정맥이지만, 끝자락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개가 무량하다. 백두대간을 비롯하여 2개정맥과 15지맥을 완주하고, 천 여 산을 오른 기백도 나이 70을 넘기고 부터는 둘레 길로 전환하고 말았으니, 그만큼 내 육신도 쇠잔하고 말았다는 증표가 아닌가. 팔각정에 올라, 전국의 산하를 누비던 추억들을 반추하며, 안흥진 앞바다를 바라보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제 건너다보이는 안흥성을 답사할 차례다. 생각 같아서는 태안비치CC 철조망이 있는 제방을 따라가면, 신진대교와 만나게 되겠지만, 철조망에 가로막혀 600m의 지름길을 버리고, 3km가 넘는 길을 돌아 안흥성 북문으로 진입한다. 태안 제2경으로 유명한 안흥성은 중국사신을 영접하던 장소이자, 해안방어를 담당하던 城으로 조선17대 효종6년(1655년)에 둘레1.714m, 높이 3.5m로 축성한 충남기념물 제11호로 지정된 사적지이다.
암문으로 축조한 북문을 들어서면, 완만한 능선을 따라 태국사 쪽으로 이어진다. 본래는 안흥진성(安興鎭城)이었으나, 후에 안흥성으로 부르게 되었는데,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주둔하여 군사상 중요한 임무를 담당하던 곳이다. 인근 19개 부락의 군민들이 참여하여 축조한 안흥성(安興城)은 동쪽의 수성루(壽城樓), 서쪽의 수홍루(受虹樓), 남쪽의 복파루(伏波樓), 북쪽의 갑성루(갑城樓)를 세우고 250여년의 세월을 지나오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때에 성이 함락되면서 건물일부가 소실되었다.
태국사 경내로 들어선다. 백제무왕 34년 국태보안(國太保安)의 원으로 창건된 이래, 조선조 세종대왕의 특명으로 중창되어 중국 사신들의 무사항해를 빌었고, 국란(國亂)시에는 승병들을 관할하던 호국불교의 요람이었다. 태국사 앞마당에 올라서면 신진대교와 안흥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안흥항 앞바다는 물길이 험난하기로 유명한 해역이었다. 해서 난행량(難行梁)이라 불렀는데, 나라의 세곡을 실은 배들이 조난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자 조정에서는 평안한 항해를 기원하기 위해 이름을 안흥량(安興梁)이라 바꾸었고, 이 곳 지명도 안흥으로 부르게 되었다. 태국사를 내려와 수홍루가 있는 안흥성 입구에 도착하여 바다낚시로 유명한 안흥진으로 내려선다.
신진도와 안흥진은 500여 m의 가까운 거리를 마주보면서도 암초와 거센 물결로, 두 지역 간의 왕래가 불편했는데, 1995년 신진대교가 개통되면서 안흥진을 내항으로 신진도를 외항으로 개발하고, 마도와도 연결되면서 지역주민들의 생활이 풍요로워 지고 활기가 넘친다.
신진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신비의 섬 “옹도해상관광” 이다. 유람선 터미널에 도착하여 승선정보를 확인해 보니 출항시간이 2시라고 한다. 1시간 반의 여유가 있어 마도 쪽으로 답사를 하는 중에 지금은 폐교가 되었지만, 아담한 마도분교 잔디밭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여유 있게 배에 오른다.
12. 신비의 섬 옹도관광
오후 2시. 뱃고동 소리와 함께 안흥유람선이 옹도를 향해 닻을 올리고, 사람들의 손길에 길들여진 바다 갈매기들이 유람선의 엔진 소리에 맞추어 선미 쪽으로 날아오른다. 방파제를 벗어난 유람선이 쾌속으로 질주하는 가운데, 새우깡을 던져주는 손길이 없는 것을 알아챈 갈매기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만다.
이래서 말 못하는 짐승들도 자기를 알아주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찾아가는 옹도는 신진항에서 12km 떨어진 무인도에 등대지기 2명이 상주하고 있는 절해고도의 섬이다. 1907년 등대를 설치하여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다가 2013년 6월, 106년 만에 일반에게 개방되어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안흥유람선은 정원이 300여 명이지만, 비수기인 탓에 춘천에서 단체관광 온 40여명과 개인 관광객 10여명을 합하여 승선인원이 50여명으로 단출하다. 섬의 모양이 옹기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옹도까지 40분 만에 도착하여 옹도를 둘러보는 관광시간이 1시간 주어진다. 섬의 면적이 0.17㎢의 아담한 등대섬으로, 봄이면 동백꽃이 만개하여 장관을 이루고, 천남성이 찔레꽃, 산벗나무가 자생하는 보물단지다.
