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북풍한설 몰아치는 소백의 대간길

김완묵 2007. 1. 9. 05:51

 

북풍한설 몰아치는 소백의 대간 길

국망봉 (1,420m),  상월봉 (1,394m)


산 행 일: 2007년 1월 6일  11시 - 18시     산행시간 : 7시간 

소 재 지: 충북 - 단양군, 경북 - 영주시    날 씨 : 북풍한설,  악천후   인원: 37명

산행거리 : 약 19km ( 마루금 -11km , 접속로 8km)  뫼솔 산악회  , 회비 ; 25,000원

 

 

소한 추위 앞세우고 폭설이 쏟아지니 고속도로 달려가는 버스도 질 겁을 하고구름사이로 태양이 숨바꼭질을 하는 가운데 죽령터널을 지나면 경상도 영주지경으로 풍기읍내 나들목을 빠져 나와 915번 도로를 따라 순흥면과 단산면을 두루 거치며 북쪽으로 솟아 오른 소백산이 유순하고 부드러워 만만하게 보인다.

 

 


겨울산행의 진수라면 소백산이 으뜸이라 백두대간 종주 길에 건너뛴 곳이 국망봉 - 고치령 구간으로 겨울이 오기만을 기다리다 정해년의 산길을 여는 길라잡이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고치령을 들머리로 하는 팀들이 필수적으로 이용하는 용달차(1회 사용료 30,000원)는 좌석리에서 5km가 넘는 구비 길에 시간을 벌기위한 방편으로, 지난밤에 내린 눈으로 대못으로 징까지 박은 후에야 화물칸에 짐짝 실리듯 엉덩이를 비벼대며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10시 30분)

 

 

 

 


아슬아슬한 곡예운전으로 고개 마루까지는 오르지 못하고 400여 m 못 미친 지점에서 하차하여 올라가는 것도 감지덕지로 눈발이 휘날리는 고치령에는 대간 길을 지키는 장승들과 산신각이 외롭게 졸고 있다. (11시)

 

 

 

 

남쪽으로 열리는 대간 길이 국망봉까지 11km의 짧은 편이지만 접속로가 8km에 이르고 동지섣달의 긴긴밤에 불순한 일기로 상황의 변화를 예측 할 수가 없어 곧 바로 815봉을 향해 급사면을 치고 오르며 안간힘을 쏟는다.

 

 

 


간간이 햇볕도 비추며 우리의 마음도 흐렸다 개였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가운데 30여분 만에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1,032봉에 올라 거세지는 눈보라를 피해 마스크와 털벙거지에 장갑도 한 켤레씩 더 끼고 덧 경까지 중무장을 하고 보니 우주인처럼 우수꽝 스러운 모습들 이지만 악천후를 이겨내는데 모양이 대수란 말인가?


잠시 후 형제봉 갈림길을 지나치는데 이곳부터 충북의 단양군과 경북의 영주시가 경계를 이루며 죽령을 지나 대간 길을 동행하게 되는 것이다. 무명봉을 넘어서면 잘루목이 안부에 마당치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영춘면의 남천리와 단산면의 좌석리는 두 마을의 거리가 멀어 왕래는 별로 없는 듯 보이고 대간길을 오르내리는 산 꾼들이 쉼터로 이용하는 곳으로 추측을 해본다. (12시 05분) 

 

 

다시 치솟는 무명봉.

사면 길에 쌓인 눈으로 넘기 힘든 고비길.

힘주어 내려찍는 스틱도 얼음 깔린 산길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미끄러지기 일수 이고 나무등결 부여잡고 씨름을 하다보니 발걸음이 무뎌지고 가까스로 올라선 1,031봉.

 

 

자신만만하던 기백은 어디로 가고 체력의 한계를 느끼며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어른들의 말씀이 조금도 허구가 아닌 듯 마음만 청춘이면 무얼 하나 속절없이 늙어가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인 것을. (12시 35분)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 앞산의 모습도 신기루처럼 가물거리지만 신이 빗어 놓은 설화는 앙상한 나뭇가지에 순백의 산호초로 피어나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환상적인 조형물 앞에 가던 길을 멈추고 셔터 누루기에 여념이 없다.


