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 보령, 서천
18. 홍성 미래길
오늘의 일정은 홍성미래길 14km를 답사하고, 천년세월의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홍주의 역사와 문화를 탐방하는 코스로 조정하였다. 용산역에서 6시23분에 출발하는 장항선 무궁화호에 승차하여 2시간 만에 홍성역에 도착한다.
장항선 직선화 공사를 하면서 2008년에 새로 건축한 홍성역은 홍주관아건물을 형상화하여 지은 팔작지붕의 2층 한옥으로, 서부충남을 대표하던 홍주의 역사성을 상징하는 고풍스러운 건물이다.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홍성버스터미널까지 이동하여 9시5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에 올라 궁리포구로 향한다.
40여 분만에 도착한 궁리포구는 밀물시간이라 거센 파도와 함께 심한 바람이 불어와 불순한 날씨를 보이고 있다. 천수만을 가운데 두고 지난번에 다녀온 간월도가 반갑게 손짓하고, 서산방조제가 아스라이 이어진다. 궁리포구는 홍성8경에 선정될 정도로 아름다운 포구다.
잔잔하면서도 광활하게 펼쳐지는 천수만에서, 갯벌체험도하고 바다낚시를 즐길 수 있는 명소여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는 곳이다. 간월도에 낙조가 내려앉으면, 황금빛 물비늘이 천수만을 물들이고, 방조제위로 날아오르는 가창오리의 군무를 바라보는 동안 황홀경 속으로 빠져든다.
천수만을 끼고 임해관광도로를 따라가는 남당항로는 차량의 왕래도 별로 없고, 자전거 도로까지 개설하여 홍성미래로(洪城未來路)의 이름을 달고 홍성방조제까지 이어진다. 활등처럼 굽어진 해안을 따라가는 중에 제철만난 유채꽃이 노란 물결을 이루며 만발하고 있다. 유채꽃 하면 제주도가 먼저 생각난다. 성산일출봉을 배경으로 너른 들판을 물들이는 봄의 전령사가 바로 유채 꽃이다.
유채의 꽃말은 ‘쾌활’이다. 숨죽이며 추운겨울을 견디어낸 유채가 3-4월 너른 들판을 물들이는 끈질긴 생명력을 칭송하는 뜻이 아닐까 싶다. 유채의 원산지는 지중해 연안이고, 한국의 제주도와 남부지방, 일본, 중국 등에 주로 분포한다.
해안선이 끝나는 지점에 앙증맞은 조롱박처럼 작은 ‘모섬’이 속동전망대다. 나무데크로 다리를 놓아 편하게 전망대에 오를 수가 있다. 20여m의 벼랑위에 설치한 전망대는 먼 바다를 향해 출항준비를 마친 타이타닉호처럼, 포토존을 설치하여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사진 찍기 좋은 명소로 선정한 곳이다.
장동마을 해변에는 자전거메니아를 위한 쉼터가 마련돼 있다. 천수만을 바라보며 달려오던 동호인들이 짐 보따리를 풀어놓고 편안하게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자전거 거치대와 정자에, 이색적인 풍차까지 조성하여 천수만을 바라보는 언덕에 연산홍이 만발하여 지중해의 아름다운 풍광을 연상시킨다.
어사포구에 도착한다. 포구에는 고깃배가 수시로 들어오기 때문에 남당리와 더불어 갓 잡아 온 싱싱한 해산물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특히 섬 주변의 갯벌에서 바지락, 굴, 소라, 낙지 등을 잡으며 체험을 즐길 수가 있다.
산모랑이 돌아서면 홍성6경으로 선정된 남당항이다. 홍성에서 가장 큰 남당항은 태안반도로 인해 거센 풍랑을 막아주는 문전옥답(門前沃畓)이 형성되면서, 대하, 우럭, 새조개, 꽃게, 새우 등 사시사철 싱싱한 수산물이 들어온다.
미식가들이 군침을 흘리며 몰려드는 삼월이면, 새조개 축제로 남당항이 떠들썩하다. 새의 부리를 닮아서 붙여진 새조개는, 껍데기의 길이가 9.5cm에 폭이 6.5cm 정도의 원반모양으로 볼록하다. 새조개는 수심 10~30미터의 진흙 섞인 모래땅에 사는데, 쫄깃하고 담백한 감칠맛이 일품이다.
단백질과 철분, 타우린,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해 맛에서도 영양 면에서도 으뜸인 식재료이다. 산란 후 살이 많이 찌는 시기가 2월부터 4월까지라 남당항에는 새조개를 찾는 사람들로 분주하다. 또한 남당항에는 새조개와 함께 겨울바다의 깊은 맛과 멋이 살아있는 죽도여행을 떠나는 선착장이 있다.
홍성군에서 유일하게 사람이 사는 죽도는,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라 부른다. 천수만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죽도는 남당항에서 3.7㎞ 떨어진 곳이라 배로 15분이면 충분하다. 8개의 섬들이 옹기종기 터를 잡아, 물이 빠지면 서로 왕래할 수 있는 24가구 70여 명이 살아가는 조용한 섬마을이다.
홍성방조제를 건너기전, 방조제 준공 탑이 있는 야산(野山)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갈 길이 바쁘다 한들 어이 지나칠 수 있으리오. 벚꽃이 흐드러진 언덕에 올라 처음 찾은 곳이 “결성현감 김자 승전지비(結城縣監 金滋 勝戰址碑)”이다.