독도를 연상할 만큼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274개의 가파른 계단을 따라 정상으로 오른다.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환영의 빛 등명기 게이트와 화장실이 있고, 계단을 따라 등대 쪽으로 오른다. 동백꽃 쉼터에서 울창한 동백 숲 터널과 일반보도로 나뉘어 중앙광장에 도착하면, 큰 옹기 조형물과 ‘고래와의 만남’ 조형물이 반겨준다.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옹도등대가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 등대의 변천사를 소개하고 있는 2층 홍보관을 지나 전망대로 올라선다. 옹도등대는 1907년 불을 밝힌 이래 백년이 넘는 동안 태안 앞 바닷길을 지켜오고 있다. 고도 80m 정상에 25.4m의 등대를 설치하여 77km 밖에서도 식별할 수가 있어, 서해상을 오가는 선박들의 길잡이로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는 점점이 떠있는 섬들의 고향이다. 태안군에는 128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는데, 그중에는 갈매기의 천국인 란도를 비롯하여 북격렬도, 동격렬도, 서격렬도 등 세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서해상을 지키는 파수꾼으로 격렬비열도가 있다.
쪽빛바다를 사이에 두고 섬은 육지를 그리워한다. 영원한 동경의 육지, 숲길을 걸으며 추억을 더듬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태안군 유인도 중에서 안면도 다음으로 크다는 섬. 태안 제6경으로 선정된 가의도는 안흥에서 서쪽으로 5.5Km 떨어진 섬인데,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가의도 동쪽해안 기암절벽을 중심으로 독립문바위와 돛대바위가 유명하다.
독립문바위를 돌아보고 관장각 관장수도로 향한다. 거친 파도가 요동을 치는 곳. 이곳은 한양으로 가던 조운선이나 중국 무역선과 사신들이 다녔던 물길인데, 울돌목 다음으로 유속이 빠르고 거친데다 암초가 많아 난파 사고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한다. 먼 바다에서 밀려온 파도가 마치 바다 속의 공룡이 몸부림치듯이 거친 파도가 밀려온다.
멀리서 보아도 늠름한 사자바위. 갈기를 늘어뜨린 숯 사자 바위 옆으로 거북이 한 마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사자바위는 멀리 중국 땅을 바라보며 태안반도를 지켜준다는 전설이 있는 섬이고, 섬 주민들의 장수를 기원하다는 거북이바위가 사이좋게 서해안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다.
다음으로 찾은 곳이 코바위와 촛대바위다. 바위 두 개를 합쳐서 부부바위라고 부른다. 파도리 반도 남쪽으로 부부바위가 있는 마도해역은 2007년 태안선을 시작으로 마도 1, 2, 3호선 고선박과 막대한 분량의 유물이 발견되어 수중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불리는 곳이다.
2시간 30분 정도 걸린 옹도해상관광을 마치고, 안흥여객선 터미널로 돌아오니 4시 30분이다. 오전에 도보로 둘러본 15.5km에 옹도관광까지 말끔하게 완주했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5시에 출발하는 태안행 버스에 올라, 태안 터미널에서 5시 55분 버스에 오르며 뜻 깊은 하루를 정리한다.
13. 해변 솔 모랫길
삼남길 여정(旅程)이 또 한 번 뒤로 밀리고, 태안반도에서 중심을 이루는 안면도로 달려간다. 지금까지는 태안터미널에서 시내버스를 이용했지만, 오늘은 남면정류장까지 시외버스로 이동을 한다. 태안터미널에서 시내버스 기다리는 시간을 단축할 수가 있어서, 그만큼 시간을 버는 셈이다.
훈풍(薰風)을 타고 불어오는 봄의 여신(女神)이 옷깃 사이로 파고드는 화창한 봄날, 경쾌한 발걸음이 몽산포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 곧바로 해수욕장이다.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해수욕장은 을씨년스럽지만, 아름드리 송림(松林)이 계절에 관계없이, 이방인의 가슴속을 활짝 열어 제친다.
만리포에 이어 태안군에서 두 번째로 개발된 몽산포해수욕장을 시작으로 영목항까지 50여km 를 이어가는 해수욕장과 곰솔 밭이 알알이 실타래에 꿰어진 염주 알처럼 장관을 이룬다. 태안군에서 자신 있게 선정한 해변길이 학암포에서 파도리까지를 3구간으로 나누고, 몽산포에서 영목항까지를 4구간으로 나누어, 몽산포에서 드르니항을 있는 13km를 “솔모랫길”로 조성하고 있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서해바다의 파도와 바람은 고운 모래밭을 일구어 놓았다. 수시로 변하는 모래 언덕을 보존하기위해 심은 소나무가 울창한 곰솔나무 숲으로 성장하고, 숲속으로 길을 내어 솔 모랫길이 탄생한 것이다.
