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영혼을 불암산 에 불사르고
2008년 4월 10일
훈풍에 묻어온 봄볕이 따사롭고 구름 한 점 없이 해맑은 불암산 정상.
도봉산과 북한산의 암 봉 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빽빽이 들어찬 마들 평야의 아파트촌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조망 속에 오늘도 무사히 수락지맥의 종주를 마감한다는 안도감으로 장엄하게 솟아오른 수락산을 바라본다.
중이 모자를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필암산(筆巖山) 또는 천보산(天寶山)이라 부르는 불암산(佛巖山)은 커다란 화강암 덩어리로 수백 척의 단애를 이룬 정상에는 태극기가 휘날리고 로프가 걸려있는 벼랑길은 잠시도 방심할 수없는 아슬아슬한 구간이지만 수시로 오르내린 곳이라 별 의심 없이 내려딛는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몸의 균형을 잃고 만다.
억!
외치는 외마디소리와 함께 상체가 기울어지며 로프를 잡은 손이 밀리기 시작한다. 순간적인 판단이지만 살아야겠다는 욕심으로 혼신의 힘으로 로프를 부여잡고 두 다리로 버텨 보지만 미끄러지는 탄력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으로 왼쪽 허벅지가 바위에 스치며 3m 남짓한 벼랑길을 미끄러지며 두 다리가 땅에 닿는 순간 허리에 심한 충격이 온다.
천둥번개가 내려친 듯 뜨거운 불기둥이 허리를 스치고 지나며 구멍이 뚫린 듯 오한과 함께 전신에 힘이 쭉 빠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바위 잔등에 널 부러지진 몸을 추스르기 위해 손을 뻗어 보는 것조차 겁이 나는 절망 속에 살그머니 떠보는 눈 속에 하늘이 빙빙 돌고 있다.
아! 이제는 병신이 되고 마는구나.
겁도 없이 왼 산을 헤집고 다니는 객기도 이것으로 끝이 나고 만다는 낙담으로 오른손을 들어보니 별 통증이 없고 왼손 또한 큰 무리가 없어 새로운 용기로 오른 다리를 흔들어 보고 왼다리를 흔들어 보지만 심한 부상은 아닌 듯싶어 바위 잔등을 부여잡고 일어서 본다.
신기하기 그지없는 몸 상태를 내려다보며 한 바퀴 돌아보지만 타박상을 입은 왼쪽 허벅지와 허리가 뻐근하지만 보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살펴보지만 멀리 떨어진 등산객들은 내가 당한 아찔한 순간들을 보지 못한 듯. 희희 낙락 즐거운 담소를 나누고 있다.
3m를 미끄러지는 짧은 순간이지만 어찌나 용을 썼는지 반장갑을 낀 손마디가 로프의 마찰열로 시커멓게 타들어갔지만 긴급 구조의 힘을 빌지 않고도 하산을 할 수 있다는 행운에 감사를 드린다. 또 다시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벼랑길, 평소라면 수월하게 오르내리는 만만한 길이지만 30여m의 로프가 끝을 모르는 늪지대처럼 바위 잔등에 걸려있어 두 다리가 후들거리고 오금이 저려 오지만 되돌아 설수 없는 막다른 기로에서 또 다시 진땀이 주르르 흐른다.
혼신의 힘을 다 하여 안부에 내려섰지만 아직도 갈 길은 멀고 심하게 부어오르는 왼쪽의 허벅지가 쓰라려 오기 시작한다. 내려딛는 발걸음마다 허리에 오는 통증으로 심한 고통 속에 당고개로 내려서는 지름길이 멀기만 하다. 1km남짓한 당고개역까지 얼마나 긴 시간이 걸렸는지 절룩거리는 몸을 이끌고 수없이 번뇌하고 자책하며 이나마 다행이라는 위안 속에 내 마음은 한 없이 깊고 깊은 나락 속으로 빠져 들고 만다.
