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남부

바우덕이의 혼이 서려있는 서운산으로

김완묵 2006. 10. 29. 07:22
 

 

안성맞춤에는 서운산(547.4m)이 있다.

 

 


산행일시:2006년 10월 21일 10시시 - 13시    산행시간: 3시간   산행거리: 약 8km

소 재 지 :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금광면  충북 진천군 백곡면    날   씨: 쾌청   나 홀로 산행 

찾아가는 길: 고속버스 터미널 - 안성시 - 청룡사  

 

 


산을 오르며 글발을 일구어내는 시와 산의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밤을 지새우며 정담을 나누고 시낭송과 문학탐방으로 산행까지, 1박 2일의 모임시간이 오후 6시 30분 양재 역으로 약속이 되어 오전의 남는 시간에 안성의 서운산을 답사하기위해 새벽잠을 설치며 강남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20분마다 출발하는 안성행 고속버스는 3년 전 칠장산을 다녀오며 지난 곳이라 낮 설지는 않지만 수도권 이남의 위성도시들이 그러하듯이 하루가 다르게 아파트촌으로 탈바꿈 하는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로 현기증을 일으키고  있다.

 

 


안성맞춤으로 유기제품과 방자그릇으로 명성을 날리던 이 고장이 포도와 배, 사과의 고장으로 탈바꿈하여 전원도시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거봉포도와 이화 배로 낙농업으로 새로운 명성을 이어가는 과수원길이 펼쳐지고 황금 들녘에는 추수가 한창이다.

 

 


안성에서 남쪽으로 10여 km 지경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운산을 찾아가는 시내버스 정류장은 고속버스 터미널에서도 500여m 나 떨어진 곳에 있어 찾는데 애를 먹게 되고 1시간에 한번씩 있는 버스에 오르며 산행길이 열린다.

 

 

 

 서운면 소재지를 지나며 길옆에는 안성놀이 패 남사당의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꼭두쇠인 바우덕님의 묘가 있다는데 그냥 지나치기에는 미련이 남지 않는가?

 

 


종놈보다도 천한 신분으로 인간 대접도 받지 못하던 남사당 패거리들

이 마을 저 마을로 전전하며 꼭두각시 광대놀음으로 웃음을 팔며

외줄에 목숨 걸고 허공을 날며 신명풀이 한 마당에 온 몸을 불사르던

남사당의 대부여

 

 


상전이 벽해 되어 괄시받던 광대들이 인간문화재로 대접받으며 떳떳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심사를 삭이시고 편안이 잠드소서. 

 

 


가벼운 발걸음은 지나온 봉건주의 잔재들이 한 시대의 사회상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게기가 되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격세지감으로 실소를 금할 수 가없다.

 

 


안성에 전하는 민요 바우덕이


안성 청룡 바우덕이 그고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치마만 들어도 돈 나온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줄위에 오르니 돈 쏟아진다

안성 청룡 바우덕이 바람결에 잘도 떠나간다.

 

 

 

 초겨울이 시원한 바람 맞으며 안성에서 진천으로 넘는 34번 국도가 시원하게 질주하는데 탐스러운 과수원의 수확이 한창이라 1km가 넘는 길을 휘돌아서니 청룡 저수지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휘적휘적 걷는 발걸음에 거칠 것이 없고 저수지에서도 1km이상을 더 들어가서야 청룡사의 산문이 나타난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자리 잡은 청룡사는 고려  공민왕때 나옹 화상이 지었다는 사찰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왔다는 전설에 의해 절 이름을 청룡사로 산 이름을 서운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산사는 고즈넉하고 구부러진 기둥이 들보를 떠받치고 있는  대웅전은 보물 824호로 지정이 되어있는데 용마루의 한 가운데 청기와 한 장이 얹혀있으니 신비로움을 더하고 삼층 석탑을 비롯해 여러점의 유물이 전해지고 있는 아담한 사찰이지만  불심만은 가득하다.

 

 

 

 

 

 

 

안성에서 가장 높은 산정이라고 하지만 600m에도 미치지 못하는 아담한 산세에 자식 욕심 많은 어미와 같이 많은 사찰과 암자를 보듬고 있으니 산자락의 계곡마다 청룡사를 비롯하여 석남사, 서광사, 옥련사, 좌성사, 낙천사, 은적암, 토굴암에서 울려 퍼지는 불경소리는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심이 아닌가? 

