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시와산 계간지.1

제 36 호 ( 시 와 산 )

김완묵 2006. 11. 28. 06:08
 

제 36 호

발 행 일 : 2002년 8월 25일



두위봉의 철쭉

소 재 지 : 강원도 정선군


                        연분홍빛 사랑의

                        사연을 안고

                        님 그리는 애절함을

                        가눌 길 없어

                        양지 바른 산언덕에

                        살포시 앉아

                        바람결에 님 소식 기다립니다.


                        오월이면 온다던

                        그 약속 허사가 되고

                        매정한 비바람에

                        꽃잎마저 떨어지니

                        아라리의 슬픈 가락

                        강물 따라 흐릅니다.



                           나 홀로 가는 길

                     소 재 지 :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신로봉 오르는 길 평화로운 길

                    앞서가는 사람 없어 약 오르지 않고

                    뒤처지는 사람 없어 기다리지 않아 좋고

                    마주 오는 사람 없어 비켜 줄 일 없고

                    훠이 훠이 자유로운 몸짓으로 산길을 가네


                    가리산 오르는 길 줄거운 길

                    다래넝쿨 칡넝쿨 앞을 가려도

                    쪽박새 울음소리 애처로워도

                    단풍나무 사이로 파고드는 햇볕이 좋아

                    콧노래 흥얼대며 산길을 가네


                    심장의 박동소리 폭포수 되어

                    몸속의 찌꺼기 쏟아 버리고

                    민들레의 홀씨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하늘과 맞닿은 정상에 오르면

                    천상의 화원에는 얼레지 꽃 만발하고

                    흥겨운 어깨춤이 절로 나오네



                            동 남 풍

                        소 재 지 : 중국의 황산


                              백보운제 넘은 미풍

                         광명정에 당도하여

                         장풍을 쏟아내니

                         합장봉 덮은 운무

                         혼비백산 달아나고

                         마환경구 침봉들이

                         기치창검 높이 들고

                         이방인에 달려드니

                         간담이 서늘하고

                         오금이 저려오네


                         조물주가 만든 선물

                         한 곳에 모두 모아

                         만물상을 빚어내니

                         수백 장 기암절벽

                         천년 노송 어우러져

                         신비감을 더해주네


                 백보운제: 황산의 제일봉인 연화봉에서 광명정으로 오르는 주능선

                 광 명 정: 황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봉우리

                 마환경구: 황산 제일의 비경

                        


           테 마 시

                                    하     산


                      아득히 올려다 보이는

                         정상에 오르면 일망무제로

                         삼라만상이 발아래 조아리고

                         천상천하 유아독존

                         안하무인으로 군림하며

                         

                         그 곳이 탐이 나서

                         내려올 줄 모르고

                         눈과 귀를 막고서

                         미련을 부리다가

                         천길 벼랑으로 떨어지니

                         뒤 늦은 후회로 탄식을 하며

                         다섯 자 이내몸을

                         의지할 곳 없으니


                         무지랭이 민초들이야

                         오를 힘도 없지만

                         떨어질 염려 없으니

                         무슨 걱정 있으랴.



                  산행수필   -   황산에 부는 바람


천하제일 황산을 찾아가는 우리의 마음은 창공을 날고 있는 비행기보다도 더욱 부풀어 오르고 미투리 산악회원 17명은 상해를 경유하여 안휘성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황산 시 에서 첫날밤을 보내고 버스로 1시간 30분 만에 온천지구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다리 건너 기암절벽 사이로 노송이 어우러지고 그 밑으로 온천 호텔이 그림같이 자라잡고 있어 감탄을 연발하며 카메라를 꺼내드니 시작에 불과한 곳이니 필름 허비하지 말고 빨리 따라 오란다.


온천 지구를 지나 대나무 숲에는 밤사이 내린 비로 죽순이 삐죽삐죽 솟아 오른 모습이 신기하며 가파른 계단을 20여 분간 올라가니 자광사의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데 장엄한 대웅전과 많은 인파들 속에서 잠시 휴식을 한 뒤 곧바로 케불카 타는 곳으로 이동을 한다.


