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제42구간: 하조대

김완묵 2014. 7. 8. 21:31

일   시: 2014년 12월 9일

경유지: 죽도정 - 동산항 - 38휴계소 - 기사문항 - 하조대 - 하조대해변 - 알프스 비치 (9.6km)

 

                              제42구간: 죽도정 - 하조대해변( 9.6km)

 

시원하게 트인 동해바다와 향긋한 대나무향에 취해 죽도정을 벗어난다. “조개굽는마을” 동산리 이정표가 있는 동산항은 세월이 비껴간 조용한 어촌마을이다. 그나마 낚시꾼들로 인해 외지사람을 구경할 수 있는 동산항은 그만큼 때가 묻지 않은 순박한 마을이다. 그러하기에 도시에서의 복잡한 삶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의 품속으로 안기고 싶은 곳이다.

 

 

전방지역을 다니다 보면 38선표지석을 많이 볼 수가 있다. 휴게소까지 겸하여 국민들에게 안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세운 38선표지석은 우리민족의 아픈 상처를 보듬어주는 현장이다. 1945년 일제강점기로부터 해방의 기쁨도 잠시, 미소공동위원회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한반도의 허리가 두 동강으로 잘리고, 6.25라는 민족의 비극을 맞으며 현재까지도 지구상에 유일한 분단국가로 존재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장이다.

 

 

모처럼 바다냄새가 물씬 풍기는 기사문항에 도착한다. 깨끗한 백사장을 보듬어 안으며 모래톱을 만들고, 부드러운 모래와 부딪치는 파도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자연이 만들어내는 소리에 산란하던 마음도 진정된다. 청정해역에서 건져 올리는 수산물 어촌체험현장을 찾아가면, 어민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체험하는 즐길 거리가 기다리고 있다.

 

 

북쪽으로 오늘의 목적지인 하조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고운 백사장이 끝없이 펼쳐지고 동해의 푸른 물결이 넘실대는 하조대 해변. 사방을 둘러봐도 모텔 천국이다. 입맛대로 골라잡을 수 있는 숙소가 있기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하조대까지는 1.5km, 왕복으로 3km를 답사해야 오늘의 여정이 끝나게 된다.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새로운 바다가 펼쳐진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갖가지 형상의 바위들이 빚어낸 수석전시장이다. 소나무들이 벼랑 끝까지 울창한 숲을 만들고, 육지로 달려드는 파도가 암초에 부딪히며 일으키는 물보라가 장관이다.

 

 

관동팔경으로 손꼽히는 하조대에 올라선다. 겨울해가 서산너머로 걸터앉는 시간. 마음이 급해진다. 동쪽 산등성이에 있는 등대를 먼저 찾는다. 등대보다는 마주보고 있는 하조대를 감상하기 위함이다. 수십 길 벼랑위에 터를 잡은 하조대와 암초위에서도 꼿꼿한 자세로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낙락장송 한그루가 압권이다.

 

 

굳은 지조를 상징하는 소나무가 수백 년 인고의 세월을 지나면서도 고고한 품위를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야말로 중국황산의 영객송 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이다. 줄달음치다시피 달려간 곳이 하조대 팔각정자다.

 

 

조선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잠시 머물렀다는 하조대. 대신들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하조대라 부른다. 정자에 올라서면, 속새를 벗어나 신선들이 노닐던 경지에 들어선 듯, 만단시름이 모두 사라진다. 만경창파가 절벽의 암초에 물보라를 일으키고, 건너편에서 보았던 소나무가 깎아지른 벼랑위에서 손짓을 한다.

 

 

하조대전망대까지 답사하자면, 더 이상 지체 할 수가 없다. 절경 속에 자리 잡은 등대카페에서 차도 한 잔도 마시지 못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시 해변 가로 나와서 전망대를 찾아간다. 잠시 후, 낙조의 그림자가 드리우는 바다는 또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백사장도 푸른 바다도, 온 세상이 모두 황금색으로 물든다. 황홀한 정경을 마주대하며 나옹선사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성냄도 벗어놓고 탐욕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