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묵 2016. 9. 11. 08:25

 

                                                  군산의 발자취

장항선 열차가 금강하구언을 건너 호남의 관문인 군산역에 도착한다. 군산은 일찍이 마한 땅이었으나, 백제로 합병하면서 마서량, 미사현으로 불려왔다. 1899년 일제에 의해 개항하기 전 까지만 해도 작은 포구였다. 부산, 원산, 제물포, 경흥, 목포, 진남포에 이어 일곱 번째로 강제개항하면서 호남 벌에서 생산된 미곡을 수탈하는 거점이 되었다.

 

군산여행의 시발점은 철새조망대가 있는 금강하구언 상류지점이다. 군산역에서 택시로 기본요금이면 금강철새조망대 주차장에 도착한다. 철새들이 찾아오는 11월이 성수기인데, 삼복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이라 찾아오는 관광객도 없이 너른 주차장이 텅텅 비어있다.

 

철새신체탐험관으로 꾸민 오리모형관을 지나 전망대가 있는 건물로 올라간다. 고속엘리베이터로 11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유유히 흘러온 금강을 사이에 두고 장항읍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10, 9층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서 전시관을 둘러보고, 겨울철새의 이동경로와 조류 박제시설물이 있는 1층을 빠져나와 철새를 탐조할 수 있는 강가로 내려선다.

 

1990년 금강하구언이 완공되면서, 강 주변으로 울창한 갈대숲이 형성되고 겨울철새들이 찾아오는 보금자리로 변모하였다. 가창오리, 청둥오리, 기러기, 등 각종 희귀 철새들이 날아와 겨울을 지내는데, 해질 무렵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기위해 많은 관광객이 몰려온다.

 

금강랜드와 휴게소를 지나 금강하구언을 통과하는 지하통로를 빠져나오면, 물고기들의 이동통로인 어도를 만난다.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는 회유성 어류들의 통로이다.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가는 참게, 뱀장어를 비롯해 강으로 거슬러 오르는 항복, 웅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어류의 통로이다.

 

시민공원중앙광장에 들어서면,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17.9m의 진포대첩비를 만나게 된다. 1999년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한 것인데, 돛을 상징하는 날개 모양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두 조형물이 만나는 꼭대기에 왜구를 물리칠 때 사용한 화포가 하늘 높이 걸려있다.

 

고려3대첩으로 일컬어지는 진포대첩은 우왕 6(1380) 금강하구에서 왜구 5백 척의 선박을 최무선 장군의 화포로 물리친 전투다. 군산은 예로부터 식량자원이 풍부한 곡창지대여서, 조정에서는 진성창을 설치하여 인근에서 거두어들인 곡식을 보관하였는데, 곡식을 노리는 왜구들의 출몰이 잦았다.

 

왜구들은 5백 척의 선박을 이끌고 기벌포로 출몰하여 인근고을을 닥치는 대로 불태우고 노략질을 일삼아 양민의 시체가 산과들을 뒤덮고, 수많은 곡식을 약탈당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최무선 장군이 전함100척을 거느리고 출동하여, 왜적선 500척을 침몰시키는, 청사에 길이 빛나는 전승을 거두었다.

 

진포대첩의 찬란한 역사와 함께 개항100주년을 맞이하는 군산시가, 21세기 국제화시대를 맞이하여 서해안 중심도시로서의 희망찬 미래를 상징하는 조형감각으로 시민공원을 만들면서 진포 대첩비를 건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진포시비공원을 지나는 길목에서 채만식 문학관을 찾는다.

 

1902년 군산시 임피면에서 태어난 채만식은, 군산을 대표하는 문학인이다. 탁류, 치수, 태평천하 등 3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한 채만식은 1950년 페결핵으로 사망할 때가지 군산을 배경으로 한 서민들의 애환을 그려낸 탁류가 그의 대표작이다.

 

우리의 생활이 향상되면서 삶의 질을 중요시하게 되고, 제주의 올래길을 시작으로 지방마다 특색 있는 산책로가 들불처럼 번져 가고 있다. 군산도 예외는 아니어서 금강을 중심으로 군산을 대표하는 길을 조성하였으니, 11개 구간으로 나누어 조성된 구불길188km에 이른다.

 

금강을 따라가는 달밝음길은 길이가 15km에 이르지만, 모두 답사 할 수는 없는 일이고, 월명공원 수시탑이 있는 8km를 걷게 된다. 장항과 군산을 사이에 두고 흘러온 금강이 하구언을 경계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진다. 삼복더위의 열기를 받으며, 비단결처럼 잔잔한 금강을 따라 하구로 내려서면, 구암동산에 이른다.

 

한강이남에서 최초로 독립운동이 일어난 군산 3.5독립만세운동의 발원지를 기념하여 3.1운동 기념탑을 세운 곳이 구암동산이다. 억압과 핍박 속에서도 선열들의 독립정신을 고취하고 군산의 자긍심을 기리기 위해 공원으로 조성하고 있다.

 

진포해양테마공원에 도착한다. 이곳은 세계최초로 함포해전을 벌였던 진포대첩의 역사적 현장을 보존하고, 최무선장군의 업적을(사실은 장항 쪽에서 벌인 전투라 함) 기념하여 퇴역한 위봉함을 전시실로 꾸미고, 육해공군의 퇴역 군 장비 1316대를 전시하고 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를 주재로 한 시설물과 장미공연장을 지나, 군산이 자랑하는 근대사 박물관 광장에 도착한다. 항일 투사 임병찬 의병장 동상을 바라보며 들어선 박물관은, 역사는 미래가 된다. 라는 주제로 해상물류유통의 중심지였던 군산의 옛 모습과 전국최대의 근대문화자원을 전시하여 서해 물류유통의 천년, 세계로 뻗어가는 국제무역항 군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웃에 있는 세관건물은 1908년 독일인이 설계하고, 벨기에에서 건축 재료를 수입하여 유럽 양식으로 지은 건물로서 서울역, 한국은행본관건물과 함께 대한제국의 건축양식으로 단 세 곳만이 남아있는 문화재로서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월명공원은 서울의 남산과 같이 군산의 중심에 위치한 월명산을 중심으로 군산시민들의 안식처로 조성한 공원이다. 192610월 월명산을 관통한 해망굴은, 중앙로와 수산업의 중심지인 해망동을 연결한 길이 131m 높이 4.5m 규모의 반원형 터널인데, 한국전쟁 당시에는 인민군의 작전본부로 사용하였고, 지금은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다.

 

월명공원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해병대 군산, 장항, 이리지구 戰績碑. 한국전쟁 당시 군산시가 인민군의 수중에 들어가기 3일전 군산과 장항 인근에서 있었던 전투를 기념하는 해병대 군산, 장항, 이리지구 전적비가 있고, 계단을 오르면 군산을 상징하는 수시탑이 있다.

 

해변이 바라보이는 정상에 세운 28m 높이의 수시탑은 바람에 나부끼는 선박의 돛 모습과 타오르는 불꽃 모형으로, 군산시의 번영을 기원하는 뜻을 간직하고 있다. 만발한 배롱나무 꽃이 운치를 더하고, 금년 말 완공예정인 동백대교와 장항제련소 굴뚝이 금강하구의 유구한 역사와 장밋빛 미래를 전해주고 있다.

 

수시탑이 세워진 곳은 일제 강점기에 신사가 있던 곳이다. 수시탑은 원래 30m 높이로 세울 계획이었고, 탑 이름도 봄을 기다린다는 뜻의 춘망대(春望臺)’였다. 하지만 예산부족으로 2m 모자란 28m로 제작되었고, 1968년 완공 시에는 군산시를 활성화 시키자는 뜻의 성시탑(盛市塔)’이었다가 얼마 후 수시탑(守市塔)으로 개명되었다.

 

이로서 군산의 일면을 답사하고, 군산역으로 향한다. 50만시민이 살아가는 군산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운 역사의 도시이고, 개항기를 맞아 발전한 서해의 관문으로, 새 만금 개발사업이 완공되는 날, 기름진 평야와 풍부한 바다를 배경으로 21세기를 열어갈 첨단산업 도시요. 국제무역항으로 발전할 것이다.

