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완묵 2016. 9. 11. 08:12

1. 아라 뱃길

동해의 해파랑길과 휴전선 평화누리길을 완주하고서도 서해안 여행은 엄두를 내지 못하던 구간이다. 리아시스식해변이라 굴곡이 심하고, 길도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미개척지가 많아 중도에 포기하는 불상사가 나지 않을까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망설이는 것 보다는 부딪혀 보고 후회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에 곧바로 실천에 들어간다. 송정역에서 60-3번 버스로 환승하여 대명항에 도착하니 810분이다. 평화누리길 시발점인 대명항에서 서해안 도보여행의 첫발을 내딛는다.

 

초지대교로 연결되는 356번 도로를 횡단하여 해안가로 접근하니 철조망과 가시덤불이 앞을 가린다. 싱싱한 횟감이 생각날 때면 들렸던 황산도 선착장이 염하를 사이에 두고 반가운 미소를 보내고, 물 빠진 갯벌이 검은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철조망과 근접한 농로를 따라가는 중에 미나리꽝에서는 부지런한 농부들의 일손이 분주하고, 앙살 맞은 진돗개의 텃새에 오금이 저려온다. 목살이 풀어진 두 마리의 진돗개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달려드는 통에 논두렁을 가로질러 도로위로 줄행랑을 치고 만다.

 

고약한 것은 진돗개 뿐 만이 아니다. 주유소를 지나면서 해안을 매립한 철조망 옆으로 2차선도로는 갓길도 없이 무법자의 천국이다. 속도경쟁이라도 하려는 듯이 쌩쌩 달려가는 화물차를 피할 길이 없어 철조망 옆으로 달라붙는다. 경사진 비알 길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심한 매연이 콧구멍으로 파고드는데, 2km가 넘는 길을 어찌 통과할지 걱정이 앞선다.

 

30여 분이 지난 뒤 악암교차로에 도착하면서 숨통이 트인다. 새우양식장 유수지를 관리하는 비포장길이 구세주처럼 반갑기만 하다. 이 길도 얼마 안가서 끝이 나고 또 다시 2차선 도로위로 내려서고 만다. 각오는 했지만, 이렇게 위험한 길을 가야한다는 생각에 더럭 겁부터 난다.


지옥 같은 구간을 벗어나는 데는 2시간이 소요되었다. 안암도 초소를 지나면서 4차선도로에 자전거전용도로까지 인천광역시 구간이 시작된다. 탄탄대로에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 부럽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단조로운 길에서 피로감이 빨리 찾아오는 것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서해안이 리아스식 해안이라는 것도 옛말이 되고 말았다. 인천 해안선 124km 중에서 122km가 해안을 매립하여 만든 직선도로라고 한다. 우리경제가 발전하면서 갯벌도 사라지고, 생태계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직선도로를 지나 온지 30여 분만에 서해안 갑문에 도착한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지루한길은 이어진다. 빤히 건너다보이는 아라 뱃길 수 백 미터를 바라보며 6km를 돌아가야 하는 구간이다. 경인항 컨테이너부두를 비롯하여 수도권매립지에서 슬러지를 자원화 하는 공장이 줄지어 나타난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고 버려지는 쓰레기의 양이 매우 방대하다. 그 많은 쓰레기를 매립하면서 재생산된 것이 슬러지를 자원화 하는 공장이다. 난지도 매립지에서 월드컵의 함성이 울려 퍼지고, 아름다운 공원으로 조성하여 우리의 곁으로 돌아오지 않았는가. 이곳 인천 매립지도 유용하게 사용할 날을 기대한다.

 

드디어 청운교위로 올라선다. 그동안 고생을 보상이라도 하려는 듯이, 아름다운 경관이 펼쳐진다. 서해바다(인천시 서구 오류동)와 한강(강서구 개화동)을 잇는 길이 18km, 너비 80m의 경인 아라 뱃길이다. 정부정책의 당위성과 환경론자들의 첨예한 대립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를 수차례.

 

우리나라 최초의 운하로 기록되는 아라 뱃길은 각 지방의 조세를 한양으로 운반하기위해서는 꼭 필요한 물길이었다. 800여 년 전인 고려 고종 시절부터 항로를 개척하기위해 실권자인 최충헌이 인천 앞바다와 한강을 직접 연결하는 공사를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근세에 들어와서도 운하의 필요성을 절감한 정부에서 1966년부터 본격적으로 공사를 추진하여 45년 만에 개통을 본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연계하여 추진한 사업이 결실을 보아 자연환경(한남정맥)의 파괴와 경제성논란을 잠재우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관문인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연도에 고속도로와 지하철에 운하까지 구색을 갖추어 외국 관광객들에게 우리의 위상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성이 크다고 하겠다.

 

4대강 종주를 목표로 국토대행진을 시작한 출발점이요, 백두대간종주와 함께 내 생애 가장 큰 업적으로 평가받는 물길따라 삼천리의 서두를 열었던 곳이라 의미가 깊다. 운하가 개통된 3년전 보다는 정비도 많이 되고, 입주기업도 많아 차츰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이다.

 

홍보관을 겸하고 있는 아라리움에는 뱃길의 역사 및 문화와 선조들의 이야기를 모아 홍보물을 전시하고 있다. 터미널의 꽃이라 할 수 있는 23(71m)의 아라 타워에 올라간다. 인천앞 바다와 영종대교, 서해바다와 운하를 연결하는 갑문이 발밑으로 내려다보이고, 수향2경으로 명명된 공원의 아름다운 조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함상공원을 지나 정서진 해넘이 공원에 도착한다. 정서진은 광화문을 기준으로 하여 정서쪽에 있는 나루라는 의미이다. 강릉에 있는 정동진과 대칭되는 개념으로 일출의 정동진과 일몰의 정서진을 부각시켜, 정동진이 새로운 희망과 출발을 의미한다면, 해가 지는 정서진은 아쉬움과 회상을 상징하는 기념 조형물과 표지석을 세웠다는 설명이다.

 

 

2. 청라 신도시

정서진 공원을 출발한 시간이 12시 정각이다. 1년 만에 배달되는 느린 우체통을 찾아 영종대교 휴게소로 올라선다. 가장먼저 시선을 끄는 것이 행운의 곰(포춘베어) 조각상이다. 폭이 9.7m에 높이가 23m, 무게가 40톤이나 되는 포춘베어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철제조각품으로 인정받아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고 한다.

 

3층 전망대에 올라가면 인천공항을 이어주는 영종대교가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인천공항개장과 함께 완공된 영종대교는 199312월 착공하여 200011월 완공된 교량으로 길이가 4,420m이고, 교량너비 41m에 주탑 높이가 107m나 되는 초현대식 현수교이다.

 

영종대교를 건너가면 21세기를 열어가는 인천국제공항(仁川國際空港)이 터를 잡고 있다. 동북아시아의 허브로서 최첨단시설과 친절한 서비스로, 세계공항서비스평가(ASQ)에서 2005년 이후 계속하여 세계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의 바다를 메워서 만든 인천국제공항은 세계로 뻗어나가는 관문이요.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자존심이다.

 

2층으로 내려오면, 빨간 우체통이 벽면을 장식하고, 우편번호를 확인할 수 있는 컴퓨터에 우편엽서까지 비치되어 있다. 초스피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일 년 뒤에 배달되는 편지 속에 담겨질 사연이 자못 흥미롭다. 八道江山 遊覽全幅的內助를 아끼지 않는 아내에게 西海岸徒步旅行을 시작한 日字感謝한 마음을 적어 보낸다.

 

영종대교 밑을 통과하여 북항 방향으로 진행한다. 이곳역시 해안을 매립하여 광활한 대지로 탈바꿈하는 중이다. 원형경기장을 형상화하여 건축한 인천체육고등학교를 지나 멋진 사장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청라도를 비롯하여 문포도와 이도를 매립하여 인천서부일반산업단지와 청라신도시를 조성하며 생겨난 공촌1교다.

 

공천1교는 주탑이 기울어진 경사 주탑으로 건설되어 난이도가 높은 기술로 평가받으며, 길이가 300m에 불과하지만, 주탑의 높이가 109로 국내 경사 주탑 가운데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의 토목기술을 한 단계 격상시킨 공천1교는 수려한 외관모습이 인상적이다.

