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와산 계간지.1

제 40 호 ( 시 와 산 )

김완묵 2007. 1. 11. 09:25
 

제 40 호

발행: 2003년 9월 17일



인연(因緣)


해맑은 웃음, 복사꽃 수줍음에

라일락 향기 그윽한 오월에 눈길이 마주쳐

두 손 꼬옥 잡고

저 넓은 초원을 함께 가자고

싱그러운 햇살

지저귀는 종달이 축복 받으며

앙증맞은 소꿉놀이 해 지는 줄 모르고


아담한 둥지에 새끼도 태어나고

배고프다 짹짹, 놀아 달라 짹짹

보금자리 지키기에 혼신을 다하고

쨍하고 햇볕이 비처 올 때면

당신의 무릎 베고 하늘을 보고

희, 노, 애, 락 가락 속에 단꿈을 꾸며


새끼들 하나둘 제 갈 길로 떠나고

공허로운 둥지에 다시 시작하는 소꿉놀이

눈빛만 보아도 숨소리만 들어도

당신의 텔레파시 온몸으로 받으며

안온한 눈길로 초원을 향하여

두 손 꼬옥 잡고 걸어갑니다.

여 보 사랑해요. 행복해요. 고마워요.


민초들의 삶


작은 키에

연약한 몸매

거센 비바람에

온몸이 쓸려도

바위틈에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수천수만 년을

용케 버티며

유순하게 길들여진

달마산의 억새여


앙칼지게 대거리하는

구상나무는

날카로운 가시로

무장을 해도

수 백 년을 못가서

사그라들고

단단한 바위도

산산이 부서지건만

앙상한 대궁에

가냘픈 몸매로

시류와 타협하는

달마산의 억새여



내소사 가는 길


탐스런 왕 벚꽃

안개비에 흩날리고

전 나무 숲 길 따라

일주문을 들어서니

천년 고목 고운 자태

돌담장 푸른 이끼


추녀 끝 서까래

완자무늬 꽃 창살

무심한 세월 따라

겹겹이 고운 옷

벗어 버리고

소박한 모습으로

미소 지으며


곰소만의 높새바람

관음봉을 넘어 오면

연분홍 진달래

마중 나오고

채석강에 지는 해는

나그네의 가슴에

모닥불을 지핀다.



보길도 격자봉(430m)에 올라서


장마가 시작 되려는가?

잔뜩 흐린 날씨에 동대문 운동장 맞은편의 밀레오레는 야심한 시각이지만 불야성을 이루며 흥청대는 인파로 풍요로운 우리의 삶을 실감하며 300여 년 전의 발자취를 따라 남쪽나라 보길도로 향한다.


하나 둘, 대기하고 있는 버스로 모여드는 일행들의 표정이 어두운 것은 날씨 탓으로 그나마 양재동에서 합승을 하고 보니 썰렁하던 분위기도 무르익어가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버스의 마찰음이 귓전을 스치며 소등된 실내는 불편한 자리지만 숨소리도 멎어버린 듯 조용한 분위기속에 토끼잠을 청해본다.


무박 산행이라면 기본이 2-30km를 달려가는 장거리 산행의 중압감에 긴장도 되고 초조하여 불안하지만 오늘의 무박은 여행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리는ꡒ님 도 보고 뽕도 따는ꡓ관광을 하는 개념이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널찍한 의자에 몸을 부리고 환상의 세계로 달려간다.


선잠 속에 함평 휴게소에 내려 하늘을 보니 휘영청 밝은 보름달이 온 누리를 비추며 가슴속의 먹장구름을 날려버리고 모두들 함박웃음이 피어난다. 하지만 간사한 것이 인간의 속성인지라 남창 휴게소 에서 바라본 하늘은 검은 먹구름이 휘감고 달마산 정상에 걸린 구름이 가슴을 짓 누루며 착잡한 마음으로 체념을 하게 된다.


잠시 후 땅 끝 마을에 도착하여 사자봉 전망대로 오르는 도중 수평선 너머로 엷은 안개 속을 비집고 붉은 태양이 솟아오르며 서서히 맑게 개이고 있다. 사자봉 정상에서 지르는 함성은 신이 보내주시는 선물의 화답이고 보길도로 떠나는 마음의 표시이다.


7시 정각

토말리를 떠난 여객선은 넓은 호수 위를 미끄러지듯 달려가고 주위에 펼쳐지는 섬들은 육지의 산줄기가 그대로 이어진 듯 방향감각을 잃은 채, 물길 따라 펼쳐지는 다도해 청정해역의 전복 양식장, 어민들의 생활 터전으로 반듯반듯하게 정비되어 있는 모습이 평화롭고 풍요롭게 보이지만 어민들의 애환이 녹아 있으니...........


값싼 중국산이 무차별 수입이 되고 생산비도 못되는 수확으로 어민들의 주름살이 늘어가는 고통을 어찌 우리가 실감 할 수 있으랴?


보길도는 완도군 보길면으로 땅 끝 마을에서 12km, 완도에서 32km 거리에 있고 남북의 거리가 12km 동서의 폭이 8km 해안선의 길이가 52km에 이르는 전국에서 22번째로 큰 섬으로

인구는 3.500명에 연평균 기온이 17도의 아열대성 기후로 700여종의 식물이 분포되어 있으며 90% 이상이 상록 수림으로 사시사철 푸르름을 간직하고, 2개의 유인도와 11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안 일주 도로가 개설 되어 3대의 군내 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이웃에 있는 노화도는 읍 소재지로 생활의 중심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교량공사가 한창이니 머지않아 두 섬이 하나가 되어 명소로 각광을 받게 될 것이다.