 

 

                                                             신선이 노니는 선유도

서해안도보여행을 하면서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이 새만금방조제와 고군산열도를 답사하는 구간이다. 이곳은 21세기를 선도할 대한민국의 청사진이 담겨 있는 곳이요, 유람선으로 1시간이상 걸리던 선유도를, 걸어서도 찾아갈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금란도가 있는 월명공원부터 비응항까지는 군산국가산업단지가 자리를 잡고 있어서 답사를 생략하고, 선유도의 관문인 신시광장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된다. 군산대학교 정문에서 출발하는 99번 버스가 새만금방조제 끝자락에 있는 가력도까지 운행하고 있어서 수월하게 접근할 수가 있다.

 

새만금개발사업은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와 군산시 옥도면 비응도를 연결하는 세계최장의 방조제(33km)를 축조하여 간척지 28.300ha와 호수 11,800ha를 조성하고, 농경지와 공단을 설립하고, 관광지를 개발하여 동북아 경제중심지로 비상할 녹색성장과 청정생태환경을 건설하는 국책사업이다.

 

멀리서 보아도 웅장한 33센터종합통제실을 찾아가는 중에 정문에서 제지를 당하고 만다. 새 만금방조제의 최첨단기기들을 통제하고 있는 곳이라, 일반인들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신시광장으로 가는 중에, 썰물시간을 이용하여 배수갑문을 활짝 열고 호수의 물을 흘려보내고 있다.

 

공룡처럼 입을 떡 벌린 철갑문 아래로 소용돌이치는 물보라를 보는 순간 가슴속이 후련하도록 스릴을 느낀다. 담수호의 수질을 정화시키고, 계획 중인 조력발전소가 완공된다면, 새 만금 방조제는 또 하나의 신기원을 이룩할 것이다. 바다위의 만리장성이라 부르는 새 만금 방조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네델란드 쥬다치 방조제 보다 1.4km가 더 길다고 한다.

 

새 만금 방조제 준공탑을 뒤로 하고 월영재를 찾아간다. 신시광장 북쪽으로 낙타 등처럼 생긴 월영봉과 월영대사이로 질마재처럼 잘록한 허리 부분이 월영재 마루다. 쉬엄쉬엄 올라도 십여 분이면 월영재에 도착한다. 신시도에서 가장 높은 월영대(198m)로 향한다. 고도가 높아질수록 주변에 펼쳐지는 경관이 너무도 아름답다.

최치원이 단을 쌓고 글을 읽어 그 소리가 중국에까지 들렸다는 월영대. 정상에 올라서면 대각산(187m)까지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지난 7월에 개통된 관통도로와 새만금방조제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고군산열도에서 가장 큰 신시도는 선유도의 유명세에 눌려 빛을 보지 못하다가 새 만금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주변의 경치를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를 대각산에 설치하고, 월영산까지 논두렁길로 연결하여 등산객들을 유치하고 있다. 또한 무녀도를 경유하여 선유도로 들어갈 수 있는 관문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던 관통도로는 지난 7월 신시도와 무녀도 구간 4.39가 개통되었고, 내년 말까지 8.77의 도로가 완공되고 나면 장자도까지 단숨에 달려갈 수 있는 환상의 드라이브코스로 이어질 것이다. 왕복2차선에 자전거와 인도까지 갖춘 관통도로는 초현대식 공법으로 건설된 고군산대교가 압권이다.

 

신시도와 무녀도를 잇는 850m 길이의 고군산대교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이 돛단배 모양을 본뜬 높이 105m의 주탑이다. 교각도 없이 주탑에 연결된 철선으로 다리를 지탱하여 푸른 바다위에 떠있는 범선 모양으로 세련미가 돋보이는 교량이다.

 

무녀도(巫女島)는 장구모양의 섬과 그 옆에 술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있어 무당이 상을 차려놓고 춤추는 모양이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군산대교를 건너면 차도(車道)가 끝나는 지점이다. 유람선으로 힘들게 찾아오던 선유도를, 당일 여행으로 가능하다는 입소문 때문인지 관광버스에서 쏟아지는 등산객으로 만원을 이룬다.

 

차량들은 이곳에서 회차를 하고, 무녀도와 선유도를 찾는 관광객들은 걸어서 이동하게 된다. 리아스식해안과 바다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원색의 물결을 이루는 관광객들로 조용하던 포구가 떠들썩하다.

 

황금빛 들녘에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무녀도. 무녀봉(131m)을 제외하고는 높은 산이 별로 없는 무녀도는 예전부터 염전에 종사하는 어민들이 많아 품질 좋은 소금을 대량으로 생산하던 곳이다. 무녀초등학교를 지나면 모감주나무 군락지를 만난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고향으로 하는 모감주나무는 하늘을 향하여 곧추선 긴 꽃대에 촘촘히 피어난 황금빛 꽃이, 7월의 짙푸른 녹음에서도 군계일학으로 돋보인다고 한다. 청사초롱처럼 생긴 특별한 모양의 열매 속에서 콩알 굵기만 한 씨앗이 있어서, 만질수록 윤기가 흘러 염주의 재료로 사용한다.

 

모감주나무 씨앗의 다른 이름은 금강자(金剛子). 금강석의 단단하고 변치 않는 특성을 가진 열매라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도를 깨우치고 지덕이 굳으며, 단단하여 모든 번뇌를 깨뜨릴 수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모감주나무 열매로 만든 염주는 큰스님들이나 지닐 수 있을 만큼 귀중한 물건이다.

 

모감주나무군락지를 돌아서면, 그림 같은 주황색 아치가 시선을 압도한다. 무녀항과 선유도를 잇는 선유대교 공사 현장이다. 공사 중인 교량 옆으로 놓여있는 () 선유대교는 198612월에 완공 된 총 길이 268m에 폭이 3m의 다리로서, 선유도와 무녀도를 한 섬으로 연결하여 관광명소로서 각광을 받는 곳이다.

 

선유도에서 가장먼저 찾은 곳이 옥돌해변이다. 가파르게 돌아가는 해변 가로 산책길이 연결된다. 푸른 바다위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이 조약돌처럼 반짝이고, 가까이 다가서기전에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해수욕장이 옥돌해변이다. 납작납작한 조약돌이 곱게 깔린 옥돌해변은 물이 너무도 맑아 물속이 선명하게 보인다.

 

고군산 군도는 16개유인도와 47개 무인도로 구성된 천혜의 해상관광지이다. 군산시에서 남서쪽으로 약 54km 떨어진 해상에 있는 고군산 군도는 조선태조 이성계가 왜구의 잦은 침략을 막기 위해 이곳에 수군부대를 배치하면서 군산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종 때는 수군부대를 내륙에 있는 옥구군 북면 진포로 옮기고, 이곳을 옛 군산이라는 뜻에서, 古群山 또는 仙遊島라 부르고 있다.

 

고군산(古群山)'이란 이름은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순신장군은 15979월 명량해전에서 왜군에 대승을 거둔 뒤 12일간 선유도에 머물며 배를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군산은 중국과의 거리가 가까운 곳이라, 1123년 송나라의 사신 서긍이 이곳을 거쳐 고려개경까지 왕래하면서 그 기록을 고려도경에 남겼다고 한다.

 

선유봉 고개를 넘어서면, 초분공원이 반겨준다. 초분이란 섬이나 해안지방에서 행해지던 전통장례 풍속중의 하나이다. 초상이 나면 2-3년 동안 가매장을 하였다가, 육탈이 된 뒤에 땅에 매장하는 방법이다. 고구려에서는 관에 시신을 넣어 집안에 3년간 안치했다가 길일을 잡아 장례를 치르고, 백제에서는 무왕의 시신을 2년간 빈() 하였다가 매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장자대교를 건너 장자도로 들어간다. 1986년 선유대교와 함께 건설된 장자대교는 길이가 268m에 넓이3m, 높이가 30m에 이르는 푸른 바다위에 주황색 아치가 걸려있는 아름다운 교량이다. 장자도는 가재미와 장재미를 합하여 이르는 말이다. 뛰는 말 앞에 커다란 먹이 그릇처럼 장자봉이 우뚝 솟아있어 인재가 많이 나오는 곳이라고 한다.

