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벽송 능선을 아시나요
지리산의 벽송 능선을 아시나요?
상내봉(1,200m), 새봉(1,323m), 하봉(1,781m), 중봉(1,875m),
천왕봉(1,915m), 제석봉(1,806m), 연하봉(1,651m), 촛대봉(1,703m)
산행일시: 2005년 7월 24일 03시 30분 - 17시 10분 산행시간 : 13시간 40분
산행거리: 약 30km 회 비 : 35,000원
소 재 지: 경남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뫼솔 산악회 인 원: 22 명 날 씨: 맑 음
계획대로라면 당일 백두대간으로 수정봉에서 고남산을 오르는 구간이 되겠지만 산악회 사정으로 일정이 취소되고 급조된 것이 지리산 무박산행이다.
삼복더위(23일-대서 ,25일-중복)로 수은주는 연일 35도를 오르내리고 대지는 불구덩이 속으로 앉아만 있어도 숨이 탁탁 막히는데 무박산행 이라니 당치도 않다고 펄쩍뛰는 아내를 설득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토요일 저녁 10시 시청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는 한가하다 못해 썰렁한 분위기로 사당역, 서초구청을 거치면서도 22명으로 삼복더위에 무박산행이 산 꾼들 에게도 무리인가보다.
차내에서 나누어주는 산행 개념도를 보니 보도 듣도 못한 벽송 능선이라 초암능선보다도 하봉까지 2시간 더 먼 거리이고 세석산장에서 남부능선으로 삼신봉까지 내려가서 대성리 입구 대성교까지 가야하는 40km에 육박하는 무리한 스케줄에 어안이 벙벙하여 말문이 막힌다.
염천지하에 선두그룹도 12시간이 촉박하다고 하니 안일한 생각으로 집을 나선 것이 후회막급이지만 활시위는 당겨진 것이고 최선을 다하다 안 되면 중간에서 탈출을 하는 수밖에, 마음을 진정하며 토끼잠을 청해보지만 갖가지 상념으로 잠은 멀리멀리 사라지고 만다.
죽암 휴계소와 함평 휴게소를 들러 목적지인 지리산에서도 오지마을인 추성리 벽송사입구에 도착하니 보름달에서 약간 찌그러진 열아흐레 달이 서산마루에 걸려 우리의장도를 축원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간단하게 몸 풀기를 하고 시멘트 포장길을 10여분 올라가면 천년고찰 벽송사 경내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절은 6.25전란으로 처참한 비극의 역사를 간직한 곳으로 벽송사 암자인 서암 전 주지 원응 스님께서 1989년부터 10여년간 화엄경 금자사경을 완성하고 주위의 자연석 암반위에 대방광문, 극락전, 광명운대, 사자굴을 조성하여 많은 이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만 어둠 속에 친전을 못하는 아쉬움을 간직 한 채 벽송 능선을 향한 발걸음이 시작된다.(03시 30분)
사찰초입의 화장실 10m 못 미친 지점에서 우측의 공터를 지나면 함양군에서 조성한 등산로가 산비탈 사면길로 이어지고 발아래로 계곡물 소리가 우렁차게 들리는데 헤드랜턴으로 비춰보는 계곡은 급경사 벼랑으로 수십 미터의 절벽이다.
무성한 숲 사이로 달빛도 스며들지 못하는 어둠속에서 쓰러진 고사목의 장애물을 뛰어넘어 선두그룹을 뒤 쫒기에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앞사람의 발꿈치를 바라보며 속도경쟁이 벌어진다.
1시간 15분 만에 벽송사에서 3.5km떨어진 산죽비트를 지나게 되는데 어둠은 아직도 물러 설줄 모르고 어디가 어디인지 분간도 하지 못 한 채 우뚝 솟은 앞산이 상내봉 이려니 속고 또 속으며 힘겹게 오르지만 아무런 흔적도 없이 답답하기만 하다. (04시 45분)
안부를 돌아 흉물스런 바위 앞에 공비비트라는 안내간판이 키를 넘는 산죽의 덤불 속에 자리를 잡고 있다. (05시 20분)
사상과 이념이 무엇이 길래 첩첩산중 후미진 곳에 은신하면서 피를 나눈 형제끼리도 총부리를 겨누던 민족 비극의 현장에서 우리의 아픈 추억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된다.
