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호 ( 시 와 산 )
제 30 호
발 행 일: 2001년 2월 24일
산행수필 - 지리산 당일종주
소 재 지: 경남 - 산청군, 하동군, 함양군 전북 - 남원시 전남 - 구례군
지리산은 3개도 5개군 16개면에 걸쳐 자리 잡고 있는 우리나라 국립공원 중에서 면적이 가장 큰 민족의 영산으로 동쪽의 천왕봉을 중심으로 서쪽의 반야봉까지 장대한 산맥을 이루며 1500m이상의 고봉이 16개나 되는 웅장한 산새를 자랑하며 백두대간의 남쪽 시발점으로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33km, 중산리까지 7km를 합해 장장 40km에 달하는 장거리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1박2일로 종주를 하고 있지만 요즘 들어 백두대간을 시작하는 이벤트행사로 몇몇 산악회에서 당일종주를 시도하고 있는데 나름대로 등산에 자신을 갖지 않고는 도전 할 수없는 마라톤 코스에 버금가는 험난한 철인 경기라 할 수 있겠다.
국내의 웬만한 종주코스는 거의 경험을 갖게 되고 지리산 당일종주라는 새로운 목표가 정해�을 때, 힘에 벅차다는 것을 알면서 도전해 보겠다는 욕망이 가슴속 깊이 자리 잡으며 결전의 순간에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10여일 전부터는 무리한 운동도 자제하며 절제된 생활로 종주코스의 난이도와 예상시간표까지도 자세하게 점검하며 13시간대에 완주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까지 마련하였다.
2000.11.11. 21시
스산한 초겨울의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며 가로수의 은행나무 잎들도 낙엽이 되어 땅위로 뒹굴고 귀가 길을 재촉하는 이들의 분주한 발걸음을 뒤로하고 잠실 종합운동장역 2번 출구에서 대기하고 있는 한솔관광버스에 오르니 박종철 대장이 반갑게 맞아주고 출발 시간이 되어 주위를 살펴보니 30~40대가 주축을 이루며, 최고령자는 65세로 노익장을 자랑하며 어림잡아 3번째는 되는 듯(57세) 싶으니 긴장이 더 될 수밖에 그 중에는 여자도 4명이나 포함되어 있다.
오늘의 이 순간을 위해 한 달 전에는 지리산의 심메마니 능선으로 반야봉에 올라 피아골을 연결하는 종주(9시간)코스도 다녀오고 강천산으로 민둥산으로 다니며 체력단련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은 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여전하다.
박대장의 인사말이 동대문에서 내 노라 하는 분들이 모두 모였으니 성공적으로 모두 완주 할 것으로 믿으며 시속 4km의 속도를 유지 해야만 완주가 가능하며 예정시간에 미달되면 세석산장에서 거림으로 중도 하산할 수밖에 없다는 주의사항과 5분이상의 휴식은 삼가해야하며 연하천 산장까지 4시간30분, 세석산장까지 8시간30분이 예정된 시간으로 자세한 설명이 계속된다.
소등된 버스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선잠을 청해보지만 천리만리 달아나고 주마등 같이 스쳐가는 상념 속에 부질없는 행동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나 아닌가 하는 초조한 마음으로 후회도 해 보지만 어렵고 힘든 고비를 넘기고 정상에 오를 수만 있다면 새로운 인생의 활력소가 되어 젊음을 보장 할 수 있고 하면 된다는 자신감과 자아실현의 성취감으로 활기 넘치는 상상의 나래를 펴며 심야의 고속도로를 질주한다.
지리산 휴게소에서 야간산행에 필요한 물품을 점검하고 성삼재에 도착하니 2시30분. 인원점검과 동시에 천왕봉을 향해 출발. 하늘에는 구름 한점 없이 보름달이 밝게 비추고 수많은 별들이 쏟아져 내리는 야심한 시각, 돌을 박아 만든 포장길을 따라 한 무리를 지어 출발했지만 선두와 후미가 구분 되는 것은 그리 긴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굶주린 맹수가 우리를 뛰 쳐 나아가듯 달려가는 그들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으로 내 나름대로의 속도를 유지하며 노고단을 중간 그룹으로 통과를 한다.