6인용 케불카가 스키장의 곤돌라와 같이 계속 돌아가고 있어 짝을 지어 탑승을 하고 옥병루를 향해 올라갈 때 주위에 펼쳐지는 경관은 말로 표현 할 수 없는 환상적인 모습으로 아슬아슬한 벼랑 사이로 계단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파고드는 운해는 우리를 신비의 세계로 인도한다.


10여분 만에 케불카 에서 내려서니 주위가 온통 운해로 뒤덮이고 모두들 어안이 벙벙하여 땡감 씹은 표정들이다. 검연쩍은 가이드는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니 다행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운해가 없어지니 옥병루로 가자며 재촉을 한다.


십삼만 개나 된다는 좁은 계단은 끝이 없이 이어지고 양복에다 구두까지 온갖 치장으로 한 � 모양을 내고 땀을 뻘뻘 흘리는 중국 사람들의 모습, 게다가 힘이 달리는 사람들은 가마에 올라 남의 힘을 빌리며 거들먹거리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우리 17명의 멋들어진 등산복 차림이 오히려 신기한 듯 저희들 끼리 수군거린다.

그 유명한 옥병루에 올라서니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주는 것은 기암절벽에 깊숙이 뿌리를 박고 1,300여 년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영객송.


운무가 앞을 가려 희미한 모습이지만 황산의 상징으로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을 하였으니 어찌 반갑지 않으리오. 안타까운 모습으로 기다려 보지만 운무는 더욱 짙어지고 아쉬움 속에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빌 길을 돌릴 적에 송객송이 다소곳이 고개 숙이며 이 다음에 다시 오라 손짓을 한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풍류시인 묵객들이 하는 일이란 바위에 글씨쓰기.

경관 좋은 바위마다 깊숙이 후벼 파고 사람들의 눈에 잘 뜨이라고 붉은 색으로 칠을 하였으니 어찌 보면 멋들어진 글귀로 자손만대에 전해줄 유물로 보이지만 자연을 훼손하는 볼썽사나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연화봉으로 오르는 길은 험난한 길.

수 백길 낭떠러지 벼랑사이로 계단을 만들어 운무 사이로 드러나는 계곡은 끝이 없고 음산한 바람이 불어올 때마다 간담이 서늘해지고 오금이 저려온다. 심술 사나운 운무는 우리 주위를 맴돌고 힘들게 올라온 연화봉 정상(1,864m).


시선이 머무는 곳은 우윳빛 허공뿐.

안타까운 마음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 사진 찍고, 고함을 지르고 좁은 공간에서 부산스러움 속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지리산의 세석평전을 걷는 기분으로 백보운제의 넓은 분지를 걷다보니 백운 호텔을 지나게 되고 황산에서 세 번째로 높은 광명정(1,860m)에 올라섰지만 고향의 뒷동산에 오른 듯 고도감을 느낄 수가  없다.


백보운제에서 불어오는 동남풍이 광명정에서 일진광풍으로 변하며 장풍을 쏟아내니 합장봉 계곡의 운무가 혼비백산 흩어지며 숨겨진 보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니 이럴 수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함성을 지르며 화들짝 놀란 눈이 화등잔만 해지고 손가락으로 가리킨 마 환 경구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된다.


그러면 그렇지 저런 비경을 쉽사리 보여 줄 리가 있는가?

갖은 애간장 다 녹이다 깜짝쇼를 연출하다니.

수많은 침봉들이 수 만 가지 형상으로 다가오니 우리의 발걸음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신 바람난 가이드는 수다를 떨며 점심시간 늦는다고 성화를 부린다.


무거웠던 발걸음에 힘이 절로 솟아오르고 아리랑 타령이 절로 나며 서해반점에 도착하니 푸짐한 점심상이 식욕을 돋우고 곁들이는 고량주가 찬하제일이라 든든하게 배도 채우고 무거운 배낭은 식당에 맡기고 가벼운 차림으로 마환경구 관광길에 나선다.


배운정 호텔을 지나며 시작되는 마환경구 관광 길은 조물주가 빗어 놓은 걸작품으로 이 세상 어느 곳에 이런 곳이 또 있는가?


금강산이 이럴까?  설악산이 이럴까?


