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게 나의 길을 물어본다: 대표수필선 제20집
반쪽짜리 베트남 여행
6개월을 기다려온 베트남 여행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새벽공기를 가르며 인천공항으로 달려가는 고속도로는 은구슬을 뿌려 놓은 듯, 영롱한 별빛이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5시40분. 출발시간이 3시간 남았지만, 서둘러 출국 수속을 시작한다.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앞이 캄캄하다. 여권 유효 기간이 모자라 출국할 수 없다는 한마디 말에, 한껏 부풀어 오른 고무풍선이 펑 소리와 함께 터지고 만 것이다.
여권이란 외국에 여행할 수 있는 자격을 증명하는 서류를 말한다. 자국민을 보호하고 방문하는 나라의 요구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사증을 발급하는 제도가 있는데, 한국과 베트남은 여권유효기간을 6개월로 정하고 있다.
아내의 여권 만료일이 2016년 2월인데, 6개월에서 20일이 모자란다는 것이다. 통사정을 해 보지만 우리의 하소연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며느리는 손녀 송현이와 가현이를 데리고 예정대로 8시40분발 비행기에 오르고, 아내와 나는 단수여권이라도 만들어 볼 생각으로 공항을 누비며 수소문을 해 본다.
일회용 여권 사진까지 찍어가면서, 외교통상부 직원이 출근하기만 눈이 빠지도록 기다린다. 직원이 출근한다는 9시가 지나도 굳게 닫힌 철문이 열릴 생각을 하지 않는다. 발을 동동 구르며 출입국관리소에 확인해 보니, 추석 연휴라 담당 직원이 출근을 하지 않는다는 대답이다. 실낱같은 희망도 사라지고 말았다.
수없이 외국 여행을 다녀왔지만 이런 일을 당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추석연휴를 맞아 출국하는 인파로 공항대합실은 북새통을 이룬다. 많은 인파속에 우리와 같은 미아가 또 있을까. 하노이로 날고 있을 아들 재형이와 통화를 위해 무료하게 2시간을 기다린다.
12시 재형이와 통화를 한 뒤, 여행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이때부터 아내와의 신경전이 벌어진다. 나까지 여행을 포기하면 그동안 아들 내외가 준비한 보람도 없이 후회만 남으니 혼자서라도 다녀와야 한다는 설득이다.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아내의 설득에 타당성이 있다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가는 아내의 쓸쓸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저녁6시 40분 비행기에 오른다. 6개월 전에 예약한 비행기 티켓이 취소되고 비행기표를 새로 발권하다 보니 환율 차이로 245.000원을 더 지불하고 아내의 위약금 100.000원까지 포함하여 반쪽짜리 여행을 하면서 345.000원의 여행 경비가 추가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악몽 속에 시달리며 하노이 공항에 도착한 시각이 현지시간으로 9시 40분(표준 시차 1시간 늦음). 씁쓸한 표정으로 공항에 마중 나온 재형이와 상면을 한다. 공항에서 40분 거리에 있는 롯데호텔 48층에 여장을 풀고 첫날밤을 보낸다.
새벽 5시 차창너머로 바라보이는 하노이는 매연 탓인지 도시전체가 연무 속에 잠겨 있다. 아이들의 아침인사를 받으며, 침울해 지려는 마음을 애써 감춘다.
2일간 투숙할 롯데호텔은 65층으로 하노이에서 경남빌딩과 함께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는 하노이의 상징적인 건물이다. 세종학원이라는 로고가 붙은 벤으로 하노이 관광을 시작한다. 한국말을 더듬거리는 운전기사는 창원과 부산에서 4년간 번 돈으로 벤을 샀다며 코리아를 치켜세운다.
하롱베이는 수년 전에 다녀온 곳이라 생략하고, 남쪽으로 92km 떨어진 닌빈으로 향한다. 하노이에서 가장 유명한 하롱베이가 바다관광이라면, 육지에서는 닌빈 관광이 단연 으뜸이다. 유네스코에서 자연유산으로 지정한 닌빈은 베트남 북부 최대의 생태자연습지와 기암절벽, 9개의 동굴로 이루어져 새롭게 관광지로 부상하고 있다.
고대 베트남의 단(丁)왕조, 띠엔레(前洯)왕조, 쩐(陳)왕조의 수도인 남빙성을 중심으로 땀꼭과 짱안으로 나뉜다. 일인당 15만동(7천오백원)의 입장료를 지불하고 선착장으로 내려선다.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야자수와 바나나 숲 속으로 펼쳐지는 계곡은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 한다.
산수화 속으로 빠져든 우리는 뱀부 보트에 올라 1시간 반 동안 보트 놀이를 시작한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밥숫가락만 봐도 배가 부르다고 하는데, 아들 며느리와 손녀를 앞세우고 관광에 나섰으니 이보다 행복한 일이 있겠는가. 그렇게도 바라던 아내와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홍강 삼각주를 중심으로 발전한 하노이는 이조(李朝)· 진조(陳朝)· 여조(黎朝) 등 베트남 역대 왕조의 수도였고, 프랑스 통치 시대를 거쳐 1945년부터는 베트남 민주공화국의 수도로서 1976년 통일 후에도 베트남의 수도가 되었다.