몽산포에서 시작하는 4구간은, 바다-갯벌-해안사구-곰솔밭-사구습지로 연결되는 특이한 지형이라서, 독특한 생태계를 보존하기위해 몽산포자연생태로를 개설하였다고 한다. 나무테크로 길을 만들고, 곰 살 맞은 곰솔 밭에는, 적당하게 다져진 모랫길위로 솔잎이 차분하게 깔려있어 융단처럼 포근한 감촉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귀화식물이란 무엇인가. 대수롭게 여기지 않던 풀 한포기라도 우리 토종식물에겐 치명적인 피해를 가하고, 정도가 지나치면 멸종위기까지 당한다고 하니, 우리 것을 우리가 지키는 신토불이를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백령풀, 애기수염, 달맞이꽃이 귀화식물의 대표적이라고 한다. 또한, 비오톱은 태풍이나 해일을 만나 고통 받는 동물들의 피난처를 말한다.
해안사구를 지나며 무심코 지나칠 일들이 생태계에서는 절실한 일이라고 생각하니, 모두가 자연보호에 일조를 해야겠다는 마음다짐을 해본다. 달산포에는 사구습지와 둠벙이 있다. 둠벙은 웅덩이를 지칭하는 충청도 방언으로, 민물이 귀한 바닷가의 농부들이 생활용수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작은 저수지를 말한다.
沙地植物(사지식물)들이 공존할 수 있는 둠벙을 지나면 생태환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있고, 氣水域(기수역)이라는 게시판이 눈길을 끈다. 민물이 귀한 바닷가의 생물들이 바닷물에 강물 또는 민물이 혼합되어 희석된 곳으로, 염분과 수온변화가 심해 이곳에 서식하는 생물들은 적응 능력이 뛰어나다는 설명이다.
청포대 해변의 모래는 입자가 곱고 부드러워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청포 아일랜드를 비롯하여 대규모 야영장과 지중해 풍의 펜션들이 자리를 잡은 이국적인 모습이다. 육지와 백여m 떨어진 곳에 앙증맞은 섬 하나가 시선을 끈다. 썰물 때는 뻘 위로 드러나고, 밀물 때는 물위로 떠오르는 덕바위(자라바위)가 별주부의 전설이 전해오는 곳이다.
자라의 등에 업혀 용궁까지 갔다가 九死一生(구사일생)으로 돌아온 토끼가 자라를 놀리며 도망간 곳이 노루미재이고, 토끼에게 속은 것을 알고 탄식하다가 용궁에 돌아가지 못하고 죽은 곳이 자라 바위라고 한다. 노루미 해변에는 전통방식의 독살이 있어, 지금도 독살체험으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별주부 마을을 지나 마검포까지는 바다와 멀어지는 숲길을 걷는다. 서바이벌 게임이 벌어지는 지오랜드(레저토피아)와 태안 꽃 박람회장을 지나 연꽃으로 유명한 신원저수지 제방 길로 올라선다. 저수지 건너 낮은 산등성에는 쥬라기공원도 있고, 소금 꽃이 피어나는 서산염전지대를 지나 바닷가로 내려서면 드르니항이다.
태안반도와 안면도 사이 250m의 좁은 물골을 마주보고 있는 포구가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이다. 서해상으로 오가는 길목이라 안면도사람들이 배를 타면, 필히 이곳을 들려야만 한다는 의미에서 부르던 옛 이름인데, 일제시대에 신온항으로 부르다가 2003년부터 본래의 이름인 드르니항으로 되찾았다고 한다.
2013년 11월 개통한 인도교는 안면도의 상징물이다. 드르니항과 백사장항을 연결하는 “대하랑 꽃게랑” 인도교는 다리모양이 아름다운데다 바다 위를 걸어가는 듯한 신비스러움에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는다. 3층으로 된 원형 램프를 돌아 다리위에 올라서면, 겨울바다의 고즈넉함과 옷깃을 파고드는 해풍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스릴이 넘치고, 그림엽서속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드르니항, 물보라를 일으키는 어선들의 모습이 활기차게 보인다.
서해안의 황금빛 태양이 있는 곳,
가족과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과 행복한 여정이 쉬어가는 곳,
드르니와 백사장을 잇는 낭만의 장소에 우리는 서 있네.
대하랑 꽃게랑 인도교에서.
14. 해변 노을길
원형계단을 내려서서 곧바로 이어지는 노을길은 조금 전에 지나온 솔 모랫길과 함께 2011년 태안해변길 중에서 가장 먼저 개통한 구간이다. 해변 5구간인 노을길은 백사장항에서 꽃지해변까지 바닷가를 끼고 12km가 이어진다.
출발지인 백사장항은 안면도를 대표하는 관광어항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대하나 꽃게 철이 돌아오면, 미식가들이 군침을 흘리며 몰려든다. 저자거리를 방불케 하는 번화가를 빠져나와 꽃지해변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간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화창한 봄 날, 밀물이 시작되면서 수면위로 수증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신기한 장면을 바라보는 동안, 바람을 타고 밀려온 수증기가 해무로 바뀌고, 순식간에 주변을 안개 속으로 집어 삼킨다. 五里霧中(오리무중), 서해안 도보기행을 하면서 처음 겪는 일이다.
