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의정부의 진산 천보산

김완묵 2006. 10. 8. 05:10
 

          

                    천보산(天寶山 336,8m)에 올라


소 재 지: 경기도 의정부시, 양주군, 포천군    산행일시: 2003년 5월 26일

 

이른 새벽 산을 오른다. 오늘이 결혼 기념일이라 오후에는 아내와 약속이 있어, 오전중에 의정부의 진산인 천보산에서 송우리까지 산책을 겸하여 다녀오기로 계획을 세웠다. 가까이 있는 물건이 귀한줄 모르는 것이 인간의 속성인가. 그동안 버스타고 장거리 산행을 다녀와야 직성이 풀리는 것을.

 

이 산줄기는 한북정맥이 축석고개에서 분기하여 천보산, 회암산, 칠봉산을 지나 양주군과 포천군을 경계로 하는 천보지맥이다. 수 년전 한상웅. 라웅찬과 셋이서 동두천 송내면에서 어악고개 까지 종주를 하였기에 항상 염두에 두고 있던 터라, 오늘과 같이 뜻 깊은 날에 천보산을 찾게 된것이다.


하지가 가까운 오월 하순이라 5시라도 일찍 날이샌다. 집에서 자금동까지는 대중교통이 불편하여 꽃동네까지 택시로 이동하여 영화사 입구를 찾아간다. 천보산은 미군부대가 주둔하고있는 곳이라 산 기슭으로 철조망이 둘러 있어 접근이 어렵다. 해서 진입로를 정확히 찾아가지 않으면 낭패보기가 십상이라, 일단 등산로만 만나면 절반은 성공한 셈이다.

 

인근 주민들이 새벽 산책로로 이용하는 천보산은 호젓한 오솔 길에 정성스런 돌계단이 놓여있다. 밤새 내린 이슬이 길가의 떡갈나무 잎을 간지럽히고 바짓가랑이도 축축하게 젓어온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의정부 시가지가 그 모습을 드러내고 뿌연 매연이 도심지를 휘감는다. 도봉산과 수락산, 사패산에가려 이목을 끌지 못하지만, 암릉과 소나무, 어우러진 산세가 예사롭지가 않다. 이름도 거창한 소림사. 중국 불교무술의 본거지를 상상하면서 실소를 금한다. 양지바른 암벽사이에 비둘기집처럼 아담한 암자가 둥지를 틀고 석불주위로 작은 부처들을 안치하여 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소림사에서 완만한 경사를 따라 10여분간 오르면 천보산 정상이다. 336m의 낮은 산이지만, 둥그런 철탑 두개가 정수리를 점령하고 있어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기슭에 있는 미군부대가 이곳을 떠난다는 설레임과 주민들의 요구로 산책로가 개설되어 정상에는 천보산 보루의 안내간판과 나무테크로 전망대를 겸한 휴식공간까지 설치하여 양주시와 의정부일대를 조망 할수 있는 전망이 좋은 곳이다.

 

정상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등산로는 마사토가 깔려있는 급경사라 겨울에는 위험한 곳이다.  로프를 잡고 조심조심 내려가니 탑 고개가 나오고 아카시아 향기속에 리기다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숲 그늘에 완만한 능선을 따라 여유 있는 몸짓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무명봉을 올라서면 왼쪽으로 희미한 오솔길에 리본들이 나부끼는 한북정맥 갈림길이다.

 

천보지맥이 2-300m의 고도를 유지하고 있지만, 한북정맥은 벼랑처럼 가파른 비알 길을 내려서면 골프장 옆으로 5-100m의 낮은 언덕이 북쪽으로 덕고개까지 연결된다. 초행길에 나선 종주팀들이 천보산을 넘어 녹양역까지 내려선다음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곳이다.  


오르락내리락 싱그러운 새벽공기를 마시며 왼쪽으로 보이는 골프장을 지나 천보산 줄기에서 유일한 암봉을 만난다. 일명 성 바위로 부르는 깍아지른 절벽을 기어오르면 정상에 못지않은 전망으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천보산은 곳곳에 쉬어가기 좋은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가벼운 옷차림으로 산에올라 휴식을 즐기는 주민들이 의외로 많이 보인다.

  

30여분을 더 가면 287봉이다. 축석고개에서 넘어온 한북정맥이 만나는 갈림길이다. 삭막한 마사토에 리기다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이정표 하나라도 있음직한데 아무런 표시도 없어 바람결에 스치고 만다. 축석령 고개에서 간식을 들며 물을 마시려고 뚜껑을 열어보니 소주담은 물병을 잘못가지고 왔으니 이런 낭패가 있나.  유부초밥에 반주를 곁들이면서도 목마름을 참지못하고 보니 갈증이  심해진다.


축석령 고개를 지나면서 의정부시 경계도 끝이 나고, 포천시와 양주시가 경계를 이루는 능선이 왼쪽으로 90도 방향을 튼다. 이곳부터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하고 웃자란 억새들이 소매깃을 훌치는데, 아카시아가 숲을 이루는 산 등성이에는 제철 만난 꽃향기가 진동을 한다. 왼쪽으로 양주시에서 야심차게 조성하는 양주자이 신시가지가 황량한 벌판위에 터닥기가 한창이다.

 

활등처럼 휘어지는 능선을 따라 전망바위에 올라서면 지나온 천보산 정상이 아득하게 바라보이고, 9시가 가까워오며 자동차들의 소음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어악고개가 지척임을 알려준다. 급경사를 치고 내려가면 고개마루 절개지가 수십길 단애를 이룬다. 간단하게 시작한 산행도 예정대로 완주를 하고, 아내와 보낼 시간을 생각하며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