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호 ( 시 와 산 )
제 42 호
2004년 2월 28일
인왕산에 올라서
망나니의 서바이벌 게임으로
평화로운 동산이 난장판이 되어
피멍든 가슴에 빗장을 걸고
외면하는 너의 모습이 너무 애처러워
긴긴날 먼발치에서
연민의 정으로 기다렸단다.
한강 물이 풀리기를 수 십 번
얼음장 밑에서 피어오르는
따사로운 봄기운 따라
너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굳게 걸었던 빗장도 풀리고
잡은 손 놓칠세라
너의 품속으로 달려갔단다.
북악 에서 흘러내린 어깨선 따라
곱게 자란 삼단 머리 쓰다듬으며
선바위, 매 바위, 기차바위도
옛 모습 그대로 자리보존하고 있으니
수호 신장님의 보살핌에 감사드리며
다시 돌아온 너에게
한없는 애정이 넘친다.
아우의 임종을 보며
아우여!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는가?
고단한 육신을 병상에 누이고
풀어진 눈동자 허공을 맴돌며
우람한 풍채는 피골이 상접하여
맥을 놓고 있으니
사랑하는 가족들의
한숨 소리와
숨죽여 흐느끼는
통곡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한평생 외길인생 사도의 길 따라
앞만 보고 달려온
결승점을 눈앞에 두고
어찌 맥없이 주저앉는가?
일어나라 아우여!
어서 일어나
화려하게 펼쳐지는 무대위에서
신명나게 한바탕 놀아나보세.
※대장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고종사촌의 병상에서
아우의 召天
마즈막 재를 넘는 것이
그렇게도 급하셨는가?
空手來空手去 가 인생이거늘
가족들의 오열 속에
하늘도 잿빛 속에 가리고
부음을 맞이하는
남은 자 들의 가슴에
슬픔만이 가득합니다.
코 흘리게 어린시절 죽마고우로
봄이면 실개천에 버들피리 꺽 어 불고
요도 천에서 물장구치며
엄동설한 등교 길이 십리가 넘어도
9년 동안 개근하며
책을 끼고 사는 신동이었지.
주위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큰 재목으로 자라 오면서
마지막 불꽃을 피워보지 못하고
허무하게 꺾이고 말다니
하늘이 원망스럽습니다.
도솔천을 건너는 아우님이여
괴롭고 힘든 짐 모두 벗어 버리고
평안히 영명 하소서.
※교장의 발령을 받고 부임을 하지 못한채 사망을 하였음
※마즈막재: 충주지방에 있는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 가는 재
한라산 눈꽃 축제
산행일시: 2004년 1월 10일
산행시간: 6시간 30분
산행일정: 인천 연안부두에서 9일 저녁 7시 15,000톤 급 유람선으로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8시 제주항에 도착하여 관광버스 로 성판악에 올라 산행을 시작 한다.
한라산 눈꽃 축제
산과 인연을 맺어 온지 십 오년, 전국의 산과 계곡을 찾아 행복한 삶을 누려오면서 금년에 회갑을 맞는다. 회갑의 의미를 되새기며 멋진 추억을 만들기 위한 자축연이라고 할까. 금년의 첫 산행을 한라산으로 정하고 산악회를 물색하던 중, 인천에서 제주까지 운행하는 유람선을 이용하여 한라산 등산을 하는 새로운 이벤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밤새 13시간의 항해와 8시간의 등산, 또 다시 13시간의 배를 타야하는 강행군이지만 새로운 세계를 체험 할 수 있다는 호기심과 저렴한 경비(왕복 9.7000원)가 매력적이어서 서둘러 미투리산악회에 예약을 한다. 큰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하면서도 두려움이 앞선다. 젊은이들이나 도전하는 행사를 나이 먹은 사람이 주책없이 참석을 했다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으로 조바심이 나기도 한다.
전철로 몰려드는 동 인천역 승강장에는 화려한 등산복 차림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출발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지만, 모두들 조급한 마음에 연안부두로 줄달음친다. 땅거미가 지는 연안부두 대합실에는 제주로 향하는 등산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700여명이 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을 이룬다. 인원 점검하랴. 승선 티켓을 나누어 주랴. 그야말로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가까스로 배에 승선하고 보니, 산악회 별로 한 방에 40여 명씩 배정을 하고 먼저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이듯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일찌감치 술판이 벌어진다. 7시 정각 뱃고동 소리를 신호로 오하마나 호는 제주를 향해 선수를 돌리고 밤바다를 미끄러진다. 한라산을 오른다는 의기투합으로 금 새 친숙해지고, 주고받는 술잔 속에 흥이 무르익는다. 내 노라 하는 산 꾼들이 모인 곳이라, 자연히 화제는 산 꾼다운 영웅담으로 목청이 높아지고 질펀하게 술판이 벌어진다.
