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이스탄불. 上
일 시; 2014년 11월 12일
경유지: 호텔출발 - 카이세리 공항 - 이스탄불공항 - 시내관광( 비행1시간 20분)
이스탄불
6일째 아침은 이스탄불로 떠나는 날이다. 터키의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이스탄불은 카이세리 공항에서 국내선으로 이동한다. 우리나라의 양양공항처럼 게이트도 한 곳 뿐이고, 아담한 규모다. 11시 50분에 출발하여 13시 15분 이스탄불공항(아타튀르크공항)에 도착한다. 다른 팀들이 버스투어로 12시간씩 걸리는 것에 비하면, 돈을 조금 더 지불하더라도 편안한 여행에다 하루를 더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경제적인지 쉽게 알 수가 있다.
드디어 이스탄불에 입성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이어주는 도시. 2,700년의 역사를 가진 터키 제1의 도시로 인구가 무려 2천만 명에 이른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라고스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그리스 시대에는 비잔틴, 로마시대에는 콘스탄티노풀, 오스만제국에 이르러 이스탄불로 불리는 세계역사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제적인 도시이다.
이스탄불에서 둘러보는 명소들이 역사와 연관이 있는 곳이라. 이스탄불의 역사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라 생각한다. 트로이 전쟁이후 BC10세기경 최초로 정착이 이루어지며 라고스로 부르던 것이, BC7세기경 그리스의 식민지가 되면서 비잔티움으로 명칭이 바뀐다.
이후 비잔티움은 천연항구인 골든 혼을 중심으로 흑해와 지중해를 잇는 무역로의 중심으로 발전하고, BC6세기경에는 보스포로스 해협을 건너온 페르시아의 다리우스황제에게 비잔티움이 함락되고, 이후 아테네, 스파르타, 다시 아테네로 주인이 바뀌었다가 로마제국의 영토가 된다.
BC330년 로마제국을 재통일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국의 수도를 비잔티움으로 옮기면서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는 뜻에서 콘스탄티노풀이라고 불렀다. 콘스탄티누스의 후계자이자 아들인 콘스탄니우스가 이 도시에 아야 소피아성당을 짓기 시작한다.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로마의 세력이 약화되다가, 395년 콘스탄티노풀을 수도로 한 동로마제국과 로마를 수도로 한 서로마제국으로 분리된다.
힘이 약해진 서로마제국은 476년 게르만 민족에게 멸망하고, 동로마제국은 아나톨이아 반도와 콘스탄티노풀을 중심으로 1.000여 년간 더 번영을 누린다. 이러한 동로마제국을 비잔틴 제국이라 한다. 960년 무렵 투르크의 한 부족이 비단길의 중심지이자 교역의 통로인 중앙아시아 우즈베키스탄의 부하라와 사마르칸트 지방으로 이주한다.
이때 부족을 이끈 사람이 셀주크 장군이었는데, 훗날 서아시아 이슬람세계를 통일하고 오늘날 터키부근으로 이슬람교가 전파되는 기초를 만든 장본인이다. 셀주크 투르크제국은 이렇게 탄생한다. 셀주크 제국이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영토를 확장하여 지금의 터키지역인 아나톨리아 지역도 비잔틴제국의 기독교 세력권에서 투르크제국이 지배하는 이슬람권으로 흡수된다.
셀주크 투르크제국은 11세기가 전성기였는데, 이슬람 세력에 대항하여 유럽 쪽의 기독교도들이 십자군전쟁을 벌인다. 투르크제국은 십자군 전쟁을 치루면서 국력이 약해져 여러 지방에서 부족국가들이 탄생한다. 그 중의 하나가 부르사를 중심으로 일어선 오스만 투르크다. 오스만 투르크는 14세기 중반 차낙칼레 해협을 건너 유럽쪽으로 침투하기 시작한다.
1451년 오스만제국의 술탄이 된 마호멧은 19세의 젊은 나이로 과감하게 콘스탄티노풀을 공략하여 보스포로스해협을 건너 루멜리 히사르성을 축조한다. 교두보를 확보한 술탄 마호멧은 맹공을 퍼부어 마침내 콘스탄틴노풀을 점령하면서 정복자의 칭호를 얻는다.