 

또한 공촌1교에서 바라보는 청라신도시는 송도신도시와 함께 인천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국제도시로 키워가는 현장이다. 산을 깎아 골을 메우고 반듯하게 정리된 대지위에 4~50층의 빌딩들이 현란하게 솟아 오른 모습은 욱일승천하는 인천의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인천환경사업소를 지나 언덕을 넘어서면, 인천화력발전소단지와 포스코 에너지를 중심으로 북항산업단지가 펼쳐진다. 밀집한 공장단지를 빠져나와 왼쪽으로 지루하게 걸어가면, 현대제철 운동장과 인천그랜드CC. 사이로 연결되고 인천화력본부입간판이 있는 율도입구 교차로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남쪽으로 곧게 뻗은 중봉대로는 북항으로 수입된 물동량을 운반하는 공단의 중추신경이다.

 

서인천선착장 입구와 한성자동차운전학원, 인천환경공단에 현대제철소를 지나도록 너무도 단조롭고 지루한 여정이다. 아라 뱃길을 출발한지 4시간 30분 만에 동인천역에 도착하며 대명항에서 시작한 서해안 도보여행첫 번째 구간을 무사히 마무리하고, 소요산행 전철에 몸을 싣는다.

 

 

3. 인천의 관문 월미도

집을 나선지 2시간 만에 동인천역에 도착한 시각이 0710분이다. 3번 출구로 나와 자유공원으로 산책 나가는 주민들의 뒤를 따라 골목길을 올라간다. 인천학도의용군 위령탑을 시작으로 울창한 숲속에 터를 잡은 공원은 이른 아침부터 산책 나온 시민들로 북적인다.

 

자유공원은 인천이 개항하고 5년만인 1.888년 한국최초의 근대식공원으로 개장한 곳이다. 처음에는 만국공원으로 부르다가 6.25전쟁이 끝난 뒤, 인천상륙작전의 영웅 맥아더장군동상을 건립하면서,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자유의 여신상과 한국의 건축미를 상징하는 연오정, 석정루를 갖추어 자유공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양국의 선린관계를 상징하는 한미수교100주년 기념탑을 뒤로하고 숲길을 내려서면, 차이나타운이 시작된다. 도원결의와 삼국통일에 이르기까지 중요사건을 기록한 80여장의 삼국지벽화로 한편의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중국특유의 붉은색으로 치장한 음식점과 홍등거리, 북성동주민센터까지 중국의 관청으로 착각하기 쉽다.

 

한국 속의 작은 중국으로 알려진 차이나타운은 임오군란 때 청나라 군대와 함께 들어온 상인들이 청나라 군대에 물자를 공급하고, 우리 상인들과 거래하며 터를 잡은 곳이라고 한다. 청관(淸館)은 중국관청 자리였고, 공화춘(共和春)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장면집이라고 한다. 중국 웨이하이시가 기증한 전통식대문인 패루를 빠져 나오면 곧바로 인천역이다.


인천역광장에는 한국철도탄생역의 증기기관차 모갈1호 조형물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경인철도는 1897322일 인천에서 착공하여 1899918일 노량진~인천역간 33.8km를 개통하였다. 경인철도가 개통되면서 도보로 12시간 걸리던 거리를 1시간 30분으로 단축하였으니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다음 행선지는 월미도 공원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유명한 월미도는 인천역에서 왼쪽으로 고가도로 밑의 횡단보도를 건너 월미도 입구 교차로를 통해 들어간다. 월미공원 측에서 야심차게 추진한 은하관광부상열차 궤도를 따라 월미공원에 들어서면 왼쪽으로 전통정원이 있다. 월미도와는 관련이 없는듯하여 생략하고, 곧장 정상으로 진로를 잡는다.

 

울창한 숲 사이로 완만한 순환도로가 펼쳐지고, 싱그러운 아침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는 주민들의 모습이 너무도 행복해 보인다. 월미산 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그 중에서도 지난번 미로처럼 돌아온 북항의 모습을 바라보며 내 발자취를 따라 이어지는 동선을 확인하는 행복한 순간이다.

 

월미산 전망대는 2014년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마스코트가 있는 광장에서 동남쪽으로 150m 떨어진 언덕위에 자리 잡고 있다. 높이 23m의 전망대에 올라가면, 인천시가지와 인천항, 송도, 청라국제도시와 인천대교, 영종도에 조성된 국제공항까지 일목요연하게 조망된다.

 

전망대를 내려와 한국이민사박물관을 찾아간다. 2003년 미주이민 100주년을 맞아 선조들의 해외활약상과 개척자적인 삶을 기리고, 발자취를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해 인천시민들과 해외 동포들의 성금을 모아 국내최초로 한국이민사박물관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구한말 가난과 굶주림을 피해 중국과 러시아, 미국으로 국경을 넘어가는 유이민을 시작으로 일제강점기의 강제이민, 광복의 기쁨과 6.25의 참화를 겪으면서 격동기이민, 산업이 발달하면서 세계 속으로 정착하는 이민으로 시대에 따라 이민의 역사가 자세히 조명되어 있다.

 

인천시의 애물단지로 전락한 월미파크를 찾아간다. 은하관광부상열차를 앞세워 장미 빛 청사진을 꾸미고 있지만 개통이 가능한 것인지 기대를 해본다. 항만공사로 매립하여 섬이 아닌 섬이 되어버린 월미도(月尾島)는 달의 눈썹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개항기 외국인들이 조선에 들어오는 기착지였고 러일전쟁과 병인양요, 인천상륙작전의 주무대였다. 이후 군부대 주둔으로 출입이 통제 되었다가, 2001년부터 총면적 590,000를 월미공원으로 조성하여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오늘부터 제4회 월미모노레일문화축제가 열리고 있어 행사준비로 분주한 모습이다.

 

세고천 작사, 전오순 작곡, 박경원이 불러 공전의 희트를 한 이별의 인천항노래비를 바라보노라면, 인천항의 낭만과 애환이 가슴속깊이 파고든다. 월미도와 영종도를 오가는 여객선선착장을 지나 인천상륙작전기념비를 만난다. 이곳이 인천상륙작전 첫 상륙지점인 그린비치다.

 

맥아더 원수는 1950915일 새벽, 과감한 인천상륙작전으로 북한군의 배후를 차단하여 한국전쟁의 전세를 단숨에 역전 시킨다. 926일 정오 한국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를 게양함으로써 6.25전사에 길이 빛나는 작전을 성공한 계기가 되었다. 월미공원역에 도착하며 월미도 관광을 마치고 인천역으로 되돌아와 한중 문화관을 찾는다.

 

한중문화관은 인천차이나타운의 활성화를 위해 2005416일에 개관하였다. 한중우호관계를 지속시키는 차원에서, 주말 상설 공연과 한국인을 위한 중국어 교실,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실, 다양한 기획전시물과 체험공간을 확대하여 문화예술 공간으로 구성하고 있다. 동인천역에서 시작한 3번째 구간 11km3시간 만에 완주하고, 다음 행선지를 위해 잠시 휴식을 한다.

 

 

4. 21세기를 선도하는 인천항

한중문화관을 뒤로하고 인중로를 걷는다. 수인선 전철공사로 어수선한 이곳이 개항기 인천의 중심지였다. 해양산업의발달로 인구300만 명을 육박하고 있는 인천광역시는 인천항을 중심으로 4개항으로 구성하여 2020년까지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일수호조규(朝日修好條規)에 의하여 1883(고종 20) 부산항과 원산항에 이어 세 번째로 강제개항 된 곳이 인천항이다. 당시에는 제물포항으로 호칭되면서,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군항으로 황해의 수비를 맡은 군사적 요충지였다. 상업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이 18849월 인천유관기관의 협력을 얻어 인천상인단체의 출자로 개발되었다.

 

1899년 우리나라 최초의 철도(경인선)를 개통하면서, 서구문명을 전파하는 서울의 관문으로 발전한 것이 인천이다. 중구에는 서해안 최대의 항구인 인천항이 있고, 내항을 중심으로 북항과 남항으로 나누어진다. 2국제여객터미널을 지나며 연안부두로 향하는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서해대로에서 연안부두는 오른쪽 방향이다. 인천항보안공사. 인천지방해양수산청, 인천본부세관을 지나 서해사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연안부두에서 송도로 가는 길도 서해사거리까지 나와서 남쪽으로 진행하는 곳이라 서해사거리가 매우중요한 지점이다.

