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 도보여행

공세리 성당

김완묵 2015. 7. 7. 03:50

일  시: 2015년 7월 6일

구  간: 공세리 성당 - 삽교천 방조제 - 함상공원 - 맷돌포 선착장 - 매산리  - 음섬 - 송악IC - 필경사(20.1km)

 

  【충남】

                                            1. 공세리 성당

공세리 성당을 찾아가는 길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용산역과 온양온천역에서 기차와 버스를 환승하는데, 10여분의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수도권을 지나면서 버스가 하루에 서너 번 씩만 운행하다 보니, 정규교통을 활용하지 못하면 거금의 택시비를 지불해야하기 때문이다.

 

6시23분 용산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장항선)편으로 온양온천역에 도착하니 7시52분이다. 하루에 4번 운행하는 600번 버스를 타기위해 역전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간다. 가까스로 버스에 올라 한숨을 쉰다. 40여 분간 온양시내를 돌아 공세리 파출소 앞에 도착하며 하루 일정이 시작된다.

 

 

공세리 성당은 120년(1890년)의 연륜을 자랑하는 충청남도 문화재144호로 지정된 유서 깊은 성당이다. 2005년에는 한국관광공사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성당으로 선정되었고, 350년이 넘은 보호수를 중심으로 계절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는 성당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

 

 

공세리 성지는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한반도에서 아홉 번째로 오래된 성당으로 대전교구의 첫 번째 성당이며, 두 번째로 유신병인박해 때 32분의 순교자를 배출한 성지이고, 세 번째로 연3만 명이상의 피정객들이 숙식과 교육을 통해 마음의 안식을 받고, 네 번째로 조운선을 이용하여 서울의 경창으로 보내던 조세창고가 있던 교통의 요지로서, 다른 지역보다 서양문물을 빨리 받아들이면서, 천주교 신자들도 많이 늘어나게 되었다.

 

 

1895년 이곳에 부임한 에밀드비즈 신부님이 프랑스에서 배우고 익힌 방법으로 종기치료에 특효인 고약을 무료로 제공했는데, 심부님에게서 비법을 전수받은 이명래(요한)가 “이명래 고약”이라는 이름으로 전국에 보급하였다고 한다.

 

 

월요일 아침의 공세리 성당은 너무도 조용하다. 무성한 나무숲에 둘러싸인 성당곳곳을 둘러보며 엄숙하고 성스러운 분위기에 압도되어, 몸가짐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며 조용히 경내를 빠져나온다. 마을을 벗어나면, 지도를 바꾼 간척사업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공세리 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버스정류장 옆으로 34국도가 지나는 횡단보도를 건너 자전거도로를 따라 삽교천 방조제 방향으로 진행한다. 인주공단을 오가는 대형트럭의 굉음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올라선 곳이 삽교천방조제 남쪽지점이다. 삽교천방조제(揷橋川防潮堤])는 충남 당진시 신평면 운정리와 아산시 인주면 문방리 사이에 축조된 길이 3,360m의 방조제다.

 

 

충남 당진·아산·예산·홍성의 4개 시 군 22개 면을 전천후 농토로 개발하기 위하여 삽교천방조제를 축조했다. 이 지역은 넓은 평야와 간석지(干潟地) 등을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농업용수를 확보하지 못하여 한수해(旱水害)를 자주 겪어왔으며, 하구에서 흘러드는 바닷물로 유역 일대가 염해(鹽害)와 해식(海蝕)에 시달려왔다.

 

 

이와 같은 재해의 악순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하여 저수량 8,400만t의 삽교호를 1976년 12월 착공하여, 1979년 10월 완공하였다. 79년 10월 26일 삽교천방조제 준공식이 고 박정희대통령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었다.  -백과사전에서 인용 -

 

 

밀물 때라 제방까지 물이 차올라 어느 쪽이 바다이고, 어느 쪽이 저수지인지 분간을 할 수가 없다. 서해바다가 보이는 오른쪽이 바다이고, 왼쪽이 삽교호다. 길이 3,360m의 방조제와 저수량 8,400만t 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할 수없는 현장에서 인간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40여 분간 발에 땀이 나도록 걸어간 다음에야 삽교호 함상공원에 도착한다. 삽교호천수공원에 조성한 조형물을 둘러보고, 해변가로 조성한 "바다사랑길"을 따라 2km를 진행하면 맷돌포구다. 매산해안공원에서 왼쪽으로 매산로를 따라 음섬포구로 간다. 38번 국도를 횡단하여 도로 옆의 농로를 따라 서해고속도로 밑까지 3km를 지루하도록 이어간다.

 

 

심훈선생 기념관이 있는 필경사를 찾아가기 위해서는 부곡교차로에서 왼쪽으로 50여 m 떨어진 부곡2교를 건넌다. 마을길로 1.5km를 진행하면, 심훈선생이 그리던 소설속의 풍경이 펼쳐진다. 붉은 황토밭에서 감자 수확이 한창이다. 수 만평은 됨직한 너른 밭에서 트랙터를 동원한 수십 명의 농민들이 구슬땀을 흘리는 현장이다.

 

 

이곳에서 필경사가 보인다. 부곡1리 경로당을 지나 찾아간 곳은 심훈기념관이다. 기념관은 휴무라 둘러보지 못하고 옥상에 있는 선생의 등신상과 “그날이 오면” 시비와 상면한다. 지대가 높은 언덕 빼기라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마을이었겠지만, 지금은 당진제철소의 우람한 건물들이 앞을 가리고 있다.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로 시작되는 그의 대표 시는 조국의 독립과 자유의 소중함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에서 기자와시인, 소설가, 영화인 등으로 활동하다 출판금지로 32세의 젊은 나이에 시골로 내려왔다. 붓으로 땅을 일군다는 뜻의 "필경사"를 짓고 농촌계몽활동을 하던 친지를 모델로 "상록수"가 탄생하였다.

 

 

소설속의 주인공 박동혁은 심훈선생의 조카 심재영이다. 여주인공 채영신의 모델이었던 최영신은 경기도 반월 샘골 마을에서 농촌운동을 하던 여인이다. 두 사람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소설속의 연인으로 묘사되었다, 최영신의 고향에는 수도권전철 상록수역이 있고, 이곳 심재영의 고향에는 상록초등학교와 상록수교회가 있어 현재까지도 주인공들의 무대로 전해 오고 있다.

 

 

대나무 숲을 배경으로 “필경사, 심훈의 집”이란 문패가 달려있는 초가집 한 채가 자리 잡고 있다. 충청남도 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필경사는 1932년 부친이 살던 집에 내려와 작품 활동을 하면서 연재소설 고료를 받아 1934년에 직접 설계해서 지은 20평이 안 되는 일자형 초가집이다.

 

 

현재시간이 오후1시 30분. 오늘은 이곳에서 서해안답사를 종료하기로 한다. 한진 포구까지도 갈수가 있지만, 당진에서 출발하는 25번 버스를 기다리기에 가장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 한낮의 열기를 피해 등나무 그늘 속으로 들어서니 시원한 바람 속에 천국이 따로 없다. 땀에 젓은 옷을 등나무에 걸어놓고 도시락을 펼쳐든다.

 

 

망중한을 즐기는 중에 마을 할머니와 상면(相面)한다. 심훈선생에 관한 이야기를 귀동냥하면서 보내는 한 시간이 흥미롭기만 하다. 제시간에 도착한 버스에 오르면서 삼복더위가 지나고 선들매가 치는 가을에 다시 찾아 올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