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 소원길. 2
일 시: 2016년 1월11일
구 간: 의항항 - 태배전망대 - 구름포해변 - 화영섬 - 의항분교 - 수망산 -백리포구 - 천리포구 - 국사봉 -만리포(12.5km)
9. 해변 소원길.2
6시30분. 태안터미널에서 의향리 종점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달려가는 버스에는 승객이라야 달랑 2명뿐이다. 총알택시처럼 달려가는 버스는 중간에 서는 법도 없이 종점까지 40분 만에 주파한다. 가로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비추는 바다펜션 앞마당.
구름사이로 빛나는 새벽별이 오늘의 날씨를 예고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아침 서울기온이 영하 8도라고 한다. 매서운 추위에 대비하여 두꺼운 방한복에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천천히 의항해수욕장을 향해 발걸음을 이어간다. 어둠이 한발 물러서며 포구와 갯바위들이 형체를 드러내고 있지만, 카메라를 작동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눈요기로 주변을 살피고 만다.
금성수산이 있는 삼거리에서 신너루해변은 마을길로 들어서야 한다. 이곳은 만리포까지 이어지는 소원길 말고, 의항해변을 출발해 태배전망대와 구름포해안을 돌아오는 6.5km의 태배길이 있다. 순례길, 고난길, 복구길, 조화길, 상생길, 희망길을 6개 코스로 나누어 여유 있게 걸어도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다.
2007년 원유유출사고 당시 130만 자원봉사자들의 방제로로 활용했던 길을 2010년 7월부터 7억3천만 원을 들여 해안길을 조성했다고 한다. 언덕을 넘어서면 신너루해변이다. 조용히 물러서는 바닷물, 어둠속에서도 서서히 속살을 드러내며 잔잔하고 고요한 해변이 아침잠을 깨운다.
신너루해변과 태배해변은 서로 연결돼 있다. 리아스식 해안이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모래톱이 잔잔하게 펼쳐지고, 정적을 깨트리는 발자국소리와 송림을 뒤흔드는 바람소리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새벽공기를 가른다. 태배해안이 끝나는 곳에서 나무계단을 통해 태배전망대를 오른다.
엄지손가락처럼 툭 튀어나온 소원반도의 끝자락에 자리 잡은 곳이 태배전망대다. 당나라 시선(詩仙) 이태백(李太白)이 조선 땅에 유람 왔다가 해안비경이 너무도 아름다워 바위에 오언시(五言詩)를 남기고 갔다는 유래(由來)에 따라 태백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고 한다. 사대주의(事大主義)에 편승한 한 단면이 아닐까 싶다.
광장중앙에는 “유류피해전시관”이 있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이태백이 반했다는 서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소원길이 시작되는 신두리 해안이 손에 잡힐 듯이 건너다보이고, 학암포에서 코앞의 등대섬까지 점점이 떠있는 새뱅이, 수리뱅이로 시작되는 7개의 섬들이 그 유명한 전설을 실타래처럼 풀어 놓는다.
옛날 오랑캐들이 군함 수 십 척을 앞세워 쳐들어오자, 조정에서는 제대로 대항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지라. 대뱅이가 여섯 섬들을 모아놓고 우리의 힘으로 오랑캐를 몰아내자는 제안을 한다. 이에 대뱅이가 대나무깃발을 흔들어 병사들로 위장을 하고, 굴뚝뱅이는 연기를 내뿜으며 화포로서 대응하고, 나머지 섬들은 군함으로 변신하여 오랑캐를 물리쳤다는 전설이다.
태안군은 2읍 6면의 행정구역을 갖고 있는데, 어느 곳 하나 명승지 아닌 곳이 없을 정도로 “태안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문주를 뒤로하고 구름포해안으로 가는 도중에 일출을 보게 된다. 사실 이곳에서는 일몰이 장관이라지만, 일출 또한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구름사이로 살그머니 얼굴을 내미는 태양이 바다를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물결 따라 모자이크 조각처럼 반짝이는 모습은 자연이 빗어내는 예술품이다. 소원반도 능선에서 큰 감흥을 받으며 도착한 곳이 구름포해안 전망대다.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나타날 줄이야.
삼태기처럼 아우룩한 솔밭 속에 둥지를 튼 구름포해수욕장은 좌청룡우백호의 지세로 터를 잡고, 좌우로 송림과 기암절벽이 조화를 이루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반달처럼 둥그런 아랫부분을 구름에 비유하여 구름언덕 끝자락이라는 구름미(雲山尾)로 부르다가, 雲山을 雲浦로 다시 “구름포”로 부른다고 한다.
해변길을 내려서면 의항분교 옆으로 아담한 화영섬을 만난다. 조선시대 안흥항(安興港)으로 들어오던 중국의 사신(使臣)들이 풍랑을 만나 표류(漂流)하다 이 섬에 상륙하였다고 한다. 사신들을 환영(歡迎)했다는 뜻으로 환영섬으로 부르다가 지금은 화영섬이 되었다. 화영섬 옆으로 물 빠진 갯벌위로 독살이 나타난다.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고기잡이 방식이다.
의항해수욕장을 뒤로하고, 망산고개를 오른다. 정상에는 팔각정을 중심으로 시원하게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고, 고갯마루를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백리포해수욕장 입구가 나타난다. 백리포해변 1.2km, 천리포해변 2.4km, 만리포해변까지 6.1km가 남았으니 소원길도 끝이 보인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백리포 해수욕장이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진다. 갈림길에서 가파른 비탈길을 500여m 내려갔다 다시 올라와야 하기 때문에 백리포를 생략하고, 천리포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예전에는 방주골로 부르던 백리포는 베 짜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하여 ‘방직골’이라 부르다가 방주골로 바뀌었다고 한다.
천리포해변으로 내려서면, 남쪽으로 천리포수목원이 자리 잡고 있다. 1만 5천 여 종의 희귀식물을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인 수목원이다. 세계수목원협회에서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세계에서 열두 번째로 “세계의 아름다운 수목원”으로 선정한 민간수목원이다.
미군장교로 한국에 왔던 민병갈(Carl Ferris Miller) 원장은, 한국을 사랑한 나머지 국내최초로 민간수목원을 만들어 전 재산을 천리포수목원에 기증하고, 1979년 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귀화한 장본인이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욱 사랑한 이방인의 감동스토리에 진한 감동을 받는다.
천리포수목원생태교육관 표지석 앞에서 국사봉 오르는 해송길을 따른다. 국사봉 전망대에 오르면, 닭섬과 천리포해변, 천리포수목원, 만리포해변까지 지상에서는 볼 수 없는 멋진 조망이 터진다. 정상을 오르는 동안 힘겨운 고통이 일순간에 사라지고 마음까지도 활짝 열리는 명승지 이다.
태안8경중에서 제4경으로 선정된 만리포해변으로 내려선다. 1955년 개장되어 대천, 변산해수욕장과 함께 서해안 3대해수욕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백사장 길이가 3km에 폭이 250m로 넓고, 20만㎢의 면적을 가진 서해안 최고의 명소다.
만리포는 만리장벌의 준말이란다. 옛날 명나라 사신을 환송할 때 수중만리 무사항해를 기원하는 전별식을 했던 곳인데, 전별식을 가졌던 해변을 수중만리의 ‘만리’란 말을 따 만리장벌이라 부르다가 현재는 만리포로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서진 표지석과 만리포사랑 노래비가 있는 광장에서 소원길 22km를 종료한다.
바다건너 신두리해변
태배 해변
태배산정에서 일출
의항분교
천리포해변과 가운데 닭섬
만리포 해변
만리포해수욕장 짚나인 철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