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호젓한 산길 계명산이 가로막아

김완묵 2006. 10. 16. 09:07
 

     호젓한 산길 계명산이 가로막아

매봉(320m), 형제봉(545m), 우암산(328m)종주길


산행일시: 2005년 11월 20일     산행시간: 5시간 10분    산행거리: 약 12km

소 재 지: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파주시 광탄면,  고양시 벽제동  


저녁에는 사위 권서방의 생일이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생일을 손수 차려주어야 한다며, 일하는데 방해가 되니 가까운 산에나 다녀오라는 아내의 성화를 못이기는 척 새벽바람 맞으며 집을 나선다.


동지섣달 겨울 밤이 왜 이리도 길기만 한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장흥면에 내려서도 날이 밝아오지를 않는다. 조용히 잠든 어둠속에서 낮선 길을 찾아갈 수 도 없고, 코끝이 시리도록 싸늘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서성인다. 먼동이 터오는 6시 50분, 장흥면 사무소를 지나 푸른 옥 APT 정문을 가로질러 야산으로 통하는 후문을 빠져나와 활터뒤로 희미한 등산로를 따라 산행이 시작된다.


전망대 바위에서 바라보는 도봉산과 북한산이 일대 장관을 이룬다. 산이란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습이 천차만별이라 매봉능선에서 바라보는 도봉산이 새로운 감흥을 일으킨다. 울대고개에서 시작된 사패산이 포대능선으로 이어지며 날카로운 암봉들이 하늘찌르고, 만장봉과 오봉을 지나며 백만대군 호령하는 백운대와 인수봉이 관우 장비의 늠름한 기상으로 삼라만상을 굽어보니 그 황홀경을 무엇에 비하리.


전망대 바위를 지나며 시작되는 신세계 공원은 계단식으로 빼곡히 들어 찬 망자들의 안식처다. 산자의 부귀영화가 죽은 뒤에도 이어지는가? 수 십평 너른 곳에 터를 잡고 호사스런 석물들로 둘러리를 세운 망자는 누구이며,  한평도 못되는 비좁은 자리에 비목으로 문패달고 구천을 떠도는 망자는 누구란 말인가. 매봉정상까지 수 십만평이 유택이라.  솔푸더기 무성한 정수리는 아담한 돌탑과 인근 주민들의 산책코스로 가벼운 운동기구들이 나무가지에 걸려있다.


망자들의 유택을 걸어가며 내 자리는 어디일꼬? 가진 것 없고 이루어 놓은 것 없으니 내 한 몸 누일자리도 변변치 못하니. 차라리 한줌의 재가 되어 바람과 구름결에 훌훌 날려버리는 것이 속 편한 일이 아닐런지!!!  오르락 내리락 청명한 하늘아래 망자들의 안식처를 휘돌아 목암고개로 올라선다. 주능선과 만나는 414봉에 올라서니, 장흥일원의 넓은 들이 발아래 펼쳐지고 공군부대가 둥지를 트는 계명산이 모습을 드러낸다.


사각 사각 밟히는 낙엽소리에 장끼란 놈 하늘로 날아오르고, 화들짝 놀란 가슴 쓸어 낸린다.  신 한북정맥으로 부르는 오늘의 산 길이 4-500m로 완만하지만, 수도권에 있는 관계로 주요 봉우리마다 군부대가 진을 치고 삼엄한 경계로 지도상의 등산로가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목적지를 지척에 두고도 한 없이 돌아가야 하는  난관이다.

 

오늘 지나야 할 계명산 또한 공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라 통과 할 방법을 모색해 보지만 별다른 대책이 없다.  계명산 정상을 약간 비껴간 능선이 있어 그곳으로 탈출하기 위해 진입을 시도해 보지만 확실한 지형을 파악하기가 어렵다.  일단 형제봉까지 오르기로 한다.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낙엽위로 미끄러지기 일쑤이고, 긴장감이 고조된 탓인지 초겨울의 찬바람 속에서도 등허리에 땀방울이 후줄근히 흘러내린다.