하노이 시내로 들어오면, 정면에 보이는 빌딩이 아오자이를 형상화하여 건축했다는 롯데 호텔이다. 외국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인 호안끼엠 호수에서 전기차를 타고 하노이 야시장을 돌아보는 투어가 시작된다. 밀려드는 인파, 무질서하게 파고드는 오토바이, 혼란스러운 상점과 거리풍경이 너무도 어지러워 전기 차에서 내려설 엄두를 못 내고, 시내를 질주한다.
시내 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이틀간의 여독을 풀기위해 마사지실에서 휴식을 한 다음,
호텔 65층에 마련된 만찬장으로 올라간다. “탑 오브 하노이 Top of Hanoi" 손녀 송현이와 가현이의 함성이 터진다. 화려한 조명 아래 예약된 자리로 안내되어 남국의 산해진미(山海珍味)가 가득한 차림상 위로 시선이 모아진다.
감미로운 오케스트라의 음률 속에 하노이의 야경이 발밑에 펼쳐지고, 남양군도에서 잡아 올린 바닷가재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로 입가심을 한다. 오! 하노이의 밤이여, 꿈같은 시간 속에 아들 며느리와 손자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환상의 꿈속으로 빠져든다.
다음 날 호찌민 시로 이동한다. 비행기로 2시간에 1730km의 먼 거리다. 사이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수영장으로 내려간다. 9살 송현이는 수영솜씨가 제법이고 6살 가현이도 구명조끼를 입고 담방구질에 푹 빠져든다. 분가해서 사는 동안 아이들을 제대로 지켜보지 못했는데, 조리 있는 말솜씨에 행동 하나하나가 어른스럽다.
독립궁은 프랑스 식민 시절인 1868년, 인도차이나 전체를 통치하는 건물로 프랑스에 의해 건축되었고, 태국의 국왕이었던 노로돔의 이름을 따서 노로돔 궁전이라고 불렀다. 1차 인도차이나전쟁 이후 남북으로 분단되어 호찌민을 중심으로 남베트남 정부의 대통령궁으로 사용하면서 독립궁으로 바꾸었다.
1975년 북베트남 인민해방군 탱크가 대통령궁에 진군하면서 베트남전쟁이 종결되었고, 베트남 통일 이후 통일궁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4층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거리 모습은 조선총독부 건물에서 세종로를 바라보는 것처럼 녹색 광장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호찌민시는 메콩강 하구 삼각주에 자리 잡고 있다. 16세기 베트남에 정복되기 전에는 프레이 노코르란 이름의 캄보디아 주요 항구였다. 사이공이란 이름으로 프랑스 식민지인 코친차이나와 그 후의 독립국인 남베트남(1954년 - 1976년)의 수도이기도 했다.
1975년에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사이공은 호찌민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관광객의 필수 코스인 벤탄 시장을 찾았다. 벤탄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곳이 커피 전문점이다. 코끼리 똥에서 추출한 커피는 코끼리 입을 통해 배설할 때까지 여러 날이 걸리고, 그동안 갖가지 물질이 첨부되어 향이 좋고 영양가 만점의 커피라고 한다.
호치민시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구찌터널을 찾아간다. 호치민 시에서 북서쪽으로 70여 km 떨어진 밀림지대에 있는 구찌터널은 프랑스 식민통치를 반대하였던 베트남인들이 게릴라 활동을 위해 만든 것이다.
베트남전쟁이 발발하자, 상대적으로 모든 것이 열세인 베트남군은 미군과의 효과적인 전투를 위해 구찌터널을 이용하였다. 물자가 부족한 베트콩들이 죽창이나 쇠꼬챙이를 이용하여 부비트랲으로 대항하고, 계릴라 작전으로 치고 빠지며 미군들을 골탕 먹인 곳이다.
군인들의 안내로 구찌터널을 통과하는 체험이 이어진다. 터널의 통로는 세로 약 80cm 가로 50cm로 협소하여, 한사람이 기어서 나갈 정도로 좁고 낮은 동굴이다. 구찌터널의 총 길이가 250km에 이르고, 깊이는 지하 3-8m까지 여러층과 방들로 연결되어 4층 구조로 넓게 만들어진 공간도 있다.
미국을 상대로 승리했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그들 앞에서, 월남전에 참전했던 장본인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명분 없는 전쟁이 얼마나 허구인지 그때는 몰랐다. 강대국의 패권주의가 약소민족을 괴롭히고 엄청난 재앙을 가져왔다는 사실. 이제라도 주권국가의 이념을 존중하여 모두가 평화롭게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