 

축항대로를 따라가는 인천항 4부두 쪽으로는 대기업의 보세창고들이 자리를 잡고, 바둑판처럼 곧게 뻗은 3km가 넘는 길이다. 연안부두 해양광장에 도착한다. 때 이른 더위를 피해 바다로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팔미도 가는 유람선 안내방송이 연이어 흘러나오고 전망대로 올라서니 서해바다와 연안부두의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해양광장에는 이색적인 상징물이 눈길을 끈다. 2010년 한-러시아 우호교류합의서 채택으로 인천-상트페테부르그시 간의 자매결연을 체결한 기념으로 1904년 러일전쟁당시 자폭한 바라그호 추모비를 제막하여 2013년 푸틴 러시아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기념식을 거행했다고 한다.

 

1국제여객선터미널과 인천종합어시장을 둘러보고, 남항화물선부두와 남항유어선 부두를 지나 갯골유수지 쪽으로 진행한다.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영종경제자유구역을 개발하고 있는 인천은 우리나라에서 3번째로 인구가 많은 도시로 발전하여, 2014년에는 인천아시아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저력을 보였다.

 

2고속도로가 시작되는 연안교에서 갯골 유수지가 시작된다. 인천둘레길 10코스와 연결되는 메타세콰이어 숲길은 자전거도로와 병행하여 시원한 그늘 속으로 이어진다. 매연과 소음으로 고생하던 축항대로를 벗어나 시원한 공기를 뿜어내는 갯골 유수지에서 정신이 맑아진다.

 

중구문화회관, 여성회관, 국민체육센터를 지나며 갯골호수교에 도착한다. 싱그러운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유수지 가운데 인공섬을 만들고 정자까지 갖춘 쉼터에서 점심 도시락을 펼쳐든다.

든든하게 식사를 마친 후, 오수까지 즐겼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갯골호수교를 건너 77번 도로 변을 걷는다.

 

경인방송국을 지나 옹암4거리에서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인천대교 연결램프가 시작된다. 길이 21.38km의 인천대교는 국내에서 가장길고 세계에서도 7위를 자랑한다. 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바다를 가로지르는 인천대교는 교량건축의 꽃이라 할 수 있는 공법으로 단 2년 만에 개통하였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인천대교. 우리의 토목기술이 세계정상급으로 발전했다는 사실이 더욱 감동적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한 우리의 근면성과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세계최고의 걸 작품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갯골유수지 빗물펌프장을 넘어서면, 검은 속살을 드러낸 갯벌이 펼쳐진다. 바다가 살아야 생명도 살수 있다는 진리를 실감한 것이, 서산앞 바다에 쏟아진 기름유출사고 이후다. 겨울바다에서 바위에 달라붙은 기름제거에 얼마나 고생들이 심했던가. 우리에게 커다란 교훈을 안겨준 갯벌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아암도 해안공원을 지나며, 인천이 야심차게 추진하는 송도 신도시가 시작된다. 송도수출 2단지를 시작으로 강 건너 빌딩숲이 하늘높이 솟아오른다. 준공된 건물로는 대한민국 최고층 빌딩인 동북아트레이드타워는 지하3, 지상68층에 높이305m로 국내에서 두 번째로 높은 해운대 위브더제니스(80, 301m)보다 4m가 더 높다.

 

송도3교를 지나며 달빛공원이 고수부지로 펼쳐진다. 하지만 한강에 비하면 엉성한 부분이 많다. 송도2교를 건너 송도국제 어린이도서관을 경유하여 새 아침 공원으로 내려선다. 자전거바퀴를 형상화한 송도1교에서 4구간을 마무리하고, 캠퍼스타운역에서 인천지하철1호선에 탑승한다.

 

5. 소래포구

인천둘레길 4코스를 답사하는 날이다. 일기예보에도 없는 비소식이다. 봄이 다 가도록 가뭄이 심하던 터라 반가운 일이긴 하나, 내리는 비가 야속하여 투덜거리면서도 우산을 펼쳐든다. 송도신도시가 자랑하는 동북아트레이드타워를 보기위해 인천대입구역까지 찾아가지만, 짓궂은 날씨가 훼방을 놓고 만다.

 

이제 본격적인 답사를 위해 동막역 2번 출구로 올라선다. 장대비가 내리는 것도 아니고, 겨우 땅바닥을 적실정도로 가는 빗줄기가 추적거리고 있다. 동막교를 건너 유수지 옆으로 조성된 인천둘레길 7코스를 걷는다. 갯벌을 매립한 연수구와 남동구의 직선 해안길이다.

 

20여 분간 직선도로를 지루하게 걸어가면, 고잔 사거리가 나오고 유수지도 끝이 난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외암사거리에서 77번 도로를 횡단하여 해안가 철조망 옆으로 접근한다.

 

해안매립공사를 마무리하면서, 소나무와 해당화를 심어 가로공원으로 조성한, 자전거도로가 이어진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호안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지루하고 따분한 길이다. 3경인고속화도로를 겸하고 있는 77번 국도는 덩치 큰 화물차들이 질주하고 왼쪽으로 남동공단이 펼쳐진다.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해안이 송도 갯벌 습지보호지역이다. 송도갯벌은 물이 맑고 어종이 풍부하여 황금어장이라 부르던 곳이다. 소래포구 갯골을 통해 유입되는 장수천과 승기천의 민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칠게, 동죽, , 낙지등 다양한 갯벌생물이 서식하고 있다.

 

송도갯벌은 멸종위기종인 저어새와 검은머리갈매기를 비롯하여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이동하는 철새들이 먹이를 공급하는 중간기착지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이에 따라 인천시에서는 철새들의 번식활동과 살아있는 자연환경을 유지하기위해 송도갯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했다고 한다.

 

40여 분간 지루한 길을 걸어온 끝에 철조망도 끝이 나고, 고잔요금소 옆을 지나 아암1교로 올라선다. 드넓은 갯벌을 가로질러 정왕IC로 통하는 군자대교 밑으로 빠져나오면, 소래포구 배후도시로 조성된 에코메트로 APT단지로 이어진다.

 

인천둘레 길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에 노란 금계국이 천국을 이룬다. 아파트와 갯벌의 삭막한 공간에 나무를 심고 꽃길을 조성하여 주민들에게는 안락한 보금자리를 제공하고, 소래포구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는 새로운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소래해오름광장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협궤열차인 증기기관차를 전시하고 있다. 1927614, 수원기관차사무소에서 조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협궤용 증기기관차 진품이다. 1983년 쌍용그룹이 철도청으로부터 구입하여 대관령휴게소에 전시하여 오다가, 인천시에 기증하여 이곳으로 이전하였다고 한다.

 

수인선 협궤열차는 1930년대 인천과 시흥지역의 염전에서 생산되는 소금과 쌀을 인천항을 통해 일본으로 수탈하기 위해 만들었다. 193786, 수원역과 남인천역까지 52km의 수인선이 개통되어 1995년 말까지 운행된 역사적인 유물이다.

 

경인지역 해산물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소래포구로 들어선다. 싱싱한 생선들이 어판 장을 가득 메우고, 발 들이밀 틈도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어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친다. 오이도역과 원인제역을 오가는 수인선이 개통되면서, 소래포구를 찾아오는 교통이 편리하여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6. 월곶포구와 오이도

소래포구에서 인천시와 시흥시가 경계를 이루고 있다. 협궤철도를 건너 시흥시 월곶면으로 넘어온다. ()이란 육지에서 바다를 향해 톡 튀어나온 곳을 말한다. 월곶(月串)은 조선시대 수군만호가 주둔했던 군사요충지이었는데, 갯벌을 매립하여 지형도 바뀌고 주변 환경이 많이 변하고 말았다.

 

갯골생태공원에 조성된 자전거길을 따라 월곶포구로 향한다. 소래포구가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저자거리라면, 월곶포구는 인위적으로 다듬어진 종합어시장으로 개장하여 단체손님과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을 상대로 영업을 하고 있다. “가고 싶은 그곳,” 월곶 포구를 뒤로하고, 월곶대교를 건너 77번 도로(서해안로)를 따라 걷는다.

 

시흥시에서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군자배곧신도시공사 현장을 지난다. 말뚝 박는 굉음소리와 덤프트럭이 지나가며 일으키는 먼지로 서부개척시대가 따로 없다. 그나마 안전가림막을 설치하여 77번 도로에서 내뿜는 매연이 입으로 코로 무차별 파고든다.