태종8년(1408년) 결성현 감무였던 김자선생은 문무를 겸비한 목민관이었다. 고려중기 이후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왜구의 노략질이 극심하여 강화에서 개경, 중국 연안까지 편안한 날이 없었다. 김무선생께서는 결성현의 군사들을 진두지휘하여 모산포(현재 서부면 신리 안흥동)로 출몰한 왜구들을 섬멸한 공로를 인정하여 승전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
정상에 오르면 “홍성. 보령 방조제 준공기념탑”이 우뚝 솟아 있다. 천수만과 모산면에 2개의 방조제를 축조하여 홍성군과 보령시 일대 한 · 수해 상습지에 안정적인 용수를 공급하고, 침수피해를 방지하기위한 사업이다. 총사업비 1586억원을 투입하여 10년간 공사 끝에 2001년 완공하여 1646ha의 농토를 확장하였고, 48km의 해안선을 단축하였다는 취지문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홍성방조제는 인간이 만든 걸작 품이다. 산을 깎아 바다를 메우는 인간의 의지로 상전(桑田)이 벽해(碧海)를 이루었으니, 감회가 새롭다. 바다위로 곧게 뻗은 방조제를 건너가면 보령시 천북면이고, 그 유명한 천북 굴 단지가 있는 장은항이다.
년말년시(年末年始)를 맞아 바닷가에 찬바람이 불어오면, 충남 보령시 천북면 장은리 굴단지에서 “천북굴축제”가 열린다. 천수만에서 생산되는 천북굴을 관광특산품으로 개발하여 다양한 먹거리 제공과 영양이 뛰어난 맛을 널리 홍보하여 소비촉진을 통한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전략이다.
가스 불에 올려놓고 굴이 입을 벌리기 시작할 때, 김 오른 속살을 발라먹는 구이가 최고의 별미이다. 경향각지에서 몰려온 식도락가들이 삼삼오오 둘러앉아 감칠맛 나는 굴 속살에 소주한잔이면 그만이다.
굴 단지의 비수기는 찬바람이 지나간 뒤라 썰렁하고 을씨년스럽다. 가게마다 문이 굳게 잠겨 있고,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하루에 5번 다니는 관내버스를 30분 기다린 끝에 오후 2시 버스에 오르며 “홍성미래길”을 완주하고 광천터미널에서 환승하여 홍성읍내로 들어온다.
19. 홍주성 천년여행
홍성사거리에서 홍주천년여행이 시작된다.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로 시작하여 995년에 도단련사를 두었고, 1012년에는 지주사가 되었다. 이후 홍주로 개칭되어 1358년에 목으로 승격된 후,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에 현감을 두었고, 1895년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옛 결성군을 합쳐 홍성군이 되었다.
홍성군은 동쪽에 봉수산(484m), 서쪽으로 백월산(394m), 남쪽에 오서산(790m), 북쪽에는 용봉산(374m)을 중심으로 평탄한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2읍 9면에 9만 5천명이 상주하고 있다. 먼저 찾은 곳이 홍주성과 남쪽에 있는 홍화문이다. 2013년 남문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홍성의 앞날을 위해 홍화문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홍주성의 길이가 1,772m에 달하였으나 현재는 남쪽의 810m 만 남아있다. 나말여초에 축성된 홍주성은, 조선 초기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석성으로 쌓은 이후,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다음은 홍주성역사관을 찾아간다. 2011년 5월 개관한 역사관은 ‘천고낙지(天鼓落地)의 땅 홍주’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 홀 입구에서 1871년 규장각지도를 참고한 홍주성복원모형도를 만날 수가 있다.
전시공간에는 최영 장군, 성삼문 선생, 김복한 선생, 한용운 선사, 김좌진 장군 등 홍성이 배출한 역사인물 소개와 함께 활발한 부보상활동으로 번성했던 지역상권과, 천주교 박해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홍성군청에 있는 관아로 들어간다. 홍주(洪州)는 충청도에서 충주, 청주, 공주 다음으로 번성했던 충청도 서부지역을 관장하는 관찰사영(觀察使營)으로 승격되기도 한 고을이었다. 관아의 외삼문인 홍주아문은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읍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세운 문이다.
본래 대원군의 친필이 걸려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정면이 5칸으로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독특한 모습이다. 홍성군청 안뜰에는 보우국사가 왕사가 된 것을 기념하여 심었다고 전해지는 충남기념물 171호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사또가 부임하면 나무아래 제물을 차려놓고 고을의 무고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군청뒷들에 고풍스러운 안회당은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東軒)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사적 213호인 안회당(安懷堂)은 생생문화재 활용사업에 따라, 각종모임과 교육장소로 개방하여 우리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전달하는 예절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896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여하정은, 홍주관아의 후원에 조성한 정자로 목사들이 정사를 구상하며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연못을 배경으로 6각형의 수상정을 짓고, 나무를 심어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조양문(朝陽門)이다.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자, 홍성군의 관문으로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개축하면서 조양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홍주성의 서문과 북문이 없어지고, 조양문도 훼손될 위기에서 읍민들의 강경한 반대로 보존됐으며, 지난 1975년 문루를 복원하였다.
홍성천 건너편으로 홍성전통시장이 있고, 잠시 후 오성리 당간지주를 만난다. 당간지주란 절의 입구에 당간(幢竿)을 지탱하기위해 세운 석조물을 말한다.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무리를 내쫒는 의미를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꽂는 게양대이다.
당간지주가 있는 주변에는 고려시대 광경사(廣景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간지주의 규모로 보아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월계천을 건너면 “홍주순교성지”로 조성한 천주교박해현장이다. 1792년 충청도에서 최초로 순교자가 발생한 이후, 병인박해까지 212명의 순교자가 나온 박해 현장이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홍주의사총(洪州義士塚)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홍주의사총은 조선말기(병오년) 홍성지역에서 일어난 의병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홍주지역에서는 1906년(병오년)에 전(前)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대를 조직하였다.
5월19일 홍주성을 함락시키며 기세를 올린 의병대는, 일본군과의 교전에서 조양문이 부서지고, 중과부적으로 의병 수 백 명이 전사하였다. 고귀한 희생을 기리자는 충정에서 충청남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하고, 2001년 8월17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성역화 하였다.
버스터미널이 있는 고암근린공원을 지나 홍성역으로 가는 연도에는 홍주를 빛낸 인물과 미래를 제시하는 내포의 중심 천년스토리가 전시되고 있다. 홍성역에 도착하며 하루일정을 소화하고 17시8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올라 차창으로 스치는 용봉산을 바라본다.