무릅까지 빠지는 눈 속에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북풍한설에 몸부림치며 고목의 꼭대기에서 자생하는 겨우살이가 길가에 널 부러져 (약용으로 특효가 있음) 탐이 나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처지에 어찌 손길이 미치겠는가?


아쉬움을 남 긴 채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눈발 속에 서있는 이정표가 반가워 달려가 보니 고치령 5.8km 국망봉 5.3km의 안내문으로 2시간 반이나 사력을 다해 걸어온 길이 절반밖에 안된다니 허탈감속에 앞으로 헤 처 가야할 길이 멀어만 보인다.

 

 

 

 


표시도 없는 헬기장.

바람도 잔잔한 공터에 자리를 잡고 민생고를 해결하기위한 잔치가 벌어지는데 홍어회에 겨울철의 별미인 과메기, 곁들이는 소주로 지친 몸을 달래주고 행동식으로 식사까지 마치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 (13시 30분.  식사시간 15분)

 

 

                  홍어회와 과메기 회를 향해 머리를 박고


일행들을 뒤로하고 서둘러 자리를 뜨지만 스틱을 잡은 손마디에 감각이 없어지고 발가락 까지 시려오니 불안한 마음에 탈출로도 없는 오지에서 불상사라도 생기면 어찌해야 할지 난감하기 그지없어 속도를 늦추며 마음을 진정시킨다.


오늘의 구간이 700여m의 고치령에서 1,420m의 국망봉까지 큰 기복도 없이 11km 에 걸쳐 완만한 오름길로,  봄, 가을이라면 수월하게 달려갈 구간이지만 많은 눈이 쌓인 탓에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물먹은 솜뭉치처럼 촌보도 내딛기 힘이 드는데 설상가상으로 앞서간 일행들의 발자취가 눈보라 속에 뭍 혀 버리고 질펀하게 펼쳐지는 설원위에서 난감하기 그지없다.

 

 

 


간간이 나타나는 구조요청 비목의 번호를 암기하며 눈길을 헤치는데 비로봉에서 출발을 했다는 종주팀을 만나 서로 격려를 하고 무운장구를 빌며 등로를 이탈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으로 새로운 용기를 갖고 쌓였다 없어지는 눈의 성을 수도 없이 넘나들며 작아진 그루터기의 가지에 이마를 얻어맞고 혼미하던 정신이 번쩍 든다.


오매불망 애타게 기다리던 늦은맥이 고개가 1 km 남았다는 이정표는 사막을 헤메다 오아시스를 문턱에 둔 기쁨이라고나 할까? 꺼 저 가는 등불이 되살아나는 반가움에 용기를 갖고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수월하게 다가오지를 않는다. 

 

 

 

 


삼년 전

소백산을 종주하며 구인사로 내려간 늦은맥이 고개는 깊은 눈 속에 잠들어 있고 신선봉 쪽으로는 한 겨울 내내 오간사람이 없는지 적막하기 그지없는데 주위를 분간 할 수 없는 악천후 속에서 사진 한 장으로 만족하며 서둘러 안부로 내려서니 어의곡리로 내려가는 길목에 많은 리본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다. (15시)

 

 

 

 


지척에 있는 상월봉의 모습은 여전히 베일 속에 가려있고 키 작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분지에는 거센 눈보라가 온몸을 날려버릴 듯 거세게 몰아치며 중무장한 자켓 속으로 파고드는데 품속에 간직한 카메라가 얼었는지 작동을 멈추고 만다.


앞서가는 일행이 우회로를 제쳐두고 굿이 상월봉의 암릉길을 택하는데 뒤 따르는 우리야 별수가 있나. 한 끈에 묶인 자반 신세 인 것을,

 

 

                                     산호초와 눈의 성


얼음이 깔린 바위 밑에서 아이젠을 착용하고 혼신의 힘을 다하여 정수리에 올라서니 전망 좋은 이곳도 주위를 분간할 수 없는 악천후의 포로가 되어 허망한 가슴 부여안고 국망봉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15시 45분)


바람아!  바람아!   칼바람아!

너의 위력이 얼마인지 헤아릴 길이 없다마는 60㎏의 가냘픈 이내몸을 사정없이 몰아치니 도대체 어쩌자는 것이냐?

