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옛길: 삼남길

전남13구간: 바람길

김완묵 2015. 8. 31. 06:33

일  시: 2015년 8월 30일

구  간: 장성역 - 장성오거리 - 1번국도 알바(5km) - 장성오거리 - 황룡면 -  와룡교 -  월봉서원 - 임곡역 - 용진교 - 황룡강 - 송산유원지

 

                                               전남 13(바람길)

12일로 길을 나서는 2일째는 먼동이 터오는 이른 새벽 모텔을 나서는 것이 관례다. 오늘도 1348분 무궁화열차를 예매해 놓은 터라 광주송정역에서 탑승하려면 송산유원지까지 23km를 걸어간 다음, 19번 버스로 이동을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기 때문에 530분 숙소를 나선다.

 

 

새벽안개가 스멀스멀 몰려들어, 마음은 찜찜하지만 보무도 당당히 발걸음을 재촉한다. 거리는 인적도 없이 정적만이 감돌고, 장성오거리에서 남쪽방향을 바라보며 길을 잡았다. 하지만 순간적인 판단이 큰 착오를 일으킬 줄이야. 10여분이면 황룡면에 도착하는 것이 순리인데 엉뚱하게도 장성IC가 나타난다.

 

 

이럴 때는 지체 없이 원점으로 되돌아 와야 하는 것이 순리인데, 안개 속에서 우회로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다보니 아까운 시간만 흘러가고 만다. 40여 분간 헛수고를 한 뒤에 장성오거리로 돌아온 시각이 7, "일각이 여삼추"라 했거늘 1시간 30분을 허비하고 말았으니, 이런 황당한 일이 있단 말인가.

 

 

오른쪽 상무대 방향이 정석이다. 얼마나 허둥댔으면 이른 새벽인데도 온몸이 땀으로 후줄근하게 젖어있다. 한숨만 쉬고 있을 처지가 아니다. 그만큼 멀어진 목적지를 찾아 가자면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다. 황룡강으로 돌아가는 길을 생략하고 일직선으로 뻗어있는 철길 옆으로 진행한다.

 

 

와룡리 방곡마을을 지나 옥정리 입구에서 황룡강제방을 돌아온 삼남길 리본을 발견하면서, 조급한 마음도 다소 진정이 된다. 대해마을 정자에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와룡산 자락을 감아 도는 안개와 솔밭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평소 같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겠지만, 바보 같은 실수가 머릿속을 쥐어짜고 있다.

 

 

장성군 황룡면 옥정리와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이 경계를 이루며 광주지경으로 들어선다. 을씨년스런 모습으로 숲속에 방치된 옥정역(폐역)과 물맛 좋기로 유명한 臥牛山水(샘물)를 지나면, 삼남길이 논두렁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사유지라 주인에게서 승낙을 받지 못한 탓이 아닐까, 50m 를 돌아간 뒤에 석동마을로 들어선다.

 

 

마을 뒤로 돌아가는 산기슭에는 연분홍으로 자태를 뽐내는 백일홍(배롱나무)이 군락을 이루고, 소나무 숲길을 내려서면, 종산마을 가운데 경란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동구 밖 정자를 지나 1km남쪽으로 진행하면, 애타게 기다리던 빙월당(월봉서원) 입구에 도착한다. 월봉서원은 "빛고을 산들길"을 따라 입구에서도 600m를 더들어간 곳에 있다.

 

 

고즈넉한 돌담길 바람결에 일렁이는 죽림(竹林)을 지나면 비로소 월봉서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빗장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고, 행랑채 담장 너머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월봉서원(月俸書院)은 고봉 기대승을 모신 서원이다.

 

 

이황과 기대승은 13년 동안 120여 통의 편지를 주고받으며 한국의 성리학에 관해 논쟁을 벌였는데, 그중에서도 8년 동안 벌인 사단칠정(四端七情)은 성리학완성의 기틀을 마련할 정도로 진지한 논쟁이었다고 한다.

