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파랑길

34.35구간: 정동진

김완묵 2014. 6. 17. 04:29

일시: 2014년 6월 16일

구간: 망상역 - 망상오토캠핑장 - 도직해수욕장 - 주수천- 옥계해수욕장 - 금진항 - 헌화로 - 심곡항 - 썬 크루즈 -

        정동진 (15km)

 

                            제34. 35구간: 망상해수욕장 - 정동진 (15km)

 

일각이 여삼추라. 서울에서 첫새벽에 출발했어도 동해터미널에 도착하니 9시40분이다. 망상해수욕장을 오가는 버스가 있지만, 동해시를 순례하며 골목마다 지나는 버스가 하 세월이다. 해서 거금을 지불하고 택시에 몸을 싣는다. 망상역에 도착하니 10시. 인적도 없이 잡풀만 무성하다.

 

 

간이역인 망상역은 해수욕장을 개장하는 여름 한 철에만 손님을 받는다는 설명이다. 기념사진 한 컷을 찍고 해수욕장을 찾아가는 길은 한국철도 망상수련원계단을 따라 철길을 건너야 한다. 건너다보이는 노봉해수욕장으로 진입이 금지된 것은 군부대의 철조망 때문이다. 이래저래 바다를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가 않다.

 

 

콘도 해오름가족호텔에 도착해서야 망상해수욕장에 진입할 수가 있다. 동해를 대표하는 망상해수욕장도 개장준비에 바쁜 일손을 빼고는 정적만이 감돈다. 동해의 푸른바다를 가슴에 안고 2km가 넘는 백사장에 오토캠핑장과 케빈하우스를 조성하여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으니, 해수욕장이 문을 열기만 하면 바다가 그리운 행락인파가 구름처럼 몰려올 것이다.

 

 

해변의 모래톱사이로 키 작은 식물들이 고개를 내민다. 해안이나, 강가, 사막에서 모래사이로 자라는 식물을 사지식물(沙地植物)이라 부른다. 모래언덕은 바람에 의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웬만한 식물은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 좀보리사초, 갯메꽃, 갯완두와 같이 키가 작으면서도 자생력이 강한 식물이 뿌리를 내린 다음 해당화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해송이 뒤를 따르게 된다. 이러한 천이의 과정을 거치며 메마른 모래언덕에도 새 생명이 둥지를 트는 것이다.

 

 

아름다운 해안가를 무작정 걷다보니 철조망이 앞길을 가로막는다. 사방을 둘러봐도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서쪽으로는 영동선 철길에 펜스가 가로막고 있으니 밀이다. 옥계지구전적비가 있는 출구까지 되돌아 나와서야 올바른 길을 찾는다. 20여 분간 알바를 한 덕분에 망상해수욕장을 구석구석까지 살펴볼 수 있었으니, 전화위복이라고나 할까.

 

 

동해그랜드호텔이 있는 망상동 뒤편에 있는 심곡마을에는 약천 남구만선생의 유적지가 있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진다 /

소치는 아이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뇨.

 

 

초등학교 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하던 서정시의 배경이 바로 심곡마을이라고 한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고 싶지만, 거리가 먼 관계로 돌아서고 말았다. 약천 남구만(藥泉 南九萬)선생은 조선중엽 인조, 효종, 현종, 숙종의 4대(1629∼1711)에 걸쳐 활동하던 정치거물로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청구영언에 단 한 편이 전해지는 시조가 바로 망상동 유배생활에서 지은 것이다. 강원도 태생이 아니면서도 강원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선생은 본관이 의령, 호가 藥泉이다. 1651년(효종 2) 사마시(司馬試)로 입문하여 국정전반에 걸쳐 경륜을 쌓으며, 서인(西人)으로 남인(南人)을 탄핵하다 남해로 유배되었다가 이듬해 남인이 실각하자 도승지로 입조(入朝)하게 된다.