물 한 모금 사진 한 장으로 간단한 휴식을 하고 미로와도 같은 산행 길이 계속되는데 먼동이 터오며 무성한 숲 사이로 솟아오른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니 태양은 이미 한 뼘이나 허공으로 떠오르고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운해는 어둠을 뚫고 올라온 부지런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으로 지리산의 신비로움을 만끽한다. (05시 30분)
갈 길이 먼 오늘의 일정이라 오래 머물 수도 없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서둘러 길을 나서지만 20분간의 알바를 한 뒤 되돌아 온 곳이 상내봉 정상이라고 하니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닌가?
벽송 능선의 정수리인 상내봉이 1,200m라면 서울 근교에서는 이만한 높이의 산이 없는데 이곳에서는 뒷동산이라고 해야 옳을까? 사방을 둘러봐도 하늘높이 솟아오른 첨봉들뿐이다. (06시)
단풍나무와 철쭉나무 아래로 무성한 산죽이 한없이 펼쳐지고 무명봉을 넘고 넘어 앞을 가로막는 4m의 절벽에는 가느다란 로프가 늘어져있고 오르기에 만만찮은 장애물이라 옆으로 바위틈을 비집고 돌아가니 아니 이럴 수가 호랑이 피하다 사자를 만난 격으로 10여m나 되는 수직 단애는 간담이 서늘하고 되돌아 설수도 없는 진퇴양란의 기로에서 바위틈에 솟아나온 철쭉나무를 발판으로 바위를 안고 돌아 위기를 모면하고 안부에 올라서니 너른 공터에 수많은 리본들, 삼거리 갈림길이 새봉 이란다. (06시 40분)
북쪽으로는 밤새워 걸어온 벽송 능선이 이곳에서 끝이나고 동쪽은 웅석봉에서 시작한 대간길이 밤머리재, 왕등재를 지나 이곳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천왕봉으로 향하는 오늘의 진행코스인데 요즈음은 지리산도 태극능선이라 하여 서쪽의 바래봉에서 시작된 주 능선을 웅석봉까지 3구간으로 나누어 종주하는 팀이 늘어나고 있다.
어둠을 헤치며 달려온 3시간 줄잡아 8km는 됨직한 거리에 허기도 지고 오늘같이 장거리 난코스에서는 내 한몸 내가 지켜야 하겠기에 주위를 둘러볼 겨를도 없이 너른 공터에 배낭을 풀고 아침식사를 한다.
15분간의 식사와 꿈같은 휴식시간을 보내고 서둘러 길을 떠나는데 전망대 바위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식사에 여념이 없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여유로운 발걸음에 키를 넘는 조릿대 앞을 막아도 신선한 공기에 취해 발걸음이 가볍다.