 

서울대학교 시흥캠퍼스 유치를 홍보하면서, 42만 시흥시의 자존심을 내걸고 있는 분양사무소에는 눈치 빠른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서해고교삼거리를 지나 옥구공원으로 들어선다. 돌이 많은 옥구도는 옛날 어느 임금님이 이곳을 지나다가 갈증이 심하여, 물을 구해올 것을 명령하자 마을 주민이 옥으로 만든 잔에 올린 뒤로 옥구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옥구공원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시화신도시를 개발하면서, 삭막한 도심의 휴식공간을 확보하기위해 옥구도(95m)의 아름다운경관을 고향동산으로 조성한 곳이다. 다양한 시설로 휴식공간을 마련하고 있지만, 공원의 백미는 옥구정이 있는 정상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황홀경의 극치라고 한다. 시간의 제약으로 낙조를 보지는 못했지만, 정상에서 보는 조망은 一望無際라 할 수 있다. 서쪽으로 송도신도시, 북쪽으로 소래포구, 동쪽으로 시화반월공단, 남쪽으로 오이도와 시화방조제가 끝없이 펼쳐진다.

 

그중에서도 오래도록 감흥을 안겨주는 곳이, 시화반월공단과 정왕동아파트단지 사이에 완충녹지대를 조성하여 주거지와 공단을 분리한 것이다. 외국에서나 볼 수 있는 도심 속의 공원을 조성하여 百年大計를 이루고 있음을 높이 평가한다. 산책 나온 김호수여사의 호의로 오이도 선착장까지 안내를 받는다. 아름다운미모에 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보니 시흥에서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오이도(시흥시 정왕동)는 육지에서 4km 정도 떨어진 섬이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염전을 조성하면서 제방을 쌓아 육지와 연결되었다. 지금은 자 모양의 형태이지만, 섬의 형상이 까마귀의 귀를 닮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 오이도 선착장은 싱싱한 회가 생각나면 찾아오던 곳이라 낯설지가 않다. 관광객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기위해 갖가지 조형물을 전시하고 있는데, 황새바위길을 시작으로 생명의 나무 전망대를 지나 오이도의 상징인 빨강등대. 함상공원까지 두루 거치며, 시화지구개발사업 기념공원(오이도공원)에서 오늘의 도보여행을 정리하고 123번 버스에 올라 안산역으로 향한다.

 

 

 

7. 시화방조제

안산역에 도착한 시각이 720분이다. 버스 승강장에서 123번 버스 운행시간을 확인하니 도착시간이 5분 남았다. 배차간격이 30분이라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이다. 하지만 안산역 주변이 교통지옥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 탓이다. 정류장 하나를 이동하는데 10분씩 걸리니 말이다.

 

70만 인구가 상주하는 중심지이고, 반월공단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드는 시간이라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겨우 중심지를 빠져나와 옥구공원을 지나며 총알택시처럼 달려 조력발전소 정류장에 도착하니 840분이다.

 

오늘은 영종도를 경유하는 날이다. 단조롭고 지루한 11.2km의 시화방조제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영종도의 속살을 체험하는 것이 훨씬 보람이 있을 것으로 판단을 하고, 시화방조제 8km지점에 있는 조력발전소까지는 버스로 이동하고 나머지 구간을 걷는다는 목표를 정해두었다.

 

물안개로 가시거리가 짧아 실망을 하면서도, 전망탑(높이 75m)을 오르기 위해 달려가니, 전망대는 10시가 돼야 문을 연다고 한다. 1분이 아쉬운데, 무한정 기다릴 수가 없어 공원 주변의 조형물을 돌아보고 방아머리 선착장을 향해 출발한다.

시화방조제가 완공되기 전에는 대부도까지 뱃길로 다니던 곳이라, 인간의 위대함을 실감하는 현장이다. 조수간만의 차가 심한 서해바다를 매립하여 여의도 면적의 60배에 달하는 간척지와 배후지를 개발하여 수도권 공장을 이전하고, 경쟁력 있는 농업육성과 휴식공간을 조성하는 대 역사였다.

 

1987년부터 시작하여 6년 만에 완공한 11.2km의 시화방조제는 시흥시오이도와 안산시대부도 방아머리를 연결하는 대공사였다. 처음에는 방조제 안쪽을 담수호로 만들어 산업용수로 활용할 계획이었으나, 수질오염이 심각하여 담수화 계획을 포기하고, 바닷물이 흐르는 호수로 변경하였다.

 

청정해양 에너지를 개발하기위해 밀물 때 바닷물을 시화호로 유입하여 발전하고, 썰물 때 수문으로 배수하는 대규모 해수유통을 통해 수질을 개선하는 조력발전소는 시설용량이 254KW로 국내 최초이자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라고 한다. 소양강댐의 1.5배나 된다고 하니, 그 규모에 놀랄만하다.

 

방아머리까지 3.2km를 걸어가는 동안, 무한한 자부심을 느낀다. 굴곡이 심한 서남해안에서는 일찍부터 간척지 매립공사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첨단공법으로 매립이 시작된 것은 서산방조제에 이어 두 번째 이고, 이를 계기로 세계에서도 유래가 없는 새만금방조제가 탄생한 것이다.

 

방아머리(舂頭浦)선착장에 도착한다. 조선시대 지도(1871년 제작)에는 방아 찧을 용()자를 써서 용두포라고 기록하고 있다. 디딜방아처럼 생긴 지형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용두포는 대부도와 떨어져 있어 징검다리로 건너다녔으나, 구봉염전을 만들면서 대부도와 연결되었다.

 

방아머리삼거리에서 왼쪽에 보이는 대부도공원으로 진입하여 대부바다향기 테마공원으로 들어선다. 수 십 만평의 너른 습지는 시화방조제가 완공된 뒤로 생겨난 부산물이다. 수 십 기의 풍차를 앞세워 고수부지에는 꽃동산으로 조성하고 낮은 습지에는 수생식물을 심어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대부도(大阜島)는 원래 옹진군에 속해 있다가, 1994년 시흥시 오이도(烏耳島)와 대부도 방아머리를 잇는 총 연장 12.7의 시화방조제로 생활권이 연결되면서, 안산시로 편입되었다. 면적이 33.08에 해안선이 61이고, 인구 5,300명이 상주하는 서해안에서 강화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북동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대선로를 따라가는 중에, 조선시대 풍속도를 그려놓은 종현동왕진물 표지석을 발견한다. 조선 인조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몽진하다가 목이 말라 신하에게 물을 찾아올 것을 명령하자, 이 우물에서 물을 바친 뒤로 왕지정(王指井)”이라 칭하고 기념으로 쇠종을 하사한 뒤로 마을을 종현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부중고등학교 삼거리에서 선재도 방향으로 선회한다. 갑자기 일진광풍이 일어나며 빗줄기가 거세게 쏟아진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늦게 비가 온다고 했는데, 너무도 일찍 시작한다. 유난히도 심한 봄 가뭄으로 소양강 댐의 수위가 낮아져서 발전이 중단될 정도라고 하니 반가운 손님임에는 틀림이 없다.

 

서둘러 배낭 커버를 씌우고, 우산을 받쳐 든다. 오늘의 일정을 밖에 소화하지 못했는데, 중도에서 포기하기는 너무 이른 시간이다. 선재대교까지는 걷기를 멈출 수가 없다. 다행이 바람은 잦아들었지만,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걸어가는 몰골이 처량하기 그지없다. 한 시간 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어, 선재대교에 도착하며 빗줄기도 가늘어지고, 주위에 펼쳐지는 경치에 매료되어 다시 용기를 얻는다.

 

 

 

8. 영흥도 둘레길

선재대교를 올라서면, 안산시에서 인천시 옹진군으로 진입한다. 엷은 운무로 시야는 흐리지만, 주위에 펼쳐지는 풍광이 너무도 아름답다. 선재선착장의 상징인 크루즈호는 돛을 팽팽히 당겨 출항준비를 마친 범선의 모습이고, 부둣가에 닻을 내린 수 십 척의 어선들은 제왕을 모신 호위무사들처럼 대오를 정연하게 갖추어 보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선재대교를 건너 버스정류장 벤치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을 걸어오며 등산화에 가득 찬 습기와,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양말을 벗는다. 세상에 이렇게 시원할 수가. 발가락과 발바닥을 마사지하며, 혹독하게 고생하는 발바닥에 고마움을 표시한다.

 

선재도(仙才島)는 영흥도(靈興島)와 대부도(大阜島) 사이에 있는 섬으로, 조선초기부터 남양도호부에 소속되었다가 대부도에 편입되었고, 1914년 영흥도와 함께 부천군으로, 1973년 옹진군에 편입된 뒤로 1995년 옹진군이 인천시 관할이 되면서 인천시가 되었다.