 

60년 전만해도 고군산군도 16개 유인도중 가장 풍요로운 섬이 장자도 였다. 선유팔경인 壯子漁火는 장자도가 풍요를 누리던 시절, 멸치잡이와 조기잡이로 밤바다를 비치는 어선들의 불빛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서쪽 바닷가에 솟아있는 사자바위는 서해바다로부터 불어오는 액운을 막아주는 장자도의 수호신이다.

 

장자도에서 대장도로 넘어가는 길목에 놓인 장자교(20m)는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명당자리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장도의 품에 안겨있는 바위섬 팬션, 섬마을 팬션, 옥도 팬션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고군산제일의 휴양지로 터를 잡고 있다.

 

옥도 팬션 옆으로 조성된 계단을 따라 할미바위를 찾아가는 길이다. 멀지 않은 곳에 쓰러져가는 사당이 있고, 벼랑위로 할미바위가 솟아있다. 전설에 의하면 과거에 낙방하는 남편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드리는데, 남편은 과거에 낙방을 거듭하다가 사대부집 외동딸 글 선생을 하는 중에 과거에 급제하여 고향으로 금의환향을 하게 된다.

 

과거에 급제한 남편을 위해 술상을 차려들고 마중을 나갔는데, 소실부인과 함께 내려오는지라. 하도 기가 막혀 술상을 든 채 돌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가파른 비알 길을 치고 오르면 대장도 정상이지만, 숙박지로 정한 선유도로 돌아가는 시간이 애매하여 발길을 돌린다.

 

장자대교를 건너 선유도로 돌아오면, 가장 먼저 반겨주는 곳이 선유 스카이라인이다. 명사십리 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높이 45m의 타워에서 로프를 타고 700m 떨어진 솔섬까지 바다 위를 날아가는 위락시설이다. 이곳은 대장도와 관리도 사이로 넘어가는 일몰 장소로 유명한 곳이다. 서해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사그라지는 저녁노을이 우리네 인생여정과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바다여행민박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고 아침 6시 반 숙소를 나선다. 하늘에는 엷은 구름이 드리우고 명사십리 해안에는 적막감이 감돈다. 선유도의 남섬과 북섬을 잇는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길이가 1.3에 폭이 50m의 해안사구(海岸砂丘)이다. 본래는 3개의 섬이었는데, 선유3구와 선유2구가 육계사주(陸繫砂洲), 선유2구와 선유1구가 해안사구(海岸砂丘)로 연결되어 하나의 섬이 되었다.

 

고군산군도의 중심지인 선유도는 본래 군산도라 불렀으며, 섬의 경치가 매우 아름다워 신선이 놀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돋보이는 곳이 망주봉이다. 백사장 건너편, 깎아지른 절벽으로 이루어진 해발152m의 망주봉(望主峰), 옛날 유배되어 온 충신이 귀양살이를 하면서 산봉우리에 올라 한양 땅을 바라보며 임금을 그리워하여 불러온 이름이다.

망주봉 남쪽에는 김부식이 사신단을 초청해 영접행사가 열린 군산정이 있었고, 서쪽에는 숭산 행궁이, 동쪽 산봉우리 중단부에는 오룡묘와 자복사, 관아인 객관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모든 건물이 사라지고, 홀로 남은 오룡묘를 찾아간다.

 

샛터마을 입구에서 왼쪽으로 망주봉 산기슭에 오룡묘가 있다. 고려 인종1(1123) 송나라 사신 서긍의 기록에는, 2채의 당집이 남쪽을 바라보며 아래위로 배열되어 있는데, 아래 있는 것을 오룡묘 또는 아래 당집, 위에 있는 것을 위 당집으로 불렀다고 한다.

 

오룡묘는 풍어를 기원하는 것 보다는 먼 뱃길의 안전과 무역의 성공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백제, 후백제를 지나 고려에 이르기까지 서해안에서 출발하는 외교 및 무역선들이 필히 거쳐 가는 항구였으며, 이조에서는 호남, 경남지역의 세금을 실어 나르는 조운선의 경유지였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찾아가는 곳이 망주봉이다. 망주봉은 2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는데, 동봉은 오를 수가 없고, 서봉 또한 30m 에 이르는 로프를 타고 올라야 하는 급경사 길이다. 칡넝쿨로 뒤 덥힌 초입부터 진입로 찾기가 어렵다. 70이 넘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천여 산을 오른 노하우를 앞세워 정상 도전에 나선다.

 

20여 분간 진땀을 흘리며 올라선 정상은, 사방팔방으로 펼쳐지는 일망무제(一望無際)이다. 고군산군도 63개 섬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조망되는 선유도 제일의 전망대여서, 바다와 섬들이 마치 한 폭의 산수화(山水畵)를 펼쳐놓은 듯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쉰다.

 

망주봉에 오르지 않고서는 선유도에 왔다고 말하지 말며, 망주봉에 오르고는 다른 곳은 찾아갈 필요가 없다. 그만큼 진한감동을 느끼며, 때마침 동봉위로 떠오르는 일출까지 보게 되었으니 금상첨화(錦上添花)가 아닌가. 기도등대와 대봉까지 다녀올 계획이었지만, 망주봉에서 충분히 감흥을 맛보았기에 일정을 생략하고 솔섬으로 들어간다.

 

솔섬에서 바라보는 망주봉 또한 진한 감동(感動)을 안겨준다. 수반위에 올려놓은 수석처럼, 보면 볼수록 신기한 섬이다. 파출소와 보건소가 있는 선유리에 들어오면 이곳의 명물인 수 백 대의 자전거 또한 장관이다. 섬을 일주하기위한 필수품인 자전거 행렬도 선유도 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선유도 연안여객터미널에 도착한다. 11시에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기 위해서는 아직도 2시간이 남아 있다.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보다는 신시도까지 되돌아가서 가력도를 둘러볼 생각으로 일정을 변경한다. 지난달에 무위도까지 개통한 관통도로가 아니라면, 선유도를 찾는 방문객은 여객선을 이용해야만 하였다.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라고는 하지만, 2개선사가 운영하던 뱃길도 한 군데로 줄어들고, 내년 말 완전개통이 되고 나면 뱃길도 중단되고, 민박을 하던 주민들도 생활 터전을 잃게 된다는 푸념이다. 선유도(仙遊島)는 군산항에서 서쪽으로 45km 떨어진 섬이어서, 쾌속선으로는 45, 일반여객선으로는 1시간 20분 걸리는 황금노선이었다.

 

관통도로가 개통된 무위도에 도착하여 관내버스가 있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30분마다 신시광장을 오가는 98번 순환버스다. 4.5km면 한 시간이 걸리는 거리여서, 10여분을 기다린 끝에 편안하게 신시광장에 도착한다.

 

신시광장에서 가력도까지는 방조제를 따라 10.5km 거리다. 99번 버스로 10여 분간 가는 도중에 바람쉼터, 소라쉼터, 너울쉼터를 지나 군산의 남쪽 끝자락에 있는 가력도항에 도착한다. 한 시간마다 운행하는 99번 버스가 가력도에서 10여 분간 정차하는 동안 수박 겉핥기식으로 주변을 돌아본다.

 

풍력발전기 2대가 돌고 있는 가력도항은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메니아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촌음을 아끼기 위해 재빨리 전망데크가 있는 제방위로 올라간다. 수변공원정도의 면적을 가진 가력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어항에서는 선상낚시를 즐기는 강 태공들로 분주하고, 방조제가 이어지는 남쪽 끝자락이 다음번 서해안 답사를 이어갈 부안군 변산해수욕장이다. 버스 출발시간을 가늠하며 새만금풍력발전단지표 지석을 찾아, 세계제일의 간척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대한민국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며, 우리의 웅지가 꽃을 피우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부안 마실길 - 변산반도

행복한 군민, 자랑스런 부안의 슬로건이 걸려있는 부안군은, 공해를 일으키는 공장도 없고, 기름진 만경평야와 서해에서 잡아 올리는 수산물로 풍요로운 인심을 구가하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이다.

 

부안버스터미널에서 30여분 거리에 있는 신재생에너지테마파크를 지나면서 새만금방조제가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 한가운데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가력도공원은 지난번에 다녀간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정면으로 보이는 새만금홍보관이 반가워 달려가지만, 개천절이 월요일인지라 문이 굳게 잠긴 휴관일이다.

