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성 천년길
일 시: 2016년 4월 30일
구 간: 홍주성(황화문) - 홍주성 역사관 - 홍주아관 - 조양문 - 당간지주 - 천주교성지 - 홍주의사총 - 버스터미널 - 홍성역 (3km)
19. 홍주성 천년여행
홍성사거리에서 홍주천년여행이 시작된다.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로 시작하여 995년에 도단련사를 두었고, 1012년에는 지주사가 되었다. 이후 홍주로 개칭되어 1358년에 목으로 승격된 후, 조선조에 들어와 1413년에 현감을 두었고, 1895년에 군으로 승격되었다가, 1914년 옛 결성군을 합쳐 홍성군이 되었다.
홍성군은 동쪽에 봉수산(484m), 서쪽으로 백월산(394m), 남쪽에 오서산(790m), 북쪽에는 용봉산(374m)을 중심으로 평탄한 구릉지대를 형성하여 2읍 9면에 9만 5천명이 상주하고 있다. 먼저 찾은 곳이 홍주성과 남쪽에 있는 홍화문이다. 2013년 남문을 복원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추구하는 홍성의 앞날을 위해 홍화문으로 개칭하였다고 한다.
홍주성의 길이가 1,772m에 달하였으나 현재는 남쪽의 810m 만 남아있다. 나말여초에 축성된 홍주성은, 조선 초기 왜구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해 석성으로 쌓은 이후,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에 의해 대대적으로 개축되었다.
다음은 홍주성역사관을 찾아간다. 2011년 5월 개관한 역사관은 ‘천고낙지(天鼓落地)의 땅 홍주’라는 주제를 가지고, 전시 홀 입구에서 1871년 규장각지도를 참고한 홍주성복원모형도를 만날 수가 있다.
전시공간에는 최영 장군, 성삼문 선생, 김복한 선생, 한용운 선사, 김좌진 장군 등 홍성이 배출한 역사인물 소개와 함께 활발한 부보상활동으로 번성했던 지역상권과, 천주교 박해를 함께 전시하고 있다.
홍성군청에 있는 관아로 들어간다. 홍주(洪州)는 충청도에서 충주, 청주, 공주 다음으로 번성했던 충청도 서부지역을 관장하는 관찰사영(觀察使營)으로 승격되기도 한 고을이었다. 관아의 외삼문인 홍주아문은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읍성을 대대적으로 보수하면서 세운 문이다.
본래 대원군의 친필이 걸려있었으나 지금은 없어지고, 정면이 5칸으로 우리나라 아문 중에서 가장 크고 독특한 모습이다. 홍성군청 안뜰에는 보우국사가 왕사가 된 것을 기념으로 심었다고 전해지는 충남기념물 171호로 지정된 느티나무가 있다. 사또가 부임하면 나무아래 제물을 차려놓고 고을의 무고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군청뒷들에 고풍스러운 안회당은 조선시대 홍주군의 동헌(東軒)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사적 213호인 안회당(安懷堂)은 생생문화재 활용사업에 따라, 각종모임과 교육장소로 개방하여 우리문화에 대한 소중함을 전달하는 예절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896년 홍주목사 이승우가 건립하였다고 전해지는 여하정은, 홍주관아의 후원에 조성한 정자로 목사들이 정사를 구상하며 휴식을 취하였던 곳이다. 연못을 배경으로 6각형의 수상정을 짓고, 나무를 심어 사대부가의 전형적인 모양을 갖추고 있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조양문(朝陽門)이다.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자, 홍성군의 관문으로 1870년 홍주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개축하면서 조양문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홍주성의 서문과 북문이 없어지고, 조양문도 훼손될 위기에서 읍민들의 강경한 반대로 보존됐으며, 지난 1975년 문루를 복원하였다.
홍성천 건너편으로 홍성전통시장이 있고, 잠시 후 오성리 당간지주를 만난다. 당간지주란 절의 입구에 당간(幢竿)을 지탱하기위해 세운 석조물을 말한다. 부처나 보살의 위엄과 공덕을 표시하고, 사악한 무리를 내쫒는 의미를 가진 당이라는 깃발을 꽂는 게양대이다.
당간지주가 있는 주변에는 고려시대 광경사(廣景寺)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간지주의 규모로 보아 큰 사찰이었음을 짐작할 수가 있다. 월계천을 건너면 “홍주순교성지”로 조성한 천주교박해현장이다. 1792년 충청도에서 최초로 순교자가 발생한 이후, 병인박해까지 212명의 순교자가 나온 박해 현장이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이 홍주의사총(洪州義士塚)이다. 국가지정문화재인 홍주의사총은 조선말기(병오년) 홍성지역에서 일어난 의병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홍주지역에서는 1906년(병오년)에 전(前) 이조참판 민종식을 중심으로 의병대를 조직하였다.
5월19일 홍주성을 함락시키며 기세를 올린 의병대는, 일본군과의 교전에서 조양문이 부서지고, 중과부적으로 의병 수 백 명이 전사하였다. 고귀한 희생을 기리자는 충정에서 충청남도 기념물 제4호로 지정하였다가, 2001년 8월17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하여 성역화 하였다.
버스터미널이 있는 고암근린공원을 지나 홍성역으로 가는 연도에는 홍주를 빛낸 인물과 미래를 제시하는 내포의 중심 천년스토리가 전시되고 있다. 홍성역에 도착하며 하루일정을 소화하고 17시8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에 올라 차창으로 스치는 용봉산을 바라본다.
홍성8경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는 용봉산은, 용의형상과 봉황의 머리를 닮아 신령스러운 산이었는데, 홍북면 일대가 충청남도 도청소재지로 선정되어 내포신도시로 청사진을 펼치고 있다. 새천년의 웅지가 날개를 펼치는 날, 유서 깊은 홍주가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될 것이다.
사찰부재
홍주 역사공원
흥선대원군의 척화비
안희당
여하정
만해 부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