당고개역에서 창동역으로 도봉산역에서 회룡역으로 짧은 거리지만 수없이 환승을 하며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한숨 자고 눈을 떴지만 천근만근 늘어지는 몸을 운신을 할 수가 없다. 웬만해서는 아픈 내색을 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어찌 해볼 도리가 없이 거실에 있는 아내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사색이 된 아내의 부축으로 조카가 운영하는 한방병원으로 달려가 응급치료를 하면서 심상치 않은 병세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한다.
평생 병원을 모르고 살아온 자신감으로 큰 소리 처 왔지만 삼일동안의 한방 치료에도 별 차도를 보지 못하고 정형외과에서 M. R. I 촬영을 한 후에야 요추 제1번 압박골절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의 신세를 지고 만다. 허름한 환자복에 허리에 두른 압박 대, 왼팔에 꽂아 놓은 수액주사 지지대를 밀고 엉거주춤 화장실을 오가는 내 몰골에서 전국을 제집 안방처럼 헤집고 다니던 패기를 찾을 길 없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 하다며 당당하던 그 모습을 찾을 길 없으니 심한 자책 속에 건강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긴다.
가로수의 앙상한 가지에도 어느덧 연록색의 나뭇잎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도봉산과 수락산이 정겹게 바라보이지만 2주간의 입원과 한 달간의 통원치료, 두 달간의 물리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과 요추의 골절된 부분이 아 물때 까지 절대 안정이 필요하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오 헨리의 소설” 속에서 폐렴으로 죽음을 앞둔 소녀의 절망적인 상황을 묘사한 마지막 잎 새를 떠 올리며 언제 또다시 정상에 올라설지 아니면 영영 가슴속에 묻어두고 가슴앓이를 해야만 할지 속단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멍울이 들고 지나간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봉화산(137.9m) 가는 길
산행일: 2008년 5월 8일
불암산에서 등산사고 이후 20여 일간 병원신세를 지고 난 뒤 퇴원을 했지만 골절된 부분이 아물려면 아직도 많은 시간이 필요하니 평지에서 걷는 운동 외에는 머리를 감는 일 조차도 무리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처방에 따라 잠을 잘 때도 반듯하게 누워서 자야하고 허리에는 항상 복대를 차고 살얼음 위를 걷는 심정으로 재활운동에 열중한다.
一刻이 如 三秋라 퇴원한지 일주일 밖에 안 되지만 집에서 TV와 씨름하는 것도 진절 머리가 나고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고수부지에는 건강을 위해 달리는 부지런한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어 아스콘 위로 나서니 성치 않은 몸이지만 마음만은 5월의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 상쾌하기 그지없다.
새벽마다 걸어온 길이지만 모든 사물들이 새롭게만 느껴지고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실리고 큰 무리 없이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기쁨으로 생각하며 왕복 4km 되는 지점을 돌아온다. 걸음마를 시작하는 어린아이의 심정이 이러할까? 아내에게 자랑삼아 큰소리를 쳐보지만 너무 자만하지 말라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이튿날 일찌감치 집을 나서 6km로나 되는 도봉동의 친구가 하는 가게를 찾아가니 모두들 놀라는 표정들이다. 퇴원을 한지 얼마나 된다고? 이렇게 무리해도 되느냐고? 조금 무리 한 듯싶기는 하지만 그래도 참을만하여 큰 소리를 치면서 차 한 잔을 얻어 마시고 되돌아오며 생각보다 빠른 회복이 신기하기도 하고 평소에 다져진 체력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12km의 거리를 2시간 만에 완주하며 또 다시 엉뚱한 발상을 하게 된다.