 

실망감을 안고 돌아서는데, “별난마실길안내소가 시야에 들어온다. 마실길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들렸더니, 생각지도 않은 환대를 받게 된다. 십년지기라도 만난 듯이 반갑게 맞이하는 소장님(김종립)의 안내로 자리를 잡고, 미당(서정주)선생님과 김소희명창의 유지를 계승하는 김윤서명창이 건네는 작설차 대접을 받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마실길에 관한 자료를 제공받는다.

 

향토예술인들이 주축이 되어 조성한 마실길은 변산반도의 해안을 따라 8구간으로 나누어 66km를 조성하고, 마실길을 찾는 탐방객들에게 안내와 홍보물을 제공하고 있다내소사를 품고 있는 내변산과 채석강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외변산의 절경을 답사할 꿈을 그리며 마실길 1구간을 시작한다.

 

동해의 장엄한 일출을 바라보며 걷는 길을 해파랑길이라 하고, 휴전선을 횡단하는 침묵의 길을 평화누리길이라 하면, 서해의 갯벌과 남해의 다도해를 바라보며 걷는 길은 사색의 길이요, 바다누리길이다. 사색의 길에서는, 나 홀로 걷는 모습 또한 아름다운 정경이 아닌가. 우보천리(牛步千里)요 유유자적(悠悠自適)이라 호젓하게 걷는 이 길이 나의 행복이어라.

 

마을을 상징하는 이 지방의 사투리인 마실길은 옆집에 놀러갈 때 걷던 고샅길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제주도의 올래길이 매스컴을 타면서 지방마다 들불처럼 일어나는 둘레길조성에 편승하여 변산반도의 아름다운 풍광을 소재로 조성된 마실길은, 2012년 태안의 솔향기길과 함께 전국5대 명품길로 선정되기도 한 아름다운 길이다.

 

군산대학교 휴양림 옆으로 대항리 패총이 눈길을 끈다. 지금이야 마늘밭으로 변신하여 형태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1967년 발굴당시에는 넓이 10m에 두께가 60cm규모였다고 한다. 선사시대이후 어민들이 조개를 먹고 버린 조개무더기인데, 빗살무늬 토기와 뗀석기가 발견되어 옛 사람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인정받아 전북기념물 제50호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때 마침 썰물이라, 고운모래와 기암괴석들이 깔려있는 변산해수욕장까지 바닷길을 걷는다. 사랑의 낙조공원으로 조성된 팔각정에 오르면, 변산해수욕장과 서해안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바다멀리 고슴도치섬으로 부르는 위도와 중국의 닭 우는소리가 들린다는 상왕등도, 기러기 날아가는 비인도와 고군산열도가 펼쳐지는 낙조공원에 일몰이 내려앉으면, 붉은 노을이 연인들의 소중한 추억 속으로 젖어들게 된다.

 

서해바다의 대표적인 변산해수욕장으로 내려선다. 하얀 모래와 푸른 송림이 어우러진 백사청송(白沙靑松)이 변산해수욕장이다. 1933년에 개장된 해수욕장은 고운모래해변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심이 1m 내외로 낮아 수온이 따뜻하고 물이 맑아 가족나들이에 더없이 좋은 해수욕장이다.

 

변산해수욕장이 국립공원에서 제외됨에 따라 새로운 변신을 위한 공사가 한창이다. 해수욕장 남쪽에 송포 마을은, 지지포에 사는 선비가 소나무아래서 제자를 가르치며 학문을 연구한데서 소나무(), ()자를 합하여 松浦라 부른다는 속설이 있다. 송포마을에서 마실길1구간이 끝나고 2구간으로 이어진다.

 

기암절벽 돌아서는 아슬아슬한 오솔길에 들어서면, 소망담긴 조개껍질이 철조망에 주렁주렁 달려있다. 사람마다 소망이 있게 마련이라, 청즉무욕(淸則無慾)이란 심성이 맑으면 욕심이 없어진다, 즉 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평온하다는 뜻이 아닐까. 바로 청빈낙도(淸貧樂道)를 이르는 말이다.

 

변산해수욕장을 바라보는 전망대를 돌아서면 사망암(士望岩)이 반겨준다. 그 옛날 마을에 사는 선비가 바위에 올라 북향을 바라보며 때를 기다렸다고 하여 전해오는 곳이다. 곧이어 출렁다리를 건넌다. 깊은 계곡에 걸려있는 출렁다리는 연인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스릴 넘치는 교량이다. 한번 구를 때 마다 자지러지는 단말마는 사랑의 교향곡이다.

 

산등성이에 펜션마을이 바라보인다. 짙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조성된 그림 같은 방갈로,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고, 새로운 활력을 충전시키는 휴식공간이 바로 현대인들이 살아가는 십승지지가 아닐까. 지중해연안의 휴양지를 연상시키는 마을을 내려서면 고사포 해수욕장이 반겨준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옥녀탄금(玉女彈琴)혈이라, 옥녀가 장고 치고 거문고를 탄다는 뜻이 갖는 의미에서 고사포(鼓絲浦)라 부른다고 한다. 2km에 달하는 송림과 백사장이 고사포해수욕장의 특징이다. 원광대학교 수련원에서 시작하는 소나무 숲은 서해안 제일의 명승지로 손색이 없다.

 

해수욕장 끝자락에 도착하면 2구간을 종료하는 성천항에 도착한다. 모래의 성이 하늘까지 쌓이는 곳이라하여 이룰, 으로 부른다. 성천항에서 건너다보이는 섬은 새우 모양을 닮았다 하여 ()섬이라 부르는데매월 음력 보름이나 그믐을 전후하여 현대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  2km 바닷길이 열린다. 1950년경에 원불교 재단에서 사들여 해상수련원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접근이 어렵다.

                                                      적벽강 노을길

3구간을 시작하는 성천항에서 어린학생들을 만난다. 순천에서 온 대안학교 학생과 선생님으로 구성된 20여명의 서해안 종주 팀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자아실현(自我實現)을 위해 국토종주에 나선 학생들을 대하며, 우리 청소년들의 밝은 미래를 볼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

 

山海絶勝 半島公園변산반도국립공원을 함축하여 이르는 말이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이 경주국립공원을 제외하고는 산을 중심으로 하는 내륙공원과 바다를 중심으로 하는 해상공원으로 나누고 있는데, 유독 변산반도국립공원만은 육지와 바다를 함께 포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설악산이나 지리산과 같이 화려하고 장엄한 것도 아니고, 최고 높이가 500m 에 불과한 평범해 보이는 변산반도이지만, 속살을 헤집고 들어서면 숨겨진 보석처럼 아름다운 절경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바다와 산이 조화를 이루는 곳, 1971년 도립공원에 이어 1988년 국립공원으로 승격하여 등산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 변산반도국립공원이다.

 

하섬을 정면에서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도 지나고, 출렁다리와 정겨운 조릿대 터널을 통과하고 나면, 해안도로와 만나 반월 안내소에 도착한다. 이곳 반월안내소를 운영하는 유재길 선생은 별난마실길 안내소에서 만난 인연으로 더욱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막걸리대접을 받으며 정담을 나누는 중에, 부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마실길도 조성하고, 변산반도를 발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음악회를 개최하기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고 전한다. 반월안내소부터 변산반도의 절경인 적벽강이 시작되고, 수령500년이 넘는 팽나무 2그루가 있어 이곳을 지나는 나그네의 쉼터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자리지킴을 하고 있다.

 

적벽이 내려다보이는 해안가로 내려선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거센 풍랑에 부대끼며 다듬어진 조물주의 걸작 품이 눈앞에 펼쳐진다. 이름의 유래는 송()나라의 시인 소동파(蘇東坡)가 놀았던 적벽강(중국 황강현(黃岡縣))과 자연경관이 비슷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밀물 때라 해안가로 내려서지 못하고, 용두산을 돌아 절벽과 암반으로 펼쳐지는 해안선을 돌아가면 수성당(水城堂)에 도착한다. 이곳 서낭당에서는 해마다 음력 1 2일에 동제를 지낸다딸 여덟 자매를 낳아 팔도에 한 명씩 나누어주고 막내딸을 데리고 살면서 서해바다를 다스렸다는 개양할머니의 전설이 있는 사당이다. 이곳은 굿 발이 잘 받는 길지여서 무속인 들의 치성장소로 인기가 있는 곳이다.

