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숨은 비경 무착대를 찾아서
지리산의 숨은 비경 무착대를 찾아서
삼도봉(1,490m), 불무장등(1,446m)
산행일시: 2006년 10월 24일 12시 - 15시 15분 산행시간: 5시간 15분 산행거리: 약 16km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전남 구레군 전북 남원시 금수산악회 41명 날 씨 : 쾌청
7.8월의 북새통을 이루는 바캉스철의 혼잡을 피해 휴가를 미루고 있다가 시와 산을 사랑하는 동인들의 정기모임을 중심으로 일정을 잡아 안성의 서운산을 시작으로 평창의 팬션에서 어두운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정담을 나누고 태기산에 올라 호연지기 기르며 이 효석의 생가와 기념관을 둘러 그분의 업적을 되돌아보고 서울로 상경을 한다.
셋째날은 아내와 함께 난지도의 하늘 공원에서 억새들의 춤사위에 가을의 정취를 흠뻑 마셔보고 저녁에는 지인들과 술자리를 마련하는 등 알토란같은 일정을 소화하고 마지막으로 지리산의 왕시리봉을 오를 것을 생각하면 마냥 행복하기만 하다.
동절기로 다가오며 밤이 길어진 탓에 한강위로 먼동이 터오는 이른 아침에 롯데 월드의 시계탑 앞에서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서니 지리산의 단풍에 홀린 산 꾼들이 만원을 이루고 축제의 분위기 속에 모두들 희색이 만면한데 정작 박대장의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하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지리산의 삼봉산
버스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와중에 어눌한 음성으로 시작한 그의 설명에 의하면 현지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왕시리봉 아래 있는 문수리 이장과 전화 통화를 하던 중 이곳은 반달곰의 서식지로 자연 생태를 보호하기위하여 민간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으니 절대로 오지 말라는 간곡한 부탁으로 만 부득이 장소를 변경해야할 처지에 있으니 어찌해야 하는지 하소연 이다.
청천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왕시리봉 하나만 바라보고 왔는데 이 무슨 꼴이냐 말도 안 된다는 볼멘소리로 차안은 어수선한분위기속에 냉수를 끼얹은 듯 냉 냉하기 그지없으니 박대장의 타는 속을 누가 달래준단 말인가?
결론도 없이 차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죽암휴계소를 지나서야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산을 사랑하는 산객들이 현지의 사정을 이해하고 차선책으로 나온 것이 대다수의 인원들은 임걸령에서 피아골로 내려서고 본인들의 판단으로 주력이 좋고 자신이 있는 회원들은 삼도봉을 거쳐 불무장등을 돌아오는 일정으로 임걸령에 2시간 안에 도착한 사람에 한해 통과를 하기로 변경을 하고보니 차안의 분위기도 한결 부드러워지고 박대장의 안면에도 미소가 돌기 시작한다.
대진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버스는 거침이 없지만 남도천리의 머나먼 길이라 12시가 되어서야 성삼재에 도착하여 장거리 코스를 자청하고 나선 8명의 전사들은 곧 바로 노고단을 향해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평일임에도 전국에서 모여든 행락객으로 그 넓은 등산로가 만원을 이루니 인파의 숲을 헤치기가 쉽지를 않다.
거친 숨소리 토해내며 달려가는 건각들은 16km의 먼 거리를 5시간에 주파해야 한다는 중압감에 긴장한 탓인지 대화도 없이 노고단 갈림길을 38분 만에 통과를 하고 좁아진 등산로에서 사람들의 행렬에 가로막혀 속도를 내지는 못하지만 대다수 임걸령에서 피아골로 빠질 것이기에 속도 조절을 하며 중간기착지인 임걸령에 도착하니 1시간 25분 조금의 여유를 가지고 행동식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서둘러 행보를 재촉한다.
건너편으로 오늘 우리가 걸어야할 불무장등의 부드러운 능선이 실팍하게 살이 오른 여인네의 둔부와 같이 쌍봉을 이루고 있으니 반야봉과 중봉의 축소판으로 정겨움을 더하고 쾌청한 가을 날씨는 분진 하나 없이 투명하여 수 백리 먼 거리 까지도 선명하게 바라보인다.
산을 오르며 사진 찍고 메모하고 리본을 다는 것이 나의 산행 습관이지만 삼도봉 까지는 모든 것을 생략하고 시간단축에만 전념을 하며 6년 전 무박으로 지리산을 종주할 때 삼도봉까지 2시간 10분에 주파를 한 경험이 있기에 그 시절 보다는 못 하겠지만 2시간 30분에만 올라선다면 오늘의 일정에 차질이 없을 것으로 계산을 하며 정수리에 올라서니 2시간 15분이다.
자로 잰 듯한 시간으로 아직도 녹슬지 않은 나의 체력에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며 우리 함께 기념사진으로 우의를 다지며 거침없이 터지는 조망 속에 장쾌하게 뻗어 내린 산줄기들이 계곡과 분지를 이루며 백두에서 시작한 대간길이 태백산으로, 덕유산을 지나 삼도의 화합을 다짐하는 이곳까지 천왕봉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조국의 산하를 바라보며 심장의 맥박이 요동을 친다.
10여 분간 달콤한 휴식으로 몸을 추 수리고 우리 8명의 건각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정담을 나누며 불무장등으로 향하는데 완만한 능선길이 통곡봉을 거쳐 황장산으로 촛대봉까지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으로 세석산장의 영신봉에서 시작하는 삼신봉 능선, 왕시리봉 능선과 함께 지리남부의 삼대능선으로 일컬어지는 곳이라 의미가 크며 새로운 능선을 밟게 된다는 마음으로 감회가 새롭다.
