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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 시간을 먹다 - 대표 수필선 제23집

김완묵 2019. 5. 4. 07:22

출간일: 2019년 3월30일

 부안 마실길 67 p



                                                      부안 마실길 - 변산반도

행복한 군민, 자랑스런 부안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부안군은, 공해를 일으키는 공장도 없고, 기름진 만경평야와 서해에서 잡아 올리는 수산물로 풍요로운 인심을 구가하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이다.

 

부안버스터미널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지나면서 새만금방조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한가운데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가력도공원은 지난번에 다녀간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정면으로 보이는 새만금홍보관이 반가워 달려가지만, 개천절이 월요일인지라 문이 굳게 잠긴 휴관일이다.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는데, “별난마실길안내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마실길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들렸더니, 생각지도 않은 환대를 받게 된다. 십년지기라도 만난 듯이 반갑게 맞이하는 소장님(김종립)의 안내로 자리를 잡고미당(서정주)선생님과 김소희명창의 유지를 계승하는 김윤서명창이 건네는 작설차 대접을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마실길에 관한 자료를 제공받는다.

 

향토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조성한 마실길은 변산반도의 해안을 따라 8구간으로 나누어 66km를 조성하고, 마실길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안내와 홍보물을 제공하고 있다내소사를 품고 있는 내변산과 채석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외변산의 절경을 답사할 꿈을 그리며 마실길 1구간을 시작한다.

 

동해의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며 걷는 길을 해파랑길이라 하고, 휴전선을 횡단하는 침묵의 길을 평화누리길이라 하면, 서해의 갯벌과 남해의 다도해를 바라보며 걷는 길은 사색의 길이요, 바다누리길이다. 사색의 길에서는, 나 홀로 걷는 모습 또한 아름다운 정경이 아닌가. 우보천리(牛步千里)요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 호젓하게 걷는 이 길이 나의 행복이어라.

 

마을을 상징하는 이 지방의 사투리인 마실길은 옆집에 놀러갈 때 걷던 고샅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주도의 올래길이 매스컴을 타면서 지방마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둘레길조성에 편승하여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재로 조성된 마실길은, 2012년 태안의 솔향기 길과 함께 전국 5대 명품 길로 선정 되기도 한 아름다운 길이다.

 

군산대학교 휴양림 옆으로 대항리 패총이 눈길을 끈다. 지금이야 마늘밭으로 변신하여 형태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1967년 발굴당시에는 넓이 10m에 두께가 60cm규모였다고 한다. 선사시대이후 어민들이 조개를 먹고 버린 조개무더기인데, 빗살무늬 토기와 뗀석기가 발견되어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인정받아 전북 기념물 제50호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때 마침 썰물이라, 고운모래와 기암괴석들이 깔려있는 변산해수욕장까지 바닷길을 걷는다. 사랑의 낙조공원으로 조성된 팔각정에 오르면, 변산해수욕장과 서해안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다멀리 고슴도치섬으로 부르는 위도와 중국의 닭 우는소리가 들린다는 상왕등도, 기러기 날아가는 비인도와 고군산열도가 펼쳐지는 낙조공원에 일몰이 내려앉으면, 붉은 노을이 연인들의 소중한 추억 속으로 젖어들게 된다.

 

서해바다의 대표적인 변산해수욕장으로 내려선다. 하얀 모래와 푸른 송림이 어우러진 백사청송(白沙靑松)이 변산해수욕장이다. 1933년에 개장된 해수욕장은 고운모래해변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심이 1m 내외로 낮아 수온이 따뜻하고 물이 맑아 가족나들이에 더없이 좋은 해수욕장이다.

 

변산해수욕장이 국립공원에서 제외됨에 따라 새로운 변신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해수욕장 남쪽에 송포 마을은, 지지포에 사는 선비가 소나무아래서 제자를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한데서 소나무(), ()자를 합하여 松浦라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 송포마을에서 마실길1구간이 끝나고 2구간으로 이어진다.

 

기암절벽 돌아서는 아슬아슬 오솔길에 들어서면, 소망담긴 조개껍질이 철조망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사람마다 소망이 있게 마련이라, 청즉무욕(淸則無慾)이란 심성이 맑으면 욕심이 없어진다, 즉 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평온하다는 뜻이 아닐까. 바로 청빈낙도(淸貧樂道)를 이르는 말이다.

 

변산해수욕장을 바라보는 전망대를 돌아서면 사망암(士望岩)이 반겨준다. 그 옛날 마을에 사는 선비가 바위에 올라 북향을 바라보며 때를 기다렸다고 하여 전해오는 곳이다. 곧이어 출렁다리를 건넌다. 깊은 계곡에 걸려있는 출렁다리는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스릴 넘치는 교량이다. 한번 구를 때 마다 자지러지는 단말마는 사랑의 교향곡이다.

 

산등성이에 펜션마을이 바라보인다.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조성된 그림 같은 방갈로, 심신의 피로를 풀고, 새로운 활력을 충전시키는 휴식공간이 바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십승지지가 아닐까. 지중해연안의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마을을 내려서면 고사포 해수욕장이 반겨준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옥녀탄금(玉女彈琴)혈이라, 옥녀가 장고 치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이 갖는 의미에서 고사포(鼓絲浦)라 부른다고 한다. 2km에 달하는 송림과 백사장이 고사포해수욕장의 특징이다. 원광대학교 수련원에서 시작하는 소나무 숲은 서해안 제일의 명승지로 손색이 없다.

