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품세계/문학공간

343호 - 2018년 6월

김완묵 2018. 6. 30. 18:32

창간일: 2018년 6월호

한강 출판사


                                               시화방조제

이번 서해안 답사는 인간의 의지를 꽃피우는 시화방조제 편이다. 안산역에 도착한 시각이 720분이다. 버스 승강장에서 123번 버스 운행시간을 확인하니 도착시간이 5분 남았다. 배차간격이 30분이라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이다. 하지만 안산역 주변이 교통지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이다. 정류장 하나를 이동하는데 10분씩 걸리니 말이다.

 

70만 인구가 상주하는 중심지이고, 반월공단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시간이라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겨우 중심지를 빠져나와 옥구공원을 지나며 총알택시처럼 달려 조력발전소 정류장에 도착하니 840분이다

 

오늘은 영종도를 경유하는 날이다. 단조롭고 지루한 11.2km의 시화방조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영종도의 속살을 체험하는 것이 훨씬 보람이 있을 것으로 판단을 하고, 시화방조제 8km지점에 있는 조력발전소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 구간을 걷는다는 목표를 정해두었다.

 

물안개로 가시거리가 짧아 실망을 하면서도, 전망탑(높이 75m)을 오르기 위해 달려가니, 전망대는 10시가 돼야 문을 연다고 한다. 1분이 아쉬운데, 무한정 기다릴 수가 없어 공원 주변의 조형물을 돌아보고 방아머리 선착장을 향해 출발한다.

 

시화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는 대부도까지 뱃길로 다니던 곳이라, 인간의 위대함을 실감하는 현장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바다를 매립하여 여의도 면적의 60배에 달하는 간척지와 배후지를 개발하여 수도권 공장을 이전하고, 경쟁력 있는 농업육성과 휴식공간을 조성하는 대역사였다.

 

1987년부터 시작하여 6년 만에 완공한 11.2km의 시화방조제는 시흥시오이도와 안산시대부도 방아머리를 연결하는 대공사였다. 처음에는 방조제 안쪽을 담수호로 만들어 산업용수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수질오염이 심각하여 담수화 계획을 포기하고, 바닷물이 흐르는 호수로 변경하였다.

 

청정해양 에너지를 개발하기위해 밀물 때 바닷물을 시화호로 유입하여 발전하고, 썰물 때 수문으로 배수하는 대규모 해수유통을 통해 수질을 개선하는 조력발전소는 시설용량이 254KW로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소양강댐의 1.5배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에 놀랄만하다.

 

방아머리까지 3.2km를 걸어가는 동안,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굴곡이 심한 서남해안에서는 일찍부터 간척지 매립공사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첨단공법으로 매립이 시작된 것은 서산방조제에 이어 두 번째 이고, 이를 계기로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새만금방조제가 탄생한 것이다.

 

방아머리(舂頭浦)선착장에 도착한다. 조선시대 지도(1871년 제작)에는 방아 찧을 용()자를 써서 용두포라고 기록하고 있다. 디딜방아처럼 생긴 지형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용두포는 대부도와 떨어져 있어 징검다리로 건너다녔으나, 구봉염전을 만들면서 대부도와 연결되었다.

 

방아머리삼거리에서 왼쪽에 보이는 대부도공원으로 진입하여 대부바다향기 테마공원으로 들어선다. 수 십 만평의 너른 습지는 시화방조제가 완공된 뒤로 생겨난 부산물이다. 수 십 기의 풍차를 앞세워 고수부지에는 꽃동산으로 조성하고 낮은 습지에는 수생식물을 심어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대부도(大阜島)는 원래 옹진군에 속해 있다가, 1994년 시흥시 오이도(烏耳島)와 대부도 방아머리를 잇는 총 연장 12.7의 시화방조제로 생활권이 연결되면서,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면적이 33.08에 해안선이 61이고, 인구 5,300명이 상주하는 서해안에서 강화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북동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대선로를 따라가는 중에, 조선시대 풍속도를 그려놓은 종현동왕진물 표지석을 발견한다. 조선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몽진하다가 목이 말라 신하에게 물을 찾아올 것을 명령하자, 이 우물에서 물을 바친 뒤로 왕지정(王指井)”이라 칭하고 기념으로 쇠종을 하사한 뒤로 마을을 종현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중고등학교 삼거리에서 선재도 방향으로 선회한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나며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진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늦게 비가 온다고 했는데, 너무도 일찍 시작한다. 유난히도 심한 봄 가뭄으로 소양강 댐의 수위가 낮아져서 발전이 중단될 정도라고 하니 반가운 손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둘러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산을 받쳐 든다. 오늘의 일정을 밖에 소화하지 못했는데, 중도에서 포기하기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선재대교까지는 걷기를 멈출 수가 없다. 다행이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걸어가는 몰골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한 시간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 선재대교에 도착하며 빗줄기도 가늘어지고, 주위에 펼쳐지는 경치에 매료되어 다시 용기를 얻는다.

