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삽당령 - 백두대간길
석두봉(982m), 화란봉(1,069m)
산행일시: 2007년 5월 19일 산행시간: 10시 35분-15시 25분 ( 4시간 50분)
소 재 지: 강원도 강릉시 왕산면 뫼솔 산악회 산행거리; 약 11km
날씨: 흐리고 안개 참여인원: 36명 회비; 25,000원
대간 길을 더듬어 온지 어언 십여 년
남들은 수차례 왕복을 했을 시간 이지만
아직도 완주를 못하고 있으니
나의 천성대로
발길 닿는 대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강원도로 전라도로 충청도의 구간을 오르다보니
부지하세월이라
수많은 산악회들이 대간 길을 오르내리지만
개 이빨처럼 빠진 구간의 땜빵이
생각 보다 수월하지를 않다.
이곳은 2005년 2월 20일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에
허리까지 빠지는 눈구덩이 속에서
4시간 동안 사투를 벌이다가 눈물을 머금고
돌아섰던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라
대간의 완주와 명예회복을 위해
항상 가슴속에 품고 벼르던 곳이기에
오늘에서야 삽당령의 고갯길을 다시 찾게 되었다.
새벽 4시 자명종 소리에
자리를 털고 일어나 베란다로 나가보니
어둠속에 도봉산과 수락산이 구름 속에 뭍 혀 있어
찝찝한 마음으로 짐을 꾸리고
우비까지 챙겨 넣으며
오늘 만큼은 완주를 하고 말리라는 굳은 각오로
여명이 터오는 회룡역으로 향한다.
6시 10분 시청 앞 광장에는 고요한 정적이 감돌고
석가탄신의 축제를 위한 다보탑의 조형물이 시선을 끈다.
잠시 후 M 산악회의 P대장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사당역으로 양재역으로 복정역까지 순례를 하고보니
비수기의 산행으로는 제법 많은 36명이 참여를 했으니
아직도 대간 길은 인기가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며
간간이 비추는 아침 햇살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오월도 하순으로 접어들며
영동고속도로의 주변에는 신록이 더욱 짙어지고
소사 휴게소의 상징인 산사 나무에도
짙은 향기를 품어내는 소담스러운 꽃이 만발을 하고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한 준비로 분주한 횡계를 지나
대관령 터널을 빠져나오면
곧바로 강릉 저수지를 끼고 돌며 삽당령에 도착한다. (10시 30분)
흰 눈으로 동화속의 별천지를 이루던
삽당령 고개 마루도 앙상하던 나무에 새 순이 돋아나고
싱그러운 훈풍이 불어오는 680m 산마루
선두그룹은 대간 길을 내달리지만
표지석과 동물 이동통로, 산신각을 디카에 담다보니
후미로 처지고 말았다.
하지만 무엇이 두려우랴.
옛 추억의 쓰라린 경험을 되돌아보며
20분 만에 송신탑을 지나고
30분 만에 이정표가 서있는 삼거리 길을 지나며
새로운 감회가 든다.
이곳부터 허리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는
눈물겨운 사투가 시작됐으니
1시간에 500m도 못되는 속도로 진행하는 가이드의 러셀은
대간 길을 헤쳐 가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개구리 점프를 하면서 혼신의 힘을 다 하지만
10m가 넘는 강풍 속에 날아가고
방화선이 있는 들미재를 겨우 넘고서야
인간의 나약한 힘으로 대 자연 앞에 도전하는 무모함을 깨닫고
모두 허탈한 마음으로 되돌아섰지만
조금도 후회는 없다.
첫번째 표지판 - 이곳 부터 러셀이 시작됐다.
1km에 걸쳐 펼쳐지는 방화선이 두릅나무의 밭이었는데
깨끗하게 벌초를 하여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고
취나물과 고사리 꺾기에 여념이 없는 일행들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홀로 서있는 낙락장송이 지난겨울의 강풍에
가지가 부러지고 동해안쪽으로 10도 이상 기울어지면서도
모진 목숨을 이어 가는 애처로운 모습이 우리 민초들의 삶과 무엇이 다르랴?
대화 실산 갈림길
978봉을 오르며 짙은 안개가 주위를 휘감아 들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속에
산죽의 군락이 즐비하게 펼쳐지는데
제철만난 철쭉이 분홍빛갈로 마중 나오고
강원도 투막집의 너와 지붕 감으로 팔려 나가던 아름드리 고목들이
대간 길의 분지위에 자생을 하고 있다.
북진하던 대간 길이 큼지막한 바위를 돌아
978.7봉의 공터에 이르지만 삼각점을 찾지 못하고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석두봉을 향한다. (11시 50분)
완만한 내림 길을 오르락내리락
빗방울을 먹음 은 안개가 주위를 감싸 돌고
다급해지는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여
산 비알을 기어오르면
부러진 낙락장송에 바위 2개가 자리 잡은 협소한 석두봉 정상.
정상 표지판마저 땅 바닥에 나딩굴고
낙동 산악회의 코팅막이 우리의 마음을 어루만진다. (12시 23분)
아쉬운 마음을 간직 한 채
높지 않은 바위벼랑을 내려서 북쪽으로 향하는데
여전히 안개는 물러 설줄 모르고
앞질러 스쳐간 빗줄기로 산죽의 잎사귀에 물기가 흥건하여
스치는 바짓가랑이가 흠뻑 젖어도
분홍색 고운자태 그윽한 향기로 유혹의 손길을 펼치는
철쭉의 무리 앞에 발길을 멈추고 만다.
960봉을 지나 삼각점이 있는 989.7봉에 이르면
정상 직전에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화란봉을 향하지만 짙은 운무는
더욱 기승을 부리며 검은 장막을 드리우고
심란한 마음에 시장 끼마저 동하여
길섶의 바위 잔등에 자리를 펴고 행동식으로 민생고를 해결하고 나니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13시 20분 - 10분간 식사)
큰 나무에 빌붙어 사는 기생목
991봉을 지나며 잠시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게 되는데
대간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행길이 계곡을 비켜 가며 구불거리고
오늘의 대간 길에서 가장 힘겨운 비알 길을 기어오르면
철쭉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화란봉의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14시 30분 - 10분간 휴식)
이곳 또한 운무속에 시계 제로의 안타까움이 연속되지만
하산 길에 우측으로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운해 사이로 닭목재의 산허리가 모습을 드러내며
어둠속의 산행 길에 서광이 비추고
얼어붙었던 우리의 마음도 봄눈처럼 녹아내리며
힘들여 걸머지고 온 배낭을 풀어
이 상길 산우님과 막걸리로 축배를 들며
부드러운 다래 순에 손길이가고
잠시잠간 비닐봉지를 채웠으니 아내에게 체면까지 세우고
휘적휘적 걷는 발걸음에 신바람이 난다.
유순하던 산길에 바위들이 듬성듬성 나타나더니
강원도 심심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수십 미터의 높이로 숲을 이루고
대궐의 대들보 감으로 탐이 나는 거목들이 우리의 시선을 압도한다.
잠시 후 벼랑위의 전망대는 낙락장송의 그늘아래 펼쳐지는
오늘의 산행 길에 가장 좋은 조망 터로
파노라마가 펼쳐지는 운해의 변화무쌍한 춤사위는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카메라의 삿 다 누루기에 여념이 없다.
닭목재 직전의 임도
가파른 벼랑길도 단숨에 닭목재에 도착하며
어둠속을 헤치는 고난 속에서도
끝가지 비를 맞지 않고 산행을 하게 된 것을
천우신조로 생각하며
다시 찾은 삽당령의 대간 길도 무사히 완주를 하고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 홀가분하다.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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