홍성8경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용봉산은, 용의형상과 봉황의 머리를 닮아 신령스러운 산이었는데, 홍북면 일대가 충청남도 도청소재지로 선정되어 내포신도시로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새천년의 웅지가 날개를 펼치는 날, 유서 깊은 홍주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될 것이다.
20. 광천 토굴새우젓
용산역에서 6시23분발 무궁화호에 몸을 싣고 달려온 장항선 열차가 광천역에 도착한 시각이 8시48분이다. 8시54분에 출발하는 관내버스를 타기위해 300여m 거리에 있는 터미널로 줄달음친다. 너무도 숨 막히는 순간이다. 이번 차를 타지 못하면 11까지 2시간을 기다려야 하니 말이다.
가까스로 차에 오르며 안도의 한숨을 내 쉰다. 옹암교를 건너 광천토굴새우젓단지와 보부상유품전시관을 지난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활성암반토굴새우젓을 생산하고 있는 광천지역은 고려시대부터 새우젓장터로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5일 장날이면 오서산(790m)에서 채취해온 나무장터와 함께 새우젓을 사고파는 젓갈시장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어, 조선시대 후기에는 전국3대 젓갈시장으로 명성을 얻었다.
광천 옹암포구(독배)는 안면도와 천수만을 바라보는 육지 깊숙한 포구로서, 보령방조제가 완공되기 전만해도 새우 잡는 어선들이 옹암포구까지 들어와 전국제일의 새우젓시장이 형성 되었다. 특히 1960년대에 이르러 토굴을 이용한 새우젓 숙성ㆍ저장방식이 발달되면서 새우젓시장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옹암리 독배마을에 있는 바위산 밑에는 활석암반을 파들어 간 토굴이 40여개 가 넘는다. 길이가 100~200m에 이르는 토굴 속에는 새우젓을 담은 수 백 개의 드럼통에서 연간 3,500여 톤의 새우젓이 생산된다.
『삼국사기』에는 신문왕이 왕비를 맞이하는 폐백음식으로 ‘해(醢)’를 준비했다고 나오는데, 이 ‘해’가 바로 오늘날의 젓갈을 의미한다. 『고려도경』에는 ‘신분의 귀천을 가리지 않고 상용하던 음식이 젓갈’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조선시대에는 해안지방의 젓갈이 보부상들에 의해 전국 각지로 유통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젓갈역사 참조)
관내버스로 30분 만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보령 충청수영성(忠淸水營城)”이다. 서쪽 망화문 터의 아치형 석문(石門)을 들어서며 시작되는 수영성은 충청남도 사적 제501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천 항은 수심이 깊은 천수만 연안에 자리를 잡고 있어, 백제 때는 화이포라 부르며 중국과 일본으로 통하는 관문이었고, 고려 때에는 왜구의 침몰이 잦아 군선을 두어 지키다가 조선에 들어와서 충청수영(忠淸水營)을 설치하였다.
태조 때 수군첨절제사를 두어 수영(水營)을 설치하였고, 1510년(중종 5년) 축조가 시작되어 16년이 걸려 완성됐다. 성의 길이는 1650m에 높이가 11척이고, 5개의 성문마다, 옹성을 설치하여 수성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오천항에는 군선 100여척이 정박하고 병력 3천여 명이 상주하며, 금강하구에서 평택에 이르는 연안경비와 조운선을 보호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진휼청을 지나 포토죤 언덕에 올라서면 아름다운 오천 항이 펼쳐진다. 밀물시간이라 보령방조제까지 가득채운 바다위로 월척의 꿈을 안고 낚싯대를 드리운 수 백 척의 낚시 배들이 장관을 이룬다. 보령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는 광천 옹암포구까지 사 십리 뱃길이 이어졌다고 하니 리아스식 해안의 절경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설레 인다.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수영성(水營城) 영보정(永保亭)에 올라 고소어화(故蘇漁火)요. 연항누선沿港樓船)이라 하였으니, 고소대의 고기 잡는 불빛이 아름답고, 항구에 정박한 높은 배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중에서도 다산 정약용과 백사 이항복은 조선 최고의 정자라 칭송했다.
전국을 유람하는 한 사람의 동지를 만났다. 교육자로서 정년퇴직을 하고, 국토사랑의 일념으로 동해와 남해를 돌아 서해안을 북상중이라는 일명 김산(金山) 선생이다. 서로간의 사고방식이 같고 마음이 의기투합할 때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갈매못 성지를 찾아 오천항을 떠난다.
천수만에서 오천항을 거슬러 오르는 입구에 있는 영보리 백사장이 갈매못 성지다. 1846년(헌종12) 프랑스함대 세실사령관이 3척의 군함을 이끌고, 외연도에 상륙하여 기해박해(1839년) 때 프랑스 신부를 살해한 경위를 묻는 서한을 남겨둔 사실이 있었다. 이에 조정에서는 영해침범사건으로 간주하여 다불리 주교, 오매트로 신부, 위애 신부, 장주기, 황석두 등 다섯 명을 영보리 백사장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집행한 사건이 1866년 병인박해다.
갈매못 성지를 뒤로하고 610번 도로를 따라 산 고개를 넘어서면, LNG 터미널 정문을 지나 1시간 동안 지루하게 보령화력발전소를 바라보며 걷게 된다.
서해안을 지나면서 우리나라기간산업인 화력발전소를 많이 만난다. 보령화력발전소는 국내최대면적을 확보하여 50만㎾급 발전설비 2기로 구성되어 있다. 충청남도에서 서천화력발전소와 함께 최초로 건설된 보령화력발전소는 1979년 12월 착공하여, 1983년에 1호기를, 1984년에 2호기를 준공하였다.