 

 

 

                               영흥도 둘레길

선재대교를 올라서면, 안산시에서 인천시 옹진군으로 진입한다. 엷은 운무로 시야는 흐리지만, 주위에 펼쳐지는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다. 선재선착장의 상징인 크루즈호는 돛을 팽팽히 당겨 출항준비를 마친 범선의 모습이고, 부둣가에 닻을 내린 수 십 척의 어선들은 제왕을 모신 호위무사들처럼 대오를 정연하게 갖추어 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선재대교를 건너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걸어오며 등산화에 가득 찬 습기와,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양말을 벗는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할 수가. 발가락과 발바닥을 마사지하며, 혹독하게 고생하는 발바닥에 고마움을 표시한다.

 

선재도(仙才島)는 영흥도(靈興島)와 대부도(大阜島) 사이에 있는 섬으로, 조선초기부터 남양도호부에 소속되었다가 대부도에 편입되었고, 1914년 영흥도와 함께 부천군으로, 1973년 옹진군에 편입된 뒤로 1995년 옹진군이 인천시 관할이 되면서 인천시가 되었다.

 

주위경관이 아름답고 수려하여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던 곳이라 하여 선재도라 부른다. 원래 소우도(小牛島) 또는 독우도(犢牛島)라 하였는데, 조선 후기부터 선재도(仙才島)로 개칭하였다. 소우나 독우는 모두 송아지를 뜻하는 것으로 영흥도를 어미 소처럼 따라다니는 송아지 섬이라는 유래를 갖고 있다.

 

서쪽의 영흥도와는 200111월에 개통된 영흥대교(길이: 1,250m, 너비: 9.5m)를 통해 연결되고, 동쪽의 대부도와는 200011월에 개통된 선재대교(길이: 550m, 너비: 13.3m)를 통해 연륙되었다. 면적은 2.47이고, 해안선 길이는 10.9이다.

 

10여 분간 휴식을 하고 다시 일어선다.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리는 목섬은, 밀물시간이라 사람들이 건너다니던 흔적만 나타난다. 대부도와 영흥도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는 선재도는 남북으로 길게 장구모양을 하고 있다. 섬을 관통하는 선재로(仙才路) 변으로 이색적인 음식점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 항아리전시장에 눈길을 주며 3.5km를 진행하면, 영흥대교에 도착한다.

 

영흥도의 관문인 영흥대교는 길이 1,250m에 왕복2차선으로 19978월 착공하여 200111월 준공하였다. 국내기술로 건설된 최초의 해상 사장교로 영흥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함께 놓았다. 바라보는 순간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듯이, 웅장하고 화려한 영흥대교다.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다리들이 놓이면서, 섬사람들의 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연륙교(連陸橋)라하고, 섬과 섬을 잇는 다리를 연도교(連島橋)라 부르는 것이 정설이지만, 영흥도와 같이 큰 섬을 연결하는 영흥대교를 連陸橋라 부른다.

 

옛날 중국에서 오던 배가 풍랑을 만나 암초에 부딪혀 침몰 직전에 있었는데, 거북이 한마리가 나타나 구멍을 막아 육지로 인도해주었다. 그 뒤 신령이 도와준 섬이라 하여 영흥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남양군에 속하였으나, 1995년에는 인천광역시에 귀속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32km 거리에 있는 영흥도는 옹진군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동쪽으로 선재도와 대부도, 북쪽으로 무의도, 서쪽으로 덕적도와 자월도와 경계를 이루고, 선재도, 측도 등 유인도서 4개와 외항도, 중도, 자암도 등 무인도서 18개를 포함하고 있다.

 

영흥도는 면적이 23.46이고, 해안선이 42.24,436명이 상주하는 영흥면소재지가 있는 섬이다. 영흥대교를 건너 버스터미널에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십리포 해수욕장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한다. 내리복지회관, 코지휴게소, 비엔나 펜션까지 그림 같은 해변풍광을 즐기며 40분 만에 십리포 해변에 도착한다.

 

영흥도 북쪽에 있는 십리포해수욕장은 길이가 400m로 아담하고, 왕모래와 자갈이 깔려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해변 남쪽에는 테크로 만든 산책로에서 시원한 해풍을 받으며 피서를 즐길 수가 있고, 북쪽으로 무의도가 물위에 떠 있는 부평초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십리포 해수욕장에서 가장 빼어난 곳은 3백 여 그루의 서어(소사)나무 군락지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정자나무로,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다. 150여 년 전 선조들이 바람이 심한 내동마을에 방풍림을 조성했는데, 다른 나무는 살지 못하고 서어나무만 살아남아 군락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모래언덕에 뿌리를 내린 서어나무는 어느 것 하나 곧은 것 없이 온몸이 뒤틀려있는데, 바람결에 춤을 추는 형상이다. 높이 15m에 밑 둥의 둘레가 50cm정도로 앙바틈하여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자생력이 강한 나무다. 옹진군에서 보호수로 관리하는 국내 유일의 서어나무 군락지다.

 

불순한 일기속에서도 시화방조제와 영흥도를 완주할 수 잇었다는 자부심속에

터미널에 도착하니 440분이다. 매시10분에 출발하는 790번 버스로 오이도역에 도착하여 전철에 오르며, 고단했던 하루도 막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