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1길: 아름다운 순례길
일 시: 2015년 4월 9일
구 간: 월곡마을 - 여산 숲정이 성지 - 여산면사무소 - 이병기 생가 - 여산 저수지 - 여산 삼거리 - 양요마을 - 왕궁 저수지 - 보석박물관 -
왕궁리 유적 - 석조여래입상 - 금마면소재지 - 미륵사지 - 익산역 (도보 16km)
전북 제1길(여산 숲정이길): 13km
견훤왕릉길을 답사한지 10일 만에 찾아온 쟁목고개. 강남고속버스 터미널에서 6시30분에 출발하는 금호고속으로 2시간 만에 연무대에 도착했지만, 시내버스 편이 마땅치 않아 택시(7.300원)로 쟁목고개까지 이동한다.
고개라는 이름이 어색할 정도로 완만하게 경사를 이루고 있는 쟁목고개는, 전라도와 충청도를 가르는 분수령으로 호남에서 상경하는 길손들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다. 호남의 첫 고을 월곡마을 표지석을 뒤로하고 찾아간 곳이 천주교 박해현장인 “여산순교성지”다.
전북 익산시 여산면은 호남의 관문으로 일찍이 천주교가 전파되어 수많은 신앙공동체와 순교자들을 배출한 곳이다. 병인박해가 일어났을 때 금산, 진산, 고산에서 잡혀 온 신자들이 순교한 곳이며, 커다란 돌 비석에는 22명의 신자들이 순교했다는 내용이 있고, 성지에는 백지사 기념비가 있다.
1866년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 말살정책으로 시작된 박해가 1868년에 절정을 이루어, 많은 신자들이 잡혀와 25명이 처형되었는데, 그중에서 지도자인 김성첨(토마스)의 가족6명이 모두 순교했다고 한다. 숲정이와 장터에서 참수형과 교수형으로 처형되었고, 동헌(지금의 경노당) 뜰에서는 얼굴에 물을 뿌리고 백지를 겹겹이 덮어 질식시켜 죽이는 백지사(白紙死) 형이 집행되었다.
참혹했던 현장을 뒤로하고 여산성당을 찾아간다. 모본당 나바위성당에서 분리되어 1958년에 건립된 여산성당은 전주교구에 속하면서도 충남과 전북을 관할하는 성당이다. 면소재지를 벗어나 강경천 제방으로 올라서면 신자들을 수장시켰던 배다리가 있던 곳에 여산교가 있고, 삼정교(반야교)를 건너며 남원사를 만난다.
남원사는 831년(통일신라 흥덕왕 6)에 진감국사(眞鑑國師) 혜소(慧昭)가 창건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인데, 원래는 건물이 수십 동에 이르는 큰 규모의 법당사(法堂寺)라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폐사된 것을 1946년 법당을 중건하면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미륵전과 요사채, 종각과 오층석탑을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남원사의 주지 상래스님의 설명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남원부사로 부임한 윤공(尹公)이 남원으로 가던 중, 이 부근에서 잠을 자는데 꿈에 석불이 나타났다고 한다. 다음날 사람을 시켜 그 곳을 파보니 미륵불상과 석조거북, 오층석탑이 출토되어 이 자리에 3칸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남원사라고 하였다는 것이다. 미륵전에는 당시 발굴된 황금불상을 모시고 있다.
실개천처럼 좁아진 강경천 제방을 중심으로 너른 들판이 펼쳐지고, 엄동설한의 혹독한 추위를 이겨낸 청보리가 녹색물결을 이루고 있으니, 바라보는 마음만으로도 포만감을 느낀다. 보릿고개의 허기를 견디지 못해 청보리단을 베어다 가마솥에 볶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강경천 제방으로 “아름다운 순례길” 표지석이 눈길을 끈다. 세상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걷는 것이 좋고, 사람들 사는 향내를 맡고 싶으면 여산을 찾아보고, 내 자신을 알고 싶다면 익산의 ‘아름다운 순례길’을 걸어보라는 말이야 말로, 인간의 근본을 일깨워주는 보약처럼 큰 감명을 준다.
한국순례문화연구원과 4대 종단에서는 ‘2012 세계순례대회’를 앞두고 2009년 전북종교성지와 역사유적을 묶은 ‘아름다운 순례길’을 조성하였는데, 강경의 나바위성당과 천호성지를 잇는 이 길도 아름다운 순례길의 일부분으로 길이가 26.5km에 이른다고 한다.
삼남길과 일부 겹쳐지는 구간이라 흥미를 갖고 따라가는 중에, 가람 이병기선생의 생가를 만난다. 현대시조의 아버지 이병기(1891~1968)선생은 국문학자로서 조국과 민족을 사랑하며 평생을 지조 있는 선비로 살아온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비 / 가람 이병기
짐을 매어놓고 떠나려 하시는 이 날 / 어두운 새벽부터 시름없이 내리는 비 / 내일도 나리오소서 연일 두고 오소서
부디 머나먼 길 떠나지 마오시라 / 날이 저물도록 시름없이 나리는 비 / 저으기 말리는 정은 나보다도 더하오
잡았던 그 소매를 뿌리치고 떠나신다 / 갑자기 꿈을 깨니, 반가운 빗소리라 / 매어둔 짐을 보고는 눈을 도로 감으오
원수저수지에서 강경천도 끝이 나고, 예수마을 교회가 있는 연명교차로에서 왼쪽으로 799번 도로를 따라가면, 왕궁면이 시작되는 양동마을이다. 이곳에서 모인 빗물이 왕궁저수지로 흘러들고, 만경강으로 합류되는 익산천의 발원지가 된다.
왕궁저수지가 가까워오며 봄의 花神인 벚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明鏡止水에 어우러진 벚꽃은 봄을 빚어낸 조물주의 걸작 품이다. 벚꽃 터널을 지나 올라선 곳이 수 십 만평의 드넓은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함벽정(涵壁亭)이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된 함벽정은 1930년 왕궁저수지의 제방을 완성한 기념으로 이 고장의 부호였던 송병우(宋炳宇)가 건립한 것이다. 푸른빛이 감도는 저수지의 맑은 물을 그려 ‘함벽정’이라 부른다. 때마침 보석전시관에서 2015년 보석축제가 열리고 있어 자연히 발걸음이 보석전시장으로 향한다.
옛날부터 보석으로 유명한 익산의 지역적 특색을 살려 설립된 것이 바로 보석박물관이다. 익산 보석박물관은 백제문화유적과 보석의 아름다움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왕궁보석 테마관광지내에 건립하여, 진귀한 보석과 원석을 11만여 점 이상 소장하고 있는 세계적 수준의 박물관이다.
보석전시관 옆에 조성한 화석전시관에는 시대별로 각종화석을 전시하고, 야외 전시장에는 거대한 공룡들의 모형을 실물 크기로 조성하여 새끼와 다정한 공룡, 싸우고 있는 공룡의 모습 을 꾸며 놓았다. 이제 삼남길 12km를 완주하고 익산이 자랑하는 국보를 찾아 나설 차례다.
6번 좌석을 배정받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