전망 좋은 암릉을 휘돌아 앙칼진 구상나무 잔가지를 헤치며 전망대 바위에 올라서면 조갯골 위로 피어오르는 운해가 아침햇살에 눈이 부시고 높고 높은 연봉들 사이로 양지바른 분지위에 자리 잡은 쑥밭재,1,268m의 높은 쉼터에는 대간을 더듬는 산 꾼들에게 포근한 안식처로 하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충분한 휴식이 필요하다.(07시 45분 10분 휴식)
하늘높이 솟은 하봉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상무념의 세계를 넘나들며 한 걸음 한걸음 고행의 연속으로 시원한 바람 불어오는 안부에 올라서면 국 골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폐쇄되었으니 위반시에는 백만원의 벌금을 물게 된다는 경고문이 국골 갈림길임을 알려주는 꼴이 되는데 계곡으로 내려가면 벽송사로 가는 원점회귀 산행길이 된다. (08시 30분)
구상나무와 철쭉나무를 비집고 올라선 전망대,
너른 암반위에 펼쳐지는 경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으로 푸른 창공아래 지리산 동쪽의 북사면으로 뻗어 내린 능선들이 부채 살 같이 펼쳐지는데 오른쪽으로 어둠을 뚤고 올라온 벽송 능선과 허공 달골, 두류능선과 국골, 초암능선과 칠선계곡, 창암 능선이 추성리를 깃 점으로 힘찬 날개 짓을 하며 건너편으로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라 일컫는 금대산과 백운산 그 너머로 삼봉산이 마루금을 이루며 힘차게 요동을 치고 있다.(09시 10분 휴식)
막걸리 한잔으로 원기를 회복하고 머리위에서 손짓하는 하봉을 향하는 발걸음이 이어지는데 날카로운 초암능선 하봉으로 향하고 비슷비슷한 여러개의 봉우리 중에 어느 것이 정상인지 두리번 거리지만 대청봉보다도 높은 1,781m의 정수리에 표지석은 고사하고 그 흔하디흔한 비닐조각 하나 없으니 허망한 마음으로 봉우리마다 뒤져보다 돌아보니 초암능선 다음 봉우리가 가장 높아 보인다. (09시 30분)
완만한 내리막길 능선 따라 여유를 부릴 때,
이정표하나 외로운 나그네의 등불이 되어 무성한 잡초 속에 갈림길을 지키는데 치밭목 1.8km, 천왕봉 1.7km 국립공원에 들어와서 처음 보는 것이라 더욱 반갑고, 치밭목 산장 쪽으로는 한 여름 내내 오간 흔적 없이 억새풀과 가시덤불만이 무성하다. (09시42분)
숨이 턱에 차도록 안간힘을 쓰며 무거운 발걸음 이어가는 모습은 한낮의 때약 볕 아래 수도승의 고행으로 바람만 불어도 넘어질 듯 비실비실, 가누기 힘겨운 몸짓으로 사투를 벌인다.
널찍한 정수리에 전망 좋은 중봉,
지척에 보이는 천왕봉이 900m, 대원사 10.8km, 치밭목 산장 3.1km의 이정표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치밭목 산장과 대원사를 이쪽 길로 이용을 하는 관계로 좀 전의 안부에 길이 희미함을 알게 되었고 변화무쌍한 운해는 천왕봉을 휘감아 돌며 신비감을 더하는데 정상에서 들려오는 함성만이 우렁차다. (10시 20분)
땅이 꺼지도록 내려딛는 급사면길,
안부에서 65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곧바로 정상으로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천왕봉으로 향하고 등산객들도 정상을 목표로 하기에 벽송사에서 어둠을 혜치며 찾아온 7시간 반, 낮선 길이지만 정상으로 향하는 마음하나로 모든 고통을 이겨내며 참아왔다. (10시 55분 15분간휴식)
무인도의 괭이갈매기 떼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정수리 주위로 몰려들어 성취감을 만끽하며 정상석 부여안고 사진 찍기에 분주한데 사방팔방 막힘없이 시원하게 터진 조망 수백리 밖까지 내다볼 수 있는 정수리가 아닌가?
대원사 11.7km, 중산리 5.4km 장터목 대피소 1.7km의 이정표를 보면서 여러번 올라온 정상이지만 오를때 마다 감회가 다르고 오년전 지리산당일 종주를 하면서 빠른 시간에 완주하겠다는 무모한 행동으로 무릅을 다쳐 성치 않은 몸으로 정상에 올랐던 감격과 법계사로 내래가며 받은 고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정상에서 100m쯤 내려온 지점이 칠선계곡으로 내려가는 하산로인데 10여년 전부터 휴식년제로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 우리나라 3대 계곡의 하나로 원시림을 방불케 하는 비경을 간직한 곳으로 통행이 허용되던 그 시절, 단풍이 절정을 이루던 가을 백무동에서 올라 천왕봉을 거쳐 칠선계곡으로 내려가며 보았던 환상적인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다시갈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애착심이 간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주목의 대명사로 우리나라 고산지대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으로 30년전만해도 제석봉에 울창하던 주목군락지가 도벌꾼들이 도벌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불을 질러 지금은 고사목의 공동묘지가 되어 앙상한 가지만이 보는 이의 심금을 울리고 있으니 이기적인 인간들의 탐욕을 일깨워주는 현장이다.
