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암사와 송광사를 품에 안은 조계산
조계산(장군봉) 884m. 연산봉 843m
산행일시: 2007년 11월 18일 11시 20분 - 15시 10분 산행시간 : 3시간 50분
소 재 지: 전남 - 순천시(승주읍, 악안면, 송광면) 산행거리: 약 11km
날 씨: 맑음 자이안트 산악회 회비 - 27,000원 참여인원 - 28명 식사제공
여느 때 보다 1시간이 나 빠른 6시에 출발을 하여 시원하게 뚤 린 고속도로를 달려가도 5시간이나 걸리는 조계산. 전라남도 순천시의 선암사와 송광사가 있는 이산은 몇 년 전만해도 당일 산행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곳이지만 바둑판처럼 다듬어진 고속도로 덕분에 당일 산행이 가능해 졌으니 우리 산 꾼들에게는 이래저래 행복한 나들이 길이다.
지구의 온난화로 11월이 다가도록 포근한 영상의 날씨를 보이더니 밤새 기온이 곤두박질치며 거센 바람 속에 영하4도의 강추위가 찾아온 아침. 몸을 움츠리며 동동 걸음으로 노원역 6번 출구 삼성생명 앞에서 버스에 오른다. 군자역, 구일역, 천호동을 거쳐 상일동에서 인원점검이 끝난 뒤 구리 판교고속, 경부고속, 천안-논산고속, 호남고속, 도로를 따라 줄기차게 달려온 우리는 승주 톨게이트를 벗어나 낙안읍성으로 향하는 857번 도로를 따른다.
붉게 타 오르던 단풍도 낙엽 되어 바람에 흩날리고 잔잔한 상사호를 파고드는 선암사 가는 길. 널찍한 주차장에 빼곡히 들어찬 버스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행락인파로 고즈넉한 산사가 시끌벅적하다.
아름드리 굴참나무가 반겨주는 울창한 진입로를 따르면 불법을 수호하며 일체 중생들의 성불을 도와준다는 호법성신과 방생정계로 명명된 목장승을 지나 오른쪽으로 편백나무들이 숲을 이룬 양지바른 언덕아래 단을 모으고 고승들의 덕을 기리는 부도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널찍한 진입로가 버거울 정도로 많은 인파속에서 잰걸음으로 속도를 내다보면 선암사가 자랑하는 승선교에 이른다. 보물 400호인 이 다리는 아치형으로 홍예석 중간에 이무기 형태의 상징물을 만들어 재해를 막는 수호신으로 깊은 뜻을 간직하고 있지만 모두들 스쳐 지나기 일쑤이니 애석하기 그지없고 강선루를 지나며 장군봉이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오른쪽으로 그림 같은 삼인당이 반겨준다.
지방기념물 46호인 삼인당은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 국사가 만들었다는 연못으로 길이 11m에 폭이 9m의 아담한 규모에 섬까지 구색을 갖추고 연못 뒤로는 삼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선암사를 찾는 중생들에게 신비로움을 안겨주는 명소로 건너편으로 등산로가 열리지만 유서 깊은 사찰을 어찌 외면 할 수 있 으 리 요.
참고로 삼인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人), 제법무아인(諸法無我人), 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의 삼법인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의 중심사상을 말한다.
하마비를 지나 완만한 언덕을 오르는 비알 길에는 연륜의 때가 덕지덕지 묻은 굴참나무 한 그루가 열반에 들어선 고승들의 고풍스런 모습으로 앙상한 몸체로 반겨주고 조계산 선암사란 편액이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면 범종루가 자리 잡고 대웅전을 비롯한 두기의 삼층석탑이 반겨준다.
선암사는 진흥왕 3년(542) 아도가 비로암으로 창건을 하였다는 설과 헌강왕 5년(875)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건을 하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방치되어 오다가 현종1년(1660)에 중창을 하고 영조 때 화재가 일어나는 수난사의 연속으로 순조24년(1824) 해붕이 다시 중창을 하여 태고종의 본산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선암사가 자랑하는 승선교와 삼인당 삼층석탑까지 돌아보았으니 본격적인 산행을 위해 삼인당으로 다시 내려와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송광사와 대각사 있는 방향으로 들어서면 왼쪽으로 커다란 바위에 암각 된 마애불상을 보게 되고 솔바람 불어오는 오솔길에는 편백나무와 조릿대가 운치를 더하며 잠시 후 너른 분지에 대각암이 자리 잡은 갈림길에서 직진을 하면 조국 순례 대행진의 탐방로를 따라 선암 굴목치로 가는 길이고 우측의 대각사 뒤편으로 조릿대가 무성한 산책로가 장군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가파른 비알 길에 가지런히 쌓아올린 돌층계는 끝없이 장군봉으로 향하고. 그 화려하던 오색의 물결도 추풍낙엽으로 발길에 채 이 는데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내려 비추는 햇볕의 따사로움은 영하의 날씨에도 등허리에서 후줄근히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가쁜 숨 몰아쉬며 올라선 샘터에는 지친 몸 쉬어가는 휴식공간으로 부산과 대구에서 온 산객들로 호떡집에 불이 난 듯 소란스럽다.
산등성이에서 몰아치는 칼바람은 식은땀을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덜덜 떨리는 한기에는 휴식보다는 걷는 편이 추위를 이기는 첩경이라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고 1시간 40분 만에 장군봉 정상에 올라선다.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 속에 모든 분진이 씻겨 내린 하늘은 청명하기 그지없고 시원하게 펼쳐지는 조망으로 가슴속이 후련하게 열리는데 호남정맥으로 이어지는 광양의 백운산이 동쪽에 자리 잡고 동북방향으로 마루 금엔 지리산의 천왕봉이 서북쪽으로 광주의 무등산이 서남쪽으로 월출산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물결치고 남쪽으로는 다도해의 푸른 물결이 아른 거린다.
