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양천 문학

제19호 - 양천문단

김완묵 2019. 11. 15. 11:40

발행일: 2019년 10월 31일


강화 화남 생가 가는 길    김 완묵


6코스의 출발점이 풍물시장이다. 이름도 정겨운 풍물시장은 강화도에서 생산하는 특산물을 중심으로 270여개 점포에서, 오일장과 함께 수도권시민들의 먹 거리를 제공하는 전통시장으로 성황을 이루고 있다. 시장을 뒤로하고, 강화읍내를 빠져나오면 너른 들녘이 펼쳐진다. 농한기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이지만, 30여 년간 항몽전쟁을 하면서도 굳건하게 나라를 지킬 수 있었던 곳도 기름진 곡창지대가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수로에 걸려있는 징검다리를 건너 가재마을로 들어선다.

 

폐업중인 강화인삼스파랜드 앞마당에서 산기슭으로 돌아선다. 누에가 누어있는 듯 완만한 산자락은 소나무가 울창하여, 한 겨울에도 삼림욕을 하기에 적당하여 만보걷기 코스까지 조성되어 있다. 30여 분간 소나무 숲속에서 삼림욕을 하고 나면, 심신의 피로가 싹 가시고 기분이 상쾌해진다.


대몽항쟁의 흔적이 남아있는 선원사지로 내려선다. 사적 제259호로 지정된 선원사는, 고려조정이 강화로 임시수도를 옮겨왔던 고종 32(1245)에 대몽항재의 정신적 지주로 삼아 사찰을 세우고, 진명국사, 원오국사, 자오국사, 원명국사, 굉연선사 등 당대의 국사, 고승들이 주석하면서 당시 최대사찰인 송광사와 더불어 2대 사찰이었다고 한다.

 

발굴조사 결과 절의 규모는 남북250m, 동서 170m에 이르는 장중한 규모이고, 모두 네 구역으로 나뉜다. 선원사는 부처의 힘을 빌어 국난을 극복하고자 대장경을 간행했던 곳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곳에 대장도감을 설치하여 대장경 목판을 조각 봉안하여, 대구 팔공산에 있는 부인사에 보관하였다.

 

그러나 고려를 재침공한 몽골군이 경상도까지 진출하여 일대의 사찰을 방화하고 약탈을 하는 과정에서, 대구 부인사에 모신 대장경과 경주 황룡사가 소실되는 피해를 입게 된다. 강화도에서는 또 다시 대장경을 간행하게 되었으니, 처음 간행한 것을 초재대장경이라 하고, 두 번째 간행된 대장경을 재조대장경이라 한다.

 

재조대장경은 팔만장이 넘는 목판의 수를 통해팔만대장경또는 고려대장경이라 부른다. 지금 경남 해인사에 보관중인 대장경이 두 번째 간행된 팔만대장경이다. 4년 전 선원사를 찾았을 때는, 소의 울음소리가 목탁소리와 같은 우보살(牛菩薩)이 있어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천수를 다하고 전설로만 남게 되었으니 아쉬움이 남는다.

 

선원사의 자랑거리인 연꽃 단지로 내려선다. 한겨울이라 연꽃의 진수를 볼 수는 없지만, 불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적인 식물이라 사찰마다 정성스럽게 연꽃 단지를 조성하고 있다. 산모랑이 돌아서면 지산리 남산동이다. 화산선생이 남산동에 사는 친척을 찾아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마을이다.

 

예전에는 행세께나 했던 집안이었겠지만, 퇴락된 모습이 안쓰럽고, 길손이 쉬어가는 정자에는 나옹선사의 시(청산은 나를 보고)가 걸려있다. 우리 인생사가 어찌 그대로만 살아갈 수가 있나. 남에게 비난받지 않고 살아온 내 자신이, 잘 살아온 것인지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산마루를 넘어서면 연리 보건진료소가 나온다. 버스정류장 이름은 연동고개이고, 이곳에서 서쪽으로 혈구산과 고려산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자락에 있는 찜질방을 돌아 산기슭으로 올라선다. 지나온 선원사지 3.24km, 찾아갈 삼동암천1.55km 이정표를 바라보며 연동고개를 넘어가면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금월리를 지나 삼동암천에 도착한다.

 

연리와 고능리의 농경지를 문전옥답(門前沃畓)으로 만든 삼동암천은, 혈구산과 덕정산에서 발원하여 화도돈대로 유입된다. 인천시 종합건설 본부에서는 430억원 들여 5.89km에 달하는 하천 폭을 넓히고, 교량을 가설하여 농경지의 침수를 예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악기제작체험장 인 환단문화원을 지나 또 다시 산 고개를 넘어, 바로보이는 영모사를 살펴본다. 탐라국 고을나 왕의 후예 중시조 성주공(고말로)15세손 문충공을 모신사당이다. 양지바른 산자락에 터를 잡은 두두미 마을이, 화남 고재형 선생이 태어난 고향이다.

 

화남(和南) 고재형(高在亨), 고향 강화를 두발로 다니면서 쓴 기행문을 심도기행(沁都紀行)이라 한다. 1906256수의 한시와 주석으로 지은 심도기행은 2008년에야 완전하게 번역되었으며, 심도기행으로 인해 강화의 숨은 역사와 문화가 꽃을 피우게 되었다.

 

두두미 마을은 고재형 선생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꽃마니에 뜨락이라는 염색공방과 쉼터가 있고, 인심 좋은 두운리를 지나면서 그동안 친절하던 나들이길 리본과 표지목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나름대로 방향을 잡아 터진개에 도착하며 2코스와 만나게 된다.

 

해변가에 설치한 장승모형의 설치미술품을 비롯해서, 갯벌을 배경으로 여러 종류의 상징물이 있다. 이곳에서 광성보까지 진행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지난번 2코스를 답사한 구간이라 생략하고, 스탬프가 있는 정류장에서 40분간 기다린 끝에 강화읍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