 

주위경관이 아름답고 수려하여 선녀가 내려와 춤을 추던 곳이라 하여 선재도라 부른다. 원래 소우도(小牛島) 또는 독우도(犢牛島)라 하였는데, 조선 후기부터 선재도(仙才島)로 개칭하였다. 소우나 독우는 모두 송아지를 뜻하는 것으로 영흥도를 어미 소처럼 따라다니는 송아지 섬이라는 유래를 갖고 있다.

 

서쪽의 영흥도와는 200111월에 개통된 영흥대교(길이: 1,250m, 너비: 9.5m)를 통해 연결되고, 동쪽의 대부도와는 200011월에 개통된 선재대교(길이: 550m, 너비: 13.3m)를 통해 연륙되었다. 면적은 2.47이고, 해안선 길이는 10.9이다.

 

10여 분간 휴식을 하고 다시 일어선다. 썰물 때면 바닷길이 열리는 목섬은, 밀물시간이라 사람들이 건너다니던 흔적만 나타난다. 대부도와 영흥도사이에 징검다리처럼 놓여있는 선재도는 남북으로 길게 장구모양을 하고 있다. 섬을 관통하는 선재로(仙才路) 변으로 이색적인 음식점과 카페를 겸하고 있는 항아리전시장에 눈길을 주며 3.5km를 진행하면, 영흥대교에 도착한다.

 

영흥도의 관문인 영흥대교는 길이 1,250m에 왕복2차선으로 19978월 착공하여 200111월 준공하였다. 국내기술로 건설된 최초의 해상 사장교로 영흥화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함께 놓았다. 바라보는 순간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듯이, 웅장하고 화려한 영흥대교다.

 

육지와 섬, 섬과 섬을 잇는 다리들이 놓이면서, 섬사람들의 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오고 있다. 육지와 섬을 연결하는 다리를 연륙교(連陸橋)라하고, 섬과 섬을 잇는 다리를 연도교(連島橋)라 부르는 것이 정설이지만, 영흥도와 같이 큰 섬을 연결하는 영흥대교를 連陸橋라 부른다.

 

옛날 중국에서 오던 배가 풍랑을 만나 암초에 부딪혀 침몰 직전에 있었는데, 거북이 한마리가 나타나 구멍을 막아 육지로 인도해주었다. 그 뒤 신령이 도와준 섬이라 하여 영흥도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남양군에 속하였으나, 1995년에는 인천광역시에 귀속하게 되었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32km 거리에 있는 영흥도는 옹진군에서 백령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동쪽으로 선재도와 대부도, 북쪽으로 무의도, 서쪽으로 덕적도와 자월도와 경계를 이루고, 선재도, 측도 등 유인도서 4개와 외항도, 중도, 자암도 등 무인도서 18개를 포함하고 있다.

 

영흥도는 면적이 23.46이고, 해안선이 42.24,436명이 상주하는 영흥면소재지가 있는 섬이다. 영흥대교를 건너 버스터미널에서 시간표를 확인하고 십리포 해수욕장을 찾아 북쪽으로 이동한다. 내리복지회관, 코지휴게소, 비엔나 펜션까지 그림 같은 해변풍광을 즐기며 40분 만에 십리포 해변에 도착한다.

 

영흥도 북쪽에 있는 십리포해수욕장은 길이가 400m로 아담하고, 왕모래와 자갈이 깔려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해변 남쪽에는 테크로 만든 산책로에서 시원한 해풍을 받으며 피서를 즐길 수가 있고, 북쪽으로 무의도가 물위에 떠 있는 부평초처럼 아름답게 보인다.

 

십리포 해수욕장에서 가장 빼어난 곳은 3백 여 그루의 서어(소사)나무 군락지다. 무더운 여름철에는 정자나무로, 겨울에는 매서운 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이다. 150여 년 전 선조들이 바람이 심한 내동마을에 방풍림을 조성했는데, 다른 나무는 살지 못하고 서어나무만 살아남아 군락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모래언덕에 뿌리를 내린 서어나무는 어느 것 하나 곧은 것 없이 온몸이 뒤틀려있는데, 바람결에 춤을 추는 형상이다. 높이 15m에 밑 둥의 둘레가 50cm정도로 앙바틈하여 강한 바람에도 견딜 수 있는 자생력이 강한 나무다. 옹진군에서 보호수로 관리하는 국내 유일의 서어나무 군락지다.

 

장경리 해수욕장으로 넘어가는 산길은 그레이스펜션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영흥도가 자랑하는 등산로는 봉고트럭이 다니는 비포장 길이다. 오토캠핑장을 찾는 차량들이 지나갈 때마다 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고난의 길이다. 울창한 숲속에서 싱그러운 공기를 마시는 삼림욕장을 기대했지만, 실망뿐이다.

 

국사봉가는 산길을 포기하고, 영흥로를 따라 농어바위해변을 지나 산 고개를 넘어서면, 그림 같은 장경리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백사장의 길이가 1.5km, 수천 평이 넘는 노송지대와 서해낙조가 환상적인 영흥도에서 가장 큰 해수욕장이다.

 

이색적인 전망대와 마루원두막에 텐트 하나씩 오붓하게 즐길 수 있는 캠핑의 천국이다. 양로봉쪽으로 쉴 사이 없이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가 이색적이다. 높이가 80m에 날개가 45m 거대한 몸체에서 뿜어 나오는 전기로 2000세대가 사용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한다.

 

장경리 해수욕장에서 터미널까지 4.1km여서 50분이면 완주할 수 있지만, 빗속을 걸어온 25km가 버거운지 피로와 함께 허기가 몰려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영흥도의 별미인 바지락칼국수로 요기를 하고 관내버스로 오른다.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장경리 해수욕장의 명물인 도자기 펜션을 찾지 못한 것이다. 알면서도 그러는 건지 현지주민들의 모르쇠 대답에 포기하고 말았지만, 분명히 그곳에 있다는 대답을 버스 안에서 들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440분이다. 매시10분에 출발하는 790번 버스로 오이도역에 도착하여 전철에 오르며, 고단했던 하루도 막을 내린다.

 

 

9. 아름다운 탄도항

오늘의 일정은 대부도에서 조성한 해솔 길을 답사하게 된다. 대부도는 해안선길이가 61km에 이를 만큼 섬의 둘레가 넓어서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지고, 갯벌이 살아 있어 체험 현장으로도 인기가 많은 지역이다. 7구간으로 나누어 조성한 해솔길은 총길이가 74km에 이른다.

 

그 중에서 주변경치가 가장 아름다운 1코스와 6코스를 선정하고, 누에섬의 물때를 맞추기 위해 6코스를 먼저 답사하고 1코스로 이동하기로 일정을 조정했다. 지난번과 같이 안산역에서 123번 버스를 이용하여 대부동주민센터를 지나 나루터 정류장에서 하차한다.

 

대선방조제 끝부분에서 오른쪽으로 해솔길6코스가 시작된다. 선감도는 고려시대부터 선감미도(仙甘彌島)로 표기되어 왔으며, 옛날에 속세를 떠나 선경에 살며 구름과 학을 벗 삼아 지내던 사람이 내려와서 맑은 정한 수로 목욕을 했다 하여 선감도(仙甘島)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안산에서 서남쪽으로 25지점에 있는 선감도는 면적이 3.72이고, 해안선 길이가 8에 이르는 아담한 섬이었다. 북서쪽은 대부도와 남쪽은 불도, 탄도와 간척사업을 통해 육지가 되었고, 화성시 서신면과 탄도방조제로 연결되었다.

 

6코스는 선감도 입구 펜션단지에서 탄도항까지 6.8km가 이어진다. 가장 먼저 만나는 마을이 선감도 펜션 마을이다. 유럽의 어느 마을처럼 이국적이고 정갈하여 하룻밤이라도 머물고 싶은 곳이다. 동구 밖을 빠져나오면, 극심한 가뭄 속에서도 땅 냄새를 맡은 벼 포기들이 녹색물결을 이루는 농로를 따른다.

 

버스가 다니는 선감로로 올라서서 경기창작센터 직전 오른쪽 수로 옆으로 다시 내려선다. 오늘도 뙤약볕이 내려 쪼이려는지, 바람 한 점 없이 뿌연 박무가 주변의 시야를 가리고 있다. 웃자란 갈대사이로 비포장 농로를 따르면, 경기창작실습현장이 펼쳐진다. 인적도 없이 고요한 들길에는 분홍색의 큰방울새란이 만개하고 있다.