형제봉 정상에는 통신 안테나와 버려진 군 막사가 을 씨년스럽다. 인적 없는 정수리에서 사방을 둘러봐도 모두가 급사면 협곡이라 탈출할 곳이 마땅치가 않다. 할 수없이 됫박고개로 통하는 능선길이 군부대의 비상도로를 겸하고 있어 초조한 마음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육중한 철책으로 무장한 부대 안에서 개 짖는 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낙엽 밟히는 소리마저 천둥소리보다도 더 큰 소음으로 들려오니 오금이 저려온다. 군인들이 훈련용으로 다져진 오솔길을 따라간 철책에는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경고문이 으름장을 놓는다. 아무리 둘러봐도 탈출로는 없고 급사면 벼랑길에는 잡초만 무성하여 발을 들여놓을 용기가 나지 않는다.

 

철책으로 접근하니 다행히 쪽문이 열려있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잽싸게 안으로 들어간다. 콩알만 해진 간을 쓸어내리며 됫박고개를 향해 줄달음친다. 다행인 것은 일요일 아침이라 오가는 군인들이 없고 1km가 넘는 비상도로를 단숨에 내려오니 절개지 석축공사를 하는 민간인들을 만나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1km를 더 내려와서야 됫박고개에 도착하며, 호랑이 굴을 빠져나온 기쁨으로 가슴을 쓸어내린다. 뒤돌아보는 비상도로는 무심한 미소를 짓는데, 무리하면서까지 산 길을 이어가야 하는지 심한 자책감이 든다.

 

됫박고개는 벽제와 보광사를 경유하여 용미리를 넘나드는 고개길이다. 시립공동묘지가 즐비하게 자리 잡은 이곳도 있는자와 없는자의 모습이 확연하게 들어나고 신세계공원이 강남이라면 이곳은 강북의 달동네라고 할까? 시에서 부여한 번호판이 전부인 버려진 묘잔등을 돌아 고압전선 공사로 만든 임도를 따라 주능선에 올라서면 삼거리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신 한북정맥으로 연결되는 박달산가는 길목이고, 왼쪽은 우암산을 거쳐 명봉산으로 가는 길이다. 저녁의 모임으로 무리하면서까지  정맥을 이어갈 수는 없고 나뭇가지에 리본하나 걸어놓고 우암산으로 향한다. 완만하게 이어지는 주능선에는 무성한 억새가 바람에 흩날리고, 어려운 고비를 지나왔다는 행복감으로 내딛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왼쪽을 바라보니 조금전에 지나온 계명산의 군부대가 철옹성처럼 솟아있고, 목암 고개에서 하늘금을 잇는 형제봉도 발자취를 남긴 곳이라 눈 길을 외면할 수가 없다


솔푸더기 무성한 무명봉에 올라서면 헹글라이더 활공장이 나타나고, 서쪽으로 시원하게 펼쳐지는 용미리와 한강 넘어 김포까지 구릉사이로 일산 신시가지의 아파트숲이 장관을 이룬다. 임도도 끝이 나고 무성한 억새와 잡풀이 앞을 가리는 75번 전신주를 지나면, 서 서울 골프장 저수탱크가 나타난다.  

 

곧 이어 자연보호와 불조심 입간판이 있는 안부에서 내려다보는 골프장. 38만평의 광활한 대지위에 아름다운 조경으로 가지런히 정돈된 잔디위에서 한가로이 즐기고 있는 골퍼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76번 전주를 지나면 곧바로 우암산 정상이다. 눈길을 끄는 ♣ 비호봉 석명지♣ 라는 표지석에는 역사적으로 많은 설화를 간직한 계명봉과 벽제관 古地의 중간 고봉인 이곳에 백수지장 비도천리의 비호가 살았다는 전설이 있다. 이 산의 정기를 받은 부대 장병들은 초전필승의 전기를 연마하여 비호같은 용맹으로 국토통일의 염원을 실현하고자 부대 명칭을 비호부대로 하고, 이 고봉을 비호봉으로 명하였다는 취지문을 보며 우리 젊은이들의 우국충정이 듬직하다.


우암산을 뒤로하고 오늘의 산행도 예정대로 마무리한다는 안도감으로, 잘 다듬어진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니 군부대 철책 안으로 이어진다. 군인들이 훈련을 받기위해 다니는 길이고 민간인은 철조망을 따라 내려가면 새아침 병원 신축건물 앞에 도착하며 사실상의 산행을 마감한다.  하지만 의정부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1km가 넘는 고양동 삼성아파트 앞까지 걸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