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도보여행

문수사와 고인돌

김완묵 2016. 11. 8. 11:50

일시: 2010년 8월 17일

장소: 전북 고창군 고수면

 

                                                    문수사와 고인돌

고수면 소재지를 지나 조산저수지에서 왼쪽 골짜기를 타고 5km 정도 들어가면, 숲이 우거진 산자락에 서향으로 터를 잡은 문수사가 있다.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4(644)에 자장율사가 지은 사찰이다.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 청량산에서 기도하던 자장율사는 꿈속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부처님의 뜻을 깨닫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우연히 이곳을 지나가다가 땅의 형세가 당나라의 청량산과 비슷하여 절을 짓고 문수사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효종 4(1653)과 영조 40(1764)에 중창하고, 고종 13(1876) 묵암대사에 의해 대웅전이 다시 지었다고 한다.

 

이 사찰은 물이 맑고 숲이 좋으며 인적이 드물어 오염이 되지 않은 청정 지역이다. 지방유형문화재 제51호인 대웅전, 52호 문수전, 154호 부도, 207호 목조삼세불상, 208호 목조지장보살좌상이 있으며 명부전, 한산전 등이 남아 있다.

 

문수사는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의 위세에 가려 찾는 이가 별로 없는 고즈넉한 사찰이다. 하지만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돼있는 진입로의 단풍나무 군락으로 인해 명성을 얻고 있다. 단풍나무숲으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화재로 선정된 곳이다. 이곳의 단풍나무들은 수령이 100년에서 400년이나 되는 노거수들이다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좁다란 길. 구불구불 5km의 구절양장을 돌아가는 동안, 진초록의 애기단풍들이 시원한 그늘 속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아쉬움이 있다면, 핏빛으로 물든 가을의 정취를 느껴보지 못한 것이다. 무래봉을 사이에 두고, 장성의 축령산 편백나무 숲과 공존하고 있으니 문수산(621m)의 신비함을 다시 한 번 확인 할 수 있다.

 

고창의 대표적인 역사 유적으로 고인돌을 빼놓을 수가 없다. 고인돌은 일반적으로 지상이나 지하의 무덤방 위에 거대한 덮개돌을 덮은 선사시대의 무덤으로 거석문화의 일종이다. 거석에는 정령이 있으며, 이 같은 정령에 의하여 인간의 길흉화복이 좌우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고인돌을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고인돌은 한 구간에 수 십 기가 무리지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선사시대부터 씨족사회가 형성되면서, 조상숭배를 하게 되었고, 생명력과 불멸의 의미가 있는 고인돌을 통해 실현되었다. 강가의 평지나 구릉, 산기슭에서 많이 발견되는데, 무거운 돌을 쉽게 구하고 운반하기 편리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반도 전체의 고인돌의 숫자는 약 30,000 여개가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이 가운데 바둑판식 고인돌과 탁자식 고인돌로 분리한다. 고인돌이란 말은 굄돌을 가지고 있는 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인돌은 대부분 혈연집단의 무덤을 상징하고, 종족이나 집단의 모임장소나 의식을 행하는 제단으로 보고 있다.

 

커다란 돌덩이들은 청동기역사가 담긴 고인돌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고창의 고인돌은, 고창읍에서 서쪽으로 약 3km 떨어진 곳에 북방식으로 형성된 도산마을이 있다. 도산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1.2km떨어진 죽림리 매산 마을까지, 세계 최대의 고인돌 밀집지역이 발견되었다.

 

이 일대에는 북방식인 탁자형 고인돌 3, 남방식인 바둑판형 250, 지상 석곽형 45기 등 무려 447기의 고인돌이 다채롭게 분포하고 있다. 고인돌의 모양도 그 숫자만큼이나 다양해서 고인돌의 변천사는 물론 그 형성과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백과사전 인용

 

 

 

 

 

 

 

 

 

 

 

 

 

 

 

 

 

 

 

                                                                      고인돌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