 

선감어촌체험마을로 들어선다. 갯벌체험 할 때 타고 다니는 트랙터도 있고, 동구 밖으로 나서면 해안이다. 썰물 때라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고, 왼쪽으로 해안가를 돌아서면, 동화 속에 나오는 하얀색 판타루시아 펜션을 시작으로 펜션마을이 이어진다.

 

경기도청소년수련원을 지나 불도방조제와 만난다. 옛날 한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던 중, 그물에 조그만 부처가 걸려 집으로 가져와 불당을 모신 뒤로 마을 이름을 불접리(佛接里), 섬 이름을 불도라 불렀다고 한다.

 

방조제 끝부분과 이어지는 작은 동산을 넘어 다시 도로에 내려서고, 횟집거리에서 해솔 길은 횡단보도 건너편 해변으로 안내한다. 폐광 된 광산이 있는 해변은 중생대 백악기 때 공룡발자국 화석이 발견 된 자연 유산지역이다. 2000년 암반발파 작업 중, 지표로부터 30~40m깊이에서 초식공룡의 발자국으로 추정되는 화석이 발견되었다.

 

대부광산 퇴적암층에 도착하면, 수십 길 절벽아래 넓은 호수가 펼쳐진다. 폐광을 리모델링하여 관광명소로 개장한 포천의 아크벨리가 생각난다. 다시 301번 도로를 따라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탄도항과 누에섬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전조사를 했지만, 섬에 들어갔다 밀물이라도 만나면, 모든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현재시각이 1020분이라 2시간의 여유가 있지만, 마음이 앞선다. 바닥을 드러낸 갯벌사이로 곧게 뻗은 1.5km 시멘트 길에는 3대의 풍력발전기가 천천히 돌아가고 있다.

 

일명 햄섬(해미섬)이라고 부르는 누에섬은 누에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썰물 때 물이 빠지며, 섬도 다녀오고 갯벌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라,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은 곳이다. 월요일이라 십 여 명의 관광객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누에섬을 찾는다. 20분 만에 섬에 도착하여 정상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간다.

 

때 마침 리모델링하는 중이라 출입을 금하고 있다. 하지만 어렵게 찾아 왔는데, 그냥 돌아서기가 아쉬워 사정한 끝에 허락을 받는다. 선박의 안전운행을 위해 설치한 높이 17m의 등대에 올라서면, 다음번에 찾아갈 제부도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깝게 보인다.

 

맑은 날에는 송도신도시도 보인다고 하는데, 뿌연 해무로 인해 형체도 분간할 수 없으니 애석한 일이다. 다음 일정을 위해 누에섬을 빠져나온다. 갯벌에서 일을 하다가 밀물이 되어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은 부부의 전설이 있는 부부바위를 바라보며 탄도항에 도착한 시각이 1130분이다.

 

탄도(炭島)는 과거 무인도일 때, 수목이 울창하여 그 나무를 베어 숯을 굽던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옛 문헌에 의하면 탄모도(炭毛島)또는 탄매도(炭埋島)로 기록하고 있다. 1994년 시화호 물막이 공사로 육지가 되었는데, 북쪽의 불도와는 불도방조제, 동쪽의 화성시 서신면이 탄도방조제로 연결되어 대부도와 하나가 되었다.

 

 

 

10. 구봉도 해솔길

탄도 선착장을 돌아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반갑게도 123번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물때를 맞추어 누에섬에도 다녀오고,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버스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기분 좋은 하루다. 1150분에 출발한 버스가 20분 만에 구봉도 입구에 내려준다.

 

한낮의 열기가 대지를 녹이는 구봉도. 30도를 넘는 열기를 받으며, 시멘트길을 걷기란 여간 고역이 아니다. 대부도의 보물섬으로 불리는 구봉도(九峰島)는 아름다운 봉우리 아홉 개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예전에는 섬이었으나 구봉 염전이 조성되면서 연륙이 되었다.

 

시화방조제 끝자락에서 시작하는 해솔길 1구간은 구봉도의 아홉 봉우리를 넘는 산길과 해안 길로 나누어진다. 산길이라야 100m 가 채 안 되는 낮은 구릉이고, 가장 높은 곳이 정상에 활공장과 정자가 있는 북망산이다. 더운 날씨에 탄도항을 다녀오느라 체력의 한계를 느껴, 힘이 덜 드는 해안가로 방향을 잡는다.

 

북망산 자락이 내려앉는 구봉해수욕장과 70~80년 된 소나무 숲은, 여름 야영지로 적당한 곳이다. 썰물 때는 갯벌체험과 조개잡이를, 밀물 때는 해수욕과 바다낚시를 즐길 수가 있다. 구봉염전대신 바다낚시터로 변신한 구봉펜션단지를 지나 종현동 어촌체험마을로 진입한다.

 

승용차로 온 관광객은 이곳에서 주차하고 도보로 이동하게 된다. 해안선을 따라 서북쪽으로 약 1를 걸어가면, 두 개의 큰 바위가 나타난다. 구봉이 선돌바위다. 작은 바위를 할매바위, 큰 바위를 할배바위라고 부른다. 고기잡이 나갔던 할아버지가 돌아오지 않자. 오매불망 기다리다 돌이 된 할머니를 따라, 할아버지도 돌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때 마침 밀물이 되어 끝을 모르던 갯벌이 거친 물결로 바뀌고 있다. 구봉산과 고깔 섬 사이로 개미허리처럼 잘록한 곳이 있는데, 만조 때에는 배가 지나가는 뱃길이고, 간조 때에는 물이 빠져 사람이 걸어 다닐 수가 있다. 이곳에 구름다리를 놓아 두 섬을 연결하는 명물이 되었다.

 

구름다리를 건너 고깔 섬으로 올라서면, 울창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서해안 끝자락에 구봉도 최고의 낙조전망대가 반겨준다. 낙조전망대에서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이 조형물이다. “석양을 가슴에 담다.”라는 제목을 가진 조형물은 백색과 황금색으로 조형미를 이루어,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보는 시선속의 풍경이라고 한다.

 

전국의 명소마다 특색 있는 조형물이 많지만, 이곳 구봉도 낙조전망대의 조형물은 오래오래 추억 속에 간직하고 싶은 조각품이다. 정감이 가는 똥섬(변섬)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만단시름이 사라지는 평온함을 느끼게 된다. 지난번에 다녀온 영흥대교가 바다를 사이에 두고 멀어만 보인다.

 

해안가 바위로 물이 차오르며, 바위길이 막히고 말았다. 할 수없이 구름다리를 건너 들어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선돌이 바위도 물길이 차올라 오매불망, 임을 기다리던 애절한 모습으로, 할매를 그리워하는 할배의 모습으로 보인다.

 

구봉도 입구에서 해물칼국수로 허기를 달래고, 또 다시 123번 버스에 올라 지난번에 오르지 못한 조력발전소 전망대를 찾아간다. 바라만 봐도 높아 보이는 25(75m) 달 전망대는 360도 어느 방향에서도 전망이 가능하다. 21세기를 열어가는 신재생에너지 조력발전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때마침 밀물이 한창이라, 시화방조제의 수문을 통해 들어오는 바다물의 소용돌이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시설용량이 254KW로 소양강댐의 1.5배나 된다고 한다. 소원풀이를 하고, 버스정류장에서 123번 버스를 하루에 4번 타는 기록을 세우고, 안산역에서 4호선 전동차에 몸을 싣는다.

 

 

11. 바닷길이 열리는 제부도

제부도 여행길은 여러 날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중동호흡기 증후군으로 불리는 메르스(MERS) 여파 때문이다. 대한민국을 마비상태로 몰아넣은 메르스는 치료하던 의사까지도 감염되는 신종 바이러스다. 確診判定이 나면, 病院이든, 自家든 사람들과 접촉할 수 없도록 격리를 시키는 무서운 병이다.

 

민심이 흉흉하다 보니, 지하철이나 버스, 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게 된다. 복지관에서 체온 측정으로 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은 후, 뱃길이 열리는 제부도 11km만 다녀온다는 계획을 세운다. 가장 먼저 확인해야할 것이 제부도 뱃길이 열리는 시간이다.