사실 고수부지를 걷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지만 도봉산이나 수락산은 엄두를 낼 수 없는 곳이고 만만하게 다녀올 수 있는 산으로 신내동의 봉화산을 염두에 두지만 140m 높이의 야산이 시답잖아 일단 고수부지를 따라 석계역까지( 12km ) 걸어가서 컨디션이 좋으면 봉화산을 오르기로 작심을 하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아스콘으로 포장된 하이킹 코스에는 신나게 질주하는 싸이클 동호회원들이 원색의 물결을 이루고 한가로운 강태공들의 여유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빨라지는 발걸음을 조절한다. 도봉 구청 앞을 지나 2시간 만에 한천교에 도착하여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보도를 통해 공릉동으로 진입하여 태릉역에 도착하니 한낮의 열기 속에 복대 속으로 흥건히 땀이 흘러내리며 피로가 몰려오지만 봉화산이 멀지않았다는 자신감에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
아파트와 빌딩들의 그늘에 가려 봉화산의 정상이 보이지는 않지만 태릉 중학교 옆으로 정안빌라를 지나면 오솔길이 나오고 처음으로 만나는 곳이 善嬪 安氏(선빈안씨) 묘로 태종의 후궁인 안 씨가 안장 될 때 조성된 석등은 500여 년 전의 것으로 귀중한 유물로 전하고 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아카시아의 향기가 코끝을 스치며 싱그러운 그늘 아래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산책 나온 사람들의 정담이 구수하게 들려오고 산마루마다 쉼터와 운동시설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잠시 후 소나무 그루터기가 있는 성황당을 지나면 연산홍이 만개한 이정표를 지나 가지런히 시설된 나무계단을 오르게 되고 삼각점을 표시하는 쉼터에 이르면 정상은 300여 m 앞에 있다.
완만한 능선을 따라 소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솔 그늘에는 아담한 정자와 운동시설, 벤치들이 산책 나온 사람들의 벗이 되어 망중한을 즐기며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봉수대가 자리 잡고 있는 봉화산(일명 봉우재) 정상이다.
표고가 138m밖에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평지돌출 형으로 수락산과 불암산을 지나 아차산으로 이어지는 지맥이 옆으로 지나고 있는 독립된 산으로 중랑구와 노원구의 너른 들판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고 남쪽과 서쪽으로는 높은 산이 없는 탓에 한강과 남산이 바라보이는 전망이 너무도 좋아 서울시에서 전망 좋은 50곳을 선정하여 발표한 곳 중의 하나로 남산 쪽으로 바라보는 야경이 절경이라 한다.
정수리에 우뚝 솟은 봉수대는 서울시 기념물 15호로 지정된 아차산 봉수대로 이조시대 5개 봉수로 중에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거쳐 포천 잉읍현에서 올린봉수를 받아 남산으로 연결하는 제1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로 1994년 11월 7일에 모형을 축조했으며 조선시대의 통신수단이요. 군사시설로 평상시에는 1번, 적이 나타나면 2번, 적이 가까이 오면 3번, 지경을 침범하면 4번, 적과 접전을 하면 5번의 횃불을 올리는데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횃불을 사용했다한다.
이곳의 정상에는 봉수대보다도 더욱 값진 문화재가 자리 잡고 있으니 서울시 무형 문화제 34호로 지정된 봉화산 도당제를 지내는 산신각으로 문헌에 의하면 400년 전에 주민들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취하기위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풍습을 재현하여 매년 음력 삼월삼일(삼월 삼짓날) 도당제를 지내며 지금은 중랑 구민들의 문화축제로 승화되어 전수되고 있다고 한다.
무료한 시간을 위안삼아 올라온 봉화산이 규모로 보아 보잘것없는 산이지만 그 속에 전해 내려오는 유물이야말로 그 어느 거대한 산보다도 값진 보물을 안고 있으니 새로운 체험을 하며 흐뭇한 마음으로 하산 길에 접어들지만 무리한 산행 탓인지 내딛는 걸음마다 허리에 통증이 오고 갑자기 피로가 누적되어 진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이 또한 무슨 변괴란 말인가? 過猶不及(과유불급)이라.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하였으니 하루라도 빨리 완치하려는 의욕은 좋으나 너무나 지나친 행동으로 병이 덧나고 말았으니 또다시 많은 시간들이 고통 속에 흘러가야 하고 복대를 차야하는 시간들이 더 길어져야한다는 사실이 후회막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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