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구간: 운두령- 보래봉 / 10km
전국적으로 눈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와는 다르게 천호역 6번 출구로 올라서니 동녘하늘에서 떠오르는 태양이 아침노을을 머리에 이고 해맑은 미소를 띠며 겨울답지 않은 포근한 날씨와 태풍전야의 고요함속에 20여명 남짓한 산 꾼들이 두 자리에 한사람씩 널널하게 자리를 잡고 오대산을 향해 출발을 한다.
한 달 만에 찾아가는 한강기맥도 영동지방의 폭설 주의보로 상원사에서 시작하는 뾰지게봉 구간이 국립공원 관리소 측의 통제로 출입이 불가능하여 부랴부랴 운두령(1.089m)에서 보래봉(1.424m)을 거쳐 자운치에서 덕두원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변경을 한다. 자연의 섭리에 따르는 것이 산 꾼들이 지켜야할 도리이므로 한겨울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운두령 고개 마루에서 몸을 풀며 전의를 가다듬는다.
산행 들머리인 운두령은 평창군 용평면에서 홍천군 내면으로 넘어가는 31번 국도의 고개 마루로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포장된 도로 중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표고가 1,089m인데, 겨울이면 계방산의 눈 산행시발점이기도 하지만, 서쪽으로 향하는 산마루는 오대산과 계방산의 화려한 명성에 가려 찾는 이가 별로 없는 한적한 곳이다.
완만한 오름길이 지속되는 주능선은 북서풍의 칼바람을 안고 가는 어려움이 있지만, 땀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오르는 상쾌함과 사방팔방 백리까지도 볼 수 있는 맑은 아침햇살에 가속도가 붙는다. 40여 분만에 1,272봉에 올라서면 시원하게 펼쳐지는 고원지대가 시야에 들어오고, 북사면으로 구상나무의 푸르름이 눈 속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남쪽의 양지바른 안부에는 강원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거수 굴참나무들이 천수를 누리고 있다.
그 옛날 이 지방의 전통가옥인 굴피집의 원료로 각광을 받으며 풍미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세월 따라 영화도 가버리고 이제는 땔감으로도 찾지 않는 외로움 속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수호신으로 우리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 안는다.
1,334봉을 거쳐 오늘의 마루금중에 가장 높은 1,380봉에 올라섰지만 시원하게 조망되는 헬기장이 정수리를 차지하고 수북이 쌓인 눈 속에 그 흔한 표지석하나 없이 이름표도 달지 못하고 쓸쓸이 산 꾼들을 반겨준다. 냉수한잔 마시며 마음을 달래고 건너편에 보이는 보래봉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북사면으로 이어지는 내리막길에서 지축이 울리도록 엉덩방아로 호된 신고식을 한다. 완만한 능선길이라 얕잡아보고 아이젠도 없이 함부로 날뛰는 경망스러움에 무명봉 山 신령님께서 일침을 가하시는 호통 속에 가슴 여미는 예의를 갖추고 조심조심 사면 길을 내려갈 때, 곤두박질치는 벼랑길에 오금이 저리고 칼바람도 잠을 자는 보래령에 내려선다.
세월 따라 변하는 것이 세상인심이라지만, 이곳 보래령도 그 옛날 평창군의 봉평면과 홍천군의 창촌을 넘나드는 탄탄대로였지만 운두령의 고개 길이 열리면서 사람들의 발자취도 뜸해지고 지금은 희미한 산길이 명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왼쪽은 봉평면이고 오른쪽은 자운리로 향하는 갈림길이다. 기맥은 맞은편 된 비알로 치고 올라야 하는데 봉평쪽에서 올라온 양재동의 산악회원들의 정감어린 소란스러움에 조용하던 겨울 산이 시끌벅적하다. 오늘의 산행에서 가장 힘이든 보래봉 오름길은 한겨울의 매서운 날씨 속에서도 등줄기에 후줄근히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사양 진 비알에는 겨우내 쌓인 눈이 녹았다 얼었다 빙판길을 이루어 더욱 애간장을 태운다.
숨이 턱에 차도록 가쁜 숨을 몰아쉬며 봉우리 2개를 넘고 나서야 주능선에 올라서며 완만한 산길이 열린다. 눈 속에서도 살며시 고개 내민 산죽 위로 진달래가 빽빽하고, 노거수 굴참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리를 잡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원시림의 보래봉 고원지대,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속에서도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의 이치를 배우며 순화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본다.