 

 

1683년 서인(西人)이 노소론(老少論)으로 분열되자 소론의 영수가 되어 우의정과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오른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득세하면서 강릉(江陵)으로 유배되어,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이곳에서 학문과 풍류를 즐기며, 주민들에게 큰 덕을 베풀어 그의 발자취가 그대로 전해오고 있다.

 

 

가곡해변에서 해파랑길은 갈릉바우길과 함께 망운산을 넘어 옥계시장으로 연결된다. 하지만 부실한 몸(만성기관지염)에 30도가 넘는 더위를 이겨낼 자신이 없어 7번 국도를 따르기로 했다. 영동선 철길을 가로지르는 도직교에 올라서면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진다. 망망대해의 푸른 바다와 백사장, 소나무 숲 사이로 달리는 바다열차가 동화속의 그림과 같다.

 

 

도직교를 넘어서면, 옥계항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한라시멘트 레미콘공장이 우람하게 보인다. 우리 경제발전의 원동력이 된 시멘트를 생산하는 라파즈 한라시멘트 옥계공장이다. 백두대간을 지나는 자병산을 중심으로 무진장 매장되어 있는 시멘트의 원료인 석회석을 가공하는 공장이다. 시멘트 공장으로 인해 옥계면이 발전하고 산업의 역군으로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현장이다.

 

 

옥계역에서 새로 건설한 옥천대교(玉泉大橋)를 건넌다. 아직 완공전이라 자동차는 다니지 못하고 사람만 겨우 다닐 수 있어, 옥계시장을 돌아오는 2km를 절약하고 보니 이래저래 기분 좋은 시간이다. 옥천대교 밑을 흐르는 하천이 주수천이고, 하천을 중심으로 해파랑길 35구간이 시작된다.

 

 

주수천은 백두대간이 지나는 석병산(1055m) 동쪽사면에서 발원하여 옥계해변에서 낙풍천과 합류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가 15.5km에 이르는 비교적 짧은 하천이다. 하지만 주수천은 양양의 남대천, 삼척의 오십천과 함께 연어가 회귀하기 때문에 연어 포획장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또한 참갈겨니를 비롯한 민물고기들이 서식하고 있어 낚시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연어는 태어난 곳으로 돌아오는 회귀성 어종이다. 이곳 강릉의 주수천은 하천의 길이가 짧고 바다로 나가는 과정에서 장애물이 별로 없어 연어가 산란을 위해 돌아오기가 용이하여 주수천으로 연어들이 몰려들게 된다. 어린 연어가 거친 파도를 헤치고 베링해협까지 이동하여 5년이라는 긴 세월을 이겨내며 성어가 되어 모천으로 회귀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을 더듬는 험난한 여정이다.

 

 

낙풍천을 건너면 곧바로 옥계해변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속으로 방갈로가 펼쳐지고, 시원한 해풍이 불어오는 백사장이 옥계해변의 특징이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군락을 이루는 솔밭공원 속에는 한국여성수련원이 명당자리를 차지하고, 금남의 집이라 남성의 접근을 금지하는 하얀 펜스가 솔밭 속으로 이어진다. 금진초등학교에 도착하면 금진항 2.4km, 정동진8.8km이정표가 반겨준다.

 

 

옥계해변과 금진해변이 백사장으로 연결되지만, 군부대의 철조망이 둘 사이를 갈라놓아 먼 거리를 돌아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그림 같은 팬션이 손님 맞을 준비에 여념이 없고, 해안가로 둘러친 철조망을 따라 헌화로가 시작된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수로부인의 설화를 근거로 금진해변에서 심곡마을까지 4.3km에 이르는 아름다운 도로를 헌화로로 명명하여 기념물을 조성해놓았다.