 

 

 

 

                                            용마루 가운데 청기와 한장


 

                                                  졸업 사진 찍는 학생들

 

 

 

칠장산에서 분기한 금북정맥이 남으로 달려오다 베티 고개에서 솟아 오른 서운산은 동남쪽으로 엽돈재와 연결이 되는데 임진왜란을 맞아 의병장 홍계남 장군이 축성을 하고 왜병들을 크게 격파한 유서 깊은 전략적 요충지로 오랜 세월의 풍파 속에

흔적조차 찾기가 어렵지만 선혈들의 나라사랑에는 우리들의 귀감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운산 자락의 다락논

 

                                          등산로 갈림에 일기예보 경고판


 

미로와도 같은 등산로는 안성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무성한 숲에 안내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지만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정상 부근까지 올라오고 말았으니 서쪽으로 2km거리에 있는 서운산성을 향해 비지땀을 흘린다.

 

 

 

정상인 서운산보다도 전망이 좋다는 542봉(탕흉대)에 올라서면 서남쪽은 울창한 송림으로 시야를 가리고 동북쪽으로는 언덕이라는 명칭에 어울릴 구릉지대로 북으로 안성시내까지 이십 여리의 황 금 들녘 과 과수원, 낙농업의 중심지답게 목장들의 평화로운 모습이 질펀하게 펼쳐진다.

 

 

 

 

 

                                               홍계남 장군이 쌓은 토성

 

산정에서 볼 수는 없지만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분기하는 칠장산(492m)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면 동쪽으로 진천 땅에 무제봉(573m), 장군봉(435m), 만뢰산(615m), 남쪽으로 천안땅에는 개죽산(452m), 작성산9497m), 독립기념관이 모셔진 흑성산(519m), 남서쪽으로는 거봉 포도의 본고장 인 입장면 뒤편으로 성거산(579m)이 자리잡고 서쪽으로 펼쳐지는 성거읍과 평택의 너른 들판은 마루금에 수평선이 가물거리는 백리 들녘이 펼쳐진다.

 

 


되돌아 나온 너른 광장에는 향토유적 43호인 석조여래입상이 자리 잡고 있는데

천년의 세월 속에 심하게 마모가 되어 양쪽의 귀만이 원형이고 얼굴의 대부분을 세멘트로 수리하고 오른손이 잘려나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옆에는 서운정이 있어 행락객의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바위 아래 치성터와 울창한 송림 아래로는 임진왜란 당시 홍계남 장군과 안성시민들의 혼이 살아있는 서운산성(토성)이 형체만 희미한데 200m 아래에는 좌성사가 자리 잡고 있다

 

 

 

                                                             치성터


좌성사 법당 앞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며 아름다운 소나무가 운치를 더하고

법당뒤의 시원한 석간수는 서운산을 찾는 등산객에게 갈증을 풀어주는 감로수라 하겠다.

 

 

 

 

 

 

 

 정상으로 향해 되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운 것은 서운산이 지니고 있는 보물들을 모두 둘러보고 채록을 하였으니 값진 수확이며 정상으로 해서 석남사의 마애불만 본다면 오늘의 소임을 다 하는 것이 아닌가?   

 

 

 

                                                 이동주보와 한잔

 


헬기장을 지나 무성한 송림 속에 바위하나 우뚝하고 산객들로 부산한 정상에는 북한산이나 관악산에서나 있음직한 이동주막의 난전이 펼쳐지니 컬컬하던 차 군침이 돌고 단숨에 두어 사발 들이켜고 보니 얼근하게 취기가 올라 하늘이 돈 짝 만해지고 내딛는 팔자걸음에 석남사 가는 길이 어디 멘고?

 

 


삼각점이 있는 곳은 정상에서 30여 m 떨어진 금북정맥이 지나는 능선 상에 있으니

석남사의 마애불을 찾아가는 가파른 비알 길에 나무등걸 부여잡고 안간힘을 쓰는데 막걸리 잔이 과했던지 비틀걸음 이어진다.

 

 

 

 

 

단풍이 흉년이라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메마른 계곡에는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낙엽 되어 떨어진 단풍잎이 수북하고 길옆 오른쪽으로 마애불 안내간판 따라 가파른 비알길을 올라서니 커다란 바위에 음각된 모습이 문화적인 가치도 없고 제작 년대도 얼마 되지 않은 듯 되돌아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신라 문무왕 20년에 창건된 유서 깊은 석남사는 중창작업이 한창이고 여러 가지 유물들이 있다고 하지만 오랜 세월 비껴가는 고목들과 해우소가 석남사를 대변하는 듯 울창한 숲 속에 자리 잡은 사찰을 뒤로하고

 

 

 

 

 


수려한 계곡을 따라 내려오니 버스 종점이 있는 상촌 부락에 도착하여 준비된 식사가 없다고 하여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14시 50분발 버스에 몸을 싣고 서운산 산행도 마감을 하고 알토란같은 보물을 주워 담아 양재역에서 기다리는 문우님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하늘을 날아갈 듯이 가볍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