운두령을 출발한지 2시간 17분 만에 보래봉의 정상에 올라섰으니 겨울 산행으로는 큰 무리 없이 빠르게 진행하는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표지석은 없지만 유일하게 안내 표지판을 대하는 반가움에 사진 한장 살짝 누른다. 눈 위에 살며시 고개 내민 삼각점에는 봉평 22, 1990년 재설의 글자가 선명한데 용수골 2,4km 보래령 1,2km 정상 (회령봉을 지칭)2,7km의 표지판 우측으로 무수히 많은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완만한 주능선에는 빽빽한 잡목사이로 봉평면의 너른 들판이 언뜻언뜻 바라보이는데 산간오지인 이곳이 세인들의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본 고장으로 교교히 흐르는 달빛아래 소금을 뿌려놓은 듯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메밀밭을 지나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물레방아간에서 속삭이는 주인공들의 사랑 놀음은 우리의 가슴속에 훈훈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시공을 초월한 현재에도 문학인들의 필독서가 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롭다.
오르락내리락 운두령에서 출발한 주능선도 자운치에 도착하며 아쉽게도 작별을 하게 되는데 10여km 남짓한 거리에 2시간 40분이라면 한창 물오른 제비처럼 신나게 달려도 되겠지만 기상대의 폭설 주의보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마련된 산행계획을 어찌하겠는가?
마음 같아서는 불발현까지 내달려 흥정산 줄기타고 봉평으로 하산하여 그 유명한 메밀국수 한 그릇으로 여흥도 즐기고 문학기행도 했으면 좋으련만 모든 미련 버리고 북사면 능선을 따라 눈길을 헤친다. 노거수 굴참나무 앙상한 가지 끝에 빌붙어 살아가는 겨우 사리, 1000m가 넘는 고원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모습으로 우리 몸에 좋은 약재라고 하지만, 손길이 닿지 않는 높디높은 가지 끝에 자리를 잡고 있으니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지난번 동피 계곡에서 혼이 난 이후로 하산 길도 고난의 길로 짐작을 하였지만 능선의 등줄기 따라 이어지는 유순한 하신 길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고독과 사색을 즐긴다. 눈길을 걷는 나만의 자유는 단조로운 생활 속에서 일탈하여 누리는 행복감으로 내일을 향한 발걸음에 활력소가 되어 힘이 솟는다.
바람도 잠잠한 안부의 아름드리 고목아래 짐을 부리고 행동식으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겯 들이는 소주잔이 감칠맛 나고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에 거치적거리는 것이 없는데, 휘날리는 눈발이 즐거운 것은 어려운 산행코스 다 지나고 내려다보이는 덕두원이 지척에 있으니 눈보라가 날린들 무엇이 두려울까?
갈림길의 왼쪽은 창촌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많은 리본들이 걸려있고, 우리가 가야할 덕두원 가는 오른쪽으로 김 대장이 걸어놓은 리본이 세찬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갈림길에서 반대방향으로 내려선다면 목적지와는 수 십리씩이나 벌어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 특히 겨울철에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촘촘히 리본을 걸어가며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계곡으로 10여 분간 진행하면 임도가 나오고 소복이 쌓인 눈 위로 이어지는 선두의 발짝을 따라 왼쪽으로 10여분을 내려오면 산허리를 피고 드는 임도와 만난다.
하산 길로 방향을 잡아 계곡의 빙판길도 지나고 잘생긴 소나무를 지나 동구 밖에 이르면 뜸 뜸이 집들이 나타나며 콘크리트 포장길이 굽이굽이 산모퉁이를 돌고 돌아 지루하게 이어진다. 산 꾼들에게 고통을 주는 포장길을 4km나 걸어서야 운두초등학교가 있는 자운리 지령골에 도착하며 웅진관광에 오를 수 가있다.
먼드래재 - 화방재 / 15.5km
寤寐不忘(오매불망). 한강기맥만은 기필코 완주하겠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건만, 인생사 어찌 마음먹은 대로 행할 수 있단 말인가. 三冬의 추위 속에서도 함께 넘어오던 송암과 집안사정으로 2개월간 떨어진 사이“회령봉(1309m)갈림길과 먼드래재”구간을 건너뛰고 말았으니 애석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어쩌랴 언젠가는 나머지구간을 답사한다는 생각으로 오늘 송암과 함께 동행을 한다.
홍천군 서석면 청량리와 횡성군 청일면 율실리를 넘나드는 441번 지방도로는 교통량도 별로 없는 한가로운 고갯마루다. 오월도 하순, 강원도 오지인 이곳 홍천 땅에도 봄이 찾아와 綠陰芳草(녹음방초)가 다투어 피어나고 나무사이로 분홍색 철쭉이 화사하게 얼굴을 내민다.
절개지 왼쪽으로 들머리는 시작되고,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호기롭게 달려가는 선두그룹, 녹색 철조망을 끼고 능선마루에 올라서면 기맥은 왼쪽으로 꺾어진다. 싱그러운 풀 향기와 산새소리를 벗 삼아 529봉을 넘어 꾸준히 고도를 높이면 암릉이 길을 가로막고 서쪽으로 달려오던 기맥이 714봉을 넘어서며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아슬아슬한 암벽사이로 내려간다.