마호멧 2세는 아야소피아 교회를 회교도 사원인 자미로 바꾸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를 이곳으로 옮기며 이스탄불이라 부르게 된다. 기반을 구축하기위해 주민들을 이주시키고, 톱카프 궁전을 신축한다. 이스탄불을 거점으로 100년 동안 중동과 발칸반도 지역으로 영토를 확장했고, 투르크해군은 에게해의 여러 섬들과 지중해와 아프리카 연안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오스만 제국의 전성기는 술탄 술레이만(1522년-1566년)재위기간이었다. 술래이만은 모든 전쟁을 손수지휘하며 승리로 이끌어 북아프리카 전역, 동유럽대부분과 러시아 남부를 포함하여 로마제국의 영토에 맞먹는 영토를 확장한다.
그러나 술래이만 이후의 술탄들은 무능하고, 오스만제국의 군사조직이었던 예니체리의 반란이 계속되어 절대군주의 유럽과는 다르게 주변부족들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고, 사치와 풍조로 국력이 쇠퇴해 진다. 마침내 세계1차 대전을 맞아 오스만제국은 국제정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독일 편을 들다가 멸망의 길을 걷게 된다.
오스만 제국이 세계1차 대전에서 패망한 후 독립운동을 일으킨 무스타파 케말은 1922년 그리스를 물리치고 마침내 독립운동을 승리로 이끈다. 무스타파 케말은 1923년 터키공화국을 선포하고 초대 대통령에 선출된다. 그가 세운 터키공화국은 부패의 상징인 이스탄불을 떠나 앙카라에 수도를 정한다. 하지만 이스탄불은 경제의 중심지요, 동서양이 만나는 교두보로서 흑해와 지중해를 아우르는 요충지임에 틀림없다.
처음 찾아간 곳이 불루모스크다. 6개의 첨탑으로 이루어진 이스탄불 최대 이슬람사원이다. 사원 내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터키석의 상징인 파란색상의 타일로 장식하여 불루모스크라고 부른다. 터키를 대표하는 최대의 모스크이며 원래 명칭은 술탄 마호메드 모스크로 7년간의 공사 끝에 1616년 완공한 건물이다. 이슬람의 종교행사와 공식행사를 거행하던 장소로 베네딕트 16세가 공식으로 방문한 곳이다.
술탄 아흐메트 1세가 아야소피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능가하는 건물을 짓고 싶었던 욕망으로 지은 건물이다. 내부관광은 하지 못하고 히포드럼 광장으로 이동한다. 비잔틴제국의 마차경기장이었던 곳으로 그 당시 1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U자형 경기장이다.
중앙에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진 오벨리스크는 이스탄불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BC15세기 이집트에서 만든 것을 BC350년 비잔틴의 테오데시우스 황제가 이집트 룩소르 카르낙 신전에서 가져왔다. 원래는 32.5m이었지만, 옮기는 도중에 밑 부분이 파손되어 현재의 높이는 20m이다.
청동 뱀상은 기원전 479년 그리스가 풀라테이아 전투에서 페르시아를 이긴 승전기념으로 그리스 아폴론신전에 세운 것을 콘스탄틴 대제가 326년 가져온 것이다. 원래는 6.5m이었지만 현재는 5m만 남아있다. 히포트럼에는 4개의 청동말상도 있었으나, 4차 십자군 원정 때 베네치아로 가져가 지금은 베네치아의 마르코성당입구를 장식하고 있다.
940년 콘스탄틴 7세에 의해 벽돌로 쌓은 오벨리스크는 높이가 32m에 이르지만, 1894년 지진으로 무너진 것을 다시 복구한 것이라고 한다. 성소피아성당으로 향한다. 성당을 방문하는 모든 여자는 히잡을 쓰도록 강요하고, 남자들은 모자를 벗어야 한다. 우수꽝 스러운 모습으로 경내로 들어간다.
537년에 완성된 비잔틴 최고의 건축물이다. 5년 6개월 만에 완성된 건물높이가 15층 높이에 해당하는 33m로 1,0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었다. 성당내부는 원래 아름다운 황금 모자이크 이었으나, 오스만제국이 점령한 후로 석회로 덧칠을 하여, 이슬람의 모스크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성소피아 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이 건립되기까지는 세계 최대의 성당이었으며, 이스탄불 대지진때도 무너지지 않은 뛰어난 건축양식으로 현존하는 세계7대 불가사의로 알려지고 있다. 로마제국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한 염원으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7년 완공시킨 것을 시작으로, 다양한 역사를 거치며 현재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카이세리 공항
이스탄불 시내
불루 모스크
히포트롬 광장
성 소피아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