 

달의 힘으로 간만의 차가 나타나기 때문에, 陽曆으로는 간조시간이 매일 다르다. 화성시 홈페이지에 의하면, 2015619일은 오전 843~1651분까지이다. 오늘도 첫새벽에 일어나 회룡역에서 1호선, 창동역에서 4호선, 금정역에서 330번 좌석버스로 환승하여 3시간 40분 만에 송교리 매표소 앞에 도착한 시각이 850분이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는 시간, 제부도를 연결하는 차도가 수면위로 떠오르며, 바닷물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자연의 신비함에 다시 한 번 감탄하며, 첫발을 내딛는다. 물기가 줄줄 흘러내리는 시멘트길이 뻘로 덮여 여간 미끄럽지가 않다. 한발 한발 내딛는 2.3km가 너무도 멀어만 보인다.

 

줄을 잇는 자동차들이 물기를 털어내고, 햇볕으로 건조되면서 걷기에 훨씬 수월해진다. 풍차가 돌아가는 누에섬이 너무도 아름답게 보인다. 4일전에 찾았던 섬이라 더욱 정감이 간다. 30분 만에 제부섬에 도착하여 가장먼저 찾은 곳이 탑재산(높이67m)이다.

 

들머리는 파출소입구 왼쪽이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곧바로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는 등대와 누에섬을 중심으로 북쪽의 대부섬과 탄도항, 전곡항이 펼쳐진다. 더 높은 곳을 찾아 정상으로 올라가지만, 무성한 숲에 가려 시야를 확보할 수 없기에 도로 내려와 방파제가 있는 등대를 찾는다.

 

높이 9.3m의 빨간 등대는 모양이 아름다워, 등대의 기능보다는 관광객들의 호응을 받는 상징성이 크다고 하겠다. 해안산책길은 가파른 벼랑 옆으로 나무테크를 설치하여 밀물이 들어와도 안전하다. 중간 쉼터에 있는 대형 소라모형이 심벌마크다. 수평선에 걸려있는 자월도와 덕적도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물 빠진 갯벌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산책길이 끝나면서 제부도 해수욕장이 시작된다. 길이가 1.8km에 입자고운 백사장이 이어지고, 경사가 완만하여 가족피서지로 적당한 곳이다. 관광객을 위한 상가와 위락시설이 밀집되어 있고, 남쪽 해안의 매 바위가 압권이다.

 

사람들이 찾지 않던 30여년 전만해도 매가 둥지를 틀던 바위라고 한다. 일명 삼형제 바위로 부르는 매 바위는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고, 썰물이 되면 평평한 암석지대가 드러나 가족이나 연인들이 소라와 굴을 따며 추억을 만들기에 알맞은 곳이다.

 

동쪽해변을 돌아 제부도 둘레길 6.4km도 끝이 나고, 송교리를 향하여 느림보걸음을 이어간다. 도로의 폭이 5m에 인도가 따로 있어 빈번하게 오가는 차량에도 안전하다. 썰물 때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갯벌이 펼쳐지지만, 밀물이 되면 도로에서 1m이상 물이 올라온다고 한다.

 

갯벌에는 분홍색 함초가 군락을 이루고, 바닷길 중간에 11일부터 1231일까지 적은 사각형 대리석판을 깔아놓아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송교리에 도착하며 3시간30분간의 제부도 여행도 끝을 맺는다. 제나라 환공이 약한 자를 구하여,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 잡는다"는 뜻의 濟弱扶傾(제약부경)에서 를 취한 濟扶島가 관광객으로부터 사랑받는 섬이 되기를 바란다.

 

 

 

12. 백미리 해안

10여일 전 다녀간 탄도항에 도착한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누에섬을 건너가는 길이 뚜렷하였는데, 오늘은 물때가 아니라 바닷물이 넘실거리고 있다. 참고로 오늘은 간조시간이 1007분부터 19시까지이다. 백미리 해안을 걸어갈 시간이면, 갯벌이 속살을 드러낼 것으로 예상을 하고 있다.

 

누에섬과 제부도에서 체험한 모세의 기적을 생각하면,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 큰 경험이었다. 요트계류장으로 유명한 전곡항을 바라보며 탄도방조제를 건너면, 화성시가 시작된다. 56만 명의 인구를 자랑하는 화성시는 경기남부의 거점도시를 꿈꾸며, 인구 10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쾌적하고, 풍요로운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華城1794(정조 18) 정조가 수원부읍치와 현륭원을 위호할 성곽의 터를 둘러보면서 장자(莊子)의 화인축성(華人祝聖)이라는 고사를 생각하며 華城이라 붙인 이름이라 한다. 고사가 강조하는 바는 長壽, 多子 등 세상의 바람을 여민동락(與民同樂)하여 豊饒의 고을이 되라는 뜻이라고 백과사전에 적고 있다.

 

301번 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왼쪽으로 봉긋하게 솟은 구봉산이 나타나고, 사적 제217호로 지정된 당성(唐城)이 있다. 당성은 중국으로 통하는 길목이라, 삼국시대부터 이곳을 차지하기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장소다. 백제는 당항성, 고구려는 당성, 신라는 당성군으로 불렀다고 한다.

 

당성을 차지한 측에서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문물을 수입하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힘을 얻게 된다. 특히 신라는 먼 바다를 돌아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당과의 교류를 통해 군사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되었고, 삼국을 통일한 이후에는 당성의 규모를 확대하여 중국과의 문화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 졌다고 한다.

 

전곡교차로에서 남쪽으로 선회하여 당성로(唐城路)를 따라가면, “하내테마파크가 나타난다. 하늘아래 내일을 준비하기 위한 쉼터라는 뜻을 가진 공원은, 잘 가꿔진 식물원과 야외정원, 운치 있는 산책로와 전시관, 박물관 등으로 꾸며진 공간이다. 월요일 아침이라, 관리인이 없어 자세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돌아선다.

 

광평삼거리에서 제부로와 만난다. 장외산업단지입구가 나오고, 남쪽으로 진행하여 산업단지 안으로 들어간다. 천하신기를 시작으로, 신우건철, 신우쇼트, 만복철강을 지나 왼쪽으로 선회하면, 바다낚시터와 철조망이 있는 해변방파제로 진행된다. 화성화남일반산업단지와 장외산업단지의 물동량을 소화하기위해 해안도로를 신설하며 덤프트럭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철조망 너머로 갯벌이 속살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방파제 안쪽으로 소금밭이 펼쳐진다. 우리가 아침저녁으로 먹는 반찬이 소금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야 다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소중한 소금이 만들어지는 것을 직접보기는 처음이다. 저수조에서 퍼 올린 물이 바닷바람과 태양열로 증발하여 흰 소금 꽃이 피어나는 것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요, 우리조상들의 지혜가 결집된 특산물이 아닌가.

 

한맥중공업을 지나 백미리갯벌체험 이정표를 따라 잠시 바다와 멀어진다. 백년 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농민들의 주름살이 깊어만 가는데, 백미리는 벼 포기들이 고랑을 뒤덮고,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동구 밖 당산나무를 지나면 갯벌체험마을 백미리가 반겨준다.

 

정자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고, “동도재라는 한옥이 마을의 품위를 더하고 있는 백미리에도, 잊지 못할 슬픈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19996월 씨랜드 청소년수련원 화재사건으로 유치원생 19명을 포함한 23명이 숨진 사고가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서해안은 경사가 완만하고, 조수의 차가 심하여 썰물이 되면, 넓은 갯벌이 속살을 드러내고 많은 생물들이 살아가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곳 백미리도 슬픈 기억을 씻어버리고,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주는 체험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서는 전국에서 걷기 좋은 해안길 52곳을 선정하였는데, 이곳 백미리어촌마을에서 궁평항까지 5.4km를 해안 누리길로 선정한 황금해안길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장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으므로, 사전지식이 없으면 진입로부터 찾기가 어렵다.

 

백미리는 사방을 둘러봐도 철조망으로 담장을 두루고, 마을에서 운영하는 체험현장으로 가는 쪽문만이 열려있다. 감투섬 직전에서 왼쪽으로 석축을 쌓은 제방이 황금해안길 출발 지점이다. 바로 이 석축이 밀물 때는 잠기기 때문에 물때를 잘 맞추어야만, 황금해안 길을 답사할 수가 있다.

 

징검다리 건너듯이 스릴 넘치는 500m 석축을 벗어나면 해안절벽 밑이다. 고립무원의 외로움이 엄습한다. 하지만, 밀물까지는 7시간이 남아있고, 오늘의 일정을 궁평항까지로 잡고 있으니 마음 편하게 자연 속으로 빠져든다. 갯벌이라면 발이 빠지는 곳으로 생각하지만, 백미리 해안은 암초들이 깔려있어 발이 빠질 염려가 없다.