짙어가는 해무가 솔밭 속으로 파고들며 체감온도를 사정없이 떨어트리고, 따사로운 햇살이 그리운 바닷가에서 한기로 온몸이 후둘 후둘 떨려온다. 백사장 항구를 뒤로하고 노을길이 무색하게 해무 속을 걸어가는 중에 성수기를 대비하여 해수욕장을 정비하는 포크레인이 앞길을 가로 막는다.
아무도 없는 바다 갈매기 노래로 잠들고 / 무심히 부서지는 파도는 발밑을 적시는데 /
올 사람 없는 바다 추억이 파도에 밀리고 / 어디서 불어오나 애꿎은 바람이 가슴을 흔드네.
겨울바다의 추억을 흥얼거리며 백사장위를 걸어간다.
백사장해변이 끝나고, 노을길이 두 갈래로 갈라진다. 밀물 때를 대비하여 산길로 올라서는 길과 해안 길로 나뉜다. 아직은 만조시간이 아니라서 벼랑길로 방향을 잡는다. 남쪽해안으로 앙증맞은 바위하나가 시선을 끌지만, 육지로 밀려드는 바닷물의 기세에 눌려 나무 테크로 만든 벼랑길로 물러서고 만다.
벼랑위에 조성한 전망대에 올라서면, 곰섬, 거아도, 길마도, 울미도, 뒷섬, 삼섬, 지치섬이 다도해의 징검다리처럼 아름답다는데, 안개 속에 모습을 감추고 말았으니 애석한 일이다. 벼랑길을 내려서면, 그 유명한 삼봉해수욕장이 반겨준다. 39세인 재형이가 10살 때 이니까. 벌써 30여 년 전 일이다.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삼봉해수욕장에서 3박4일간 보낸 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주변 환경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변한 것 이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입자고운 솔밭에는 캠핑 족을 위한 야영장이 조성되고, 음료수대와 샤워장, 화장실까지 삼봉해변을 찾는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삼봉해변과 기지포해변은 낙조(落照)로 유명한 곳이지만, 가시거리가 수백m 에도 미치지 못하는 안개 속에서 비단옷을 걸치고 밤길을 걷는 기분이다.
기지포가 가까워오며, 老弱者(노약자)를 위한 나무테크와 전망대를 조성하고, 유실되는 사구(砂丘)를 보호하는 모래 포집기를 설치하여, 아름다운 해변을 유지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한번 파괴된 환경은 다시 복구하기 어려우니,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이 최선책이 아닐까 싶다.
나무테크의 길이가 1004m여서, 천사길로 부르는 기지포 해안도 끝이 나고 바다로 흘러드는 풍천(風川)위로 놓인 창정교를 건너 안면 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군부대 건너편에 있는 창기리는 안면도에서 남부터미널을 오가는 시외버스 정류장이 있어서, 태안, 서산, 당진을 경유하여 서울 가는 관광객들에게는 요긴한 정류장이다.
삼봉해변에 이어 두여 해변에서 두 번 째 산등성이를 넘는다. 두여 해변은 지형이 아름답고,
100년 이상 된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어,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에 있는 적송군락을 태안 3경으로 꼽고 있다. 이곳 안면도 적송나무는 소금기가 많은 해풍으로 결이 단단하고, 벌레들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탓에, 고려 때부터 궁궐과 배를 만드는 용도로 사용했다고 한다.
밧개해수욕장에 도착한다. 안개 속에 묻혀 버린 해수욕장이 더욱 쓸쓸하다. 겨울바다의 고즈넉함이 안개 속에서 황량한 분위기로 빠져 들고, 두애기해변을 우회하는 고갯길을 넘는다. 이곳 두애기농원 삼거리에서 왼쪽 안면시장 길로 빠지면, 1km거리에 안면 시외버스 터미널이 있다.
제법 가파른 비알 길을 넘어서면, 몽돌이 구르는 방포해변이다. 방포해변에서 또 한 번 고갯 길을 올라서면, 노을길 최고의 전망대가 펼쳐진다. 방포항과 꽃지해변의 아름다운 풍광이 고스란히 펼쳐 보이고, 할매바위와 할배바위의 다정한 모습이 저녁놀의 단골메뉴라고 한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노을길 12km를 걸어오는 동안 모든 사물을 안개 속에 감추어두고도 끝끝내 모습을 보여 주지 않는다. 두 바위의 전경을 다음에 찾기로 하고 방포항에서 안면 터미널로 방향을 잡는다.
태안 제8경으로 곱히고 있는 할매, 할배바위에도 승언과 미도부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신라 흥덕왕 4년(838) 해상왕 장보고는 청해진을 거점으로 황해도 장산곶과 안면도에 기지를 두었는데, 기지사령관이었던 승언과 미도부부의 금슬이 유난히 좋았다고 한다.
출정나간 승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기다리던 미도가 죽어서 할매바위가 되었고, 그 옆에 있는 바위가 할배바위라고 한다. 그 아름답다는 노을 길을 안개 속에 묻어버리고, 터미널에 도착하니 15시 35분이다. 용케도 남부터미널로 향하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2시간 마다 운행하는 버스를 곧바로 탈수 있는 행운을 생각하면, 25km를 걸어온 여독이 말끔히 가신다.