 

 

헌화로 중간지점에 합궁(合宮)골 간판이 있다. 합궁골은 남근과 여근이 마주하여 신성한 탄생의 신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의 서기를 받아 우주의 기를 생성하여 음양이 조화를 이루는 이곳은, 부부가 함께 오면 금슬이 좋아지고 기다리던 아기가 생긴다는 신비스러운 곳이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헌화로는 산모퉁이를 돌아갈 때 마다 새로운 풍경이 연출되어 지루한 줄을 모른다. 심곡마을에 도착하면 헌화로도 끝이 나고 정동진 가는 길은 산 고개를 넘어야한다. 마을 중앙에는 180여년이나 되는 성황당이 있고, 수 백 년이 넘어 보이는 고목나무아래서 마을 어른들이 담소를 나누는 정경이야말로, 심산유곡의 별장이 따로 없다.

 

 

제법 가파르게 이어지는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오늘의 목적지인 정동진이 아련히 내려다보인다. 화이트하우스를 시작으로 해돋이의 명소답게 모텔들이 줄줄이 모습을 드러낸다. 누가 뭐래도 정동진을 대표하는 곳은 모래시계로 시작되는 유원지와 절벽위에 자리 잡은 썬 크루즈리조트다.

 

 

정동진 백사장에서 남쪽언덕을 바라보면, 바다로 출항하는 형상의 썬 크루즈호텔이 너무도 아름답다. 썬 크루즈는 2002년 조선소에서 주문제작한 길이165m에 높이가 45m로서, 3만 톤급의 실제 유람선이라고 한다. 211개의 콘도형객실과 부대시설을 갖춘 썬 크루즈는, 조각공원과 해돋이 공원을 조성하여 어느 곳에서나 정동진해변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1995년 방영된 인기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한 몸에 받고있는 정동진은 한류열풍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정동진역은, 서울 광화문에서 정 동쪽에 있는 해변이라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계에서 가장 큰 정동진 모래시계는 8톤 분량의 모래가 담겨 있고, 전부 내려오는데 1년이 걸린다고 한다. 일반 모래시계와 달리 둥근모양은 시간의 무한성과 동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상징하고, 레일은 영원한 시간의 흐름을 의미한다. 또한 모래시계의 유리면에는 우리의 전통적 시간 단위인 12간지가 새겨져 있다.

 

 

앙증맞은 정동진박물관과 객차를 개조한 시간박물관을 돌아보고 끝없이 펼쳐지는 백사장으로 나선다. 입자고운 모래가 발바닥을 간질이는 정동진은 젊음을 발산하는 낭만의 해수욕장이요. 한 알 한 알 흘러내리는 모래시계처럼 추억을 고이간직하고 싶은 곳이다.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곧바로 정동진역이고, 이곳에서 35구간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해파랑길 강릉구간은 강릉 바우길의 동해안 구간과 겹쳐지므로 해파랑길이나 바우길 중 어느 안내표시를 따라도 무리가 없다. 옥계해변부터 만나는 소나무 숲은 강릉이 전국 제일의 소나무를 가졌다고 자랑해도 될 만큼 굵고 싱싱한 소나무가 도처에서 숲을 이룬다.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을 지나면 산위로 뻗은 노선이 기다린다. 잠시 헐떡이며 산을 건너던 해파랑길은 안인해변에 이르러 가쁜 숨을 내려놓고 편안한 해안길로 접어든다.

 

그러다 다시 길은 울창한 송림을 따라 북서쪽을 향해 내륙으로 치닫는다. 이 길은 신라시대의 거대한 사찰이었던 굴산사터를 만난 후에야 다시 동해로 향한다. 소나무숲과 강릉 중앙시장을 경유해 남항진해변에 다다른 길은 곧게 뻗은 해안선을 따르다 경포대 앞의 유명한 호수길을 따라 돈다. 다시 해안을 따르던 길은 주문진에 이르러 예전부터 경치가 뛰어나 곳곳에 정자가 많았다는 향호에서 양양으로 넘어간다.      - 86.4km -