 

수성당 언덕바지에서 바라보는 격포해수욕장이 일대 장관이다. 메밀꽃이 만발한 언덕 빼기를 배경으로 푸른 바다와 울창한 송림, 그 사이로 우뚝 솟은 분홍빛깔의 대명콘도와 닭이봉 전망대가 잘 어우러진 산수화를 그려낸다. 명불허전(名不虛傳)이란 이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언덕을 내려서면, 천연기념물 제 123호인 후박나무군락지를 만난다. 서해에서 불어오는 거센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으로 심은 수백 년 된, 후박나무가 약 200m 거리에 13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 이곳 죽막마을을 경계로 적벽강과 채석강이 나누어진다.

 

채석강의 절벽을 바라보며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해넘이 채화대에 도착한다. 때마침 일몰이 시작되는 시간이라 모두들 낙조를 바라보며 셔터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수평선에 걸려있는 위도 위로 살포시 내려앉는 태양이 진홍빛깔로 온 누리를 불태운다.

 

닭이봉과 채석강 사이에 있는 격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500m간만의 차가 심하지 않고 물이 맑으며경사가 완만해 해수욕장으로서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다울창한 송림뒤편으로 격포 배후도시가 펼쳐지고 닭이봉 기슭을 돌아가면 채석강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밀물 때라 채석강으로는 통행이 불가능하고, 반월안내소에서 주선한 닭이봉 관리소장을 만나는 것이 급선무다.

 

일몰까지는 30여분의 시간이 남아 있어 닭이봉에서 마지막 일몰을 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땀이 후줄근하도록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상에 올라서니 김종철 소장이 반겨준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유구무언(有口無言)이라.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황홀함의 연속이다. 낙조에 붉게 물든 격포항의 모든 사물이 환상적이다.

 

서해낙조(西海落照)를 변산5경으로 꼽는 것도 낙산의 일출과 격포 낙조를 견줄 수 있는 비경이기 때문이다. 변산의 낙조대에 서면 멀리 서해에 점점이 떠 있는 고군산군도와 위도위로 내려앉는 일몰을 볼 수가 있다. 친절한 서비스로 냉커피를 대접받고, 마실길이 수놓인 스카프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인정이 넘치는 부안에서 행복한 시간을 만끽한다.

 

마실길

인정이 그리워 부안에 간다/ 노을빛 고와서 변산 마실길 간다

걷고 걸어서 이어지는 길/ 내 삶의 가느다란 길

솔바람 바닷소리 아스라한/ 내 청춘 눈뜨게 한다.

해당화 피는 포구마다/ 옛 사람 그리워/ 변산에 마실길 품으러 간다.

 

땅거미 지는 어둠을 뚫고 야경이 아름다운 채석강으로 내려선다. 사진 한 장 남길 수없는 어둠속에서 채석강위로 넘실거리는 물보라를 바라보며 근처에 있는 금정모텔에 여장을 푼다. 또 한 가지, 생각지도 못한 태풍소식에 마음조리며 새벽 3시에 눈을 뜨니 창밖으로 세찬 비바람이 몰아친다.

 

천재지변(天災地變) 앞에서 무력해 지는 것이 인간이다. 한 여름이 다가도록 일본으로 중국으로 피해가던 태풍이 뜬금없이 10월 달에 제주와 남해안을 강타하고 말았으니, 태풍 차바가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어쩌랴, 하늘의 노하심에 맥없이 두 손을 들고,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내변산 봉래구곡

태풍 차바의 위력 앞에 쫒기다 시피 서울로 돌아온 이후, 등산하기 좋은 날짜를 가려 찾아가는 날이 하필이면 안개 속으로 빠지고 만다. 주시거리가 백m에도 미치지 못하는 안개 속에서 233km의 먼 거리를 향해 거북이걸음을 하고 있으니, 일정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정상적이라면 고속버스로 2시간 50분 거리여서, 940분에 도착하게 되어있다. 30분이 지체된 1010분에 도착하여 시내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니 사자동가는 버스가 출발을 기다리고 있다. 운 좋게도 합승하여 40여분만인 11시에 내변산탐방지원센터 광장에 도착한다.

 

내변산 등산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계곡보다는 날 등을 넘다보니 그 유명한 직소폭포를 보지 못하여,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하여 직소폭포를 둘러보고 내소사로 하산할 계획이다. 거리가 6km에 불과하지만, 주변에 펼쳐지는 경치가 아름답고 관음봉 오르는 길목이 험난하여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출발지점이 봉래구곡과 연계되어 기대가 자못 크다. 망포대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내변산의 아름다운 절경을 따라 기암절벽을 파고드는 계류가, 중계교 아래서 백천과 합류하여 부안 댐을 빚어놓고, 묵정삼거리에서 서해로 빠지는 20km   물줄기를 봉래9곡이라 한다

 

내변산 탐방로를 지나 시원한 그늘 속을 올라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명소가 원불교 제법성지다. 전남 영광에서 원불교를 개창한 소태산 대종사께서 1919년 이곳 봉래산으로 들어와 새 회상의 교법을 반포하고 석두암을 지었다. 봉래정사에서는 초기교서를 초안하고 창립의 인연들을 만났으며, 1924년 익산총부로 거처를 옮기고, 일원대도비(一圓大道碑)를 건립하였다

 

천왕봉과 안장바위사이의 너른 분지에 터를 잡은 실상사는, 신라 신문왕 9(689)에 초의선사가 세운 내변산에 있는 4대사찰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 제작한 불상과 대장경을 소장하였으나, 6.25때 전소되어 터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일부만 복원된 상태이다.

 

봉래교를 건너며 본격적인 蓬萊九曲이 시작된다. 갈수기인데도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다. 널찍한 암반위에 새겨진 蓬萊九曲乙丑年 閏四月에 음각된 것이고, 小金剛雲雄 高炳斗의 글씨이다. 참고로 제1 대소2 직소폭포3 분옥담4 선녀탕5 봉래곡, 6곡 영지, 7곡 금강소, 8곡 백천9 양지까지 아홉 곡의 명승지를 빚어 놓는다.

 

생뚱맞기는 하지만 미선나무다리를 건넌다. 미선나무 군락지는 변산반도에 속하는 부안군 상서면 청림리와 변산면 중계리 일대에 자생하여천연기념물 370호로 지정된 물푸레과의 수종으로, 국립공원특별보호구로 보호하고 있다. 곧이어 남여치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자연보호 헌장탑을 지난다.

 

계곡이 깊어지며 심산구곡이 펼쳐진다. 의상봉(椅上峰, 509m)을 필두로 쌍선봉(雙仙峰, 486m), 신선봉(491m), 관음봉(424m) 등 해발고도 400m 내외의 산들이 병풍처럼 솟아 있고, 협곡을 가로막은 수중보가 내변산의 풍광을 더욱 아름답게 빗어낸다. 깎아지른 절벽사이로 단풍들이 노랗게 물들고, 잔잔한 수면위로 내려앉는 관음봉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선녀탕과 분옥담을 지나 직소폭포가 모습을 드러낸다. 계곡으로 울려 퍼지는 굉음소리와 함께 높이 22.5m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직소폭포는 변산 8경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는 명소이다. 나무데크로 만든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직소폭포는 천하절경이다. 하지만 거리가 멀다는 것이 한 가지 흠이다.

 

폭포로 접근해 보려고 하지만, 등산로는 폭포 상단으로 향하고, 울창한 나무숲에 가로막혀 정면에서 바라볼 수가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가파른 너덜바위를 타고 계곡으로 내려선다. 실상용추로 부르는 폭포 아래 둥근 용소는 검푸른 물결이 소용돌이치는 지라 간담이 서늘하다. “예로부터 직소폭포와 중계계곡의 선경을 보지 않고서는 변산을 논하지 말라고 했다.” 그만큼 내변산이 자랑하는 명소이기 때문이다.