15. 해변 바람길
오늘 찾아가는 해변길은 고민을 많이 하는 구간이다. 꽃지해변에서 영목항까지 해변길 6, 7구간은 태안반도에서 가장 남쪽에 있는 곳이라 남부터미널에서 3시간거리다. 해안선의 길이가 29km에 진입로 2km를 감안하면 31km에 달하여 당일치기로는 만만치 않은 거리다. 더구나 땅끝마을 영목항은 안면도 터미널에서 관내버스로 30분 거리에다, 1시간 마다 다니는 버스로는 서울로 되돌아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버스기사와 논의하는 과정에서 안면터미널에 가면 영목항가는 버스와 환승이 가능하니, 영목항에서 시작하여 꽃지해변에서 종료하고, 여의치 않을 경우 안면도 택시를 이용한다면, 18시에 출발하는 남부터미널 행(마지막버스) 버스를 탈수 있으니 그 방법이 가장 현실성이 있다는 제안을 한다.
지금까지 서해안 답사 500km구간에서 순서를 어긴 경우가 없었는데, 등소평이 주장하여 유명해진 흑묘백묘(黑猫白猫黑)론이 가장 절실한 상황이다. 반면 사진애호가들이 즐겨 찾는 할매 바위와 할배 바위에서 낙조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됐다.
안면도 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9시40분, 20분을 기다린 끝에 영목항에 도착하니 10시 30분이다. 도착시간도 늦은데다, 31km를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을 조급하게 한다. 바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상기하며 포구로 내려서니, 바다를 향해 도열한 교각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안면도와 원산도를 연결하는 연륙교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주민의 설명으로는 충남 보령시 대천항과 태안군 고남면 영목항을 잇는 “안면 연륙교”는 서해안 기름유출사고가 발생한 뒤 육로교통의 필요성이 절실하게 부각되어 2018년 완공을 목표로 2011년 공사가 시작됐다고 한다.
총사업비 5.400억 원을 투입하여 1조원의 경제유발효과를 기대하는 국책사업으로, 대천-안면도간 1시간 40분 거리에서 10분으로 단축된다고 한다. 해저터널 6.9㎞에 원산도를 징검다리로 삼아 6.1㎞의 해상교량과 접속도로 4.3㎞를 포함하여 18km에 이르는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현지 주민도 알지 못하는 해변 바람길, 하지만 안내표지가 자세하게 표시되어 걷는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다. 안면도의 끝자락 조용한 어촌마을은 자연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영목항에서 시작하는 안면도 남쪽해안은 만수동 포구를 시작으로 아늑한 포구가 구석구석 숨어 있다.
바다를 품에 안은 만수동은 밀물이 되면, 마을이 물로 가득 차 보인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고,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은 고향 가는 길만큼이나 포근하다. 연분홍 진달래와 벚꽃의 향기에 취해서 졸린 눈을 비비는 배암(뱀)이 인기척에도 움직일 줄을 모르고, 벌 나비들이 꽃을 찾아 분주하게 날아오른다.
안면도는 소나무 숲이 울창해 경치가 아름답고, 운치 있는 해수욕장이 줄줄이 이어진다. 경관이 아름다운 가경주(佳景州), 흐드러진 동백과 벚꽃이 만개한 언덕에는 지중해의 별장들이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앞바다에서는 갈치와 새우, 조기를 잡는 어선들이 장관을 이룬다.
이름도 정겨운 조개부리마을, 일명 옷점항으로 부르는 이 마을은 예전부터 군산항과 옷감교역이 이루어져 지어진 이름이다. 정월보름날 마을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어를 기원하는 조개 부르기 행사를 벌여 “조개부리마을”로 부르고 있는데, 갯벌체험으로 바지락 캐기, 통통배로 자연탐방과 무인도 돌아오는 행사를 하고 있다.
드디어 고남제방에 도착한다. 옷점항에서 바람아래 해변까지 3km에 걸쳐 ⼕ 자형태의 간척지 제방을 축조하여 안면도의 지도를 바꾼 곡창지대가 펼쳐진다. 연방죽을 지나면 신두리 해안처럼 “바람아래 해안사구”가 반겨준다. 우리의 소중한 자연유산을 보존하기위해 “모래 포집기”를 설치하여 자연보호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바람아래”는 사막과 같은 모래언덕 아래로 바람이 비켜간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용이 승천할 때 큰 바람과 조수변화를 일으켜 지금의 모래언덕과 사구가 형성되었다는 전설이 있고, 멸종위기종인 “표범장지뱀”이 서식하고 있는 특별구역이다.
장곡해변 전망대에 오르면, 원삼도, 고대도, 삽시도, 장고도 명장섬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올망졸망 나타나고, 장돌-장삼해변을 돌아 운여(雲礖)해변에 도착한다. 운여해변은 앞바다가 넓게 트여 파도가 높고, 바위에 부딪치는 포말이 장대하여 마치구름과 같다고 하여 부르고 있는데, 礖란 썰물 때는 물 밖으로 드러나고, 밀물 때는 물속에 잠기는 바위를 말한다.