제석봉과 연하봉사이의 양지바른 안부에 자리 잡은 장터목산장은 천왕봉의 일출을 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숙박을 하는 곳으로 백무동에서 중산리에서 세석산장에서 모여드는 인파로 항상 만원을 이루고 17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산장과 편의시설에 수량이 풍부한 샘이 있어 산을 찾는 이들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곳으로 물 한통을 받아들고 산장의 그늘에서 잠시휴식을 한다. (11시50분 10분간 휴식)
장터목에서 세석산장까지는 3.4km에 불과한 가까운 거리지만 연하봉과 삼신봉을 넘는 길은 백리길보다도 멀어 보이고 한낮의 태양은 삼복더위의 열기를 고스라니 정수리위로 쏟아 부으니 9시간의 산행 길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가눌 길이 없다. (12시 15분)
가까스로 촛대봉 정상에 올라서니 30만평의 고원지대가 영신봉의 품안에 평화롭게 펼쳐지고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는 안도감에 돌계단 따라 내려가는 발걸음이 가벼운데 길옆으로 갖가지 야생화들이 다투어 피어나고 5-6월이면 절정을 이루는 진달래와 철쭉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지리10경으로 화려함을 뽐내고 한겨울의 매서운 추위에 피어나는 설화는 상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13시 30분 10분간 휴식))
지리산 최고의 쉼터인 세석산장은 종주하는 건각들에게는 없어서는 안될 휴식처로 하루 종일 걸어오며 지친 육신을 달래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나누는 술 한잔 친구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는 산에 오르는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추억을 만들고 호연지기 기르며 자아성취를 만끽하게 된다.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산장의 안마당에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자리를 잡은 이들로 성시를 이루고 너른 분지에는 고산늪지대가 펼쳐지니 이 또한 세석의 자랑이 아닌가?
이제 또다시 낙남정맥이 시작되는 남부능선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는데 세석산장에서 우물터를 지나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잘 정돈된 등산로를 따르면 철쭉나무 꽃 길 따라 이어지는데 이곳은 종주 길에 지친 건각들이 탈출로로 이용하는 거림으로 가는 길목으로 500m를 내려오면 거림과 의신의 갈림길이 나온다. (13시 50분)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완만한 능선 길을 700m 내려오면 돌무더기로 만든 제단과 아들을 낳지 못하는 여인들이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음양수에 도착하게 되는데 해발 1,470m의 공기 좋은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석간수는 여자 샘과 남자 샘으로 나뉘어있고 아들을 낳지 못하던 호야와 연진이의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14시)
잠시휴식을 하고 남부능선을 따라 800m를 내려오면 갈림길이 나타나는데 직진을 하면 오늘의 목적지인 삼신봉으로 향하는 길목이고 오른쪽으로는 의신마을로 내려가는 탈출로인데 정규코스대로 산행을 하자면 앞으로도 5시간이 더 소요되는 장거리코스로 도저히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일찌감치 포기를 하고 탈출로인 의신계곡으로 발길을 돌리지만 이 또한 지리산에서 칠선계곡 다음으로 깊은 협곡인데다가 지세가 험하여 하늘아래 첫 동네인 대성리까지 6km의 계곡 길을 내려가야 하는 만만치 않은 곳이다. (14시 20분)
멀리 하늘 금을 그으며 솟아오른 삼신봉은 삼년 전에 올랐던 곳으로 지리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남쪽의 전망대로 청학동 마을을 품에 안고 있는 명산으로 이미 다녀온 곳이라 포기를 하면서도 미련이 없다.
