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대 리포트

세계의 역사 - 서술적 글쓰기

김완묵 2019. 5. 18. 20:48

일   시 : 2019년 5월 18일


29점 획득

세계사 시험문제 분석

 

유럽의 경제적인 변화: 15세기 초만 하더라도 유럽은 아시아에 비해 매우 낙후되어 있었다. 활동무대역시 지중해를 중심으로 극히 제한되어 있었는데, 1453년 오스만 틔르크가 콘스탄티노풀을 점령하면서 동아시아로 통하는 무역로를 차단하고 동양의 특산품인 향신료와 비단에 비싼 세금을 부과하는 횡포를 부리게 된다. 이슬람세력에 맞서기 위해 새로운 항로를 모색하던 중, 선두로 나선 포르투갈이 대서양 연안의 서아프리카를 돌아 1486년 희망봉에 도착한다. 인도양 항로를 개척하고 동방무역을 설립한 뒤, 식민제국에서 수탈에 가까운 헐값에 들여온 특산품으로 유럽시장이 넘쳐난다. 상업혁명은 가격혁명으로 이어지고, 빈부의 격차가 벌어지면서, 물가고에 시달리던 도시서민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부작용이 속출하게 되었다.

 

 

 

유럽의 종교개혁: 16세기 초 유럽은 가톨릭(천주교)교회를 중심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교황과 세속군주들이 교회의 막대한 토지재산을 노리는 물질주의를 지향하면서 탐욕과 부패를 드러내었다. 종교개혁의 단초를 제공한 것은 면죄부 판매에 대한 마르틴 루터의 저항이었다. 당시 가톨릭교회는 고해성사로 신의 은총을 받을 수 있는 것이 면죄부라고 무지한 민중들을 꼬드겼다. 루터는 1517년 면죄부 판매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발표했다. 루터의 주장은 정치적인 차원으로 확산되어 교황으로부터 파문당하고, 이에 맞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루터의 가르침에 고무된 일부 군주와 농민들은, 152512개 조를 내세우며 기존체제에 대한 격렬한 도전을 하였지만,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고대왕국의 성장과 쇠퇴: 북아프리카는 지중해와 가까이 있다는 지정학적 이유로 지중해연안의 국가로부터 많은 시달림을 당해 왔다. 기원전 1200년경에는 페니키아로부터 침공을 당했고, 기원전 300년에는 로마로부터 점령을 당해 로마의 영토로 편입되기도 했다. 기원후 로마가 멸망한 뒤 7세기에는 이슬람의 속국이 되어 600년 동안 통치를 받아 왔다. 북아프리카는 이집트를 제외하고는 자체적으로 나라를 건설해 보지도 못하고, 점령군의 손아귀에서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규범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많은 변화를 겪어 왔다. 해서 같은 대륙에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중부아프리카와 전혀 다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천하의 요새인 사하라사막 때문이다. 일부학자들 사이에서는 지중해로 보느냐 아프리카로 보느냐로 북아프리카의 정체성을 화두로 거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