 

속이 후련하도록 폭포의 위용에 취해 시간가는 줄을 모르겠다. 가파른 비알 길을 거슬러 폭포 상단에 올라서면, 천지를 진동하던 굉음소리도 자취를 감추고, 울창한 수림 속에 평평한 분지가 펼쳐진다. 폭포 상류가 다 그러하듯이 흘러가는 계곡 물소리가 정겹게만 들린다.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며 생긴 웅덩이를 소()라하고, 오랜 세월 바위가 패여 생긴 웅덩이를 탕(설악산 십이선녀탕)이라 부른다.

 

물길이 시작되는 발원지는 갈수기에도 마르지 않는 최상류에 있는 샘을 일컫는다. 또한 계곡물이 모여 개천이 되고, 개천이 모여 강을 이룬다. 7년 대한(大旱)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곳을 강이라 하고, 강이 모여 대하를 이루는데, 동양에서는 중국의 황하가 유일하다.

 

재백이 다리를 건너며 완만하던 분지도 서서히 경사를 이루고, 재백이 고개에서 원암통제소와 관음봉삼거리(내소사)로 갈라진다. 이제부터 관음봉 삼거리까지 1km 구간에 걸쳐 층층계단을 오르게 된다. 내변산은 중생대 쥐라기의 대보화강암을 기반암으로 하고 있어서 낮은 산이면서도 옹골찬 암릉미를 자랑하고 있다.

 

다리가 뻐근하도록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안부에 올라서면, 관음봉이 머리위에서 손짓하고, 남쪽으로 곰소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노력의 대가로 얻은 보람은 자아실현(自我實現)의 긍지(矜持)로 몸속의 엔돌피가 살아나는 희열(喜悅)을 맛보게 된다. 자동차나 케불카를 타고 올라왔다면, 짜릿한 성취감(成就感)은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전망이 툭 트이는 암반위에 자리를 잡고 집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을 펼쳐든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하지 않던가. 소박한 성찬이지만, 천하절경이 펼쳐지는 명소를 바라보며 걸치는 술 한 잔에도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하는 젊음이 샘솟는다.

 

관음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15년 전 새봉과 관음봉을 경유하여 내소사로 내려간 기억을 더듬어보지만, 그동안 많은 시설물을 설치하여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안개 걷힌 하늘은 맑게 개이고, 천년사찰 내소사가 내려다보이는 암릉에 올라서면, 곰소만을 중심으로 내변산국립공원이 한 폭의 파노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내소사와 개암사

국립공원 문주를 벗어나면 그 유명한 내소사 전나무 숲이 시작된다. 수령이 150년으로 추정되는 수백그루의 전나무가 사열 받는 의장대처럼 빼곡히 들어찬 모습은 세파에 찌든 사람들에게 달콤한 솜사탕을 물려주는 선경(仙境)의 관문(關門)이다.

 

천년고목(千年古木) 당산나무를 지나 경내로 들어선다. 관음봉 아래 곰소만의 푸른바다를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는 천년고찰 내소사, 해질 무렵 어둠이 내려앉으면, 고즈넉한 산사에서 울려 퍼지는 저녁 종소리에 모든 중생들을 제도하는 곳,

 

소사모종(蘇寺暮鐘)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내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전라북도 기념물 78호로 지정된 내소사는 633(백제무왕34) 혜구(惠丘) 창건하여 소래사라 하였다소래사가 내소사로 바뀐 연유는 중국의 소정방(蘇定方) 석포리에 상륙한  절을 찾아와서 군중재(軍中財) 시주하였다고 하지만, 근거는 없다.

 

고색창연(古色蒼然)한 천년사찰(千年寺刹), 세월의 때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대웅보전(大雄寶殿)은 단청이 모두 벗겨지고 백골이 그대로 드러난 모습을 바라보며 경건한 마음에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 조선 인조 11(1633) 청민대사가 절을 고쳐지은 대웅보전은 아미타여래를 중심으로 우측에 대세지보살, 좌측에 관세음보살을 모신 불전이다.

 

대웅보전은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지은 건축물로 유명하며, 앞쪽 문살에 새겨진 연꽃무늬, 국화꽃무늬, 모란꽃무늬 등, 수 백 개에 이르는 꽃들이 창살위에 피어나 수 백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장인의 숨결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진 후불벽화가 있다.

 

경내에는 보물 291호로 지정된 대웅보전(大雄寶殿), 보물 277호인 고려동종(高麗銅鐘), 보물 278호인 법화경절본사경(法華經折本寫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25호로 지정된 요사채설선당(說禪堂), 보종각(寶鐘閣), 봉래루(蓬萊樓),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24호로 지정된 삼층석탑, 등이 있다

 

 

내소사 관람을 마치고 산문을 나선시간이 오후 2. 다음 행선지인 개암사를 찾아가는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 망설이는 중에, 시내버스가 주차장으로 들어온다.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기사에게 물어보니 줄포를 경유하여 개암사 입구를 지난다고 한다.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다음번에 답사할 곰소만과 줄포의 지형을 관찰하며 봉은삼거리까지 편하게 이동한다.

 

개암사는 버스정류장에서 2.5km나 떨어진 우금산성아래 있는 사찰이다. 30여 분간 발에 땀이 나도록 걸어간 뒤에야 능가산개암사 산문에 도착한다.개암사지에 의하면 개암사 자리는 변한 시절 왕궁터 였다고 한다. 기원전 282년에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공격을 피해 이곳에 성을 쌓고, 왕궁의 전각을 지어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 하였다.

 

백제무왕 35(634)에 묘련대사가 궁전에 절을 지으며 동쪽의 궁전을 묘암사, 서쪽의 궁전을 개암사로 부른 것이 절의 기원이 되었다. 통일신라 문무왕 16(676)에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중수하고, 고려 충숙왕 1(1313)에는 원감국사(圓鑑國師)가 중창하여 건물이 30여 채에 이르는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개암사 대웅보전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용마루위로 불끈 솟은 암봉이 그 유명한 울금바위이다. 바위를 멀리서 바라보면 두 쌍의 바위가 문을 열고 있는 형상이라절의 이름을 개암사 하였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울금굴에 머물면서, 암자를 지어 원효방으로 불렀고, 조선후기까지 시인묵객들이 단골메뉴로 인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울금바위는 백제부흥군이 마지막까지 항전하던 복신굴이다. 개암사에서 바라보았을 때 복신굴은 왼쪽 바위아래 있고, 원효방은 오른쪽 바위아래 있다. 봉우리 뒤편으로 돌아가면 조그만 공터와 협소한 동굴이 원효방이다.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제 유민들의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개암사 저수지까지 능선을 따라 산성을 쌓았는데, 그 길이가 남쪽으로 563m, 서쪽으로 675m, 동쪽과 북쪽을 합하여 총 3960m 길이에 달한다. 남쪽으로 통하는 계곡 입구에 남문을 설치하고,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적절히 섞어가며 양쪽 능선을 따라 동서로 연결하였다.

의자왕 20(660) 백제가 나당연합군에 항복하자 복신장군 등은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을 맞아 왕으로 추대하고, 백성들을 모아 의병을 일으켰다. 이 곳은 복신 장군이 나당연합군에 맞서 끝까지 항전하며 백제 부흥을 줄기차게 벌였던 백제 최후의 보루이다.

 

부안지방에는 백제 유민들이 부흥운동을 일으켰던 백산성이 또 있다. 백산면 용계리에 있는 성터로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409호로 지정되었다해발 47m로 낮은 언덕에 불과한 백산의 동남쪽에서 서북쪽으로 길이 120m, 너비 50-60m 타원형으로 쌓은 토축산성이다

 

서울 가는 버스시간이 촉박하여 울금바위를 오르지 못하고, 봉은삼거리를 향해 부지런히 걸어가는데, 개암사에 다녀오는 택시가 크락션 소리와 함께 내 앞에 멈추어 선다. 부안읍으로 가는 길이면 태워주겠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은 선심에 감사의 인사를 하고 예정보다 빠른 161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를 수가 있었다. 산자수명(山紫水明)한 부안, 인심 좋은 부안을 가슴깊이 간직한다.

 

                                                            해넘이 솔섬길

부안을 세 번째 방문하는 날이다. 태풍의 기세에 눌려 서울로 돌아간 기억 때문에 감회가 새로운 채석강이다. 채석강 관광은 물때를 잘 맞추어야 하는데, 간조시간이 2시간 지났지만, 채석강을 돌아보는데 지장이 없으니 물때를 잘 맞춘 셈이다.

