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국

제 3부 진시황제는 누구인가?

김완묵 2006. 7. 18. 05:32
 

 

 

 

  제 3 부    진시황제는 누구인가?

 

 

 


화청지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에있는 진시황릉은 여산(1,307m) 줄기가 동에서 서쪽으로 뻗어나가며 구릉지에 과수원이 즐비하게 이어지는 사이로 무성한 숲에 둘려 쌓인 야산으로 높이가 115m 엿으나 지금은 87m로 낮아 졌으며,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계단으로 이어지고 위에는 타일을 깔아 공원처럼 벤치도 있고 간이상점과 사진사까지 진을 치며 사방을 둘러보는 전망대로 많은 관광객으로 붐빈다.

 

 

 

 

 


무덤의 규모는 넓이 25만평에 직경이 6km인데 동서로 485m, 남북으로 515m로 1974년 우물을 파던 농부(양 지발-현재 75세 로 생존해 있음)에 의해 발견이 되어 무덤 속에 투시경으로 사마천의 기록을 대조한 결과 확인을 하게 되고 정부에서 양지발 에게 포상금으로 3천원을 주고 관리인으로 채용을 하였는데 미국의 클린턴대통령과 악수하는 장면이 매스컴을 타며 유명인이 되어 관광객들의 사인공세에 시달리게 되지만 일자무식인 그도 매일같이 그려대는 이름이 이제는 어느 서예가보다도 달필이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무덤을 내려와 진시황제의 병사들이 열병식을 재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무엇이 무엇인지 실감을 할 수 없는데 다음 장소로 가보면 자세히 알게 된다며 지하궁전 박물관으로 안내를 하며 일정에 없는 곳이므로 일인당 10불씩을 내라고한다.

 

 

 


가이드야 안내만 하면 그만 이지만 하나투어에서 이렇게 귀중한 장소에 옵션으로 묶는다는 것이 야속하기도 하고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이곳까지 와서 그냥 돌아서기에는 발길이 떨어지지 않으므로 입장료를 내고 350분의 일로 축소한 지하궁전 안으로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땀에 젖은 몸을 식혀주고  제일먼저 돌비석에 “ 前 言 „ 이라는 글자가 우리를 반기는데

 

 

 


                              능원풍광   지하황궁

                              상구천문   하구지형

                              시황관침   사내여생

                              일람오비   사미우궁

                                  이라 적혀있고(시간상 한문으로 쓰지 못 하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음)

 

 

 

 

좁은 계단을 따라 지하 8.7m의 지하궁전에 도착하면 어두운 조명 속에 하늘에는 “일 월 성신”해가 떠있는 낮에는 조명이 밝고 태양이 움직이며 서산너머로 넘어가면 어둠 속에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재현되는데 천상에는 가위를 든“여”와 낫을 든“복 희”가 마주보며 하늘을 나는데 하반신이 뱀의 형상으로 바닥의 정중앙에 누어있는 진 시황을 호위하는 수호천사로 동쪽 벽에는 “시황동기”라는 진시황제의 행차와 남쪽 벽으로“시황출순”으로 지방순시, 서쪽 벽에는“육국가무 ”로 각국의 무희들이 악기와 가무를 하는 모습, 다음으로 북쪽 벽에는“육국궁전”으로 함양궁을 중심으로 36개 군주들의 궁궐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내성이 4km,외성이 6km에 달하며 일월성신을 진주와 보석으로 만들고 산과 대륙은 금과 은으로 강과 바다는 수은으로 채웠으며 물고기 기름으로 장명등을 밝혔다고 하니 그 화려함의 극치는 필설로 형언할 수 없겠다.

 

 

 

 

진시황이 즉위하며 시작된 공사는 38년간 72만명의 인부가 동원되어 계속 되는데 진시황이 죽고 그의 아들이 2년 동안 공사를 한 후에야 마무리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무덤에는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접근하는 물체를 향해 화살이 날도록 장치를 하였으며 무덤의 비밀을 지키기 위해 공사인부를 모조리 생매장을 하고 진시황의 시체도 처음에는 다른 곳에 매장하였다가 2년 후에 아무도 모르게 이장을 하였는데 마지막 인부들까지 생매장을 하여 비밀이 지속될 수 있었으며 천하장사 항우가 함양궁을 점령하고 30만 대군으로 30일간 약탈과 방화로 파괴를 하였지만 지하궁전만은 찾지를 못했다고 한다.

 

 

 


진 시황은 지하 궁전뿐만 아니라 천하를 통일한 후 변방에서 침입하는 적들을 방어하기 위해 만리장성을 수축하였으며 어마어마한 아방궁을 건설하며 수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살상을 일삼으니 백성들에게 원성을 사게 되지만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수시로 지방을 순시 하는데 나이 50세에 하남성 사구를 순시중 병으로 사망(둘째 아들에게 독살되었다는 설도 있음)하고 4년 만에 진나라도 망하게 되었으니 천하를 통일하고 불로장생 하겠다고 욕심을 부리지만 부질없는 인간사가 허망할 뿐이다.

 

 

 


중국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면서도 폭군으로 혹독한 평가를 받는 인물.

 

 

 

하지만 성문법을 완성하고, 도량형의 표준을 정하고, 화폐를 통일한 것은 그의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를 해야 마땅할 것이다.