이정표와 돌무더기. 바위 위에 올려놓은 앙증맞은 정상석은 강가의 조약돌을 주워 온 듯. 온갖정성으로 갈고 다듬어 불심이 가득하고 순천 11, 1991년 재설된 삼각점을 뒤로하고 거센 바람을 피해 연산봉으로 향한다. 조계산은 선암사가 있는 동쪽으로는 가파른 지세에 활력이 넘치는 남성의 용모를 갖춘 반면 서쪽의 연신봉은 여성의 부드럽고 포근한 산책로가 이어지는 U자형의 지형을 이루며 잠간이지만 호남정맥의 발길이 이어지는 구간이다.
연산봉 능선이 비단결같고 마루금엔 무등산이
삭풍 끝에 부는 바람은 살을 에 일 듯 가슴을 파고들고 귓불을 얼얼하게 때리지만 새벽밥 한술로 버텨온 몸에 시장 끼를 달래기 위해 바람이 잔잔한 향로암 터 안부에 자리를 잡고 주린 배를 채운다. 범 바위가 있는 사면 길에는 삼삼오오 짝을 이룬 행락객들의 안식처로 훈훈한 인정미가 넘쳐나고 무인 기상관측대가 설치된 869봉에 올라서면 건너편의 장군봉이 더욱 높아 보이고 북쪽으로는 호남정맥이 분기하여 오성산으로 달려간다.
이제부터 연산봉으로 흐르는 능선은 천지암봉까지 오메가의 형태를 이루며 탄탄대로 산죽 밭 사이로 등산로가 펼쳐지고 2-30m의 표고를 오르내리는 연봉들이 심심 찬케 이어지는 포근함속에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오뉴월 호시절에 붉은 물결로 타오르는 꽃동산의 향연은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인가?
오늘의 주봉인 장군봉
호남정맥이 분기하는 869봉
등산로라기보다는 가벼운 산책길을 걷는 기분으로 연산봉을 거쳐 14시에 장밭골 삼거리에 이른다. 직진을 하면 작은 굴목재로 가는 길이고 송광사는 우측의 피아골을 경유하게 되어있어 서둘러 계곡으로 들어서면 주능선의 부드러움과는 달리 앙살맞게 전개되는 너덜지대는 잠시라도 방심을 하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를 당하기 십상이라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고 설악산의 황철봉과 지리산의 피아골을 지나오며 겪었던 추억을 되살리며 조심조심 계곡을 더듬는다.
30분간의 긴장 속에 무사히 너덜지대를 빠져 나오면 목조 다리가 걸려있는 홍골 입구에 도착하는데 이곳은 송광사에서 선암사를 넘나드는 국토 순례단의 탐방로를 겸하고 있어 널찍한 등산로에 완만한 경사를 이룬다.
바위틈을 비집고 흘러내리는 물소리는 겨울잠을 자던 삭막하던 골짜기에 생명의 불을 지피고 철지난 단풍들이 바람결에 흩날리며 물길 따라 끝없는 여행길에 나선다.
옹골찬 계곡을 비집고 내려선 신평리. 왕대 숲을 빠져나오면 너른 분지가 전개되는 송광사의 뒷길로 들어서게 된다.(14시 50분)
계곡의 물을 모두어 해자를 만들고 다리를 건너면 송광사의 현판이 걸려있는 사천왕상의 전각에 이르고 그 뒤로 범종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선암사와는 달리 규모면에서도 엄청나게 큰 대 사찰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전각들이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잡고 스님들이 정진하는 도량으로 바람소리 외에는 고요한 정적이 감도는 경내에서 내딛는 발걸음에도 방해가 될까봐 조심조심 옷깃을 여민다.
대웅전의 넓은 뜰을 중심으로 처마와 담장이 잇대어 지붕의 아름다운 곡선들이 불교문화의 진수를 보여주며 송광사가 자랑하는 비사리 구시가 승보전의 처마 밑 뜨락에 안치되어 있으니 1742년 남원 세전 골에 있던 큰 싸리나무가 쓰러지자 이것을 가공하여 만들었는데 밥을 담아 보관하는 목기의 일종으로 쌀 7가마의(4,000명분) 밥을 담을 수 있다니 그 규모에 놀라게 된다.
또한 박물관에는 송광사의 보물인 능견난사가 진열되어 있는데 사찰의 음식을 담아내는 일종의 그릇으로 매우 정교한 수공예품으로 진가를 발휘하며 사진 찰영이 금지되어 아쉬움이 남는다.
송광사의 명물인 해우소를 둘러 경내를 빠져 나오면 송광사를 중흥시킨 지눌스님을 비롯한 고승들의 비석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와 양산 통도사와 함께 우리나라의 삼보사찰로 신라 말엽 혜린 선사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해결사를 이곳에 옮겨와 수도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 180여 년 동안 15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외국 승려들의 선방인 국제선원과 승과대학 을 개설하여 많은 스님들을 배출하여 송광사가 승보사찰로서 면모를 과시한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조계산이지만 유서 깊은 두 사찰이 아니라면 특별히 내 세울 것이 없는 곳이기에 선암사와 송광사의 연계산행으로 그 묘미를 찾아 천년고찰의 조계종과 태고종의 본산을 찾아 정토불국의 자비가 가득한 불심을 안고 서울로 향하는 도로가 주차장이 되어도 평상심으로 돌아가는 내 마음에도 부처님이 찾아계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