운여해변에서 황포항이 빤히 건너다보인다. 직선거리로 5백m도 안 되는 짧은 거리지만, 고남 제방처럼 ⼕ 형으로 돌아오는 3km거리가 멀게만 느껴진다. 바닷길을 막아 제방을 축조하여 쌀농사도 짓고, 소금 꽃을 피우는 염전까지 만들어 우리생활이 풍요롭게 변하고 있다. 영목항에서 출발한 바람길도 황포항에 도착하며 16km를 완주하고 샛별길로 이어진다.
16. 해변 샛별길
황포항을 출발한 시각이 14시30분. 18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위해서는 3시간 30분이 남았다. 안면도 터미널까지 15km에 3시간이면 충분할 것이고, 30분의 여유가 남는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을 불러 세우는 사람이 있으니, 서울 강서구에서 온 관광객 부부였다. 무료하던 차에 말동무가 되어 막걸리 잔을 건네받는다.
관광을 좋아하는 부부가 황포항을 찾아 방파제에서 쉬고 있던 차, 지나가는 발걸음이 수상쩍어 불러 세웠다고 한다. 전국을 유람하면서 수없이 들어온 질문이라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자, 신기해하면서도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젊은 부부의 곰 살 맞은 대접에 수필집 「물길 따라 삼천리」를 건네니 그렇게 고마워 할 수가 없다.
얻어 마신 막걸리 두어 잔에 기분이 우쭐하여 발걸음을 재촉한다. 황포(黃浦)는 홍수로 국사봉 기슭에서 쏟아져 내리는 누런 황토물이 갯벌로 흘러넘쳐, 누런개라 부르던 것이 「황개」로, 다시 「황포」로 부르게 되었는데, 지금은 마을을 보호하는 방파제로 인해 누런 황토 물을 볼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황포항은 아담하고 조용한 포구다. 마을의 유래가 전해오는 국사봉 길로 들어서면, 늘씬한 안면송이 하늘 숲을 이루고, 솔잎들이 황토 흙을 덮고 있어 포근한 융단길이 펼쳐진다. 솔 향의 미몽에서 깨어나 산길로 올라서면, 국사봉 가는 삼거리에서 산기슭을 따라 서쪽으로 이어진다.
6구간의 이름으로 명명(命名)될 정도로 손때가 묻지 않은 샛별해변이 반겨준다. 샛별지역은 자연방파제로 바다를 막아 형성된 간척지로 「새벌」「샛벌」로 부르다가 샛별이 되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서 자염을 생산하면서, 새롭게 시작하는 염전이라는 의미에서 새벗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울창한 송림을 배경으로 주먹 만 한 자갈들이 끝없이 펼쳐지는 몽돌해수욕장에 백사장과 갯벌, 그 앞으로 썰물 때면 바다의 해식작용으로 형성된 암석들이 깔려있어 서해안에서는 보기드믄 청정지역이다. 섬의 모양이 장고를 닮아서 장고도라 부르는 바다 뒤편으로 외로운 섬 하나 외도가 부평초처럼 떠 있다.
훈풍을 타고 불어오는 봄바람에, 마늘밭도 풍성하게 여물어 간다. 태안과 서산지방에서 생산되는 육쪽 마늘은 서해에서 불어오는 염분을 먹고 자라는 탓에 육질이 단단하고, 매콤하면서도 단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한지(寒地)에서 잘 자라는 마늘은 단양과 의성지방이 특산지이고, 특히 서산 지역의 낮은 구릉이 마늘재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줄 밭머리란? 부추를 충청도 사투리로 줄이라 부른다. 낮은 산자락 돌밭에 줄이 지천으로 자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부추생산지로 탈바꿈하고 줄 밭머리에 있는 마을이라서 붙여진 우리고유의 마을이름이라고 한다.
동화속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줄밭머리」를 지나 병술만(兵戌灣)에 도착한다. 灣(만)은 바다가 내륙 깊숙이 들어온 곳을 이르는 말이고, 병술은 나라의 변방을 지킨다는 兵戍의 한자어에서 동화된 말로, 고려 때는 이곳에서 삼별초가 몽고군에 항전했던 호국영령들의 혼이 서린 군사요충지였다.
눈부신 백사장위로 거친 파도가 몰아치면, 사구(砂丘)에 뿌리내린 소나무가 속절없이 자빠지고, 육중한 방파제마저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 인재(人災)인지, 천재(天災)인지, 인간이 자연을 거슬리면 큰 재앙이 온다고 했거늘, 침식작용에 의해 환경이 변해도 천이의 과정을 거치며 회복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가 아닌가.
소나무 숲길을 빠져 나오면 병술만 체험캠핑장 앞으로 800m가 넘는 방파제가 나타난다. 예전에는 77번 국도가 지나는 곳까지 바다였을 텐데, 간척사업으로 농경지를 확보하여 태안이 자랑하는 대하양식장에서 어민들의 알짜배기 소득원이 되고 있다.