 

 


지하궁전을 나서며 머리는 더욱 복잡해지고 병마용총을 찾아가는 길은 주차장에서 10여분 거리이지만 30〫도가 넘는 폭염에다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지친 몸으로 누가 시키지 않는데도 2불씩이나 하는 미니기차가 있는 곳으로 몰려간다.

 

 


세계8대 불가사의 중에 하나로 유네스코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병마용총은 진시황릉에서 1,5km떨어진 곳에 있는데 발굴현장을 건물로 지어 전시실로 보존하고, 제1전시실로 들어가면 동서로 230m, 남북으로 62m의 규모로 가장 크며 갱의 깊이가 5m인데 책이나 T V 로 보아온 터라 낮 설지는 않지만 살아 움직이는 듯 4열종대로 도열해있는 진품 앞에서 꿈인지 생시인지 흥분과 벅찬 감동 속에 가이드의 설명이 귓전에서 맴돌고 모두들 시선을 거둘 줄을 모른다.

 

 


무덤 안에는 병사가 8,000여명 말이 500여필, 전차가 130량이 있다고 하지만 현재까지 병사 1,000여명과 적은수의 말과 차량만이 발굴된 상태에서 중단이 되었는데 현재의 기술로는 완전한 복원작업이 불가능 하므로 앞으로의 일은 후세들에게 숙제로 물려주고 발굴된 부장품들을 복원하는데 주력하고 있는데 발굴 작업을 마무리 하려면 100년의 세월이 필요하다고 한다.

 

 


俑이란 사람이나 동물형태의 부장품으로 속이 비어있는 도자기인데 서쪽에 있는 진 시황을 수호하기위해 동쪽을 향해 도열해있고 무덤을 발견한 우물터는 제1호 갱 전면에서 좌측으로 병사들이 출입하는 문의 표시된 팻말이 있는 곳이라고 하는데 조금만 비껴 팠어도 진시황의 능은 영원히 지하궁전에서 잠을 자고 있었을 것이다.

 

 


토용마다 표정이 다르고 실제 병사와 같은 크기로 만들어졌는데 제1호 갱에는 보병부대들이 주축을 이루고 병사들이 도열해 있는 칸막이는 통로로 이용되었으며 맨 뒤편으로는 부서진 토용들을 복원하는 작업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2호 갱으로 들어서면 1호 갱의 절반정도로 토기 굽는 가마터가 있고 중장비를 갖춘 실전부대가 배치돼 활 쏘는 기마병 ,전차병, 긴 창을 든 보병들이 도열해있다.

3호 갱은 지휘부로 남쪽 방은 작전회의실로 북쪽 방은 제사를 지내던 방으로 분류하는데 제사에 사용했던 사슴뿔도 출토 되었다고 한다.

 

 


3호실 옆으로 긴 회랑에는 출토품 중에서 가장 완벽한 토용을 전시하고 있는데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서 활쏘는 병사, 늠름하게 서있는 병사와 말을 끌고 가는 마부의 상은 2,000년의 긴 세월을 뛰어넘는 현재에도 감탄이 절로 나는 예술품으로 주목을 받고 그 옆으로는 고고학자들의 비상한 관심이 집중되었던 진시황의 청동마차가 전시되어 있다.

 

 


1980년 발굴된 동 마차는 2대로 앞에서 황제의 길을 열어가는 마차를 고차라 하고 황제가 타는 마차를 안차라고 하는데 고차는 말 네 필이 끄는 수레에 마부가 한사람 앉아있는 둥근 지붕만 씨 워 있는 단순한 것이고, 안차는 화려한 장식을 한 말 네 필이 끄는 뒤에 마부가 무릎을 꿇고 긴장된 모습으로 앉아있는 뒤로 둥근 지붕아래 벽을 사각형으로 휘장을 치고 사방으로 미닫이문을 만들었는데 3kg의 금과 은으로 장식을 하고 보석으로 치장을 하였다고 하니 천상천하 유아독존, 지존의 어가인데 어련할까?

 

 

 

세계에서 개인의 무덤으로는 가장 큰 진시황의 무덤을 둘러보며 살아생전 백성들을 핍박하며 만든 거창한 유물이 후세들에게는 자랑스러운 유산으로 하루에 입장객이 2-3만 명씩이나 된다고 하니 그 수입도 만만치를 않을 것이고 가장 짧은 생애에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진시황이야 말로 오천년 중국역사에 빛나는 최고의 영웅으로 칭송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로써 2일간 서안의 역사관광을 마감하게 되는데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둘러보다 보니 제대로 숙지를 하기가 어렵고 풀어쓰는 글자 속에도 오차가 있을 것이고 해박한 지식의 가이드도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을 것이니 여행길에 여담으로 참고를 할 따름이다.

 

 


저녁노을이 화려하게 불꽃을 피우며 서안 관광을 축원 하는듯 우리의 들뜬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항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2일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주, 진, 한, 수, 당나라까지 5대왕조의 도읍지로 천 여년간 영화를 누리며 집권자의 필요에 따라 호경에서 함양으로 장안에서 서안으로 이름까지 바꿔가며 명맥을 유지한 유서 깊은 서안이 다시 한번 명성을 떨칠 그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