 

관광버스에서 무더기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해안가는 북새통을 이룬다. 해안가로 밀려오는 거센 파도가 관광객들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든다. 채석강의 신비로운 모습을 놓칠 새라, 해안가를 돌아보며 카메라 앵글 맞추기에 여념이 없다.

 

채석강은 강이 아니라 썰물 때 드러나는 변산반도 서쪽 끝 격포항과 닭이봉(200m)일대의 층암절벽과 바다를 이르는 말이다. 중국 당나라의 시선 이태백이 달빛이 아름다운 밤, 강물에 비추어진 달을 잡으러 뛰어 들었다가 생을 마감한 채석강과 흡사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변산반도 제6경으로 부르는 채석강은 채석범주(彩石帆舟)라 하여, 억겁의 세월, 파도에 깎이면서 형성된 퇴적암층이 아름다운 절벽을 이루고, 수천수만 권의 책을 차곡차곡 포개 놓은 듯 단애를 이루며, 해식동굴이 형성되었다. 대 자연의 신비와 비밀을 간직한 채석강은 외변산 제일의 절경이다.

 

얼마쯤 시간이 흘렀을까? 방파제가 바라보이는 지점에서 사람들이 되돌아 나온다. 무슨 일인지 물어보니 밀물이 들어와 방파제 오르는 길이 막혔다고 한다. 채석강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해식동굴인데, 이번에도 들어가 보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가 남을 것이라는 생각에 발길을 이어간다.

 

가드라인이 설치된 로프까지 바닷물이 밀려온다. 초조한 마음을 진정하며 돌아선 곳이 그 유명한 해식동굴(海蝕洞窟)이다. 조물주가 빗어 놓은 동굴 속으로 들어선다. 바닷물의 침식을 받은 화산성 퇴적암층이 아름다운 모자이크로 반겨준다.

 

채석강의 절벽에는 단층(斷層)과 습곡(褶曲)이 유난히 발달하여 십자동굴을 비롯하여 곳곳에 해식동굴(海蝕洞窟)을 형성하고 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바라보는 바깥세상은 형이상학적인 별모양이 선명하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밖으로 나오니 방파제 쪽으로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다.

 

방파제와는 10 m에 불과한 거리인데도, 거센 파도의 기세에 눌려 1km 가 넘는 길을 돌아와야 한다. 그래도 채석강의 숨은 비경을 모두 보았으니 더 바라 무엇 하랴. 채석강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들을 위한 먹 거리와 휴식공간으로 격포항은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한국의 나포리라 부르는 격포항에 또 하나의 명소가 탄생했으니, 봉화산 자락에 나무테크로 다리를 놓아 요트경기장이 있는 방파제까지 산책코스를 조성하였다. 지난번 닭이봉 정상에서 일몰의 순간을 만끽했던 팔각정이라 눈길이 자꾸만 간다. 마실길 4코스는 격포항 남쪽에서 계단을 따라 봉화산 기슭으로 올라선다.

 

해발174m의 월고리봉수대(月古里烽燧臺)는 섬과 좌우의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예로부터 수군의 별장이나 첨사가 주둔했던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할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라, 유사시에 봉화를 올리던 전진기지였다.

 

산기슭을 돌아가면, “명량으로 천만관객을 동원했던, 전라좌수영 촬영세트장을 만난다. 서해안을 바라보는 완만한 구릉지에 조성한 세트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望美樓 앞마당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가 절경이어서, 부안군이 자랑하는 위도와 낙조를 조망할 수 있는 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바닷가 팬션이 그림 같은 궁항에 도착한다. 동해안이 절경이라고 하지만, 변산의 마실길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한 구비 돌아갈 때 마다 새로운 명소가 나타나며 감탄사가 절로 난다. 마을 앞에 떠있는 개섬과 휴 리조트의 벼랑 밑으로 물속에 잠길 듯이 길게나온 모래톱으로 인해 상록해수욕장이 운치를 더한다.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이 어우러진 상록해수욕장은 공무원연금관리공단에서 조성해 운영하고 있는 해수욕장이다방갈로음식점풀장취사장사워장테니스장배구장 등의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다

 

어염시초가 풍부하여 소금을 굽는 가마터에서 소금을 만들었다는 염포마을을 지나 백년 된 팽나무 6그루가 숲을 이루고 있는 수락마을에 도착한다. 전북대학교 학생수련원이 있는 수락마을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솔섬은, 사진애호가들이 해넘이 명소로 꼽고 있는 곳이다.

 

솔섬은 해안에서 100m 떨어진 작은 암초위에 소나무 10 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 평범한 섬이다. 하지만 유심히 살펴보면 북쪽 해안가로 튀어나온 한 그루의 소나무가지가 용이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이어서, 매년 10월이 되면 일몰의 순간, 용이 붉은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신기한 이 모습을 일몰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쌍계재 아홉구비길

고운모래톱에 매여 있는 쌍그네와 거친 파도 몰아치는 암벽위에 모셔진 삼층석탑은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가? “모 아니면 도라는 식으로 양보할 줄 모르고 타협할 줄 모르는 막가 파가 판을 치고, 썩어빠진 정치판과 숭고한 상아탑도 비리와 부정으로 얼룩지는 복마전(伏魔殿)이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세태를 비관하기보다는, 무변광대(無邊廣大)한 자연 속에서 부처님의 힘을 빌어서라도 응어리진 마음을 다스리고, 모래톱을 할퀴는 파도를 바라보며 하늘로 날아오를 때 부아가 치미는 울화병도 순화될 것이 아닌가. 솔섬을 뒤로하고 샹그릴라 펜션 단지를 찾아간다.

 

해안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있는 곳이다. 바닷가를 따라 데크길이 조성되어 푸른 파도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색을 즐길 수 있는 구간이다. 산림연수원을 지나며 펼쳐지는 모항해수욕장은 서해안 도보여행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다.

 

빽빽이 숲을 이루는 노송과 활등처럼 휘어진 백사장 끝자락에 조성한 해나루 가족호텔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기암절벽위에 날아갈 듯이 올라앉은 팔각정에 올라 서해바다를 굽어보노라면 만단시름이 봄눈처럼 녹아들고 마음의 평정을 찾는다.

 

뒤를 돌아 육지를 바라보면, 736번 도로를 가운데 두고 갑남산(420m)과 작살량산(360m)이 낙타 등처럼 쌍봉을 이루고, 정수리의 거대한 암봉이 변산반도의 진수를 펼쳐 보인다. 바위틈을 비집고 붉게 타오르는 단풍이 절정을 이루고, 주변에는 천연기념물 제122호인 호랑가시나무 군락지가 있다.

 

호랑가시나무는 늘 푸른 나무로, 두꺼운 잎을 가지고 있어서 나무를 꺾어 오래 두어도 잘 썩지 않는 장점을 활용하여, 영국을 중심으로 유럽에서는 호랑가시나무로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육각형의 잎이 날카롭고 단단한 가시가 있어 마치 호랑이발톱과 같은 모양이라 호랑가시나무라고 부른다. 바닷가의 숲속에서 모감주나무 등과 군락을 이루어 자생한다.

 

중국에서는 개뼈다귀 나무란 뜻으로 구골목(狗骨木)이라 하여 잎은 枸骨葉(구골엽), 뿌리는 枸骨根(구골근), 나무껍질은 枸骨樹皮(구골수피), 과실은 枸骨子(구골자)라 하며 약용으로 사용한다. 껍질과 잎이 달린 가지로 즙을 만들어 마시면 강장제로서 특히 신장에 효과가 있는데, 우리나라는 남쪽 일부에서 자라고 있지만, 잎에 돋아난 험상궂은 가시 탓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우리말로 띠목이라 부르는 모항은 주변에 띠풀이 많이 자라서, 재료로 지붕을 얹고, 발을 엮어서 생활도구로 활용했다고 한다. 물고기 손질에 여념이 없는 주민들 옆으로 내장이라도 얻어먹으려는 갈매기들이 분주히 날아오르고, 갯벌 체험장으로 이어진다.

