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호 ( 시 와 산 )
제 38 호
발 행 일 : 2003년 2월 22일
산 책 - 북한산에서
화계사 층층 누각 불타의 힘이련 가
청아한 독경소리 계곡에 가득하고
낙엽 쌓인 오솔길에 청솔무가 분주하다.
약수터 아낙네들 웃음꽃이 만발하고
칼바위 능선에는 젊은 함성 넘치는데
백운대 올라서니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호각을 이루고
이 십리 성벽 따라 우뚝 솟은 연봉들
동장대 높이 올라 행 궁터 굽어보니
숙종 대왕 우국충정 혼이 서려 숨쉬는 곳
대서, 대남, 대성, 대동 ..........
열 네개 문을 열어 천연 요새 만들었네
환초의 섬 - 필리핀
이 십리 백사장에 금모래 은모래
천만년 세월 속에
알알이 부서진 진주와 산호
부서지는 파도에 산호섬 일구고
야자수 보듬어 뿌리 내리고
그림 같은 방가로 남국의 정취
영롱한 쪽빛 바다에 고기 반 물 반이라
작렬하는 바다위에 배를 띄우고
무성한 산호 숲에 낚시 줄 드리우니
진동가리, 청줄돔, 잔크러스
미끼만 받아먹고 줄행랑 치네
감질 나는 낚시질 뱃전에 걸어놓고
검푸른 물속으로 몸을 던지니
산호초 신호 따라 열대어가 춤을 추고
불가사리 두 팔 벌려 달려 나오네
어설픈 자맥질에 물 한 모금 마시고
살길 찾아 네 활개로 뱃전에 올라오니
눈물, 콧물 범벅되어 정신이 몽롱하다.
야자수 그늘아래 생선 바비큐
난생 처음 보는 이 맛 다시 볼 수 있을까?
탐스런 바다가재 큼직한 붉은 대계
속살이 통통하여 입속에서 녹아들고
양주 중에 으뜸인 소주가 감칠맛을 더한다.
붉게 타는 석양 노을 황금빛 출렁이면
사랑 노래 부르며 거니는 백사장
야자수 그늘에서 진한 입맞춤
남십자성 바라보며 우리의 영혼 날아오른다.
2002년 12월 15일 보라카이 해변에서
계미년의 새 아침
꼭두새벽 산길을 오릅니다.
계곡물도 얼음장 밑으로 숨어 버리고
매서운 바람 귓불을 때려도
별빛 쏟아지는 회룡골
거친 호흡 불어내며
더듬더듬 산길을 오릅니다.
포대능선 오르는 불빛 꼬리를 물고
저마다 간절한 소망을 간직 한 채
첨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에
계미년의 숱한 사연 잉태하며
만장봉, 선인봉, 무명봉에도
수천수만 송이 불꽃으로 피어나
솟아오르는 용광로 속으로 용해되어
뜨거운 열기로 몸을 사르며
봉화대 징검다리 하늘 끝까지
무지개다리 타고
무사 무탈 하게 하여 주소서.
산행 수필 - 함백산(1,572m)에 핀 설화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성스러운 곳
하얀 눈 함빡 뒤집어쓰고 우뚝 솟아오른 그 곳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영험한 기운이 서려 있기에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설화 속으로 몸을 내던진다.
태백산의 명성에 가려 찾아오는 발걸음이 뜸하다보니 자연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곳이지만 속살을 살짝 들여다보면 70년대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되었던 석탄의 보고로 후미진 산골에 철로가 놓이고 산 비알에는 전국각지에서 모여든 탄광의 식구들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던 곳이다.
하지만 세월의 흐름 속에 에너지 정책이 바뀌면서 버려진 탄광에는 찬바람만 불어오고 천덕꾸러기가 되었던 산간 마을이 카지노로 대표되는 강원 랜드가 들어서며 활기를 되찾고 있다.
궁벽한 산 비알에 현대식으로 건설되는 건축물.
스키장과 골프장까지 완공이 된다면 다시 한번 그 옛날의 영화를 누리게 될지 기대해 볼만하다.
남한에서 7번째로 높은 함백산은 강원도의 산간오지에 교통이 불편하여 개인적으로는 많은 제약을 받기 때문에 찾아오기가 어려운 형편이라 산악회와 동행을 해야 하지만 그 또한 여의치 않아 애를 태우다 백두 산악회와 연결이 되어 만사 접어두고 집을 나섰다.
