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도보여행

왜목마을

김완묵 2015. 8. 19. 04:14

일  시: 2015년 8월18일

구  간: 옹무치항 - 왜목마을 - 대호방조제 - 도비도 - 삼길포항 - 대산읍 - 진충사 - 서해대교

 

                                                 3. 왜목 마을

다음으로 찾아간 곳이 왜목마을이다. 일출과 일몰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있는 서해안 제일의 해돋이 명소다. 당진에서 가장 큰 어항이고, 관광객을 위해 조성한 팬션과 먹거리촌이 형성되어 부둣가를 중심으로 왜목마을을 상징하는 시설물과 오작교를 연계하는 산책로를 찾아 관광객이 몰려든다.

 

 

입자고운모래가 500여 m 이어지는 해수욕장과 썰물 때면 속살을 드러내는 갯벌에서 조개와 작은 고동(다슬기)을 잡는 재미가 쏠쏠하고, 앞바다에서는 낙지, 가자미, 우럭, 자연산 장어 등이 많이 잡혀 봄부터 가을까지 바다 낚시꾼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일출과 일몰을 보기위해서는 석문산이 제일이고, 일출의 포인트로는 선착장과 오작교, 일몰장소로는 당진전력문화홍보관이 있는 석문각을 꼽는다. 시기별로 위치를 옮겨가며 떠오르는 일출은 10월 중순에서 2월 중순까지 태양이 노적봉과 촛대바위로 떠오를 때가 가장 아름답다.

 

 

당진 9경 중 제1경인 왜목마을은 대호방조제를 축조하기 전에는 마을의 지형이 왜가리 목처럼 가늘고 길게 바다로 뻗어나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은 지형적으로 바다를 동서로 양분하면서 당진시의 최북단 서해바다로 가늘고 길게 뻗어나간 지리적 특성 때문에 해 뜰 무렵 마을의 바닷가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서해바다의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왜목마을을 조망하기위해 석문산을 오른다. 파출소 옆으로 나무계단을 따라가는 등산로는 매우 가파르다. 해발 70m에 불과한 산이지만, 주변을 조망하기 좋게 시설물도 없이 나무를 베어내고 잔디를 심어 일출과 일몰을 보기위한 캠핑족들에게는 천국이 따로 없다.

 

 

왜목에서 이어지는 해안을 따라 용무치와 장고항, 서해바다에 떠있는 국화도가 수반위에 빗어놓은 조각품처럼 아름답다. 화성시 우정읍에 소속된 국화도는 조선시대 유배지였고, 배로 20여분 거리다. 남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대호방조제가 고속도로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서쪽으로 당진화력발전소가 장관이다.

 

 

대호방조제(大湖防潮)는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와 서산시 대산읍 삼길포리의 바닷길을 잇는 방조제로 1984년 준공되었다. 간척지를 개발하여 농경지와 용수원을 확보하여 식량을 증산하는 농업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축조되었다. 석문방조제와 함께 당진군의 지도를 바꾼 대호방조제를 달려가는 중간에 도비도 전망대로 올라간다.

 

 

돌층계를 올라가면, 도비도 언덕위에 3층 전망대가 나타난다. 승강기도 없이 원형계단을 올라가는 옛날방식으로 보아 대호방조제를 축조하기 전에 도비도 등대로 사용하던 것으로 보인다. 커피전문점으로 영업 중인 전망대에 올라서면, 당진과 서산일대가 시원하게 조망된다.

 

 

호수 같이 잔잔한 바다에 징검다리처럼 떠있는 섬들, 대조도와 소조도, 우무도와 분도, 소난지도와 난지도가 푸른 바다위로 아름다운풍광을 그려내고, 흰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나는 하늘가에는 대호방조제와 석문방조제로 태어난 푸른 들과 호수가 춤추는 정경이 도비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다.

 

 

7,807m의 대호방조제를 지나오면 서산시 삼길포 항이다. 삼길포 항은 배에서 직접 활어 회를 떠주는 ‘선상횟집’이 특징이다. 30여 척의 선상횟집이 주기적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리다툼을 하지 않고, 건전한 상행위로 친목을 도모하고 그만큼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우리도 선상횟집을 찾아 우럭과 놀래미로 회를 떠서 우리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싱싱한 횟감으로 배를 불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도보로 이틀 일정을 하루에 소화하고, 충무공 정충신장군의 위패를 모신 진충사를 방문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권률 장군휘하에서 활약하다가, 17세의 나이로 의주에 계신 선조임금에게 전황보고를 전달하여 조정의 만주 망명을 막았다.

 

 

이후 무과에 급제하여 조정의 녹을 받다가, 이괄의 난을 평정하고,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팔도부원수로 활약하여 진충보국한 장군이다. 1966년 후손과 지방 유지들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건의하여 1970년 진충사를 건립하고, 매년4월25일 향제를 올리고 있다.

 

 

 

 

 

 

 

 

 

 

 

 

 

 

 

 

 

 

 

 

 

 

 

 

 

                                                         석문산 정상에서 본 조망

 

 

 

 

 

 

 

 

 

 

 

 

 

                                                   대호방조제

 

 

 

 

 

 

 

 

 

 

 

 

 

 

 

 

 

 

 

 

 

 

 

 

 

 

 

                                                                                  진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