 

 


천근만근 무너지는 몸을 추 수리며 나무계단을 딛고 올라선 국망봉에는 세찬 바람속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비로봉 까지 펼쳐지는 너른 분지도 악천후 속에  묻혀 버리니 허망하기 그지없고 뼈속까지 파고드는 한기를 참기가 어려워 서둘러 자리를 뜨고 만다. (16시)


비로봉 쪽으로 300 여m 를 진행하면 좌측으로 초암사 내려가는 이정표를 만날 수 있고 이제까지의 고생도 끝이 나고 하산길만 남았다는 안도감에 서둘러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서니 모진 광풍도 미치지 못하는 아늑하고 포근한 안식처로 천국이 따로 없다.

 

 


하지만 또 다른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50 ~ 60도의 급경사 에 유리알처럼 반들거리는 빙판길에서는 두 다리가 땅에 달라붙어 오금이 저려오는데 아이젠을 차고서도 방심할 수가 없고 한번 미끄러지는 날에는 계곡 아래로 곤두박질치기 십상이라 등허리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어둠이 계곡을 쓸어 덮고 악마의 소굴처럼 음산한 바람이 불어오는데 가까스로 내려선 봉두암 (석륜암터)의 너른 분지에는 근처에 우물도 있어 비박하기 알맞은 곳이라지만 초암사 까지 3,4km 의 길고긴 계곡이 우리의 한가로운 휴식을 용납하지 않는다. (16시 25분)


계곡으로 내려설수록 어둠의 그림자가 우리의 주위를 감싸는데 헤드램프를 켜야 할지 망설이는데 3명의 일행들이 묵묵히 발걸음만 재촉하고 있으니 가는데 까지 가보자는 심산으로 눈에서 발산되는 반사광으로 빙판길을 열어간다.


혹한 속에서도 등줄기가 후줄근하도록 내달리며 어둠이 짙어지기 전에 계곡을 빠져나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울창한 소나무와 낙엽송의 군락을 지나며 드디어 목마르게 기다리던 초암사에 도착을 한다. (17시 15분)


의상대사가 창건을 했다는 초암사도 요 근래 중창을 한 탓인지 산뜻하게 새 옷으로 갈아입고 대적광전을 비롯해 여러 채의 전각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둘러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아직도 주차장까지 3.4km가 남았다는 안내문을 보고는 기겁을 하여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을 헤집고 꽁지가 빠지도록 내달린다.


길옆으로는 그 유명한 죽계구곡의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지만 한가롭게 둘러볼 처지도 아니고 길고 긴 계곡을 따라 발끝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헤치며 내 뒤로 많은 일행들이 있다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으며 배점초등학교 입구의 주차장에 도착하며 험난한 산행도 마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18시)

 

 

                                   고치령 오름길


선두로 내려온 5~6명의 환영을 받으며 땀으로 얼룩진 옷을 갈아입고 뜨거운 국물에 밥 한술 말아 소주잔을 곁들이며 추위를 녹이는데 7시가 넘어도 후미가 도착을 하지 않으니 모두들 초조한 긴장 속에 지루한 시간만 흐르고 있다.


잠시 후

소식통에 의하면 일행 중에 한 명이 국망봉에서 길을 잃고 119에 구조 요청을 하여 중간에서 무전 연락을 받은 박대장이 봉두암에서 다시 국망봉으로 올라가 함께 하산하는 중이라니 모두들 숙연한 마음으로 무사귀환을 빌며 침묵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8시가 넘어서야 도착한 일행들은 파김치가 되어 목불인견이고 풍부한 산행 경력을 가진 그 였지만 오늘과 같이 악천후의 돌변 상황에서 체력안배에 실패하고 후미로 밀려났다는 초조감에 평상심을 잃고 방황을 하게 된 것이 원인으로 판단이 된다.


야심한 시각 서울에 도착하니 전철은 끊긴지 오래 이고 시청 앞에서 택시로 대학로 로 이동하여 심야버스로 도봉산역 앞까지 다시 택시를 타는 번거로움으로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 40분, 

 

주마등 같이 펼쳐지는 정해년의 첫 산행에서 많은 교훈을 얻으며 더욱더 겸손하고 세심한 준비로 산길을 열어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