보길도라면 무엇보다도 고산 윤선도를 떠 올리게 되고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로 대표되는 곳이다. 1시간 만에 청별 나루에 도착한 우리는 싱그러운 갯바람을 맞으며 군내 버스를 타고 예송리 해수욕장으로 향한다.


동남쪽으로 5km 지점에 위치한 해수욕장은 통리 해수욕장을 지나 고개 마루에 올라서면 선경의 세계에 들어온 듯 청정해안이 그림같이 펼쳐지는데 천연 기념물 40호로 지정 되어있는 방풍림은 해안을 따라 740여 m나 숲을 이루고 있는데 수고가 20~15m로 해풍을 막아주는 울타리가 되어 평화로운 보금자리를 만들고 편백나무, 팽나무, 동백나무, 후박마무,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며 깻돌이 깔려있는 해수욕장은 청정해역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사르르 사르르 돌 구르는 소리가 세파에 찌든 때를 씻어주는 청량감으로 보길도가 자랑하는 제일의 명소이다.


양지바른 언덕아래 자리 잡은 예송리는 이곳의 특산물인 톳 말리기에 한창으로 그 너른 공터에 온통 톳으로 널려 있어 이색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마을 안길을 돌아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울창한 오솔길로 접어드니 햇볕도 들지 못하고 바람마저 숨을 죽이는 난대성 식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비지땀이 줄줄 흘러내린다.


가파른 계곡을 20여 분간 올라서니 전망 좋은 암릉이 나타나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해풍에 밀려 포말을 일으키는 짙푸른 바다. 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섬들이 수반위에 빗어 놓은 아름다운 산수화로 살아 움직이며 긴 꼬리 물보라를 일으키며 질주하는 여객선, 일터로 향하는 어선들의 활기찬 모습이 가슴속을 시원하게 쓸어내린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시야는 넓어지고 맑은 날에는 한라산이 보인다지만 그런 행운을 어찌 다 바랄수가 있는가?  가장 전망이 좋다는 수리봉을 지나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삼림욕을 즐기며

정상인 격자봉에 올라서니 무성한 숲 속에 포로가 되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수림 속에 갓치고 만다.


허허로운 웃음 속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서둘러 하산 길로 접어드는데 급경사 너덜지대에 음습한 기운이 감돌며 물기 머금은 낙엽 밑으로 깔려있는 낙석을 피해 안간 힘을 쓰며 전전 긍긍한다. 아슬아슬 한 곡예를 하며 30여 분을 내려오니 그 울창한 밀림도 한 발 물러서고 산줄기가 연꽃을 닮았다 하여 불리고 있는 수 만평의 분지위에 부용동 마을이 나타난다.


이곳이 그 유명한 윤선도의 왕국인데 그의 나이 51세이던 해에 병자호란으로 인조가 청나라에 삼전도의 치욕을 당하는데 분개하여 벼슬도 버리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의 산세가 너무도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 머물며 초당을 짓고 후학을 기르며 13년간 생활 하던 곳으로 어부사시사는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춘, 하, 추, 동 사계절로 나누어 초, 중, 장, 으로 짓고 계절마다 10편씩 40수를 지었으니 그 당시 어려운 한문이 주류를 이루었지만 일반 서민들이 알기 쉽게 한글로 지었다는데 큰 가치가 있다고 한다.


가장 먼저 낙서재로 발길을 돌리지만 무상한 세월 속에 기거하던 초옥은 허물어지고 주춧돌만 남아 아쉬움을 더하고 길 건너 그의 아들이 살았다는 곡수당도 잡초만 무성한데 복원을 위한 발굴 작업이 한창이라 그나마 위안이 된다.


낙서재 맞은편으로 개울 건너 산 중턱에 동천석실이 노송의 그늘아래 그림같이 자리 잡고 있어 가파른 계단 길을 힘들게 오르고 보니 한 평 남짓한 정자가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부용동 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부드러운 곡선의 격자봉이 사람의 마음을 포근히  감싸주는 선경으로 이곳에서 어부사시사가 태어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부용동의 백미는 그 분의 걸작품인 세연정. 버스로 5분 거리에 있는 세연정은 조선 시대 정원의 진수로 흐르는 개울물을 판석보로 막아 물길을 돌리고 그 물이 세연정의 연못을 거쳐 흘러내리므로 명경지수와 같은 맑은 물이 넘쳐흐르며 수 백 년 된 노송의 그늘 아래 정자를 짓고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고 듬성듬성 바위를 배열하여 안정감을 주고 주위로 동백나무와 대나무가 자연스럽게 자라며 산새 지저귀는 야산을 배경으로 산수화를 그려내고 있다.


경내에는 근년에 세운 어부사시사의 노래비가 있어 그동안 말로만 들어오던 가사를 직접 대하고 고산 윤선도 그분의 생을 되돌아보며 일석삼조의 문화 체험을 하게 된 것을 보람 있게 생각한다.


사실상의 일정은 마무리 되었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청별 나루 부둣가 식당에서 다리쉼하며 배 시간에 맞추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밥 한술에 소주 한잔, 3분 식사로 허기를 채우고 오후 1시 뱃전에 올라 뒤 돌아보는 보길도는 정다운 벗이 되어 다시 오라 손짓한다. 


* 문인으로 등단한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