 

암초사이로 소라 껍데기들이 모래톱을 이루고, 한 굽이 지날 때 마다 새로운 절경이 펼쳐진다. 문화관광부에서 전국해안을 돌아보며 선정한 곳이니, 부연설명이 필요 없이 해파랑길에서 보아오던 아름다운 경관을 서해안에서 도 볼 수 있게 되어 너무도 반갑다. 궁평리 솔밭까지 한 시간 동안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연 속에서 드넓은 갯벌과 자연의 경이로움에 심취하고 만다.

 

철조망쪽문을 통해 들어간 궁평리 솔밭은 5천여 그루의 노송이 남북으로 1.5km에 걸쳐 숲을 이루고, 해안사구에는 입자고운 백사장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화성8경으로 선정된 궁평낙조가 바로 이곳이다. 소나무 그늘에는 간이 식탁과 널마루가 있어 이곳에서 점심 도시락을 펼쳐든다.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한 그늘 속에서 30여 분간 휴식을 하고 궁평항으로 향한다. 해수욕장에서 궁평항까지는 썰물 때만 건너다닐 수 있는 300 m의 콘크리트 도로가 있다. 장승과 솟대의 환영을 받으며, 궁평항에 도착한다.

 

궁평항은 경기도의 여러 항구 중에서 유일하게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곳이다. 항구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서해의 해산물과 러시아 등 해외에서 수입되는 해산물이 이곳 궁평항을 통해 공급되고 있다. 입하도와 국화도를 오가는 여객선 터미널이 있고, 궁평항 홍보관과 직판장을 돌아보고, 화옹방조제가 시작되는 우정교를 건넌다.

 

화옹방조제는 궁평항과 매향리를 잇는 길이가 9.8km에 이르는 방조제다. 준공탑 공원에서 끝도 없이 긴 방조제를 바라보며, 2시간이 넘도록 걸어야 할 생각이 꿈만 같다. 30도가 넘는 열기 속에서 따분하고 지루한 길을 걷는 것 보다는 유서 깊은 남양천주교성지를 돌아보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화성에도 8경이 있으니 용건백설, 용주범종, 제부모세, 궁평낙조, 남양황라, 입파홍암, 제암만세, 남양성지를 꼽는다. 이중에서 오늘 찾아가는 남양성지는 화성시 남양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1866년 병인년 박해 때 무명의 교인들이 순교한 거룩한 성지라고 한다.

 

가장 눈에 띄는 조형물은 로사리오 성모님의 동산이다. 원형으로 펼쳐진 성지 전체가 하나의 묵주처럼 꾸며져 있는데 대형 십자가상과 성모상, 어른이 팔을 펼쳐야 겨우 안을 수 있을 만큼 커다란 묵주 알이 세워져 있다. 숲과 초원, 그리고 흙길이 펼쳐진 이곳은 천주교 신도가 아니라도 누구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안식처다.

 

 

13. 평택 무역항

화옹방조제를 건너오면 매향리(梅香里)와 이어진다. 마을이름만 들어도 매화향기가 물씬 풍기는 순박하고 평화로운 어촌이다. 하지만, 6.25국란을 지난 뒤로 미 공군이 지난 반세기 동안 사격장으로 사용하면서 주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심한 소음과 함께 우울증으로 긴긴 세월 고통을 받아온 곳이다.

 

2005년 미 공군이 철수할 때 까지, 매향리는 매일같이 폭음 속에서 신음하였고, 폭격 연습장으로 사용된 매향리 앞 작은 농섬이 1/3로 줄어들었다. 누란의 위기 속에서 우리를 도와준 미국의 군사기지를 바라보면서, 묵묵히 참아온 주민들의 눈물겨운 사연에 가슴이 먹먹하다.

 

사당역 4번 출구로 올라서니 8155번 버스를 기다리는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월요일 아침 출근전쟁을 실감하는 현장이다. 한번 놓치면 20분을 기다려야한다는 조바심 때문에 입석으로 승차를 한다. 20여명이 입석을 하고보니 통로까지 만원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거북이걸음을 하던 버스가 봉당부터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다.

 

조암터미널에 도착한 시각이 845, 무려 2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곳에서 매향리는 버스연결이 순조롭지 못해 택시로 이동한다. ‘매향웃말길을 따라 마을로 진입하면 매향장로교회를 만난다. 오랜 세월 주민들의 안식처가 되었을 교회도, 빛바랜 모습으로 긴긴날의 역사를 말없이 전해주고 있다.

 

기아차로 옆으로 미 공군 사격연습장에서 수거한 녹슨 포탄과 잔해로 만든 조형물을 전시해 놓았다. 해안가로 보이는 곳이 기아차 평택공장이다. 포탄과 자동차공장을 바라보며 감회가 깊다. 잿더미 속에서 일어나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낸 상징이 아닌가. 좌절 속에서도 희망의 등불을 바라보며 살아온 우리세대가 자랑스럽기만 하다.

 

기아차야적장의 수많은 자동차들이 석천선착장을 통해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기아차사거리에서 잠시 걸으면 남양 방조제가 나오고, 남양 방조제를 건너 평택시로 진입한다. LNG입구사거리에서 남양호를 왼쪽으로 바라보며 남양대교 입구 원정3거리에서 77번국도로 올라선다.

 

77번 국도를 20여 분간 걸어 쌍용마을길로 접어들어 원정변전소 사거리에 도착하면, 북한 잠수함에 피격된 천안함이 소속된 해군2함대사령부 입구다. 2010326일 밤 922분께 백령도 근처해상에서 해군초계함인 1200톤급 천안함이 선미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나 침몰했다.

 

폭발사고로 천안함에 탑승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됐지만, 40명이 사망하고 6명이 실종되었다. 民軍合同調査團을 구성한 정부는 북한의 어뢰공격이라고 발표한바 있다. 국제질서를 무시하고 만행을 저지르는 북한의 기만술책을 어찌 대적할 것인지? 온 국민이 단결하는 것만이 북한의 도발을 무력화 시키는 길이다.

 

해안을 매립하여 바둑판처럼 획일적으로 조성한 포승공단은 단조롭고 지루한 길이다. 신당근린공원에서 해안가로 진행하면, 평택항 국제여객터미널 맞은편으로 대산해양경비안전센터 건물이 있다. 14층 전망대에 올라서면 서해대교와 21세기를 열어가는 평택항이 일목요연(一目瞭然)하게 펼쳐진다.

 

경기도에서 유일한 국제무역항인 평택항은 중국과 가까운 거리여서, -FTA시대를 맞아 세계최대 중국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최적의 항구이고, 동아시아의 수출전초기지로 적합한 곳이다. 국내 31개 무역항 중에서 3년 연속 물동량 1억 톤을 달성하고, 자동차처리실적 4년 연속 1위라는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입지조건이 좋은 평택항을 국내3대항으로 키운다는 목표로 2020년 완공목표로 서해안복선전철공사를 착공한 상태이다. 장항선이 지나는 홍성역과 연계하여 화성시 송산까지 89.2km에 걸쳐 서해안복선전철이 완공되면, 평택시 안중읍과 당진시 합덕읍이 새로운 배후도시로 부상하고 이지역의 교통이 활성화 될 것으로 기대가 된다.

 

32번 교각과 33번 사이로 서해대교를 통과한다. 경기도 평택시와 충청남도 당진시를 연결하는 서해대교는 길이가 7,310m에 달해 서해안 고속도로에 건설된 827개다리 중에서 가장 긴 교량이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충청남도 서북부 및 호남지역과 수도권지역간에 접근성이 크게 향상되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서해대교를 지나온 다음 평택호 관광지까지 38번 국도변을 걷는 7km는 정말로 힘겨운 구간이다. 30도를 넘는 열기에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복사열로 이글이글 불볕더위가 쏟아진다. 평택호 관광지에 도착하면 아산만방조제가 아스라이 바라보인다.

 

아산만방조제(牙山灣防潮堤)는 경기도 평택시 현덕면 권관리와 충청남도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사이에 축조한 길이 2,564m에 저수량이 225만 톤에 달하는 거대한 호수다. 아산만으로 흐르는 하천주변에 소금기가 많은 바닷물이 들어와 농사에 많은 피해가 나고, 홍수 때는 물이 잘 빠지지 않아, 피해를 줄이기 위해 1973년에 축조하였다.

 

27km를 걸어온 여독으로 더 이상 진행하기가 어려워 망설이고 있던 차, 충남택시를 만나 아산방조제를 건너 온양온천역까지 편하게 이동하여 1호선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