우리가 타고 가는 오하마나 호는 15,000톤급의 호화 여객선으로 편도 요금이 3등석 기준으로 46,000원이다. 비싼 운임과 장거리 항해에서 오는 불리한 여건으로 비행기에 손님을 빼앗기고, 화물을 운반하는 용도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산악 대장을 하던 분이 청해진 해운의 상무로 부임하면서, 국면 타개책으로 한라산 등반이라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여 금년 1월 1일 해돋이 행사로 대박을 터트리는 히트 상품이 되었다고 한다.
일주일에 3회씩 운행하던 스케줄도 매일 운항하게 되어 저녁 7시에 인천항을 출발하여 다음날 8시 제주항에 도착하고 저녁 7시 제주항을 출발한 배는 다음날 8시에 인천항에 도착한다. 한정된 공간속에 많은 사람들로 초만원을 이루지만, 시작 단계라 그런지 배안에는 승객들이 즐길 수 있는 여가 시설이 없어 옥에 티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잠든 사이 쉼 없이 움직이는 배는 시속 40km의 속도를 유지하며 달려간다. 하늘에는 눈이라도 한바탕 쏟아지려는지 별도 달도 구름 속에 숨어버리고 칠흑 같은 어둠속에 새벽 5시를 지난다.
서해안의 얕은 수심 때문인지 배 멀미 하는 사람 하나 없이 모두들 갑판으로 나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운다. 한라산을 넘자면 든든하게 배를 채워야 하겠기에 배에서 제공하는 우거지 국에 밥 한술로 요기를 하고 예정시간 보다 빠른 7시30분 제주항에 도착한다.
한라산. 생각만 해도 신비스러운 곳. 겨울이면 가장 먼저 내리기 시작한 눈이 백록담을 포근히 감싸 안고, 구상나무사이로 눈 속을 헤치는 사나이들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신바람이 난다. 긴장과 설레임속에 서둘러 버스에 오른다. 주체 측에서 나누어주는 도시락을 받아들고, 성판악을 오르는 중간에 버스에서 불이 나는 소동이 벌어진다.
11월부터 2월까지 4개월 동안 개방되는 한라산 겨울 등산은, 등산객들의 안전을 위해 성판악에서 9시가 넘으면 출입을 통제한다. 가까스로 9시에 맞추어 현지에 도착하니 한 배를 타고 온 일행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급한 마음에 서둘러 출발을 하지만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으로 장사진을 이룬다.
완만한 경사에 철도 침목으로 길을 만들고 군데군데 돌 자갈을 깔아 산행에는 큰 불편이 없다. 출발이 늦은 만큼 일행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무리한 추월을 할 수밖에 없다. 5km지점인 사라 대피소를 1시간 에 통과하고 12시에 입산을 통제한다는 진달래 대피소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잠시도 속도를 늦출 수가 없다. 고도가 높아지며 경사도 심해지고 많은 눈이 쌓여 마음대로 속도가 붙지를 않는다. 겁에 질린 초보자들을 추월하며 11시에 진달래 대피소에 도착하며 먼저 출발한 일행들과 합류한다.
통제시간까지는 여유도 있고, 정상의 급변하는 날씨에 대비하여 아이젠과 털모자로 중무장을 하고 보니 시베리아의 극한 지방에서도 견딜 수 있는 완전 복장이다. 세찬 눈보라와 무릅까지 빠지는 눈구덩이 속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 의지가 타오르고, 진달래와 구상나무에 피어나는 설화는 실제로 보지 않고는 표현 할 수 없는 환상적인 설경이다.
천의 얼굴을 가진 한라산. 진달래 대피소를 지나며 몰아치던 눈보라도 1300고지를 넘어서며 어두운 터널을 빠져 나온 듯 쨍하고 햇볕이 비춘다. 방금 지나온 대피소가 구름 속에 숨어버리고 오로라의 역광처럼 반사되는 태양이 눈이 부시다. 티 없이 맑은 햇살아래 피어나는 설화와 조화를 이루는 설경. 겨울 산의 진수를 만끽하는 한라산 등산이야말로 금년 들어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의지보다는 실천하므로 그 즐거움이 배가된다. 하므로 百聞이 不如一見이라 하지 않던가.
설문대할망의 심술 때문인가? 얼어붙는 추위 속에 몰아치는 강풍. 계단을 오르기는 고사하고 중심을 잡기조차 힘이 든다. 여자와 바람. 돌이 많아 三多島라 부르는 제주를 실감 할 수 있는 현장이다. 점점 더 거세지는 바람을 가슴에 안고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한 계단 한 계단 정상을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너진다. 1,500m의 등고선을 지나며 추위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두꺼운 파카에 겹겹이 장갑을 끼고 뒤뚱거리며 백록담이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도착한다.
화구주위를 할퀴어 대는 강풍이 움푹 꺼진 백록담을 집어 삼킬 듯이 휘몰아치고, 건너편의 바위들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순간순간들이 자연의 신비함을 보여준다. 서귀포 쪽의 시가지가 구름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고, 푸른 바다와 초원지대, 눈꽃이 만발한 설화지대로 나누어진 모습은 제주도가 아니면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정상의 모습을 담기위해 곱은 손 호호 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다.