몇 걸음 내려서면 바위에 희미한 페인트 글씨가 보인다. “불안에 떨지 말고 자수하여 광명 찾자” 는 표어로 보아 간첩들의 자수를 권유하는 홍천 경찰서장의 것으로 보인다. 619봉을 우회하여 사면 길을 돌아서면 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은 절벽을 만나고 아슬아슬한 곡예로 벼랑길을 돌아서면 여무재 안부에 도착한다. 북쪽의 북전지 마을과 남쪽의 구접마을을 오가는 길목으로 아직도 두 마을의 왕래가 빈번한지 양쪽으로 오가는 길이 뚜렷하다.
홍천군과 횡성군의 경계를 가르는 기맥은 여무재에서 782봉까지 다시 고도를 240정도 올려야 하는 급사면길이다. 싱그러운 바람이 불어오는 오뉴월이지만, 가파른 비알 길에서 호된 신고식으로 비지땀을 흘리는 중에도 수리봉과 가야할 산줄기가 펼쳐지고, 수 백 년 된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782봉에 올라선다.
전면으로 수리봉이 손짓하고 남쪽으로 구접마을로 내려서는 능선이 분기된다. 우리네 식생활이 풍족해 지면서 신토불이가 붐을 이루는 와중에, 그 유명한 횡성 한우 마을이 미식가들의 입맛을 돋우고 있지 않은가? 무공해의 푸른 초원위에서 자란 한우의 명성을 이어가는 마을이 바로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다시 수리봉을 향해 서서히 고도를 올린다. 된비알을 힘들게 올라서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운치를 더하는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구접마을 건너편으로 병무산(920m)과 발교산(998m)이 손에 잡힐 듯 지척에서 반겨주고, 잠시 후에 수리봉(959m)에 오른다. 삼각점(청일305. 2005재설)이 있는 좁은 공터에는 표지석도 없이 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널 판지가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수리봉에서 간식으로 휴식을 하고 비알을 내려서면 왼쪽으로 장뇌삼 재배지역이 나타나며 출입금지 팻말과 가느다란 나일론 줄이 발교산 갈림길까지 이어진다. 율목리와 구접리를 이어주는 갈림길 안부를 지나 909봉에서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한창 물이 오른 철쭉이 지천으로, 향기에 취해 非夢似夢(비몽사몽)간에 발교산 갈림길인 935봉에 올라선다. 삼각점(청일413. 2005재설)이 있는 정상에서 군경계선은 남쪽에 있는 발교산 쪽으로 휘어지고 서북쪽으로 927봉을 바라보며 진행한다.
927봉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하여 939봉을 내려서는 사면 길에 두릅나무가 지천이라 휴식도 할 겸 두릅 따기 경쟁이 붙는다. 一石二鳥(일석이조)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그 귀한 두릅까지 한 망태 따고 보니 피곤하던 발걸음에 생기가 난다. 오른쪽으로 동면의 물골리 계곡이 내려다보이는 분지에는 천수를 누리는 갈참나무에 무성한 잎이 돋아나오고, 산새들의 노래 소리에 이름 모를 야생화가 군락을 이루는 별천지가 펼쳐진다.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휘적휘적 걸어가는 발걸음이 가벼운데, 둥굴레 꽃이 군락을 이루는 690봉 안부로 내려선다.
편안한 길이 있으면 고 빗길이 있게 마련이라. 쉬엄쉬엄 내려선 안부에서 대학산 정수리로 올라서는 길이야 말로 그동안 비축해 놓은 힘을 모두 동원해도 진땀을 흘려야하는 마의 구간이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게거품을 물어야하고, 천근만근 내려 누르는 다리는 촌보도 행하기 어려운 지경이라,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정상이 나타나기만을 鶴首苦待(학수고대)로 갈망한다.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대학산 정수리. 876m의 큰 키를 자랑하지만 삼각점(청일410 . 2005재설)과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널빤지가 전부다. 정상석이 없어도 종주의 보람으로 苦盡甘來(고진감래)를 만끽하고 암릉이 있는 사면 길을 내려서면 헬기장이 있는 810봉에서 오른쪽(북서)으로 방향을 잡아 로프가 있는 길을 가파르게 내려간다.
비알 길도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고 왼쪽으로 임도가 보이는 593봉을 넘어 절개지 오른쪽으로 임도사거리로 내려선다. 임도 왼쪽이 장승재로 이어지므로 임도를 따라도 되지만, 절개지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올라서면 평탄한 길이 능선분기점으로 이어지고 629봉에서 왼쪽으로 꺾어 내려간다. 비교적 뚜렷한 길을 따라 묘지와 밭을 내려서면, 406번 지방도로가 지나가는 화방고개(450m)란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또 한 구간을 마감하며 아쉬움 속에 나머지 구간의 종주를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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