영하의 날씨에 세찬 바람까지 불어오니 이마에 흐르던 땀방울도 잦아들고 심원계곡에서 피어오르던 안개가 보름달을 삼켜버리니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랜턴으로 불을 밝히며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달리기는 계속된다.
가벼운 발걸음 최상의 컨디션으로 임걸령에서 5명을 추월하고 앙상하게 튀어나온 돌길을 뛰어넘어 노루목, 용수목을 지나 반야봉을 끼고 돌아 삼도봉을 2시간 10분 만에 통과하였다.
온 세상이 잠들어 있는 삼도봉 정상.
운무 속에 모습을 감추었던 보름달이 온 누리를 비추고 지난달에 올랐던 반야봉의 웅장한 모습이 가까이 다가오며 갖가지 사연을 간직한 피아골은 더욱 어둡게만 보인다. 물 한잔 마실 겨를도 없이 심호흡으로 전의를 불사르며 달리기는 계속된다.
화개재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밑으로 한없이 이어지고 뱀사골에서 피어오르던 운무가 눈으로 변하여 우리의 종주를 축원 하는 듯 양 볼을 때리며 흩날린다.
윙윙 소리를 내며 새벽하늘에 정적을 깨트리는 구상나무의 울음소리, 강풍에 힘없이 쓰러지는 고사목의 굉음소리, 토끼봉을 오르며 거칠게 토해내는 숨소리가 교향곡을 연출하고 정상의 억새들이 세찬 바람에 파도를 이루며 서산마루에 걸려있는 보름달과 별들이 지리산의 새벽 공기를 가르며 신비로움을 펼쳐 보이고 있다.
30여명이나 되는 일행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앞을 봐도 뒤를 봐도 그들의 모습은 간곳이 없다. 어차피 인생의 길도 나 홀로 가는 것이고 보면 외로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연의 소리를 벗 삼아 달님이 만들어준 그림자와 동행으로 연하천 산장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세찬바람은 계속되고 새벽이 될수록 기온이 점점 내려가 허리춤에 찔러둔 오이를 입에 무니 오이가 캔디가 되어 서걱거리고 박카스 뚜껑을 열어보니 물 반 얼음 반으로 빙수가 되어 오이도 얼고 물도 얼고 갱엿같이 딱딱한 초콜릿이지만 그래도 믿을 건 너뿐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 달콤한 그 맛이 지친 몸에 원기를 회복 시켜준다.
털모자를 깊이 눌러 썼지만 양 볼이 얼얼하고 면장갑을 낀 손이 마비되어 오는 듯 시려온다. 오늘의 산행은 중량과의 싸움이니 불필요한 물건을 차에 두고 내리라는 대장의 지시대로 방한 장갑을 차에 두고 내린 것을 후회하며 그래도 따스한 쿨맥스가 나의 몸을 보호하고 있으니 천만 다행이다.
잠시도 쉴 틈도 없이 높고도 험한 명선봉을 향하여 돌부리를 걷어차며 뛰다보니 등산화 끈은 왜 그리 자주 풀리는지 곱은 손을 호호 불며 힘들여 매어 보지만 얼마못가 풀어지고 나중에는 끈 매는 것조차 귀찮아 그대로 달리다보니 먼동이 터오고 첫 번째 관문인 연하천 산장이 조용히 잠들어 있다.
깊은 산중을 헤메다 고향집에 돌아 온 듯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 내려가니 6시25분이다. 4시간 만에 무사히 중간지점에 도착하고 보니 자신감도 생기고 컨디션도 아주 좋아 오늘의 종주도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으로 12시에는 천왕봉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으로 가슴이 부풀어 오른다.
여기서도 선두그룹은 만날 수가 없다.
얼마나 많은 시간차이가나면 그들의 흔적을 볼 수가 없단 말인가?
10여명정도가 내 앞에 있을 거란 짐작만 할 뿐이다.
하지만 예정시간 보다 빨리 진행하고 있으며 컨디션도 좋은데 무슨 걱정이랴.