방파제에서 바라보는 물골이 장관을 이룬다. 썰물이 되면 물이 빠지고 뱀장어가 기어간 자리처럼 깊숙이 패어진 물고랑을 따라 바다생물들이 오르내리는 안식처가 물골이다. 샛별길 문주(門柱)를 지나 솔밭길을 지나가면 꽃지해변과 만난다.
리솜오션캐슬을 중심으로 5km 해변이 펼쳐진다. 완만한 수심으로 백사장의 폭이 300m에 이르는 태안반도 제일의 해수욕장이다. 안면도 해변의 모래는 유리의 원료로 사용하는 규사여서
몸에 잘 달라붙지 않고 보송보송하여 봄, 여름, 가을, 겨울 따로 없이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서쪽하늘로 내려앉는 태양에 반사되어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바다, 할매바위와 할배바위를 중심으로 연인들의 물장난이 한창이다. 태안반도 120여개 섬 중에서 백미(白眉)로 손꼽히는 한 쌍의 바위섬은, 일몰장소로 명성을 얻으면서 꽃지 해변의 상징물이 되었다.
바위틈에서 천수를 누리는 늠름한 소나무는, 추위와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천년의 전설을 간직한 채, 한 폭의 동양화로 태어나 아름답고 고고한 자태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해당화가 지천으로 피어나 꽃지라는 별호가 붙은 해수욕장에 도착하며 사실상의 샛별길도 완주를 한다.
현재시간이 17시10분. 터미널까지 2km를 걷는데 30분이면 충분하다. 구태여 택시를 부를 필요도 없이 방포저수지를 돌아가는 “해지개길”을 따라 터미널에 도착하니 17시35분이다. 예상대로 18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며, 아침에 만났던 버스기사의 친절한 서비스에 감사를 드린다.
17. 안면암 & 간월암
안면도에서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안면암이다. 해돋이 명소로 부상하고 있는 안면암은 77번 국도에서 동쪽으로 2.5km, 천수만을 바라보는 바닷가 언덕에 자리 잡은 대한 불교 조계종 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로 1988년에 지어진 사찰이다.
건립한지 30년도 안 되는 안면암이 주목받고 있는 것은, 자연경관을 활용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안면암에서 100여m 떨어진 두 개의 섬(조구널 섬) 중간에 부상탑을 조성하여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신비감을 보여주고 있다.
안면암과 부상탑 사이에는 나무판자로 만든 부교를 설치하여 밀 물때는 물위에 뜨고 썰물이 되면 갯벌에 가라앉는 구조로 되어있다. 7층으로 조성된 부상탑도 부교와 마찬가지로 17미터의 탑신이 1.1m의 구조물위에 안치되어 심한 태풍과 풍랑에도 원형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 불심의 신통력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일명 여우섬으로 부르는 조구널 섬은 조기가 많이 잡히던 시절, 섬 가득히 조기를 말렸는데 충청도 방언으로 조기를 너는 섬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일반 사찰의 경우 화강암을 다듬어 석탑을 안치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곳 안면암은 재료를 스텐레스와 동(銅)을 사용하여 가벼운 중량감으로 인해 부상할 수 있는 특징과, 날렵하게 날아오르는 비천상과 황금빛 색상으로 치장하여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대웅전 또한 장중한 목조 건물로 사찰의 위용을 과시하는데 비해, 콘크리트재료를 사용하여 3층 건물에 화려한 색상으로 단청을 하였다. 볼거리 즐길 거리를 제공하여 안면도를 대표하는 명소로 부상하는 안면암을 뒤로 하고, 입구로 되돌아 나오니, 한 시간 마다 다니는 버스를 채 일분도 안 되어 탈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원청삼거리에서 시작하는 답사는 96번 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진행한다. 4차선 도로 옆으로 자전거길을 개설하여 편안한 행보가 이어진다. 담암마을회관에서 자전거길이 96번 도로를 뒤로 하고 산 고개를 넘는다. 지도에도 없는 길이라 망설임 끝에 자전거 길을 따르기로 한다. 태안이 자랑하는 솔향기길과 해변길에 견줄만한 호젓한 길이다.
산 벚꽃이 흐드러진 고개 마루에는 짝을 찾는 새들이 구애의 목소리로 산울림을 하고, 동쪽으로 천수만이 끝없이 펼쳐진다. 다행히도 자전거 길은 96번 도로 옆으로 돌아오고, 또 한 번 산 고개를 넘은 뒤, 서산 B지구 방조제로 올라선다. 태안기업도시 라티에라 홍보관을 지나면서 한국이 낳은 불세출 “정주영”의 걸작 품이 펼쳐진다. 서산의 지도를 바꾸는 대역사는 정주영이라는 한 인간의 의지로 일구어낸 결정체이다.