사진 찍고 리본 달고 메모하느라 일행들과 거리를 두고 진행을 하는데 불무장등 오름길에서 갈림길이 나타나며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좌우의 사면 길을 돌아가는데 의아심을 가지며 웃자란 산죽과 다래넝쿨을 헤치며 올라선 정수리는 오랫동안 방치된 헬기장이 잡풀더미에 묻혀 을씨년스럽고 삼각점을 찾다가 리본 하나 달아매고 통곡봉 가는 좌측 길로 내려섰지만 키를 넘는 조릿대와 다래넝쿨이 온몸을 휘감는데 10여분을 헤메고도 등산로를 찾지 못하고 할 수없이 정상으로 되돌아온다. (15시 10분)
불무장등에서 볼모가 되다니 한심한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높이로만 본다면 소백산보다도 높고 경기도와 충청도를 통 털어도 화악산 다음으로 중봉과도 견 줄만 하지만 군웅이 활거 하는 지리산에서는 그저 평범한 능선에 불과 하다보니 峰자도 달지 못하고 불무장등으로 불리고 만다.
우측의 사면 길로 치고 내리는데 뒤에 처져 있던 김수일씨와 최선생을 만나게 되어 반가움에 합류를 하여 행선지를 물어보니 통곡봉으로 가지 않고 피아골로 내려서는 중이라며 동행을 하자고 한다.
무착대에서 바라본 왕시리봉
이번기회에 통곡봉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도 많이 지체되고 짧은 겨울해가 발목을 잡으니 더 이상 고집부릴 처지가 아니라 땡감 씹은 얼굴로 그들의 뒤를 따르는데 동행하고 있는 최 선생에게 무착대를 보여 주겠다고 하는 말을 듣고도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지를 못하고 재차 물어보니 저 앞산 기슭에 영험한 기도처가 있으니 가보자는 제안이다.
임걸령에서 보면 쌍봉으로 보이는 1,348봉을 향하는 등산로는 정상으로 향하지 않고 왼쪽의 사면길로 돌아 안부로 이어 진다.
정상에서 일행들과 마시려고 걸머지고 온 막걸리를 풀어 헤치고 셋이서 나누어 마시며 박대장에게 현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무척대를 찾기 위한 행보를 시작한다. (15시25분-10분간 휴식)
지난해에 지리산의 도사라 자칭하는 분의 도움으로 현장을 답사하였다며 주위를 살피며 능선 길을 더듬지만 쉽게 나타나지는 않고 포기하려던 차에 오른쪽으로 희미한 발자취가 이어지는 오솔길을 발견하게 된다.
경사가 심한 내리막길은 아니고 잡목과 함께 너덜 지대가 펼쳐지며 되돌아오는 길을 찾기 쉽게 리본을 총총히 달아매며 산굽이를 몇 번 돌아 15분간 진행을 하니 주위가 환해지며 너른 공터가 펼쳐진다. (16시)
찾았다는 환호와 함께 제일 먼저 옹달샘으로 달려갔지만 한동안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던지 바위틈에서 솟아 나오는 석간수는 낙엽 속에 잠겨있고 움막을 지었던 잔재들이 가지런히 쌓여 부식되어있는 모습으로 오래전에 철거된 것으로 추정이 되며 돌담장으로 기도처를 다듬고 낙락장송 휘 늘어진 수 십 길 단애 위에는 너른 암반이 시원한 전망대를 이루는데 가시덤불 헤치며 올라선다.
비바람을 피할수있는 작은 동굴
무대의 장막을 열어 놓은 듯 오늘 우리가 산행을 하려던 왕시리봉의 능선이 손에 잡힐 듯 지근거리에 펼쳐지는데 노고단에서 흘러내린 주능선이 잘록한 질매재를 거슬러 질등으로 솟아 오르고 윤기 흐르는 잔등을 타고 문바우등으로 이어지며 그 너머로 왕시리봉이 우뚝한데 비단치마 펼쳐놓은 듯 골골마다 주름잡은 피아골이 가슴에 안기고 솔바람 향기 그윽한 신선도량이 이 아닌가?
암반 아래로 내려다보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침니 공간 까지 있으니 사람이 생활하는데 가장 필요한 샘과 양지바른 공간 속에 주위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와 악천후에 피신할 장소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1,176m의 깊은 산중에 위치한 무착대가 지리산의 10대 기도처 라고 하니 왕시리봉의 산행길이 반달곰의 인도로 불무장등으로 유인하고 꿈 에도 생각지 못하던 무척대를 품에 안았으니 이런 횡재수가 따로 있나?
움막 터에서 정면으로 바라보면 분재 같은 바위에 앙증맞은 소나무 그 뒤로 다람쥐 바위가 날름하니 올라앉아 이방인을 유혹하는데 갈길 먼 길손이 마냥 눌러 있을 수 있나.
문바위등과 왕시리봉(좌측)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을 품에 안은 듯 신바람 나게 되돌아오는 너덜 길은 리본이 없었다면 애를 먹일 구간으로 능선 길에 올라서 나뭇가지에 리본을 걸어놓고 가파른 비알 길을 달려갈 때 배낭 뒤의 종소리도 신명이 나고 또 한곳의 전망대 바위가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보내주신 선물이라
날렵하게 올라앉은 바위는 천지사방 바라보는 조망 터로 피아골의 숨은 계곡까지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으로 해거름의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며 답답하던 가슴을 후련하게 씻어 내린다. (17시)
가파른 비알 길도 한 다름에 송림 속을 빠져나오면 높고 높은 송신소 안테나가 하늘을 찌르고 갈 짓 자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길을 지나 직전마을에 당도하며 예정시간대로 5시간 15 분 만에 16km의 종주 길도 마감을 하며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그니 만단시름 근심걱정 씻겨 내리고 금년의 정기휴가도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17시 15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