쵸코릿과 더운물로 목을 축이고 붉게 물들어오는 동쪽하늘을 바라보며
조용히 산장을 나와 다시 힘차게 발걸음을 내 딛는다.
랜턴도 배낭에 집어넣고 삼각고지 사이로 찬란한 태양이 솟아오른다.
이 감격, 이 환희. "지리산 당일종주" 라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걸고
진군하고 있는 나의장도를 축원 하는 듯 온 누리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다.
능선 아래 4-5명이 보인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 보니 다른 산악회원들로 성삼재에서 1시에 출발 했단다.
간단히 수인사만 하고 다시 홀로 산행이 계속 된다.
상쾌한 아침이지만 초속10m가 넘는 강풍에 1500m가 넘는 고봉에서 체감 온도가 영하20도는 되지 않을까?
어느덧 벽소령 산장이다.
새로 지은 벽소령 산장은 2층 건물로 주위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지리산 종주를 하는 이들의 포근한 안식처로 남쪽의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에서 북쪽의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로 이어지는 길목으로 머지않아 이 길도 자동차가 넘나드는 포장길이 된다니 자연을 파괴하는 원흉이 되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된다.
덕평봉의 산허리를 한바퀴 감아 돌면 길옆의 선비 샘이 목마른 길손에게 손짓을 하고 그곳을 지나 바위를 넘어 설 때 왼쪽 무릅이 시큰하여 이상한 예감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산행을 계속하는데 오르막에서는 큰 무리가 없지만 내리막의 계단을 딛게 되면 통증이 오기 시작한다.
갈길은 멀고 험한 고산준령이 즐비한데 다리에 이상이 온다는 것은 치명적인 결함으로 중도에서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에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그래도 큰 불편 없이 칠선봉을 넘고 영신봉을 지나 하늘이 활짝 열리는 세석산장에 도착하니 길목을 지키고 있는 박대장이 격려를 해 주며 7번째로 도착했다는 말에 용기를 내어 시간을 보니 9시55분, 7시간30정도 걸린 셈이다.
세석산장
수 십 만평의 넓고 넓은 평원위에 펼쳐지는 철쭉나무 군락지.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남아 있지만 신록이 우거지는 6얼이 되면 평원 전체가 붉은빛으로 불타오르며 한 여름 야생화로 뭍 시선을 유혹한다니 상상만으로도 황홀하지 않은가?
성치 않은 다리를 이끌며 연하봉에 올라서니 구상나무 사이로 장터목산장이 눈에 들어온다. 한 다름에 산장에 가서 제일먼저 �은 곳은 매점, 카메라 밧데리가 벽소령산장 세석산장 장터목산장 모두 없단다.
그동안 다리를 절며 힘든 고행을 한 것도 기념사진을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참고 견디어 왔는데 모두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너무도 허망하여 온 몸의 힘이 쭉 빠지며 다리의 통증도 점점 심해지는 듯 움직이는 것조차도 힘이 든다.
매점안에는 추위를 피해 들어온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아수라장이다. 얼음 박힌 김밥을 입에 넣어 보지만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 폐기처분하고 마지막 남은 쵸코렛을 씹으며 마음도 몸도 지친 상태에서 저 높은 장벽을 넘는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그대로 중산리로 하산하고 싶은 생각뿐이다.
심하게 동요되는 갈등 속에서 정신이 퍼뜩 들며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느냐며 질책을 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천천히 가도 한 시간이면 갈수 있는 정상을 코앞에 두고 포기하다니 언감생심 될 법이나 한 생각이냐?
사진은 다음 기회도 있지만, 만약 오늘 정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한다면 앞으로는 기회도 없겠지만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이 생길 테니 힘을 내라고, 빨리 일러나라고, 명령을 한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한발 한발 가파른 돌계단에 각인을 하듯 힘겹게 오른다.
철 지난 계절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정상으로 향하는 모습은 성지를 찾아가는 순례자의 진지함 으로 고통을 감내하며 엄숙한 의식을 치루는 경건한 모습 들이다.
지리산 최고의 명물인 고사목 지대
정상을 향하는 길목에 수호신이 되어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의 고귀한 품결대로 천수를 다 하고 헐벗은 몸으로 매서운 칼바람 맞아가면서 오늘도 천왕봉을 찾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고 있다.