산굽이를 돌아서면 이지함 선생 묘소가 있다. 매년 정월이 되면, 한 해운수를 보던 “토정비결”이란 책이 있었다. 그 책의 저자가 바로 이지함 선생이다. 조선중기(1517-1578) 학자(學者)이며 기인(奇人)으로 이름난 명현(名賢) 이지함(李之函) 선생은 본관이 한산(漢山)이고 호가 토정(土亭)이다.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한 선생은 화담 서경덕(徐敬德)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천문(天文), 지리(地理), 의학(醫學)등에 능통하였으며, 벼슬길에 오르기 전에는 마포나루에 살면서 어염상고(魚鹽商買)로 많은 돈을 벌어 간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 했다, 뒤늦은 나이에 포천현감으로 재직할 때는, 백성들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개혁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범람을 예견하는 등 우리나라 실학(實學)의 효시(嚆矢)로 알려 진 인물이다.
보령화력발전소 덕분에 내륙 깊숙이 돌아 나온 길이 고정리에 도착하며 바다와 만난다. 그동안 갯벌을 품에 안고 출렁이던 물길도 십리 밖으로 물러나고, 덩그렇게 바닥을 드러낸 갯벌에서 바지락이며 소라 캐는 손길이 분주하다. 건너다보이는 대섬(竹島)이 손짓하지만 외지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없는 “어로채취금지구역”이라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한다.
멀리 산자락 아래 대천 읍내가 나타나고, 그 유명한 대천 방조제가 시작된다. 대천해수욕장은 알아도 대천읍내는 알지 못하는 것이 외지관광객들이다. 그 만큼 대천읍내는 방조제로 인해 바다에서 멀어진 내륙 깊숙한 곳으로 밀려 나고 사람들의 이목을 받지 못하고 말았다.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 방조제 7km길, 푸른 바다가 문전옥답(門前沃畓)으로 변신한 주교면 일대를 바라보며 대천 천을 따라 서해안고속도로 교각 밑을 지나서도 20여분을 걸어간 뒤에야 대천역에 도착하게 된다. 성주산(677m)자락에 터를 잡은 대천읍은 장항선직강공사로 새로 지은 대천역이 인상적이다.
현재시각이 14시40분. 16시 36분발 무궁화열차 예매시간을 감안하면 대천여객선터미널까지 6km는 갈수 있는 시간이지만, 다시 돌아올 생각을 하면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다. 오늘 일정을 22km로 만족하고, 15시 27분에 출발하는 새마을호로 승차권을 교환하여 서울로 향한다.
21. 대천 해수욕장
배낭을 둘러메고 집을 나선지 4시간 만에 도착한 곳이 충남 보령시 대천역이다. 대천역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30분 만에 도착한 대천항은 주말을 맞아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판장에서는 밤새 잡아온 꽃게 경매가 한창이다. 걸쭉한 목소리에 알아듣기 어려운 암호로 경매가 끝이 나면 대하(大蝦) 경매로 이어진다.
『동의보감』에서 꽃게는 열기(熱氣)를 풀어주는데 특효가 있다고 하는데, 주로 찜을 하거나 찌개를 끓이고, 게장을 담가 먹는다. 꽃게는 국내소비량이 많을 뿐만 아니라 활어수출품목으로서도 매우 중요한 어종이다.
대천해수욕장에서 1km거리에 있는 대천항은 해상교통의 중심지로서, 연근해로 떠나는 여객선의 관문이고, 서해안 제일의 어업전진기지로 꽃게, 소라, 우럭, 도미, 대하 등 싱싱한 해산물이 풍부하여 주말이나 피서 철이면 관광객으로 넘쳐난다.
터미널에 들려보니 외연도로 가는 배표는 매진된 뒤였고, 다른 섬으로 가는 발길도 분주하다. 보령7경으로 선정된 외연도는 보령시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절해고도의 섬이다. 연기에 가린 듯 까마득히 먼 곳에 있는 섬이라 외연도라 부른다.
대천항에서 53km거리에 있어 쾌속선으로 1시간 반이 걸리는 서해 고도의 섬 외연도는 고요한 새벽이면 중국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외로운 섬이다. 섬의 뒷산에는 천연기념물 136호로 지정된 상록수림이 3천 여 평의 분지에 군락을 이루고 있다.
대천항 수산시장 앞에는 보령-청양-공주-세종-청주-음성-충주-단양-영주-울진까지 서쪽에서 동쪽으로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는 36번국도(292.4km) 시발점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뒤로하고 시영아파트 고갯길을 넘어서면 대천해수욕장이 반겨준다.
길이 3.5km에 폭이 100m인 대천해수욕장은 만리포해수욕장, 변산해수욕장과 함께 서해안 3대 해수욕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매년 6월 말이나 7월초에 개장식을 갖지만, 계절에 관계없이 사시사철 관광객으로 붐비는 곳이 대천해수욕장이다.
서해안 제일의 해수욕장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유흥음식점을 중심으로 모텔들이 밀집한 환락의 천국이다. 계절에 따라 각종 축제가 열리는 대천해수욕장에서도 가장 인기가 있는 곳이 머드축제장이다. 대천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해안에 산재한 품질 좋은 진흙을 활용해 머드축제를 개최하여, 연간 수백만 명이 찾아오는 관광 상품으로 대박을 터트렸다.
7월 20일경부터 10일간 개최되는 머드축제는 250만의 관중이 몰려드는 성황을 이루어 전국 20개 축제로 성장하였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밝아오는 새아침의 희망을 맞이하는 해넘이축제가 12월 31일부터 분수광장과 시민 탑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시원한 파도와 파란 물빛이 아름답고, 잔잔하게 반짝이는 서해바다를 가르는 요트들의 행렬이 젊음을 발산하는 해수욕장. 눈부신 태양아래서 사색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도 좋을 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남포방조제를 찾아간다.
민속촌 갓바위마을 이정표를 지나며, 바둑판처럼 반듯하게 정리된 들판에는 땅내 맡은 벼들이 싱싱하게 자라고, 산자락이 내려앉는 곳에서 십리제방(十里堤防) 남포방조제(藍浦防潮堤)가 시작된다.