9.8㎞나 되는 물막이 제방공사에서 약 270m 를 남겨두고 최대의 난관에 봉착한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구간에서 유조선을 이용하라는 정회장의 기지(奇智)는 수리학의 석학들도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다. 길이가 332m나 되는 22만6000t급 대형 유조선에 물을 채우고 물막이 공사를 완공함으로써, 서산간척사업이 성공할 수 있었다.
1982년 착공하여 13년만인 1995년 완공함으로써 여의도의 35배에 달하는 농토를 개발하고, 홍성과 태안의 생활권을 1시간 30분에서 20분으로 단축하는 기적을 이루었으며, 태안군 30여개 해수욕장들이 빛을 보면서 태안해상국립공원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다.
당암포구에 도착하며 지난 5개월 동안 해안선 500여km를 답사해 오던 태안 땅을 뒤로하고, 철새탐조 전망대 앞에서 휴식을 한다. 일각에서는 서산간척 사업으로 갯벌이 사라지고 환경이 파괴되었다고 주장하지만, 겨울이면 찾아오는 철새들의 군무는 우리들이 상상도 못한 반가운 손님이 아닌가.
석양에 물든 갈대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천수만 간척지. 황혼으로 물드는 하늘위로 검은 장막이 드리워진다. 허공을 가르는 요란한 날개 짓과 거친 울음소리가 대지를 흔들고, 갈대가 부르르 몸부림친다. 수십만 철새가 무리지어 대지를 박차고 날아오르면, 하늘은 온통 가창오리의 천국으로 바뀌어 화려하고 변화무상한 춤사위가 펼쳐진다.
찬 서리가 내리는 초겨울이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가창오리들. 멀고먼 러시아의 바이칼 호수가 고향인 “바이칼 틸”이 북한 땅으로 날아오며 “태극오리”로 휴전선을 넘어오며 “가창오리” 로 이름표를 바꾸어 단다. 천수만의 날씨가 추워지면서 금강 하구언으로 이동하고, 동장군이 기세를 부리는 엄동설한에는 해남의 고천암호로 이동해 겨울을 난다고 한다.
햇빛이 부서지는 천수만, 토끼섬 뒤편으로 태안의 황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황도에는 충남무형문화제 12호로 지정된 ‘황도 붕기풍어제’ 가 있는 마을인데, 1977년 제18회 전국민속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이래 황도어민들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
간월도로 향하는 발걸음이 너무도 위험하다. 속도제한(80km)을 무시하고 달려가는 차량들이 귓전을 스치는 총알처럼 공포감속으로 몰아넣는다. 왕복4차선도로에 1m안 밖의 경계표시를 두고 2.6km가 이어진다. 뒤로 물러설 수도,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진퇴양란(進退兩亂)이 따로 없다. 40분 간 피 말리는 순간들을 지나고 보니 모골(毛骨)이 송연(悚然)하다.
간월도의 끝자락에 터를 잡은 무인도가 간월암이다. 간월암은 밀물 때는 섬이 되어 건너지 못하고, 썰물 때만 갯벌을 걸어서 간월암을 오르게 된다. 간월암은 조선태조의 왕사 무학대사가 이곳에 토굴을 파고 수도하면서, 달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은 곳이라고 한다. 조선에서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을 실시함에 따라 완전히 퇴폐된 것을 1941년 송민공선사의 주창에 의해 마벽초선사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간월암을 찾을 때마다 썰물시간이라 그 진가를 확인하지 못했는데 오늘은 밀물시간이라, 만경창파에 한 송이 연꽃으로 묘사하고 있는 옛 시인들의 주장이 허구가 아니고 진정한 적멸보궁이라는 주장이 사실로 보인다.
천수만의 명물은 단연 어리굴젓이다. 4월말을 전후로 어리굴젓을 담그는데, 겨울에는 생굴로 먹지만, 봄이 되면 굴 맛이 “알싸하여” 젓갈을 담가 먹는다. 서산 어리굴젓이 유명한 것은 굴 끝부분의 털 날개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난히 커서 양념이 많이 스며들고 덕분에 맛이 깊다고 설명한다.
굴밥을 먹어보지 않고서는 간월도에 다녀왔다고 자랑하지 말라는 말처럼, 배가 출출해지는 시장 끼에는 굴밥이 딱 이다. 식곤증이 몰려오는 봄철에는 알이 굵고 향이 짙은 굴이 제격이다. 맛은 물론 영양까지 뛰어나 임금님 수라상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다. 굴깍두기, 굴젓 등 독특한 먹을거리를 반찬으로 곁들이면 봄철 입맛을 돋우는데 그만이다.
굴밥 한 그릇으로 든든하게 배를 불리고 나니, 천수만 A방조제 3km를 걸어갈 생각이 꿈만 같다. 모르는 길은 혹시나 해서 자나게 되지만, 목숨을 담보로 위험한 길을 들어선다는 것은 만용이요 객기인 것이다. 간월도 정류장에서 3시35분 버스에 올라 서산 터미널로 직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