3년 전에 다년간 진달래 축제와는 또 다른 모습을 바라보며 계절에 따라 변화무쌍한 한라산을 보게 된다. 한라산은 화산이 분출하여 만들어진 산으로, 삼성혈에서 고을라, 양을라, 부을라, 삼씨 성의 시조가 태어나고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으로 부르는 영험한 산이다. 중국의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신하들을 보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을 만큼, 신비한 약초들과 아열대 지방의 식물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나무계단과 고무깔판으로 만든 등산로를 따라 왕관능 가는 북사면으로 들어서니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길 속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겨우내 쌓인 눈이 사람들의 발자국 따라 깊은 골이 되어 자연이 만들어낸 봅슬레이 코스가 펼쳐진다. 완만한 경사에 누워만 있어도 가속도가 붙고 미끄러지는 놀이동산의 슬로프에서 어린 시절의 즐거움을 만끽한다. 백록담의 북벽이 바라보이는 왕관능은 평평한 분지에 바람도 잠잠하여 휴식을 하며 식사를 할 수 있는 전망 좋은 쉼터다. 우리도 자리를 잡고 차에서 나누어준 도시락을 펼쳐 보니 싸늘하게 식었지만, 이것도 겨울산행의 추억이라 생각하고 모두들 맛있게 먹는다.
식사를 하는 중에 주위로 몰려드는 까마귀들.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먹다 남은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모여든 까마귀들이 청소부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말 못하는 동물들도 살기 위해서는 共生共存하는 지혜를 터득하게 된다는 이치를 보여준다. 한라산의 자연 정화에 한 몫을 하는 파수꾼과 다정한 친구가 되어 사진도 한 장 찍고 서둘러 자리를 뜬다.
왕관능에서 용진각 대피소로 내려오는 길은 한라산 등산로에서 가장 가파른 곳이다. 유리알처럼 반질반질한 비알 길에서 로프가 없다면 도저히 통과할 수 없는 구간이다. 한 겨울에는 직원들이 상주하지 않는 용진각 대피소. 굼주림과 추위에 지친 조난자들의 피난처인데, 보는 사람이 없다고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심지어 용변까지 보았으니 公衆道德이 실종된 한심한 일이 아닌가.
탐라계곡의 상류 지점인 용진각 대피소를 지나 하늘 높이 솟아오른 삼각봉(1,895m)아래 개미 목에 도착하면 넓은 분지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맑은 날에는 제주시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한 여름 온갖 야생화가 만발하는 지상의 낙원이지만, 지금은 모든 사물들이 눈 속에서 봄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동면기로 세찬 바람만 몰아친다.
개미등 등산로는 한라산을 넘으며 지친 몸을 어루만지고 피로를 회복 시켜주는 완만한 구간이다. 고도가 낮아지며 바람도 잔잔하고 따사로운 햇살에 얼었던 몸을 녹여준다. 두터운 외투도 벗어던지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변신을 하고보니 행동하는데도 훨씬 수월하다. 눈길을 헤치며 탐라 대피소까지 이어진다.
탐라계곡 대피소를 지나며 눈의 양도 적어지고 나무계단과 널찍하게 다져진 자갈길을 지난다. 혹독한 추위 속에 발 빠른 행보 탓인지, 일행들이 모두 뒤로 처지고 조용한 오솔길을 내려온다. 건천으로 변해버린 계곡에 용암이 흘러내리며 만들어 놓은 현무암의 아름다운 조형물을 감상하며 울창한 숲을 지나면 너른 광장이 나타나고 관음사 입구에 도착하며 오늘의 산행도 끝이 난다.
성판악에서 정상까지 9.6km 정상에서 관음사 주차장 까지 8.7km 도합 18.3km를 6시간 30분 만에 완주하였으니 겨울 산행으로는 대단한 기록이다. 아침에 우리가 탔던 1호차는 후미로 처진 일행들이 빽 산행을 하면 태우고 오기위해 성판악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백록담에서 13시가 넘으면 관음사 쪽으로 하산이 통제 되므로 빽 산행을 하게 된다. 17시가 되어 도착한 버스에 15명이 승차하고 있으니 30여명이나 되는 인원이 아직도 관음사 코스에서 하산중이라는 결론이다.
예정대로 라면 우리는 제주항으로 출발하고 후미그룹은 각자 항구로 찾아와야 하지만 그렇게는 할 수 없는 일이고, 3시간이라는 지루한 시간을 기다린 끝에 후미가 도착한 18시 20분 항구로 출발하여 19시에 출항하는 배에 승선한다. 산행 시간에는 큰 차이가 나지만 모두들 무사히 하산하여 한라산 눈꽃 축제를 성공적으로 마감한다. 출발 전에 걱정했던 일정을 무사히 소화했다는 자부심에 축배의 잔을 높이 들고, 멀어지는 제주항의 불빛이 가슴속에 포근히 안겨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