편도2차선에 오른쪽은 바다를 막은 방조제요, 왼쪽은 자전거도로에 200m폭의 운하가 흐르고 있어 아라 뱃길의 축소판과 같은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을 잇는 길이가 3.7km에 이르는 남포방조제는 1997년 완공되어 남포면 일대의 489ha의 농지를 조성하였다.
남포방조제 중간지점에 있는 죽도는 대나무가 많아 부르는 섬이다. 방조제 축조공사로 인해 육지로 변한 죽도는 관광지(보물섬)로 개발하여 관광버스들이 쉬어 가는 곳이다. 죽도는 고려의 재상 임향이 귀양살이하던 곳이다. 공민왕이 신돈을 중용하자, 중을 재상으로 들이심은 천하의 부끄럼이라는 상소를 올린 뒤 이곳으로 부처되어 귀양을 살았다.
40여 분간 지루하게 걸어온 방조제도 끝이 나고 용두해수욕장이 시작된다. 보령요트장이 있는 용두해수욕장은 충청남도 야생조수실태고정조사지로 지정될 만큼 시원한 소나무 숲과 바다바람을 동시에 접할 수 있어서, 때 묻지 않은 자연조건을 갖추고 있다.
입자고운 백사장이 1km에 걸쳐 펼쳐지고, 해변 경사가 완만하여 노약자로부터 어린아이들까지 가족단위 해수욕장으로 안성맞춤이다. 백사장 뒤편으로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소나무 숲이 형성돼 캠핑 족들에게는 이보다 좋은 해수욕장을 찾기가 쉽지 않다.
‘열린바다로’를 따라 산마루에 올라서면, 소나무 숲속에 정자까지 갖춘 쉼터가 나타난다. 때 마침 사람들도 없어 호젓한 정자에 올라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쳐든다. 도보여행을 하는 중에 식당을 찾게 되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 지라 간단하게 행동식으로 점심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반주까지 곁들이고, 마을로 내려서면 무창포해변이 반겨준다. 한 달에 4-5번씩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곳. 바닷길 열림 현상은 조수간만의 차에 의해서 생기는 자연현상이다. 달의 인력이 평상시 보다 센 보름과 그믐을 전후하여 3-4일간 바닷물이 많이 빠져나가면, 물속에 잠겨있던 무창포와 석대도 사이 1.5km가 아름다운S자 곡선을 그리며 장대하게 펼쳐진다.
진도해변과 대부도해변을 우리나라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3대 해안으로 꼽고 있다. 하필이면 물때가 맞지 않아 모세의 기적을 보지 못하고, 무창포해수욕장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높이45m의 타워에 올라서면 그림 같은 무창포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아름다운 해안과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석대도가 절경이어서, 서해안에서 가장 먼저 개장한 곳이 무창포해수욕장(1925년)이라고 한다. 무창포 해수욕장의 구석구석을 스케치하며 버스시간을 기다린 끝에 2시2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에 오른다.
웅천 읍내로 들어와 보령이 자랑하는 석재공원을 찾는다. 화락산 자락에 터를 잡은 웅천석재공원을 찾아가는 연도에는 석재가공공장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보령은 예전부터 돌로 유명한 고장이다. 돌의 역사와 함께 보령에서만 생산되는 남포오석과 남포벼루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하고 있다.
보령에서 나오는 오석으로 만든 비석을 최상품으로 인정하여, 성주사지에 있는 국보 제8호인 안혜화상탑비가 대표적인 유물이다. 남포오석 중에서 백운상석으로 만드는 벼루는 조선시대 임금님에게 진상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여 추사 김정희도 남포벼루를 극진히 아꼈다고 한다.
좋은 벼루는 먹이 잘 갈리고 고유의 묵색이 잘 나타나야 한다. 돌의 입자가 미세하고 강도가 강한 반면 적당한 무게를 지니고 있어야 하며, 먹물이 잘 마르지 않는 벼루에 예술성이 가미된다면 최상급의 벼루라고 한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벼루가 전시되어 있다. 조선시대 소론의 영수였던 명재 윤중 선생의 소장품을 재연한 것이라고 한다. 전시실에는 중국의 시선 이규보와 조선의 성리학자 기대승의 벼루 예찬론이 영상으로 나오고, 탁본체험관과 우리의 옛것을 재현하는 부채들을 전시하고 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했던가. 보령석재의 우수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현장을 방문하여 많은 것을 보고 견문을 넓혔으니 소중한 시간이었다. 웅천역에서 16시 22분 무궁화열차에 오르며 다음을 기약한다.
22. 춘장대 해수욕장
간밤에 내린 비로 미세먼지도 씻겨 내리고, 싱그러운 산과들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홍성을 지난 열차가 광천, 대천, 웅천을 지나 서천으로 이어진다. 우리나라 고을이 川이나 州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네 고을이 연속적으로 川 자를 사용하는 곳도 드물기 때문에 흥미롭다.
이름에서 상징하는 하천을 끼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방조제 축조로 인해 바다와 멀리 떨어져 있지만, 예전에는 포구로서 명성을 날리던 곳이라는 점에서도 유사하다. 오늘 도착하는 웅천은 서부충남의 젓줄인 보령호를 끼고 있고, 전국제일의 석재가공장이 있는 고장이다.
오늘의 목적지인 장안해수욕장은 웅천역에서 13km 떨어진 곳이라 거리상으로는 멀지 않지만, 대중교통인 버스가 하루에 5번 다니는 외진 곳이라 부득불 택시(14000원)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부사방조제로 유명한 장안해수욕장은 공군부대에서 관리하는 곳이라 일반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한적한 곳이다.
해안가 사구를 보호하는 생태학습장이어서, 입구부터 나무테크를 설치하여 해안으로 접근하기에 편리하다. 백사장의 수심이 얕고, 질이 좋아서 대천이나 무창포처럼 많은 인파를 피해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가족나들이 해수욕장으로 적당한 곳이다.