 

 

사단(四端)이란 불쌍히 여기는 마음(惻隱至心), 잘못을 부끄러워하는 마음(羞惡至心), 겸손의 마음(辭讓之心,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마음(是非至心)을 말하는 것으로 인간의 천성이 선하다고 보는 것이고, 칠정(七情)은 기쁘고, 노여워하고, 슬프고, 두려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욕심을 부리는 희노애구애오욕(憙怒哀懼愛惡慾)으로 인간의 감정을 말한다.

 

 

이황은 도덕적인 본성이 감정보다 앞선다고 주장했고, 기대승은 두 개가 서로 융합하여 나타난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기대승은 1527년 광주 송현동에서 태어나 34세에 이황에게 사단칠정에 관한 편지를 보냈고, 1572(선조5) 그의 나이 46세에 성균관 대사성에 임명되었으나, 그해 10월에 관직을 그만두고 하향 길에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삼남길이 월봉서원 뒤편 야산으로 인도하고 있지만, 산속에서 어떤 장애물이 나타날지 일수 없기에 촉박한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기위해 산길을 버리고, 마을 입구로 내려오니 임곡역까지 3km라는 이정표가 반겨준다. 간식과 물도 걸어가면서 먹어야 하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 심신을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예매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더한 고통도 감수해야만 한다. 삼화교를 건너 곧바로 용진교로 가면 다소간에 시간을 단축할 수 있지만, 임곡초등학교에서 삼남길과 만나기 위해 임곡육교로 올라선다. 지금은 폐역이 되어버린 임곡역에 도착한 시각이 10시 정각, 그동안 고군분투(孤軍奮鬪)한 보람이 있어 시간상으로 안정권에 들어선 셈이다.

 

 

한숨 돌린 발걸음이 부자연스럽다. 시간과의 경쟁에 몰입하다보니 육신의 고통을 알지 못한 탓이다. 성내육교로 호남선(철길)을 횡단하여 다리 교각 밑에서 양말을 벗어보니, 물집 잡힌 발가락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아직도 8km가 넘는 길이 남아 있는데, 또 한 가지 고민이 나를 괴롭히고 있다.

 

 

우선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고, 물집 잡힌 곳을 터트려 응급치료를 하고, 대일밴드로 상처부위를 감싼다. 임시변통이지만 한결 편안하다. 용진교를 건너 광주사람들이 자랑하는 황룡강 둑방 길로 올라선다. 빛고을(光州) 산들길이 송산유원지까지 7.5km를 알려주고 있다.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곱게 피어나고,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두둥실 흘러가며, 강가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온 몸이 날아 갈 것처럼 홀가분한 환상의 코스라지만, 한 달 후에나 맞볼 수 있는 길이고, 지금은 30도가 넘는 찜통더위가 머리위에서 이글거리고 있다.

 

 

바람길이 아니고, 고통의 길이다. 입석마을을 지나 유수지에 세운 태양열 집열판이 이채롭다. 수 천 평의 버려진 유수지위에 집열판을 설치하여 얻어지는 태양열 에너지가 우리의 미래를 선도할 원동력인 것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둑 방 길, 절룩절룩 절름발이 걸음으로 2시간 만에 강 한 가운데 자리 잡은, 송산유원지에 도착한다.

 

 

또 한 번 안도의 숨을 내쉬며 시계를 보니 1150. 이제 1km만 더 가면 버스 정류장이다. 바다가 없는 광주시민들에게는 보석보다도 소중한 송산유원지다. 악몽 같았던 13구간 바람길을 고통 속에 완주하고, 19번 버스로 광주송정역에 도착하여 소머리국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용산행 무궁화호에 오른다.

 



 

 

 

 

 

 

 

 

 

 

 

 

 

 

                                                   옥정역(폐역) 모습

 

臥牛山水

 

삼남길이 논두렁으로

 

동백나무열매

 

고개넘어 이웃마을로

 

 

 

 

 

 

 

 

 

 

 

 

 

 

 

 

 

 

 

 

 

 

 

 

용진교 건너 7.5km 황룡강 길

 

 

 

 

 

 

유수지위에 세운 태양열 발전소

 

 

                                                   송산유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