급경사 내리막길에는 등산로가 유실되는 것을 막기 위해 호우 방지턱을 설치하고 주변에는 마대로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였으니 이 궁벽한 등산로에 등산객이 얼마나 오르내린다고 이런 정성을 들였는지, 덕분에 어려움 없이 수월하게 해발1,082m의 안부에 도착하여 가파른 경사면에 너덜지대가 시작되는데 이곳에도 너덜바위를 가지런히 정돈을 하여 오르내리기에 편하도록 배려를 하였다. (14시 35분)
해발 965m 지점에는 의신까지 5.5km의 이정표가 친절하게 위치를 알려주고 시원한 물소리가 들려오는 대성골 상류로 울창한 수림 속에 너덜지대는 계속되고 의신 4,9km의 이정표가 있는 해발 810m지점이 큰 세개골 입구로 계곡을 가로 질러놓은 철다리는 영구적으로 아주 튼튼하게 놓여있다. ( 15시)
계곡의 숲은 하늘을 가리고 한낮에도 햇볕조차 들지 않는 음침한 곳에 천수를 다하고 널부러진 고사목에도 계곡의 바위에도 푸른 이끼로 단장을 한 자연의 신비를 간직한 원시림에 이름모를 야생화 다투어 피어나고 산새들 지저귀는 지상의 낙원이어라.
작은 세 개골입구에 놓인 철다리
골이 깊어서인지 수량도 많고 용소를 흘러넘치는 명경지수 맑은 물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들어 10시간이 넘는 산행 길에 지친 몸과 마음을 씻어내니 신선이 따로 없다. (15시 20분 30분간 목욕)
홀가분한 마음으로 다리위로 올라서니 이정표에는 의신까지 아직도 3.9km.
계곡을 끼고도는 등산로는 오가는 사람이 별로 없어도 잘 정비가 되어있고 의신 3.5km지점에는 공비토벌 최후의 격전지 입구 라는 간판 앞에서 우리는 가던 발길을 멈추고 숙연한 마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16시)
1952년 겨울 국군토벌대의 맹렬한 추격으로 위기의식을 느낀 공비들이 각 비트에서 최후의 결전을 위해 가장 험준하고 인적이 드믄 대성 골로 모여들어 결사항전을 하다 최후를 맞이한 곳으로 그때의 처참했던 일을 상기시키듯 길섶에 피어나는 야생화도 붉게 물들고 우리민족의 비극으로 역사는 증언을 하고 있지만 흐르는 세월 따라 대성 골에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하고 산새들 지저귀는 평화가 깃들고 있다.
등산로는 7부 능선을 넘어 화전민들이 터전을 일구던 대성동 마을에 도착한다.
칡넝쿨 다래넝쿨 무성한 산 비알에 집 두 채가 마을을 지키며 지금은 이곳을 찾는 피서객들을 상대로 주점을 열고 있다 .(16시 20분 10분 휴식)
이제는 고생도 끝이 났으려니 안도의 한숨을 쉬는데 아직도 의신마을 까지는 2.5km가 남았다는 대답에 맥이 탁 풀리고 발바닥에 열기를 참을 수 없어 등산화를 벗고 두 다리를 쭉 뻗는다.
목욕을 하고 갈아입은 옷이 땀에 흠뻑 젖어 줄줄 흘러내리고 마을을 지나고도 사람이나 겨우 다니는 협소한 등산로 지친발걸음에 걷어 채인 돌부리 그 통증을 어디에 하소연 하나?
산 모랭이 돌고 돌아 계곡과는 정반대로 오른쪽으로 90도 방향을 틀어 비알 길을 내려서니 의신매표소, 지루하고 힘들었던 종주 길도 종지부를 찍는다. (17시 10분)
되돌아보면 30km가넘는 태산준령을 준비도 없이 도전하여 무사히 완주를 하게 된 것은 큰 행운으로 산행시간 13시간 40분은 내 생애 최장시간으로 기록될 것이며 성삼재에서 중산리까지의 종주보다도 훨씬 난이도가 높은 산행으로 고난의 수행이었으며 이제 무박산행은 나의 체력에 버겁다는 것을 절감하며 가능하면 무리한 산행을 자제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지리산을 찾는 이들 중에 벽송 능선을 아는 이 몇이나 되며 의신마을을 아는 이 몇이나 될까?
하동의 화계장터에서 쌍계사 입구까지 5.2km 그곳에서 의신마을 까지 9km.
공비들이 최후의 격전을 벌인 만큼 지리산 최고의 오지로 계속 오르면 삼정마을을 거쳐 벽소령으로 올라서게 되고 북쪽의 삼정리 음정마을로 이어지는 비상도로가 실 눈금처럼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