하지만 3.5km 정도 길게 뻗어 있는 부사방조제 안쪽에서는 민물낚시를 할 수 있고, 바깥쪽에서는 우럭, 놀래미, 도다리, 광어 등 바다낚시를 즐길 수가 있어서 해수욕장보다는 낚시꾼들의 천국으로 명성이 높은 곳이다.
서천군 서면 도둔리와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를 연결하는 부사방조제는 서해바다에서 밀려드는 조수의 피해를 막고 웅천읍 일대의 농경지를 보호하기 위해 1997년에 축조하였다. 춘장대해수욕장과 무창포해수욕장을 연결하는 관광코스로서, 제방위로 올라서면 서해안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갯바람 속에 만경창파를 조망하며, 조용하게 사색을 즐길 수 있는 나만의 공간속으로 빠져든다.
40여 분간 뙤약볕을 받으며 제방을 내려서면, 서천군이 자랑하는 춘장대 해수욕장이다. 소나무와 아카시아 숲이 인상적인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춘장대해수욕장은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한 자연학습장 8선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완만한 경사와 잔잔한 수면이 장점인 춘장대해수욕장은 1.5㎞에 이르는 백사장이 있고, 주변이 암석해안을 이룬다.
썰물이면 아득하게 멀어진 갯벌이 펼쳐지고, 맛소금으로 잡아내는 맛 조개체험 또한 이곳만의 별미이다. 서천5경으로 선정된 춘장대해수욕장에서는 오늘부터 2016년 모래성 축제가 열리고 있다. 백사장에는 모래로 만든 조각 작품이 전시되고, 엿장수들의 흥겨운 리듬을 타고 축제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서천군에서도 해안가의 아름다운 비경을 연결하는 둘레 길을 조성하여, 부사호에서 시작하는 “붉은낭만길”이 춘장대해수욕장을 거쳐 홍원항까지 8km가 이어진다. 썰물 때면 해안가로 접근이 가능하지만, 밀물 때는 산등성이를 넘어야하는 장애물이 기다리고 있다. 도둔리를 지나 홍원리 입구까지 진행하여 “해지게길”로 이어진다.
해지게길은 마량포구와 동백정을 연결하는 코스여서 춘장대 해수욕장과 함께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소다. 마량포구를 찾아가는 해안도로는 산중허리를 관통하고 있어 주변으로 펼쳐지는 해안선이 너무도 아름답고, 가로수로 심은 동백나무가 남국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산등성이에 올라서면 마량포구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마량포구는 바다를 향해 길게 뻗어 나온 곳이라 서해안에서 보기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황금색으로 물드는 낙조와 새아침을 여는 희망찬 일출이야 말로 마량포구가 자랑하는 절경이다.
만과 곶이 발달한 마량포구는 경관이 좋을 뿐만 아니라 국내 최고의 품질과 맛을 자랑하는 서천 김 양식장이 있고, 밤을 지새우며 잡아온 싱싱한 해산물을 경매하는 어판장이 포구에 자리 잡고 있다. 서천지명탄생600주년 기념물이 있는 산등성이를 내려서면, 버스종점이 있는 마량포구다. 거대한 범선을 중심으로 정갈하게 꾸며진 소공원이 반겨준다.
범선모형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성경을 전달한 상징물이다. 1816년 영국해군 머레이 멕스웰(Murray Maxwell) 대령이 순양함 Alceste 호와 Lyla 호를 이끌고 서해안 탐사 차 서천 마량진 해안에 상륙하여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서천군에서는 2004년 학계와 종교계의 고증을 거쳐 마량포구 일대를 “한국최초성경전래지로 선포”하고 기념비와 추모비를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마량리와 서천시내를 오가는 관내버스가 매시 35분과 55분에 출발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불편함이 없는 곳이다.
서천 제1경으로 꼽히는 동백정은 서천화력발전소로 인해 찾아가는 길이 불편하다. 해안도로를 따라 들어왔던 길을 도로 나가야한다. 장승들이 도열해 있는 순환로를 지나 마량포구 입간판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서천화력발전소 정문을 지나 동백정 주차장에 도착한다. 마량포구에서 마을 고샅길로 등산로를 개설한다면 거리도 짧고, 운치 있는 명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층층계단을 올라 노송군락지를 지나면, 마량리 동백나무숲이 펼쳐진다. 천연기념물 제169호로 지정된 동백나무숲은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며, 3월 하순에 핏빛으로 물든 동백꽃을 피워낸다.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언덕의 사면으로 수령 오백년을 자랑하는 동백나무 8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관동팔경보다도 아름다운 동백정은 전망이 좋은 언덕바지에 2층 누각으로 날렵하게 터를 잡고 있다. 동백정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동백정 앞바다에 떠있는 오력도와 어우러진 서해바다에 황혼이 물드는 풍경은 만단시름을 잊고 황홀경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떨어져도 시들지 않고 고결한 자태를 그대로 간직해서 더욱 가슴 시리게 하는 동백꽃은 송이가 통째로 바닥에 떨어질 때, 처연함이 가슴속으로 파고든다.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동백정이야말로 서천제일의 명승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마량포구는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는 해안가 끝자락에 있는 명승지다. 서면 소재지까지 시내버스를 탄 것이 화근일까. 서면 소재지에서 월하성 해변을 찾아간다는 계획이었지만, 중간에서 승용차와 충돌하는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모든 일정이 중단되고 말았다.
누구의 잘잘못 보다는 모두가 피해자가 되고 만다. 순간의 실수로 물질과 시간상의 손해를 보는 교통사고는 서로가 조심하고 양보하는데서 미연에 방지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지만,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답사를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운전기사의 미안하다는 사과를 받으며 서천시내로 들어와 16시에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몸을 싣고 고단한 하루를 정리한다.