전국적으로 눈이 내리고 있는 와중에 태백산 눈꽃 축제로 차량들이 꼬리를 물고 영월 땅으로 몰려들고 도로가 빙판길이 되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는데 이러다가 산에도 오르지 못하고 되돌아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바심으로 애간장이 녹아내린다.
그래도 기사의 노련한 운전솜씨로 아슬아슬한 곡예를 하며 천년사찰인 정암사를 지나게 되는데
1300여 년 전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의 계시에 따라 큰 구렁이를 ?아내고 절을 짓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는데 울창한 송림 속에 자리 잡은 적멸보궁을 직접 둘러보지는 못하고 차창 너머에서 바라보며 아쉬움을 남긴다.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개로(1,280m) 가슴을 조리는 곡예 운전으로 많은 시간이 지체된 가운데 무사히 고개 마루에 도착을 한다. (12시 10분)
겨우내 쌓인 눈으로 철쭉나무와 물푸레나무의 절반은 눈 속에 뭍이고 잔가지들만이 고개를 내밀고 포근한 날씨에 바람까지 잠잠하여 서둘러 산행 길에 나선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구덩이 속에서 빼 꼼이 틔워진 길을 따라 전국에서 몰려든 수백 명의 행렬이 느림보 걸음을 하고 있으니 가뜩이나 늦은 시간에 싸리재 까지 언제 넘을지 답답하고 초조한 마음에 조바심이 인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바람도 거세지고 온몸이 얼어붙는 강추위 속에 하나둘 추월을 하며 정상으로 향하는데 키 작은 잡목들이 북풍한설에 모진 목숨 이어가는 애절함에 목 놓아 슬피 울어대지만 오뉴월 호시절이 돌아오면 기화요초가 피어나는 천상의 화원에서 벌 나비를 불러 모으는 화려한 축제가 펼쳐질 것이니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과유불급(過猶不及) 이라는 말이 실감나게 흰눈이 소복이 쌓인 광야를 걸어가는 모습이야 평화로워 보이지만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구덩이 속에서 엎어지고 자빠지는 괴로움은 실제로 당해보지 않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는가?
가까스로 정상에 올라섰지만 세차게 불어오는 눈보라는 주위를 온통 집어 삼키고 체감온도 영하 20여도의 맹추위는 빼 꼼이 틔워진 눈 속을 후벼 파는 칼바람이 불어오고 양주 한잔으로 몸을 녹이며 발 거음을 재촉한다.
비몽사몽간에 정상을 지나 안부에 내려서서 몸을 추수려 보지만 매서운 추위 속에 카메라의 건전지도 얼어버리고 온몸에는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리는 설화가 꽃을 피우지만 어제는 태백에서 오늘은 함백으로 풍운아의 발걸음은 백두대간 고산준령을 넘나들지 않는가?
중 함백으로 내려서는 비알 길에서 히프스키로 미끄러지는 즐거움을 맛보며 설화로 피어나는 구상목의 화려한 자태는 꿈속에서나 만나보는 환상의 세계를 연출한다.
거센 눈보라 속에서도 포근한 솜이불을 둘러쓰고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있는 산죽의 푸른 잎은 독야청청 고운 자태를 뽐내고 싸리재에서 올라오는 안면 있는 산객들이 반가워 두 팔 벌려 환호하며 정암사로 내려가는 쉼터에 도착한다.
헬기장을 겸하고 있는 은대봉에 올라서니 백건 산악회에서 달아놓은 손 바닥만한 안내표지에 싸리재가 지척에 있다는 확인으로 어렵고 힘든 고비 길을 용케도 지나왔다는 안도감으로 새로운 용기를 얻어 급사면 비알 길을 내려선다.
드디어 싸리재
고한에서 태백으로 넘어가는 38번 지방 도로인 이고개의 표고가 1,268m로 웬만한 산들의 정수리보다도 높아 초겨울 눈이 한번 내리면 삼동이 다가도록 교통이 두절되는 교통의 사각지대로 수년전 두문동 터널이 개통된 뒤로는 인적이 끊긴 적막강산에 제설작업도 없이 허리까지 차오르는 눈으로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4km가넘는 2차선 포장길에 허벅지 까지 빠지는 눈 속을 헤치며 두문동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은 허공을 내딛는 무력함으로 아득하게 멀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