신비의 세계로 빠져들며 자연의 신비에 인간이 만든 조형물이 접목 되었으니 가파른 벼랑에 계단을 만들고 터널을 뚫어 아름다운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요소요소에 전망대를 만들어 아슬아슬한 다리를 건널 때는 가슴이 떨리는 스릴도 맛볼 수 있고 미로 속을 헤매는 계단은 암 봉의 요소요소를 파고들며 끝 간 데 없이 이어진다.


건너편의 비래석이 벼랑 끝에 걸려있고 오전에 우리는 그곳에서 소리높이 고함을 질러 보았지 사방을 둘러봐도 침봉의 연속으로 만 가지 이름을 지어도 남을 만큼 우리의 눈을 황홀하게 하고 환상의 세계에서 헤매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든다.


깃털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해반점에 돌아와 짐정리를 하고 북해 호텔 가는 길에 서하객이 지은 등 황산 천하 무산(登 黃 山 天 下 無 山)이 실감이 난다.


등소평이 묵었다는 북해호텔

1,500m의 산중에 별 4개의 호텔이라면 특급이 아닌가?

335호실에 여장을 풀고 낙조를 볼 수 있겠다는 설 레임으로 정원으로 나와 서쪽 하늘을 바라보지만 서산마루에 걸린 태양은 이내 구름 사이로 모습을 감추고 어두운 그림자가 우리의 주위를 감싼다.


다음날 새벽 동녘하늘이 붉게 물들며 금방이라도 태양이 솟아오를 듯 조바심 속에 마음이 급해진다. 청량대에 올라서니 사방이 환하게 밝아오며 나한봉 사이로 태양이 살포시 고개를 내민다.


우리 모두 함성을 지르며 초조하게 기다리지만 구름이 태양을 삼켜 버리고 회색빛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다 잡은 보물을 도둑맞은 기분으로 허탈한 마음으로 내려오다 21세기 종을 관람하고 서광정을 경유하여 호텔로 돌아와도 식사 시간까지는 2시간이나 남아 있어 어제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한 광명정으로 향했다.

꿈에도 그리던 연화봉과 옥병루, 천도봉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다가오고 어제 우리가 사진 찍고 고함지르던 정상이 뾰족한 암봉으로 아슬아슬하게 바라보이고 기암절벽위에 소나무와 어우러져 날렵하게 올라앉은  옥병루,  산수화의 진수를 보여 주는 듯 황홀하기 그지없다.


비래석에서 바라보는 마환경구는 우리가 어제 직접 오르내렸던 곳이라 더욱 애착심이 가고 언제 또 만나게 될지 아쉬움 속에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는다.


아쉬운 이별 속에 황산도 눈물을 보이고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호텔로 돌아오니 7시50분, 즐거운 식사를 한 다음 10시 30분까지 달콤한 휴식을 보내고 현관으로 내려오니 비바람이 불어오는 악천후로 우리의 발목을 잡지만 우비로 완전무장을 하고 등소평이 몸소 올라 아름다움에 반했다는 시신봉(1,668m)으로 향한다.


비바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제갈량의 팔진법.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깃발의 신호에 따라 변화무쌍한 운무의 춤사위는 기암절벽과 계곡의 품속으로 파고들며 형형색색으로 조화를 부리는 신기의 마술에 혼마저 빼앗기고 정지된 시간 속으로 빠져든다.


건너편의 흑호송

모든 나무들이 울울 창창 복록을 누리고 있건만 너는 어이하여 벌거벗은 모습으로 벼랑의 한구석에서 벌을 받고 있느냐? 1,300여년이나 구제 받지 못하고 유네스코 명부에 까지 올랐다니 한심하고 한심하다.


12억의 인구에 한반도의 50배가 넘는 면적을 가지고도 소소한 나무 한그루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가지가 56개로 뻗어 있다하여 단결 송으로 명명을 하고 벼락을 맞아 검게 그 슬린 검은 소나무를 흑 호송이라 하여 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을 하는 것을 볼 때

귀중한 유산을 대수롭게 지나치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점점 거세지는 비바람을 피해 종종 걸음을 치다보니 어느새 백아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황산의 관광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되고 어제 12km 오늘 10km(케불카 포함)를 걸으며 장님 코끼리 만지는 식으로 웅장한 황산의 일부분만 보고서도 황홀감에 몸 둘 바를 모르니 무한한 중국의 잠재력에 다시 한번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