고사목 지대를 지나 힘겨운 사투 끝에 정상에 섰다.
기쁨에 목이 메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얼마나 험난하고 고통스런 순간들인가? 나의 두 다리가 30km라는 멀고먼 길을 넘고 넘어 드디어 천왕봉 정상에 발자취를 남길 수 있다니...
장하다 김 완묵.
오늘의 이 감격은 사진으로는 증명을 못하지만 평생토록 가슴속에서
꺼지지 않는 불꽃이 되어 어떠한 어려운 난관도 돌파 할 수 있는 수호신이 될 것이다.
현재시각 12시30분
육십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성삼재에서 천왕봉까지 10시간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지 않은가? 간단히 요기를 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내리막의 고통은 점점 커진다. 돌층계에 주저앉아 맨소래담을 바르고 맛 사지을 해보지만 소용이 없다. 정상에서의 환희와 감격은 뒷전으로 사라지고 가시밭길을 헤치는 고통으로 이를 악물고 한 계단 한 계단 정말 사력를 다해 법계사에 내려오니 오후1시40분 식은땀이 흐른다.
엉금엉금 기다시피 난생처음 가장 어려운 고난의 길을 걷고 있다.
칼바위에 내려서니 계곡물 소리도 들리고 돌계단도 끝이 나는 듯 평탄한 길이 보인다.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구세주를 만난 듯 계곡으로 내려가 머리감고 세수하고 차디찬 물속에 발을 담그니 정신이 맑아지며 피로가 싹 가시는 듯 하다.
포장길로 내려서니 경사도 완만해지고 내딛는 발걸음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통증도 많이 수그러든다. 매표소에서도 2km나 더 내려가니 한솔관광버스가 지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다리를 절며 차에 오르니 먼저 내려온 일행들이 반갑게 맞아주어 나도 해냈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되며 기쁨보다는 심한 고통 속에서 해방이 되고 보니 허전한 마음이 앞선다.
김치찌개에 소주를 겻 들여 식사를 하고나니 기념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과 무릅 부상으로 당한 고통도 풀어지고 어렵고 힘들었던 순간들이 주마등같이 스치며 고난의 순간에도 좌절하지 않고 끈기 있게 예정시간에 맞추어 완주를 하였으니 어떤 수식어를 둘러대며 자화자찬을 해도 모자람이 없을 많 큼 내 자신이 자랑스럽다.
12시간30분에 완주 도착시간 오후 3시
젊은이들도 감히 생각지 못하는 험난한 길을 오십대 후반의 나이로 도전한다는 자체도 가상하려니와 완주를 하고보니 내 나이는 사십대 초반으로 젊어 진 것을 실감하며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아픈 다리를 절룩이며 보금자리로 돌아오니 새벽1시 그때까지 기다리던 아내의 환영을 받으며 종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하는 중에 정상에서 사진도 찍자 못하고 돌아와 괴로움이 많다고 하자 무릅에 찜질을 해주며 내년 봄에 다시 한번 도전해서 멋진 장면을 찍어오면 두고두고 가보로 간직 할 테니 너무 상심 말라는 위로의 말에 새로운 용기를 갖게 된다.
힘이 다 할 때까지 매년 도전해볼 각오를 다져본다.
천왕봉아! 반야봉아! 내년에 다시 보자. 그때까지 잘 있거라.
등산 코스와 소요시간
성삼재(02시 30분 출발) - 노고단(03시 15분) - 임걸령(04시) - 노루목(04시 25분) - 삼도봉(04시 40분) - 화개재(04시 50분) - 토끼봉(05시 25분) - 연하천 산장(06시 25분, 5분 휴식) - 벽소령(07시 40분, 5분 휴식) - 선비샘(08시 34분) - 세석산장(09시 55분, 10분 휴식) - 촛대봉(10시 25분) - 장터목 산장(11시 30분, 10분 휴식) - 천왕봉(12시 30분, 10분 휴식) - 법계사(13시 40분, 5분 휴식) - 칼바위(14시 25분) - 중산리( 15시) 총 산행시간 12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