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삼남길

전남 11구간: 배꽃길

김완묵 2016. 3. 29. 11:22

일  시: 2016년 3월 27일

구  간: 나주시청 - 영산강 - 영산포 - 만봉천 - 벽류정  - 동창사거리 (18km)

          동창사거리 모텔이 페쇄되어  시내버스 편으로 나주로 나와 영신장에서 숙박


                                            전남 11(배꽃길)

정렬사 앞마당에서 평온길과 배꽃길이 교차하게 되지만, 나주읍성을 순례하면서 배꽃길이 중복되어 완사천이 있는 나주시청 앞에서 세지면 동창사거리까지 17km를 진행하게 된다. “시민과 소통하는 행복한 나주의 슬로건을 바라보며, 인구10만을 포용하고 있는 나주가 행복한 고을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주역을 지나 종합스포츠 파크에 도착하니, 때마침 제35회 전국롤러경기대회가 열리고 있다. 전국에서 참가한 선수들의 긴장된 모습과 열렬하게 응원하는 가족들의 함성이 영산강 둔치로 메아리친다. 둔치로 올라서면, 영산강이 자랑하는 유채 꽃밭이 녹색물결을 이루고, 영산교를 건너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홍어1번지다.

 

 

바닷가도 아닌 곳에서 홍어 거리를 만나다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영산포구 전체가 홍어집 간판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연유는 고려 공민왕으로 거슬러간다. 왜구가 극성을 부리자 조정에서 흑산도 어민들을 영산포로 이주시키고 섬을 비워두게 되었다. 이때 이주해온 흑산도 주민들과 함께 들어온 것이 홍어라고 한다.

 

 

냉장시설이 별로 없던 시절. 애써 잡은 생선들을 며칠씩 걸려 배로 운반해오면, 상하기 십상인데, 유독 홍어만은 배탈이 나지 않았단다. 이 사실을 알고부터 삭혀먹기 시작하여 막걸리와 곁들여 먹는 발효식품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전라도에서는 잔칫집에 홍어가 빠지면 안 될 정도로 큰 대접을 받고 있는 생선이 홍어다. 홍어가 귀하다보니, 주인이 볼 때는 값싼 돼지고기와 김치를 먹다가, 주인이 안 볼 때는 홍어를 몰래 먹었는데, 세 가지 음식이 궁합이 잘 맞아 막걸리에 곁들여 먹는 홍어 삼합이 인기식품이 되었다고 한다.

 

 

영산포는 서해바다에서 올라온 해산물과 나주평야에서 생산된 농산물이 모이는 곳이라서 호남지역 최고의 곡물집산지였다. 일제시대에는 호남지방의 곡물들이 영산포를 통해 일본으로 수탈되는 아픈 추억을 안고 있다. 1977년 까지만 해도 배가 드나드는 포구였으나, 1981년 영산강 하구언이 축조되면서 뱃길도 막히고 말았다.

 

 

황포돛배 선착장 옆에 있는 등록문화제 제129호로 지정된 영산포 등대는 빈번하게 범람하는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고, 영산포로 들어오는 어선들의 길잡이를 위해 1915년 육지에서는 유일하게 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흑산도 앞 영산도 사람들이 육지로 나와 살면서, 고향을 그리는 마음으로 영산포라 부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강 이름도 영산강이 되었다고 한다. 고려시대부터 영산포에 조창이 생겨, 전라도 인근에서 징수한 전세를 모았다가 해상을 통해 서울로 운반하면서 육지속의 포구로서 명성을 이어갔다.

 

 

지금은 홍어거리로 활기를 띠고 있지만, 영산강에 하구언이 생기기 전에는 포구로서 전성기를 누린 탓에, 영산강 줄기 따라 제5경으로 선정되어 錦城祥雲(금성상운)이라 불렀는데, 거리상으로도 영산강의 절반이 되는 65km지점이다.

 

 

영산강제방을 따라 온 자전거길이 양곡교에서 삼남길과 작별을 고한다. 자전거 길은 영산강 줄기 따라 하구언으로 향하고, 삼남길은 만봉천을 거슬러 오르며 해남 땅 끝 마을로 이어진다.

풍물시장을 지나며 영산포구를 벗어나, 지루한 만봉천 10km 제방길이 이어진다.

 

 

나주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특산품이 단연코 나주 배. 나주 배는 우리나라 배 재배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는데,세종실록지리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고, 1871년 발간된 호남읍지에는 진상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나주배의 우수성을 인정받은 것은 1929년 개최된 조선박람회에서 명품으로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배는 다른 과일에 비해 수분이 많고, 당도가 뛰어난 알카리성 식품이다. 또한 배에는 연육효소가 들어있어 고기를 연하게 할뿐만 아니라, 숙취해소에 효능이 있는 아스파라간신이 들어있고, 기관지염, 가래, 기침을 다스리는 루테올린 성분이 풍부하여 환절기에 고통 받는 감기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만봉천을 중심으로 구릉지에는 나주배의 주산지인 과수원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개화시기가 이른 탓인지 화사하게 피어나는 배꽃을 볼 수 없는 것이 못내 아쉽다. 밤자갈이 깔려있는 만봉천은 나무 한그루 없이 따사로운 봄볕이 내려 쪼인다. 햇볕이 그리운 계절이라 그나마 다행이다. 삼복더위라도 만났다면 엄두도 내지 못할 고통스러운 구간이다.

 

 

2시간이 넘도록 밤자갈 밭에서 발 맛 사지를 하고나니, 발바닥이 얼얼하다. 금천과 합류하는 삼각주를 지나며 동창사거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현재시각이 오후1, 모텔로 들어가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계동마을에서 오봉교를 건너 벽류정(碧流亭)을 찾아간다.

 

 

금천(錦川)기슭에 자리 잡은 벽류정터는 세종 때 호조참판이었던 조주(趙注)의 별서 옛터(舊基)였는데, 광산 김씨의 소유가 되어 김운해(金運海: 碧流亭)1640(인조 8)에 벽류정을 건립하였다. 이곳에는 글씨에 능한 민규호(閔奎鎬:左議政 黃史)와 신헌(申櫶:御營大將 威堂)의 현판과 김수항(金壽恒)의 정기 등 11개의 현액(懸額)이 보존되어 있다.

 

 

전남유형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된 벽류정(碧流亭), 금성산(錦城山)을 배산으로 펼쳐진 벽류마을 가운데 봉긋하게 솟은 언덕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로 지은 목조유실형 정자이다. 수백 년 된 느티나무 숲속에 터를 잡은 벽류정은, 단청이 모두 벗겨지고 백골만 남은 것이 절개를 지키는 선비처럼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동창사거리에 있는 세지모텔을 찾아간다. 멀리서보아도 쉽게 찾을 수 있는 동창사거리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동창5일장을 지나 한 달음에 달려간 모텔은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자물쇠로 굳게 잠겨있다. 이 무슨 날벼락인가. 철석같이 믿었던 모텔이 문을 닫고 말았으니, 앞으로 남은 일정이 불안하기만 하다.

 

 

할 수 없이 영산포까지 운행하는 버스에 올라 허탈한 마음을 추 수리며, 영산포에서 환승하여 나주터미널까지 되돌아와 어제 묵었던 영신장을 다시 찾았다.

 












영산강 둔치 










영산포 등대







                                                         만봉천 - 10km





                                                              뒤 돌아본 영산포


                                                           만봉천 둑방 길















                                                 

                                             만봉 & 금천 합류지점
















                                                           세지초등학교



                                          다시 찾아온 영신장 - 2일밤을 이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