 

해수욕장 끝자락에 도착하면 2구간을 종료하는 성천항에 도착한다. 모래의 성이 하늘까지 쌓이는 곳이라하여 이룰, 으로 부른다. 성천항에서 건너다보이는 섬은 새우 모양을 닮았다 하여 ()섬이라 부르는데매월 음력 보름이나 그믐을 전후하여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라 부르는  2km 바닷길이 열린다

 

성천포구에서  1km 거리에 있는 하섬은 3 평쯤 되는 작은 섬이다. 1950년경에 원불교 재단에서 사들여 해상수련원으로 쓰고 있어 수양을 위해 예약한 원불교 신도나 신도와 동행한 일반인만 출입할  있다 중앙에는 지하 60m에서 솟아나는 석간수가 있어서 예로부터 사람이 살아 온 섬이다

 

3구간을 시작하는 성천항에서 어린학생들을 만난다. 순천에서 온 대안학교 학생과 선생님으로 구성된 20여명의 서해안 종주 팀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위해 국토종주에 나선 학생들을 대하며, 우리 청소년들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

 

山海絶勝 半島公園변산반도국립공원을 함축하여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이 경주국립공원을 제외하고는 산을 중심으로 하는 내륙공원과 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해상공원으로 나누고 있는데, 유독 변산반도국립공원만은 육지와 바다를 함께 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설악산이나 지리산과 같이 화려하고 장엄한 것도 아니고, 최고 높이가 500m 에 불과한 평범해 보이는 변산반도이지만, 속살을 헤집고 들어서면 숨겨진 보석처럼 아름다운 절경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바다와 산이 조화를 이루는 곳, 1971년 도립공원에 이어 1988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여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 변산반도국립공원이다.

 

하섬을 정면에서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지나고, 출렁다리와 정겨운 조릿대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해안도로와 만나 반월 안내소에 도착한다. 이곳 반월안내소를 운영하는 유재길 선생은 별난마실길 안내소에서 만난 인연으로 더욱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막걸리대접을 받으며 정담을 나누는 중에, 부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마실길도 조성하고, 변산반도를 발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기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반월안내소부터 변산반도의 절경인 적벽강이 시작되고, 수령500년이 넘는 팽나무 2그루가 있어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의 쉼터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지킴을 하고 있다.

 

적벽이 내려다보이는 해안가로 내려선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거센 풍랑에 부대끼며 다듬어진 조물주의 걸작 품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름의 유래는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았던 적벽강(중국 황강현(黃岡縣))과 자연경관이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밀물 때라 해안가로 내려서지 못하고,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을 돌아가면 수성당(水城堂)에 도착한다. 이곳 서낭당에서는 해마다 음력 1 2일에 동제를 지낸다딸 여덟 자매를 낳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주고 막내딸을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다스렸다는 개양할머니의 전설이 있는 사당이다. 이곳은 굿 발이 잘 받는 길지여서 무속인 들의 치성장소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수성당 언덕바지에서 바라보는 격포해수욕장이 일대 장관이다. 메밀꽃이 만발한 언덕 배기를 배경으로 푸른 바다와 울창한 송림, 그 사이로 우뚝 솟은 분홍빛깔의 대명콘도와 닭이봉 전망대가 잘 어우러진 산수화를 그려낸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언덕을 내려서면,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군락지를 만난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심은 수백 년 된, 후박나무가 약 200m 거리에 13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곳 죽막마을을 경계로 적벽강과 채석강이 나누어진다.

 

채석강의 절벽을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해넘이 채화대에 도착한다. 때마침 일몰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모두들 낙조를 바라보며 셔터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수평선에 걸려있는 위도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태양이 진분홍빛깔로 온 누리를 불태운다.

 

닭이봉과 채석강 사이에 있는 격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  500m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고 물이 맑으며경사가 완만해 해수욕장으로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울창한 송림뒤편으로 격포 배후도시가 펼쳐지고 닭이봉 기슭을 돌아가면 채석강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밀물 때라 채석강으로는 통행이 불가하고, 반월안내소에서 주선한 닭이봉 관리소장을 만나는 것이 급선무다.

 

일몰까지는 3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어 닭이봉에서 마지막 일몰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땀이 후줄근하도록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서니 김종철 소장이 반겨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 오감을 만족시키는 황홀함의 연속이다. 낙조에 붉게 물든 격포항의 모든 사물이 환상적이다.

 

서해낙조(西海落照)를 변산5경으로 꼽는 것도 낙산의 일출과 격포 낙조를 견줄 수 있는 비경이기 때문이다. 변산의 낙조대에 서면 멀리 서해에 점점이 떠 있는 고군산군도와 위도위로 내려앉는 일몰을 볼 수가 있다. 친절한 서비스로 냉커피를 대접받고, 마실길이 수놓인 스카프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인정이 넘치는 부안에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한다.

 

땅거미 지는 어둠을 뚫고 야경이 아름다운 채석강에 내려섰지만, 사진 한 장 남길 수가 없고, 채석강 발목까지 차오른 물보라를 바라보며 근처에 있는 금정모텔에 여장을 푼다. 생각지도 못한 태풍소식에 마음조리며 새벽 3시에 눈을 뜨니 창밖으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천재지변(天災地變) 앞에서 무력한 것이 인간이 아닌가. 한 여름 다가도록 일본으로 중국으로 피해가던 태풍이 뜬금없이 10월 달에 제주와 남해안을 강타하고 있으니 태풍 차바가 야속하기만 하다. 하늘의 노하심에 맥없이 두 손을 들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