23. 철새나그네길
마량포구를 다녀 간지 20일 만에 다시 찾았다. 장마의 틈새를 비집고 찾아온 맑은 날을 가려 집을 나서고 보니, 30도를 훌쩍 넘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지난번 접촉사고로 중단했던 도둔리에 내려서니, 작열하는 태양이 백사장을 달구고 바닷물은 저 만치 물러나 있다.
철새나그네길의 시발점인 해오름관광농원은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휴일을 맞아 찾아온 피서객 서너 팀이 그늘 속에 텐트를 치고, 철부지 아이들은 갯벌에서 신바람이 나있다. 쓰나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처럼, 모래톱에 쌓여있는 부유물로 인해 주변 환경이 너무도 지저분하다.
해송과 모래사장이 어우러지는 바닷가에 사람이 없다. 갯벌이 살아야 인간도 살 수 있는 것이고 보면, 주변 환경이 깨끗해야 피서객이 찾아오는 것이 아닌가. 이곳의 모래사장은 단단한 것이 특징이다. 자동차도 다닐 정도로 단단하여 산책 나온 가족과 연인들이 해변을 거닐기 좋은 곳인데, 아쉬운 점이 많다.
띠목섬 해수욕장에 도착해서야 피서객들을 만날 수가 있다. 비닐봉지에 호미 하나씩을 들고 물 빠진 해변가를 서성이며 어촌체험이 한창이다. 서울시 연수원으로 돌아가는 해변은 수직절벽으로 단애를 이루고,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깔려있어 날카로운 바위를 넘나드는 곡예로 진땀이 나면서도, 스릴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수십 길 절벽위에 자리 잡은 서울시 연수원은, 고운모래사이로 듬성듬성 배열된 바위들, 손을 뻗으면 닿을 듯이 가까운 띠섬까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모습이다. 해안가를 돌아 월하성 해변에 도착한다. 달빛아래 신선이 노닌다는 월하성은, 초승달을 닮은 마을해안과 앞바다에 비친 달을 보고 반한 신선이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는 마을이다.
아늑한 포구에 썰물이 되면 시원하게 갯벌이 드러나고, 쌍도까지 오가며 어촌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다. 갯벌을 내려서는 입구에 탐방객을 맞이하는 안내소까지 설치하고 있다. 월하성에서 해변을 따라 2km거리에 선도리 해변이 있다.
한낮의 열기를 이기지 못하고, 등산화속에서 뿜어 나오는 열기와 작열하는 태양열을 피해 정자 안으로 들어선다. 체면 볼 것 없이 양말부터 벗어던지고, 정자마루에 누웠더니, 산들산들 불어오는 해풍에 스르르 잠속으로 빠져든다.
30여 분간 꿀맛 같은 오수를 즐기고 나니, 피로가 말끔히 가시고 컨디션이 살아난다. 선도리는 철새나그네길 구간 중에서도 가장 큰 마을이다. 비인1교에서 시작하는 해상공원은 외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인가. 마을의 규모에 비해 과분할 정도로 시설이 잘돼있다.
갯벌체험 관리동을 낙지모양으로 지은 선도리는 대형 트랙터를 개조한 갯벌차량을 2대나 갖추고, 앞에 있는 쌍도까지 체험단을 안내하고 있다. 삭막한 바위에도 생명이 움트는가. 선도리 남쪽 해안가에 솟아있는 바위에 소나무 3그루가 독야청청하여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고 있다.
언덕바지를 넘어서면 비인해수욕장이 나타나고, 할미바위를 바라볼 수 있는 포토죤이 조성돼있다. 김정환 시인은 낙조에서 “저녁노을이 황홀하고 아쉬움이 남는 것은”, 우리네 인생무상이라 노래하고 있다. 암초와도 같은 할미바위는, 썰물이면 끝없이 펼쳐지는 갯벌의 중심지였다가 밀물이면 물위에 떠 있는 부평초처럼 비인해변에 없어서는 안 될 상징물이다.
비인해변 끝자락에서 장포해변을 지나 다사해안이 시작된다. 다사포구는 월명산자락이 서남쪽으로 지세를 낮추다가 바다와 접하는 곳에 안겨있는 아담한 포구다. 선도리와 마찬가지로 해안가를 따라 공원을 조성하여 낙조를 바라보는 여인상을 비롯하여, 휴식공간을 조성했지만, 관리가 부실한 탓인지 칡넝쿨이 뒤 덮여 볼 성 사납다.
해안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검은 낙석을 바라보며 방파제가 있는 해안을 돌아가면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독살이 있고,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방파제 끝자락엔, 다사포구의 일출과 일몰을 볼 수 있는 포인트가 자리 잡고 있다. 다사리, 당정리, 장구리, 한성리, 송석리 등 종천면 5개 부락주민들이 바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장구만이 시작되는 곳이다.
다사항에서 철새나그네길 14km도 끝이 나고, 종천천이 합류하는 방파제를 돌아 당정리로 들어선다. 윤슬길(7km)을 따라 장구만 철새도래지로 지정된 송석리 갈목마을을 경유하여 죽산리 매바위까지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35도를 육박하는 살인더위 속에서 무리한 주행은 다음날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당정사거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서천터미널 근처의 한솔장에 여장을 푼다.
24. 금강 하구언
6시10분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르고 보니, 지난번 도둔리에서 접촉사고를 낸 버스기사와 다시 만나게 된다. 용케도 알아보는 기사와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자기 때문에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되어 미안하다는 사과와 함께 장항의 명소를 소상하게 알려준다.
장항읍내 영흥아파트 정류장에서 시작하는 발걸음은 장항송림 삼림욕장이 목적지이다. 종점까지 가는 버스가 있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서천소방서와 한솔제지를 지나 장암지하차도를 빠져나와 해양생물지원센터까지 2.5km를 걸어야 한다.