 

변산반도의 수려한 경관과 서해의 아름다운해안에 자연그대로의 갯벌을 활용하여 게잡기, 머드놀이, 조개 캐기를 통하여 해안생태체험을 할 수 있는 학습체험관광마을이다. 물이 빠지는 체험장 앞바다는 독살로 막아 너른 갯벌이 드러나지만, 해거름이라 체험 객은 보이지 않는다.

 

울창한 숲속으로 이어지는 아홉구비길 쌍계재가 시작된다. 10월 하순이라 4시가 되었는데도 숲속은 땅거미가 내리고, 인적도 없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감돈다. 호젓하게 이어지는 사색의 길이라지만, 분위기에 압도되어 신경이 곤두선다. 지혜(知慧)는 들음으로 생기고, ()는 말함에서 생긴다.는 평범한 속에서 진리를 되새기며, 마동 마을에 도착한다.

 

옛날 선비가 이곳을 유람하다가 말이 쉬어가기에 적당하여 마동(馬洞) 이라 불렀다는데, 풍수지리에 의하면, 앞산의 장군봉에 올라 북을 울리며 강을 건너는 형국이라 한다. 어쨌거나 서쪽바다가 물들며 땅 거미가 지는지라, 이곳에서 유숙하기위해 숙소를 물색하지만 생각지도 않은 수난을 당하게 된다.

 

단풍철에 주말을 맞아 변산반도로 몰려든 관광객으로 인해 빈방이 없다는 대답이다. 숙박업소 마다 초만원이라 가는 곳마다 거절을 당하고 보니, 서쪽 하늘로 내려앉는 일몰의 화려함도 먼 나라의 꿈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해는 지고 어두운데, 잠자리를 찾아 떠도는 나그네의 신세가 되었으니, 처량하기 그지없다.

 

왕포를 지나며 한 가닥 희망도 절망으로 바뀌고, 곰소만을 찾아가던 중, 관선마을의 하이얀 팬션에서 오케이 싸인을 받아 낸다. 요금도 두 배로 껑충 뛴 8만원이다. 한 동안 사람을 받지 않은 얼음 짱 바닥이지만, 감지덕지(感之德之)하여 30km를 걸어오며 고단한, 육신을 누이고 만다.

 

                                                                            곰소만 생태공원

하룻밤 신세를 진 관선(觀仙)마을은 뒷산에 장삼바위, 목탁바위, 바리바위, 북바위, 촛불바위로 일컬어지는 스님이 불공드리는 바위들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형을 살펴보면 관음봉(觀音峰)아래 千年古刹(천년고찰) 내소사(來蘇寺)가 있어서 불교(佛敎)와 관련된 이름들이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여명이 밝아오는 640분 숙소를 빠져나와 진서리 방조제를 걷는다. 동녘하늘이 밝아오며 곰소만이 붉게 타오르고, 하루를 여는 장엄한 의식이 펼쳐지는 순간이다. 어제의 일몰은 숙소 찾기에 마음을 빼앗겨 제대로 감상을 하지 못했지만, 오늘아침은 사정이 다르다. 느긋하게 태양을 향하여 마음을 열고 샷 타 누르기에 여념이 없다.

 

때마침 간조시간이라 넓고 넓은 곰소만이 뻘밭이 되어 끝 간곳을 모르고, 건너편으로 고창의 선운산이 반가운 미소를 보낸다. 변산반도 제1경으로 일컬어지는 웅연조대(雄淵釣臺)는 곰소만에 떠있는 어선들과 고기잡이배들이 밝혀주는 야경에, 낚싯대를 둘러메고 청량가를 부르는 어부들의 정경을 이르는 말이다.

 

곰소항을 지척에 두고 방파제는 곰소초등학교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30번국도가 지나는 작도(作陶)마을에 도착한다. 곰소만을 동서로 관통하는 30번 국도를 청자로(靑瓷路)라 부른다. 강진의 고려자기와 함께 이곳 부안에서도 고려자기가 발달했고, 그 중심지가 작도마을이다. 1939년에는 부안군 사적 제70호로 지정하여 도자기 굽는 마을로 선정했다고 한다.

 

진서초등학교 뒤편 언덕바라지를 중심으로 연동마을에는 4, 5, 6구역 40여개의 가마터가 발견되었고, 유천리에는 부안청자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서 고려왕실과 귀족들이 사용하는 최상급 도자기를 생산 하였는데도자기의 형태는 접시(밥그릇), (대접), 매병(꽃병), ·탁잔(술병들로 다양하다.

 

진서면 소재지가 있는 곰소항에 도착한다. 곰소는 검모포 진영이 있었던 곳으로 서해바다를 지키는 가장 오래된 수군의 중심 진영이었다전라북도에서는 군산항 다음으로  어항이다인근의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낮아지면서 대안으로 일제가 제방을 축조하여 곰소항을 만들었다

 

곰소만은 가로림만과 함께 서해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생태계의 보고(寶庫)이다. 살아있는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어민들은 소라, 꼬막, 바지락으로 소득을 올리고, 변산반도 앞바다에서 잡아온 조기, 풀치, 숭어에 아구까지 곰소만의 특산 어종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곰소항 젓갈시장을 찾아간다. 서해안에서 잡아온 싱싱한 어패류를 원료로 곰소염전에서 생산한 천일염으로 담근 곰소 젓갈은, 겨울철 어리굴젓을 시작으로 토하젓, 낙지젓, 명란젓, 밴댕이젓 등 수십 가지의 젓갈들이 관광객의 입맛을 돋으며 활기가 넘친다.

 

곰소항을 뒤로 하고 천일염전이 있는 구진마을에 도착한다. 마을마다 그 유래가 있게 마련이라, 구진마을도 이조시대에 종사품 만호가 파견된 검모진 진영이 있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검모진 설치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640(인조 18) 이전부터 설치되었다가 1723(경종 3)에 진서마을로 옮겼다고 한다.

 

곰소염전에서 나오는 천일염은 1년 이상 저장하는 과정에서 간수를 제거하여, 쓴맛을 없애고 젓갈을 담그면 감칠맛이 나는 것이 특징이다. 곰소만은 다른 곳에서 생산하는 소금에 비해 10배의 미네랄을 함유하고 있다. 곰소 천일염의 특징은 내소사의 소나무 송화 가루가 날아와 소금의 진가를 높여주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명품이라고 한다.

 

신활 양어장을 지나 호암 마을 입구에 도착한다. 바닷가 갯벌에 화강암이 병풍처럼 서있는 곳에 해수가 드나들고 있는데, 그곳에 암반이 깔려있어 자연경관을 이루고, 주변 20m 높이의 바위에 호랑이 발자국이 있어서 호암이라 부른다고 한다.

 

신창천을 중심으로 줄포갯벌습지보호구역이 시작된다. 갈대숲을 따라 산책길이 조성되고, 11월 중순이면 북쪽에서 날아온 철새들이 영전제를 중심으로 화려한 춤사위를 선보이며 갈대숲에 둥지를 틀게 된다. 201210월 람사르협회에서는 곰소만의 자연환경을 보존하기위해 람사르 습지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환경센터가 있는 방조제는 구진마을에서 줄포까지 외곽순환도로 공사가 한창이다. 이 길이 완공되고 나면 람사르 습지가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부안 환경센터를 지나며, 줄포만자연생태공원이 시작된다. 새만금방조제에서 시작하는 마실길 66km가 끝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저지대 침수에 대비하여 15  제방을 쌓은 뒤로 갈대와 띠풀 등이 무성해지고담수습지가 형성되면서 자연스레 생태늪지로 발전하였다부안군은 이곳에 갈대숲 10리길야생화단지은행나무숲길 등을 조성하여, 가을이면 전령사인 코스모스를 앞세워 황금빛으로 변하는 갈대와 은행나무숲길이 장관을 이룬다.  

 

공원주위로 펼쳐지는 줄포만은 황조롱이를 비롯해 50 종의 조류와 염생 식물갯벌동물 등이 한데 어우러져 생태계를 유지하고유수지 수면위로 붉게 물든 칠면초가 장관이다. 중앙광장에는 종교개혁자 얀후스의 동상이 있는데, 2005 방영됐던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을 촬영했던 인연이라고 한다.

 

꿈같은 변산반도 마실길도 끝이 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줄포버스터미널을 경유하여 서울로 상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