멀리서 보아도 울창한 송림이 예사롭지가 않다. 관광지도를 통해 눈여겨보아온 곳이라, 설레는 마음으로 달려가지만, 월요일은 휴관일이라는 안내문구가 앞을 가린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했던가. 허탈한 마음으로 스카이 워크를 바라볼 뿐이다.
장항스카이워크는 해양생물자원관과 연계한 하늘길이다. 높이15m에 길이가 250m인데, 시인의 하늘길100m는 해송 위를 걷게 되고, 서천군에 머무는 철새에 대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철새하늘길과 바다하늘길로 연결된다.
기벌포해안전망대로 부르는 이곳은 나당연합군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뒤 기벌포(伎伐浦)에서 전투를 벌인 곳이다. 675년 신라와 당나라가 기벌포 앞바다에서 벌인 전투에서 당나라 20만 대군을 격파하여 당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당나라는 평양에 있던 안동도호부를 요동성으로 옮기고, 신라는 대동강부터 원산만(元山灣)을 경계로 이남지역을 영토로 확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항송림삼림욕장은 길이가 2.5km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다. 고려시대 정2품 평장사 두영철이 유배를 왔다가 모래찜질로 건강을 되찾았다는 일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모래찜질은 염분과 철분, 우라늄 등이 풍부해 피로회복은 물론, 신경통이나 관절염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소나무 숲속을 빠져 나오면 남쪽으로 장항제련소 굴뚝이 시선을 압도한다. 지금은 LG화학에서 운영하고 있지만,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설립하여 공장조업이 개시된 이래 우리나라 비철금속제련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해방이후 공장시설이 별로 없던 시절,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던 곳이다.
장암터널 옆으로 장암진성(長巖鎭城) 유적지를 만난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97호인 장암진성은 고려시대의 명칭으로 둘레가 약 660m이다. 이 성은 해발 90m의 야산에 동고서저(東高西低)의 지형에 따라 축조된 평산성(平山城)으로, 당나라가 백제를 침략할 때 가장 먼저 상륙한 곳이고, 최무선(崔茂宣) 장군이 왜적을 격파하는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길목이다.
서천군은 백제 웅진ㆍ사비시대 때 군사상 중요한 거점이었다. 지금의 장항지역인 기벌포를 포함한 서천일대는 백제의 마지막 왕도 사비성(泗批城)을 지키는 중요한 관문이요, 보루였다.
서천군내에는 지금도 백제 때 산성이 많이 남아있다. 멸망한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백제부흥운동의 거점이었던, 한산면 건지산성을 비롯하여 서천읍에 있는 남산성, 비인면에 있는 불당곡산성ㆍ관적곡산성 등이 백제 때 산성으로 알려지고 있다. (백과사전 인용)
부둣가로 나오면 도도히 흘러온 금강하구언과 만난다. 금강은 우리나라에서 6번째, 남한에서는 한강·낙동강에 이어 3번째로 긴 강이다. 장수군 장수읍 수분리 신무산(神舞山:897m) 북동쪽 뜬봉샘에서 발원하여 진안·무주·금산·영동·옥천·대전·연기·공주·부여·논산·강경 등 10여개 지역을 지나 군산만 금강하구둑까지 397㎞가 이어진다.
대덕구 미호동과 청원군 문의면을 잇는 형각진(荊角津)이란 나루터에 금강수계에서 최초로 건설한 대청댐은, 1975년 3월 착공하여 1980년 12월에 완공된 중력식 콘크리트 댐으로 높이 72m, 길이 495m에 14억9,000만㎥의 저수용량과 9만kW의 발전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제 금강하굿둑까지 금강을 바라보며 7.5km를 거슬러 오르게 된다. 인구1만3천명이 상주하고 있는 장항읍은 금강을 사이에 두고 남쪽의 군산시와 함께 쌍벽을 이루던 도시였다. 본래는 한가로운 촌락이었는데, 1931년 장항선이 개통되고, 1936년 장항제련소가 완공되면서, 서해안 거점도시로 발전하였다.
1937년 완공된 장항항은 일제의 미곡수탈과 근대공업화과정에서 급속하게 팽창하여 38년에는 광주광역시와 함께 읍으로 승격되었고, 1964년 7월에 국제항으로 승격되기도 하였지만, 89년 제련소의 용광로가 폐쇄되고, 하굿둑이 건설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한솔제지와 풍농비료공장, 퍼시픽글라스공장을 지나면 장항항이다. 재도약의 기치아래 접안시설 확장공사가 한창이다. 수산해양사무소를 지나, 금년 말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동백대교(길이 2470m)를 지나며 시가지를 벗어나 농촌들녘을 지나게 된다.
68번 국도를 지나는 연도에는 음식특화거리를 조성하고 있지만, 찾아오는 손님이 별로 없는지 을씨년스럽고, 금강을 거슬러 오르며 갈대가 무성한 철새도래지가 시작된다. 철새들이 떠나간 계절이라 적막감이 감돌고 있지만, 찬바람이 불어오면 시베리아에서 날아온 50여만 마리의 철새들이 겨울을 나게 된다.
잔잔한 수면을 수놓는 우아한 자태의 고니를 비롯하여 흰죽찌와 뿔논병아리, 물닭, 청둥오리, 넓적부리, 쇠오리, 큰기러기 등의 철새들은 금강하구에서 많이 관찰되는 겨울철새들이다. 특히 수만 마리가 무리지어 날아오르는 가창오리는, 낮에는 안전한 금강하구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밤이면 인근농경지로 날아가 먹이를 찾으며, 월동하는 금강하구의 대표적인 철새이다.
드디어 금강 하굿둑에 도착한다. 전북 군산시 성산면 성덕리와 충청남도 서천군 마서면 도삼리를 잇는 방조제는 길이가 1,841m, 너비 51.5m, 높이 14.6m의 규모로 1990년 11월에 완공되어, 장항선철도와 21번국도로 충남과 전북을 연결하는 교통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이로서 1년간 420km를 걸어온 충남구간 도보여행을 완주하고 장항역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